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이 이모가 입원한 병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아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이모부의 마음은 서늘하고 복잡했다.
엄마가 쓰러진 뒤 단 한 번도 찾아 오지 않던 준희의 시선이 향한 곳엔 병실로 들어 서는 애연이의 모습이 있었고 준희는 비상 계단으로 가 몸을 숨긴 채 집요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애연의 모습을 쫓고 있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쁜이 이모와 다를 바 없었지만, 보편적인 시각에서 비논리적인 준희의 행동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항상 이모부를 수행하는 강 비서도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준희를 주시하며 이모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슈트를 단정히 입은 강 비서의 넓은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모부가 말하기 시작했다.
“강 비서, 나와 함께한 것이 자네가 고등학교 졸업 이후이니, 벌써 11년이나 되었군. 자네가 내 아들 준희보다 두 살 위인가? 내겐 이제 자식은 자네와 저기 저 가여운 애연이뿐 일지도 모르겠네.”
이모부의 부드러운 음성과 달리 단호한 표정은 결심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강 비서는 자신보다 작은 이모부를 고개 숙여 공손히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이모부는 그런 강 비서에게 애정이 담긴 시선을 두며 말을 이었다.
“아내가 쓰러지던 날,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구급차의 닫히는 문 사이로 보았던 준희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네. 아내의 쓰러짐이 저 아이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의심으로 가득차버리니 의심이 의심을 낳아 불안감은 더욱 나를 짓누르고, 엄마보다도 오히려 애연이의 모습만 쫓고 있는 준희의 모습에 의심하라 말한다네. 만약 준희가 애연이를 해친다면 아내가 깨어났을 때, 내 무엇이라 말 할 수 있겠나. 자네가 준희의 뒤를 조사해 그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해 주게. 부탁이네.”
이모부가 말을 마친 후에도 강 비서의 고개는 올라가지 않았고 양손을 모은 공손한 태도로 자세를 계속 유지 했다.
이모부는 강 비서의 어깨에 손을 올려 가볍게 두드린 후 이쁜이 이모의 병실로 향했다.
이모부가 들어가자 조심히 열린 비상 계단 문에서 손가방을 맨 준희가 나와 이쁜이 이모 병실 미닫이 문을 살짝 열고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고, 엘리베이터 앞 분주히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 자연스레 가려 선 강 비서의 시야에 준희의 모든 행동이 들어왔다.
***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모부는 애연이의 안쓰러운 손을 잡으며 떨리는 심정을 전하였다.
"애연아, 항상 아파했단다. 너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구나. 용기 없었던 날 용서해다오. 그러나 나와 달리 이모는 항상 널 보고 싶어 했고 다가가고 싶어 했단다. 너에게 미안함 그 이상으로 보고 싶어 했다. 나에 비해 훨씬 용기 있는 사람이니 많이 미워하지 말아라. 배로만 안 낳았지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한 말을 너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단다.그리고 아가야 공부에 집중해야지.이제는 자주 오지말거라."
이모부의 말씀에 애연이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무너져 내렸다.
***
준희의 머릿속은 무척 복잡했다.
당장이라도 애연이를 어찌하고 싶은 마음과 섣부른 행동은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해 다시 갇히게 할 것이란 두려움이 그를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지금 애연이를 건들면 누가 봐도 나를 연관지어 생각할 거야. 그렇게 되면 다른 범죄도 들킬 수 있어.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 이전부터 나와 아무런 관계 없는 그 녀석들부터 처리해 뒷탈 없게 한 후 애연이를 만나야겠어.'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 앞에서 아버지와 애연이의 대화를 엿들으며 또 다시 잔혹한 범죄를 그리는 준희의 입가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즐거움이 번졌고, 이내 큭큭거리며 웃고야 말았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다가온 준희는 시선을 아래에 두며 고개 숙인 강 비서의 옆을 지나 섰다.
둘의 체형은 비슷했으나 어두운 방에 갇혀있었던 준희보다 강 비서의 어깨가 넓고 탄탄해 보였다.
키가 훤칠한 두 사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이들에게 쏠렸으나, 준희는 연신 큭큭거리다 끝내 너털 웃음을 터츠렸고 강 비서는 여전히 고개 숙여 준희와 시선이 마주하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 쯤 아랑곳없이 한참 웃던 준희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탑승하더니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추며 얼굴을 살폈다.
