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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
작가 : Number3
작품등록일 : 2019.10.28

오남매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 악연으로 끝나다...!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9화
작성일 : 19-10-28 19:53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1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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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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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숙네는 계속 옆에서 애꿎은 손수건만 꼬깃꼬깃 접어가며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닦아 내느라 바빴다. 그러더니 에이구… 이 미친놈… 소리를 입에 달고는 아낙을 향해 어찌나 사납게 눈을 흘기던지 경숙이 툭툭 치며 눈치를 주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를 한 눈에 알아차린 아낙이 뭉기적거리며 문을 열고 내려서는데 얼핏 보기에도 당장 아이가 나올것만 같은 배가 버거워 보였다.

 얼마나 살이 쪘던지 졸업식 날 영식의 등 뒤로 날렵하게 숨던 그 호리호리한 모습은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엄마, 들어와…” 경숙이 제집처럼 스스럼 없이 먼저 방으로 들어서며 팔을 당겼다. 신문지로 누더기처럼 땜빵한 도배며 명숙네를 쏙 빼닮은 아이의 백일 사진이 벽에서 울먹거리는 모습으로 모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잠깐만 앉아 계셔유…” 하던 아이 엄마는 뒤뚱거리며 자릴 비켜 주었고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좁은 구석구석을 살피는 명숙네의 눈빛이 살모사의 그것처럼 번득였다. “아이구, 원… 이게 어디 사람 사는 동네냐… 겨우 이 꼬라지로 살고 싶어 뛰쳐 나간거여… 망할놈의 새끼…”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명숙네의 거만을 보며 경숙이 살살 얘기하라는 싸인을 보내거나 말거나 막무가내로 더 떠들어 댔다. “듣는게 대수냐? 그깢년 듣는게 뭐 무서워서. 내 입으로 내가 떠드는데 지깢년이 뭐 어절거여..

 ” 잠시후, 야구르트 두 개를 받쳐 들고 온 아이 엄마는 바닥이 뚫어져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연신 눈을 휘번덕 거리며 고약스럽게 방안을 살피던 명숙네의 입에서는 타박과 한숨이 함께 쏟아져 나왔다. 이 꼬라질 하고 살면서 애는 또 밴거여. 아이구… 한심스러워라.” 하더니 좁은 방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매어 놓은 빨래줄의 길게 늘어진 바짓 자락을 옆으로 훽 밀어부쳤다.

 코딱지만한 방 안에 들어 앉아 있는 냉장고에 다 낡은 책장이며 어수선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 보기만 해도 심난스러웠다. 손바닥만한 단칸방에서 여덟 식구가 북적거리던 구차스러운 기억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 신문지의 땜방도 모자라 군데군데 그림책까지 찢어 붙인거 하며 얼룩거리는 천장의 쥐새끼 뜀박질 소리에 얼마나 찌든 생활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뱃속의 아이 말고 또 한 놈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벽에 걸린 더부룩한 머리의 사내아이가 영락 없는 명숙네 판박이였다. 그 순간 경숙이 눈치도 없이 큭큭거리며 불난데 휘발유를 냅다 들이부었다. “엄마, 저것 좀 봐… 엄마 딱 닮았네. 오나전 붕어빵이야… 쟤가 엄마 무지 미워했나보다.” 그 와중에 키득거리며 웃음보가 터진 경숙이 한심했던지 명숙네가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 “넌 그래, 이 판국에 뭐가 그리두 좋아 웃음이 나오냐… 다 쓸데 없다니까. 하나같이 들.. 속도 밸도 없는 년들 같으니라구… 퍽이나 우습기도 하겠다…” 발끈하는 명숙네를 보던 아이 엄마가 잠시 움찍 하는가 싶더니 배를 감싸안았다. 그런 모습조차도 심정이 뒤틀렸던지 작정한 사람처럼 속에 쌓인 것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심스러운 것들… 기껏 차고 나가더니 꼴 좋다, 꼴 좋아… 아니 싸다 싸. 아주 쌤통이야. 지 복을 차버려도 유분수지. 그 누구냐. 국민학교 선생 중매해 준다던…” 소싯적 얘길 들먹이며 신세타령이 이어질 것만 같아 경숙이 미리 말을 돌렸다

 . 벽의 사진을 가리키며 ‘쟤 몇 살이나 됐을까… 그러니까 언제야, 벌써…’ 까놓고 묻지도 못하면서 지난 시간들을 혼자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이 엄마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나 죽었습니다… 하는 자세 고대로였다.

 “그깢 눔 몇 살인지가 뭐 그리 대수라고… 누가 보기나 한다니?” 그러면서도 여전히 퉁퉁거리며 심술을 떨던 명숙네의 시선이 사진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영 풀어지지 않는 것을 혼자 속으로 삭히는지 눈빛이 아주 고약스럽기 짝이 없었다. “엄마두 이제 그만 좀해…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쩌겠어…” 말 끝마다 고약을 떠는 명숙네가 못 마땅해 짜증을 부리자 이미 부를대로 불러 있는 아이 엄마의 남산만한 배를 보며 시비를 걸었다

 . “이따위로 살면서 그 배는 또 뭐라니. 꼬라지 하고는… 아이구, 쯧쯧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새낄 내지르던가 해야지. 대책 없는 것들 같으니… 너두 그래. 아무리 배운 것 없는 일자 무식이라지만 누울 자릴 보고 발을 뻗어야지. 덥석덥석 배나 불러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가자, 그만…” 하며 빠르게 일어섰다. 경숙이 따라 일어서며 내려다 본 아이 엄마는 무릎 사이에 커다란 배와 얼굴을 함께 묻고는 훌쩍거리는 것이 딱하고 측은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명숙네가 치맛자락을 여미며 쌩하고 나가는 뒤에서 경숙이 말을 건넸다. “엄마 서운한 것도 이해는 해야지. 기껏 나가 잘 살아 주는게 아니니 더 속상해서 그럴꺼야” 무거운 배를 받쳐 들고 엉거주춤 일어서던 아이 엄마가 죄송해유… 하는데 그 고생을 하고 살면서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경숙이 더 서글펐다.

