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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차우의 마을 이야기
작가 : 치르비
작품등록일 : 2019.10.9

꿈능력자 차우에게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이상한 사건들.
믿을 수 있는 것은 친한 친구와 시간을 초월하여 정보를 알려주는 꿈들 뿐.
과연 그는 평범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5화
작성일 : 19-10-29 15:04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8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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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것의 연속.

  차우는 방 안을 살펴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것이 똑같았다. 옷장과 침대의 위치, 책상의 모양새, 심지어 그 위에 둔 물건들까지. 자신이 꿈속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꿈의 배경을 그대로 현실로 가져온 듯이.

  방은-차우 자신과 사틴의 움직임만 뺀다면-고요 그 자체였다. 창문 너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생명력 가득한 태양빛은 어느 오후 조용한 방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먼지 하나 없는 하얀 침대 시트가 묽은 빛을 토해냈고,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은 가지런히 정리된 물건 사이를 유유히 떠돌았다. 커다란 옷장은 주인의 성격 그대로 말끔하게 제 모습을 단장한 채, 단단히 빗장이 걸어 내부의 모습을 숨겼다.

  물론 그가 꿈의 풍경을 현실에서 보는 걸 한두 번 겪은 것은 아니었으니, ‘꿈속의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졌다.’라는 식의 놀람에는 많이 익숙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차우는 여전히 이 상황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과거와 현재를 수없이 넘나들고, 언제 다가올지 모를 불안하고 위험한 미래를 질리도록 지켜봐왔음에도. 그는 자신이 어느 순간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했다. 어제 낮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조차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꾼다고. 그러나 이곳은 명백하게도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진짜로?”

 

  사틴이 물었다. 차우는 그를 쳐다봤다. 잔뜩 진지해진 표정은 조금 전의 가벼운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응.”

 

  차우는 그리 대답하며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두 개의 창문 중에서 침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꿈을 꾸는 내내 줄곧 서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는 꿈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밖을 내다봤다. 꿈속에서는 비와 어둠으로 가려졌던 바깥 풍경이,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보였다. 한낮의 햇살이 가득한 바깥은 가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나약한 찬기를 지상에 뿌렸다. 드문드문 길거리에 사람들이 지나갔고, 제각기 자신의 할 일을 하느라 바빠 보였다. 근심과 슬픔, 아픔과 체념만이 남아있는 이곳과는 무관하게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바깥을 내다보는 동안, 차우는 문득 창틀에 난 작은 상처를 떠올렸다. 창틀을 확인한 그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형태의 흠집을 발견했다. 새것처럼 매끈한 창틀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은 상처였다. 차우가 슥 만지자, 손끝으로 까끌까끌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서, 뭐 좀 찾았어?”

  “이거.”

 

  사틴이 다가오자 차우는 창틀에 난 흠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네가 말한 그거야?”

  “응. 뭔가에 쓸린 것 같은데, 아무래도 범인이 창문으로 드나들면서 낸 것 같아.”

  “범인이? 그보다는 형이 나가서 그런 게 아닐까?”

 

  차우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 꿈에서는 이게 형이 사라지기 전부터 나있었어. 그때 내가 계속 이 창문 앞에 서 있었으니까 확실해. 그리고 이 방에는 이미 누가 들어온 상태였고.”

  “그 검은 로브를 입고 있던 사람 말이야?”

  “응.”

 

  차우의 대답에 사틴은 고민하듯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말을 꺼낸 건 대략 오 분 후였다.

 

  “좀 이상하지 않냐? 만약 네 꿈이 형이 사라지기 직전의 시점이었다면, 왜 범인은 형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바로 밖으로 나간 걸까? 그냥 옷장 같은 데 숨어 있다가 확 낚아채버리면 되지 않았을까? 봐봐. 위치상 옷장은 책상 뒤에 일직선으로 있잖아. 그럼 뒤에서 급습하기도 쉬웠을 거야.”

