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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
작가 : Number3
작품등록일 : 2019.10.28

오남매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 악연으로 끝나다...!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11화
작성일 : 19-10-28 19:55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1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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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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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두 새벽에 영식이 씩씩거리며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온 식구를 총 집합시켰다.

  영식네가 가출한지 보름이 넘었는데 누군가가 영등포에서 보았다는 얘기를 전했다. 무턱대고 그 일대를 뒤졌으나 서울의 김 서방 찾기보다 더 힘들고 대책 없는 짓이었던지 조금은 기가 꺾인 모습이었다

 . 작은 아이의 말을 종합해 보니 상대의 윤곽이 대충 잡히는 듯 했다. “머리는 파마 한 것처럼 꼬불꼬불 하고 눈이 되게 작았는데 파랑색 바지를 이만큼 오게 입었어…” 하며 제 가슴께를 가리켰다. 눈이 찍 올라간 뚱뚱보 아저씨와 치킨도 먹고 장난감도 사 주었다는 얘기를 듣다 보니 푼수떼기가 아이까지 달고 다니며 바람을 핀 모양이었다

 . 들어오기만 하면 패죽인다느니 이 참에 그만 살꺼라느니 서슬이 시퍼런 영식을 보며 명숙네가 쏘아 부쳤다. “ 그 놈의 그만 산다는 소리 지겹다 지겨워. 맨날 말로만 하냐… 쪼다 같이 행동으로도 못 옮기는 주제에… 언제 누가 니네들 살라고 하기는 했었냐? 도망 가 산 주제에 꼴 좋다, 꼴 좋아… 패 죽이기는커녕 니나 맞고 살지 말어라. 쪽도 못쓰면서 말만 번지르르 하기는…” 지 성질 못 이기며 펄럭거리던 영식이 싫은 소리는 눈꼽 만큼도 듣기 싫었던지 그 따위 소리 하려거든 당장들 꺼지라며 언성을 높혔다

 . 그러자 부채질 소리가 요란하게 다닥다닥 소리 나도록 부쳐대던 명숙네가 부채로 삿대질을 하며 퍼부었다. “아따따.. 지 눔 아쉬워 전화질 해 댈땐 언제고 오밤중에 오라, 가라 지랄도 치드니 어따 대고 눈 부라리며 지랄이여, 지랄이…” 만만한게 어미였던지 영식은 왕녀의 껑거리 솟음 하던 못된 성질 고대로 목 쭈욱 빼며 대들었다. “아, 입 닥치고 가만히나 있어. 다 듣기 싫으니.. 무슨 식구들 이라고 의논 상대가 돼야 말이지. 다 똑같애 다…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식구들 불러들인 내가 미친 놈이다, 그래 어쩔래…” 영식의 말대로 입 다물고 가만히나 있으면 될 일을 명숙네가 약을 올리는 통에 분위기만 점점 더 험악해졌다.

 “이제와서 지 눔 아쉬우니 도움이 필요한가 본데 길 가는 사람 다 잡고 물어봐라. 뭐가 이뻐 도와 주겠냐… 뭐 같은 년한테 미쳐서 꼴 좋구만… 방문 걸어 잠그고 지 살림 빼 돌릴때부터 내 알아봤지. 배 다른 그 오래비 놈이 월세 방 얻어 준거 하며 세상 천지에 어디 그런 집구석이 다 있냐 그래. 콩가루야, 콩가루… 그것두 날콩가루…” 그 쪽 콩가루나 이 쪽 콩가루나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건만 그래도 대학 물까지 먹인 이 쪽 콩가루가 더 났다고 우쭐해 하던 명숙네의 악다구니가 끝 없이 이어졌다

 . 그 길로 쫓겨 난 명숙네의 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화통에 매달린 영식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더 작았다 “난데… 찾긴 찾았는데… 그냥 애들 땜에 살아야 할 것 같애… 그냥 모르는 척 해줘.” 당장들 꺼지라는 영식의 명령을 받들어 쫓겨났던 명숙네는 등신 같은 놈, 쪼다 같은 새끼… 그 따위로 물러 터지니 기집년이 지 멋대로 라며 수화기가 깨지도록 악을 썼다. 그 소린 또 듣기 싫었던지 누이 소리도 배 버린 채 계속 그런 식으로 하려거든 거기서 아예 눌러 붙어 살라는 말을 내뱉더니 다신 얼굴도 보지 말자며 덜커덕 전화를 끊어 버렸다.

