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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차우의 마을 이야기
작가 : 치르비
작품등록일 : 2019.10.9

꿈능력자 차우에게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이상한 사건들.
믿을 수 있는 것은 친한 친구와 시간을 초월하여 정보를 알려주는 꿈들 뿐.
과연 그는 평범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6화
작성일 : 19-10-29 15:08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8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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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새벽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짙푸른 하늘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지만, 낡은 새벽의 자취는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미약한 추위가 방 안을 감돌았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고,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만이 유일한 시야가 되어줄 뿐이었다.

  방을 조용히 돌아다니다가 촛불을 켠 차우는 창문 쪽으로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창문이 멀쩡해졌음을 깨달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열린 채로 고정되어있던 창문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잘만 닫혀있었다. 차우는 급하게 옷을 갈아입은 뒤 창문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누군가가 뒷마당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차우의 눈이 반짝인 건 그때였다. 그는 조용히 방을 나와 부엌을 통해 뒷마당으로 나갔다. 작은 뒷마당은 어머니의 취향대로 말끔하게 치워진 상태였지만, 차우의 아버지는 뒷마당을 마음대로 누비며 아랑곳 하지 않고 잡동사니 몇 개를 한 곳에 쌓아두고 있었다.

 

  “아버지.”

 

  차우가 말했다. 아직 잔잔한 새벽을 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그는 천천히 아버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해 마흔 살이 된 차우의 아버지는 주름살이 살짝 박힌 얼굴을 슥 문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그래, 차우 왔구나. 벌써 깼니?”

  “어쩌다보니 그랬어요.”

 

  차우는 그리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하고 계셨어요?” “물건 태우려고 하는 중이란다.”

 

  차우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잡동사니 몇 개를 더 모아서 한 쪽에 아무렇게나 두더니, 그 즉시 물건들에 불을 붙였다. 차우의 집이 주택 지역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있어서 가능한 행위였다. 아버지는 주변을 조금 더 살펴보고는 불타오르는 물건들에서 몇 걸음 떨어져 앉았다. 차우도 아버지를 따라 그 옆에 앉았다.

 

  “이것들 빨리 없애라고 말한 게 한 달 전인 것 같은데, 너희 엄마는 치우지도 않았더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에서 약간의 짜증이 흘러나왔다. 그는 가볍게 마른세수를 하며 하늘을 올려다가 이윽고 차우를 쳐다봤다. 차우와 같은 푸른 눈동자가 새벽빛의 묽은 아름다움을 토해냈다.

 

  “그거야 어머니도 다른 일로 바쁘시니까요. 어쩔 수 없죠.”

  “그러긴 하다만은······. 그래, 너희들도 바쁘니?”

  “형은 요즘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바쁘데요. 매일 철야 작업을 하더라고요.”

  “그럼 차우, 너는?”

 

  차우는 잠시 말하기를 주저했다. 정체불명의 납치 사건을 조사하러 다닌다고 말하면 분명 잔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다.

 

  “그냥······. 모임 일 열심히 하고 있죠.”

  “그 자원 봉사 모임?”

 

  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로는 저번에 마을의 어르신들을 도왔다고 하던데.”

  “네. 저하고 사틴은 마리 할머니하고 제리 할아버지를 도왔어요.”

  “정말? 그 두 분은 좀 힘들었을 텐데?”

 

  진심으로 놀란 것처럼 눈을 둥그렇게 뜨는 아버지의 반응에 차우는 그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침묵은 긍정이라고 하니 아버지도 대충 자신의 뜻을 알아들었으리라. 그런 차우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버지는 그를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 두 분, 착하신 걸요.”

 

  한참동안 불타오르는 잡동사니들을 지켜보던 차우가 말했다.

 

  “아빠 앞에서까지 그렇게 빈말 할 필요는 없단다.”

  “······알았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가볍게 웃었다. 한 달 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그래, 두 분이 뭘 시키더냐.”

  “정원 손질하고 집안 청소요.”

  “의외로 평범하구나?”

 

  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정도면 다행이네. 두 분 다 하기 힘든 것들만 시키시니까.”

