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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대마법사를 만드는 방법
작성일 : 19-10-30 16:58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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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님신이 우두둑 손가락을 꺾으며 환하게 웃었다. 이 얼마나 천진난만하고도 밝은 웃음이란 말인가!

 

 "됐냐? 정말 납득한 거지?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패도 되냐? 뼈마디를 다 분질러버려도 되지? 관절을 다 뽑아버려도 되는 거지? 손가락 발가락 정강이 허벅지 머리 심장 폐 간 신장 쓸개 췌장 소장 대장 기타등등으로 폭죽놀이를 해 봐도 되는 거지? 아, 걱정하지 마. 네 손만은 그동안 변함없이 저쪽 한 구석에서 양동이를 들고 있을 테니까."

 

 그녀가 땀이 촉촉한 유카형 살색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온다.

 

 히이익! 진담이다! 저거 100프로 진담이다! 당장 빠져나갈 길을 찾지 않으면 206단 분리된 채 저 하늘을 향해 제2우주속도로 사출되어버렷!!!

 

 나는 상큼하게 웃음 지으며 가까워져 오는 누님신을 피해 뒤로뒤로 물러나지만, 그녀는 고양이 쥐 놀리듯 딱 내가 물러서는 만큼 더 다가오며 느긋하게 몸을 풀었다.

 

 "물양동이만 들고 멍하니 있는 게 지겨웠던 거지? 내가 네 시시하고도 심심한 삶에 자극을 주마. 기쁘냐? 기쁘지? 그렇다고 대답해라! 이 섀캬!!!"

 

 굴러라! 머리야! 탈출구는? 뭐 없나? 아! 그래! 유카가 있었지! 유카라면!

 난 유카를 향해 필사적인 눈빛을 보냈다.

 

 '유카! 도와줘!'

 

 그러나...

 

 돌아온 것은 슬프고도 상냥한 웃음뿐

 

 '포기하면 편해요. 우리 같이 죽어보죠.'

 

 제장! 유카마저!

 

 또각 또각...

 

 보이는 거라곤 하얀 땅에 하얀 하늘, 하얀 지평선밖에 없는 광활한 공간. 그런데 저 킬힐 굽이 땅을 두드릴 뿐인 작은 소리가 어찌 이리도 크단 말인가!

 

 또각 또각...

 

 쿵쾅! 쿵쾅!

 

 발소리에 맞춰 심잠이 쿵쾅거린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채 곧 모습을 드러낼 살인마의 발소리를 듣는 공포영화의 히로인 마냥.

 

 아니, 히로인이라면 그나마 오 마이 갓이라도 외칠 수 있지, 난 그마저도 할 수 없다. 왜냐고? 그 오 마이 갓의 대상이 바로 눈앞에서 주먹을 불끈 움켜쥐는 저 살인마거든!!!

 

 난 결국 달아나길 포기하곤 죽은 눈으로 누님신을 바라봤다. 입가에 웃음을 건 채 주먹을 불끈 쥐는 그녀.

 

 "아, 아으..."

 

 이제 저 주먹이 곧 내 머리 위에 떨어지겠지. 안 돼. 안 돼! 죽는 건 몰라도 더 맞는 건 싫어! 거기다 패고 나서 다시 제대로 조립해 준다는 보장도 없잖아! 저번엔 말로만 끝났지만 이번엔 진짜로 머리와 거시기의 위치를 바꿔서 방치해버릴지도 몰라! 아니, 그것만이면 다행이게? 당시 했던 말처럼 거시기에다 눈코입을 붙이고 머리에다 배변기능을 추가로 달아버리면 그땐 정말 끝장이야!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저 신이란 이름을 가진 악마는 이미 내 좌우 두 다리를 바꿔 단 전적이 있다고!!

 

 움켜쥔 주먹을 위로 치켜드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마냥 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생각해. 생각해. 지금 할 수 있는 뭔가를. 130년 모쏠론이나 130년 동정론을 들먹여 연민을 유발 해 볼까? ...안돼. 유카라면 모를까 그런 감정론 따윈 새디즘으로 똘똘 뭉친 저 누님에겐 씨도 안 먹힐 거야. 심지어 성희롱이라는 그럴듯한 죄목까지 붙은 이 상황이라면. 저 주먹을 멈추려면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이득이 되는 뭔가를 제시해야 해. 생각해 봐. 없어? 정말 뭔가 없어? 이럴 때 휘두를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그 순간이었다.

