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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누님, 강림(2)
작성일 : 19-10-30 16:57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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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자세히 살피니 유카는 1년 만에 재회한 내게 아는 척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은 죄가 많아서 70년의 모라토리엄이 끝나면 누님에게 끔찍한 꼴을 당할 거라고 부들부들 떨곤 하더니... 땀에 폭 젖은 토가나 여기저기 그을린 모습을 보고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 여기 오기 전에도 이미 여러모로 험하게 굴렀나 보다. 그나저나 별도 작살낼 수 있다는 지천사도 구르면 땀은 흘리나 보네.

 

 누님신의 입에서 으슬으슬한 음성이 이어졌다.

 

 "50m/s 이하로 쳐지면 죽는다. 나한테서 1000m이상 떨어져도 죽는다. 봉인구 깨먹어도 죽는다."

 

 유카가 부들부들 떨며 대답했다.

 

 "네, 넷!"

 

 "20000m. 도망갈 생각 말고. 뛰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카가 트랙도 선도 없는 하얀 대지를 원을 그리며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바람과 같은 속도다.

 

 그나저나 50m/s란 게 달리기 속도를 말하는 거였군. 근데 지천사씩이나 되는 존재가 달리기 정도로 기합이 되나? 아! 그러고 보니 봉인구 어쩌고 그랬었지. 아까 주렁주렁 걸고 있던 목걸이며 팔찌, 반지, 귀걸이들이 전부 그건가. 그것들이 지천사로서의 능력을 몽땅 제약하고 있나 보다. 그것도 인간 비슷(?)한 수준까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 유카가 달리기정도로 고생할 리가 없지.

 

 그렇게 누님신으로부터 살짝 떨어진 채 눈만 데굴데굴 굴리기를 3분 남짓. 문득 죽을 둥 살 둥 달리던 유카의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친 모양인데...

 

 그리고 유카는 거기에 대해 끔찍한 대가를 치뤘다.

 

 콰르릉!!!

 

 "끄아아아아악!!!"

 

 무려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보라색의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게다가 그것도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네 번, 보라색 번개는 바닥을 이리 데굴 저리 데굴 굴러다니는 유카를 쫒아 다니며 연속해서 지지고 볶는다.

 

 콰르릉!

 

 "우게겍!"

 

 쿠릉!!

 

 "아구아악!!"

 

 콰르르르르!!!

 

 "이기야아아아아악!!!"

 

 정말 저대로 놔둬도 되나 싶어 내가 안절부절 하는데 새카맣게 그을려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리던 유카의 옆에서 갑자기 은빛의 침엽수 한그루가 땅에서 콰득 솟아난다. 그리곤 한 20m쯤 되는 높이까지 순식간에 자라는 나무. 그러자 유카를 향해 쏟아지던 번개가 모조리 나무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후다닥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유카.

 

 "우아아아아앙!!! 언니 바보!!!"

 

 새카맣게 그을린 채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며 달리는 모습이 눈물 나게 불쌍하다.

 

 "쯧, 썩어도 준치라더니. 봉인구를 스물다섯 개나 차고도 저게 된단 말이지. 망할 년. 저거 확 멱을 따버리고 말 잘 듣는 좌천(Ofanim 3위계)하나를 승격시킬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 오늘 이 자리에서 유카의 마지막을 보게 될 것 같아 무섭다.

 

 "그리고, 야! 이 자식아!!!"

 

 응?

 

 "그래. 너 말이다 너! 뭘 두리번거려!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는데?!"

 

 떨어지는 벼락을 피해 죽어라 달리는 유카를 지켜보던 누님신이 이번엔 내 쪽으로 화살을 돌린다. 난 앗 뜨거라 화들짝 놀라 얼른 대답했다.

 

 "옙!"

 

 누님이 뒤적뒤적 하더니 한껏 풀어헤친 가슴골에서 뭔가를 꺼낸다. 그리곤 꺼낸 그것을 하나는 자신의 입에 물고 하나는 내게 던졌다.

 

 탈그랑.

 

 "불!"

