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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여기는 우주(2)
작성일 : 19-10-30 16:50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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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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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열심히 도망 다니는 건 불가능해? 저번에도 한참동안 잘 도망 다녔다며."

 

 "음. 그건 언니가 직접 나서지 않아서 그랬던 거죠. 언니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삼일도 못 버텨요."

 

 "그럼 이 별에 숨었던 것처럼 어디 다른 별로 튀어서 짱박혀 있는 건?"

 

 "이별에서 70년이나 버틴 건 제가 잘 숨어서가 아니라 언니가 당신의 다음 백년까지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 틈을 파고 든 거죠."

 

 "흠..."

 

 내가 위로할 말을 찾고 있자니 그녀가 으으...하는 신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몰라! 뭐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요. 좀 많이 패다가 말겠죠. 그리고..."

 

 그리곤 자신의 비키니 아머를 쓰윽 한번 살피곤 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서 더 벗기기야 하겠어요?"

 

 난 이 무거운 공기를 벗어날 기회다 싶어 얼른 맞장구쳤다.

 

 "맞아. 거기다 아직 1년이나 남았잖아? 미리 하는 걱정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단 말도 있으니 말이야."

 

 "냐하하하핫. 맞아요.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라. 오늘 일은 오늘로 족하다.'는 말도 있죠. 여튼 당신 말대로 1년 더 놀고 닥치면 걱정할래요. 아직 못 돌아본 곳도 잔뜩 남았으니까요."

 

 ------------------

 난 화제도 전환할 겸, 이전부터 알고 싶던 의문도 풀 겸 해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부터 궁금하던 건데 말이야. 너 이 별에 오고 나서 줄곧 여기만 있었지? 이 심심한 별에 70년이나 놀 거리가 있어? 물론 신비한 곳이긴 하지만 유카 너라면 이정도 크기의 별은 눈 깜짝 할 새에 휭~하고 돌 수 있지 않아?"

 

 유카가 묘하단 표정을 짓는다.

 

 "저야 말로 궁금해서 질문하는 건데요, 왜 전부터 여길 별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응? 으응? 별이잖아. 별, 그러니까 행성이나 항성 같은 거."

 

 "왜 그렇게 생각한 건데요?"

 

 "하지만, 봐. 지평선도 있고, 바람도 불고. 광원의 위치나 밝기가 변하지 않는 건 굉장히 수상쩍지만 뭐... 장소가 장소인 만큼 엉터리 같은 거 한두 개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어서..."

 

 난 좀 당황하며 내 생각이라든지 이전에 내가 했던 실험 같은 걸 손짓발짓 섞어가며 설명했다.

 

 "...란 건데. 뭔가 틀려?"

 

 유카가 재밌다는 듯 빙글거렸다.

 

 "아하. 지평선. 그래서 별이라고. 음음. 과연. 오해를 살 수도 있을지도."

 

 "아냐?!"

 

 유카는 흘러가는 타이머의 시간을 슬쩍 확인하더니 손뼉을 짝 쳤다.

 

 "이건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 직접 보는 게 빠르겠네요. 마침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으니 나머지 시간은 당신의 오해를 푸는데 할애해볼까요?"

 

 "직접 본다고? 어떻게?"

 

 "냐핫! 물론 날아서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카의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은빛 광채의 폭풍. 그것들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하며 이윽고 세 쌍의 거대한 날개로 그 모습을 바꿨다.

 

 "어... 어? 날개? 날개인 거야?"

 

 "날개죠."

 

 우, 우와... 멋지다. 천사하면 쉽게 떠오르는 하얗고 포근한 날개가 아니라 굉장히 세련되고 날카로운 미래형 디자인이이다. 근데 자세히 보려 하면 할수록 어째선지 제대로 관찰하기가 어렵다. 뭐랄까, 너무 거룩해서 감히 못 쳐다보겠다는 느낌?

 

 어, 그러고 보니,

 

 "야, 잠깐만. 예전에 날개는 함부로 보이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방출되는 영압 때문에 보면 죽는다고... 헉. 혹시 나 뭐 죄 지은 거라도 있어?"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에요. 지금은 안 되니 나중에 제가 보여주겠다고 그때 약속했잖아요."

 

 "응? 그랬나? 그때 쪽이라든지 츄라든지 하여간 임팩트가 엄청난 사건이 있어서 그 뒤의 기억은 가물가물 한 게... 아! 기억났다. 24년만 더 기다려보랬지? 그땐 뭔 소린가 했는데... 헐, 그러고 보니 오늘이 24년 되는 날인가?"

 

 "맞아요. 그래서 약속도 지킬 겸, 위에도 올라가 볼 겸. 뭐 겸사겸사."