  졸지에 딸네 집으로 쫓겨난 신세가 되어 버린 명숙네가 약이 오를대로 올라 전화를 계속 했으나 영식은 올리는 족족 그냥 툭툭 끊었다. 막판에 가서야 해결사 경숙에게 일러바친 명숙네가 니 까짓놈 집도 아니면서 그따위로 굴려거든 당장 나가 살라는 말을 전하라고 시켰다. 잠자코 듣던 경숙이 손바닥만한 집 주인은 정작 빼 버린 채 걸핏하면 니집, 내집 들먹이는게 가소로웠으나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새벽 댓바람부터 눈을 휘번덕거리며 택시를 잡아 탄 경숙이 순식간에 들이닥쳐 못마땅 하던 차에 너 오늘 임자 만났다 하는 심정이 되어 마구 들 쑤셔댔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전화기를 내동댕이 치며 “왜 왔어? 어따 대구 그런 아가릴 놀려… 이게 니 집이냐? 야, 이 개 같은 새끼야. 내 집에 내가 오는데 니 놈 허락 받고 오냐? 그리구 그냥 툭툭 끊어버릴 바에야 이 따위가 무슨 소용이야. 없어도 될 물건이구만 그래…” 손에 잡히는대로 던지고 깨부수는 경숙을 보며 평소의 성질을 알고 있던 영식은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 어느 순간, 눈이 마주 친 영식네는 방 문만 뺴꼼 열고 쥐새끼 같이 얍삽한 눈을 굴리고 있었다. 경숙이 부리부리한 큰 눈을 굴리는 동시에 아차 싶었던 영식네가 문을 살짝 당겼는데 그 좋은 기회를 놓칠리가 없었다. “야, 너 이리 나와 봐…” 방문을 있는대로 쌔게 밀며 소리르 지르니 영식네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이 설설 기었다

 . “왜 그러셔유, 형님…”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었던 경숙은 그제서야 명숙네의 명령을 전달 했다. “너… 뭐하는 년이야. 바람 나 기어 나갔으면 그대로 살지 누구 허락 받고 다시 기어 들어오냐? 한 두번도 아니고… 그 따위 추접 떨려거든 다 나가 당장… 저 새끼 나가 사는 동안 엄마 데리고 살면서 내가 다 했어. 생활비 대고, 융자금 내고… 됐냐?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더 이상 봐줄 수가 없네. 다시 또 용달 불러 짐 빼랴?...” 길길이 뛰는 경숙을 보며 저거 건드려 봤자 불구덩이 속으로 화약 안고 뛰어 드는거나 마찬가지라 싶었던지 잘못했어유, 형님… 하며 두꺼비 만한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쳤다

 . 그런 난리를 뽀갠지 두 어달이 지나자 아무 일도 없었던 년처럼 명숙에게 전화를 해서는 마냥 히히낙낙 이었다. “저여유… 형님… 그래두 중요한 일인데 제일 큰 형님한테 가장 먼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유…” 순간 명숙은 음흉한 년이 또 무슨 짓거린가 싶어 일단 경계를 하면서도 그 가증스럽고 교활함에 역겨움을 느꼈다. “저…늦..둥이 가진 것 같아유 형님…” 그 말을 듣던 명숙은 커다란 도끼로 머리를 세차게 얻어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 “뭐… 뭐라구? 너 무슨 소릴 하는거냐 시방…” 손 귀한 집에 큰 경사라도 난 것처럼 영식네는 다시 같은 소리를 또박또박 전하고는 안녕히 계세유, 형님… 하며 공손히 수화기를 놓았다. 영식이 몇 번씩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당뇨에 합병증이 심해지자 사내구실도 못해 불만이라며 동네가 다 알도록 떠들고 다니던 년의 입에서 늦둥이 운운하는 소리를 듣자 몹시 혼란스러웠다.

  씨름선수 뺨 칠 정도의 덩치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마흔이 다 된 나이의 그 늦둥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 사건이 터질때마다 정숙은 늘 그랬던 것처럼 어머머머, 웬 일이니… 소리만 해댔고 자칭 잔대가리의 여왕이라는 금숙은 단번에 “미친년 바람 나 기어 나갔던 년이 어떤 놈 새끼인줄 알고 늦둥이 소릴 지껄이냐” 며 당장 그 아비를 찾아낼 것만 같은 눈빛을 했다.

  무식한 년이 간땡이만 부어 일 저지른다며 그 새끼 낳기만 해 봐라… 벼르던 경숙을 향해 남편은 콩가루가 따로 없구만…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따지고 보면 서로 볼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주제들이었는데 아니, 명숙네의 표현대로 쥐뿔도 없기는 양 쪽이 피차 마찬가지였는데 ‘시’ 자 붙은 노인네는 혼자 고고한 척 대갓집 안방마님 행세를 자처했다.

  명숙네는 늘 골방 노인네 취급을 받으며 기가 죽어 자식들 눈치를 보는 반면, 뭐가 그리도 당당하고 떳떳한 처지인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세도 덩달아 미웠다. 경숙의 혼담이 오갈 때 어느 날 불쑥 직장으로 나타난 노인네는 비뚤빼뚤 적은 혼사 품목을 내밀었다.

  줄줄이 엮은 친척들 명단이었는데 해 주는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무얼 그리고 바라는게 많은지 말문이 막혀 아무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그걸 받아든 남편이 미련 없이 좍좍 찢어 버리며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그 한마디를 하는데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든든해 보였었는지 모른다. 하나 있는 시누이의 주책 또한 볼 만했는데 걸핏하면 말끔하게 차리고 나와 기웃거리기 일쑤였다.

