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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
작가 : Number3
작품등록일 : 2019.10.28

오남매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 악연으로 끝나다...!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10화
작성일 : 19-10-28 19:54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9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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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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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자체가 불행의 연속인 어미 팔자를 쏙 빼다 박았는지 내리 딸만 셋을 낳은 경숙은 시어머니의 괄시를 꾹꾹 참아가며 보이지 않는 대결을 했다.

  그런 경숙을 교묘하게 무시하던 시어머니는 손주에 한이 맺혔던지 돌림자를 따라 기집애들의 이름을 모조리 남자 이름으로 지어 주었다.

  학교 갈 나이가 되어서야 용호는 왜 남자 이름이냐며 불만을 토해내고 울었다. 아들 형제들만 자란 남편은 아이의 그런 모습조차도 어여쁜지 마냥 껄껄 거렸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서도 나 죽었습니다… 하는 시늉까지 불사하던 아들이 온갖 정성을 세 딸에게 쏟아 붓자 나날이 괴팍스런 노인네로 변했다. 제 자신에게 스스로 온갖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경우 있는 노인네라 일컸는 것도 모자라 사나흘에 한번 꼴로 들이닥쳐 부리는 심술은 가나마의 미운정도 달아나게 만들었다

 . 으레히 밥 한숟가락을 기본으로 남기며 밥 맛이 없어 도저히 밥을 먹지 못 한다는 노래를 부르며 주사 놓는 아줌마를 연결하는 식의 시위를 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경숙이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약방에 가서 연락처 알아 온다는 말을 남기고 동네를 빙빙 돌아다니다 이사 가고 없더라는 거짓말을 했다.

  툭하면 영양제 타령하는 꼴도 보기 싫어 주사 아줌마를 연결해 주는 일 조차도 하고 싶질 않았다. 노인네가 다녀간 뒤 이불 빨래 하는 것도 못마땅 했던지 ‘아이고… 저년이 자는 사람 이불까지 훽 걷어다 빨았다..’ 며 억지를 부렸다. 양 볼이 미어 터지도록 꺼억거리며 먹다가도 남편과 마주하는 밥상에서는 어린아이로 돌변했다. 입 맛이 떨어져 못 드시는 것 같으니 보약이라도 해 드리자는 빈 말을 경숙이 살랑거리며 하자 남편은 그런 아내가 기특했던지 애엄마 건강이 제일이지 무슨 소리냐며 손아귀에 꽉 잡혀 주었다.

  맘에도 없는 소리에 아무 의심도 없이 단순하게 잡혀주는 남편이 오히려 더 기특할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명숙네의 오랜 계원인지라 가깝고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고부간이었는데 결혼 이후, 삼백 육십도로 변한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명숙네와도 점점 멀어져 계를 깨부수는가 싶더니 톡톡히 사돈 행세를 했다. 살림 내 줄 형편이 못 되니 들어가 살라고 부추기던 때와는 달리 보리 서 말만 있어도 치사스런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 거라며 들들 볶았다.

  맘 놓고 드나들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을테지만 고약한 성격이 자초한 결과였다. 사이 좋은 꼴도 못 봐 주겠던지 나란히 앉아있는 것도 격눈질로 흘기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깔끔하고 경우 있는 노인네라며 잘난 체 하던 때와는 달리 온갖 잡동사니를 주워 모으는 통에 발 닿는 족족 쓰레기에 깔려 죽을 것만 같았다

 . 어느날 부터인가 남편의 안색이 좋질 않길래 처음에는 멋모르고 바보처럼 “왜 화 났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하며 농담 삼아 애교처럼 웃기도 했지만 점점 그러는 횟수가 잦아졌다. 하루는 제 엄마한테 가자고 하길래 준비하는게 안 보였던지 다짜고짜 소릴 지르며 버럭 화를 냈다.

