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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
작가 : Number3
작품등록일 : 2019.10.28

오남매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 악연으로 끝나다...!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2화
작성일 : 19-10-28 19:40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19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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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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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숙 아비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주정으로 인해 쫓겨나다시피서너달에 한번 꼴로 이사한 장위동 스레트 지붕 밑에는 7가구가 다닥다닥붙어 있었다. 명숙네 단칸 방 바로 옆이 주인집인 옥주네 방 이었는데 후미진 골목처럼 생긴 부엌을 따라 큰 방과 작은 방이 하나의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그런 곳이었다. 누군가의 첩실이라는 옥주 엄마는 귀티나는 하얀 인상에 쌀쌀맞고 도도했으며 외동딸 옥주는 마치 작은 왕국의 공주처럼 지냈다.

  짤록한 허리에 벨트가 묶인 주름진 교복의 옥주는 명숙네 자매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스덴 대야의 물을 떠다 바친 후 양갈래 곱게 땋아 식모 손의 밥상을 거친 옥주는 하얀 얼굴을 맘껏 뽐내며 날아가듯이 학교로 향했다.

 옥주네 안방으로 아낙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 화투판이 벌어지곤 했는데 부리나케 밭 일을 끝낸 명숙네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자리에 있었다. 늘 입버릇처럼 손주재가 많아 손으로 빌어 먹고 사느라 이모냥이꼴 이라던 명숙네의 표현대로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야무지고 완벽하게 끝을 내는 성미였다.

  유복하게 자란 탓인지 살림에 있어서만은 그야말로 빵점 짜리였는데 손재주와는 별개처럼 음식 만드는 것에는 솜씨도 성의도 없어 보였다. 되는대로 꿀쩍꿀쩍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대충 차려내는 밥상에 군침 흘릴 기대조차도 안겨주질 않았다.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마음껏 좋은 머리쓰며 손재주 부릴 수 있는 화투판에 명숙네가 빠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비록 화투판이지만 치사스런 짓은 커녕끈기있고 솔직한 명숙네와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레 옥주 엄마의 눈에 남다르게 보여 서로 속 마음도 털어 놓을 수 있는 절친한 사이로 변했다.

  공사장의 막일을 하던 명숙 아비는 어둑 해질 무렵에 으레히끄윽끄윽 소리를 앞세워 양철 대문을 발로 차며 들어섰다. “ 이런 우라질, 다 어디 간거야, 끄윽. 서방이 왔는데 이런 옘병을 할.. 내다 보지도 않고 화투질이야. 끄윽, 좋다 이거야. 내 본때를 보여주지.

 요시, 끄윽, 명숙아앗…칵, 퉷..정숙앗..”

  딸년들의 이름을 시작으로 주정이 나올라치면 명숙네는 재빨리 옥주네 골목길 부엌으로 숨어 들었다. “니애미 어디로 갔냐? 이..썅.. 우라질..요시.. 다 죽었어. 칵, 퉷…”

 그때마다 닥치는 대로 휘둘러 때려부수기 시작했고 손에 힘이 다 빠져 주정으로 지쳐 쓰러질 때 쯤에야 명숙네가 슬그머니 비닐 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손짓으로 명숙을 불러낸 어미는 부뚜막에 쭈구리고 앉아 훌적 거리며“에이구, 이 한심한 것아 다음부터는 바보처럼 때리는 대로 맞지 말고 도망가 숨어 있어. 그럼 지깟게 별 수 있겠냐.” 하는 귀띰을 해주었다.

  밤중에 자빠져들 자지 않고 무슨 쑥덕공론 이냐는 안성댁의 고함을 끝으로 포개지듯 끼어 잠든 후에야 지긋지긋한 하루가 마감되었다.

 명숙이 중학교에 입할 할 무렵 교복 사줄 형편도 못된 탓에 옥주의 교복을 물려 입긴 했으나 그런 것 조차도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마냥 기특하고 의젓해 보였다. 낡고 작아진 옷 속에 감추어진 명숙의 눈빛은 풀 먹인 빳빳한 칼라 만큼이나 총명한 빛을 뿜었다.

 돈을 쳐 발라가며 키운다는 옥주를 제치고 굴러온 돌이 온갖 상을 독차지 하다 보니 걸핏하면 옥주 입에서 치사한 소리가 쏟아져 나와 몰래 눈물 짓게 만들었다.

 “교복도 못 사 입어 내꺼 얻어 입은 주제에 잘난 척은… 네가 나 아니면 중학교 문턱이나 밟아 봤겠니?” 교만하고 건방진 딸을 타이르는 옥주엄마가 더 무안해 하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옥주의 콧대는 찢어진 눈꼬리 만큼이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드세고 귀한 주인집 딸래미 앞에서만은 수 없이 꼬랑지를 내리며 절절 기는 명숙의 모습이 마치 구멍가게의 똥개만큼도 못한 신세였다. 가을 소풍이 있던 날,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정숙으로 인해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소풍도 땡땡이 친 채 행방불명이었던 정숙은 만화 가게에 머리를 묻고 하루를 보냈는데 통금 싸이렌에 맞춰 주인 손에 이끌려온 정숙을 보며 안성댁이 같잖다는 투로 한마디했다.

 “칠뜨기가 괜히 칠뜨기여. 내 별명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어놨지. 나갔으면 그만이지 뭣하러 다시 기어 들어와. 그깟놈의 학교 안다니면 대순가..이 김에 때려 치워. 괜히 지애비 등골 빼먹지 말고…” 눈에 가시같은 기집년들이 하나라도 없어져 주길 바랬는데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한 심술이라도 난 것처럼 몹시 고약을 떨었다.

 김밥을 싸가지 못하는 것이 땡땡이 이유였던 정숙은 하루종일 쫄쫄굶으며 소풍이라고 몇 푼 찔러준 것을 만화 가게에 몽땅 털어넣었다. 그 김에 만화 가게를 알게 된 경숙이 틈만 나면 뽀로로 달려가순정 만화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던시절이었다.