  “네. 사틴도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하지만 차우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틴은 더욱 하기 싫어했다는 걸. 두 분의 참모습을 알고 있었으니 의뢰를 바꿔달라고 애원한 것도 이해는 갔다. 새삼 그는 사틴이 자원 봉사 모임에 들어온 것도, 거기서 간부가 되어 활동한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놈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차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아빠한테 말하렴. 어떻게든 해결해줄 테니까.”

  “다들 착한데요, 뭘.”

 

  차우의 말에 아버지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비웃음의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차우는 그보다는 어이없음에 가까운 웃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좋아.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혹시 제가 뭔가 잘못한 건가요?”

  “너는 하나도 잘못한 거 없어. 누구든 자기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 거기서 정답을 어떻게 찾겠니? 네가 ‘이건 이래’라고 한다면, 그건 적어도 네 인생에서 올바른 거야. 물론 그 다음에는 네가 한 선택이 남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테지만.”

 

  그러면서 차우 아버지는 시끄럽게 타오르는 잡동사니들을 지켜봤다. 비록 지금은 쓸모없는 것들로서 불꽃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지만, 저것들에게도 분명 저것들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었을 터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삶이라고, 누군가는 길이라고, 누군가는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선택이야말로 삶이며 길이고 동시에 고통임을. 한 가지를 짊어지면 그 책임을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고행의 십자가와 같은 것이었다. 다시는 무를 수 없고,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

  선택에 있어서 신중해져야 하는 건 당연했다. 차우의 아버지도 그걸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고, 때문에 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1분 1초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의 믿음과 용기뿐이었다.

 

  “설령 잘못 선택했다 해도, 적어도 그걸 만회할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단다. 네가 네 잘못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만약 그런 용기를 발휘하게 된다면, 그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마렴.”

 

  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위험한 일은 되도록 하지 마려무나. 요즘 아빠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말이야.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아버지도 참. 제가 무슨 어린애에요? 저도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에요.”

 

  차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 혹시 납치 사건에 대해서 아시나요?”

 

  차우의 말에 그는 아들을 쳐다봤다. 긴장한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들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숨기는 것이 있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질문을 날려도 확실한 대답을 얻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직감 역시 느꼈다. 이제 자기 밥값을 할 나이가 된 아들은 도통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법이 없었다.

 

  “젊은 남성들만 데리고 간다는 납치 사건 말하는 거냐?”

 

  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는데, 왜 그러니?”

  “그게······. 혹시 모르니까 아버지도 조심하시라고요.”

 

  그러자 차우의 아버지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이 아버지는 걱정하지 마렴. 오히려 네 형이나 좀 간수 잘해라. 납치당한 애들이 죄다 네 형 또래라고 하던데.”

 

  차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그는 형이 납치될 것이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형은 납치당한 사람처럼 체격이 좋지도 않고, 인격적으로 성숙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말이다, 그 사건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구나.”

  “어느 부분에서요?”

 

  차우의 아버지는 얼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아직 면도를 하지 않은 턱을 슬슬 문지르며 눈앞에서 불타는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차우는 아버지가 지금 매우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한참동안 불길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첫 번째로, 왜 실종에서 납치로 바뀌었을까?”

  “그거야 당연히 목격자들이 하나같이 같은 증언을 내놓았으니까요.”

  “그래서 더 이상한 거야.”

 

  차우는 아버지의 말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모두 피해자가 누군가를 따라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증거였는데, 현장은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만큼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듣기로는 피해자들이 모두 누군가를 따라갔다고 했어요.”

 

  차우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나머지 자재들을 불길 속에 던져넣었다.

 

  “그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요? 듣기로는 1년 가까이 다 되어 가는데도 증거 하나 제대로 못 찾았다고 하던데.”

  “이 아버지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란다.”

 

  차우는 당황스러웠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차우의 아버지는 다시 차우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해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게 한 둘이 아니야.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실종사건이 납치사건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지. 뭐, 목격자들의 증언만으로도 사건의 종류가 바뀌는 거야 늘 있는 일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이 사건은 증언이 쏟아진 시기 자체가 너무 적절해.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타이밍이 좋단 소리야. 사건이 벌어진지 얼마 안 돼서 경찰이 실종으로 처리하려고 하자 갑자기 목격자들의 증언이 쏟아졌잖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니?”

