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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누님은 의외로 대단하다(2)
작성일 : 19-10-30 16:49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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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튼, 라이프 스트림이야 이 우주를 이루는 리소스니 치천급들이 가져다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이 태초의 말이라는 운영체제에요. 이건 치천급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권한이 있기에 적법한 순서를 밟아 가져다 쓰는 거죠."

 

 "어디서?"

 

 "이전, 전지전능(Almighty)의 그분이 이 우주에 관여하실 당시 만들어 둔 보물창고에서. 그래서 치천이 세계를 창조할 땐 굉장히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해요. 운영 역시도 가이드라인을 어느 정도 따라야 하구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이런 맥락이죠."

 

 "흠."

 

 "그래서 치천의 창조는 반쪽인 거에요."

 

 그나저나 또 나오셨군. 전지전능(Almighty)의 그분. 확실히 누님의 입에서도 몇 번이나 언급된, 신을 창조한 신들의 신. 모든 것의 근원. 종말이나 창조에 관련된 룰 같은 것도 모두 그 존재에 의해 지정된 것이리라.

 

 "근데 그 종말의 조건이란 거,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 거야?"

 

 "네?"

 

 "아니, 그 종말이라는 거, 사실 당장 지구만 해도 별만 날아가면 그냥 다 죽잖아. 그 정돈 유카 너라도 쉽게 가능하다며? 그러니까 조건이고 나발이고 그냥 빵 하고 별을 날려버리면 어떻게 되냐는 거지."

 

 "누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저지른 일이었냐에 따라 제법 차이는 있지만 대개는 뭐..."

 

 유카가 피식하고 입가에 쓴 웃음을 떠올렸다.

 

 "큰일이 나요."

 

 "큰일? 어떤 큰일?"

 

 내 끈덕진 질문에 유카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며 무겁고 음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알아요? 이 우주엔 진짜 지옥이란 게 존재해요.

 

 

 ...흠. 더는 묻지 말자. 세상엔 몰라도 되는 게 있는 법이니까.

 

 ------------------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리 되었죠?"

 

 "누님이 다른 세계와는 달리 왜 2만년이나 지구라는 세계를 돌보고 있냐는 이야기."

 

 "아, 그랬죠. 배경설명을 한답시고 좀 빙 돌았군요."

 

 "아냐. 재밌었어. 이런 스케일 큰 이야기를 또 어디서 들어보겠어."

 

 "하핫. 실수를 눈감아 줄줄 아는 친구는 좋아해요. 그럼 계속하죠. 일단 지구라는 세계는 이 우주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바로 빌려온 태초의 말이 아니라 '전지전능의 그분이 직접 태초의 말을 발하심으로서 만들어진 세계'라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세계, 정확히는 다른 치천계와 뭔가 차별점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소소한 의미를 부여하는 정도죠. 다만, 그 의미라는 게 전능한 그분이 다시 오시길 소원하는 상당수의 치천들에게 있어선 큰 무게를 지녀요."

 

 난 유카의 말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누님이다? 그래서 이만 년 가까이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고 관리를 하셨다는 말이야?"

 

 "네. 그래요."

 

 그녀는 잠시 멀리 보이는 새하얀 수평선으로 눈을 돌렸다.

 

 "인간인 당신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인간이란 지성체는 이 우주에서 사실 그다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해요. 고등 지성체 카테고리 안에서도 가장 비이성적이고, 가장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가장 빨리 타락하는 지성체니까요. 그래서 전지전능한 그분께서 왜 손수 만드신 세계를 인류만으로 채우셨는지에 대해선 당시에도 큰 의문이었죠."

 

 "으음..."

 

 "심지어 일부에선 인류를 '살신족'이라 불러요. 잠시라도 눈을 떼면 앗 하는 순간에 타락해 온갖 잘못을 다 저지르곤 저 혼자 망해버리거나 종말조건을 만족시켜버리는 터라, 창조신이 과로사 할 정도로 손을 많이 탄다는 의미죠. 그래서 순수 인류만으로 구성된 세계의 수명은 놀라울 정도로 짧아요. 그걸 언니는 혼자서 이만 년 간, 인류가 다섯 번이나 문명을 꽃피우고 질 때까지 버티신 거에요."

 

 그렇구나... 여러모로 고생이셨군. 내가 인류대표로 두들겨 맞은 건 많이 억울하지만... 아니, 잠깐. 다섯 번?

 

 "잠깐, 다섯 번이라고?"

 

 "네. 다섯 번."

 

 "최초가 아니라!?"

 

 그녀가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양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인간이 원숭이랑 같이 우가우가 하면서 수백만 년을 살다가 지금의 인류가 되었습니다, 라는 개그를 진지하게 믿고 계신 건가요? 아니죠? 세상에 어느 변태신이 그런 걸 좋다고 수백만 년 동안 지켜보고 있어요? 지성과 문명을 어느 정도 갖추지 못한 지성체는 신에게도 별 의미를 갖지 못해요."

 

 으... 저거 나 무식하다고 돌려 말한 거 맞지?

 

 "나, 난 지구에서 10년이 넘도록 그렇게 배웠단 말야..."

 

 "냐하핫. 그것도 그렇네요. 다음세대 문명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이전 문명의 기록과 흔적은 매번 깨끗이 지웠으니까요. 여하튼 현재의 과학문명을 제외하고도 이만 년 간 네 번의 문명이 더 있었어요. 방향성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리고 그중 세 번은 지금보다 더 발전된 문명을 구가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다 망했죠."

