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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06.가녀린 손
작성일 : 16-10-10 16:05     조회 : 698     추천 : 1     분량 : 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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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는 걸레를 포신 안 쪽 깊숙이 넣어 쓱싹쓱싹 닦았다. 닦을 때마다 썩은 기름과 찌든 때가 묻어나왔다. 이도는 걸레를 물통 속으로 집어던지고 다른 걸레를 집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걸레도 못 쓰게 되어버렸다. 이도는 바닥에 앉고 한숨을 쉬었다. 하늘은 화창하다. 덥다. 노동까지 하니 땀이 줄줄 흐른다. 이도는 옷으로 땀을 닦았다.

 

  “어이, 신참! 어디서 감히 땡땡이냐!”

 

  돌격대장이 다가와서는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도를 그냥 신참으로 부르기로 작정한 듯하다. 이도는 마지못해 다시 포를 닦았다.

 

  “돌격대장님, 포격술은 언제 배웁니까?”

 

  “그 포를 깨끗하게 닦으면!”

 

  그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돌격대장님, 설마. 무협소설에 나오는 스승이 제자에게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잡일부터 시키는, 그런 케케묵은 클리셰를 저한테 시험하는 건 아니겠죠?”

 

  “큭!”

 

  돌격대장은 애써 헛기침을 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무협은 항상 내 로망이었어!”

 

  “음, 해상생활도 일종의 무협이라면 무협이지만요.”

 

  “바로 그거야! 뭘 좀 아는구만!”

 

  돌격대장은 이도의 등을 팡팡 쳐댔다.

 

  “걱정마라! 알 수는 없지만 너는 믿음이 가. 처음 볼 때부터 그랬어! 알 수 없는 믿음이 너에게서 솟아난다니까? 분명 넌 포격술을 가르쳐주면 금방 배울 거야. 그런 느낌이 들어! 우리 누님도 분명 너에게서 그런, 신뢰를 느낀 거야. 누님은 흥미 없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당장 꺼지라고 하거든! 근데 넌 한참을 쳐다봤어, 네가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걸 아는거지!”

 

  “하하하.”

 

  내가 누군지 알면 이 남자는 얼마나 놀랄까? 이도는 돌격대장이 못 보게 몰래 미소 지었다. 사실 이 포 닦기도 그렇게 싫진 않았다. 보름동안 갇혀 지낸 뒤는 이런 잡일도 즐거워지나 보다.

 

  이도는 사실 이 배에서의 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이 배는 생기가 흘러넘친다. 선원들이 잡아 올린 물고기가 배 위에서 팔딱팔딱 뛰어댔고 바람의 지시에 따라 배를 차올리는 파도는 하얀 포말로 부서져 내렸다. 이도는 바다를 바라봤다. 푸른 들판은 허전해보이기보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는 듯하다.

 

  “선장님은 어떤 사람이에요?”

 

 

  “용모 단정하고, 리더십 넘치고, 또 귀여우신 분이지?”

 

  귀엽다고? 지금까지 이도가 본 아리아의 모습으로는 잘 상상이 안 간다.

 

  아리아, 그 이름을 떠올리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녀에게서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거친 겉모습과는 다른 알 수 없는 무언가. 대체 뭘까?

 

  예쁜 손. 그 손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도리아, 돌격 대장한테 좋은 전투원의 첫걸음 수업은 잘 듣고 있겠지?”

 

  “아!”

 

  어느덧 아리아가 이도 옆에 와있었다. 자신감 찬 미소를 만면에 띄웠다. 돌격대장은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물러났다.

 

  “네. 묵으로 종이를 검게 물들이듯이, 걸레를 검게 물들였죠.”

 

  아리아는 눈썹을 치켜떴다.

 

  “종이?”

 

  아! 실수했다. 종이는 상류층의 자제가 아니면 쉽게 쓸 수가 없다. 최근에는 대중에게도 많이 보급되었지만 아직은 멀었다. 이런 사소한 말에서 그의 출신성분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이도는 뒤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비유가 이상했나요?”

 

  “아니, 아냐.”

 

  이도는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선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신대륙에서 이루어지는 무역 중 어느 정도가 불법이고 어느 정도가 합법인가요?”

 

  아리아를 혀를 찼다.

