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한창인 강의실 안, 처음으로 듣는 수업은 담희를 비롯한 여러 학생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담희야 학우 관계는 어찌할 바 없이 무너졌다고 해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오고 싶었던 학과인 만큼 수업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그것은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하였다. 실상은 고등학교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망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꼭 도덕 수업의 연장선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수업에 대한 흥미가 조금 식어갈 무렵 담희는 무언가 뒤에서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신경이 쓰이니 당연하게도 작게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동기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다. 예를 들어 잠을 잘 때 문을 열어놓고 자면 누군가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찾았다.”
앞, 그보다는 위에서 들린 소리에 담희는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진원지는 따로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빳빳한 책 위로 하얀 발 한 쌍이 올려져 있었다. 그 발과 이어지는 하얀 다리를 따라 고개가 위로 올라가려 했다.
순간 시선이 골반까지 다다랐을 때 담희는 억지로 고개를 멈췄다.
‘모른 척. 모른 척해야 해.’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자신이 귀신을 본다는 것을 감출 수 있을 거 같았다.
“저기, 제가 안 보이나요?”
여자 귀신이 의문을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위에서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이 들려왔으나 담희는 침묵을 고수하였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감사합니다."
담희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따라올 것을 상정했기에 달린 거였다. 그러나 문제는 모퉁이를 돌자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남자가 보였던 것이었다. 하얀 모시옷을 입은 남자가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소름 돋는 감각에 그녀는 갈 곳을 잃었다.
남자의 뒤로 계단이 보였다. 그 계단이 그녀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계단이었다. 자신의 옆으로는 여자 귀신이, 그녀의 앞으로는 남자 귀신이 다가오고 있었다. 담희는 바로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가장 안쪽 칸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어쩌지.'
하나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화장실의 칸막이 위는 공간이 크게 비어 있어서 사람 하나쯤은 간단히 오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 있……”
“깍!”
여자 귀신이 칸막이 위로 몸을 쑥 내밀자 담희는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내질렀다. 담희의 주먹에 여자는 끽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축 늘어졌다.
칸막이 위로 길게 늘어진 모양새가 꼭 옷걸이에 널어놓은 빨래와 같았다. 담희는 그녀의 몸에 살짝 손을 대고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따라 쓱 하고 밀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빨래와 같았다. 그저 두툼한 인형이 들어간 빨래.
“소멸되는 줄 알았어요.”
여자가 정신을 차리고 처음 꺼낸 말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아팠던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담희를 보고는 뒤로 나자빠졌다.
담희는 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가 맞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은가 수업시간에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서 화장실 칸막이 안을 엿보다니.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담희는 당당히 행동했다.
“여기는 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요.”
담희보다 먼저 화장실에서 나간 여자 귀신은 남자 귀신에게 안겨서는 애정행각을 버렸다. 담희는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는 앞서 걸음을 옮겼다.
건물 뒤편에는 산책로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지 좁게 포장된 길이 있다. 하지만 건물에 가려 항상 그림자 지는 그곳은 사람의 발길이 뜸한 편이었다. 그만큼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길을 침범했다.
담희는 발에 스치는 풀을 피해 가며 길 중앙에 의자가 있는 곳까지 갔다.
“조심하세요. 이곳까지 뱀이 내려올 수도 있어요.”
“뱀이 출몰한다고요?”
“네, 건물에 들어오는 뱀을 본 적이 있어요.”
의자 주위에는 낮은 담으로 둘려있어 담희는 조금 안심하고 의자에 앉았다.
“왜 저를 찾아온 거죠?”
빨리 대화를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에 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처음에는 강한 귀신이 이곳에 터를 잡으러 온 건가 싶었는데 지켜보니 사람인 줄 알았어요.”
둘은 말을 빨리 끝낼 생각이 없는지 질문에 맞지 않는 대답을 늘어놓았다.
“그럼 제가 영가를 본다는 걸 몰랐던 거네요.”
“네, 사람이라기에는 음기가 너무 강해서 혹시 보이는 게 아닐까 예상만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놀라게 하면 반응을 숨기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에 열이 받은 담희가 두 귀신을 노려보자 둘 다 지레 겁먹고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죄송해요. 하지만 저희는 부탁을 드릴 분이 필요했어요.”