 “자기네 집 가자고 하면 이렇게 꾸물 거리겠어? 얼씨구나 하며 따라 나서겠지…” 평소와는 다른 태도에 놀란 경숙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같이 핏대를 올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가기 싫다고 했냐구… 사람이 점점 왜 그래?” 위선적인 노인네만 중간에 엮이면 마마보이로 변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싫은 소리는 손톱 만큼도 듣고 싶질 않았던지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얘긴데..를 시작으로 남편이 뒷통수를 내리쳤다. “어머니 전화가 오셨는데…”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숙이 이를 쁘드득 갈았다. 그래, 그거였구나.. 가끔씩 인상 쓰며 얼굴 붉히던 일들이… 순간 그 놈의 핸드폰을 누가 만들었는지 때려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네 개새끼하고 나만 핸드폰이 없드라…” 투정을 부리기 무섭게 효성 깊은 아들이 냉큼 해다 바친 바로 그 놈이 문제였다. 자신도 모르는 일들이 걸핏하면 핸드폰 고자질로 이어진 것 같아 울화통이 터졌다. 남편이 일찍 들어와 있던 날도 핸드폰이 울리는데 무엇이 그리도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던지 “네, 네… 그렇게 하죠. 네..네.. 죄송 합니다. 모시지도 못하는데…” 하며 말 끝마다 죄송이었다.

 당장 목돈이 필요한데 경숙에게 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았던지 남편한테 했다는 변명 끝에 “그냥 부쳐드려.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모시지도 못하는데…” 하는 이쁜 소리만 골라 했다. 그에 맞서느라 경숙의 주둥이가 댓발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자긴 뭐 우리 엄마한테 용돈 한 번 줘 봤냐… 몇 년을 같이 살면서도 땡전 한푼 주는 걸 구경 못 했네. 어머닌 진짜 너무하셔.” 자기 엄마를 빗대며 징징대는 꼴이 보기 싫었던지 한숨을 들이 쉬고 내 쉬며 더 엄살을 부렸다. “노인네가 살아야 얼마나 더 사신다구…” 그 소리가 하도 얄미워 내엄마는 살아야 얼마나 더 사는데 치사하게 구느냐며 다시 따지려다가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경숙의 입이 순간적으로 닫히는 것은 앞으로 상대도 하지 않고 개무시 한다는 일종의 엄포라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린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노인네를 향해 경숙이 은근한 압력을 넣기 시작했는데 천년 묵은 여우가 속에 웅쿠리고 있기는 경숙이나 노인네나 피장파장이었다. “어머니, 애비한테 그런 전화 안 하셔두 저한테 말씀하시면 부쳐 드릴께요…” 하며 생글생글 웃음소릴 곁들여 말을 꺼냈지만 자세히 들으면 모든 길은 로마로부터가 아닌, 모든 일은 내 손에서 처리 하겠노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리 뒷구멍에서 몰래 전화질하며 울궈내봤자 경숙의 귀에 가장 먼저 들어오기 마련이라는 엄포였다. 경숙의 말을 씹는지 어쩌는지 오리발도 그런 왕오리발이 따로 없는 상여우의 소리가 들려왔다. “무신 소리냐… 나 애비한테 전화 안했다. 내가 무신 전활 했다고 생사람을 잡는거냐…” 매사에 얼렁뚱땅, 눈 가리고 야옹하는 노인네다 보니 벌써 저만치 경숙을 앞서가고 있었다

 .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호랑이가 되어 물어가고도 남을 만큼 음흉스럽고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흉한 소리를 해대던 안성댁의 ‘귀신이 물어가다 놓칠 년’ 이 까딱하면 호랑이한테 물려 갈 판국이었다.

 그 놈의 약장사 매점에 출근하다시피 드나들면서 무슨 버섯인지 약인지 출처도 분명치 않은 것을 육십만원에 샀는데 반 값만 주고 가져다 먹으라는 통보를 해왔다. 그것도 등치가 남산만한 지 아들 얼굴색이 안좋은걸 보니 간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남편이 건강해야 집안도 제대로 돌아간다는 말을 돌팔이 약장사처럼 청산우수로 덧붙였다.