그의 차가운 시선에 엘리베이터에 오르던 사람들은 흠칫 놀라 그를 피해 구석으로 자리했다.
가장 늦게 탑승한 강 비서는 준희의 시선을 피해 사람들이 구석에 먼저 자리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준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야 했다.
안면없는 강 비서에게 별 관심없는 준희의 머릿속은 이미 엘리베이터 안 난자된 시체들의 피범벅으로 가득했다.
***
오후가 되어 커피숍으로 출근하던 민성희의 차가 안재현이 사는 아파트 동에 멈춰 섰다.
민성희의 뒤를 따르던 한 경사는 민성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계속 차를 몰아 시야를 벗어나 차를 세웠다.
민성희가 차 문을 열고 나와 서자 잠시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안재현이 시각장애인 답지 않게 걸어 나왔다.
그의 모습이 보이자 민성희는 바로 달려가 조금도 불편해 보이지 않는 그의 팔을 붙잡아 억지로 에스코트 하기 시작했다.
오늘 그녀는 이전과 달리 세련된 하이힐 대신 굽 없는 단화를 신고 있었다.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민성희의 팔을 떼어내는 안재현의 모습에 무심히 담배불을 붙이며 바라보는 한 경사였다.
“생명의 은인이어서 할 말이 많은 걸까요? 둘의 만남이 자주네요."
언제 왔는지 윤 경위가 차 문을 열고 운전석 옆 자리에 앉으며 한 경사에게 불쑥 말을 건넸다.
“너, 이거 왜 타냐?”
갑자기 나타난 철부지 파트너에게 한 경사가 쌀쌀 맞게 말했으나 윤 경위는 웃는 얼굴로 답했다.
“분위기 좋게 둘이 같은 차에 타 잖아요. 우리도 오랜만에 함께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윤 경위의 웃는 얼굴이 서글설글해 더는 말하지 못한 채 한 경사는 안재현과 민성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디 가려고 저러나?”
윤 경위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두 남녀가 탄 차는 익숙한 길을 따라 그녀의 커피숍 주차장에서 멈추었다.
차에 내려서도 민성희는 안재현을 친절히 안내하며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종업원이 먼저 나와 문을 연 커피숍엔 손님이 조금 보였고 민성희는 안재현에게 자리 안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음…, 친절하네요. 그렇죠?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윤 경위가 정면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두 남녀를 가리키며 한 경사에게 물었다.
“아아함!”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붙인 한 경사는 하품으로만 답했다.
***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준희는 집이 가까워지자 주택가로 향하는 좁은 도로 전 큰길에 차를 세우고 내려 걸었다.
자신의 집 앞에 내리는 것을 택시 기사에게 조차 보여주기 싫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덕분에 준희가 탄 택시 뒤를 따르던 강 비서는 차를 돌려 준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세워야 했다.
“집까지 거리가 있는데…, 왜지?”
멀리 떨어져 시선으로 멀어져 가는 준희를 쫓으며 중얼거렸다.
집으로 가는 길엔 큰길가에 분위기 좋아 보이는 통유리로 된 커피숍이 보였고, 그곳을 지나던 준희의 시선이 잠시 머물더니 좁은 도로로 걸음을 빨리 옮겼다.
한적한 도로는 주택가 앞 작은 공원을 지나 이어졌다.
바삐 걷던 준희는 무엇을 보았는지 걸음을 멈춰 서더니 망설임 없이 곧장 공원 입구로 향했다.
작은 공원이라 한눈에 다 들어오는 시야로 미끄럼틀 밑에서 하얀 강아지와 노는 어린 남매의 모습은 준희의 번뜩이는 눈빛을 만들었다.
준희는 손을 뻗어 어깨에 맨 가방 속에 넣고는 가죽 장갑을 꺼내 끼기 시작했다.
“아직 더위가 꽤 남았죠? 그래도 조금 지나면 낙엽도 질 거라 생각해요.”
우뚝 선 준희에게 몇 벌짝 떨어진 벤치에 앉은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 돌려 사내와 시선을 마주한 준희의 입꼬리가 실룩 올라갔고 급히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공원엔 CCTV 몇개가 보일 뿐 사내와 남매를 제외한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사내의 곁으로 다가서며 준희가 물었다.
“여기 사시는 분이셨어요? 다른 동네에서 뵌 것 같은데?”