 

 "왜 망했는데?"

 

 "지들끼리 치고받다 죽거나, 자신들의 손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문제를 일으켜 망했죠. 그리고 새로 부흥한 지금의 다섯 번째도 절찬 망트리를 타는 중이고요. 언니도 네 번은 어찌 버텼는데 다섯 번짼... 역시 진절머리가 났나 봐요."

 

 "......"

 

 "그래서 언니의 아래의 천사들에게 있어 지구라는 세계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려요. 그중 싫어하는 쪽은 언니와 자신들이 지구 때문에 고생한 걸 떠올리면서 진저리를 치죠.“

 

 "...좋아하는 쪽은 뭐야? 그 정도로 막장이라면 좋아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유카가 씁쓸히 웃음을 지었다.

 

 "...함께한 시간이 길었으니까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만큼 같이 지내면 애착도 생기기 마련이에요. 미운 정도 정이니까요."

 

 "흠."

 

 난 일단 살짝 무거워진 공기를 의식하며 가볍게 물었다.

 

 "그럼 인간은 처음부터 결격품 같은 존재인 거야? 도덕적 결함을 타고났다는 이야기?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그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결함 같은 게 아니에요. 종특이죠. 음, 퀴즈 하나를 낼게요. 인간에겐 타지성체와 구분되는, 눈에 확 띄는 특징이 하나 있어요. 뭘 것 같아요?"

 

 ...다른 지성체와 차별되는 특징? 애초에 다른 지성체를 보고 겪은 일이 없는데 내가 그걸 어케 안담.

 

 "모르겠는데."

 

 그녀가 검지를 에잇! 하는 느낌으로 세우며 대답했다.

 

 "바로 수명이 짧다는 점이에요. 보통은 50년에서 100년. 문명이 지극히 발달한 곳도 250년 정도가 한계죠.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게 빨라요. 학습도, 성장도, 발전도, 망각도. 그리고 타락과 변화도. 그들은 그 짧디 짧은 생을 불타오르듯 살아가죠."

 

 언젠가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인간에게 70년은 너무 길어요.

 

 "...그런 거군."

 

 "냐하핫! 실컷 고생한 언니 앞에선 이런 이야기 절대 못하지만 말이에요~."

 

 ------------------

 "으음... 유감천만스럽게도, 이제 가야할 것 같아요."

 

 "...벌써?"

 

 "네."

 

 유카의 얼굴에 떠오른 미안함과 곤란함이 섞인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난 매달리고픈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젠장. 뭐가 이리 빨라. 서너 시간 정도밖엔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스물다섯시간이나 지나다니..."

 

 "냐하핫. 저도 그래요."

 

 "으으... 벌써 열다섯 번째인데 매번 적응이 안 되네... 이것 참, 나이만 따지면 나도 거의 백 살인데, 이것도 주책이지."

 

 유카는 검지를 내 코끝에 척 들이밀었다.

 "그런 자조적인 발언은 좋지 않아요. 나이가 어때서요? 제 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도 살지 않았으면서 말이죠. 당신, 그날 이후로 하나도 늙지 않았어요."

 "어라, 잠깐. 방금 '반'이 몇 번 지나갔지? 늘 궁금해 하던 유카 네 비밀 중 하나를 방금 엿본 것 같은데? 어디보자. 하나 둘 셋..."

 

 유카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이런, 여성의 나이같은 매우매우 델리케이트한 부분을 건드리면 곤란해요. 그런 당신에게 딱밤이란 이름의 천벌을 드리겠어요~."

 

 따악!!!

 

 빠각!

 

 "뜨어!!! 이마에서 이상한 효과음이!!!"

 

 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물양동이를 찰랑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괴이한 리액션인건 아는데, 손이 묶인 데다 함부로 뒹굴지도 못하니 아픔을 삭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한 30미터 뛰다 멈춰 약 먹은 병아리마냥 부들대고 있자 어느새 다가온 그녀가 어깨를 툭 쳤다.

 

 "냐하하하핫! 거 보세요. 그 무거운 걸 들고 그만큼이나 뛸 수 있으면서 뭔 나이타령이에요. 당신 생각보다 당신은 훨씬 젊어요. 미중년이라니까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피식 웃음이 샜다.

 "에구, 됐거든. 이런 동네서 미중년이니 미노년이니가 무슨 의미야. 그저 시간이나 잘 죽이면 그게 최고지. 어디보자. 올해가 75년째지? 지금부터 해서 여덟 번만 더 만나면 드디어 누님이 강림하시겠네."

 

 유카가 내 넋두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25년 후면 100년인가요. 그렇네요. 찰나를 살아가는 당신에겐 정말 긴 시간이었겠네요."

 

 그녀는 등 뒤에서 양팔을 들어 내 목을 감았다. 푸르고 청량한 향기. 등에서 느껴지는 따스하고 폭신한 감촉에 저도 모르게 정신이 아찔해진다.

 

 "잘 버텼어요. 장해요. 칭찬해줄게요."

 

 그녀는 떠나기 전 항상 이 말을 내게 해주곤 했다. 그리고 이 진심이 담긴 말은 내가 긴 시간을 버티는데 늘 큰 힘이 되어주었다.

 

 "...고마워."

 

 "별 말씀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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