  정 그러면 한의원 가서 제대로 진맥하고 약을 지어 먹이겠노라 말을 꺼낸 경숙은 본전 생각이 간절하리만큼 배가 터지도록 욕만 얻어먹고 말았다. “넌 그래 이 시애미 말으 귀뚱으로도 안 듣는게냐. 무신 이유가 그리도 많어. 노인네가 지 남편 건강 생각해서 사다주면 무조건 감사합니다 어머니… 하며 공손히 받아 챙길 일이지. 무신 놈의 잔말이 그리도 많은지. 뚫린 입이라고…” 하며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길길이 뛰길래 결국 돈주고 박스째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렸다.

  노인네들을 모아 놓고 부류에 따라 사모님이나 누님, 혹은 여사님이라고 부르며 입안의 혀처럼 살갑게 구는 꽃미남들이 득실대다 보니 단단히 빠져든 모양이었다.

  돈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노인네의 귀에 대고 웃음을 머금은 채 씨발년아, 안 사려면 얼른 꺼져… 한다는 소리를 듣고 설마 그럴리가.. 했는데 직접 보고 듣지 않는 이상은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미련 맞은 곰처럼 굴면서 왜 그리 잘난 척을 하느냐는 흉에 이어 남한테까지 얼마나 헐뜯었던지 대뜸 둘이 좋아 잘 살면 모른 척하라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고집 부리기 시작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건 아닌터라 만만치도, 손아귀에 웅켜 잡을 수도 없는 경숙이 얼마나 못마땅한 존재인지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 귀에서 포크레인 소리가 나느니 자동차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나느니 하면서 못살겠다고 하길래 보청기 할 돈을 드리면 곧 바로 약장사한테 상납하기 일쑤였다. 뜯지도 않은 상자째 장롱 위에 신주단지처럼 곱게 모셔놓은 쓸데없는 물건들이 서로 아우성 치며 천장을 뚫고 나가기 직전이었다. 너무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돈 요구를 하는 노인네를 볼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 칠십이 넘으면 예의상 가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못된 생각을 가졌다.

  계 멈버일때는 들로 산으로 쑤시고 다니며 꽃구경도 잘가더니 날이 갈수록 같잖은 사돈 행세를 하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쥐뿔도 없는 집안이면서 대가집 마나님 흉내를 내는 것도 봐주기 힘든 꼴불견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하기 작이 없는 고부간이건만 서운한 일들이 자꾸 쌓이다 보니 점점 더 골만 깊어 갔다

 . 안부전화는 고사하고 어쩌다 한 번 부딪치는 일조차도 거북스러울 만큼 냉랭한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용돈이 바닥 날 때쯤이면 황송하게도 스스로 전화를 걸어 있는 대로 속을 뒤집었다. “애미냐? 넌 도대체 손가락이라도 부러진게냐? 왜 전화 한 통을 못하냐… 이 시애미가 죽어서 썩어 문드려져 있어도 모르겠다…” 며 미운 소리만 골라했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남편의 달콤한 압력이었는데 틈만 나면 전화 드렸느냐, 가 봤느냐 묻는 통에 소리 안나는 총이라도 있으면 미련 없이 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날은 살살 달래면서, 또 어떤 날은 공갈에 협박까지 하면서 으르렁거렸다. “어머니한테 가 보자. 자긴 우리 엄마가 싫어? 한 번이라도 스스로 가보자는 소릴 안하더라. 사람이 그리 매몰차면 못 써…” 하는 소릴 지껄일 때마다 낼 모레면 마흔인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기껏 싫으냐 좋으냐 묻는 단순한 질문이다 보니 한심스러워 사람 같지가 않았다

 . “자기 마마보이야, 뭐야… 말 끝마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우린 딸만 수두룩 해도 어느년하나 그렇게 못하겠드라…”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맞선 보던 날의 섬세하고 자상한 남자가 아니었다. 명숙네가 신바람나서 사방팔방으로 궁합 보러 다니던 일까지 떠오르자 둘 사이만 좋다고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미쳤다. 훼방꾼이 사사건건 들쑤시는데 장님도 눈이 번쩍 뜨이고 벙어리도 말문이 트일 판국이었다.