 빠른 손보다 더 빠른 눈 놀림으로 슬쩍슬쩍 집어다보는 것이 얼마 안되는 대가를 치룬 것 보다 더 많이 본다는 사실에 기분이 찢어지도록 좋았다. 그보다 더 기분째지게 좋았던 것은 찬장 맨 윗칸의 작은 종지 뚜껑을 열면 명숙네의 전재산과도 같은 동전들이 모셔져 있었는데 야금야금 빼돌리던 1원 짜리가 경숙을 환희에 빠트렸다.

  만화책을 실컷 보다 아이스케키 소리에 뛰어 나가 팥으로 뭉친 그것을 사먹노라면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달콤한 행복감에 빠져 들었다. 억척스럽고 극성스럽기 짝이 없는 경숙은 동네의 또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제치고 골목 대장을 도맡기도 했다.

 하루는 별명이 만두였던 두살 위의 골목 대장이 영 시덥잖던 차에 궁안산으로 끌고가 대결해 이긴 사람이 대장이 되는것이라 으름장을 놓으며 나무가지를 던져주었다. 지레겁에 질린 만두가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것으로 경숙의 승리가 되었으나 막상 속으로는 이 아이가 정말 목검을 휘두르며 덤벼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덜컥 겁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이판사판 합이 여섯판이라고… 상대에게 허점을 보인다는 것은 결코 용납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날 이후 만두는 경숙의 오른팔이 되어 충실한 심복노릇을 하며 떠 받들었다. 머리핀이나 옷핀을 싹쓸이 해서 왕 옷핀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으며 언니들의 교과서를 몰래 찢어 만든 크고 작은 딱지들은 치는 족족 다 뒤집혀 찬장 서랍에 수북이 쌓였다.

 그것을 보던 명숙네가 우스개 소리를 했으나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찌든 삶에 서린 한이 보였다. “동전은 죄다 훔쳐가 만화가게에 털어넣더니 대신 딱지로 채워놓냐…에이구 저게 딱지가 아니고 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내 날마다 업구다닐텐데..”

 그 소리를 들으며 경숙은 빈말 일지언정 이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 많이 벌어다 호강 시켜주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믿음을 주었다.

  골목 대장에 딱지왕은 물론 저만치 돌멩이를 세워 놓고 던져서 쓰러뜨리는 비석치기나 땅따먹기도 식은죽 먹기였다. 경숙에게 걸려 들면 땅이든 옷핀이든 그날은 임자 제대로 만나는 날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동네 어귀에 슬그머니 구덩이를 파 놓고 그 위를 짚으로 살짝 덮은 다음 누가 빠지는지를 숨어서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윗동네의 부잣집들을 한바퀴 돌며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도 앞장 섰고 겨울이면 남의 김장독을 몰래 열어 흰 눈에 버얼건 김치 국물 뚝 뚝 흘려가며 훔쳐 먹던 김치 맛도 잊을 수 없는 꿀맛이었다. 남의 집앞에 연탄재 잔뜩 쌓아놓고 도망가기,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이라는 노래를 목청껏 외치며 안성댁의 표현대로 가랑이 일그적 거리던 고무줄 놀이등 경숙에게 있어 놀이란 놀이는 거칠 것이 없었다.

 동네 어귀의 뽑기 총각이 침 발라가며 애써 뽑은 모양을 바꿔주지 않자 화가 난 경숙이 난동을 부리며 그 비싼 설탕 깡통을 엎어 버렸는데 너 같은 년 쳐봤자 개 값 물어줄 일 있느냐며 천막을 거두었다. 쪼그만게 개지랄도 떤다는 말 끝에 저런 악바리년 살다 살다 첨 본다는 소리를 했는데 뽑기를 너무나도 잘해 첨 본다는 건지 아니면 어린것의 지랄맞은 성격에 질려 버린 것인지 어쨌든 뽑기 총각은 그렇게 그 동네를 떠났다.

 하지만 국자에 설탕을 녹여 찍어내던 여러 가지 모양들이나 하얀 돌덩이처럼 생긴 달고나는 잊을 수 없는 옛 시절의 향수병 같은 맛이 되어버렸다.

 

  닥지닥지 붙은 장위동 판자촌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이층 양옥집이 있었는데 이름 또한 생소한 구슬이는 아버지가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못 된 짓을 서슴지 않았다. 5원씩 받아 챙기며 표준 전과를 빌려주는가 하면 온갖 감언 이설로 전도를 하고는 한 주일이 시작 될때쯤 이면 꼭 싸움을 걸었다. 돈이 없는 경숙은 표준 전과를 빌리는 대가로 숙제를 도맡았고 그 애는 조금이나마 양심이 있었던지 얄밉게 쪽쪽거리며 눈깔 사탕을 아주 조금 깨물어 나눠주었다.

  사나흘이 지나면 다시 또 혼자만 가지고 있는 전과를 미끼로 살살 꼬득이며 전도를 반복했다. 그 애의 아버지는 딸의 고약한 소행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도상은 늘 그 애의 차지였다. 부당하게 전도상을 휩쓸던 것을 못마땅해 하던 경숙은 전과의 중간 중간을 감쪽같이 찢어내기도 하고 교회 귀퉁이에 불려 나가 장난으로 한주일을 마감 했다.

 교회나가는 조건으로 받는 눈깔 사탕에 눈이 멀어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가긴 했으나 잿밥에만 욕심 부리던 나머지 모두 기도합시다… 라는 목사님의 경건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눈깔 사탕보다 더 큰 눈을 떼굴떼굴 굴리며 장난을 일삼았다. 그 순간을 틈 타서 키득거리며 신발 감추기 놀이도 했고 누가 기도 시간에 두 눈 번쩍 뜨고 허튼 짓 하는지의 감시도 톡톡히 했다.

 교회에 나와 앉아 장난만 치다가는 이 담에 죽어서 불구덩이 지옥으로 떨어 질꺼라는 순진한 친구의 말을 들으며 경숙은 콧방귀로 세상 다 산 것만 같은 어른스런 말투로 대꾸했다.