 눈에 띄길 기다렸다가 꼭 먼저 하는 말이 지나는 길에 잠깐 들른거니 신경 쓰지 말라고만 했다. 세상이 다 아는 백조건달이 저녁 무렵, 명동 바닥을 휘젓고 다닐 일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깍듯이 대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알도 없는 안경테와 휴대폰을 매달고 나타나서는 죽는 시늉을 하며 배를 움켜 잡았다. “일 하느라 바빠 점심부터 굶었는데 밥 좀 사줘요…” 하며 밉상을 떠는데 결혼도 하기 전 넙죽넙죽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 조차도 달갑지 않았을 뿐더러 백조 행실을 이미 꿰뚫고 있던 터라 속으로 혼자 별의별 욕을 다 퍼부었다.

 기껏 제일 비싼 것으로 골라 배 터지게 시켜 먹고는 으레히 돈 얘기를 꺼낼 때면 그 뻔뻔함에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같은 부탁을 두 세 번씩 하는데도 먹히지를 않자 네 번째 나타나서 하는 소리가 “어머니가 그쪽 맘에 안들어 해요…” 라며 어기짱을 놓았다.

 기가 막히고 어이없어 씁쓰레하게 웃어 넘기며 남편에게 그 말을 전했을 때 그땐 또 얼마나 듬직한 말로 옹호했었는지 마음까지 푸근함을 느꼈다. “미친… 맘에 안들면 지들이 데리고 산대. 내가 데리고 살지… 꼴값은…” 그런 한마디 한마디, 더 없는 자상함에 눈이 멀어 결혼이라는 것을 했으나 돌이켜 생각하니 모든게 후회 막급이었다. 예전의 경숙이 아니었듯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헐뜯고 할퀴는 것으로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둘만 좋아 잘 살아지는게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더니 명숙의 냉전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자 좌불안석인 명숙네가 더 애를 태우며 시시콜콜 잔소리를 했다. 떵떵거리고 살만한 처지에 무슨 불만이 그리고 많아 재랄이냐며 등 따습고 배 부르니 서방 잡아 먹을 궁리나 한다는 말로 더 화를 돋구었다

 . 그래도 맏이이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든 가장 많이 의지하는 존재였는데 입만 벌리면 사네, 못 사네 소리를 하는 통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웬만하면 그냥 눈 딱 감고 살어. 기집질 한 두번 안하는 놈이 어디 있다구 유난을 떠는지. 원… 남들도 다 그러구들 살어. 그만한 사람 또 없으니 한번 봐 주는 셈치고 그냥 덮어 둬. 속 끓여야 너만 손해야 이것아.. 뒤집어 까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명숙네의 입장에서야 새끼마다 줄줄이 이혼하는 것도 개망신이다 싶어 어지간한 일이면 그냥 넘어 가길 바랬으나 다른 건 다 참아내도 바람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명숙의 입장에서는 펄쩍 뛰다 까무러 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숙의 경우를 보더라도 금전적인 문제라면 얼마든지 용서 받고 없던 일이 될 수 있었을 테지만 그 놈의 바람이 문제였다.

 “엄마두 참… 지 마누라가 두 눈 시뻘겋게 뜨고 버젓이 살아 있는데 한 눈 팔고 다니는 꼴을 봐주라는게 말이 되냐고… 어림도 없이. 눈알 뽑아버리지 않는게 다행인 줄 알라 그래…” 야무지고 똑똑한 값을 하는지 건드려 놓았다 하면 불구덩이 쑤셔놓은 꼴이라고 늘 말하던 그대로였다.

  아무리 어미라지만 더 이상 어찌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그져 구경이나 하는 것 외에 별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날마다 늦게 귀가하는 남편의 옷에 벤 향수냄새가 진동을 하자 들어오는 즉시 옷부터 갈기갈기 찢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혼자 자취하는 어린 직원이 안쓰러운 마음에 과잉 친절을 베풀다 보니 상대가 오해를 한 꼴이었고 그 오해에 바보처럼 질질 끌려다니다 빼도 박도 못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드러운 놈… 젊은 년 끼고 아무데고 휘두르다 에이즈나 걸려 확 뒈져 버려라…” 결정적인 악담 끝에 샌님 같은 남편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손찌검을 일삼자 명숙이 길길이 뛰며 주특기인 거품을 물었다

 . 지칠대로 지친 남편도 더 이상의 미련이나 애착이 없었던지 새초롬한 표정으로 짐을 꾸렸다. 싹싹 빌며 달래도 시원찮을 판국에 먼저 끝내자는 뜻을 비쳤으니 그대로 무마할 명숙이 아니었다. “그래, 잘 생각했네… 나도 더 이상 니 놈 낯짝 보고 싶지 않으니 당장 나가… 내 눈 앞에 얼씬 거렸다가는 두 년 놈 작살나는 줄 알고… 그리고 이건 분명히 알아 둬. 한 푼도 건들 생각 말라구… 다 누구 덕에 이만큼이나 살게 됐는데 지 복을 차도 유분수지…” 모든게 명숙의 앞으로 되어 있다 보니 순진하고 단순한 남편은 이미 쏟아진 물을 퍼 담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고 홧김에 짐을 꾸리긴 했으나 정말로 끝장을 당하고 말았다

 . 그제서야 대성통곡을 하며 울부짖던 명숙의 말인즉슨, 세상에 믿을놈 하나 없다는게 실감났다. 마냥 사람 좋고 얌전하기만 한 샌님인줄 알았던 위인이 대포집 과부와 눈 맞은지도 오랜 일이었고 그런 걸 숨기느라 더 사람 좋은 척 가면을 쓴 채 살았다고 했다.