 아무리 자기 엄마한테 가자고 얼르고 달래 봐야 얼 번 찍어 딱 한 번씩만 넘어가 주는 경숙이 괘씸했던지 다짜고짜 혼자 바쁜 척 서둘렀다. “어머니한테 갔다 오자…” 하길래 김치 버무리던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자기 혼자 다녀 와.. 간지 얼마나 됐다고…” 시쿤둥한 반응을 보이자 버럭 성질을 부리며 다시는 그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을 것처럼 쳐 부수다시피 날아가 버렸다. “그래. 내 엄마니까 나 혼자 가라 이거지…” 누가 뭐랬다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니 엄마, 내 엄마 따지는건지 서러운 심정이 되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뭘 어쨌다구 혼자 그 난리야. 그렇게 매 주 봐야 할꺼면 혼자 가라구…” 제 입으로 항상 눈치가 이백단이라며 우쭐대던 남편은 말 같지도 않은지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됐네, 됐어… 그래, 내 엄마야. 가기 싫음 관두면 될 꺼 아냐. 허, 참… 기가 막혀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저 혼자 포로록 화를 뿜는 것도 괘씸한데 말투까지도 재수가 없던 터라 경숙이 악을 쓰며 대들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산다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쥐 잡듯 잡고 난리냐. 혼자 가라는데 그것도 못해. 길을 몰라서… 엄마, 엄마 하는거 나두 지겹다. 그 좋아 죽고 못 사는 엄마 데려다 놓고 어디 잘 살아 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리를 지르던 남편은 과연 자기 표현대로 눈치 이백단 짜리였다. “오, 그래.. 이 사람이 정말 나하구 그만 살고 싶어 용을 쓰네… 그래, 시팔. 쫑 내…” 하며 철커덕 지 멋대로 끊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눈치는 드럽게 빠르네 그만 살자는 소릴 단번에 알아 든는걸 보니…” 하며 중얼거리던 경숙은 버무리던 김치통을 엎어 버렸다. 문득 귀하게 떠 받들어 봤자 버릇만 드러워진다던 명숙의 말이 떠올랐다. “니가 더 나쁜 년이야. 오냐 오냐 떠받들면 뭐 하냐. 막 부려 먹어. 산 만한 등치에 뭐는 못하겠니…” 그런 면박을 들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귀하고 아까워 감히 함부로 대할 수도, 더군다나 부려 먹을 수도 없는 마음에 늘 혼자 앞서서 다 해 주었었다.

  고분고분 순한 양이 되어서는 억셔빠진 늑대의 탈을 쓴 채 맘 놓고 큰 소리 한 번 내보지도 못하고 살아온 바보였다. 딴 사람이 조금만 거슬리면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딱팔딱 뛰며 끝장을 보던 성격이었지만 남편에게만은 절대 그러고 싶질 않았다. 그러던 경숙이 까놓고 큰 소릴 냈다는 것은 그만 살겠다는 뜻으로 충분히 비춰질 일이었고 정말 그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행동까지 하고 말았다.

  신혼일 때에는 노인네에게 잘하면 남편이 좋아하니까 무조건 잘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남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마음을 텅 비운 채 그냥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젠 남편 말대로 쫑 낼 망정 잘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런 마음을 가졌던 자신만 골 빈년 같다는 구차한 생각에 다다랐다.

 “그래, 내가 없어지는 것으로 다 끝내 주마…” 결심을 하던 경숙이 내동댕이 친 김치를 그대로 펼쳐둔 채 짐을 꾸리는데 평소에는 다리가 아프니, 무릎이 시리니 하며 돈 울궈낼 궁리만 하던 노인네가 후다닥 뛰어 들었다. 절룩거리는 어리광을 서슴지 않던 모습과는 달리 새처럼 가뿐히 날아드는 것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었다.