 “누가 그러드라. 천당 가봤자 심심해서 못 산대. 지옥으로 가야 다시 다 만날 테니 얼마나 좋겠니. 너나 열심히 기도해서 혼자 천당 실컷 가라. 나중에 외롭다고 엉엉 울지 말고…”

 말 같지도 않은 허풍에 그 애는 귀가 솔깃 했는지 그게 정말이냐며 경숙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저녁해가 꼬리를 감출 무렵 동네 어귀에 나타난 명숙아비의 옆에는 순경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다방구 놀이를 하던 경숙이 휘둥그레진 얼굴로 부리나케 엄마를 찾으며 아버지랑 순경이 같이 온다는 말에 옥주네 화투 멤버들은 재빨리 판을 엎은 채 다락으로 숨어 들었다. 일부러 작정하고 신고한 사람처럼 멀쩡한 정신에 흠, 흠 헛기침을 하며 이 방입니다… 점잖을 떨던 명숙 아비는 오로지 현장을 잡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예의도 없이 남의 안방 문을 확 열어 제꼈다.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던 옥주 엄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고 바쁜 사람 헛걸음 치게 만들지 말고 제대로 신고하라는 순경의 핀잔이 들렸다.

 머쓱해진 명숙 아비는 우라질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야… 하며 비닐 문을 발로 냅다 걷어 찼다. 사람 좋은 탓인지 정해진 화투 멤버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번번히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옥주네는 방 빼라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았다.

 월사금을 못내는 경숙이 수차례나 집에 돌려 보내졌어도 명숙네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화투짝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던 시절이었다. 시간을 떼우느라 장위 시장을 두어 바퀴 돌면서 군침을 삼키던 경숙은 시장 중간쯤에 다다랐을때 큰 결심을 한 것처럼 건어물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땅콩이 눈 앞에 어른 거려 슬쩍 한 알 훔쳤으나 입에 넣어 보지도 못한 채 도둑년 소리를 듣고 혼찌검만 당했다.

 손바닥에 꼭 쥐고 있던 땅콩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땅콩 주인인 땅딸이 아저씨는 엄마를 데려 오라는둥, 순경한테 가서 혼이 나야 못된 짓을 안하겠느냐며 맘 놓고 협박을 해댔다. 그 시간에 시장 바닥에서 땅콩이나 훔쳐 먹는 계집 아이가 당연히 학교는 다니지 않을꺼라는 생각을 했었는지 학교 소리를 꺼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정작 해야 할 일은 뒷전으로 미룬 채 추접스런 꼴만 당한 경숙은 선생님 앞에 가서야 엄마가 집에 없더라는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별명이 흰 염소인 늙은 여선생은 들은 채도 안하며 경숙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월사금도 못내고미운털 박힌 경숙을 들들 볶는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던 흰 염소는 엄마를 데려오던가 아니면 학교에 오지 말라는 명령을 하며 말 조차도 아까웠는지 눈짓으로 다시 돌려 보냈다. 시장 끝의 득실거리게 넘쳐나던 고아원 아이들과 똑 같은 차별을 당하다 보니 차라리 고아원 소속이라면 월사금 따위로 되돌려 보내지는 수치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을 것 같아 어찌 보면 경숙의 처지가 가장 밑바닥처럼 느껴졌다.

 흰 염속의 협박처럼 그 좋아하는 학교를 정말 못다니게 되면 어쩌나 하는 순진한 마음에 허겁지겁 먼 길을다시 달려온 경숙은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 대기 시작했다. 옥주네 방문 앞에 되는대로 벗어 던져진 신발을 보며 엄마… 하고 부르려다 그냥 돌아서는 경숙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또 화투판을 벌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은 채 월사금이 밀려서 왔노라는 말 한마디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일쑤였다.

  누가 기다려 주는것도 아니건만 헐레벌떡 시장 중간까지 땅콩 주인을 피해 뛰다 보면 어린 나이에도 신세 한탄에 이어 끝없는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이 담에 어떤 어른이 될런지 두고 보자 하는,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혼자만의 앙심을 품으며 뛰는 가슴은 그 앙심보다도 더 큰 소리로 콩닥콩닥 방망이질 쳤다.

  몸도 마음도 서릿발에 눌려 버린 것처럼 지친 날에는 꿈 속에서 찔끔찔끔 오줌을 싸곤 했는데 잠결에 느껴지는 아랫도리의 축축함에 깨는 순간부터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그럴때면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대로 깔고 앉아 그 자국을 말리느라 홀딱 밤을 세우다가 다음날 흔적을 들킬세라 버거운 이불을 개기도 했다.

 오밤중에 자빠져 자지 않고 귀신처럼 웅쿠리고 앉아 청승을 떨더라는 안성댁의 욕설이 두꺼운 이불의 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추운 겨울 날에도 안성댁은 손바닥 만한 방을 쓸고 닦느라 영식을 제외한 네 자매를 밖으로 내몰았는데 기집년들 똥가루 떨어진다는 명분으로 한참이 지나도 불러들일 줄을 몰랐다. 군데 군데 기운 자국에 무릎이며 엉덩이가 툭 툭 불거져 나온 빨강 엑슬란 내복은 다 닳아빠져 번들거렸고 낡은 고무신 위로 삐쭉 고개내밀던 발등은 때에 쩔은 얼룩무늬였다. 오돌거리며 입가에 두 손을 모은 채 호호 불다가도 처마 끝에 늘어져 있는 수정 고드름에 위안을 삼았다.

 이제나 저제나 그 놈의 방이 다 치워져 불러들이기만을 학수고대했으나 안성댁의 핑계 거리는 늘 반나절을 넘기기 일쑤였다. 먼지와 함께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기집년 들을 훌훌 다 털어 내버리고 싶은 무언의 앙갚음 같은건 아니었을까…

 없는 형편에 지지리 재수도 없는 탓인지 경숙은 늘 차별이 심하고 까탈스러운 여선생만 만나는 학교 생활에 점점 회의를 느꼈다. 신체 검사를 하던 날, 목간이라고 해봐야 연중 행사에 불과 했던 터라 까마귀가 형님으로 모실만큼의 뗏국물 투성이였던 경숙은 교실의 구경거리였다.