“부탁이요?”
“네, 저희는 이곳에 건물이 지어지기 전부터 있었어요.”
여자는 호소하듯 말을 쏟아냈다.
“정확히는 왜놈들이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올 때 말이다. 그놈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 온갖 패악을 부렸고 우리는 도망치기로 하였다.”
“순사들이 마을의 아녀자들을 겁탈하려 했거든요.”
그 시절, 일본군을 피해 산으로 도망친다는 발상 자체가 자살과도 같았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산에는 일본군이 쇄도하였고 그들은 불안한 산행을 강행했다고 한다.
“예상되시겠지만 저희는 이곳까지 내려온 후에 발각되었어요.”
“왜놈들이 쏜 총에 말년이가 맞았고 나는 다가온 놈들에게 머리를 뚫렸다.”
말년이는 여자의 이름이었다.
“내 시신은 이곳에 방치되었다.”
“저도 이 자리에서 죽었지만 그들은 몰랐던 거 같아요. 제 시신을 질질 끌고 내려갔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의 배를 한 번 쓸어내리고는 말했다.
어째서 여자만 데려갔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담희는 주먹을 그러쥐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던졌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혹시 시신을 찾아 달라던지 그런 거라면 저는 못해요.”
솔직히 그거 이외에도 부탁을 들어줘서는 안 되기에 담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들의 사연이 기구하기로서니 말마따나 이제는 과거가 아닌가.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으나 들어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다.”
남자는 팔을 휘휘 저어가며 부정했다. 여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저희 시신은 이미 거둬졌어요. 저야 아무 곳이나 묻혔고 성철이의 시신도 잘 수습됐어요.”
“건물 지을 때 토양다지기부터 하잖아. 그때 발견돼서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담희는 티비에서 본 공사현장을 떠올리며 납득했다. 그런 공사가 있었는데 시신을 그냥 두었을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럼 어째서 이곳에 남아계신 거죠?”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혀 한이 남아 있는 느낌도 아니었다. 특히 모습이 죽음과는 다르게 고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한이 많을수록 죽을 때의 모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래서 기괴한 모습으로 다니는 귀신들이 많은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 수 없다면 함께 죽고 함께 묻히기를 바랐어요.”
“우리가 한 날 한 시에 죽기는 하였어도 이곳에는 내 시신만 남았지.”
둘의 시신을 함께 매장해 달라는 부탁이 돌아올 거 같은 불안함에 담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했다는 혹은 함께 한다는 증거로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네?”
의외의 말에 담희는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한이 서리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탁마저 이리도 소소한 것일지는 몰랐던 것이다.
“어떤 걸 남기고 싶으신 거죠?”
“그게 사실은 성철이가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었어요. 그래서 그런데…….”
여자는 말을 멈추고 힐끗 남자를 살폈다.
“혹시 내가 너의 몸에 들어가면 안 되겠니?”
담희는 남자의 말을 당연히 거절하였지만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그들의 말은 들어주고 싶기도 하였다.
그는 잠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동원을 바라보았다.
“차사님.”
육개장을 먹고 있던 동원은 기다렸다는 듯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담희를 마주보았다.
“무슨 고민 있구나?”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였다. 긴 설명에도 담담히 이야기를 듣던 동원은 끝에 몸을 빌려달라는 대목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좋은 발상은 아니군.”
산 자의 몸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말에 담희는 조금 의아했다. 그에게 말하면 당연히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 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화내지 않는 것이 조금 섭섭하게 느껴졌다.
“너는 수련이 된 몸이 아니라 네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장시간 네 몸에 들어가 있을 필요가 있어.”
장시간이라는 말에 담희는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 시간동안 그 남자의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버틸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소멸하지 않는다 해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소멸이라는 말에 담희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엄한 일에 끼어들지 마. 내가 지금 자세하게 설명해준 이유는 괜히 안 된다고만 하면 욱하고 나설까봐 그런 거다.”
