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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만남. 이별. 만남.
작성일 : 19-10-30 16:47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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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확인해야 했다.

 

 "...떠나는 거야?"

 

 그녀의 얼굴에 보기 드문 표정이 떠올랐다.

 

 당혹. 실수에 대한 자책. 미안함

 

 "이런, 최대한 나중에 말하려 했는데... 네. 그래요."

 

 그리고 단호히 돌아온 긍정의 대답.

 

 "...어째서? 계속 동행해 주는 것 아니었어?"

 

 "후... 동행할 거에요. 다만 이제까지처럼 줄곧 같이 있진 못해요. 위에서 제 행동에 제동을 걸었거든요."

 

 "...그럼? 얼마나 같이 있을 수 있는데?"

 

 "3년에..."

 

 "3년에?"

 

 "하루정도."

 

 "...하루. 하루? 24시간 할 때 그 하루!?"

 

 "맞아요."

 

 "!!!!!!"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머리가 엉클어진다. 가슴 속에서 폭풍이 휘몰아친다.

 

 난 숨을 삼켰다. 그리고 삼킨 것을 말과 함께 토했다.

 

 "유카리스티아..."

 

 음울하게 잠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100년이란 시간과 맞서기 위해 내가 얼마나 처절하게 준비했는지 알아? 책임감으로 터를 닦고 이성으로 기둥을 세우고 인내로 벽을 쌓았어. 100년을 버틸 수 있는 성이었지."

 

 "......"

 

 "하지만 네가 나타나는 순간 그 성은 무너졌어. 난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지. 이미 용도를 다했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계속 같이 있어주지 못한다고? 삼년에 하루? 장난해!? 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 왜!! 그럴 거면 처음부터 성을 무너트리지 말았어야지!! 계속 강건한 성에서 저항하고 농성토록 놔뒀어야지!! 이제 와서 다시 혼자가 되라고!?”

 

 “......”

 

 “위에서!? 위에서 제동을 걸었다고? ...넌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거 아니었어? 그야말로 자유분방의 상징 같은 존재가 바로 너잖아? 지금 그런 차림으로 여기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잖아? 그냥 무시해 버리면 안 되는 거야!?”

 

 유카가 쓴 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그럴 수 있어요. 이까짓 비키니아머 한 200년 더 입고 풀 한 300년 더 뽑으면 그만이죠. 하지만, 안돼요.”

 

 그녀의 표정에 갈등이 어렸다. 뭔가를 말하려다 그치기를 대여섯 번, 그러다 결국 그녀가 다시 입을 뗐다.

 

 "일단... 이 지시를 내린 건 언니에요."

 

 "...누님이?"

 

 "네."

 

 누님. 누님이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윗선에서 제동을 걸었다 했다. 그리고 지천인 그녀의 윗선이라곤 치천인 누님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유카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이틀 전에 언니로부터 공문이 내려왔어요. 공문이라곤 해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형태는 아닐 테지만요. 여튼 그 내용을 통틀어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거였어요."

 

 -이 이상 동행을 계속하면 문제가 된다. 수험자와 거리를 둬라.

 

 "......"

 

 난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조용히 분노했다.

 이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그런 만큼 공정히 치러 져야 함도 잘 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시험이 쉬워 질까봐서? 혼자서 질질 짜고 있어야 할 놈이 말동무 하나 만나서 해실거리고 있으면 제대로 된 시험이 되질 않으니까? 누님답지 않아! 그럴 거면 애초에 유카 너와의 만남을, 유대 그 자체를 막으셨어야지! 왜 지금!? 이건 아니잖아!!!"

 

 내 외침에 유카가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시험의 난이도가 낮아질 걸 신경 쓰신 게 아니에요."

 

 “그럼 뭐야!”

 

 "당신이 당신으로 있지 못하고 망가질 까봐 걱정하신 거죠.”

 

 "...뭐?"

 

 “내가 지시를 곱게 따르려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가 당신과 계속 동행하는 행위가 당신을 망칠 거라고 경고하셨단 의미에요. 저도 공문을 보고서야 제 실수를 알아차렸어요. 언니 뜻대로 그냥 가이드정도만 하면서 거리감을 조절했어야 했는데... 전적으로 제 잘못이에요."

 

 난 억눌린 신음성을 냈다.

 

 "납득할 수 없어..."

 

 유카는 망연자실하게 선채 '납득할 수 없어'를 반복하는 나를 살며시 껴안았다.

 

 "인간에게 70년은... 너무 길어요."

 

 “......아.”

 

 젠장.

 

 그런 건가.

 

 그 한마디만으로도 난 그녀가 할 말의 절반이상을 깨달아버렸다.

 

 "미안해요. 당신이 너무 가깝게 느껴지는 바람에 그걸 그만 잊고 있었어요."

 

 "......"

 

 "제가 곁에서 떨어진단 말에 이토록 분노해 주는 건 친구인 제게 있어 무척 기쁜 일이에요. 하지만 이건 동시에 무서운 일이기도 해요. 당신이 말했지요? 내가 당신이 쌓은 성을 무너트렸다고. 맞아요. 내가 당신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은 그 굴강한 성을 무너트리고 당신에게 이만큼이나 소중한 존재가 되는데 필요했던 시간은 고작 한 달반에 불과했어요."

