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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내게 한 걸음의 용기를(2)
작성일 : 19-10-30 17:00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4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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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아니. 근거는 또 있다. 유카가 내게 작별인사를 한 후 누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쓸데없는 소리까지 나불나불 지껄이다니...'

 

 얼핏 들으면 너무 거창한 작별인사를 탓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거라면 '쓸데없는 소리까지'가 아닌 '쓸데없는 소리를'이 되어야 한다. '까지'라는 건 순수한 작별인사 이상의 뭔가가 추가되었다는 것. 그게 바로 그 정보가 아닐까.

 

 "하하하..."

 

 솔직히 말하자. 이 모든 것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내 추측일 뿐이다. 막말로 몽땅 틀려먹은 개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맞을지도 모르지.

 

 그럼 됐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어찌됐든 1000년 안쪽."

 

 그렇게 믿고 입으로 말하고 보니 은근히 힘이 난다.

 

 끝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

 

 난 첫발을 내디뎠다.

 

 "자, 한번 가 보자."

 

 ------------------

 30y:000d:00:00:00

 

 처음은 누님과 만났던 바로 그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거기가 이 하얀 세계의 중심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곳을 기준으로 마치 낮선 곳에 떨어진 레인저가 주변을 수색하듯,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나선을 그리며 길을 떠났다. 이 세계에 만들어 진 것을 하나도 놓침 없이 모두 보고 싶어서였다.

 

 이미 본 것들도 있었지만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 이 세계에 있는 것들은 보고 다시 본다 해서 지루해 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세상 어느 누가 나이아가라의 열배가 넘는 폭포가 거꾸로 쏟아지는 광경을 지루해 할까. 어느 누가 차가운 불꽃을 쏘아올리고 얼음을 넘치도록 쏟아내는 화산을 두 번 봤다 싫증을 낼까. 넘어질까 항상 발밑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조금 거슬릴 뿐, 이 세계는 입을 헤 벌린 채 하루 종일 그것만 쳐다볼 수 있을 것 같은 광경이 지천에 널린 곳이었다.

 

 ------------------

 50y:000d:00:00:00

 

 하루가 1년 같고 1년이 하루 같은 희미한 시간이 흐른다.

 

 여행을 한다. 길고 긴 여행. 보이지 않는 별과 달을 보며, 오르막 내리막을 가리지 않고 굽이굽이 물결치는 강과, 바다보다 더 거대한 호수를 보며.

 

 산이 막으면 산을 돌아서 가고, 강이 막히면 강을 따라가고.

 

 수해(樹海)를 만나 헤매이기도 하고, 때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50년.

 

 이 세계는 넓었다. 누님이 새로이 넓혀준 저 푸른 영역엔 아직 발도 들이밀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지세가 험하거나 한번 본 듯한 곳은 과감히 지나치기까지 했음에도 내가 보지 못한 곳은 여전히 넘쳐났다.

 

 왜 새로이 확장된 세계에 가 보지 않았냐고? 난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 타입이다. 나를 위해 무려 그녀가 직접 만든 땅과 하늘이었다. 대체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 생각만으로도 난 얼마간 더 버틸 힘을 얻는다. 마치 내일이 소풍날인 꼬마가 들떠서 전날 학교수업을 즐거이 이겨내는 것처럼. 그러니 그 영역에 발을 들이미는 건 정말 나중이 될 것이다.

 

 난 멀리 보이는 푸른 땅과 하늘을 눈부시게 바라봤다.

 

 "...언젠가."

 

 ------------------

 80y:000d:00:30:00

 

 하늘가득 쏟아지는 하얀 눈.

 

 이제껏 보아왔던 하늘의 청명한 하양과도, 조금은 어두워 보이는 땅의 묵직한 하양과도 명확히 구분되는, 부드럽고도 차가운 스노우 화이트.

 

 “하아...”

 

 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 뒤덮여 동글동글해진 침엽수 사이로 비친 하늘을 올려다본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눈송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굴에 남는 차가운 감촉이 자못 익숙하다.

 

 -눈과 고요의 숲.

 

 여기서 본 것들은 다들 아름다웠지만 확장된 영역과 기존 영역의 경계에 있는 이 눈이 내리는 수해는 개중에서도 유달리 아름다웠다. 눈으로 뒤덮여 폭신해 보이는 바닥과 눈을 뒤집어 쓴 탓에 눈나무라 부르는 게 더 알맞을 듯한, 부드러운 윤곽의 침엽수들...

 

 그리고... 흐드러지게 쏟아지는 눈송이들.

 

 때마침 불어 온 싸늘한 바람이 회색빛 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커다란 눈송이를 이리저리 흩날리게 만든다.

 

 "아..."

 

 언젠가 읽은 소설이 떠오른다. 그 소설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지구 밖에서 온 히로인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린다.

 

 -이건 수많은 물리법칙이 거짓말처럼 맞물려 빚어낸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야.

 

 그때 그 히로인이 봤던 것이 바로 이런 광경이 아니었을까.

 

 눈이 내리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은 수해에서 난 내게 주어진 고요함을 가만히 만끽했다.

 

 ------------------

 100y:000d:00:30:00

 

 스치는 찬바람에 가볍게 몸을 떤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눈이 내리는 곳.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발목보다 깊이 눈이 쌓인 적이 없는 신비한 곳.

 

 눈과 고요의 숲.

 

 내 멋대로 그렇게 이름붙인 이 수해에 들어온 이래, 난 20년간 이 아름다운 곳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이 수해가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그리고... 이 너머가 바로 누님이 새로이 준비해 둔 세계이기에.