 

  사틴은 옷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형이 책상 앞에 먼저 앉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 전에 먼저 옷장을 열어볼 수도 있었고. 범인의 특성을 생각하자면, 분명 그런 세세한 것까지 계산에 집어넣었을 거야. 그리고 만약 정말로 네 말대로 책상 앞에 앉은 형을 범인이 뒤에서 급습했다하더라도, 분명 형이 저항했을 테니까 분명 소리가 들렸을 거라고. 그럼 아래층에 있던 사람들이 눈치 못 챘을 리 없어.”

  “하지만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려면 그 수밖에 없는데 어떡해?”

 

  맞는 말이었다. 차우도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기는 했었다. 범인은 도대체 어떤 수작을 부려서 형을 데려간 것일까? 만약 납치라면 어떤 형태든 저항의 흔적 같은 것이 남기 마련이지만,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스스로 범인 뒤를 따라갔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피해자를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으니까.

  한참 생각을 거듭하던 차우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흔들더니 결국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범인과 피해자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벌어진 일인건가? 그렇다면 면식범의 짓인가? 하지만 네로 누나가 조사한 신상 정보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어떤 원한을 산 것도, 심지어 채무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니 머리가 아프다는 소리가 나오지. 차우는 진정하기 위해 몇 번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네로 누나가 1년 간 조사했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건 그만큼 이 사건이 기이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기이함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었다. 납치 사건은 이상할 정도로 증거도 단서도 부족했다.

 

  “확실한 건, 내 꿈속에서는 범인이 침대 옆에 계속 서있었으니, 거기를 확인해보면 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야.”

 

  고민 끝에 차우가 말했다. 지금으로선 자신의 꿈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늘 그래왔듯, 자신의 꿈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으니.

 

 

 

 ****

 

 

 

  “사틴, 뭐 찾았어?”

  “없어. 아무것도.”

 

  침대 밑을 뒤지던 사틴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윽고 그는 몇 번 기침을 하더니 천천히 몸을 뺐다.

 

  “아무것도 없어. 진짜로 범인이 침대에 뭔 짓 한 거 맞아?”

  “진짜라니까. 형 들어오기 전까지 침대 앞에서 떠날 줄 몰랐어.”

  “그럼 뭐해! 아무것도 없는데!”

 

  사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우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하던 대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건 언제나 머리 아픈 일이었다.

 

  ‘그래도 꿈이 이곳을 보여줬다는 건, 분명 여기에 뭔가가 있어서 그런 걸 거야.’

  “좋아. 그럼 내가 해볼게.”

 

  그 말에 사틴은 툴툴거렸지만 차우는 무시하고 침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얀 시트를 걷어도 보고, 매트리스를 꼼꼼히 살펴본 뒤, 혹여나 흔적이 남지 않았을까 침대 주변도 꼼꼼히 찾아봤다. 그러나 그의 눈에도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흠집마저도. 사틴이 뒤에서 아무 수확도 없다면서 짜증을 부릴 때, 그는 사틴이 그랬던 것처럼 침대 밑으로 몸을 숙였다.

  처음에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차우는 침대 밑 부분에 붙어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차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최대한 자세히 보려고 노력했다. 잡초? 꽃? 어둠 속에 파묻혀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 식물이었다.

  빼내는 데에는 조금 애를 먹었다. 침대 밑에 딱 달라붙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 네 번 정도 세게 힘을 주었음에도 떼어질 생각을 하지 않자, 차우는 큰 목소리로 사틴을 불렀다.

 

  “사틴! 나 좀 도와줘!”

  “왜?”

  “뭔가 있어서 그래!”

 

  그 말에 사틴은 거짓말 치지 말라며 콧방귀를 꼈지만, 차우가 몇 번 더 다급하게 부르자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그는 차우의 팔을 잡고서 같이 힘을 주었다. 그 짓을 두어 번 정도하자 드디어 붙어있었던 것이 떨어졌다.

  차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떼어낸 것을 꺼냈다. 식물인지 잡초인지, 어둠 속에서 있어서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던 그것은 다름 아닌 허브였다.

 

  “허브? 이거 라벤더잖아.”

  “뭔데? 뭐야?”

 

  사틴이 다가와 물었다. 차우는 손에 쥐고 있는 라벤더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뭐가 없다는 거야? 이거 봐봐, 이게 떡하니 침대 밑에 붙어있는데.”