 “너… 이 시애미 때문에 안 산다고 했다면서? 애비가 그러드라. 용호 애미가 엄마 땜에 저랑 안 산다고 했으니 둘이 남자 하나 잡아먹든 구워 먹든 맘대로들 하세요…라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두 여자 등살에 못 살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개판을 치더라고 했다. “그 놈이 일 벌렸을리는 없고 안 봐도 훤한 것이 니 잘못 같으니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라. 그럼 내 다 용서해 줄 테니…” 용서는 무슨 개 뼉다구 같은 소리이며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무릎 꿇고 빌라, 말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나 같은 시애미 있으면 나와 보라구 해라. 변도 싸들고 찾아다녀도 이런 경우 바른 시애민 세상 천지에 또 없을꺼다. 나 땜에 이혼한다는 쓸데 없는 소리 했다가는 법정에 가서 괜히 판사님한테 혼찌검이나 당하고 쫓겨 올 테니 생각 잘 해 이것아…” 말 같지도 않은 억지 연설을 듣던 경숙은 속으로 비웃으며 노인네 말을 되씹었다. “당연한 말씀.. 세상 천지에 저런 괴짜 노인네가 어디 또 있을라구…”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들 쑤셔 놓기만 하던 독불장군, 안하무인 노인네가 그 길로 씩씩거리며 돌아갔고 열 두시가 훨씬 넘어서야 술에 취해 들어 온 남편이 울부짖으며 타이르기 시작 했다.

 “니가 조금만 이해하며 살 수는 없겠니? 날 봐.. 날 사랑한다면 나를 봐서라도 우리 엄마한테 잘 할수 있잖아…” 하지만 그것 또한 이미 때늦은 속삼임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를 밖에 두고 온 이백단짜리 남편이 눈치도 없이 굴었다

 . “그전 같으면 자기를 정말 많이 사랑하니까, 내가 어머니한테 잘 하면 자기가 좋아하니까 간도 쓸개도 다 빼 버리고 무조건 잘 하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이젠 아니야. 자기 말대로 쫑 낼 망정 잘하고 싶지도 않구…” 고집 부리기 시작하면 쇠심줄보다 더 질긴 년한테 먹히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둔한척 구걸하던 것이 자존심 상하고 분했던지 남편이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잘나셨네… 뉘 집 딸인지.. 어째 그렇게들 잘났냐…” 그 날 이후, 거의 의무적으로 이름만 부부인 채 사는 냉전의 연속이었는데 어버이 날을 계기로 또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사이는 좋지 않아도 날이 날이니 만큼 선물 코너를 기웃거리는 경숙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어디야? 뭐 하는데…?”한 없이 부드러운 남편의 목소리였다. 결혼 전 목을 메며 쫓아다니던 시절로 되돌아 간 것만 같은 부드럽고 그윽한 바로 그런 음성이었다. “응… 그냥… 밖에…”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보니 성의 없는 대답이 억지로 나왔다

 . “밖에서 뭐 하는데…” 하며 아까보다 훨씬 더 따뜻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순간 경숙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꾹꾹 참아내며 잠시 착각의 늪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다. 이런 따뜻함에, 더 없이 자상한 면에 이끌려 앞, 뒤 잴 것도 없이 덜컥 결혼이라는 것을 했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그 짧은 시간동안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던 뭉클한 마음과는 달리 “그냥… 왜 묻는데…” 짜증을 내며 묻자 남편의 대답이 과히 일품이었다

 . “아, 이 사람아… 왜는 명색이 어버이 날인데 선물에 꽃이라도 사들고 가 달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용돈도 좀 드려야 하구…”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너무도 뻔뻔하고 당연하게 내 뱉는 소리에 경숙이 화를 발끈 냈다. “가두 저녁에나 가. 아님 지난번처럼 혼자 다녀오던가… 혼자도 자 가면서 왜…” 경숙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찌나 무식하게 소릴 질러 대던지 귀가 다 윙윙 거렸다. “지금 가나 이따 가나 뭐가 다른데? 가려거든 일찌감치 가야지 꼭 미루기는…” 방금 전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어따 내동댕이 쳤는지 돼지 목청 따는 소리를 꽥꽥 질렀다.