  두 얼굴을 가진 악랄한 놈이라며 악을 쓰다 지쳐 쓰러진 명숙은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치마만 둘렀다 하면 넘실넘실 넘보던 주제에 마지막 순간까지 큰소리 치며 내쫓긴 샌님은 땡전 한 푼 건들지 못하는 조건하에 썩은 얼굴로 도장을 찍었다. 다 큰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명숙을 위로했다. 아버지라고 다 아버지가 아니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기억 속의 아버지를 떨궛다

 . 두 딸과 꽤 많은 재산을 떠안은 명숙은 갈비집을 내며 ‘오! 웬수 같은 갈비’ 라는 황당한 간판을 내걸어 주위의 눈길을 끌었다.

  헐벗고 굶주리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기 한 점 구경 못했던 쓰린 기억을 그 간판 속에 묻었다. 수단 좋고 인심도 후한 탓에 그녀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여 정숙과 금숙이 그 곳에 합세 했는데 이른바 과부 3인방 이라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런 모습을 보던 명숙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정숙을 향해 소리쳤다.

 “챙피한 줄 알어. 나 죽었습니다. 하고 입에 자꾸를 달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과부 어쩌고 떠들어 대니 원… 니가 온전한 과부이기나 하구?... 칠띠기 짓은 여전해.”

 그 소리를 듣던 정숙이 호도독 거리며 왕 눈을 흘기기 바빴다. “어머머, 엄만 다 똑 같은 이혼녀 처지에 왜 나만 갖구 난리야. 얘나 언니나 나나 다를게 뭐라구… 만만한게 나라니까. 으이그 짜증나…” 명숙이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는 눈치를 수도 없이 주었으나 가슴 속에 쌓인게 많았던지 정숙의 하소연이 끊이질 않았다.

 “왜 항상 나만 갖구 지랄들이야? 애들 아빠가 살아 있으면 나한테 이렇게 함부로 못 할걸… 똑 같은 이혼녀 처지에 왜 나만 갖구 그러는데…”“언닌 그러니까 칠띠기 소릴 듣는 거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떻게 같은 처지냐. 큰 언니가 일 저질러 이혼했어? 충격 받아 누가 또 죽었냐구… 언니 죄는 죽어서두 못 씻어. 입이나 다물어.” 오히려 제일 어린 금숙의 핀잔이 효과가 있었던지 언제 훌쩍 거렸냐는 듯이 금방 새새거리며 웃는 꼴이 더 한심해 보였다.

 “어머머 지랄이야. 내가 뭐랬다구… 알았어, 이년아… 아무튼 잘났따니까. 우리 막내년…” 온갖 푼수에 칠띠기 짓은 다 할 망정 그녀의 맛깔스런 솜씨로 인해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명숙네가 예전에 없던 거만을 떨며 종업원을 홀대하는 통에 명숙이 진땀을 빼기도 했으나 뒤바뀐 처지의 허세는 끝이 없었다.

  사람 볶아치기 선수처럼 일일이 눈도장으로 홀 안을 서성이며 참견하는 것이 명숙네의 하루 일과였다. 어느날 부터인가 작정한 사람처럼 얼씬도 하지 않는게 이상해 명숙이 수 차례 전화를 했으나 영식네는 매번 어머니 주무셔유… 하는 소리만 전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금숙이 들이 닥쳤을 때 골방 창문에 주황색 연꽃 무늬가 커다랗고 두꺼운 담요가 중국 황실인양 못에 걸쳐 있었다.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담요 탓에 햇빛까지 차단 된 어둠 속에서 밤 새 쥐어 뜯은 벼개속 닭 털이 사방 팔방 허옇게 널려있는 것을 보던 금숙이 울부짖었다. 영식네가 제법 부른 배를 감싸 안은 채 어머니 아직 주무시냐며 건성으로 참견을 했다.

 “야, 이년아… 니 눈엔 이게 자는 걸루 보이냐? 이런, 이 미친 년… 누구 새낀지도 모르는거 뱃속에 쳐 넣고 다니지 말고 내 엄마 꼴이 어떤가 좀 봐라…” 난데없는 구경거리에 흥미가 생겼던지 명숙네는 바보스런 웃음을 흘리며 여전히 벼개 속을 하염 없이 뜯었다.

 그러다 한번씩 허공을 향해 후- 불기라도 하면 허연 날개가 송이송이 날다 다니곤 했다. 금숙의 머리에 붙은 그것을 떼어내던 명숙네의 눈이 초점을 잃으며 갑자기 커졌다. 몇 일 사이에 눈만 퀭 하니 빛이 없었고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며 사방에 지린 오줌 자국이 그 동안의 상황을 충분히 증명해 주었다. 금숙의 팔을 당기며 “ 나 밥 좀 주세요… 하는데 어린아이 흉내를 내는 말투가 짜증나도록 징그러워 소름이 끼쳤다. 지랄 맞은 금숙의 기세에 저만치 밀쳐진 영식네는 오메 오메 나 죽네… 쑈를 하며 배를 부여잡았다.