동원은 긴 설명을 마치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도와주지 않겠다고는 해도 무언가 방법을 물어보고 싶었던 그녀는 조금 침울해졌다.
식사가 끝나고서도 시무룩하게 있는 담희를 보며 동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따라와라.”
시장골목에 있는 신발가게에서 장화를 사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목장갑과 식수도 샀다. 이런 것이 왜 필요하냐는 담희의 질문에 동원은 담담하게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산을 오를 거다.”
처음에는 짧은 산행 정도로만 생각했던 담희는 곧이어 그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준비를 철저히 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일반적인 산행에 왜 장화가 필요하겠는가. 강화를 신고 산행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뱀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산행이 아님을 의미했다.
“왜 산을 오르는 건지 설명이라도 해주면 안돼요?”
길도 없고 끝도 보이지 않는 가파른 비탈길을 계속 오르자 담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무언가 연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려 해도 몸이 고단하니 좋게만 생각할 수 없었다.
“……몸을 빌려주지 못하고 무언가 남기고는 싶다니 특별한 꽃반지 정도면 되겠지.”
담희는 말문이 막혔다. 커플링도 아니고 꽃반지라니. 물론 그녀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그들이 만족할 만한 물건을 사지 못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꽃반지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꽃이야 꽃집에서 사면 되는 흔하디흔한 것인데 겨우 꽃 몇 가닥 꺾자고 이리도 험한 산행을 강요하는 것인가.
“도와주고 싶었던 게 아니냐?”
담희의 속마음을 들여다 본 것 같았다. 정곡을 찔린 그녀는 찔끔했다.
“…….”
담희는 속는 샘치고 동원을 믿어보기로 하고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오르고, 또 오르고 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외진 곳을 따라 들어가니 점점 공기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걸음을 멈춰선 동원이 어딘가에 대고 이야기 하였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작은 굴이 있었다.
굴 안에서 소리가 나더니 구렁이가 밖으로 나왔다. 작은 머리와는 다르게 성인 다리통만큼 굵은 구렁이가 좁은 굴에서 모습을 들어냈다. 뱀을 실제로 보는 일이 별로 없어도 미디어를 통해 본적은 많기에 그 뱀의 모습이 기이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담희는 도망가려다가 동원의 담담한 태도에 잠시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구렁이는 혓바닥만 한 번 내밀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도망치자며 재촉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방긋 미소 짓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요즘 시대에는 잘 없는 일이지만 아직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기 위해 수련을 하는 이무기가 있지.”
“그럼 저 뱀이…….”
“그래, 이무기다. 이 주위에 있는 들꽃은 신성한 기운이 감도니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그가 말한 특별한 꽃반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담희는 들꽃을 꺾으며 욕심을 내지 않았다. 딱 네 개의 꽃을 꺾고는 조심스럽게 손수건에 감싸 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꽃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희는 뱀이 있는 작은 굴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동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따라 숲을 돌아다니니 인적은 드물지만 등산로가 나왔다. 그길로 한달음에 학교로 향했다.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고 학교에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넘어지고 미끄러져 그녀의 모습을 엉망진창이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바로 이곳으로 온 이유는 한 가지였다.
“어디 계세요. 빨리 나오세요.”
최대한 빨리 그들에게 가져다주라는 동원의 충고가 있었기에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저희 찾으시는 거예요?”
문틈으로 불쑥 머리를 내미는 두 사람을 보고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몸은 빌려 드리지 못하지만 반지는 어떠세요?”
반지라는 말에 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별건 아니지만 꽃을 꺾어왔어요.”
손수건을 펼쳐서 꽃을 보여주니 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음에 든 것인지 둘은 그 어떤 때보다도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담희는 그들이 있던 강의실 책상에 손수건을 펼쳐두었다.
남자가 먼저 여자의 약지에 꽃을 매어 반지를 만들어주었다. 여자도 반지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울상이 되었다.
“괜찮아. 이대로도 예뻐.”
남자는 여자를 품에 안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들의 주위로 밝은 빛이 발하며 서서히 모습이 사라져갔다.
“고마워.”
“감사해요.”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환청처럼 감사의 말이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