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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나는 이러고 놀았다(2)
작성일 : 19-10-30 16:55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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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안다. 불쌍한 거. 거기 웃지 마라. 비록 뇌내망상이라 해도 저 환상은 내 동료다. 목소리도 없고 만지지도 못하는 허무한 홀로그램이지만 그래도 그녀와 누님의 저 환상들이 때로 웃어주었기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다.

 

 그리고 모르냐? 인간에게 있어 세상이란 건 결국 주관이 듬뿍 들어간 감각기관의 오케스트라란 걸. 내가 보고 내가 그렇게 믿으면 그건 내게 있어 이미 하나의 실체다.

 

 난 내 검정유카에게 보란 듯 하X히 댄스를 시켜놓은 뒤 당당하게 외쳤다.

 

 "보이는가! 이 훌륭한 자태가. 물론 보이지 않겠지. 알아. 부끄럽지 않냐고 말하고 싶겠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 대고 뭔 소리를 지껄이냐고 비웃고도 싶을 거다. 쟤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기도 할 테고. 그러나 갑자기가 아냐! 넌 잘 모르겠지만 너랑 만나는 3년의 하루를 제외하곤 난 언제나 이러고 놀았다!!"

 

 "......"

 

 "자! 이제 보아라. 나의 혼자놀기가 100년에 걸쳐 도달한 지고의 경지를! 소개하지! ver.13! 검정 비키니아머 유카다!!!"

 

 "......"

 

 "......"

 

 "...유카, 웃든 비웃든 잘 아는 병원을 소개해 주든, 뭔가 반응해 줬으면 좋겠는데... 기세를 타서 거창하게 늘어놓긴 했는데... 그냥 그렇게 눈만 땡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으면 정말 무안해 죽을 것 같아서..."

 

 저편에서 내 짝퉁유카가 댄스를 추다 말고 입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는다. 넌 가만히 춤이나 춰! 내 상상인데 뭘 멋대로 움직이는데! 확 벗겨버릴라!

 

 "세상에..."

 

 유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시선의 방향이 이상하다. 마치...

 

 "잠깐, 유카. 지금 뭐하는 중이야?"

 

 유카가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한 채 대답했다.

 

 "보래서 보는 중인데요. 근데, 우와... 이건 정말 깜짝 놀라겠는데..."

 

 엥?

 

 "보다니. 저게 보인다고? 저 짝퉁유카가?"

 

 "지금 하X히 댄스 중이잖아요?"

 

 "엥? 하X히를 알아? 아니 그보다, 보, 보인다고...?"

 

 유카는 대답대신 성큼성큼 걸어서 검점유카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검정유카 역시 붙잡힌 팔을 보며 깜짝 놀라고 있다. 아니 그니까 너, 내 상상이잖냐. 뭘 멋대로 놀라고 그래?

 

 "생각 술술 잘 읽는 거 알면서."

 

 "아니, 하지만 이건 내 머릿속의... 아무리 생각을 읽을 수 있다지만 이건 좀 다르지 않나? 내가 이미지한 환상을 제 3자 입장에서 다른 시점으로 관찰한다고? 심지어 만지고 있어?"

 

 "몇 번이나 말하지만 제가 이래 뵈도 지천이랍니다. 다른 동네 가면 창조신 소리를 듣는 존재에요. 못 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그보다 이거, 좀 만져볼게요. 와, 이것 참."

 

 내 상상인데 그걸 만진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인데 실제로 그게 눈앞에서 벌어진다. 검정유카를 밀었다 당겼다 이리저리 주물럭대는 유카. 내가 지금 뭔 황당한 광경을 보는 거지?

 

 "냐하하핫! 이거 신기하네. 정말 닮았어. 뭐야, 이거!? 어떻게 이렇게 닮을 수 있어? 우햑! 이 녀석을 앞에 세워놓고 1인극이나 이런저런 걸 하면서 논다는 거죠? 인정할게요. 당신은 정말 혼자놀기의 달인이에요! 냐하핫! 아무리 100년이라지만 인간으로서 이런 게 가능하다니! 강력한 이미지네이션이 마법적 재능 중 하나란걸 생각해 보면, 당신이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정말 대단한 수준의 마법사가 되었을 지도!! 냐하하하핫!!!"