 

 "근데 그때는 안 되고 오늘은 왜 괜찮은 거야?"

 

 "당시엔 당신의 영격이 아직 역천(Vitues 5위계)급에 머물러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날로부터 24년이 흐른 지금, 당신의 영격은 벽을 넘어 주천(Dominions)급에 달해 있고요. 영압이란 게 무슨 에너지 같은 게 아니라 가진바 신비의 깊이차가 드러나는 거라서, 일단 영격만이라도 주천급 정도가 되면 제가 날개를 전개해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거든요."

 

 "아, 그럼 이건 전부 펼친 게 아닌 거구나."

 

 "여덟 쌍을 전부 전개하면 현재의 당신으론 힘들 테니까요. 그래서 당신이 딱 견딜만한 수준으로만 펼친 거죠. 그러니 일단 그, 식은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무릎 꿇고 절하는 시늉은 그만 둬 주시겠어요?"

 

 "헉, 내가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지!? 이게 바로 영압이란 거구나! 무섭네!"

 

 ------------------

 영압에 잠시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 후, 난 본격적으로 그녀의 날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 그전에.

 

 "어... 그러니까, 진짜 구경해도 되는 거지?"

 

 유카는 내 반응이 적잖이 기쁜 듯 양팔을 위로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냐하핫. 얼마든지요."

 

 그녀의 은빛 날개는 그녀의 등에서 돋아난 게 아니라 등에서 한 20cm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시작해 사방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각각의 길이는 대략 5~7m 가량. 그 모양은 중후하고도 날카로운 검의 형태를 닮아 있었으며, 각각이 45도 90도, 그리고 150도가량의 각을 가진 채 입체적으로 대칭을 이룬다.

 

 "와... 멋져. 내안에서 오래 전에 죽은 중2의 마음이 부활할 것 같아... 죽인다..."

 

 그리고 은은한 은빛으로 섬세히 빛나는 날개의 표면엔 이해할 수는 없는, 하지만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을 법한 아름답고 정밀한 황금빛 문양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날개와 날개 사이를 오가며 흩날리는 은빛 영기의 폭풍.

 

 "오... 오아...."

 

 크기에 비해 두께는 거의 없다시피 한 탓에, 마치 허공에 새겨진 홀로그램 같은 그 날개에 얼마나 넋을 잃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 팡! 하고 공기 터트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날개가 힘차게 움직였다. 한창 감상에 빠져있던 난 움찔하면 한걸음 물러섰다.

 

 "날개 감상은 여기까지. 나중에 당신이 좀 더 성장하면 아예 여덟 쌍 전부를 구경시켜 드릴게요. 자, 이제 출발할까요?"

 

 "어, 넋 놓고 구경하는 사이에 시간이 벌써... 응. 서두르자."

 

 후아. 진짜 멋졌다. 평소 날개가 보이지 않을 땐 어딘가 펄럭하고 홰치는 느낌이나 공기가 화악하고 밀려나는 느낌이 들어서(그게 아무리 특수효과라곤 해도) 영락없이 그림에 그린 듯한 천사날개를 연상했는데 저런 중2의 마음을 자극하는 멋진 모양일 줄이야. 촉감도 느껴보고 싶었는데 좀 아쉽다. 손이 막혔는데 어떻게 촉감을 느끼냐고? 그거야 쉽지. 얼굴로 부비부비하면 된다.

 

 "자, 그럼 위로위로 높~이 출발합니다~! 양동이 꽉 붙들고 있어주세요~!"

 

 콰앙!!!

 

 나와 가슴(!)을 맞댄 채 내 허리를 양손으로 껴안은 그녀가 여섯 장의 날개를 힘차게 떨치자 폭음과 함께 새하얀 지면이 순식간에 시야로부터 멀어져갔다.

 

 "으어어어어!! 난다! 날아!!"

 

 ------------------

 "3G 갑니다~"

 

 "으아악! 그만해!"

 

 "4G 돌파!"

 

 "유, 유칵! 그, 그만!"

 

 이 아가씨가 지금 제정신인가! 아무런 완충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20kg 물양동이를 든 내게 4G라고?!

 

 "냐하핫, 좀 참아보세요. 대기권 탈출놀이 같은 거 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구요?"

 

 야! 지천사는 수학 안 배우냐! 지금 이 늙은 몸에 어느 정도의 부하가 걸리는지 모르는 거냐! 물양동이만 80kg이라고! 이거 놓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냐! 칵! 노인학대로 신고해 버릴 테다!

 

 중력에 눌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목구멍에서만 맴도는 내 분노를 읽었음인가. 유카의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걸렸다.

 

 "이런, 너무 과격했나 보네요. 음, 어쩔 수 없네."