 명문대를 졸업해 제 코스대로 나가자면 보란 듯이 취직해서 명숙네가 중신서는 자리에 장가들어 정말 보란 듯이 잘 살고 있어야 할, 그야말로 오르지 못할 나무를 가로 챈 벌 인지도 몰랐다.

  또 보자며 손을 꼭 잡는데 두툼하고 꺼칠한 것이 여자의 손이라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툭하면 갈라지고 터지던 어린시절의 거북이 등짝 만도 못한 손등이 떠올랐다. 구리무라도 발라 주면 잠시 보슬거리다가 구정물에 설거지라도 하고 나면 다시 또 벌겋게 달아올라 고무줄이 끊어지듯 후두둑 터지던 아련한 기억이었다

 . 집에 돌아 온 명숙네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기억에서조차 없어져 버린 줄만 알았던 4년여의 긴긴 미련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몇 일 지나지 않아 영식과 마주한 경숙은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인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 삐쩍 마른 몰골에 누렇게 뜬 낯 빛은 마치 사그라져 가는 불꽃의 희미함으로 느껴졌다. “왜 왔었는데?” 몇 년만에 나타나 대뜸 한다는 소리가 거기까지 물어물어 갔던 걸 따지는건지 찾아줘서 고맙다는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꼴이 그게 뭐니? 애도 있나 보던데 배는 또 잔뜩 불러가지고… 당장 낳게 생겼드라. 왜들 그러고 살어 대책도 없이… 다 버리고 도망 갔으면 보란듯이 잘 좀 살던가…” 영식은 그 중 살가운 존재라 여겼던지 매몰찬 소리에도 질책이 아니라 동정이라는 것을 재빠르게 눈치 채고는 더 이상의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아직도 못하는 그 흔한 누나 소리 한번 하지 않았지만 늘 마음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아주 잠깐 언니라고 불렀던 적은 있었으나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생략한 채 곤란한 지경이면 고개를 까닥 하는 것으로 호칭을 대신 했었다.

  뻗대는 영식을 설득해 끌고 오다시피 들어서자 맨 발로 계단까지 뛰어 내려오는 명숙네의 상기된 모습이 보였다.

  입으로는 연신 망할 놈 꼴 좋다…를 되내었으나 눈가의 축축함이 마음 속 진실을 말 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년만에 돌아온 아들을 버선발로 반기던 안성댁의 유별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상대였다.

  장승처럼 뻣뻣히 서 있는 영식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명숙네의 눈에서는 샘 솟는 우물처럼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렸다. 길길이 뛰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매몰차게 나갔던 영식은 자세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채 고대로 서서는 하고 싶은대로 다 하라는 듯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

 . “으이그, 독 한 놈… 으이그, 망할 놈…” 같이 부여잡고 엉엉 울며 맞장구를 쳐 주지 않는 것도 괘씸한지 눈물을 쏙 훔치던 명숙네가 욕 같지도 않은 욕을 내뱉었으나 그 한마디 욕에서도 살가운 애정이 넘쳤다.

  낯선 손님 같은 자세로 멋쩍게 앉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갔던 영식이 몇 일만에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은 명숙네는 쌈짓돈까지 털어 병원비에 보태라며 영식 처에게 쥐어 주었다

 . 그리고는 손 귀한 집에 2번 타자로 태어난 금쪽 같은 손주를 안고 한참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이를 본다는 핑계김에 사흘이 멀다 하고 드나들던 명숙네는 코딱지 만한 단칸방에서 어찌 간난쟁이까지 키우고 사느냐며 들어와 살라는 말을 꺼냈다.

  정작 집 임자인 경숙에게는 일언 반구 의논도 없이 혼자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세 집 살림을 하기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던 터라 경숙이 꺼려했으나 오히려 남편이 쌍수 들고 환영을 하는데 그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3대 독자의 아들을 순풍순풍 둘이나 낳아 준 영식댁은 개선장군처럼 기세 등등한 모습으로 쳐들어왔다. 작은 방을 네 식구가 쓰기에는 판자촌의 코딱지 못지 않았으나 명숙네가 무조건 싸고 도는 통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경숙이 살뜰히 가꾸던 신혼집은 졸지에 난장판으로 둔갑을 했고 한창 극성부릴 나이의 큰 아이는 거친 호랑이 새끼처럼 드세고 억센 것이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 졌다

 . 그뿐 아니라 잠시나마 미안한 척 억지로라도 썩은 웃음을 짓던 영식의 불만 가득한 눈치가 역력했다. 문을 콕콕 미어 박으며 걸핏하면 지 새끼를 잡아대는 꼴이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어느날 부터인가 순한양 처럼 구경만 하던 영식댁이 새초롬한 눈으로 아이를 감싸안으며 중얼거리는 통에 오히려 경숙이 영문도 모른채 기막힌 꼴을 당하기도 했다.