준희의 오른손은 어깨에 맨 가방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말을 건네면서도 벤치에 앉은 사내를 향한 발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준희와는 다른 미소를 지으며 사내가 부드럽게 답했다.
“저 아세요? 제가 시각장애가 있어서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요. 혹시, 성함이?”
사내의 대답에 준희의 발 걸음이 일순 멈추더니, 허리 숙여 사내와 시선을 맞춰 보았다.
일련의 동작 중에도 어깨에 맨 가방 속에 들어간 오른손은 그 상태 그대로였다.
준희의 시선을 느낀 사내는 준희와 방향을 맞춰 시선을 움직였다.
벤치에 앉은 사내는 민성희의 커피숍을 방문한 안재현으로 답답한 커피숍에서 잠시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비록 시각장애인이었으나, 인기척과 형상은 느낄 수 있었기에 급작스레 나타나 아이들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더니 부스럭거리며 가죽 장갑을 착용하는 준희를 이상히 여겨 아이들에게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넨 것이었다.
‘정말 시각장애인인가? 이 녀석 그날 내 뒤통수를 가격한 놈이 분명한데. 지금 죽여야 하나? 나를 기억 못하나?”
주변을 둘러보며 망설이는 준희의 시선에 낮은 공원 울타리 너머 좁은 도로를 따라 공원으로 향해 오는 민성희의 모습이 들어 왔다.
“오늘은 공원에 사람이 너무 많군요. 제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에요. 잘 쉬다 가세요.”
안재현에게 인사를 건 준희는 가죽장갑을 벗어 아무렇지 않게 가방에 넣고는 서둘러 공원을 나왔다.
준희의 뒤 이어 민성희가 커피와 케잌을 담은 종이 가방을 들고 가벼운 걸음으로 공원에 들어 왔다.
소풍 나온 연인처럼 벤치에 앉아 케익과 커피로 담소 나누는 두 남녀를 지켜보던 윤 경위가 한 경사에게 물었다.
“저 남자 수상하지 않아요? 키도 그렇고.”
“저 남자 수상하지. 그런데 저 뒤에 검은 양복이 더 수상하다.”
한 경사는 준희를 가리키는 윤 경위의 손가락을 살며시 쥐고는 살짝 방향을 틀어, 멀리서 준희를 주시하는 검은색 슈트 차림의 강 비서를 향하게 했다.
“저 검은 양복도 얼굴 하얗고 키도 크구만. 조금 전 사내는 수상하긴 해도 설마 자신을 목격한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 걸 수 있겠나?”
휴대폰을 꺼내 강 비서를 수 차례 촬영한 윤 경위는 한 경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 그래. 서에 가서 저 친구 신상 확인해 봐. 아까 저 난간 만졌고, 저 쓰레기통에 그가 마시고 버린 캔커피 있어. 서에 가져가서 확인하고 다시 와. 여긴 내가 남아서 저 두 남녀를 지켜 볼 테니.”
멀어져 가는 강 비서의 뒷 모습에서 시선을 거두며 윤 경위가 답했다.
“넵! 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신원 확인이 우선이겠어요. 후딱 다녀 올게요.”
***
공원에서 나와 서둘러 집으로 향하면서도 준희는 길을 돌아 가는 치밀함을 보였다.
강 비서는 준희와 거리를 유지한 채 따르며 행동을 주시했다.
준희보다 늦게 도착한 집엔 먼저 도착한 준희가 켜 놓은 불빛이 창을 타고 흘러 나왔다.
준희의 이동에 따라 하나 둘 꺼지고는 이 층 준희의 방에만 불이 켜졌다.
불빛을 따라 집 안에서 이동하는 준희의 움직임을 예상해 본 강 비서는 조금 전 공원에서 어린 남매를 주시하며 검은 장갑을 끼던 준희의 행동을 떠올리고는 좀 더 세심히 준희를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준희가 집에 들어갔고 어둠도 내리기 시작한 터라 이만 물러나도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세워, 불켜진 준희의 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쉽사리 떠나지 못하게 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오늘 준희의 행동이 불안해 보였으나 밤 사이 별일은 없어 보여 휴대폰을 집어 넣던 중, 강 비서는 오후에 미행하며 안전책으로 경찰 친구의 도움으로 준희의 휴대폰에 걸어 두었던 위치 추적을 켜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준희의 휴대폰 위치는 여전히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제야 안심한 강 비서는 몸을 돌려 자신도 집으로 향하려 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강 비서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이전 방문했을 당시 이쁜이 이모의 집 내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관과 복도, 계단은 센서등으로 사람이 움직이면 감지해 켜졌고, 이 층엔 주방과 욕실이 없는 구조였다.