 

 -아무리 100년이라지만 인간으로서 이런 게 가능하다니. 정밀하거나 강력한 이미지네이션이 마법적 재능중 하나란 걸 생각해 보면, 당신이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정말 대단한 수준의 마법사가 되었을 지도...

 

 1년 전, 유카가 내게 농담 삼아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친 것은.

 

 찾았다! 전가의 보도!

 

 난 그녀를 향해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질렀다.

 

 "저는 이 우주의 인류를! 아니, 모든 지성체들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지금 때려서 머릿속 내용물이 날아가기라도 하면 누님,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머리위로 떨어지던 주먹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

 누님신의 얼굴에 짙게 떠오른 호기심.

 

 "호오...?"

 

 먹혔다?

 

 "네 입으로 한 말이지만 그게 얼마나 뜬금없는 소린지 알지? 100년 동안 양동이만 줄창 들고 있던 놈의 머리에서 그런 게 어떻게 나오냐?"

 

 '내가 들고 싶어서 드냐?'란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일단 꾹 눌러 삼켰다.

 

 "예전에 유카에게 이미지하는 힘이 마법에 있어 중요하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그래. 소환학이나 정령학중에 그런 게 좀 많지. 그래서?"

 

 "저는 마법이라곤 쥐뿔도 모릅니다만... 제가 마법이 가능한 세계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저 정도의 망상력이면 그게 마법사로서 가치 있는 능력이 될 수 있습니까?"

 

 그녀가 턱에 손을 대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흐음. 네 녀석 칭찬을 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마법적 재능이 어느 정도 되는 인간이라면, 이미지네이션 능력이 네 반의 반의 반만 되어도 10년이면 그쪽 계통 한정으로 대마법사(High mage)를 노려볼 수 있을 거다."

 

 대마법사란 게 어느 정도인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설마 동정 30년이면 전직한다는 그 대마법사(?)는 아닐 테고. 아니 잠깐. 따지고 보면 대마법사(?)은 장래 내게 확정예비된 직업이잖아? 비웃으면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그 대마법사란 게 어느 정도인가요?"

 

 내 거듭되는 질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짜증 없이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끓는점이 헬륨만큼 낮은 누님으로선 희귀한 일이었다.

 

 "내게 속한 세계 중에선 '이알타'가 그쪽으로 발전되어 있는 편이니 거길 예로 들지. 이알타의 '인간'을 기준으로 하면, '재능이 출중한 자'가 한 계통의 마법에 일로매진했을 때 평균 예순 정도에 도달하는 경지다. 장수종이라면 그보다 좀 더 걸릴 테고."

 

 대충 수재이상이 죽자고 한우물만 파서 예순이라. 그럼 나름 대단한 거네.

 

 "지성체가 발전하는 건 그 세계를 관리하는 천사에게도 좋은 일이죠? 그럼 제가 그 대마법사를 보다 짧은 시간에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될 방법론을 제시한다면 그건 누님께 의미가 있는 일인가요?"

 

 "방법론이라... 그 방법론이란 게 정말 써먹을 만한 것이라면. 너도 일단은 '지성체' 나부랭이인 만큼 세계의 발전이 천사의 개입이 아닌, 같은 지성체인 너로부터 비롯된다면... 확실히 그건 분명 가치가 있지. 근데 변죽이 너무 길다? 죽을래?"

 

 난 풀었던 주먹을 다시 쥐는 그녀의 모습에 기겁하며 물러섰다.

 

 "아뇨! 아뇨! 지금 말 할 겁니다! 그러니까! 핵심만 간추리자면! 걔들도 저처럼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미안하다. 이알타의 얼굴모를 친구들. 근데 나도 살아야지. 좀 전에 말 한 것처럼 기쁨은 나누면 절반이지만 고통은 나누면 깨소금이래잖아.

 

 ------------------

 "인간남성 한정으로 대마법사 속성코스를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신탁 같은 형식으로 알리는 거죠. 굳이 신탁이 아니어도 괜찮긴 합니다만, 역시 공신력이란 측면에선 신탁이 제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알타에?"

