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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Record Of U
작가 : 저녁의나팔수
작품등록일 : 2019.9.6

"세상의 끝이 오지 않아 난처해하는 인류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그들을 찾아올지 두려워하며 벽 속에 숨어 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며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이 둘은 어느 쪽인가? 적어도 첫 번째 부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번째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들은 배달부다. 악어가 끄는 배를 타고 아직 덜 끝난 세상의 벽과 벽 사이를 오간다. 화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의 사이를 오간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끝과 함께 이야기를 담고 있던 세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선장은 아직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Tape 1-7
작성일 : 19-10-31 04:32     조회 : 180     추천 : 0     분량 : 1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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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어둡고 답답한 땅 아래에서 잠시 벗어나, 이야기와는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새로운 얼굴을 소개하고 그 일상을 잠시 지켜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시애틀 폴리스의 동부 거주구역에 사는 아이작 굿맨. 32세의 독신이며 잼 뚜껑 수집이 취미인, 좀처럼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는 남성이다.

 

 “사라졌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이렇게까지 소개를 해 줬건만, 보람이 없게도 오늘은 평소와 다른 모양이다. 다들 그저 당장의 먹고 살기 위한 일 이상은 하지 않는 요즘에 드물게도 직업 정신이란 걸 가지고, 침착하며 믿을 만한 일처리로 폴리스의 화물 유통에서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다.

  그 특유의 명성과 더불어 젊은 나이에 물류 계통 한 부서의 사무장까지 의자를 끌어올린 그는 소문대로 어지간해서는 거래처나 부하 직원들에게도 소리를 치는 일이 없지만, 멀쩡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던 화물이 아무 징조도 없이 별안간 자취를 감추었다는 소식은 그로서도 크림을 두 스푼 정도 탄 커피마냥 부드럽게 넘기기엔 힘든 것일지 몰랐다.

 

 “그게, 계속해서 교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전혀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부하 직원이 곤혹스럽네요, 하지만 제 잘못도 아닌데 어쩌겠습니까. 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도 안다고. 그래도 좀 유김인 척이라도 해 주면 안될까? 라는 기분을 담아 쯧 하고 큰 소리로 혀를 찬 뒤에, 사태를 수습할 다음 질문을 입에 올린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폴리스라는, 기존의 도시 혹은 그 인근에서 해로운 환경을 피하기 위해 조성된 격리 도시 바깥의 지역은 농담을 두 스푼 정도 진하게 타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곳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환경 자체가 제대로 유지되어 있지 않다. 여러 재난을 거치며 더 이상 격리와 통제가 불가능해진 각종 오염이 사람들이 살던 땅을 차지했고, 그로 인해 기상 조절 위성도 어쩌지 못하는 이상 기후가 발생하는 지역이 곳곳에 생겨났다.

  어디 그뿐이랴. IE 사태로 대표되는 각종 생물학적 재난은 그런 곳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을 그 환경에 걸맞은, 일반적으로 보아서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생명체로 탈바꿈시켰다. 대대적인 치료제 살포로 더 이상의 극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변해버린 것들만으로도 그곳을 지나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여태껏 그랬듯이,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리는 없다. 대개처럼 무기력증에 빠져 살거나, 드물게 열심히 살아보려는 이들 외에도 다른 삶의 길을 선택한 자들이 폴리스 밖에 있었다. 쾌락 전쟁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것인지, 거칠고 황폐한 땅에서도 어떻게든 자리를 잡은 그들은 마치 그 고생에 대한 대가라도 요구하듯 폴리스의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인과 약탈, 그 외에 평화와는 거리가 먼 온갖 일들이 드높게 세워진 폴리스의 벽 너머에서 벌여졌다.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는 약탈자(Raider)라고 부른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인해 여러 폴리스 사이를 오가면서 화물이나 무역품 따위를 운반하는 배달부들의 삶은 전혀 순탄치 않다. 갖가지 이상 현상을 피하거나 필요하면 헤쳐 나갈 수도 있는 테크닉에, 위험 할 수 있는 짐승들의 특징과 대처법에 통달하고 필요하다면 이쪽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가득한 약탈자들과 전투를 치를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고로 경험 많은 배달부라고 하는 이름은 동시에 노련한 탐험가이자 사냥꾼, 훌륭한 전투원이라는 의미도 가지게 된다. 물론 그에 걸맞는 이들도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인근 폴리스의 프레스 드론들이 뱉어내는 신문 부고란에 실리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게 이곳의 삶이다.