  낡은 런닝 바람의 양팔이며 목 언저리가 총 천연색으로 번들거렸다. 반질반질한 넓은 이마에 파리가 미끄러질 것 같은 여선생은 회초리로 경숙의 어깨를 툭 툭 치며 얄팍한 입술로 망신살 뻗치는 소리를 토해냈다. “얘 얘, 이게 뭐니 도대체, 까마귀 사촌도 아니고, 좀 씻고 살아라, 아이구 드러워서 원, 느이 엄만 이런꼴로 애 학교를 보낸다니, 신체검사 날이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있는대로 자존심이 상해 고개를 들 수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더 창피 했던건 남자 아이들의 우뢰와 같은 함성이었다. “얼레 꼴레리 누구 누구는 때 박사래요. 얼레 꼴레리…” 그날부터 아이들은 경숙을 때 박사라고 놀려댔다. 정숙에게 문둥이라고 놀리던 사내 아이들 쯤이야 눈 부라리는거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의 때 자국 앞에서는 그런 것도 통하지 않았다. 깍장이에다 사납기 까지 한 젊은 선생은 어느 날 성적 순으로 분단을 나눈다며 점수를 불러댔다. 비록 전과를 빌려 쓰는 처지이긴 하지만 그까짓 시험 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웠던 터라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바른생활 총 5과목에 사회 문제 하나 틀린 것으로 뻔한 점수를 알고 있었는데 수분단에 앉을 첫 번째 타자로 장경숙을 호명하던 선생은 아니, 아니야 잘못 불렀어… 제 풀에 화들짝 놀라며 변명을 했다.

 그러더니 집안 좋고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는 이 미란을 그 자리에 앉혔다. 어느 세월엔가 불러주겠지 하며 목 빼고 기다리던 경숙은 가분단 맨 마지막에 불리어 졌다. 더 웃기는 일은 쉬는 시간 마다 모자라는 공부 가르친다는 명분하에 수분단의 아이들이 우루루 떼거지로 가분단에 몰려 들어 변소가는 시간마저 빼앗았다. 눈이 찌익 올라간 값을 하느라 학예회 때 콩쥐 팥쥐의 못된 팥쥐 역을 맡았던 돌대가리 이 미란이 치과 의사인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은 채 교정한 이빨을 쑥 내보이며 상냥한 척 엉터리 설명을 하느라 버벅거렸다. 하지만 알아도 모르는 척 고개까지 끄덕여 주며 어떤 때는 묻기까지 하면서 또 어떤 때는 팥쥐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만큼 거꾸로 설명을 해주는 선심까지 쓰며 비위를 맞췄다.

 돈이 없으니 속알머리도 빼 던져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 그 애의 교정한 이빨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이빨에 꽉 조여지도록 부착된 철사꾸러미가 마치 돈으로 보이는 공허함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갓 결혼한 신혼의 불여시 선생은 꼭 둘째 시간이 끝날 때쯤 고아원 아이인 혜자를 자기 집으로 심부름 보냈다.

 아궁이의 연탄불을 갈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혜자는 끝마치는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폐병 환자 같은 누렇게 뜬 얼굴로 켁켁거리며 들어섰다. 그런 혜자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던 경숙은 그나마 고아가 아닌 것이 천만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졌다.

  부모가 버젓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 순간 만큼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찌그러진 환경에 짓눌리며 간신히 국민 학교라는 졸업은 했으나 경숙은 중학교에 진학할 꿈도 못 꾸었다. 남들 다 가는 곳에 보내지 않으니 당연히 그냥 못 가나 보다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아무런 이유도 내세우지 않았다. 국민 학교와는 달리 보내주면 가고 안보내면 못 가는 것이 중학교 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가만 있는데 명숙네가 혼자 절절 매며 한 해만 지나면 꼭 보내 준다는 말을 했으나 그 말 뜻조차도 무슨 소리인지를 몰라 반응이 없자 에이구 헛똑똑이.. 라는 말을 덧붙혔다. 보잘것 없는 살림은 점점 더 궁색해져 궁안산 자락의 구석진 곳으로 이사를 하는데 명숙 아비가 끄는 리어카의 남루한 보따리들이 그것을 증명하듯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오랜 세월의 화투 멤버인 옥주 엄마는 명숙네의 손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옹색한 셋방살이를 할 망정 진실하고 성실한 명숙네를 남다르게 생각했던 터라 서운한 감정이 한층 더 했다.

 좁은 골목 끝의 디귿자형 집에는 모두 여섯 가구가 살았는데 생선 장수 박씨 아줌마 모녀와 홀아비 지씨 아저씨, 그리고 가운데 방에는 윤아 할머니의 신당이 차려져 있었다.

 그 옆 방이 미혼모 윤아 엄마와 인형처럼 예쁜 윤아의 부엌겸 소꿉같은 살림이었다. 주인인 정란이네가 큰 방을 쓰면서 다락방에는 중학생인 정식이의 비밀스런 아지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채 몇 걸음도 안되는 부엌을 사이에 두고 그나마 큰 방이 안성댁과 영식의 거쳐였고 작은 방이 나머지 여섯 식구의 후라이판 같은 공간이었다. 지지고 볶고 그야말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언제나 마당 한 가운데서 들리는 안성댁의 큰 기침과 욕설로 명숙네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 우라질년들 여태 자빠져 자고 뭐하는 짓 들이여. 해가 중천에 뜨도록 이불 속에 자빠져들 있으면 어디 밥 쳐먹고들 살겠다. 쯧쯧…”

 기집년이 소학교만 나와도 감지덕지지 중학교가 뭐 말라 비틀어진거냐며 경숙의진학을 결사 반대하면서 억지 춘향으로 단칸방을 면해서인지 안성댁의 입에서는 쉴 새 없는 사바사바 소리와 함께 끝 없이 쓸고 닦았다. 걸레질이라도 할때면 그 놈의 똥가루 떨어진다는 노랫소리가 여지없이 네자매를 밖으로 내모는 통에 순한 정숙이 불만을 다 토해낼 지경이었다

 . “할머닌 맨날 우리만 내쫓더라. 추워 죽겠는데… 할머니 방이나 치우지 뭐하러 여기까지 쓸고 닦느라 내쫓구 난리냐구. 영식인 얼어 죽을까봐 이불속에 꽁꽁 묻어두면서.”