 

 "네. 이알타에."

 

 "흐음. 구체적으로?"

 

 "마법적 재능이 특출하면서 동시에 성욕이 왕성한 젊고 순결(?)한 인간남성을 골라 구속한 뒤... 아, 물론 자원자에 한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여튼 그 남성에겐 아주 헐벗고 시원한 차림새의 경국지색 미녀들과의 만남을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꾸준히 갖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30년 동안요. 그리고 만날 때 마다 딱 눈으로 보고 대화하는 것만 허용하는 거죠."

 

 그녀의 표정이 차게 식는 걸 보고. 난 서둘러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아니, 누님도 인정하셨잖아요! 절 동정으로 110년 묵혔더니 대마법사가 될 자질(망상력)이 생겨났다구요."

 

 "뭔가 왜곡 된 것 같긴 한데... 계속해 봐."

 

 "그러니까 그놈들에게도 엿...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도 저와 같은 방식을 적용해 강력한 망상력을! 이미지네이션 능력을 갖게 함으로서 대마법사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겁니다!"

 

 "...호오?"

 

 "성욕이 어떤 식으로든 해소되면 곤란하니 사지를 결박해서... 영양은 혈관주사로... 아니지. 식욕이나 수면욕이 충족되지 않으면 성욕이 줄어들 테니, 흠. 떠먹여야겠군. 아, 그래. 그거야! 식사할 땐 알몸 에이프런 차림의 근육질 떡대들로 둘러싸게 한 다음, 한술, 한술 정성스레 떠먹이도록 하는 겁니다. 그럼 반대급부로 이성을 원하는 마음이 더 강해질 테니까요."

 

 그녀의 얼굴에 사라져가던 호기심이 다시 차올랐다. 아니, 저건 호기심이 아니라 새디즘인가? 에이 몰라!

 

 누님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흠. 흐음. 과연... 의외로 고려해 볼 만 할지도. 상당히 재미...가 아니라 참신한 발상이다. 더 해봐라."

 

 "뭐, 뭣이라!!!"

 

 저편에서 땅에 머리를 박고 있던 누군가가 경악성을 발했지만, 나도 누님신도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 다만 구속된 채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인성이나 사회성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아! 차라리 예의 미녀들과 만나는 그 시간만 빼고 나머지 시간 전부를 감시역을 맡은 알몸 근육질 떡대들 속에서 살게 하죠! 그래! 이거 좋네요! 사회성도 기르고, 이성에 대한 갈망도 강해지고! 파워풀하고 건장한 근육들에 둘러싸여 꾸준히 마찰하고 부대끼다 보면 이를 동경해 육체를 단련하기 위해 힘쓰게 되는 효과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육체단련 중이라도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지 못하도록 손만은 꾸준히 구속해 놔야 할 겁니다."

 

 잘한다! 내 주둥아리! 너도 평소 쌓인 게 많았구나!

 

 "그렇군. 그런 식인가. 그렇게 해서 네놈의 3할 정도만 되어준다면..."

 

 "그렇습니다! 빠르면 20년, 늦어도 40년 안쪽으로 심신모두 건강한, 실로 모범적이 대마법사의 탄생이 가능한 겁니다! 누님! 이번 기회에 30년 묵은 동정이 대마법사로 전직한다는 농담을 진실로 만들어보죠!"

 

 "오오..."

 

 나, 100년 넘도록 누님이 저토록 뭔가에 감탄하는 건 처음 봤다.

 

 "복직근과 외복사근을 이불삼고 대퇴근을 만지면서 잠이 드는, 커다란 욕조에서 잘 발달한 근육을 느끼며 교제를 나누고 때론 서로의 대흉근을 타월삼아 씻겨주기도 하는 그런 삶을 고작 30년 강제당하는 것만으로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면... 정말 큰 이득이군. 실로 혁신적이야."

 

 "그렇죠!?"

 

 "그렇긴 뭐가?!!"

 

 저쪽에서 또 태클이 들어오지만, 이것도 일단 무시.

 

 "그래. 넌 방금 정령학과 소환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좋아. 성희롱 건은 이걸로 용서하마."

 

 아자잣!! 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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