 “아유, 왜 애는 잡고 그래유… 얘가 뭘 잘못 했다고… 내가 보기엔 아무 잘못도 없는 애를 괜히 고모 땜에 혼내기나 하고… 아유, 서러워 죽겠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윽박지르며 화를 뿜어내던 영식은 손톱의 때만큼도 달라진 것 없는 옛날 모습 고대로였다

 . 다시 못되게 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명숙네를 향해 반말 짓거리로 찍찍 내뱉더니 바람처럼 뽀로로 나갔다가 술에 쩔어 들어오기 일쑤였다.

  방 안에서의 언성이 새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대판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을 귀먹어리도 눈치 챌 판국이었다. 애새끼 울음소리에, 그 애비의 주정에, 거기다 영식댁의 쫑알거림까지 삼박자가 겹쳐 밤인지 낮인지 시도 때도 없이 싸우는 통에 사는게 지옥 같았다

 . 그 덕에 조용하기만 하던 경숙의 신혼이 쪽박처럼 와자작 깨어지기 직전까지 도달했는데 남편의 역마살이 그것을 증명하듯 으레히 새벽녘에나 귀가를 했다. 길지 않은 연애시절, 주말이면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 별의별 상상을 다 하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가끔 한번씩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트리는 바람에 혼자 이를 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영식의 주정이 잠잠해 질 때쯤 계단을 퍼더덕 거리며 뛰어 올라오는 소리에 문을 열면 쭈뼛거리는 남편이 죄 지은 사람처럼 눈치보며 서 있었다

 . 그리고는 작은 소리로 “미안해, 일 하느라 늦었어…” 말 같지도 않은 변명으로 얼버무릴 때면 경숙의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일찍 들어와 봐야 좋은 꼴 하나 없는 처가살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던 터라 일부러 늦는 것에 대한 어떤 원망도 하고 싶지 않았다

 . 신혼방을 꾸미며 가구를 들이던 날, 경숙보다 더 흥분하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던 모습도 떠올랐다. “이게 다 정말 우리꺼란 말이지?” 하며 장롱 문도 죄다 열어보고 이불도 만지작거리며 쓰다듬던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웠던지 커다란 등짝을 보며 혼자 슬픔에 잠겼었다

 . 양다리를 걸치며 주말엔 다른 년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어 연애시절의 궁금증을 물어 본 뒤로는 정말 가엾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반겨주는 사람도 없던 터라 평일에는 일부로 새벽까지 밖으로 나돌며 주말이면 잠을 보충하느라 콕 박혀서 하루 종일 잠으로 시간을 죽인다는 소리를 했었다

 . 영식이 들어와 설면서 총각때와 하나도 달라진게 없는 것 같은 생활이 남편을 밖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명숙네를 비롯해 눈에 보이는 족족 모조리 가시처럼 여겨졌다. 경숙 자신도 뛰쳐 나가기 직전인데 남편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싶은 마음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척 참고 지낸 시간들이 분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 얼굴조차도 부딪치지 않으려 버둥거리며 묻는 말에도 마지 못해 건성으로 대답하는 영식의 태도에는 화가 나다 못해 따귀라도 올려 부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속도 다 빼 버린채 껄걸 웃는 남편에 비해 영식은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은지 우거지 죽상을 면치 못 했다.

  기껏 들어와 살랬더니 허구헌날 술이나 퍼 먹느냐는 명숙네의 언성에 한 수 더 떠서는 그야말로 눈 부라리며 개지랄을 떨었다. “아, 그러게 누가 데리고 살랬냐고… 난 들어오기 싫었는데 사정사정 하다시피 불러들인 사람이 누군데 그래. 솔직히 쟤네들 땜에 들어오라구 한거 아냐… 들어와 봤자 좋은 꼴도 하나 없으면서… 에이씨, 죽이 돼든 밥이 돼든 우리끼리 사는건데 괜히 들어와 가지고 이게 무슨 꼴인지…”

  어떤 좋은 꼴을 원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영식의 태도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군식구로 들어와 데릴사위로 살고 있는 경숙의 남편을 향한 불만의 소리였다.

 경숙이 임신을 하면서 분가를 한다는 소리에 영식댁의 작은 눈이 반짝거렸다. “형님, 서운해서 워쩐대유… 난 형님이 제일 좋던데… 그냥 같이 살아유. 내가 애기도 다 봐주고 살림도 다 할텐데 뭐하러 나가려 하신대유…” 주둥이에 침도 안 바르고 내뱉는 꼴이 하도 얄미워 마음 같아서는 집이라도 쏙 빼 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줄줄이 딸린 나머지 걱정에 꾹꾹 참았다

 .결국 굴러 온 돌이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깊숙이 박힌 돌을 거뜬해 빼 낸 꼴이었다.

 이삿짐을 나르는 동안 영식은 방구석에 쳐박혀 무슨 짓을 하는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경숙이 분하고 괘씸한 마음에 한바탕 뒤흔들고 싶었으나 남편이 기를 쓰며 뜯어 말렸다

 . “그냥 놔둬. 처남도 속이 말이 아닐텐데 그냥 조용히 가자. 사람 우습게 만들지 말고… 가는 마당에 꼭 똑 같은 사람 돼야겠어?” 도끼눈을 뜨는 경숙이 미웠던지 잠자코 있으면 좋았을 명숙네가 나서며 역성을 들기 시작했다.

 “삐쩍 마른거 불쌍하지도 않니? 여지껏 잘 살았음 됐지 뭘 그래. 너두 얘 기왕 나가 살려고 맘 먹었으면 맘보를 곱게 써라. 지 동생 못 잡아먹어 안달 떨지 말고…” 도대체가 누구 집인지 분간도 못 하는 꼴들이 우스워 결국은 악을 바락바락 쓰며 막판에 속내를 다 드러내고야 말았다.