 

 난 바닥에 떨어진 것이 지포라이터임을 확인하곤 당황해서 그녀를 쳐다봤다. 누님의 입에 물린 게 담배인 이상 그녀가 원하는 건 명확하다. 하지만 난 지금 양손이 막혀있는데?

 

 "불!"

 

 "저, 제가 지금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불!!!"

 

 "히익!!"

 

 아, 이거 그거다. 버티면 오지게 맞는 각. 안 그래도 기분 더러워 보이는데 미적미적하다간 정말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겠다.

 

 "가, 갑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어느새 두 손으로도 버거운 근 20kg짜리 물양동이를 왼손만으로 번쩍 치켜든 채 라이터로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난 130년 경력의 물양동이들기 달인이다. 시험 룰의 안쪽이라면, 그라고 인체구조상 가능한 자세라면 어떤 기기묘묘한 자세로도 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물양동이를 들 자신이 있다.

 

 "으아... 떠, 떨어질라..."

 

 다만 이번같이 자세가 아나라 근력의 문제가 되면 달인 아니라 달인 할애비라도 어쩔 수 없지만.

 

 "이쯤 되면 물양동이 정돈 발가락으로 저글링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백수십년이나 들고 다녔으면서 고작 그거냐. 한심하긴. 쯧."

 

 그녀는 비척대며 물동이를 양손으로 고쳐 잡는 날 못마땅한 눈으로 일별하고는, 마침 연기를 풀풀 피워 올리며 달리기를 마치고 귀환하는 유카에게 가까이 다가오도록 손짓했다. 그리고는 한 모금, 폐부 깊숙이 담배를 빨아들인 후,

 

 "후우..."

 

 거칠게 숨을 깔딱이는 유카에게 조용히 말했다.

 

 "기본자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카가 땅에다 머리를 박는다. 소위 말하는 원산폭격 자세다.

 

 "넘어지면 알지?"

 

 누님신은 부실한 토가 사이로 훤히 드러난 유카의 등을 손으로 쓰윽 한번 쓸어내리고는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았다.

 

 "켁."

 

 그리곤 유카의 비명을 안주삼아 다시 한 모금.

 

 "후..."

 

 하얀 연기가 동그란 링을 만들며 하늘로 흩어져 간다. 나와 유카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그런 그녀의 눈치만 슬슬 볼 뿐이다.

 

 "......"

 

 "......"

 

 이윽고 다 타버리고 필터만 남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튀기며 누님신이 침묵을 깨트렸다.

 "하아... 이 망할 년놈들아. 난 정말 너네 같은 년놈들은 처음 봤다."

 

 년놈? 년이 아니라 년놈? 놈? 나? 나는 왜? 무슨 짓을 했다고?! 설마 유카랑 둘이서 만날 때 마다 물고 뜯고 씹고 맛보면서 뒷다마 깐 걸 들킨 건가?! 아냐. 뒷다마 정도는 새지 않게 커버 칠 수 있다고 유카도 말했었어. 서, 설마 배~신?! 커버치네 어쩌네 한건 내가 맘껏 뒷다마를 까게끔 하기위한 연막?! 나만 죽을 순 없다는 물귀신 작전인가? 기쁨은 나누면 반이 되고 고통은 나누면 꿀맛이다 뭐 이런 거? 아냐. 진정하자. 그건 아닐 거야. 그런 짓을 하면 유카 자신의 죄목도 늘어나게 되니까. 배신의 메리트가 별로 없어. 그럼 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년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족 쳐도 족 쳐도 끝이 없고... 놈은... 후, 좋아 우선 놈부터 시작하자. 야. 이 썩을 놈아. 넌 대체 뭔 배짱이냐? 유카 이년이랑 내 뒷담을 하는 건 그렇다 치자. 그건 애초에 이년이 개념이 없는 탓이 크니까.“

 

 헉. 역시 들켰다.

 

 “근데... 하! 길고 긴 내 신생에서 설마 날 성희롱하는 놈이 나타날 줄이야. 그것도 무려 인간이. 너 뭐 목숨이 구골(googol, 10^100)개쯤 되는 거냐?"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뭔 개 풀 띁는 소리람. 성희롱?