 

 아, 다행이다. 그래. 이 아가씨에게도 생각이란 게 있겠지. 대기권 탈출놀이 한답시고 인류를 멸망시키는 그런 개념찬 행동을...

 

 "자, 쿠션 들어갑니다~ 냐하하하핫!!!"

 

 엥? 등속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쿠션? 웬 쿠션?!

 

 갑자기 몸이 주륵 하고 아래로 미끄러진다. 유카가 내 허리를 안고 있던 팔에서 힘을 살짝 뺀 것이다. 덕분에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던 내 머리가 스륵 하고 아래로, 아래로...

 

 턱.

 

 미끄러지던 머리가 뭔가에 걸렸다. 그리곤 이내 폭신한 감촉을 느끼며 파묻힌다.

 

 물컹~

 

 물컹? 서,설마 이거슨! 가,가,가ㅅ...

 

 "자, 어때요? 당신만을 위해 준비한 가슴쿠션! 우수한 탄력과 아름다운 디자인, 뛰어난 내구성으로 탑승자를 완벽히 보호한답니다~!"

 

 그럴 리가 있냐! 웃기지 마라! 쿠션이고 뭐고 당장 가속 안 줄이면 나 죽는다고!

 

 "븝! 우븝!!"

 

  ...근데 이게 웃기는 게 머리만큼은 확실히 지지를 해 줘서 폭신하고, 몽클한 게! 아! 지금 4G니까 네 배의 힘으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건가? 그 말인 즉슨 난 이 훌륭한 가슴을 네 배로 만끽하고 있다는 말?! 앗! 이 가슴을 즐기는 방식은 틀림없이 지구 인류 최초! 세상에 누가 4G의 가속도로 얼굴을 가슴에 묻어봤겠어! 근데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몰라. 머리에 피가 모자라서... 시야가 회색빛으로 변하는 게... 야, 양동이... 손에 힘이... 그런가, 이 순간이 바로 인류가 멸망하는 순간인가...

 

 미안. 인류. 미안. 지구.

 

 가슴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해서...

 

 그때, 위에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러왔다.

 

 "자~ 도착했어요~."

 

 날아오르는 것 같은 부유감, 뒤이어 갑자기 확 가벼워진 몸을 느끼며 난 막혔던 숨을 거칠게 토했다.

 

 "커헉... 허억, 허억, 악마, 허헉... "

 

 "냐하하핫! 악마도 좋고 숨 쉬는 것도 좋은데, 일단 머리 위치를 바꾸는 게 어때요? 난 괜찮지만, 나중에 이불킥을 하게 될 지도 몰라요?"

 

 머리위치? 그러고 보니 난 여전히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나 깊이 파묻었냐 하면, 그녀의 비키니아머 가슴파츠의 프런트 훅에 턱이 걸려있을 있을 정도. 그리고 난 그 와중에 거기에다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는 중이고.

 

 이 무슨 행복하고도 변태적인 그림인가!

 

 "흡!"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블랙아웃 덕에 잠시 잊었던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몽클몽클한 감각이 다시금 해일처럼 몰려온다.

 

 "으, 으아아앗!"

 

 난 블랙홀 뺨치는 흡입력을 가진 가슴으로부터 머리를 뽑아냈다. 그 충격으로 인해 파도처럼 출렁이는 가슴. 아, 젠장. 저 괘씸한 무브먼트좀 봐라. 이런 매혹적인 움직임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발론! 아발론!!! 아아... 나의 이상향이여....

 

 그, 그냥 힘이 빠진 척 다시 저기에 얼굴을 부비부비 해 볼까. 그래. 유카라면 모른 척 내가 만족할 때 까지 기다려 줄... 아냐! 정신 차려라! 나!! 방금 뭔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지구의 인류가! 무려 인류가 멸망할 뻔 했다고!!!

 

 난 피가 배어날 듯 입술을 깨물며 눈앞의 젖과 꿀이 흐르는 안주의 땅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간신히 이성이 되돌아온다. 난 기세를 몰아 있는 힘껏 고개를 쳐들며 유카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 지구의 명운이 달린 만큼 이번만큼은 진짜 따끔하게 경고를 하지 않으면!!!

 

 유카가 내 결연한 표정을 보며 살짝 찔끔한 표정을 짓는다. 조금 찔리긴 하나보다. 그럼,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아무리 그녀의 가슴이 훌륭해도 지구 인류의 무게에 가져다 댈 수는 없다!!!

 

 “유카 너, 너, 너!!!”

 

 그래. 두 번 다시 이런 장난 따윈 못 치게 해야 해. 그래! 그렇고말고! 여기선 정말 단호하게!!!

 

 “고맙다!!!!!!!!!!!!!!!!!!!!!!”

 

 “......”

 

 

 어머나?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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