 “똑같애 들… 모전자전 아니랄까 봐. 셋트로들 돌고 있네… 치사한 것 같아 누구 집이냐 소리 안하고 조용히 나가려 했는데 이따위로 하려거든 나야말로 다 필요 없으니 다 나가… 저 새끼구 엄마구 다 필요 없어. 씹어 먹을놈의 새끼… 내가 가만히 있으면 사람 년이 아니야. 가만 안 둬…” 그 난리통 속에도 영식댁이 인심쓰듯 된장이며 밑반찬을 들이밀며 살살 구슬렸다

 . “형님, 왜 이러신대유. 그냥 참유셔유… 내가 형님 깊은 속말 안해도 다 알아유…” 이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지 가증스런 모습에 눈이 훼까닥 뒤집힌 경숙이 반찬 꾸러미를 내동댕이 치자 안경 너머의 작은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 따위 것 필요 없으니 니네들이나 잘 먹고 잘 살아라. 저 새끼 두고 봐. 내 언젠가는 한바탕 제대로 뒤집을 날 있을 테니…” 경숙의 악다구니가 이삿짐 더미를 사이에 두고 쩌렁쩌렁 울렸다. “개 같은 새끼, 병들어 다 죽게 생긴게 하도 불쌍해 기껏 들어와 살랬더니 잠깐 깨갱이드라. 너두 귓구멍 있으면 똑똑히 들어둬. 이거 엄연한 내 집 이거든. 니까짓 것들이 뭔데 왜 얹혀 살다 쫓겨나가는 드러운 기분 들게 만들어. 그따위로 굴면 집까지 다 파가는 수가 있어. 내가 못 할 줄 알고… 인생이 하도 불쌍해서 봐 줄랬더니 하는 꼬라지들 하고는… 실로 수 년만에 다시 튀어나온 내 집 유세였다.

 영식댁이 서슬 퍼런 기세에 주춤했던지 아니면 아니꼽고 드러워서였던지 금방 공손한 태도가 되어 입에 발린 소리를 지껄였다. “그게 아니고요 형님, 잘 알면서 무슨 그 말이 있대유… 나도 같이 사는게 더 좋아유. 애들도 고모 제일루 좋아하고… 그렇게 모진 말씀 하시면 정말루 너무 서운해유…” 어차피 가는 마당에 더 봐 줄 이유도 없었던 터라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모조리 끄집어 냈다. “내가 저 새끼 매형소리 한 번 하는거 못 들어 봤어. 쪼다 같이 누가 소리도 못하더니 지 버릇 개 준다니… 등신 같은 놈 왜 저한테 이런 취급당하게 만들어. 저 새끼 그따위로 나가 사는 동안 이 집에 쳐들인 공이 얼만데… 다 내가 했어. 다 몽땅…” 차라리 모르는 척 가만히나 있으면 미친년 널 뛰듯 찧고 까불다 분이 삭힐것도 같은데 중간중간 명숙네가 뿌리는 양념에 화가 더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쳤다.

 “말 끝마다 새끼, 새끼 좀 하지 말어 얘. 니 새끼냐? 이제 와서 니집 내집이 무슨 소용이라구… 그 놈의 공치사는 죽어 무덤속에서두 하겠다. 누가 절더러 다 하랬나.. 등 떠밀어 한 짓도 아니고 지가 좋아 미쳐서 하더니 그 놈의 공치사는… 내 아니꼽구 드러워서…” 맘 놓고 뒤집는 꼴이 최소한 배 불러 있는 딸에 대한 기본적인 양심도 없는 못된 계모의 태도였다

 . 괜히 들어와 살라고 해서는 흉한 꼴을 당한다 싶었던지 남편의 표정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알콩달콩 주위의 부러움을 사던 경숙은 동네가 떠나가라 깽판 치는 것으로 그 자리를 떴다

 

 . 금숙이 얹혀사는 칠공주파 멤버인 금자의 단칸방은 훤한 대낮에도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안될만큼 두꺼운 커튼을 치고 살았다. 거꾸로 사는 인생들 이었으니 햇빛 따위야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해가 중천에 떴는지 허락도 없이 꼴까닥 넘어가 버렸는지도 모른채 퍼질러 자다 어스름 할 무렵이면 분칠에 꽃 단장을 하고는 일터로 향했다.

  중학교 첫 영어 시간에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마이네임이즈 금자 지… 하는 통에 응큼한 영어 선생은 숨 죽이며 큭큭 대느라 얼굴이 뻘개졌고 영어에 간신히 귀가 트였던 단발머리 소녀들은 깨드득 거리며 소란을 피웠던 칠공주파 지금자였다

 . 공부는 잘하지만 인간성은 맨 밑바닥인 싸가지 범생이들과는 달리 그들만의 날라리 우정은 질기도록 오래 유지 되었다. 금숙이 모처럼 끈끈한 우정을 위해 열무김치를 담구던 날, 난데없이 들이닥친 뽀글머리의 불쌍년 같은 아줌마가 석유통을 들이부으며 성냥을 그어댈 기세였다.

 순식간에 열무가 사방으로 날아가고 자다 나온 금자는 배시시한 눈으로 옴마야…를 외쳤다.

 “저 년이야, 저 년…” 같이 온 젊은 여자가 금자의 머리채를 질질 끌어내는 동시에 금숙이 씨발, 뭐야… 소리를 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UN성냥을 그었다.

