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은 참지 못하고 토악질을 했다.
" 야 너 괜찮아?"
" 아씨. 더러워 죽겠네. 어떻게 이런데서 살아?"
" 야, 근데 이게 문제가 아니야. 저기 봐……."
귀남은 반대쪽 벽으로 후레쉬를 비쳤다.
동일은 고함을 지르려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곳은 거대한 철창으로 되어 있었다.
그 안은 죽거나 혹은 죽어 가는 동물들로 가득했다.
그것들은 공포에 질려 짖지도 못하고 충혈 된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 야 일단 나가자. 여기 위험해."
" 그래. 빨리 나가자."
귀남과 동일은 차로 돌아갔다.
" 야 진짜…… 장 부장 완전히 미친 것 같은데?"
" 너 장 부장이랑 친하잖아. 뭐 알고 있는 거 없어?"
"친하긴 누가 친해. 그냥 뭐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서
붙어 있었던 거지. 이제 상사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이런 미친 인간이랑 말도 섞기 싫다."
" 일단 여기 벗어나자."
" 촬영 안하고?"
" 지금 촬영이 문제냐? 여기 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
귀남은 한참을 달려 그 추악한 집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한적한 도로 한쪽에 차를 댔다.
" 야 이제 어쩌지?"
" ……."
" 회사에 알려야 하는 거 아냐?"
" 회사에 알려서 뭐하게? 회사 사무실에 쓰레기를 모으는 것도 아닌데……."
" 저러다 진짜 집에 불나겠더라. 화재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신고하면 어때?"
" 명분이 부족해. 주변에 사는 사람도 없어서 특별히 불편을 겪는 사람이 없잖아."
" 맞다! 집에 같이 사는 사람들 없나? 저런 환경에서 살면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고
신종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다고 신고하면?"
" 장 부장 독신이야. 가족들 하고 떨어져 산지 오래 됐다고 들었어."
"그렇다고 이걸 보고도 눈 감을 순 없잖아?"
" 그렇긴 한데…… 생각을 좀 해보자."
" 너 답지 않게 너무 신중한 거 아냐?"
" 뭐……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해서……."
" 무슨 이해? 쓰레기를 모으는 게?"
" 저장 강박이라는 것이…… 일종의 행동 장애인데……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아니면 버려야 하는지
그것에 대한 가치 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하는 거잖아."
" 그런 거야? 그래도 이건 누구나 판단 할 수 있는 건데……."
" 우울증이 있을 것 같기도 해."
" 그냥 귀신이 씐 거야. 간단해."
귀남은 귀신에 씐 것이라는 동일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사실 원초적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그 악귀가 왜 장 부장 곁을 맴도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다 필요 없고 일단 그 철창에 갇힌 것들부터 구조하자. 이건 충분히 명분이 되잖아."
" 그래 살아 있는 것들이라도 살려야지."
귀남은 집으로 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장 부장의 집으로 오기 전과 많이 달라 있었다.
정신이 육체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장 부장은 약하디. 약한 존재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 너 우울증이 왜 무서운 줄 알아?"
" 왜 무서운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야."
" 그게 왜?"
" 천 길 낭떠러지가 오솔길로 보이기도 하고
불구덩이가 빛나는 신비의 세계로 보이기도 해.
그래서 뛰어 드는 거지. 불나방처럼."
" 장 부장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야."
" 야, 장 부장 어마어마한 현금 부잣집 아들이야
뭐가 아쉬워서 죽냐"
" 그건 돈 없는 우리 이야기고...
돈은 인간이 한계에 다다르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도구일 뿐이라고."
"이제 어쩌지?"
"나도 모르겠다. 장 부장 창피하게 만들어서 협박 좀 할려고 했더니...
저꼴을 보니 안되겠다."
" 그러면 저 쓰레기 더미들 속에 있는 잡귀들이 장부장을 괴롭히고 있는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언뜻봐도 남의 집 귀신들이 그 터 안으로 다 들어와서
새로운 터를 잡으려고 기 싸움을 하고 있었으니까."
" 어머니에게 부탁하는 건 어때? 아니 뭐 그냥 해 본 소리야."