 

  “아무것도 모르는군. 신대륙에 합법적 무역업자는 없어. 모두 불법무역업자지. 요컨대, 신대륙의 제국 식민지는 밀수꾼의 천국이야. 그것도 모르고 내 배에 오른 거야? 원, 참. 신입교육교본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신대륙은 밀수꾼의 천국이다. 잠깐, 뭔가 이상하다. 분명 신대륙의 제국 식민지는 관세를 이유로 독립을 주장하고 있어. 관세가 너무 높다는 것이지. 근데 신대륙의 무역업자들은 전부 밀수를 한다고? 그러면 사실상 관세는 있으나 마나 아닌가? 그런데도 관세를 이유로 들어 독립을 주장한다니?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났다. 어쩌면 관세는 핑계일지도 몰랐다.

 

  아리아는 갑자기 생각에 잠긴 이도를 내려다보았다. 이 샌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좀 특이해. 어쩌면 신참이 아닌지도 몰라. 근데 우리의 적을 죽였잖아? 그럼 우리 편이 아니고서야 뭐란 말인가. 아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설마.

 

  “어?”

 

  아리아는 이도를 쳐다보다가 이질감을 느꼈다. 뭐지? 저 녀석. 칼을 차고 있군. 하지만 저 칼집은 이상해. 평범해 보이지만, 저 칼집의 모양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검의 모습은, 이상하네. 서방의 것이 아냐. 저건 동방의 것이야. 근데 이 놈은 피부도 희고 머리 색깔도 검지 않은데.

  순간 위험한 직감이 아리아를 관통했다.

 

  “가만히 있어 봐!”

 

  아리아는 당황한 이도의 검을 뽑았다. 직감이 맞았다. 비록 동방의 검이지만, 귀족의 노예 노릇을 했던 아리아는 알 수 있었다. 자주 썩을 놈들이 칼로 그녀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검이 보급용인지 귀족용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이 검은 귀족용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아리아는 이도의 멱살을 잡았다. 얼굴을 맞대며 노려보았다.

 

  “너, 정체가 뭐야?”

 

  이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리아는 또 이질감을 느꼈다. 멱살에서 무언가 이상한 게 잡히는 것이다. 이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리아는 옷 아래에 숨겨져 있던 펜던트를 꺼내들었다. 아리아의 눈에 경악이 스며들었다. 동방의 용이 서로 교차하며 승천하는 듯한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아리아의 지식에 근거하자면, 이건 동방 도림 왕국 상류계급의 펜던트가 분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국기가 새겨진 펜던트라면.

 

  아리아는 이도의 팔을 잡아 어딘가로 끌고 갔다. 이도는 엉거주춤하며 걸었다. 도착지는 선장의 집무실이었다. 신대륙과 구대륙을 잇는 대양이 중심에 자리 잡은 지도가 인상적이었다. 아리아는 이도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칼을 꺼내 겨누었다.

 

  “당장 네 정체가 뭔지 말해. 안 그러면 지금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겠어.”

 

  이도는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어쩌지? 사실대로 말할까? 아냐. 그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어. 그럼 거짓말을 해? 아냐. 이미 내 펜던트를 봤어. 젠장, 바보 같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이 꼴이라니.

 

  “빨리 말해!”

 

  아리아의 검이 이도의 턱 밑으로 왔다. 이도는 무정한 검신을 따라 아리아의 손을 봤다.

 

 아! 저거라면 할 수 있겠어.

 

  이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해보자, 이도. 첫 난관이야. ‘말’로써 돌파하는 거야.

 

  이도는 아리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도림 왕국의 태자이며 라니냐 제국 황제의 대자입니다.”

 

  아리아의 칼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웃기는 소리. 그럼 잘나신 옥체를 따뜻한 방에서 보존해야지, 왜 여기 있어?”

 

  “태자와 대자 사칭죄는 그 누구든 사형 아니면 죽을 때까지 고문입니다. 그리고 제 펜던트를 봤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리아 씨라면 황제가 대자를 만들었다는 것쯤은 알 텐데요.”

 

  아리아는 이를 악 물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자가 하는 말에는 신뢰가 깃들어 있다. 분명 진실일 것이다. 대자 책봉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어. 왜 그 펜던트를 안 숨겼지? 옷에 숨겼다곤 해도 계속 목에 걸었어. 왜지?”

 

  “이 펜던트는 곧 저이자 저의 분신입니다. 저 자체로는 제가 도림 왕국의 태자임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에게 주장하여 설득할 수 있지만, 이 펜던트는 가능하죠. 그런 것을 저와 떨어뜨려 놓을 수는 없는 겁니다. 설령 멍청한 짓일 지라도.”