 

 "100년. 100년."

 

 입 밖으로 그 숫자를 한 번 뱉어본다.

 

 "하아..."

 

 100이라는 타이머의 숫자를 타이머 보는 순간 난 혼란스런 감정이 물밀듯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침. 피곤함. 자랑스러움. 외로움. 그리고,

 

 기대감.

 

 이제 시험 끝! 하고 나타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다시 100년이라. 제법이다?'

 

 '냐하핫! 100년! 훌륭해요. 상을 줄게요~ 뮈가 좋아요? 가ㅅ..."

 

 

 "하하... 그럴 리 없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험에 대한 룰만큼은 유카나 누님이나 철저하게 지켰었다. 100년이든 1000년이든 시험이 끝나지 않는 한 그녀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뭐, 좋아. 자화자찬이나 하지 뭐..."

 

 잘했어 나.

 

 응. 정말로 잘 했어.

 

 아닌 게 아니라 난 정말 잘 버텼다. 학교 다니던 시절, 양손을 들고 벌을 서 본적이 있는가? 있겠지. 하지만 요령부리지 않고 정말 똑바로 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팔만 듣고 있어도 5분이면 '아프다'. 10분이면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고 15분이면 과장 없이 주리가 뒤틀린다.

 

 하물며 그 위에 20kg 물양동이를 얹어놓은 다음에야. 그 짓을 이백년이 훌쩍 넘도록 하고 있는 거다. 육체와 정신을 깎아먹으면서.

 

 칭찬받을 만하지?

 

 "하..."

 

 두 번째 한숨.

 

 허무하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몰리는 날이 되면 평소보다 더욱 외로움이 사무쳤다.

 

 "누님, 유카. 흐... 보고 싶다."

 

 사실 그녀들의 외형만이라면 금방이라도 볼 수 있다. 그저 보고자 열망하며 강하게 떠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내 눈에만 보이는 환상이라곤 하나 그녀들이 곁에 나타나 내가 원하는 대로 웃어줄 것이다.

 

 -얼마 전까지라면 말이지.

 

 언제부터였을까, 망상이 경계를 넘어 현실을 침식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미지하고 '불러낸' 그녀들은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내 망상임에도 내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내가 원하고 이미지함에도 불구하고, 내키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겠다는 듯 구현되었다 바로 흐트러지며 사라지기도 하고, 불러내지 않았음에도 어느 순간 나타나 유령마냥 옆에 서서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기도 한다.

 

 게다가 이전과는 달리 한번 구현되면 마치 자신의 의지로 존재하는 것처럼 집중을 유지하지 않아도 계속 구현을 유지하고, 내 시야를 벗어나 멀리 떨어져도 사라지긴 커녕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길 쏘다닌다.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보며 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어 황당해 하다보면 또 어느 샌가 다가오고, 다가가면 다시 멀어지는 녀석들.

 

 그리고 가끔은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내게 뭔가를 알리려들기까지 한다.

 

 그것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모르는 언어로.

 

 그녀들이 하는 말은 틀림없이 체계를 갖춘 언어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영어(수능)와 일어(취미)를 포함해 3개 국어가 가능했고, 그 덕에 듣고 있는 것이 언어인지 의미 없는 소음인지 정도는 구분이 가능했다.

 

 일단 반복되는 특정 단어가 존재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언급되는 내 이름과 그 뒤에 거의 반드시 따라오는 '카, 엘, 로, 세데'라는 조사로 추정되는 단어. 그리고 시작은 같지만 끝이 미묘하게 변하는, 활용형이라 추정되는 일부 단어들.

 

 무엇보다 주고받는 저 말들이 언어가 아니라면 중간에 나오는 내 이름들은 대체 용도가 뭔가. 의미 없이 중얼중얼 하다 내 이름을 반복한다고? 무슨 저주의식이 아닌 다음에야.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며 내가 모르는 언어를 쓴다는 건 그녀들이 나로부터 독립된 지성을 가진 객체라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내 망상으로부터 구현된 환상이 자아를 갖고 독립된 객체로서 기능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럼 저 언어는 어디서 온 것이며, 내 망상의 틀을 벗어난 그녀들은 대체 ‘무엇’인가?

 

 “아냐. 설마. 아니겠지.”

 

 그래. 사람의 두뇌란 건 대단해서 종종 상상도 못한 일을 해 낸다고 한다. 가끔 큰 사고를 겪고 나서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언어를 깨우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뭐. 이것 역시 그런 일의 연장일지도 모른다. 내 뇌가 어디선가 스쳐지나가며 들은 어떤 언어를 기억해뒀다가 무의식의 영역에서 망상에다 업데이트를 한 걸지도. 그래. 아마 저건 어딘가 수상쩍은 다큐멘터리에서 방송해 준 아프리카 오지부족의 우가우가어 같은 언어일 거야. 내가 까먹었을 뿐이지. 암. 그렇고말고. 열일 하는 구나. 내 머리.

 

 난 애써 그렇게 자위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내 생각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발생했다.

 

 ------------------

 내 옆에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던 짝퉁누님이 문득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내게 뭔가를 속삭였다.

 

 “!#!!$@@! !$#!$ !#$!$!?”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좀 답답한 심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녀석은 다시금 몇 번이고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약 5분여 후, 난 그녀의 말을 간신히 이해했다.

 

 -눈이 그칠 것. 내일. 이 시간에.

 

 이곳에 와서 2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눈이 그치는 걸 본 일이 없던 난 그 말을 그저 웃어넘겼다.

 

 그리고,

 

 "하··· 하하..."

 

 이튿날. 정말로 눈이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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