 

 "제, 제가? 누님을? 성희롱? 왜요? 어떻게요? 거기다 누님 말마따나 대체 뭔 배짱으로? 무슨 끔찍한 벌을 받을 줄 알고?!"

 

 "호오... 이것 봐라? 신인 내 앞에서 시치미를 뗀다고? 좋아.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아니! 잠깐만요! 전 억울..."

 

 ...그녀의 주먹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빠악!

 

 "꾸에엑!"

 

 뻐벅!

 

 "쿠에엑!!"

 

 뿌각!

 

 "우에엑!!!"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얼마나 예술적으로 두들겨 팰 수 있을까? 나는 감히 말하겠다. 여기 바로 그 해답이 있다고.

 

 난 10분 가까이 두들겨 맞는 동안 단 한 번도 땅에 발을 디디지 못했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공중에 뜬 채로 공놀이하듯 두들겨 맞은 것이다. 아니, 모 유명한 축구 선수도 공이 친구랬지 친구가 공이라고 하진 않았다고! 물론 그녀와 내가 친구사이는 아니지만!

 

 거기다 이정도로 끝이라면 내가 예술 운운하지도 않았다. 보다 놀라운 것을 이야기 해 볼까? 두들겨 맞는 내내 난 양동이를 단 한 번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누님신은 즐겁게 주먹질, 발길질을 하면서도 약간의 힘 조절만으로 두들겨 패는 내내 나로 하여금 줄곧 양동이를 든 '모양'을 유지시킨 것이다. 그것도 허공에 띄워놓은 채로!

 

 각 관절들의 운동각도가 360도도 되었다가 720도도 되었다가,

 

 "갸갸갸갸갸악!!!"

 

 다리가 등에 붙다 못해 몸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끄아아아악!!!"

 

 공중에서 온갖 아크로바틱한 자세를 취한채로 두들겨 맞기도 하고,

 

 "아옳옳옳옳!!!"

 

 자이로스코프마냥 온갖 방향으로 자유로이 회전하며 두들겨 맞기도 하고,

 

 "커어어어어억!!!"

 

 "그만 패요! 언니! 그 이상 패면 사람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게 되어버려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대사를 다시 듣기도 하고, 근데 도돌이표는 진짜 언제 나오는 거야?

 

 "이 죽일 년아, 어디서 슬금슬금 일어서려고 해!? 진짜로 뒈진다!? 거기다 이놈 의외로 둔하고 튼튼해서 괜찮아. 전엔 이보다 더 험하게 팬 뒤에 오른다리 왼다리를 바꿔 달아놨는데도 모르더만. 바퀴벌레처럼 빨빨 잘만 돌아다니던데."

 

 "!!!!!!"

 

 때로는 천지가 개벽할법한 충격적인 사실을 뒤늦게 알기도 하는 동안, 난 정말 단 한 번도 물동이에서 손을 떼거나 물을 쏟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엔 적당하고 느긋한 구타를 통해(즉 이곳의 회복속도를 넘어서지 않는 수준으로)부러지고 어긋한 뼈를 맞추고 내 몸을 탈출한 몇몇 부위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붙이기까지 함으로서 내 몸뚱아리를 원상복구시켜 깔끔하게 지상에 연착륙시켰다! 이 무슨 이성적이고도 냉정하며 예술적인 구타!!!

 

 난다~ 날아~ 어버버버...

 

 "아으으으... 에, 어헤헤헤헤~ 우헤, 우헤헤? 아아?"

 

 구타 끝난 후 간신히 정신을 차리니 난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누님신에게 두들겨 맞기 바로 전 그 자세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물론 물동이를 바짝 쳐든 자세로.

 

 "...애아 아으 우흐이으 아하어이(내가 방금 무슨 일을 당한 거지)? 이어 꾸으(이거 꿈?)? 오으아이 외아이 어여오 하으 끄이하 이야이으 으으어 가으에(오른다리 왼다리 어쩌고 하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만약 반쯤 돌아간 입에서 침이 겔겔 흘러내리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유카가 차마 못볼 것을 봤다는 듯이 '흑~'하고 고개를 슬피 돌리지 않았더라면 정말 꿈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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