  개 폼만 잡던 뽀글머리는 저만치 튀어 나가며 분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에잇, 퉷 퉷… 재수업성. 뭐 저런 년이 다있나 몰라… 너, 한번만 더 꼬리쳤다간 눈깔을 확 뽑아 버릴 테니 그런 줄 알어. 씨발, 어디 할 짓이 없어 남의 것을 넘 봐. 넘보길… 생긴대로 아무데고 굴려 먹던 술집년들 티내고 자빠졌네…” 아무리 극한 상황일지라도 나머지 떨이로 넘어 가는 꼴을 그냥 봐 넘길 금숙이 절대 아니었다

 . “야! 어따대고 씨팔이야. 이 씨발년이.. 넌 내가 씹 하는거 봤냐? 봤어?...” 눈깔을 뽑겠다던 뽀글머리는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사나운 금숙에게 머리채만 한 웅쿰 뽑히고 말았다

 . 금자는 지가 별로 놓은 사태가 수습이 안되는 듯 미친년 삼발한 머리채를 쥐어 뜯으며 혼자 울부짖었다. “아악… 무슨 이런 개떡 같은 팔자가 다 있냐… 왜 다들 나만 갖고 지랄이냐 지랄은…” 전 날 화장을 지우지 않은 볼에서는 총 천연색 무지개 빛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업소용 싸구려 옷가지와 이불 따위를 태우며 불은 스스로 그쳤으나 유부남을 넘봤던 금자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며 계속 씨부렁 거렸다. “야, 나 없을 때 저년들 또 찾아 오거든 여기 너 혼자 사는 니 집이라구 해.” 하며 ‘니 집’ 소리를 특히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뭐가 우스운지 손뼉을 치며 깔깔거리는 꼴이 바보처럼 보였다. “역시 유하연이야… 널 누가 당해 내겠니? 아이고, 시원해라. 고년들 진짜 쌤통이다. 하긴 너 무서워 다시 이 근처에 얼씬도 못 할걸… 까불고 있어. 별것도 아닌 년들이…” 입으로는 여전히 웃으며 뻥을 치고 있었지만 겁에 질린 눈은 두려움이 가득 했다. 성이고 이름이고 촌스러워 다 맘에 들지 않는다던 금숙은 제 멋대로 성까지 부드러운 유씨로 바꿔가며 하연이라는 나긋나긋한 예명을 썼다.

  안목은 있었던지 그럴듯한 명함을 손에 쥔 정숙이 호들갑을 떨며 그 이름을 부러워 하기도 했었다. “어머머머… 너무 예쁘다 기집애야. 유하연… 나두 딴 이름으로 바꿀까보다. 정숙이가 뭐니 얘, 시골스럽게… 부모를 잘 만나야 이름도 이쁘게 지어줄텐데… 난 뭐라구 하면 좋을까?...” 어쩜 그리도 죽이 잘맞던지 옆에서 보다 못한 명숙네가 면박을 주어도 새새거렸다.

 “한심한 것들… 바꾸려거든 이름이나 바꾸지 세상 천지에 누가 성까지 바꾼다니… 생긴대로들 살어. 이름탓 하지 말고. 언니구 경숙이라구 다 가만 있는데 그 이름이 뭐가 어때서…” 맘에 쏙 드는 이름을 짓는라 돈을 쳐 발랐던 유하연이 금자지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이년아.. 그러기에 놀아도 좀 산뜻하게 놀지 남이 쓰던 걸 뭐 한다구 욕심내다 이 꼴을 당하냐. 드럽게시리… 한심한 년… 그년들 말대로 술집년 티내냐?...” 금숙은 염병 떨고 자빠졌네… 그 한마디로 금자의 한심함을 대신 했다. 싸구려 옷으로 치장을 해도 돋보이는 금숙이 브러운 마음에 이것 저것 따라해 보지만 결정적인 얼굴이 받쳐 주질 않다 보니 그게 늘 절천지 한이었다.

  하찮은 장신구를 빌려 달아도 금숙에겐 진주였던 그것이 그 애한테로 가면 돼지 목에 진주요, 길가에 널려 있는 돌멩이에 불과했다. 얹혀사는 년의 온갖 비위를 다 맞춰 주며 간이라도 빼 줄 것 같은 금자가 기둥서방을 얻는 동시에 후다닥 살림을 차리자 금숙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던 공주님들의 의리는 오갈데 없는 금숙에게 방을 물려주는 것으로 마지막 의리를 지켰다. 금자의 기둥서방은 파리가 쭈-욱 미끄럼을 탈 만큼 뺀질거리는 넓은 이마가 눈에 띄었는데 배 위까지 끌어올린 바지며, 한 눈에도 나 제비족이올시다… 하는 똥 폼을 잡으며 거들먹거렸다. 뒷골목 똘마니 같은 폼으로 금자를 수족처럼 부리는 것도 모자라 심심하면 주먹까지 휘둘렀다.

  졸지에 백수의 뒤치닥꺼리를 하느라 종종 걸음으로 바쁘게 사는 모습이 보기에도 가여울 지경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드는 주먹질에 온 몸이 시퍼러 둥둥 해서는 금숙의 방으로 피신을 다녔다. 그때마다 쏜살같이 나타난 제비는 껌을 짝짝 씹으며 머리채를 낚어채 갔다. 초록은 동생이라고 짧은 신혼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금숙은 그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아 금자보다 더한 치를 떨었다. “등신 같은 년… 그런 놈 꿰차고 살때는 이미 각오했어야 하는거 아니니? 눈 뒤집혀 덜렁 살림 차릴때부터 내 알아봤거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허구헌날 두드려 맞고 사느니 일찌감치 쫑 내라. 그나마 뼈라도 추리고 싶거든… 나 보면서 너 뭐 느끼는 것도 없니?...”금자는 저를 위한 걱정의 소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음과는 다르게 호들갑을 떨며 억지를 부렸다