  곧 이어 명숙이 오고, 영식이 불려 들어오도록 영식네는 고 자 세 그대로 죽은 체 배만 잡고 누워 징징 거렸다. 보다 못한 영식이 “시끄럿! 한마디로 그 꼴을 제압했고 명숙네를 잡아 흔드는 명숙의 모습은 미치광이나 다름 없었다.

 나이 탓인지 찌든 삶에 지친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했던 소릴 자꾸 반복하는 명숙네를 보며 치매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질 않았었다. 몸의 반쪽이 마비되어 상태가 더욱 악화된 명숙네는 딸들의 이름을 밤 새 외치며 학교 가라는 소리를 했다.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맺혀서일까 밤마다 딸들을 학교로 내몰았다. 다방면으로 유식하고 아는 것도 많아 먹고 싶은 것도 많을 것이라고 놀리던 남편이 정작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대주기는커녕 쓸데없이 ‘박사’ 라는 별명만을 남겼다

 . 명숙네의 거처 문제로 요양원을 들먹이자 금숙이 펄쩍 뛰며 말리는 통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무조건 한 달씩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있던 자리가 만만하다 싶었던지 영식네가 먼저 돌보기로 했는데 “아무리 똥, 오줌 못 가린다고 밥은 굶기지 말아라…죄 받는다…” 라는 명숙의 위엄 있는 한마디로 사태를 일단락 지었다

 . 영식네를 무서워했기 때문인지 낮에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하다가도 밤이면 명숙아…를 시작으로 줄줄이 출석을 부르며 괴팍한 행동을 했다. 언젠가 소풍날 사라졌던 정숙으로 인한 고통이 컸던지 얼른 찾아야 한다는 헛소리와 함께 안성댁을 향한 저주에서는 거품을 뿜어냈다

 . 고달픈 시집살이의 기억이 되살아난 듯 구석에 웅쿠리고 앉아 밥숟가락을 입에서 떼지 못했다. 한 번씩 제정신이 돌아올 때면 입을 앙당거리며 먹기를 거부하더니 분노에 찬 눈은 원한이 가득 담긴 채 영식네를 한없이 째려보았다.

  명숙을 붙들고는 “저년 맘에 안들어… 얼른 지네 집으로 가라고 해. 저 년이 나 자꾸 때려… 저 년 무서워 죽겠어. 나 좀 데려가 줘…” 하는 조바심으로 영식네를 견제하기도 했다. 지옥 같은 일상을 치루면서도 영식네가 거뜬히 아이를 낳았는데 가느다란 눈이 찌익 올라간 것 하며 보골보골한 머리털이 한 눈에도 장씨 집안 씨는 아닌 듯 보였다.

  지 마누라가 다시 바람나서 나갈까 그것이 두려웠던지 아니면 정말 지 새끼로 착각을 하는 것인지 영식은 갓난쟁이에게 유별난 애정을 쏟았다. 그것을 이용한 영식네는 틈만 나면 애기가 할머니를 쏙 빼 닮았다며 억지를 부렸다. 갓난쟁이의 혈액형을 알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경숙은 명숙의 핀잔은 못 이겨 그 짓을 그만 두었다

 . 데려다 키울 것 아니면 모른 척 하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좀 더 자라면 머리카락이라도 쥐어 뜯어 다 검사 할 생각까지 가졌다. 엉뚱한 동네까지 원정을 가서 낳은 새끼이다 보니 의심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영식이 누구 새끼인지 알든 모르든 간에 이미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것을 아무도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덮어두자니 억울했던지 금숙은 아이가 태어난 병원을 수소문 해 혈액형을 알아냈는데 전혀 다른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얘는 볼수록 할머니 판박이 같아유…” 하는 소리로 과장된 웃음을 흘리는 영식네를 보며 저 년이 남의 새낀 줄 뻔히 알면서도 낳았구나… 하는 마음에 명숙이 이를 갈았다. 어찌됐든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 키우며 치매 노인 건사하는 영식네가 가여워 명숙이 세탁기를 배달시키던 날, 난생 처음 가져보는 제 것에 혼을 빼앗긴 듯 빨래를 수 없이 돌려댔다

 .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빨래하는 모습을 보던 명숙이 순간 찌릿한 마음이 들어 그리 좋으냐 물으니 영식네는 입이 찢어져라 함박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형님, 근데 참 이상해유…. 맨날 손으로만 빨다 저걸 써 먹으려니 왠지 허전하고 꼭 이빨이 몽창 다 빠져나간 기분이지 뭐에유…” 명숙네 입장에서야 영식의 발뒷꿈치에도 낀 때도 못 따라갈 정도로 무식한 년이 반듯한 명문대학까지 나온 놈 꼬여 냈으니 그런 고생도 감지덕지라 생각하겠지만 어린 나이에 뒷덜미 잡혀 호강은 커녕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것 같아 명숙은 그런 영식네가 처음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하디 흔한 세탁기라고는 구경도 못한 채 명숙네가 쓰던 짤순이로 물기만 짜서 쓰다 보니 이불 빨래며 수도 없이 버려 놓은 옷가지들을 빨아대느라 손이 늘 거친 나무토막 같았다