  “그게······아직 잘 모르겠어요.”

 

  차우의 아버지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차우는 아버지를 쳐다봤다. 그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빛이 났다.

 

  “내 말은, 누군가가 이 사건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목격자들을 뒤에서 쥐고 흔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는 거야.”

 

 

 ****

 

 

  오후가 되자 차우는 상점가 사거리 쪽으로 향했다. 사틴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는 상점가 사거리를 쭉 둘러보다가, 여관 근처에 서있던 사틴을 발견했다. 그는 상당히 표정이 좋지 않아보였지만, 차우가 다가왔을 때 활짝 웃으며 반겼다.

  두 사람은 상점가 사거리에서 나와 주택가로 향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증거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에 대한 토론이 대화의 전부였다. 그러던 중 차우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틴의 얼굴이 찡그려진 건 그때였다.

 

  “글쎄. 아버지께서 좀 민감하신 거 아니야?”

 

  사틴은 당장 납득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로서는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들을 엮으려는 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실히 시기상 목격자가 나온 시점이 너무 절묘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머릿속을 잘 그려지지 않았다.

 

  “잘 모르겠어.”

  “아무튼 증거나 더 찾아보자고.”

 

  사틴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네로 누나는?”

 

  차우의 말에 사틴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사무실 물건 훔치지 말고 빨리 나가서 증거나 찾아오란다. 할머니한테서 빨리 영주 쪽 조사 자료도 빌려오라고 하고.”

 

  차우는 작게 웃었다. 사틴이 또 얼마나 네로에게 깨졌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틴은 왜 웃느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차우는 무시했다.

 

  “할머니 쪽은 좀 있다가 가자. 지금쯤이면 파티하시고 계시겠다.”

  “응.”

 

  사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차우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아까 말했잖아. 증거 찾으러······.”

  “아니 멍청아. 어디서 증거를 찾을 건데.”

 

  차우는 사틴을 째려봤다.

 

  “아, 그거 말하는 거였어?”

 

  사틴은 그렇게 대답하며 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다 낡아서 당장이라도 그의 손에 우수수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종이였다. 사틴은 종이를 거침없이 활짝 펼쳐들었다. 차우는 사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종이에는 마구 휘갈겨 적힌 이름들이 쓰여져 있었다.

  그걸 본 차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또 뭐야?”

  “네가 목격자 이야기를 해서 마침 잘 됐다-싶었어. 누나한테 목격자 관련 리스트를 달라고 하니까 참고용으로 쓰라고 주더라고. 거기서 몇 명 간추려서 적은거야.”

 

  차우는 내용을 살펴봤다. 사틴의 말에 따른다면, 이 종이에 적힌 이름들 모두 목격자라는 소리였다. 그 중에서는 이름에 줄이 그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줄은 왜 그었어?”

  “이미 조사해서 다시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사실 이 중 몇 명은 내가 아침 일찍 만나고 왔거든. 뭐, 대부분은 거의 똑같은 소리만 해서 쓸모가 없겠구나 싶었어. 목격자 증언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더라고. 그냥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같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정도. 그게 사라진 시기와 장소가 일치하니까 증언이 된 셈이지.”

 

  차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우리가 가봤자 수확이 있을 리 없잖아. 게다가 이 시점에서 뭣 하러 목격자들 만나러 가는 거야? 애초에 의미가 없잖아, 의미가.”

 

  사틴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어제 우리가 페니 아주머니한테 갔던 거 기억해?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도 얻은 정보는 없었어.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걸 손에 넣었잖아.”

  “허브를 말하는 거야? 그건 다 불타버렸잖아.”

  “그 덕분에 범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졌지. 네 눈에만 보이는 허브라니, 솔직히 말이 돼? 반대로 말하면, 목격자들을 조사하다보면 네 눈이 또 수상한 게 걸릴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그건 정말 희망적인 생각이고. 차우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지금은 사틴과 말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럴까?”