  모처럼 쫑알거리는 정숙을 부추기듯 명숙이 슬그머니 지들만의 암호를 보냈다. “니비가바 차바머버. 귀비시빈 가바트븐 하발머버니비..”<니가 참어. 귀신 같은 할머니…>

  맡 끝에 비읍자를 섞어 알 수 없는 소리로 깨득거리면 안성댁은 육시랄년들 비싼 밥 쳐먹고 할 짓들이 없으니 꽹가리 소리를 다 한다며 눈을 흘겼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분노를 그저 욕으로 터뜨렸다.

 어린 시절, 빨간 엑슬란 내복차림에 햇빛 드는 처마밑을 찾아 병든 닭, 모냥 웅쿠리고 있다보면 아비에게 쫓기다 숨었던 기억들까지 머리를 들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영광의 상처로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것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초라한 추억이었다.

  손바닥 만한 방을 몇시간에 걸쳐 청소를 끝낸 안성댁은 사바사바 소리와 함께 네자매를 다시 들들 볶았다. 보다 못한 명숙네가 아따따, 그 놈의 방이나 치울 일이지 누가 여기까지 들쑤시랬느냐며 삼팔선 같은 선을 그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럴때마다 하발머버니비 제배바발 주부거버쓰브며번 조보케배써버.<할머니 제발 죽었으면 좋겠어..> 라며 명숙이 혼자 앙탈을 떨었다. 대가집 마나님 같은 거만스러운 태도로잘난척하며 좁은 공간을 휘젓는 모습에 저절로 눈이 흘겨졌다.

 

 시장에서 생선 자판을 하는 박씨 아줌마네는 노처녀 딸이 하나 있었고, 또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었다. 저녁이면 생선 비린내 풀풀 풍기며 들어오는 아줌마의 뒤를 이어 온 집안의 식구들이 그 방으로 몰려 들었다. 누가 정해 놓은 일도 아니면서 어느날 부터인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습관임에도 박씨 아줌마 모녀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 틈에 끼어 앉아 어깨 너머로 보았던 텔레비전 속의 세상은 열네살 경숙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무작정 훔쳐내고 싶은 커다란 꿈이었다. 그런 날은 으례이 얼굴만 겨우 비춰주는 안성댁의 색경을 몰래 집어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꿈을 꾸었다.

  흐드러지게 핀 목련보다 더 활짝 웃어도 보고 할미꽃 보다 더 애절하고 슬픈 표정도 만들며 그야말로 여우톡갱이 같은 도섭을 했다. 그런 경숙을 노처녀 선이는 친동생 처럼 아껴주었다

 . 남들 다 가는 학교도 중단한 채 우물가에 쭈구리고 앉아 고된 일이나 하는 경숙이 안됐던지 살짝 불러들여 손바닥 만한 김에 하얀 쌀밥을 듬뿍 싸서 주었고 전날 팔다 남았을 고등어며 꽁치를 들려 보냈다. 그럴때면 찰싹 맞을 정도로 비린 것을 좋아하던 안성댁이 쓸모 없는 기집년도 지 밥벌이는 한다며 입이 찢어졌다.

  어디서 난 것인지 뻔한 사실을 외면한 채 너무도 떳떳하게 뼈를 바르는 모습은 추접스럽기까지 했다. 아무 하는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선이가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고 껌 짝짝 씹으며 저녁 외출을 할때면 그 모습마저도 신비롭게 느껴졌다.

  기집년이 손바닥 말한 걸레쪼가리 걸치고 엉덩이 뒤흔들며 사내놈이나 후리러 나간다는 안성댁의 고약한 소리에 박씨 아줌마가 퍼올리던 두레박 물을 내동댕이 치며 거품을 물었다. “어떠니 저떠니 해도 내집 귀한 새끼니 허튼 소리 한번만 더 했다가는 누구든 칼부림 나는줄들 알어.” 차마 대놓고는 못하겠던지 다 싸잡아서 엄포를 놓은 박씨 아줌마의 칼부림 대상이 안성댁 이라는 것은 뒷집 누렁이도 알만한 일이건만 정작 험한 입 놀리던 안성댁만은 곧 죽어도 깨갱이라고 목에 핏대 세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다 저녁에 떡칠하고 나가 할 짓이 뻔할 뻔자 아닌감… 그렇게 역성 들며 키워 봤자 자식 망치는 줄도 모르고 에잉 한심한 것들… 니집 내집 할거 없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기집년들…”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박씨 아줌마를 달래며 고약스러운 시애미를 대신해 명숙네가 사정했기 망정이지 무슨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날 판국이었다.

 저녁 나절의 가끔씩 하는 외출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박씨 아줌마는 꼬질꼬질 뗏자국이 얼룩진 고쟁이에서 비린내에 쩔은 돈을 뭉턱뭉턱 꺼내 주었다. 하루종일 먹고 뒹굴며 재방송만 틀어대는 선이의 손은 비단결보다 곱고 예뻤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경숙아 노올자.. 하며 우물 건너편을 향해 상냥하게 불렀다. 멍하니 앉아 담벼락에 기어오르는 벌레의 수나 세고 있던 경숙은 총알 보다 더 빠르게 선이에게로 달려갔다. 미제 비스켓이나 초코렛 따위를 한 주먹 꺼내주며 고운 얼굴로 반겨주는 선이가 경숙에게는 가장 부러운 존재였다.