 . 미친년처럼 빨래더미에서 혼자 히죽거리는 영식네의 표정이 실로 오랜만에 밝아 보이는 것 같아 명숙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금숙이 부엌을 들락거리며 수선을 떨도록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 싶어 밥 한술 뜨다 말고 골방 문을 열어보니 명숙네가 널브러져 자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이 지나도록 같은 자세인 것이 미심쩍은 마음에 금숙이 엄마, 부르며 흔들었으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 제 분에 못 이겨 개지랄 떤다는 소릴 수도 없이 듣고 자랐을 망정 잔정 많은 금숙이 벼개를 바로 해 주느라 머리를 받쳐 들었을 때는 이미 싸늘한 시신이었다. 밤새 혼자 몸부림치다 외롭게 떠났을 그런 모습에 금숙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부엌에 있는 명숙을 부르며 엄마가 죽었어… 하던 금숙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묵은 빨래까지 다 끄집어내며 세탁기만 돌리느라 다른 건 안중에도 없던 영식네가 삐쭉 한마디 던졌다. “아가씨, 무슨 일이래요… 갑자기…” 명숙이 전화로 어미의 죽음을 알리는 동안 금숙의 눈에 비친 영식네는 문지방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서 코를 후비고 있었다.

  순간 도끼눈을 뜨던 금숙의 입에서 험한 소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이..썅… 너 대체 뭐하는 년이야. 엄마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면서 잘난 빨래만 해대고… 니가 그러고도 사람년이냐? 이 무식한년… 씹어 먹어도 시원찮어…” 서슬이 시퍼런 것에 기가 죽었던지 그제서야 털퍼덕 주저앉으며 건성건성 아이구 어머니…를 외쳤다. 안성댁이 세상을 뜨던 날, 앵무새처럼 아이고, 아이고 하며 밝은 표정으로 곡을 하던 명숙네 모습이 순간 떠올랐

 다. 눈물을 닦던 금숙이 엄마 언제 들여다 봤느냐고 묻자 여전히 아이고 어머니… 를 쪼아대며 나불거렸다. “아침에 스프 끓인 거에 밥 말아서 두 그릇이나 드셨어요. 약도 챙겨 드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소리에 이어 또 다시 아이고 어머니… 하는데 눈물 없는 통곡이 이어졌다. 금숙이 냄비 뚜껑을 열고는 스프가 넘칠 듯 찰랑 거리는 것을 보자마자 욕을 퍼부었따. “저 미친년… 엄마가 두 그릇이나 먹었다며 이렇게 찰찰 넘치냐? 들여다 보기나 했어? 똥 싸는거 귀찮아 굶겼겠지. 나라두 그렇게 하겠다… 쳐 죽일년 같으니라구…” 어느 날인가, 명숙이 빳빳한 천원짜리 스무장을 명숙네의 요 밑에 넣으며 넌지시 말했다.

 “엄마,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애들 한 번이라도 들여다 보는 놈한테 몰래 한 장씩 줘. 다 주고 나면 내가 또 채워 놓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그 말을 듣던 명숙네가 소리 없이 우는 모습을 보며 명숙도 손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간혹 제정신이 돌아 올 때면 명숙네 말대로 어느 놈에게든 그 돈을 주고 싶었으나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으니 다시 채울 필요도 없이 항상 그대로였다. 모녀간의 슬픈 대화로 끝나고 말았던 문제의 천원짜리 뭉치는 요 밑에 그대로 깔려 납작해져 있었다

 .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평생을 돈 때문에 지지리 고생만 하던 명숙네는 남편보다 더 의지하던 맏딸의 깊은 뜻이 숨겨진 돈을 깔고 죽었으니 그나마 여한은 없을 것 같았다.

  신문지에 싼 채 꼭꼭 숨겨져 있던 참기름 병이 장롱에서 발견되었을 때 명숙은 허탈한 기분이 들어 혼자 헛헛하게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 명숙 시집에서 올려 보낸 진짜이다 보니 한 병 건네긴 했었는데 언제인지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그것이 이불 속에 숨겨져 있는 사실 만으로도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 깟 기름 한 병이라도 영식네를 주자니 괘씸하고 미워서 싫었을 테고 혼자 사는 년들 줄 마음도 아니었던 것 같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깊이 숨겨 놨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 다 낡은 스웨터 주머니에서는 깍두기 모양으로 반듯하게 접은 만원 짜리 한 장이 나왔는데 옷 정리를 하던 명숙이 “이건 내 꺼…” 하면서 수입 올렸다며 농담 삼아 말 했으나 입으로만 웃고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쓸쓸히 떠나 간 명숙네의 유품으로는 참기름 한 병과 만원짜리 한 장이 전부였다

 . 금숙의 기별을 받고도 압력솥의 뜸을 다 들어 김이 빠지기를 기다리던 경숙은 세 아이에게 밥을 한 그릇씩 먹이고 나서야 갈 차비를 했다. 호랑이 안성댁의 죽음을 알았을 때는 너무 좋은 나머지 펄쩍 뛸 듯이 기뻐 꿈이 아니길 바랬었고 주정뱅이 아비의 죽음 앞에서는 그 주정을 그만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냥 좋았었다.