 

  “쳇. 알량한 높으신 분들의 자존심이라는 건가?”

 

  아리아는 칼을 거두었지만 이도를 계속 노려봤다.

 

  “그럼 여기에 왜 있는지 말해.”

 

  “저는 괴한들에게 납치당했습니다. 정체는 아마 신대륙의 식민지 독립파일 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납치선을 당신이 습격했고, 혼란을 틈타 제가 이 배로 건너온 거죠.”

 

  “하지만 돌격 대장이 널 신참이라고 했는데.”

 

  “그 분이 제가 괴한을 죽이는 걸 보고 착각했습니다.”

 

  아리아는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바보 같은 놈. 좋아, 대자님. 일단은 널 믿어보기로 하지. 만약 그 놈들이 우릴 필사적으로 쫒아온다면 네 말에 신빙성이 더 실리겠지. 물론 난 그놈들한테 널 뺏기지 않을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리아는 씩 웃었다.

 

  “널 팔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군.”

 

  이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도 그들과 같은 족속들입니까?”

 

  “하하핫! 우린 해적이야. 해적한테 뭘 바래?”

 

  “당신들은 특별합니다. 원래는 노예였죠. 그리고 당신도요. 그러나 당신이 그들을 해방했어요. 난 알 수 있어요. 당신이 비록 해적이기는 하지만, 당신의 내면은 선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기는 못할망정 팔아먹지는 않으리라는 것을요.”

 

  아리아는 낄낄 웃었다.

 

  “그래? 그럼 사람 잘못 봤군.”

 

  이도는 입술을 깨물었다. 승부수를 위한 밑 작업, 지금 해야만 한다. 이도는 아리아의 손을 확 낚아챘다.

 

  “꺅! 이, 지금 뭐하는 짓이야!”

 

  아리아가 저항했지만 이도는 계속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무도 깨끗했다. 단정하게 손질된 손톱, 부드럽고 매끈한 살결, 매혹적인 곡선. 이건 절대 해적의 손일 수가 없다. 물집 터지고, 굳을 살 박히고, 햇살에 타버린 손이 아니다. 이런 손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들여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렇다. 이 손은 귀족의 손이다. 평생 노동 한 번 해본 적 없는 온실 속 화초들의 손. 아리아는 바로 그런 이질적인 손을 가지고 있다.

 

  “손이 참 예쁘네요. 저번에 봐서도 알고 있었지만.”

 

  아리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 손 놔! 지금 날 꼬시려고 한다면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했어!”

 

  이도는 아리아를 응시했다.

 

  “귀족을 동경했죠?”

 

  “뭐?”

 

  “당신은 노예 생활을 하면서 귀족을 증오했어요. 그들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또 혐오했겠지요. 그들을 증오하고 증오한 나머지 당신은 당신과 같은 처지에 놓였던 노예들과 들고 일어나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어요. 그래서 지금 해적을 하면서도 다른 배와 다르게 노예만큼은 취급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죠? 당신은 귀족을 동경했어요. 그 누구보다 귀족의 삶에 근접해 있으면서 누리지 못했으니까. 그들이 부러웠죠?”

 

  아리아는 이도의 뺨을 쳐올렸다. 짝, 소리가 울렸다. 얼얼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닥쳐!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압니다. 아주 잘 알아요. 이게 증거입니다. 당신의 기묘한 정도로 깨끗한 손. 귀족의 손이죠. 그런 깨끗한 손에 콤플렉스를 느낀 거죠? 노예였던 당신은 손만큼은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죠? 이 손은 아주 옛날부터 그렇게 관리한 손이에요. 알아요. 당신이 어떤 눈으로 귀족을 질투하고 부러워했을지. 비록 동방에는 노예가 없지만, 하인은 있어요. 그 하인들은 항상 우리에게 깍듯하죠. 하지만 그런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 있어요. 일상 순간순간 속에서, 하인들로부터 질투와 원망의 시선을 느꼈죠. 게다가 귀족들도 왕족을 시기의 시선으로 바라봤죠.”