 집 떠나면 다른 좋은 세상이 기다려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 멋대로 중학교도 포기한 채 가출을 일삼던 불량 소녀였을 망정 곱디 고운 손도 부러웠고 색다른 먹을거리에 더 목이 미어졌다. 찢어지게 가난한 과부의 딸 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선이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처녀였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였는지 유난히 경숙을 챙겨주던 그 따뜻한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것만 같았다. 얼마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선이가 노랑머리의 코쟁이와 여인숙을 들락 거리더라는 소문에 안성댁은 코웃음을 치며 또 고약을 떨었다.

 “내 뭐랬어. 귀신을 속이지 날 속여. 하구 다니는 짓거리가 영 심상치 않더라니. 지깢년이 때 빼고 광내봤자 양갈보지 뭐여 육시랄…박씨 아줌마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안성댁의 험한 욕설에 정말 칼부림 날 일이라며 모두 쉬쉬거렸으나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동대문 시장의 지게꾼인 지씨 아저씨는 그날 벌어 그날 모두 술로 탕진하는 슬픈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통금이 가까울 무렵이 되어서야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를 외치며 술냄새와 딸꾹질 소리가 온 집안에 퍼지도록 요란한 귀가를 했다. 그때마다 안성댁의 시들지도 않는 욕설이 한바탕 보태졌지만 주정이 극을 달릴 만큼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육시랄놈, 다 늙어 빠진게 뭐 더 놀겠다구 허구헌날 육갑을 떠는건지… 작작 퍼마시고 여편네나 찾을 일이지 날마다 그놈의 술에 쩔어사네 그랴…” 이사 오기가 무섭게 살랑거리고 다니며 온 집안의 속사정을 파악했던 안성댁은 누구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알고 있는 판국에 있던 터라 마누라가 주정에 못이겨 집 나갔다는 사실을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우물가의 맨 마지막 손님은 항상 지씨 아저씨였다. 딸꾹 한번에 두레박 퍼올리며 반쯤 쏟아진 그것을 텀벙 내팽개치는 소리…. 그리고는 씻는지 어쩌는지 푸드덕 거리는 소리에 틈틈이 들려오는 늙어지면 못노나니 하는 그런 노랫 가락이 결코 흥겨운 소리만은 아니었다.

 그 다음 차례는 꺼이꺼이 신세 타령으로 이어지는 두어시간 가량의 그야말로 쌩쇼가 남아 있었는데 손에 잡히는대로 마구 던지며 문풍지를 뚫어버리는 것은 다반사였고 에이 퉷퉷… 쉴새 없이 뱉어대던 가래침은 멀찌감치 튀어 나갔다.

 심란하리만큼 정확한 순서대로 이어지는 주정이 명숙 아비보다 훨씬 한 수위 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집나간 마누라를 향해 온갖 욕설을 억세게 퍼붓다가도 임자. 보구싶어 돌아와…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하는 소리가 자장가 처럼 희미해질 무렵 크어억 하는 괴이한 코울음으로 주정을 마감했다.

 

  곱상하게 쪽진 머리에 코스모스처럼 야들야들 가냘픈 외모의 윤아 할머니를 보고 있자면 어찌 저리 고울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눈보다 더 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채 손발이 닳도록 비는 정성으로 새벽을 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굿판을 돌기도 했으며 어느때는 산행을 가느라 한달씩 집을 비우는 적이 다반사였다.고등학교를 중퇴한 명선은 지 어미를 쏟 빼다 박았는지 변두리에 어울리지 않는 미모를 한껏 뽐내고 다녔다. 차림도 요란했을뿐더러 엄마를 둔것에 대한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

  오히려 돈이나 듬뿍 던져주며 자주 떨어져 지내는 것이 덜 성가시고 한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남녀 공학을 다니며 줄줄이 못된 놈들과 엮이더니 밥 먹듯 정학 처분이 내려졌다

 . 그 애의 주변에는 언제나 껄렁껄렁한 불량배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 묘한 짓거리들을 일삼으며 마치 하녀 다루듯 홀대를 했지만 그런 것 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사내 놈이라면 환장을 했는지 이놈 저놈 할거 없이 살랑살랑 눈웃음 치며 다 받아주더니 끝내는 신당의 돈을 싹슬이 하는 것으로 가출을 해버렸다.

 무당 어미의 눈을 속여가며 겁도 없이 신당에 숨어들어 놈팽이들과의 추접한 연애 행각이 꼬리를 물더니 결국엔 졸업도 하기 전에 대형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고 딸년 앞날도 내다 보지 못하는 주제에 돈 받아 쳐먹어가며 남들 앞길 봐주는 꼴이 우습다는 안성댁의 비웃음이 온 집안에 가득찼다.

 “아무리 사내놈에 기갈 들려도 그렇지 겁대가리 없이 신당에 벌거벗고 자빠져 있는 년놈들을 내 한두번 목격한게 아니여. 해픈 딸년 단속도 못한 꼬락서니 하고는 쯧쯧..”

 유일하게 안성댁이 꺼리는 것이 바로 귀신이었는데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툭하면 시루떡을 구석 구석 놓아가며 비는 모습에서 진지함을 엿볼수가 있었다.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기웃거리면 기집년들 때문에 부정탄다는 소리와 함께 눈을 흘기기 일쑤였다. 마치 신처럼 느껴지는 명선네를 흠 잡을 일이 없었던지 유일하게 갈구지 않더니만 그동안 참았던 것을 토해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험한 소리를 지껄였으나 상대는 눈도 꿈쩍 안하며 무시를 했다. 아무 때고 명선이 돌아오리라는 기대 속에 그 방은 언제나 환한 등대같았고 빌고 또 비는 정성으로 밤을 세웠다.