 

 "......"

 

 "주변에 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계속 이어나가게 되면, 그리 오래지 않아 내가 당신의 전부가 되어버리게 돼요. 그리고 그건 집착과 의존이 될테죠."

 

 "......"

 

 "그때가 되어서 뒤늦게 당신을 떠난다 해도 그건 결국 당신이 일그러진 뒤가 될 거에요. 최악의 경우, 나와 같이 있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세계조차 내팽개치게 될지도 몰라요."

 

 "......"

 

 "...결국 나와의 동행은 앞으로도 홀로 길고 긴 시간을 버텨야 하는 당신에게 있어, 당신의 의지와 정체성을 좀먹는 치명적인 저주일 수밖에 없어요."

 

 -난 당신을 너무 변화시켜요.

 

 ...그녀의 말이 옳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뿐,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꼭 그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어..."

 

 안다. 이건 그저 칭얼거림에 불과하단 것을. 그럼에도 칭얼거리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가 씁쓸히 웃으며 손가락을 내 입에 가져다댔다.

 

 "이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에요.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흥미를 갖고 실증내고 배우고 이해하고... 짧은 생을 살기에, 그 모든 것이 어떤 지성체보다 빠른 인간이기에 그런 거에요."

 

 떨어트린 시선의 저편에 문득 새빨간 것이 점점이 묻어난다. 피였다. 난 그때서야 질끈 깨문 아랫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턱 선을 따라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아아아악!!!"

 

 난 가슴속에 있는 것을 하늘을 향해 절규하듯 토해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자아아앙!"

 

 "......"

 

 "압니다! 누님! 쉽게 갈 수 없다는 걸! 유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누님이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눈치 챘어야만 한다는 걸! 이건 내가 짊어질 나의 문제였으니까요! 얼마나 한심하고 꼴 사나웠을까요! 그토록 큰소리 탕탕 쳐놓고 결국 이 꼴이라니!!! 하지만 어쩝니까! 난 인간이라구요!!! 쥐뿔도 없는 주제에 툭 치면 꽥 하고 죽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

 

 "네 좋습니다! 좋아요!!! 까짓 70년!? 금방 지나가길 바라셔야 할 겁니다! 아니면 제 쪽팔려서 죽을 것 같은 혼자놀기에 끊임없이 출연하셔야 할 테니까요!!!"

 

 아, 시바. 속이 좀 풀린다. 임금님 귀 당나귀 귀도 해 보고 볼일이다.

 

 난 조금 남은 앙금의 찌꺼기를 한데 모아 마지막으로 힘껏 외쳤다.

 

 "나중에 찌찌 조물조물 해 줄테다! 이 망할 새디스트야!!!"

 

 그 순간이었다.

 

 쿠콰쾅!!!

 

 귀가 떨어질 듯한 폭음과 함께 온 하늘을 수천수만의 보랏빛 번개가 가로지른 것은.

 

 "...뜨헉."

 

 옆에서 방금 일어난 일을 지켜본 유카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러니까... 번역하자면 저건,"

 

 -까불지마라, 뒈진다?

 

 "...정도가 될 것 같네요."

 

 “...망할.”

 

 "후후..."

 

 "하하하..."

 

 나와 유카는 누가(?)들을 새라 숨죽여 어색한 웃음을 교환한 뒤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해했다. 준비가 되었음을.

 

 "가급적 많이 찾아올게요. 제가 생각해도 삼년에 하루는 너무 쪼잔해요. 아무리 언니라도 하루이틀정도 더 머무르는 정도를 가지고 크게 뭐라 하진 않을 거에요. ...아마도?"

 

 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냥 누님이 정하신 대로 3년에 하루면 돼."

 

 아프다. 괴롭다. 30년의 공백을 40여일 만에 메워준 인연이 이젠 가슴을 잡아 찢는다.

 

 그래도 참는다.

 

 힘껏 웃어본다.

 

 강해지자. 성을 다시 쌓자. 언제나처럼.

 

 책임감으로 터를 닦고 이성으로 기둥을 세우고 인내로 벽을 쌓고,

 

 그리고... 언젠가 있을 만남에 대한 기대로 가슴을 요동치게 하자.

 

 “좋아! 준비됐다! 이제 가도 돼! 대신 3년 있다 칼같이 찾아와줄 거지!?”

 

 내 대답에 유카가 이제껏 본 것 중 제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척 내밀었다.

 

 "냐하하하핫!!! 영혼이 반짝반짝해요!!! 반해버릴 것 같아요!!!"

 

 "핫핫핫! 순서를 기다려야 될 거야! 줄 선 사람 많거든!"

 

 “훗! 없는 거 알거든요!?”

 

 “그럴 땐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게 좋은 친구 아냐!?”

 

 우린 서로의 눈을 잠시 마주봤다. 뒤꿈치를 살짝 들어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는 그녀.

 

 "......"

 

 "......"

 

 "갈게요."

 

 "...응."

 

 

 그녀는 손을 들어 내 눈가를 가만히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울지마요."

 

 "...오해야."

 

 "다시 봐요. 내 소중한 친구."

 

 "그래. 다시 보자. 내 소중한 친구, 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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