 . “그래, 나두 뭐 같은 놈 만나 내팔자가 이 모냥인거 생각만 해도 한심스럽고 화가 나. 그래두… 가끔은 좋을 때도 있어 얘. 맨날 맞고만 사는 줄 아니? 내가 안건들면 되는데 이 놈의 주둥이로 팔랑팔랑 약올리는게 문제지.. 입을 확 꼬메버려야 하려나 봐… 흐흐흐…” 맞고 사는게 뭐가 흐흐거리며 웃을 일인지 느긋하다 못해 꽉 막혀 답답하 까지 하니 그지경이다 싶어 금숙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 푼수 중에 상 푼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장육부를 다 빼 놓은 채 혀 꼬부라진 애교를 떨며 제비 시중을 들 때면 으이그 등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야, 내가 보기에는 그놈보다 니가 더 문제야 이년아… 그 까짖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한판 뒤집지 온갖 푼수 짓은 다 하다 얻어 터지고는 다시 제자리냐? 깐죽대지나 말던가…” 사람 자체는 한없이 좋은데 배실배실 웃으며 속 뒤집는데는 또 일가견이 있었던 터라 하는 짓거리를 보고 있자면 매를 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느 새벽인가, 홀라당 알 몸으로 쫓겨 온 금자를 보며 입에 거품을 물던 금숙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씨발놈… 오늘 제대로 걸린 줄 알어. 눈깔에 뵈는게 없나 본데 오냐, 너 오늘 제삿날인줄 알어라. 인간 쓰레기 같은놈 쳐 죽이고 개값 물어주마…”

  왕년의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듯이 맥주병을 휘두르며 나갔던 금숙은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풀린 눈으로 들어섰다.

 저 때문에 실성한 년처럼 나갔다 오는 줄도 모르는지 라면을 삶아 꾸역꾸역 먹던 금자가 샐샐거리며 물었다. “도대체 뭐하다 이제 오는 거야… 아유, 기집애 어디 가는지 말이라도 하고 가던가… 무슨 사무가 그리 바쁘냐? 라면 다 뿔었잖어… 고새 또 뭐 하나 물었냐? 하여간 유하연 인기는 사그러 지질 않는다니까…” 그 소리를 듣던 금숙은 알고 있는 험한 소리며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동원해서 퍼붓기 시작했다. “미친년, 이 판국에 라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븅신, 한심한 년… 등신 천치 같은 년… 너 같은걸 친구로 끼고 있는 나도 미친년이고… 그래. 미친년 듀엣이다. 이 씨발 놈의 세상…야, 쳐먹는 꼴도 보기 싫으니 라면 국물에 코 박고 확 뒈지던가.. 너 같은거 살아 뭐할래? 이런 뷰웅신.. 계속 그 따위로 굴다간 내가 먼저 너 쑤셔 버린다… 도움이라곤 안 되는데 성질만 돋구네. 씨발년…” 어떻게 제비를 처치하고 왔길래 그리 화를 내는지 아주 조금 궁금하기도 했으나 그걸 물을 용기는 없어 라면 국물까지 후루룩 소리내어 마시며 온갖 욕을 감수했다. 멀쩡히 돌아 온 것만으로도 칠공주파 캡짱이었던 금숙이 다시 한 번 우러러 보일 뿐이었다

 . 술을 독째 퍼 마시든 아파 죽을 지경이든 금숙이 철칙으로 지키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세상 없어도 일터에 빠지거나 늦는 적이 없었다.

  희안한 것이 달랑달랑 간신히 학교 다닐때는 껀수만 생기면 지각에 결석을 밥 먹듯 하다 못해 가출까지 일삼더니 술을 가까이하는 직업이 딱 적성에 맞았던지 근무 성적 백점 짜리였다. 남들 퇴근과는 반대로 하던 서글픈 출근이었으나 곱게 치장하고 나선 금숙은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다니며 거만을 떨었다.

  야하고 천박한 화류계의 싸구려 꽃이 아닌, 나름대로의 우아함과 도도함이 줄줄 흘렀다

 . 출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난 금숙은 “너 다신 그 집구석에 얼씬도 말어.” 그 한마디만 했다. 할 줄 모르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말이나 잘 듣던가 니가 뭔데 가라마라냐… 이따 갈껀데 참견 말라는 식의 어줍잖은 말대꾸만 하던 금자는 연속으로 뺨만 세 차례 얻어 터졌다

 …“등신, 등신 내 살다 살다 이런 등신은 또 첨 보네. 야, 이 미친년아 내가 그새끼 쳐 죽이려구 들어섰더니 어떤년 끼고 사이좋게 자빠졌드라

 . 그걸 보는 순간 눈깔이 다 튀어 나오는데 병 조각 갖구 되겠냐. 식칼 들이대며 목을 따버릴랬더니 지 마누라라며 더 이상 너랑 얽히기도 싫다드라. 너만 골빈년이야. 항상… 너 쫓아내기 무섭게 두 년놈이 히히덕 거르디만 돈 주고 몸 주고, 새빠지게 벌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한심한 년 같으니… 년 놈 다 죽이고 족 같은 세상 하직하려 했더니 싹싹 비는 꼴 하구는… 눈물도 흘릴 줄 알아요. 꼴에… 어차피 너도 맞고 사는거 지겨워 끝내려던 참이었으니 정리해라. 다신 얼씬도 안한다니까. 내 눈에 한번만 더 뛰었다가는 배떼기 확 쑤셔준다고 했지. 나 말로만 뱉는 허풍 안 떠는거 알지…? 어쩐 일로 그 긴 긴 잔소리를 잠자코 듣던 금자가 눈물을 후루룩 흘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어딜 가려구…?” 금숙이 빈정거리는 투로 묻는데 부엌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야.. 칼 들었으면 무라도 잘라야 되는거 알지?” 화장을 하던 금숙은 안봐도 뻔한 그 애의 행동이 우스워 냅다 소리를 질렀다.