동일을 귀남의 눈치를 살폈다.
"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장부장이 우리 동네와서 찍어 갔으니까
다 오픈 하자는 거지."
" 뭘 오픈해? 우리 어머니 무속인인거? 우리집 무당 집안 인거?"
" 어차피 다 알리기로 했었던 거잖아. 장 부장이 손 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자.
야, 요즘 세상이 달라졌어. 그 작가랑 조연출 애들도 너희 어머니 점사 본다니까
엄청 궁금해 했잖아."
" 그래서? 우리 어머니 불러서 푸닥거리라도 하자는 소리냐?"
" 뭐 그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인식이 좋아졌다는거지. 예전보다..."
"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 어머니 한 미모 하시니까 방송 타면 난리 날 것 같은데.."
귀남은 언짢은 눈빛을 보냈지만 사실 썩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머니 정옥은 항상 점사를 보러 온 사람들을 하나의 인연이라 생각했고
그 인연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들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위로해 해주려 했었다.
" 어머니가 괜찮다고 하실까?"
" 막 나서는 분은 아니지만 아들일 이라면 도와 주시지 않을까?"
" 어떻게해? 고? 스톱?"
"...."
" 야 지금 벌써 새벽 2시야. 이렇게 있을 시간이 없어."
" 못 먹어도 고!"
" 그러면 일단 보고는 드려야 할 것 같은데. "
" 야, 어차피 또 장부장이 차단 할 수 있으니까. 찬스를 쓰자."
" 무슨 찬스?"
" 이럴 때 써야지. 사장님 찬스!"
" 맞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방송 끝까지 만들 수 있게 해주신다고 했었지?"
" 조용히 스텝 한번 꾸려보자. 입 좀 무거운 애들 없나?"
" 입 무거운 애들? 입 보다 덩치 좀 있는 애들 쓰자."
" 너 무섭냐?"
" 안 무섭겠냐? 장 부장 집 촬영하는건데?
늦었으니까 오늘은 안 되겠고 내일 어머니께 전화부터 드려."
" 해볼께."
# 다음 날 귀남의 집.
귀남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용히 시골에서 점사나 보시는 분을 서울로 불러서
방송에 출연 시킨 다는 것이 아들로서 마음이 개운치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말도 안되는 미신들을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 해 줄지 걱정도 되었다.
전화기를 들고 온 방안을 돌아다니며 전화를 걸고 끊기를 반복했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정옥이었다.
" 네... 어머니..."
" 그래. 애미다..."
" 네..."
" 동일이에게 다 들었다. 니가 전화 못 할 거라면서..."
" 아.. 그러셨어요? 안 되시겠죠?"
귀남은 정옥의 목소리를 듣고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매우 난처하고 난감한 상황이라 거절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그거 하면 니가 좀 편해지는거냐? 뭔가 오해를 풀 수 있는거야?"
" ...."
" 아들 일인데 내가 못할게 뭐가 있냐?"
" 죄송해요.. 어려운 부탁 드려서... "
" 사실 걱정은 되는구나. 내가 하는 일이라는게 명확한 방법도 아니고...
현실적인 사람들의 질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과학적인 방법과 어머니의 방법을 함께 사용할 거예요."
" 그 사람이랑 사이가 안 좋다고 하던데?"
" 네... 뭐 그렇긴 한데... 이게 사실 그 잡귀들 때문에 사람이 변한 것 같기도 해서요.."
" 그래. 알겠다. 그러면 나는 뭘 준비하면 되느냐?"
" 그냥 평소에 점사봐주시는 것처럼 오시면 되요. 그 사람 집에가서 터도 좀 봐주시고요.
해결 방법을 찾아주시면 더 좋고요."
" 알겠다. 걱정하지마라."
" 네.. 감사해요."
" 니 걱정해라. 나는 늙어서 비난 받아도 상관없다만..."
" 저도 괜찮아요. 어릴 땐 정말 싫었는데 집에 다녀 온 후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러면 다행이고..."
동일이 어머니께 전화를 먼저 하는 바람에 쉽게 일이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되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계속 되물었다.
" 이거 진짜 완전 불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나방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