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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아래 놓인 신발은 총 다섯 쌍이었다. 여옥의 것이 포함된 수이니 이를 빼면 넷.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그때 그 자들이 그대로 온 것이다.
‘정말로 내가 마음에 들었나보네…… 그렇게 예뻐 보였나?’
스스로도 ‘괴이쩍다……’ 싶은 생각을 하며, 이안은 자신의 비단신을 그 옆에다 가지런히 벗어놓았다.
“후…….”
길게 한 번 들이켜고,
“하…….”
길게 다시 내뱉고.
“셋을 헤아린 후…….”
방문 앞에서 천천히 수를 센 이안이 이어 조심스레 방문의 손잡이를 쥐었다.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곧이어,
“……들어오너라.”
나지막한 여옥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이제 다시 셋 쉬고…….’
이안이 슬그머니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엔 그때의 면면들이 그대로 자리해 있었다.
“오…….”
“허허, 드디어 왔구먼.”
“기다렸다고!”
이상환 또한 진실로 그러한 듯, 환한 웃음을 내비치며 말했다.
“다시 만나 반갑구나.”
“반갑습니다, 나으리. 저 또한 그러하옵니다.”
대답과 동시에 이안은 빠르게 주위 눈치를 살폈다. 어디에 앉아야 할까.
‘일단은…… 괜찮겠지?’
이안이 택한 곳은 여옥의 곁이었다. 다소곳이 앉은 후 재차 눈치를 봤으나 다행히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여옥 역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더욱 고와진 것 같구나.”
“……과찬이시옵니다.”
“과찬이라니, 나도 똑같이 느꼈다니까?”
“어엇, 자네도?”
“허허, 자네도?”
이어 동시에 중년인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보고 싶어 혼났다니까 글쎄?”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나는 심지어 꿈에까지 나왔다고!”
고작해야 열여섯에 불과한 아이의 호감을 사기 위해 불혹을 넘긴 양반들이 저토록 열성이라니. 게다가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것 마냥 지기 싫어 경쟁하는 꼬락서니들이 아닌가. 여옥은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전모를 쓰지 않았구나?”
“실내에선 쓰는 게 아니라고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까?”
“고것 참,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이 귀여웠는데 말이야.”
“오늘은…… 술 한 잔 받을 수 있는 건가?”
쉴 틈 없는 질문공세에 이안이 깜빡 눈웃음치며,
“음…… 그럴까요, 그럼?”
한 마디 받아주니 그야말로 껌벅 죽는 모습들이었다.
“허허, 기대해도 되겠느냐?”
“오늘은 술이 달겠구나!”
“수기는 뭣 하시오? 어서 금이라도 연주해보지 않고!”
본래 여옥의 연주는 이리 쉽게 청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성 내 제일이라는 평판에 걸맞게 이를 찾는 객들의 수가 상당한지라, 제아무리 고관대작이라 할지라도 예약이 필수였고 이 또한 서너 곡 이내로 제한될 정도였다. 아니, 애당초 이를 모른다 할지라도 이리도 일찍 풍악을 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엔 여옥이 자처하여 연주를 서둘렀음에도 난처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는 것은, 정말로 당장 흥취가 올라 재촉을 한 것이라거나 아니면…….
‘나를 조금이라도 빨리 내보내기 위하여…….’
여옥은 또다시 스멀스멀 치밀어오는 불안감에 가슴이 떨려왔다.
“……예.”
여옥이 곡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이안을 향한 질문은 계속되고 있었다.
“전엔 전모며, 저고리며 온통 홍색 일색이더니만 오늘은 푸른 저고리 차림이로구나. 별다른 이유라도 있느냐?”
“그래, 그래 홍색도 잘 어울렸는데 말이지. 아, 물론 지금이 별로라는 건 결코 아니란다.”
이안은 별 것 아닌 것에도 무척이나 관심이 있다는 듯 눈을 빛내는 눈앞의 양반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이 차림이 제 기명과 더 어울리는 듯하여…….”
이안의 말에 별안간 소동이 일었다.
“오호, 기명?”
“상악어른께서 기명을 지어주셨더냐?”
“허허, 그러고 보면 이름도 모르고 있질 않았던고…….”
“그래, 그래 네 기명이 무엇이더냐?”
“……예, 청화(靑花)라 하옵니다.”
곧이어,
“호오…….”
“오!”
“허허, 푸른 꽃이라…… 좋구나, 좋아!”
기녀의 이름으로 사실 그리 특색 있는 것이라 보기 힘든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년인들은 무엇이 그리도 비범하게 느껴졌는지 한참 동안이나 탄성을 내질렀다.
이어,
“이는 상악어른께서 네게 지어주신 게냐?”
“……실은 그 분께서 제게 원하는 이름이 있다면 직접 지어보라 하셨기에…….”
그 말을 듣곤 한참을 또,
“과연, 과연!”
“영특하기 그지없는 아이로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감명이라도 받은 듯 실컷 찬사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한 걸 넘어 아주 그냥 지겨울 정도였다.
그즈음 준비를 끝마친 여옥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아, 수기께선 준비를 끝마치셨는가?”
“아하, 그렇지…… 연주를 들을 차례였지.”
어째선지 조금 시큰둥한 반응들이었다. 여옥은 가슴 한편의 불안감과 더불어 조금은 짜증스런 기분을 함께 느꼈다.
“혹, 원하는 곡이 있으신지요?”
다들 대답을 미루는 분위기였다.
“그냥 수기가 원하는 곡으로 하지.”
이어 그게 무슨 대수겠냐는 듯 이상환이 한 마디 하자, 모두가 이에 동조했다.
“우리들이 뭘 알겠나, 전문가가 고르는 게 맞지.”
“그렇지.”
“확실하지, 그게!”
어련하실까. 여옥은 콧방귀라도 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순배를 돌리고 계시지요. 한 곡 연주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술을 돌리려면 누가 잔을 좀 채워줘야 할 것이 아닌가?”
“수기께선 금을 타야 할 것이고…… 마침 손이 노는 이가 하나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흠…….”
자기네들 손은 어디 단체로 묶이기라도 한 모양이다. 여옥은 저들의 욕구를 쉬이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이안에 대한 불안감도 불안감이지만, 그즈음엔 자신 역시도 꽤나 열이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예악교습을 위해 이곳에 방문 중인 아이라…… 금을 타는 동안엔 제 손동작 하나하나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부디 이해해주시길…….”
꽤나 강경한 반응에, 그들 역시 무안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야 뭐…….”
“……어쩔 수 없지.”
여옥은 그들의 반응에 조금이나마 만족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마냥 기분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이상환의 느긋함이 여전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 잔이야 우리가 알아서 채우면 되지 않겠나. 자, 어서들 받게. 뭐 그리 급하다고…… 밤은 길다네.”
‘긴 밤이라…….’
또한 이 말을 기점으로 이안 역시도 조금쯤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것 참…… 벌써부터 재미없는데 큰일 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