  “뭐가?”

  “내가 쥐고 있는 거! 라벤더가 떡하니 침대 밑에 있는데 그걸 못 보냐?”

 

  차우는 짜증을 냈다. 그는 비협조적으로 구는 사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침대 밑에 떡하니 붙어있던 허브도 제대로 못 보다니!

 

  하지만 다음 순간, 차우는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틴의 말 때문이었다.

 

  “허브라니? 차우, 너 지금 손에 아무것도 안 쥐고 있잖아.”

 

 

 

 ****

 

 

 

 

  사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 단순한 사실이 차우에게 준 충격은 대단했다. 그는 몇 번이나 손에 쥐고 있는 라벤더를 가리키며 사틴에게 설명했지만, 사틴은 보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차우는 혹시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다시 라벤더를 쳐다봤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분명 ‘실존하는’ 라벤더였다. 본드 비슷한 것에 둘러 쌓여있기는 했지만 특유의 줄기와 잎도, 오래 묵혀져 희미하게만 남은 냄새도, 심지어 그 감촉마저도. 차우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 있음에도 서로의 시선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래서 처음에 그는 사틴이 또 시답지 않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마침 다시 방으로 들어온 하갈즈의 동생도 사틴과 같은 반응을 보였고, 그제야 차우는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 눈에는 허브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거, 어쩌면 네 눈에만 보이는 건지 몰라.”

 

  더 조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오자 사틴이 조용히 말했다. 가을빛을 가득 머금은 햇살이 여전히 지지 않은 채 길거리를 비추고 있던 때였다.

 

  “내 눈에만?”

  “응.”

 

  차우는 사틴을 쳐다봤다. 아까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의 눈빛은 상당히 진지해진 상태였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기는 하지만, 그게 아니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거든. 네가 이런 걸로 거짓말할 놈은 아니잖아.”

 

  차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미 여러 사람이 다녀갔을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아무도 허브를 보지 못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사틴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었다.

 

  “왜 이게 내 눈에만 보일까?”

  “어쩌면 그 사람들하고 네가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

 

  달라서? 차우가 반문하자 사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생각해봤는데, 넌 그 사람들하고 다르게 꿈을 통해서 미래나 과거를 볼 수 있잖아. 난 귀신이니 예지니 하는 건 안 믿지만, 그래도 네 말이 사실이란 건 알고 있어. 내가 지금까지 너랑 있으면 한 경험이 헛된 건 아니라고.

  그리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내 말은 다른 사람들이 감지할 수 없는 걸 너는 보고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거야. 다르게 말하면 그 범인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보통 놈은 아니라는 거겠지. 다른 사람들은 안 보이는데, 네 눈에만 보이는 그······뭐냐, 허브? 그래, 허브 말이야.”

 

  마침 아는 사람 몇 명이 근처를 지나가는 바람에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차우와 사틴은 가볍게 그들과 인사를 나눈 뒤 다시 헤어졌다. 얼마 후에 사틴이 다시 말을 꺼냈다.

 

  “일단 지금 확실한 건, 네가 찾은 허브가 이번 사건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네. 일단 네로 누나한테 말해보는 게······.”

 

  사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차우는 갑자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어느 순간, 손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움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앞뒤 판단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쥐고 있던 라벤더를 던지고 말았다.

  고통에 두 손을 꽉 움켜쥐던 차우는 땅바닥에 떨어진 라벤더를 쳐다봤다. 라벤더에는 어느새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고작해야 작은 불씨였지만 고통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야, 괜찮아?”

 

  사틴은 다급하게 차우의 손을 살펴봤다. 다행히 손에는 그을림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사틴, 혹시 저건 보여? 불타고 있는 거.”

  “응, 이제 보인다 야.”

 

  사틴은 바닥에서 영롱하게 타오르는 라벤더를 봤다. 이제야 그의 눈에도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벤더는 이미 불에 반쯤 타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그 형태를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왜 갑자기 불탄 거지?”

 

  차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손을 세게 털며 최대한 아픔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근처에 불씨가 튈만한 건 없는데······.”