 

 “공격을 받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황 신호도 보낸 적 없고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얼굴을 올려놓고, 아이작은 지금 당장 소매에서 꺼내들 수 있는 해결책을 뒤적거렸다. 따져 보면 절체절명이라고 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그가 회사에서 담당하는 수십 대의 화물차 가운데 딱 한 대의 소재가 불명이 된 것 뿐이다. 방금도 말했다시피 드문 일도 아니고, 최소한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폴리스에서 그 정도의 손실이 도시 전체의 생존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내기 위해 미리 따 놓은 몇 개의 납품 계약을 미루어야 하고, 그로 인해 그의 신용과 명성이 조금 깎여 나가는 것. 그리고 손실 보고를 위해 오늘의 퇴근 시간이 두어 시간 정도 늦춰질 거라는 것 정도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언짢은 일의 전부다.

 

 “차량의 위치 정보는?”

 “지금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힌 곳을 알려줘.”

 

  이번에는 그와 제법 오랫동안 같이 일하고 있는 부하 직원이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채고는, 방금 전보다 훨씬 곤혹스럽다는 얼굴로 어쨌든 그가 원하는 정보를 불러 주었다.

 

  일단 계획을 정하는 제비를 뽑고 나면, 그 다음은 신속하게. 망설일 시간 따위 없다. 서랍에서 조금 뻣뻣한 가죽 장갑을 꺼내 손에 끼고, 마찬가지로 한동안은 쓰지 않았던 특수한 용도의 재킷과 헬멧, 고글을 갖춰 쓴다. 방금 찍어 준 좌표대로라면, 폐쇄식 호흡 장치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말해 봐야 소용없겠지만, 위험하다고요.”

 “알고 있어. 점심은 알아서들 해결해.”

 

  커피는 타 놓고. 사람 대신 오랑우탄을 데려다 놓아도 문제가 없을 나머지 업무를 부하에게 맡기고 아이작은 회사 지하의 업무용 차고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관점에서도도 이것은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 분명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험이 그를 지금의 위치로 이끌어 주었다. 삶에서든 게임에서든 언제나 안전한 패만 내놓으면서 살 수는 없다. 오늘의 그는 그 사실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

 

  성벽을 벗어나고 나서 한참동안 아이작의 호버 바이크는 어떤 불쾌한 풍경과도 맞닥뜨리지 않은 채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투박한 도로를 달려 나갔다. 때때로 바뀌는 이상 기후의 위치 때문에 번듯한 포장 도로를 깔 수는 없는 게 이곳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도시와 도시를 오고 가는 화물차들 덕분에 그저 메마른 흙길이었던 땅은 단단하게 다져져, 뒤에 오는 이들이 비교적 안심하고 밟을 수 있는 도로가 되었다. 이 정도라도 감지덕지 해야지.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문제의 화물차는 바로 오늘 새벽까지 다른 화물차들이 이용하는 도로로 멀쩡히 잘 달려오고 있었다. 정기 교신도 지장 없이 이루어지던 상태. 그러던 것이 약 두 시간 전부터 예상 경로를 이탈하더니, 모든 신호가 끊어졌다.