  말은 안 했지만 슬프거나 눈물 따위를 흘리지도 않았다. 막상 어미의 죽음을 눈앞에 보고도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병 들어 죽는 늙어서 죽든, 어차피 누구든 한번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금숙이 팔을 잡아 끌며 “억지로라도 눈물 좀 흘려 봐라…” 했으나 아무런 슬픔이 없으니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 그냥 마음만 조금 찌릿한 그 정도였다.”분명히 저 년이 엄마 굶겨 죽였을꺼야. 나라두 솔직히 내 시어머니가 오줌, 똥 싸고 누워 있으면 더럽고 귀찮아서라도 덜 먹일텐데 뻔하지 뭐…” 경숙은 마음 속으로만 나라도 분명 그랬을꺼야… 하는데 솔직하고 숨김 없는 그 애다운 소리였다. 언젠가 명숙네 계원들이 사들고 온 것을 빨대까지 꽂아 입에 물려줘도 꽉 다물고 일부로 먹지 않더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다

 . 자존심 강한 노인네가 며느리 구박이 싫었던지 아니면 기저귀 갈아주는 것이 민망했던지 잠깐씩 제 정신일 때 안 먹고 안 싸겠다는 오기를 부렸을거라는 짐작이 갔다. 맏이와 막내를 제외하고는 명숙네의 죽음 앞에서 모두 무덤덤했다.

  보다 못한 금숙이 경숙의 손을 끌어다 시신의 얼굴에 올려 주었으나 그것조차도 머뭇거리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진짜 독한년 이라는 소리를 했다. 뒤늦게 나타난 정숙은 하얀 치마에 진분홍색 꽃가라 블라우스 차림 이었는데 어찌나 화사하던지 금방이라도 그 꽃이 만발해 피어날 것만 같았다. 금숙이 언제나 철이 나려고 저 지경인지 모르겠다는 면박을 주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먹고 떠드느라 아랑곳 하지 않았다

 . “왜 나한테만 그래. 뭐가 어때서… 상갓집이라고 꼭 통곡 하라는 법이 있다니?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답게 먹고 떠드는 거지 너무 조용해도 못 써 얘… 엄마두 이해 할꺼야” 소리 없이 몇 번 훌쩍거리던 정숙은 금새 잔치 집에 초대 받아 온 하객처럼 차림새보다 더 환한 웃음에 수다로 인해 주위의 눈총을 받았다. 사방팔방으로 쩝쩝거리며 집어먹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과 어울리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정뱅이 남편의 무덤에 합장하는 것으로 명숙네는 세상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각자의 생활 속으로 다시 묻혀갔다.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차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안 보이는 그런 느낌 외에는 달라딘 것이 없는 것처럼 일상이 똑같았다. 남겨진 몇몇 사람들의 슬픔을 제외하고는… 고된 시집살이와 주정뱅이 남편의 폭력에 한 맺힌 명숙네의 악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 꽁꽁 얼어 붙은 땅을 파기도 힘들만큼 혹독한 추위에 세상을 떠난 남편과는 달리 정숙의 옷 차림처럼 꽃 피는 봄 날, 혼자 몸부림 치다 떠난 명숙네 무덤가에는 이름 모를 꽃 한송이가 피어 있었다. 장사를 치루고 사십구제가 되어 다시 모였을 때 뒤바뀐 집안 분위기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새 집처럼 공사를 끝내고 큰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독립을 한 것이며 온갖 살림이 새것 들이라 낯설기만 했다.

  집안을 좌악 둘러보던 금숙이 역시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 “엄마 죽기 기다렸나 보네… 그래서 굶겼냐? 어쭈… 잘 나가는데… 불쌍한 노인네 살아 있을 때 좀 이렇게 하지. 순 나쁜년이야…” 명숙네 살아 생전과는 반대로 금숙의 팔딱거림에 영식네가 제까닥 반응을 보였다. “아가씨도 이제 여기 와서 간섭하지 말아욧, 그럴 자격 없으니…” 순간적으로 당한 금숙은 입을 벌린 채 제 귀를 의심하는 눈치였고 장사 지낼 때 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 어느 누구 하나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대접은 커녕, 고양이 입에 생선을 통째로 물려주고 떠난 명숙네가 야속할 따름이었다. 덩치 큰 두 아들에게는 주어다 기른 자식처럼 온갖 학대를 일삼던 영식네가 두 눈 찍 찢어진 늦둥이만 감싸고 도는 통에 집안이 늘 어수선 했다.

  한창 미운 짓을 할 나이임에도 벌벌 떨며 역성을 들다 못해 계집애의 혀 짧은 소리에 뒤로 나자빠지는 시늉도 마다하지 않았다. 큰 아이들은 구박과 설움을 견디느라 눈치만 늘었고 간섭하지 말라는 한마디로 시누이들을 단번에 물리친 영식네는 더 기세 등등해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허세를 부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교활하기 짝이 없는 영식네가 꼬리를 내려야 할 분위기에서는 …유…자를 붙여가며 어설픈 척 행동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 아쉬울때면 아니어유, 그랬어유… 하며 느린 척 순한척,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교묘하게 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무서운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방 출신이긴 해도 원래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눈 찌익 내려가도록 순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말하던 때와는 달리 금숙을 향해 마지막으로 간섭하지 말아욧.. 쏘아 부쳤을 때는 정확한 서울 표준말에 사나운 기운이 맴돌았다.