  신당 앞의 쪽마루에 걸터앉아 긴 한숨과 함께 뻐끔거리는 모습이 수시로 눈에 들어왔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이면 다시 불을 밝혔고 온 집안의 불이 다꺼지도록 우물가를 서성거렸다. 남모르게 훔치는 눈물 뒤로 긴 한숨의 행렬이 끝없이 불거져 나왔다.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에 눈이 멀어 애비뻘이나 되는 어른을 흠모한 죄로 낳은 자식이었으나 죽을만큼 흠씬 두들겨 맞는 댓가외에는 아무것도 건질수가 없었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겠던지, 아니면 아이를 찾겠다는 행패와 집념에 질렸던지 어느날 너나 가져라 하는 식으로 인심쓰듯 던져진 아이앞에서 이를 갈며 키워 놨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 당연한 노릇이었다.

 목구멍에 풀칠하느라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이던 것이 무당의 자질인것도 모른채 뒤늦게 어찌어찌 신내림을 받아 기구하게 살아온 가엾은 모녀였다.

 석달이 지나서야 핼쑥해진 모습으로 명선이 돌아왔고 그런 그녀를 버선발로 뛰어나가 얼싸안으며 통곡을 했다. “에이구 가엾은 내 새끼, 어디갔다 이제야 온거여.”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온 것도 아니건만 세상에 어미 없는 것들은 어느 구석에 발도 붙이지 못한 만큼 반기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그 어느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애정이 가득한 울부짖음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우물가의 박씨 아줌마를 새초롬하게내려다 보며 두레박질을 하던 명선이 헛구역질을 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야무지게 얻어 먹는 생선에는 새새거리던 안성댁이 비린내가 나네 어쩌네 괜한 트집을 잡는 명선에게 맞장구를 쳤다. 지난날 박씨 아줌마와의 싸움이 잔뜩 응어리로 남아 있는 안성댁에게 명선의 트집은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어떻게든 한번쯤은 푸닥거리를 하며 속을 뒤집어놔야 지랄맞은 성미가 후련해 질 것 같은데 그 짓을 못하고 참자니 좀이 쑤시던 판국이였다.

 “아니, 육시랄놈의 비린내가 진동을 하니 어디 빈정 상해 우물을 같이 쓸 수가 있나. 따로 파 쓰던가 해야지.” 우물 팔 능력도 없는 주제에 말 같지도 않아 대꾸가 없는건지 이 쪽이야 말로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건지 박씨 아줌마는 아무 말이 없었고 다시 두레박질을 하던 명선이 앙칼을 떨며 웩웩 거렸다.

 박씨 아줌마, 호랑이 안성댁, 안채의 정란엄마의 시선이 모두 쏠렸지만 명선은 뭘 봐욧, 사람 첨보나 괜히 난리들이야… 하며 그 자리를 떴다. 한 눈 에 눈치 챌 수 있는 뻔한 사실인데도 당사자가 너무 떳떳한 것에 오히려 보는 쪽이 무안할 지경이었다. 화제가 금방 명선에게로 쏠리자 안성댁은 더 신바람이 나서 떠들었다.

 “대가리 피도 안마른 년이 애 밴 것이 무슨 벼슬이라고 고개 빳빳이 치켜 들고 저 지랄이여 지랄이. 옛날 같으면 신작로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일 일이지 암. 신당에 년놈들이 벌거벗고 자빠져 있는 걸 내 한두번 본 줄 알어? 사단이 날줄 내 진작에 알았지.”

 거침없이 떠드는 심한 소리에도 쳇, 별꼴들이야 지깢것들이 뭐 보태준게 있다고… 큰 체를 하던 명선이 한가닥 마지막 예의인지 불러오는 배를 숨기느라 약을 먹었다는 말도 돌았고 궁안산 꼭대기에서 굴렀다는 소문이 떠들석 했다.

 무성한 말꼬리 들이 시들해질 무렵 우물가의 빨래줄에는 기저귀가 펄럭였으며 혼자 몸으로 명선을 기른 그 어미의 모습은 더 없이 행복해 보였다. 열 여덟살 꽃다운 미혼모라는 이름표가 그들 모녀에게는 아무런 근심도 장애도 되지 않았고 어리디 어린 모녀에 대한 정성만이 눈물 겨울 뿐이었다.

 

 지방 공사장을 전전긍긍하는 정식의 아버지는 사별로 남겨진 아들을 위해 재혼을 했으나 고약한 혹만 붙인 꼴이었다. 씨름 선수 못지 않은 풍채에 이목구비가 사납게 생긴 아낙이 정란을 앞세워 들어오는 동시에 정식의 처지는 개밥에 도토리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운동장 만한 방에서 밀려 손바닥 만한 다락방으로 쫓겨난 정식에게 두 살 터울인 정란의 괄시는 이루 말 할수 없었다. 모녀가 배두들겨 가며 퍼질러 먹다 남은 밥상에서 찌끄러기 찬밥을 눈물에 말아먹기 무섭게 삐꺽 거리는 다락문을 열고 저만의 세상으로 숨어버렸다.

  처음에는 다락방이 춥고 무섭기도 했지만 새엄마와 팥쥐 동생의 구박에 비하면 그런 것쯤 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오히려 찍찍거리는 쥐소리에서 위안을 받으며 안정을 찾는 장소로 바뀌어 갔다. 저 혼자만의 낙원에서 빼꼼히 열린 쪽문 틈으로 음흉스런 눈길만이 번득일 뿐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원하는 것은 다 엿볼수 있는 그곳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식의 퀭 한 눈빛은 아이의 그것이 아닌 잔뜩 구름낀 빛깔로 변해갔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난 정란네는 마실나온 동네 아낙들을 꼬득여 화투판을 벌이는게 가장 큰 일과였다. 그때마다 정식은 숨소리도 죽인채 다락방에 갇혀야 했고 간간히 들려오는 정란의 쩝쩝 소리에 입안의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밤새 호롱울 밑에서 부리나케 뜨개질을 하던 명숙네와 정란엄마, 그리고 윤아 할머니가 화투판의 주 멤버였다. 건성건성 점심상을 들이밀기 무섭게 명숙네가 가장 먼저 자리잡았고 윤아야…소리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고운 자태 만큼이나 사뿐히 윤아 할머니가 건너왔다.