  예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시나리오는 약탈자들의 습격. 물건이 잔뜩 실려 있고, 홀로 떨어져 다니며, 경험마저 적은 배달부가 모는 화물차라면 적당하다 못해 어떤 유혹마저도 느껴지는 목표일 게 분명하다. 어지간히 갑작스럽지 않고서야 누르게 마련인 공황 신호도 잡히지 않은 것이 조금 걸리지만, 어쨌든 가장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라면 일이 조금 거칠어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화물차가 마지막으로 신호를 보낸 위치는 예상대로 고요하고, 어떤 사건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비어 있는 땅을 기어가는 바람의 흔적과 함께, 도로를 벗어나 달려간 차량의 바퀴 자국이 지금 막 지워지려 하고 있었다.

 

 “신호가 끊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달린 건가….”

 

  별다른 장애물이 없는 황량한 벌판에는 찾고 있는 목표도 신경 써야 할 적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더 늦기 전에, 남아 있는 흔적을 쫒아 저 길 잃은 어린 양을 따라잡아야만 한다.

 

  호버 바이크가 희미한 바퀴 자국 위로 잔잔하게 피어오르는 먼지를 덧씌우며 달리기를 약 십여 분, 어린 양은 뜯어먹을 만한 풀도 없는 야트막한 바위 언덕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어느 새 시간이 한낮에 이른 것인지 해도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이 황무지와 같은 노란 색 차량의 등에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우선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엄폐물에 바이크를 멈추고, 망원경으로 차량의 모습을 확인해 보았다. 운전자는 타고 있지 않다. 아마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면 계획한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좋은 결말은 아니겠지.

  차량 주위와 바위산 쪽도 둘러보았지만 매복하고 있는 적이나 위험해 보이는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 기후 탐지 레이더도 반응이 없고, 오염 농도도 신경 쓸 만한 수준이 아니다.

  빠르게 접근해 우선 차체의 외관을 체크했다. 기묘하게도, 차량은 대단히 멀쩡하다. 거친 여행길을 달리며 모래와 눈비에 쓸린 자국은 잔뜩 있다. 허나 그건 없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 할 만큼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무언가 난폭한 행동으로 부서진 부분이 전혀 없단 것이다.

 

 “부비트랩도…없군.”

 

  문은 열린 채고, 키 태그도 안에 방치되어 있다. 불안한 기분이 들어 문의 동작부를 포함해 엔진 룸 쪽도 확인해 보았지만, 빈 차를 기웃거리는 얼간이를 위한 함정 따위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뭔 일이 있었던 거지?”

 

  마지막으로 화물칸도 확인해 보았다. 믿기 어렵게도 어느 것 하나 손대어진 흔적이 없다. 필요 최소한의 여유 공간만 남긴 채 꽉꽉 들어찬 상자들에는 하얀 숲의 도장이 커다랗게 찍혀 있다. 약탈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식료품들임에도 멀쩡한 것을 보면, 적어도 그들의 소행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딱 하나, 손을 댄 부분이 발견되었다. 위치 추적에 필요한 신호 발생기를 포함해, 통신 장비 전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단순 고장은 아니고, 사람의 손을 탄 짓이다. 그것도 마구잡이로 부순 것이 아니라 핵심 부품만 쏙 빼놓는 식으로 치밀하게 망가뜨려 놓았다.

 

 [아-네, 잘 들립니다.]

 

  때문에 회사와의 교신은 타고 온 바이크에 달린 장비로 해야 했다. 송수신 모두 양호한 걸 보면 환경적인 문제로 통신이 안 된 것은 아니다.

 

 “차량을 확보했어. 화물은 멀쩡한데 배달부는 사라졌고, 통신 장비도 고장 나 있어.”

 [음-]

 

  스피커 너머의 부하 직원이 평소, 그다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를 애써 생각하는 척 할 때 내는 버릇 같은 탄식을 길게 내뱉었다.

 

 [혹시, 일 하기 싫어서 도망간 건 아닐까요?]

 

  그건 너겠지. 라고 쏘아붙여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 상황에서는 그게 그나마 이 상황 전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한 해답이기는 했다. 다만 회사 것도 아니고 엄연히 자기 자금으로 산 화물을 잔뜩 싣고 온 차를 스스로 사보타주하고 자취를 감추는 배달부가 어디 있을까마는.