 

 

 

 ****

 

 

 

 

  결과적으로 두 사람에게는 큰 소득이 없었다. 차우와 사틴은 다른 목격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부분 비슷한 증언만 내놓을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그 정도가 한계였다. 그 중 몇 명은 증언하기도 질리니 당장 꺼지라고 내쫒은 사람들도 있었고, 또 극소수의 몇몇 사람들은 좀 더 구체적인 증언을 내놓기도 했다. 세 번째 피해자가 사라진 시점에서 증언을 내놓았던 어떤 40대 아저씨는, 세 번째 피해자가 검은색 로브를 입은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었다고 한다. 문제라면 그때가 달빛조차 없는 날이 어둑어둑해진 시간이라 얼굴이고 뭐고 전부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 청년 앞에 있던 건 분명 남성이었어. 여자라고 하기에는 체격이 컸거든.”

 

  진도는 그 이상을 나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차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기 때문에 그다지 큰 기대는 걸고 있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를 얻고자 다녀갔을 것이고, 그쯤 되면 해결됐어야 정상인 사건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으니 누구든 차우 자신처럼 생각했으리라. 물론 사틴의 주장이 아예 말도 안 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거기에 걸기에는 너무 확률이 희박했다.

  대신 차우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사건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을수록 피해자들이 사라진 시기와 목격자들이 그 증언을 한 시기가 거의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 의심은 몇몇 목격자가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할 때 더욱 커졌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그렇게 해놓은 것처럼.

  아니야, 그럴 리 없지. 아버지가 그냥 의심이 좀 지나치셨던 것뿐이야. 차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도 별거 없어.”

 

  어느새 이야기를 듣고 나온 사틴이 말했다.

 

  “사틴, 여기까지 와서 미안한데, 솔직히 이게 도움이 될까? 우리 말고 이미 몇 명이나 다녀가서 물어봤을 거 아니야.”

  “하지만 이거 말고는 달리 어떻게 조사할 방법이 없잖아. 우리가 뭐 대단한 걸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틴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끙끙거렸다.

 

  “야, 네 꿈은 뭐라고 말 안 하냐?”

  “안 믿는다고 하면서 이럴 때는 꼭 그런 거에 매달려요.”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말하는 거야. 뭐 없었어?”

 

  차우는 기억을 가다듬었다. 어둠과 불꽃, 그리고 사방으로 퍼지는 분노.

 

  “꾸기는 꿨는데, 솔직히 도움은 안 될 것 같아.”

  “뭐였는데?”

 

  차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눈앞에서 불꽃이 타오르더라고. 그거 보고서 범인이 화를 내고 있구나-라고 직감했지.”

 

  그리고 그게 차우가 본 전부였다. 그때 그는 분노가 꿈에서 물러나는 그 순간에 잠에서 깨버렸기 때문에 더 아는 것이 없었다. 사틴은 한숨을 내셨다.

 

  “이상하네. 네 꿈도 도통 뭘 알려줄 생각을 안 하잖아. 보통은 상황을 다 확실하게 짚어주는데.”

 

  사틴이 그렇게 말하며 다른 곳으로 가보자고 말을 꺼낼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두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에 목격자로서 증언을 해주었던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헐레벌떡 현관문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아직 문 앞에 서있는 두 사람을 보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안 갔구나. 다행이다.”

  “무슨 일이신가요?”

 

  차우가 물었다. 그녀는 뭔가를 생각하듯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해주려고 했는데 깜박 잊은 게 있어서.”

 

  사틴은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어떤 건가요?”

  “혹시 이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사는 메린 할머니라고 아니?”

 

  두 사람은 일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메린’이라는 이름의 할머니를 두 사람이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얼마 전에 정말 우연히 안 건데, 메린 할머니께서도 범인을 보셨다고 하시더라고.”

 

  사틴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 건 그때였다.

 

  “정말요?”

  “응. 전에 심부름 때문에 할머니한테 잠시 다녀왔었거든. 그때 나한테 살짝 이야기를 해주셨어. 그래서 증언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내가 말했는데, 할머니는 지금 당장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셨어요. 혹시 너희가 가면 뭔가 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차우와 사틴은 서로를 쳐다봤다.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먼저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 짧은 침묵을 깨트린 건 차우였다.

 

  “네, 가볼게요.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우는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사틴을 무시한 채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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