  곧 이어 요상 망측한 울음 소리가 들리는데 그건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뱃 속의 아이를 들먹이며 한탄하는 것을 보니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다시 방 주인으로 돌아온 금자는 멍하니 앉아 히죽거리며 먹어 치우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단순한 성격에 마음까지 빼앗겨 충격이 컸을 텐데 예전처럼 푼수 떨지도 않았고 뇌를 빼다 버린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지냈다. 외로움이 뼈에 사무칠 만큼 호되게 앓고 난 금자는 불러오는 배를 보며 다시 웃음을 찾기 시작했다. 그 깢 아이의 아버지야 없어도 그만이었다.

  생긴것 과는 정 반대의 외동딸로 곱게 자란 어쩌다 칠공주의 멤버가 되어 부모 속을 지지리도 썩이더니 이제야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준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 고맙던 터라 금숙은 지극정성을 다 했다

 . 그나마 뱃 속의 아이까지도 부러웠던 나머지 버는 족족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물건을 사들였다. 어느 집인가의 맏며느리가 되어 넘치는 사랑받으며 아이도 많이 낳아 키우고 싶었던 소박한 꿈은 이미 무산된지 오래였고 다시는 꿈도 꾸지 못 할 일처럼 여겨졌다.

 

  젊은 남자의 당뇨는 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데 영식의 수치가 칠백선을 돌파해 몇 번씩 죽을 고비를 넘겼다. 모진 소리를 해가며 잡아먹을 것처럼 겨냥하던 때와는 달리 영식을 보는 명숙네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정이었다.

 새벽이면 구부정한 모습으로 즙을 짜 먹이며 몸에 좋다는 약을 쉴 새 없이 대령시켰다. 처음 봤을 때의 멸치 같던 호리호리함이 없어져 버린지 이미 오래인 영식댁은 병든 남편 치다꺼리에, 만만치 않은 시어머니 잔소리에 점점 더 드세고 억세졌다.

  그러면서도 3대 독자한테 시집 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두이나 낳아 주었다는 큰 체는 시들 줄 몰랐다. 명숙네나 영식은 겉으로만 서로 으르렁 댈 뿐, 이대 일로 편을 가르는 등의 치사한 모자사이를 은근히 과시했다. 수시로 쓰러져 입원을 밥 먹듯이 하는 영식으로 진해 집안은 늘 어두컴컴한 동굴 속 같은 분위기였다

 . 나날이 삐쩍 말라 인슐린 없이는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는 영식과는 달리 임신 중독증의 붓기가 그대로 살이 되어 칠십킬로그램을 육박하는 영식네는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천하장사였다. 당뇨에 신장까지 망가진 영식을 보면 마치 홀쭉이와 뚱뚱이를 방불케 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남편이 오랜 세월 병마에 시달리다 보니 그 짓도 못한다는 입에 담기 껄끄러운 소리를 서슴없이 지껄이고 다니며 챙피한 줄도 모르는지 껄꺼덕 거렸다.

 명숙네의 한숨 섞인 고자질에 한 번씩 들여다 보면 식탁 의자를 한 손으로 번쩍 번쩍 들어올리며 쳐 죽인다고 덤빌때의 영식댁 모습은 악에 바친 사자였다. 아들을 둘이나 낳아준 공치사에 이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점점 눈에 가시처럼 박혔다.

  거대한 체격을 유지하기 위함인지 뭐든지 박스떼기로 사들이며 거뜬히 먹어치우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무서울 만큼 무식해 보였다. 펑퍼짐하게 퍼질러 앉아 왕성한 식욕을 뽐 낼때면 저것도 사람인가 싶어 별의별 상상을 다 하게 만들었다. 산촌 무지렁이에 근본도 없는 출신이다 보니 경우나 예의 같은 것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고 ‘시’자만 들어도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단순무식한 것이 얼렁뚱땅 사람 잡는다고 간사스러운 잔머리는 아무도 당해내지 못했다

 . 문 걸어 잠근 채 배 두들겨 먹고는 대자로 뻗어 쉴 새 없이 퍼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삐져 나온 배를 내밀며 짤막한 티셔츠에 엉덩이만 간신히 가리는 미니스커트도 불사한 채 휘덕거리는 외출이 잦아졌다.

  나날이 화장을 떡이 되어 춤 바람이 났는지 몇 일씩 가출하는 것 쯤이야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내팽개친 둘째는 당연히 명숙네의 차지였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큰 아이는 졸지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기집년들이나 천덕꾸러기 신세인 줄 알았지 장씨 가문의 귀하디 귀한 자손이 그 꼴로 크는걸 보았다면 안성댁이 네 이 고얀 년들… 하며 무덤을 가르고 나올 판국이었다. 지들끼리 미쳐서는 물, 불 안가리고 도망가 차린 살림에 넌멀머리가 났는지 영식의 입에서는 그만 살고 싶다는 소리가 자주 흘러나왔다