 

 “어쨌든 일은 마쳐야지. 차는 이쪽에서 끌고 돌아갈게.”

 [예? 키 태그도 그쪽에 있습니까?]

 “어. 정말 네 말대로 어디 바캉스라도 간 걸지도 모르지.”

 

  사방이 모래와 먼지에, 어디 위험한 생물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이 사막에 일도 내팽개치고 바캉스를 떠날 만한 장소가 있다면, 일단 알아는 두고 싶다. 어쩌면 어딘가에 시원한 나무그늘이 우거진 오아시스라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시동은 시원스럽게 걸렸다. 약속한 화물에다 타고 온 바이크까지 추가로 싣고, 잠시 길을 잃었던 차는 나머지 무리가 걸어간 안전한 도로로 뒤늦게나마 돌아왔다.

 

 [이번에도 운이 좋아서 다행이네요.]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없어진 화물을 이런 식으로 준 위험구역까지 몸소 가서 찾아오는 것은 이제 그만한 직책에 오른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굳이 꼭 해야겠더라도, 시간을 들여 꼼꼼히 상황을 파악한 후에 경비대의 지원을 받아 안전하게 회수해 오면 문제가 될 일은 하나도 없다.

 

 “점심 아직 안 먹었지?”

 

  허나 오늘의 아이작에게는 특별히 일을 서둘러 마쳐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그저 일 때문은 아니다. 평소처럼 명성과 실적에 목을 매는 것도, 지금 이 순간만은 아니다.

 

 [지금 갈 참인데요. 사다 놓을까요?]

 “어. 올리브 많이 넣어서.”

 

  시간은 이제 막 정오를 한 조각 정도 남기고 다 먹어치운 참이었다. 서두른다면 회사의 한가한 녀석들이 커피까지 다 마실 무렵에는 폴리스의 출입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을 거다. 그 정도의 경과라면 부하가 책상 위에 올려 둔 샌드위치 속 미트볼에도 아직 온기가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오늘의 일을 제 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익숙한 느낌으로 라디오의 전원을 눌렀다가, 이미 그쪽은 통째로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우울해졌다. 남의 차인 만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만, 이쪽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몰았던 화물 차량의 핸들을 다시 잡는 일은 제법 그리운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지도의 눈금 하나를 넘을 때마다 바뀌고 사라지는 라디오 신호를 잡는 일은 자치 지루해 긴장이 풀리기 쉬운 장거리 운전에서 귀중한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인터넷이 사실상 몰락하고 나서, 라디오나 신문 같은 아날로그적 매체들이 다시 부흥기를 맞는 것은 아이작으로서는 제법 반길 만한 사건이었다. 비록 기술은 돈과 권력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이들 탓에 잃어버렸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그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각지의 폴리스에서 공식적으로 내보내는 방송 외에도 이득이 남던 남지 않던 주머니를 털어 장비를 마련한 사람들이 내보내는 사설 방송이 주파수 채널이 꽉꽉 차도록 하늘을 보이지 않게 메웠다. 대개의 방송은 폴리스 내부와 그 인근 도로에나 간신히 닿을 정도였기에, 거의 변함이 없는 풍경을 달리면서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변하는 것으로 어딘가에 가까워져 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신문사마다의 조그마한 간판을 달고 붕붕 날아다니는 프레스 드론들도 그 이후 등장한 새로운 풍경이었다. 정신 사납다고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이작에게는 머나먼 황야에서 근처에 사람이 사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는 반가운 존재들이었다. 보고 나서 차곡차곡 쌓인다는 특성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가지도록 하는 면이 있었다. 다시 사람의 손으로 쓰는 긴 글이 실린다는 점에서 라디오보다 훨씬 취향에 따라 선택할 여지도 있었고.

