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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여기는 우주(5)
작성일 : 19-10-30 16:53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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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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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카는 히힛, 하고 한번 웃은 후 이내 얼굴에 떠올라 있던 웃음기를 지웠다.

 

 "그나저나... 당신은 정말 이 시험이 끝난 뒤에 대해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군요."

 

 "하하하."

 

 난 고소를 지었다.

 

 "날 봐. 유카. 이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를. 난... 늙었어."

 

 "당신의 나이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늙어 보이진 않아요. 오히려 적당히 세월의 흔적이 스며들어 중후한 맛이 넘치는 어르신이란 느낌? 그러니 너무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요."

 

 난 유카의 농담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네가 내 노화를 잠시 멈췄다곤 하지만, 멈춘 그 시점에서 이미 내 나이는 60이 넘었어. 시험을 실패할 경운 말할 것도 없고... 누님이 어떤 보상도 해 주지 않겠다고 확언한 이상, 내가 만약 시험을 무사히 이겨냈다 쳐도 그때가 되면 내 노화는 다시 진행될 거야."

 

 "음..."

 

 "그 이후엔 아마도 열에 아홉, 난 지구로 돌아가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낮선 미래인들 사이에서 남은 수명을 마치게 될 거라 생각해."

 

 "......"

 

 "그리고 그 남은 수명이란 건 분명 채 몇 년이 되지 않을 테지. 그렇지? 유카?"

 

 공기가 살짝 무거워진다.

 

 "...언니가 그런 이야기도?"

 

 "그냥 예전에, 지나가듯이 한 번."

 

 "하아..."

 

 유카는 대답대신 한숨을 내 쉬었다.

 

 

 -고독. 죽음. 소멸. 망각.

 

 -나를 기다리는 것들.

 

 -알아. 내 끝은 불행해야 한다는 걸.

 

 -알고서도 견뎌야 한다는 걸.

 

 -그것까지가 시험이잖아?

 

 

 "이 지긋지긋한 물양동이를 집어던질까 말까 하루에도 수백 번씩 고민하곤 해."

 

 사람을 묶어놓고 양미간에 물방울을 계속 떨어트리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고문이 된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지속적인 자극은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다. 하물며 그게 20kg의 무게에 짓눌려 백수십년이 넘도록 주리를 뒤틀게 만드는 고통임에야.

 

 "온 힘을 다해 내던지는 거야. 그야말로 쳐 죽여 버리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살이 찢어지도록. 뼈가 부서지도록. 그런 뒤 혹시라도 남은 물이 있다면 뒤집어서 탈탈 다 쏟아낸 다음 이번엔 밟아 짓이겨 찌그러뜨릴 거야. 지근지근지근지근. 한줌의 양철 쓰레기가 될 때까지. 그리곤 외치는 거야."

 

 -세계 따위 알까보냐! 인류 따위 알까보냐!!! 씨X!!! X이나 처먹어라!!!

 

 "그리곤 날 여기까지 몰아붙인 모든 부조리를 앞에 두고 보란 듯이 내 배에 칼을 찔러 넣는 거지. 뒈져버리는 거야."

 

 너무나도 달콤한 상상. 너무 달콤해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상상.

 

 하지만.

 

 "처음엔 책임을 지기 싫어서 견뎠어. 그 뒤엔 무서워서 견뎠고. 그리고 지금은... '해야 한다'고 믿기에 하고 있어."

 

 -이것은 내가 할일.

 

 그렇게 맹세했다.

 

 그렇기에 난 발버둥 친다. 마음속으론 언제나 질질 짜고 있는 주제에, 그래도 괜찮다고 힘껏 호기롭게 버텨본다.

 

 그녀들 앞에서만큼은 절대 꼴사납게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내 저열한 바닥의 바닥까지 다 드러내 보인 이후라 하더라도.

 

 "거기엔 선량함도 고결함도 없어. 있는 거라곤 꼴사나운 자존심뿐이지."

 

 난 말을 마치고 가볍게 웃어보였다. 유카에게 부담을 지우기 위해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새삼스럽긴 하지만, 이렇게 웃어 보일 수 있게 된 나를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꿈도 희망도 없는 내게 남길 것 한 가지가 더 생겼어. 대단하잖아? 즐거울 만 하잖아? 내가 이유가 되어 삼아 만들어진 세계라니. 하나만으로도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이걸로 두 개 째야. 그러니 기쁠 밖에."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두 개째라... 원래 있던 하나는 뭔가요?"

 

 음. 이걸 이야기해야 하나? 좀 쑥스러운데.

 

 "세상 모두가 날 잊어도 누님과 유카 너만은 날 기억 해줄 거라는 사실."

 

 "......"

 

 "잊지 않을 거지?"

 

 

 난 그날 유카의 말문이 막히는 걸 처음 보았다.

 

 ------------------

 난 멀리서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전부터 궁금했던 것 하나를 그녀에게 물었다.

 

 "유카."

 

 "네?"

 

 "이 우주라는 곳엔 말이야..."

 

 "네."

 

 "세계라는 게 대체 몇 개나 존재하는 거야?"

 

 유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 그 질문. 언제 나오나 했어요. 근데, 미안해요. 그건 정말 어렵고 힘들면서도 까다롭고 복잡하며 곤란한 질문이에요. 심지어 저조차도 무시하기 부담스러울 만큼. 그래서 천족(1~6위계의 고위천사)이외의 존재에게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는 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어요."