 

  두 사람은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딱히 수상한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마을 입구에 도착한 상태였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대장간처럼 불을 전문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가게 근처로는 단 한 번도 지나간 적이 없었다.

  그 사이 라벤더는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졌다.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가 라벤더를 살펴봤다. 라벤더는 재조차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불타버렸고, 그 흔적은 주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그게 침대에 그대로 붙어있었으면, 침대도 불탔을까?”

 

  라벤더가 있던 자리를 툭툭 차던 사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글쎄. 누나 자료에는 피해자가 사라지고 나서 화재가 일어났다는 기록이 없으니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아. 게다가 4개월 동안 아무 문제없이 있던 게 갑자기 불탄 것도 이상하고······. ”

  “아 진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사틴은 짜증을 부렸다. 차우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던 참이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언가가.

  어쨌든 두 사람은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에이 진짜. 괜히 헛수고만 한 셈이네.”

  “꼭 그렇지만은 않잖아.”

  “그래도 차우, 여기까지 와서 겨우 알아낸 게 범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뿐이잖아.”

  “그것만으로 큰 거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특이한 수법을 썼다는 점만은 확실하잖아. 아까 그 라벤더가 내 눈에만 보였고, 그리고 갑자기 불타버린 것만 봐도 딱 답 나오잖아.”

 

  차우의 말에 사틴은 이마를 짚었다.

 

  “그래 좋아. 그럼 좀 있다가 누나한테도 꼭 말해, 알겠지?”

 

  그 말에 차우가 알겠다고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 했는데, 어찌나 빠르게 걷던지 차우는 몸집이 크다는 사실 하나만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을 보지 못해서 차우는 처음에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곧 사틴의 말을 듣고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지로 형이잖아?”

 

  그 말에 차우는 뒤로 홱 고개를 돌렸다. 뒷모습뿐이었지만, 익숙하기 그지없는 뒤통수와 검붉은 머리카락과 넓은 어깨와 단단한 육체로 하여금 지로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상당히 다급해보였다. 걸음걸이는 어느 때보다도 빨랐고, 표정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지로는 몇 번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봤는데,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을 눈치 채지는 못한 듯 했다.

 

  “어라? 저 길로 가면 페니 아주머니네 집으로 갈 텐데.”

 

  이윽고 지로가 다른 길로 들어가자 사틴이 말했다.

 

  조금 전, 그들이 지나왔던 길이었다.

 

 

 

 ****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네로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차우는 될 수 있는 한 사틴을 변호했다. 어쨌든 친구가 마냥 당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렇게 좋은 광경이 아니었으며, 동시에 자신의 입장도 네로에게 설득해야 했다. 그런 차우의 노력 덕분에 네로는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혔고, 사틴은 가까스로 간부에서 잘리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

 

 

 ****

 

 

  그 날 밤, 잠자리에 든 차우는 또다시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한참을 꿈속에서 떠다니며 주변을 살펴보던 차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공의 제약도 없었고, 하다못해 그를 붙잡아줄 땅조차도 없었다. 모든 것이 어둠으로만 가득 찬 그런 꿈에서 유일하게 떠오르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하나뿐이었다. 아주 위협적이고 매서운 불길이 당장이라도 차우를 잡아먹을 듯 했다. 그는 그 불꽃을 멍하니 보며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분노를 느꼈다. 눈이 아프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빛을 오래봐서 머리가 띵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불꽃이 보여주는 분노는 차우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렬했고, 또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와도 같았다.

  차우는 이 불꽃의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지난 밤, 자신이 봤던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의 것이었다. 하지만 분노는 그저 사방으로 퍼지며 자신을 낭비하고 있을 뿐, 특정 대상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았다.

 

  ‘만약 누군가를 향한 분노라면, 저 불꽃을 분노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나도 봤을 지도 모르지.’

 

  무엇에 분노한 거지? 설마 내가 허브를 건드려서? 하지만 차우는 그걸 알아볼 틈조차도 없었다. 그가 뭔가를 알아내려고 불꽃 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불꽃이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차우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꿈속에서 느낀 분노가 그의 심장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차우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그 정도의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윽고 진정한 그는 침대에서 나왔다.

  꿈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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