 

 좀 전과는 반대로 이번엔 내가 유카의 텐션을 못 따라가겠다.

 

 "보이는 거면 보이는 대로 문제인데... 자신과 닮은 망상이라니, 기분 나쁘지 않아?"

 

 "기분 나쁘긴요. 얼굴 맞댄 시간이라곤 3년에 하루가 고작인데, 이렇게 닮은 걸 이미지 할 수 있다는 건, 당신이 그만큼 제게 호감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인데요."

 

 "...관심은 인정하는 데 호, 호감은 어디서?"

 

 "냐하하하핫!!! 이성의 외관을 백수십년에 걸쳐 이렇게 까지 똑같이 이미지 해냈는데, 그 대상에게 호감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요? 호감뿐만 아니라 리비도도 흘러넘칠 것 같은데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새삼 그녀의 입으로 들으니 어디 머리라도 처박고 싶다. 아니, 가슴 말고 콘크리트 벽 같은 거 말이다. 근데 여긴 우주라 그런 것도 없다. ...역시 그냥 가슴에다 갖다 박을까?

 

 내 번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카는 여전히 검정유카를 주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거, 단순이 외관뿐이 아니라, 흐릿하나마 영성이 존재해요. 약간이지만 제 영성과 닮아있기도 하고요."

 

 "엥? 여, 영성? 그게 뭐야? 내 망상에 그런 이상한 게 있어? 난 그런 거 모르는데...?

 

 "영성이란 일반적으론 각각의 영혼이 가진 고유한 성격이나 특성을 말해요. 영성학적으론 또 다른 의미를 갖지만 뭐, 그건 넘어가죠. 여튼 당신이 영성이 뭔지조차 모름에도 이것에게 영성이 있고 그것이 절 닮아 있다는 건, 당신이 나란 존재를 상당히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해요. 외견만으론 날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어딘가에서 이해하고 이리저리 애쓴 결과가 영성이란 형태로 나타난 거니까요. 싫어한다니요? 날 이해하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을 어떻게 싫어해요?"

 

 으음. 칭찬받은 거지? 기쁘다. 기쁜데... 이야기 해놓고 보니 묘사가 어딘가 스토커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이지?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죠. 좀 더 제대로 살펴 볼 시간을 가지고 싶으니까요. 괜찮죠?"

 

 "어, 으응..."

 

 근데 이거 이대로 놔둬도 되나? 내 입으로도 말한 거지만 저거 내 욕망(주로 성욕)과 번뇌와 집착이 한데 어우러진 내 망상의 결정체라고? 그걸 저런 파릇파릇한 꾸냥(?)에게, 심지어 재료가 된 본인에게 다 드러낸다는 건 백주대낮에 강남 번화가에서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것 보다 더한 수치플레이 아닌가? 혹시 나 지금 혀 깨물고 죽어야 하는 타이밍?

 

 "와, 비키니 아머의 재현도 완벽하네요. 면적은 작아도 굴곡에 요철에 문양까지 무척 복잡한 물건인데 말이지요. 근데, 어디보자 이거 가슴파츠 안감은 어떻게 되어있으려나. 안 보이는 부분인데, 궁금하네."

 

 어? 지금 뭐라고?

 

 "잠깐! 그쪽은 안돼!!!"

 

 훌렁.

 

 유카는 내 비명을 못 들었는지, 못들은 척 한건지 바로 망설임 없이 검정유카의 비키니아머 가슴파츠를 뒤집었다.

 

 "오호라. 안감을 댔군요... 가죽인가요? 음. 하지만 얇군요.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원본과는 다를 수밖엔 없지만... 그래도 이런 식이면 쓸려서 아파요."

 

 쓸린다고? 아프다고? 어, 어디가? 아, 아니다. 그것도 물론 큰일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훠얼씬 큰 일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중세인도 아니니 가죽 같은 것 보단... 어디보자, 지구정도의 문명레벨에서 적절한 물건이... 아, 폭신폭신, 이 아니라 물컹물컹한 겔 형태의 니플리스를 크게 확장해 놓은 형태로 안감을 대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좋은 남자는 세심한 부분까지 이성에게 상냥할 수 있어야... 음?"