  그래, 너만 잘났냐 싶어 당장 안가면 뭐가 어떻게 되느냐며 같이 소릴 질러대니 옆 사람들 보기도 민망했다. “자긴 진짜 너무해. 이런 날 나라구 엄마 생각 안 나겠어? 맨날 말루만 니 엄마, 내 엄마 안 따진다면서 어쩜 그렇게 이기주의냐. 우리 엄마한테는 꽃 사들고 선물은 커녕 빈 말 한마디 안하면서…” 눈물을 쏟으며 벽에 머리라고 박아 깨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어서는 악을 써댔다. 그래, 마지막 의무라 생각하고 니들 소원대로 다 해 주마.. 하는 마음에 꽃이며 선물에 용돈까지 빵빵하게 챙겨서는 발길을 돌렸다.

  이마 마음을 겉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그런 기분일까 싶을 만큼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 터덜터덜 들어서는 순간, 무엇이 그리도 신나고 좋은지 남편이 노인네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볼이 미어 터지도록 먹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 못해 나타난 경숙이 못마땅 했던지 금방 샐쭉해진 노인네가 차갑게 말했다

 . “아, 왔으면 여여 들어오던가 하지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기는.. 어째 그리 둔하고 눈치도 없는 건지.. 자고로 여우하고는 살아도 미련 맞은 곰하고는 절대 못 산다는 옛말 그른게 없다니까…” 모처럼 둘만의 오붓한 분위기를 깬 것에 화가 났던지 늑대를 곰에 비유하며 거들먹 거리는 노인네가 한 없이 밉살스러웟다. 마지못해 자리를 지키는 경숙이 못마땅 했던지 인상 좀 펴라는 남편의 눈치가 역력히 느껴졌다.

  갑자기 부탁이 있는데.. 를 시작으로 뜸을 들이던 노인네가 얄팍한 입술을 열었다. “내 목돈이 좀 필요한데 날이 날이니 만큼 꼭 좀 들어 줘야겠다. 정 형편이 어려우면 빚을 내던가, 카드로 빼던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어디서 융통을 할 테니 매달 할부로라도 한 오백 만들어 내라…” 하며 난 통보 했으니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시침을 뚝 떼는 노인네의 입술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말 떨어지게 무섭게 “당연히 해 드려야죠…” 하던 남편을 흘기며 경숙이 말꼬리를 돌렸다. “돈 오백이 무슨 동네 개 이름도 아니고 해드리면 뭘 해. 어차피 약장사한테 갖다 바칠텐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생각할수록 분하고 약이 올랐다.

 “잠자코 들어. 노인네 적적해서 취미 생활로 그런데 드나드시는데 그까짓 것도 못 해 드리면 어디 자식 된 도리냐…” 효성 지극한 남편의 입에서 효심 깊은 소리가 술술 잘도 흘러나왔다.

  그 자리가 민망했던지 슬그머니 노인네가 자리를 뜨는 동시에 경숙이 가슴을 치며 하소연을 했다. “누군 나가서 돈 쓰는 취미 할 줄 몰라 이렇게 사는 줄 알어. 방 안이 온통 뜯지도 않은 박스째 가득이야. 눈이 있으면 저것 좀 봐… 천장을 뚫고 나가게 생겼다구… 무슨 신혼 방도 아니고 온통 새 살림이 주렁주렁… 그것도 죄다 쓰잘데기 없는 것만 잔뜩 뭐 하자는 건지…” 계속되는 쫑알거림이 듣기 싫었던지 남편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경숙의 입을 봉쇄했다

 . “시끄러웟… 해도 내가 해 드릴테니 감 나라, 대추 나라 신경 쓰지 말어…” 그 말을 끝으로 각자 갔던 길을 다시 각자 돌아온 부부는 그 날부터 서로 앙숙이었다.

 마음은 각자 다른 곳을 헤매는 낯선 이방인들이었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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