 

  엔진이 작게 칭얼거리는 소리 외에 들리는 소리가 없자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게 되고, 그 사이에 차는 시야 끝에 조그맣게 보이던 폴리스의 벽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아야 할 만큼 높이 자라도록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은 어쩐지 게이트 앞에서 통과를 기다리는 차량들의 행렬이 평소보다 긴 것 같다.

 

 “뭔 일이랍니까?”

 

  기다리는 행렬 중 하나에 꼬리를 물고, 창문을 열어 옆 행렬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배달부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어라, 사무장 양반 아니야? 또 물건 찾으러 나왔어?”

 

  낯익은 얼굴이다. 검붉게 번들거리는 팔뚝과 코가 막힐 것 같은 젖은 담배꽁초 냄새는 배달부의 상징과도 같고, 운전석 문에 크로스헤어 따위를 그리고 다니는 배달부는 아이작이 알기론 한 명밖에 없다. 로드니 빌슨 씨는 경력만 보아도 그가 우러러 보아야 할 베테랑 배달부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초짜 배달부들이 유서까지 써 놓고 하는 대륙 횡단을 집 앞에 담배 사러 가듯 하는 인물이다. 책상 업무 따위는 질색하는 그의 성격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자기 소유의 회사를 차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딱 한 명을 빼고는, 배달부 사이에서 그를 뛰어넘는 전적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오늘도 먼 곳에서 여기서는 보기 힘든, 그렇기 때문에 더 인기가 많은 물건을 싣고 온 게 분명하다. 어디 보자, 면도 상태를 보니…하트먼이 또 골치깨나 썩겠네. 경비대 군것질 단속시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니.

 

 “이번에는 어떤 얼빠진 놈이야? 살아는 있어?”

 “모르겠어요. 일단 차부터 갖다놓고, 나머지는 경비대한테 맡겨야죠.”

 

  없어진 사람은 놔두고 짐과 차부터 챙기는 게 객관적으로 야속하게 보일 행동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미 반쯤 끝장나 있는 세계라도 나름의 지켜야 할 규칙은 있다. 어떤 이유든 간에, 폴리스의 벽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그것을 겪는 사람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옛날의 알량한 경쟁이론 따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모두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뭔가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모자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어차피 행렬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딱히 앞당길 방법도 없었기에, 얼핏 잡담처럼 들리는 이곳과 저곳의 소문을 나누며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당연하지만 창틀에 걸터앉아 커피나 마시며 하는 소리처럼 한가하고 미지근한 소문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륙 반대편에서 폴리스 하나를 뒤집어 놓는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든가, 과거 ‘쾌락 전쟁’의 시작을 이끌었다는 인물이 다시 목격되었다던가. 아무래도 돌아다니는 범위가 다른 만큼 가지고 들어오는 정보의 수준도 차원이 다르다.

  물론 본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흥미로만 끝나지는 않을 이야기다. 과연 이 이상 세상이 더 망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과는 달리 지금의 아이작은 불안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귓등으로 흘려버릴 수 없을 만큼 양 손에 제법 많은 것을 쥐고 있다. 평소에는 그것이 삶에 애착을 가지고 나른 열심히 잘 해나가고 있다는 증거로 보지만.

 

 “아, 이제 내 차례군. 수고하게.”

 “네. 오랜만에 좀 쉬세요.”

 

  로드니 씨의 차가 들어가고 나서 오래 지나지 않아, 아이작의 차례가 되었다. 명백히 평소보다 더 많아 보이는 경비대의 인원들이 차량을 검사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진작 물어봤어야 하는 걸 이야기하는 내내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랍니까?”

 

  업무 상 이름이나 직책은 물론이고 집에 잇는 멀쩡한 유리잔의 숫자까지 어째선지 알고 있는 경비대원 중 하나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찾아야 되는 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칼 노우드라는 양반인데, 보자 사진이….”

 

  대원은 파일을 불러오려는 듯 PDA를 툭툭 두드렸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 듯 뭔가 떫은 표정으로 좀더 세게 두드렸다.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화물은 좀 전에 제가 검사했어요. 빨리 끝내죠.”