 

 유카의 말이 멎었다. 그리고 난 그 이유를 안다. 보지 않아도 안다. 아마도 그녀의 시선은 검정유카의 가슴, 그 한가운데에 박혀 있을 거다.

 

 "이건... 뭐라 해야 할까..."

 

 말하지 마.

 

 "어, 음. 이런, 제가 당신의 장인정신을 얕보고 있었군요. 충분히 합리적이에요. 안 쓸리면 아플 일도 없겠지요."

 

 제발 말하지 말라고...

 

 유카가 히죽히죽 웃으며 가슴에 칼을 꽂았다.

 

 "depressed nipple이라니 그런 취향이실 줄이야..."

 

 "아냐! 그런 게 아냐! 그냥 단지 그쪽이 이미지하기 편했을 뿐이야! 잘 모르니까!! 아니 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하게 하는 거야!!!"

 

 내 소란을 깔끔하게 무시한 유카가 한층 더 끔찍한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가슴이 이렇다면 밑은?"

 

 "그만둬그만둬그만둬! 거긴 금단의 영역이야!!"

 

 "으흐흐흐흐흐흐"

 

 "인간을수치사시킨다는진귀한경험을하고싶지않다면그만둬!!!"

 

 난 검정유카의 비키니아머 하의로 손을 가져가는 유카를 향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Freeze~"

 

 키득거리며 까딱이는 손짓 한 번에 꼼짝없이 머리만 돌아가는 마네킹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머. 수치사하는 인간은 의외로 제법 많답니다. 최초가 아니니 괜찮아요~ 흐흐흐. 자, 어디 당신의 망상력을 검증 해 볼까요?"

 

 "이건 레이프야! 정신적 강간이라고!! 고소해주겠어!!!"

 

 "해도 돼요. 대천율장(chief justice of all creation's heaven), 그러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사법부의 대빵이 제 직속후배니까요~"

 

 "절망했다! 지연 학연이 판치는 이 우주에 절망했다!!!"

 

 "그게 언제 적 드립이에요. 저번에도 그러더니. 그보다, 자, 벗깁니다~ 하나, 둘..."

 

 짝퉁유카! 사라져! 사라져! 넌 내 상상인데 왜 안 사라지고 멍하니 있는 거야!! 하다못해 반항이라도 해!

 

 "셋!!!"

 

 그리고, 검정유카의 비키니 아머 하의가 유카의 손에 의해 확! 밑으로 내려갔다.

 

 "......"

 

 "......"

 

 "......"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가만히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유카의 표정이 시각각각으로 변한다. 맨 처음은 괴이한 표정. 그 다음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표정.

 

 이윽고 고개를 들어 올린 유카가 날 따스한 눈으로 바라봤다.

 

 "왜!!!"

 

 난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왜 그렇게 봐! 동정이 무슨 죄냐! 잘 몰라서 못 그렸을 뿐인데! 왜 그런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건데! 죽여!! 그렇게 쳐다 볼 바에야 차라리 죽여!!!"

 

 "음... 어... 괜찮아요. 언젠간 할 수 있을 거에요...?"

 

 "왜 의문형인데?! 그리고 언제! 시험 중엔 안 서고 시험 끝나면 중늙은이라고!! 그런 나를 누가 나를 구제해 주는데?!"

 

 유카가 상냥하게, 너무 따스해서 눈물이 흐를 것 같이 상냥하게 웃었다.

 

 "인간이 사는 세상치고 창관이 없는 세계는 없어요."

 

 난 또 한 번 절규하며 눈물을 쏟았다.

 

 

 "수백 년 기다린 동정탈출이 그런 쪽인 건 싫어!!!"

 

 

 "근데, AV 좀 보지 않았어요? 그 많은 영상자료들은 어쩌고..."

 

 "AV 좀 갖고 있다고 정밀묘사가 가능할 것 같냐! AV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 보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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