 . 수준이 맞질 않아 도저히 못 살겠다는 소리에 가만히 있을 명숙네가 절대 아니었다. “아따따… 수준 같은 소리하구 자빠졌네. 그 년 수준을 이제야 알겠냐? 니가 좋아 끌어들인 일이니 찍 소리 말구 살어.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수준 타령 하지말구…” 십년 세월이 지난 후의 미련한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애초에 싹을 잘랐어야 할 악연이 만들어 낸 후회일 뿐이었다. 억척스럽고 드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숙네도 무지랭이 며느리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기운 넘치는 천하장사 며느리는 남편이나 시어미 따위가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 마냥 끼고 있을 수도, 내 다 버리지도 못 할 고약스러운 존재라 여겼다. 목청은 나날이 커져 싸움이라도 하는 날에는 온 동네가 떠나갈 만큼 쩌렁쩌렁한 소리를 자아냈다

 . 그 때 마다 방문 꼭 걸어 잠근 채 몰래 소리죽여 큰 딸에게 일러바치는 명숙네의 모습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보고를 받은 명숙이 제까닥 제 밑의 계열로 연락을 취했는데 제 일 순위는 항상 불 같은 성질의 금숙이였다. 심심하던 차에 제대로 껀수 만났다는 듯이 전화통에 대고는 안성댁보다 더 쌍스럽고 독한 욕을 퍼부었다.

 “야, 이 썅칼년아… 니까짓게 내 엄마하고 내 오래빌 물 먹여? 꼴에 바람도 났다며? 지가지로 놀고 있네… 어딜 가랑이 쩍 벌리고 다니며 못된 짓거리냐. 드러운 년… 보지를 확 찢어 놓기 전에 몸조심 하는게 좋을꺼다. 걸리면 재미 없는 줄 알라는 말씀이다 이거야. 이 한심한 년아…” 동갑이면서 금숙이 얼마나 모질고 못되게 굴었던지 무식하기 짝이 없는 영식네가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 한 채 잠깐씩 조용히 지냈다.

 고 재미에 명숙네는 별 것 아닌일까지도 수시로 딸들에게 일러 바쳤는데 니 년이 아무리 무식을 무기 삼아 까불고 날뛰어 봤자 내 딸들이 너 같은거 하나 쯤이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엄포였다

 .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더니 홍시를 사들고 왔던 명숙과 영식네가 머리 끄댕이 잡고 엉겨붙어 한바탕 전쟁을 치루던 날이었다. 때리는 시애미보다 말리는 시누이년이 더 괘씸한지라 영식네의 입장에서 보면 밑엣 것들로 인해 당했던 수모를 톡톡히 갚은 셈이었다. 다급해진 명숙네가 살살 눈치만 보다가 급기야는 금숙에게 전화를 했으나 전 날 퍼 마신 술이 떡이 된 금숙은 횡설수설에 오락가락 한 것이 정신 줄을 놓은 년처럼 굴었다

 . “엄마, 우리 엄마… 막내딸이 엄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알어, 알어… 그 년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내가 눈 쬐께 부치고 가서 요절을 내 줄 테니까. 무식한 년이 감히 내 엄마랑 내 언닐 건드렸다 이거지. 웃기지 말라 그래. 아, 씨발 족 같은 놈의 세상. 별 년이 다 건들고 지랄이네…” 언제부터인가 내 엄마니 내 언니니 하며 앞에 꼭 ‘내’ 자를 붙이던 금숙이었다.

  혼자 나가 떠돌며 살다보니 내것에 대한 애착심이 들었던지 그 소리 마져도 슬픔으로 들렸다. 명숙네가 다시 구원병 요청을 해야 할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싶었는지 무슨 난리라도 쳐 들어오는 것처럼 경숙에게 전화를 했다. “얘. 난데… 글쎄 저 년이 나 먹으라고 홍시 사들고 온 언니 머리끄댕일 잡고 지랄이다 지랄이… 지가 사 주지도 않으면서 왜 지랄이라니. 저 년이 눈이 훼까닥 뒤집힌 것이 아무래도 돌았나보다. 얘. 나 무서워 죽겠다. 별 꼴을 다 당하고 사니 이게 원 어디 사람 사는 꼴이냐…” 하면서 간간히 훌쩍이는 청승을 양념으로 보태며 동정심을 유발시켰다.

  누가 들으면 간단히 홍시 때문에 일어난 불란처럼 들리기 십상이었다. 백마디 말보다는 이른바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는 행동대장 경숙의 양 눈이 찌익 올라가는 찰라였다

 . “그래? 알았어. 내 금방 갈게…”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한마디 말을 끝으로 용달을 앞세운 경숙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 옛날, 영식이 얻어터지고 질질 짜며 들어오던 날의 몽당 빗자루 부여잡고 동네를 주름 잡던 골목대장 경숙이었다. 다짜고짜 들이 닥치더니 영식네 세간살이를 끄집어 내며 얼른 실으라는 말만 했다. 벙 찐 표정으로 영문도 모르는 용달 차 운전사가 머뭇거리자 답답해진 경숙이 되는대로 문 쪽을 향해 깨지든 부서지든 마구 날렸다

 .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됐던지 영식네가 ‘아이구… 형님 왜 그러셔유…’ 하며 납작 엎드렸다. 팔짱 낀 채 기고만장이던 명숙네와 명숙의 싸늘한 표정에서는 고년 참 쌤통이다 하는 빛이 역력 했다. 큰 일을 치룬 해결사처럼 양 손바닥 탁탁 털던 경숙이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질 않았다. “한번만 더 내 엄마나 내 언니한테 겁대가리 없이 개기면 그 날로 죽는 줄 알아라…”

  금숙이 자주 써 먹는‘내’ 자를 강조해 뒤집은 날 이후, 영식댁은 조금 고분고분해 졌고 용달차의 압력은 제법 오래 갔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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