 “네. 아이작 사무장님이라면 덮어놓고 못 믿을 것도 없죠. 어이! 그쯤 하고 보내드려!”

 

  업계 사람들과 평소에 친분을 쌓으면 이렇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뒤로도 제법 길쭉하게 이어진 차량 행렬을 뒤로 하고 재빨리 게이트를 빠져나와, 화물을 내릴 하역장으로 차를 몰았다.

 

 “에, 오늘도 수고하셨슴다.”

 

  나머지 일은 하역장에 있는 회사의 직원에게 맡기고 나서, 드디어 그립다면 그리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의 책상 위에서 재조합 포장지를 덮고 오후의 낮잠을 즐기는 샌드위치는 딱 예상했던 것보다 30분 정도 더 식어있었고, 미트볼은 꼭 젖은 톱밥을 씹는 것처럼 느껴졌다. 허나 아무렴 어떠랴, 오늘 중요한 것은 맛없는 늦은 점심 따위가 아니다.

 

 “아우으 어아아 느어이?(납품은 얼마나 늦었지?)”

 “안 늦었어요. 오히려 시간이 약간 남았다고요, 누구 덕분에요.”

 

  여전히 아침의 뚱한 얼굴로 부하가 대답한다. 기분 탓인가, 오늘은 어째 평소보다 크림 두 스푼 정도 더 언짢아 보인다.

 

 “린다.”

 

  왠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자기 책상의 물건을 정리하던 부하가 이쪽을 돌아본다. 사람들이 기분 좋은 얼굴을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게 이 회사만의 문제도 아니고, 이 폴리스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래도 반 년 정도 같이 일하며 어느 정도 손발을 맞춰 일할 수 있게 된 사이라면, 상대의 씁쓸한 낌새가 평소의 태도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두 스푼 정도 더 끼어든 때문인지는 구별하게 마련이다.

 

 “무슨 문제 있어?”

 

  어깨가 작게 떨리는 것 같은 그녀였지만, 아쉽게도 징조는 아이작이 의심을 품기에는 너무 작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아뇨.”

 “혹시 고민 같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 줘.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상사로서.”

 “상사로서-말이죠.”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다시 평소의 식은 샌드위치 같은 말투로 없어요. 라고 짧게 이야기를 끝냈다.

 

 “자, 여기 오늘 처리해야 할 나머지 일이에요. 오늘은 제 때에 퇴근해야 되잖아요? 그…약속 때문에요.”

 “아, 그렇지. 고마워.”

 

  납품 확인서와 비용 청구 내역 등이 적힌 서류를 점보 샌드위치 두 개 분량 정도 넘겨주고, 린다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이쪽으로의 관심을 완전히 끊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오늘은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더 캐물어 보는 건 내일이라도 하면 되겠지.

 

 “예, 납품가는 그 정도면 됐습니다. 예.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배달부가 실종되었으니, 그 부분은 손실 처리로 해야죠. 내일 쯤에 한 번 들르겠습니다.”

 

  그렇게 더 이어질 수도 있었던 대화는 거기서 완전히 끊어진 채로, 나머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음만 내면서 남은 오후가 흘러간다. 종종 전화가 울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정적은 끊임없이 깨지지만, 이 정도면 여기에서는 조용한 날로 취급된다. 마찬가지로, 먼 땅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은 아랑곳 않고 온 도시가 평화로웠다. 여러 모로 시끌벅적해질, 내일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도록.

 

 
작가의 말
 

 잼은 빵보다 두껍게 발라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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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ape 1-8 2019 / 11 / 1 188 0 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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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ape 1-6 2019 / 10 / 24 203 0 5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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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ape 1-3 2019 / 10 / 3 198 0 7755   
2 Tape 1-2 2019 / 9 / 13 206 0 5237   
1 Tape 1-1 2019 / 9 / 6 339 0 7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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