 

 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저래 봬도 유카는 내게 뭔가를 알려주는 걸 제법 즐기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런 그럴법한 화제를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는 건, 뭐. 그런 거겠지.

 

 "다만, 어렵고 힘들면서도 까다롭고 복잡하며 곤란한 이유 중 '어려운'이라는 항목에 관해서라면 조금은 설명이 가능하겠네요."

 

 "응?"

 

 "기본적으로 세계라는 건 '라이프 스트림과 태초의 말로 창조된, 영혼을 가진 지성체가 살아가는 일정 범위의 계', 즉 치천계와 지천계만을 이야기해요. 기밀지정이 되어있어 말은 못하지만 지천인 제게 있어 그 숫자는, 얼마라고 명확히 단정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다만 이 세계의 개념을 '라이프스트림으로 창조된 지성체가 살아가는 일정 범위의 계'로 바꾸면... 그 숫자는 제게 있어서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게 돼요. 모르니까요."

 

 -라이프스트림과 태초의 말로 창조된, 영혼을 가진 지성체가 살아가는 일정 범위의 계

 

 -라이프스트림으로 창조된, 지성체가 살아가는 일정 범위의 계

 

 흠, 태초의 말과 영혼'이란 부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가?

 

 난 가볍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건 마치 누가 짝퉁세계를 불법으로 막 찍어내고 있다는 뉘앙스로 들리는데. 이 동네(?)에도 모방은 예술이니 어쩌니 하면서 짝퉁을 양산하는 그런 무대뽀 집단이 있는 거야?"

 

 "오... 감이 좋은데요? 의외로 정곡을 찌르는 대답이에요."

 

 "응?"

 

 농담이었는데 칭찬받아버렸다.

 

 "이 우주엔 실제로 그렇게 짝퉁세계... 오호라, 이거 의외로 입에 짝 달라붙네... 여튼 그런 가짜세계를 열심히 찍어내는 집단이 실제로 존재한단 말이죠. 바로 '악신계'라는 동네죠."

 

 "악신계라... 그... 심심하면 지천계나 치천계를 집적거려서 구원신인 누님을 피곤하게 만든다던 그 악신? 그치들이 모여 사는 곳?"

 

 유카가 수긍한다.

 

 "맞아요. 정확히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 우주와 똑같은 크기를 갖고 똑같은 라이프 스트림의 총량을 가진 이면 우주, 그게 바로 악신계에요. 이 우주와는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엇갈린 우주(alternate universe)죠. 서로 관여하기 위해 야곱의 사닥다리가 필요한 여타 멀티버스와는 달리 방법에 따라선 매개 없이도 간섭이 가능한 동네라서 여러모로 골치에요."

 

 누님검정1급에 이어 유카검정1급까지 획득한 나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희미한 분노. 난 대답을 잘 골라야 할 타이밍임을 깨달았다.

 

 "누님을 성가시게 하다니, 나쁜 놈들이 맞네."

 

 유카가 누님 팬클럽 빠순이 답게 음음 하는 감탄사를 넣으며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정말 나쁜 놈들이죠.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그 한놈, 한놈이 대충..."

 

 "대충...?"

 

 "음식물 쓰레기 같은 새끼돼지가 쥐락펴락하는 막장 양아치 국가랑 테러하다 죽으면 천국 가서 여자들이랑 으쌰으쌰할 수 있다는 헛소리를 입으로 배설하는 개xx 집단을 합친 걸 세배로 뻥튀기 한 정도?"

 

 지극히 알기 쉬운 예시다. 근데...

 

 "세배밖에 안 돼? 명색이 악신인데?"

 

 유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하.. 물론 우주는 넓고 악한 존재는 끔찍하게 많죠. 종족불문하고 개중에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도 존재하고요. 하지만 그건 하나하나의 개체를 따졌을 때 그렇다는 거에요. 머릿수가 아닌 그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구의 비율로 따졌을 때, 저토록 규모 있게 쓰레기 짓 하는 집단은 범우주적으로 봐도 많지 않아요. 열 세계를 뒤지면 한둘 정도 나오려나? 인간만 잔뜩 들어찬 탓에 나쁜 쪽으로만 한없이 전력질주하는 지구 같은 곳이 아니면 정말 잘 안 나오는 퀄리티죠."

 

 음. 세배라는 현실감 있는 숫자가 나온 탓에 언뜻 혼란스럽긴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 북한 더하기 '그' IS의 세배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정말 끔찍하게 나쁜 놈들이 맞다.

 

 "그런 나쁜 놈들이 짝퉁세계를 양산하는 이유는? 뭔가 그 악신들에게 메리트가 있는 거야?"

 

 "으음, 그걸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괜찮나요?"

 

 타이머로 확인한 시간엔 아직 살짝 여유가 있다. 난 발을 착착 맞춰 움직이는 우주 꼬부기에게로 눈길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중에 네가 없어 우주 미아로 방치된다던지, 자유낙하로 귀성하게 된다든지 하는 사태만 벌어지지 않는다면야."

 

 내 농담 섞인 대답에 유카는 배싯하는 웃음을 베어 문다. 뭐냐. 그 불길한 웃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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