 

  아리아는 손을 빼냈다. 이도를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 너 잘났다 이거야? 그래! 나는 천박하고 비굴한 노예였어! 그리고 넌 아주 잘난 놈들 중에서도 최고를 달리는 왕족이시고! 매일 매일 먹을 거 걱정 없고 따뜻한 방에서 안락하게 살았겠지. 그래? 그래서 지금은? 납치되고 볼모로 끌려가고, 아주 처량하군 그래! 쌤통이야, 너희들은 그래도 싸. 그 안락한 생활은 우리의 고통으로 지탱되었던 거니까! 너희들은 당해도 싸다고! 난 말이야, 너 같은 놈들을 골탕 먹이는 게 정말 좋아. 날 노예로 삼았던 놈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었을 때, 나는 쾌감까지 느꼈어. 너라고 못 할 것 같아?”

 

  아리아는 칼을 뽑아 이도를 향해 겨누었다. 그녀의 미간이 상처 받은 자존심만큼 구겨져있었다.

 

  “바보 같은 샌님. 살고 싶었으면 나를 열 받게 하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아리아의 내면 한 곳은 거부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 안 돼.

 

  아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신경 안 쓰는 척 했다.

 

  이도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이다.

 

  “제가 당신을 귀족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뭐?”

 

  아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도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제가 당신을 귀족으로 만들어 드리겠다고요.”

 

  아리아의 칼이 조금 내려갔다. 이도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게...... 가능해? 거짓말, 날 속이지 마!”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는 제국의 대자입니다. 당신에게 귀족 성씨를 부여할 힘 정도는 있습니다. 다만 당신이 나를 보호해준다면. 날 보호해서 내가 제국의 성도에 안전히 도달한다면, 당신을 귀족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아리아의 표정이 불신으로 일그러졌다. 이도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거짓말 하지 마! 날, 날 노예로 만든 놈도 처음에는 날 사탕발림으로 꼬셨어. 그래, 내가 널 보호해서 성도에 도달하면? 나는 바로 포위당하고 죽을 거야. 안 봐도 뻔해!”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당신들의 신에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잠깐, 너, 그게 뭔지 알아?”

 

  “알아요. 동방과 달리, 서방 사람들은 신이 실재한다고 믿죠. 그래서 신에 걸고 한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믿습니다. 자, 이래도 저를 믿지 못하겠습니까?”

 

  아리아는 칼을 내렸다. 이도는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아리아의 코 바로 앞에 섰다. 아리아는 이도의 확신으로 찬 눈동자를 보았다. 그 눈동자를 보자 방금까지 차올랐던 증오가 사그라졌다. 흥분도 점점 잠잠해져 침착한 상태가 되었다. 믿을 수 있을까? 자신의 앞에 선 이 소년은 특별했다. 알 수는 없지만 그라면 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 믿어주세요. 아리아 씨는 귀족이 될 수 있어요.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아리아는 한숨을 쉬며 칼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깨끗한 손을 바라보았다. 아리아의 가슴 속에서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그 유혹은 강렬했다.

 

  “좋아. 널 믿어볼게. 신에게 맹세까지 할 줄이야.”

 

  아리아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이도를 흘겨봤다.

 

  “그리고, 음, 뭐라고 해야하나. 방금 너한테 칼 겨눈 거, 미안하다. 널 진짜 해치려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서. 에이, 애초에 니가 날 화나게 해서 그래!”

 

  이도는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아리아는 칫 하고 혀를 찼다.

 

  “그런데 너 몇 살이야?”

 

  “열여덟 살입니다.”

 

  “뭐야, 나랑 같잖아. 그러면 이제 당신이니, 이름 뒤에 씨 붙이는 건 그만해. 그냥 이름으로 불러. 존댓말도 쓰지 말고.”

 

  “동갑? 그렇게 어린데도 선장까지 하다니, 대단하네. 그럼 아리아, 잘 부탁해.”

 

  아리아는 입을 삐죽거리며 틱틱댔다.

 

  “흥. 그러라 했다고 바로 말 놓네. 이래서 높은 것들은.”

 

  둘은 악수했다.

 

  “그럼 내 정체는 어떻게 할 거야? 선원들에게 말 할 거야?”

 

  “걔들이 알 필요는 없지. 다만 돌격대장이랑 1등 전투원에게는 말해둘 거야. 내 측근 비스무리한 놈들이거든.”

 

  “1등 전투원?”

 

  이도는 슈리와 루카를 떠올렸다. 으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싫어?”

 

  “괜찮아.”

 

  둘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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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 16-11-19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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