주방은 일 층 거실을 지나 있었고, 욕실은 안방 내부와 거실 한 켠에 크게 자리하였었다.
걸음을 멈춘 강 비서는 몸을 돌려 어둠이 내린 거대한 저택을 다시 올려 보았다.
채광이 잘 되도록 통유리로 크게 창을 만들어진 집에 준희의 방을 제외하곤 그 어떤 불빛도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가만, 준희는 저녁 식사 전에 들어왔어. 식사도 샤워도 하지 않고 방에만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서둘러 담장을 따라 몸을 이동 시키며 저택을 살폈다.
담을 따라 뒤로 이동하자 준희의 방과 반대편에 마주한 이 층 복도 창이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열린 창 옆에는 도시가스 파이프가 있었고 정원을 따라 주차장으로 이어진 작은 문도 보였다.
‘이런, 준희는 오후에 들어와 자기 방에 불을 켜고 저기로 나온 게 틀림없어.’
잠시 망설이던 강 비서는 휴대폰을 꺼내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걱정하실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기 전에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저, 현철이에요. 아, 네. 식사했어요. 어머니는요? 에휴 혼자라도 좀 드시지. 오늘 좀 늦을 것 같아요. 저 기다리시지 마시고 먼저 주무세요. 예 걱정 마세요. 술 안 마셔요.”
전화를 마친 그는 먼저 주무시라 어머니께 말씀드렸지만, 자신이 들어올 때까지 노모가 잠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제발 안에 있어라. 그래야 나도 퇴근한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는 CCTV가 보이지 않는 담장을 찾아 달려 나간 강 비서는 그대로 담장 벽을 박차고 몸을 솟구친 후 손을 뻗어 높은 담장 위를 잡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손목의 탄력을 이용해 몸을 담장 위로 날리더니 정원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보안 업체의 레이저 감지 장치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새처럼 담장을 높고 사뿐히 타 넘은 강 비서는 그대로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어두운 복도 끝 준희의 방 문이 열린 탓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복도의 빛이 흘렀고 강 비서는 발 소리를 죽여 준희의 방 문 앞에 섰다.
살며시 열린 문 사이로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방 안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조금 더 문을 열고 시야를 확보해 방 안을 살피던 강 비서의 눈동자가 조금씩 커져만 갔다.
준희의 방엔 침대도 옷장도 없었고 그 흔한 옷걸이도 없었으며, 거울도 보이지 않았다.
깨끗이 청소된 방엔 머리카락 한 가닥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제야 뭔가 깨달은 강 비서는 급히 일 층으로 뛰어 내려가 욕실 문을 열어 보았다.
있어야 할 칫솔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그 어디에도 머리 빗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신과 관련된 것을 모두 치운 거야. 준희는 며칠 전부터 이곳을 떠나기 위해 철저히 준비 해 왔어. 사라지려는 거야. 왜지?’
강 비서는 들어올 때와 달리 현관문을 열고 급히 밖으로 튀어 나오더니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보고는 무작정 큰길을 향해 달려 나갔다.
***
안재현의 보호까지 한 경사에게 맡기고 서에 돌아온 윤 경위는 즉시 캔커피에 찍힌 지문 감식과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신원 조회에 들어갔다.
범죄자들 중에선 나오지 않았고, 서울 인근 거주 남성 기준으로 비슷한 연령대 조회를 시작하자, 밤이 깊을 무렵 지문과 매칭된 남성 사진이 나왔다.
윤 경위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대조하고는 오랜 시간 작업 결과에 만족했다.
그리고는 출력된 정보를 토대로 강현철을 알만 한 정보원들에게 연락해 정보를 취합하기 시작했다.
“강현철, 나이 31살. 고교시절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고등학교 3학년 당시 패싸움을 벌여 그 징계로 선수 생활을 마침. 졸업 후, 진성 물산 대표이사 권진성의 운전 기사로 취업해 현재는 수행 비서가 된 케이스. 키 186. 거주지 중랑구 상봉동. 빙고! 잡았다. 요놈!”
강 비서의 정보를 살피던 윤 경위는 쾌재를 부르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차로 향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