 생각 할수록 음흉한 속을 알 수 없는 연구대상 감이었다. 커 갈수록 보글보글 솟아나는 계집애의 머리털을 보며 명숙네 자매들은 먼 발치에서도 서로들 수근거렸다. 무서워서가 아닌, 드러워서 주위에 얼씬도 안 하기로 마음먹은 경숙이 자신 있다는 소리로 명숙을 부추겼다.

 “것 봐 언니… 내 말이 딱 맞지? 애까지 끌고 나가 바람 필 때부터 내 알아봤다구… 곱슬머리에 눈 찍 올라간 놈이라구 수영이가 언제 얘기 했었다며? 그 어린 눈에도 정확히 보긴 봤네. 미친년이야 한마디로… 지 새끼 수준을 뭘루 보고 바람 피우는데까지 끌고 다녔나 몰라…” 그러자 명숙이 목청을 높이며 더 흥분했다.

 “근데 영식이 놈도 진짜 웃긴다. 쪼다는 쪼다야… 지새끼가 아니라는거 뻔히 알면서도 이뻐하드라. 지 마누라 무서워 이쁜 척 해 주는건지… 으이그, 도대체가 속을 알 수 없는 년 놈들이야…” 잠자코 듣던 금숙이 앞 일까지 훤히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야무진 소리를 했다. “언닌 참 순진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모르겠어? 안 이뻐했다간 그 년이 또 기어 나갈꺼 아냐. 한 번 나간 년이 두 번, 세 번 뭐가 무서워 못 하겠어. 그 방면엔 또 이 몸이 도사거든.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엔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쉽거든. 그년 무서워 쩔쩔 매는 꼴 하고는… 오빠가 아니야. 쪼다라니까. 그것두 쪼다 중에 상 쪼다….”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명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 도둑놈 씨나 다름없는 늦둥이를 사이에 두고 살갑게 굴던 영식네의 역마살이 도졌는지 쉴 새 없이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는데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끼고 돌던 늦둥이가 거지새끼처럼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변하자 하찮은 동물도 그리 함부로 내놓고 키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 금숙의 말대로 이번엔 아주 나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치를 떨던 영식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금숙의 족집게 능력이 신통했던지 명숙이 우스개 소리를 했다. “너, 거적데기에 깡통 하나 꿰차고 그 길로 나서라 아예….” 명숙네가 세상을 떠난 후 꼴 같잖게 구는 년 놈들로 인해 발 길을 딱 끊었던 자매들은 지 마누라의 가출로 영식의 속이 썩든 말든 내 알바가 아니었다. 날마다 퍼 마시는 깡 술 탓인지 병색이 더 짙어져 폐인이 되다시피 했고 살기 어린 눈을 피해 다니며 공포에 떠는 아이들만 불쌍했다

 . 아들의 거울은 아버지라더니 무슨 팔자가 그 모양인지 아비의 주정에 숨어다니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 날 정도로 영식의 주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갖을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맏이라는 책임 때문인지 명숙이 앞장서서 영식네의 이복 오빠를 수소문했는데 시누이 년들이라면 넌덜머리가 난다는 말을 서슴 없이 전했다.

  그나마 손톱 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정 때문에 찾는 건지 이번에야 말로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찾는건지 아무도 그 속내를 알 수 없었으나 영식은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명숙의 가게로 낯선 전화가 걸려 오던 날, 왕십리 무슨 병원 응급실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영식을 주정뱅이로 오인한 채 한나절을 방치했으나 누군가의 신고로 119에 실려 갔다는 말을 전했다. 저혈당으로 지 몸 하나도 지탱하지 못하는 놈이 굶고 다니며 허우적거렸을 생각을 하니 그래도 핏줄이라고 명숙의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 그러면서 속으로 단단히 벼르며 이를 갈았다. “썩을 년.. 눈에 띄기만 하면 박살을 내버릴 테다…” 영식이 꽤 긴 시간 입원해 있는 동안 영식네가 몰래 드나들며 재산이랄 것 까지도 없는 것들을 싸그리 챙겨갔다. 어린게 눈에 밟혔던지 늦둥이만 데려가면서 장 씨알머리는 지긋지긋 하다는 내용의 개발새발 휘갈긴 쪽지를 남겼다. 걸핏하면 명숙네가 악담처럼 퍼붓던 과거가 생각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장 씨알머리라면 지긋지긋해…” 무식한게 용감하다고 나름대로의 이혼 서류를 말끔히 정리한 채 지 멋대로 끝을 냈다. 어설픈 쪽지의 내용으로 보아 늦둥이는 장씨가 아닌 것이 확인 된 셈이었고 아픈 몸에 알거지로 이혼당한 영식은 팔을 긋는 쪼다 짓을 했다

 . 어거지로 선택한 인생에 수준이 안 맞아 못 살겠노라 푸념을 하던 영식의 악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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