  커다란 덩치를 휘두르며 부침개 뒤집으랴 화투짝 뒤집으랴 정란네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화투판은 해가 숨은지 한참을 지나서도 그칠 줄 몰랐는데 안성댁의 귀에 익은 욕설과 불호령이 떨어져서야 할 수 없이 뭉기적거리며 아쉬운 판을 덮었다

 . “육시랄년들. 등따시고 배떼지 부르니 허구헌날 노름질이여. 해 넘어가면 끼니들은 해야할거 아녀.” 안성댁의 조바심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집년들 때문만은 절대 아니였다.

 금쪽같은 3대 독자 영식을 염두해 두고 떠든다는걸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 “아이구 이쁜 내새끼. 어디서 이런게 나온거여.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솟아났나.” 어디서 나온 놈인지 뻔히 알면서도 허풍이 가득한 소리에 침 발라 문구멍 뚫고 들여다보면 다 큰 영식을 물고 빠는 모습이 과간이었다. 뭘 우물우물 씹다가 입에 넣어주려 하면 영식이 더러워서 싫다는 볼멘 소리를 했고 그런말 조차도 서운한 안성댁은 얇은 눈꼬리가 새초롬 해지면서 다시 새것으로 비위를 맞추곤 했다.

 편물점을 중간에 끼고 솜씨 좋은 뜨개질을 하던 명숙네가 집안일을 아예 어린 경숙에게 떠맡겨 버리자 중학교도 꿇는 처지에 서러움만 더해갔다. 뜨개질 심부름을 하느라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장위 시장까지 뜀박질을 하다 서성이던 중학교 운동장에는 수 많은 꿈들이 움틀대고 있었다

 . 그들과는 비교도 안될 처지라는걸 실감하며 축처진채 터덜터덜 걷다보면 어느새인가 마음이 텅 빈 상태가 되어 공중에 둥둥 떠있는것만 같았다. 가끔씩은 우물에 비친 모습이 너무 처량맞아 차라리 저 속으로 풍덩 뛰어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힘에 부치던 두레박질이 익숙해질 무렵 거뜬히 물을 길어다 담벼락에 쏟아부으면 다닥다닥 붙어있던 노랭이들이 스르륵 나가 떨어졌다. 송충이보다 작고 가느다란 벌레들은 습기 때문이었는지 쓸려 내려가기가 무섭게 다시 제 자리로 기어올라가 수북이 쌓였다. 그럴때면 온 몸으로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아 몸서리를 쳤지만 거부할 수 없는 악몽이었다.

 피할래야 피할수도 없는 현실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으나 그 어린 속을 아무도 헤아려 주지 않았다. 경숙이 여섯 살 되던 해인가에 신혼의 작은 외삼촌이 잠시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구구단을 줄줄이 읊던 신통력에 공부시킨다는 명분이었다.

 살가운 사이이긴 커녕 서로 소 닭보듯 멀뚱거리던 어색한 분위기 끝에 데려가긴 했으나 임신중의 아내를 위해 설거지에 잔심부름을 하는 몸종취급을 했다. 고사리 손으로 궂은일을 하면서도 제 때에 입안으로 들어오는 밥숟가락에 만족할 따름이었다.

  간혹 심심풀이 땅콩처럼 구구단을 시켰으나 그건 찢어지게 가난한 누이에 대한 아무런 배려도 아니었다. 부족함이 없는 외숙모를 보며 명숙이 버릇처럼 하던 말은 명숙네를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없는 집안도 아니면서 엄마도 외삼촌들 처럼 공부를 시켰으면 고생 모르고 살았을텐데 딸이라는 이유로 가르치지 않은 할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러워!”

 그 말을 듣던 명숙네는 혼자 힘없이 웃으며 공부를 했더라면 내 애비 만나지도 않았을꺼구 그럼 니들도 없었을텐데 하는 농담을 일삼았다. 살림은 빵점일 망정 다방면으로 박식하고 정확하게 아는것도 많은 명숙네를 오 박사라고 놀리던 남편의 말이 헛된 소리만은 아니었다.

 머리좋고 재주 많은 것을 인정은 하면서도 그 모냥으로 밖에 못사는 것이 그저 팔자려니 여겼다. 경숙이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는 소문이 어느새 그 동네까지도 퍼졌던지 외삼촌이 협상을 오던날 손에는 난생 처음 보는 과일 바구니가 들려져 있었다

 . 초라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바구니 속의 과일들이 형형색색 제 빛깔들을 뽐내며 잘난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감히 먹을 엄두도 못내게 할 만큼의 반짝거림에 숨이 다 막혔다.

  딸만 셋을 낳은 외숙모는 까칠한 성격처럼 얼굴도 까칠한게 핏기라곤 없어 보였고 무뚝뚝한 성격의 외삼촌이 무슨 거래를 하는지 연신 웃는 얼굴로 속닥였다.

  둘 사이에 어떤 결론이 내려졋는지 명숙네는 외삼촌 따라가 놀다 오라는 말을 했다. 멋모르고 따라 나선 경숙의 눈 앞에는 어릴적 봉천동의 신혼방에 머물던 그 기억과는 전혀 다른 상도동의 떡 벌어진 기와집이 펼쳐져 있었다. 조무래기 사촌들이 경숙을 따르며 좋아했으나 결국은 늦둥이를 임신한 외숙모의 식순이에 애보기로 불려간 것이 틀림없었다.

 누가 모녀지간 아니랄까봐 판박이로 닮은 둘째가 깐족거리는게 얄미워 니엄마 닮아 불여우구나… 서운함에 했던 한마디를 그대로 고자질 하는 통에 흘겨보던 눈초리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어느 저녁인가 밥상을 차리는데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귀에 들렸었고 어린 나이에도 수저를 놓던 손이 잠시 떨리며 말할수 없는 설움에 가슴이 시려왔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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