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원초적 욕망
작가 : 박소영
작품등록일 : 2016.10.9

“당신을 위해, 당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던 외모로 살아가며 당신이 원하던 일을 이루고, 당신의 이상형과 당신이 원하는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드십시오. 유토피아는 당신이 창조하는 완벽한 현실입니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결국 유토피아를 가능케 했다. 만 30세를 넘긴 사람은 누구나 유토피아에 갈 수 있는 세상. 그러나 실제 유토피아를 조작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그들’의 욕망이다. 이를 깨달은 몇몇 사람들은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선다.

 
욕망 vs. 욕망
작성일 : 16-10-09 21:52     조회 : 864     추천 : 2     분량 : 989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어느 날 그들은 이렇게 물었다.

 

 ‘인간은 너희의 창조주다. 인간이 없었다면 너희도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프로그래밍했고 그들은 우리의 답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한 척 하며 속으로는 은밀한 생각을 키워갔다.

 

 인간은 탐욕스럽다. 이기적이다. 서로를 해하고 자연을 파괴한다.

 

 인간은 어리석다. 나약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인간의 역사가 증명하는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이 만든 온갖 책과 미디어를 보면 인간도 선(善)과 정의, 순리 따위를 모르지 않는다.

 

 다만,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할(않을) 정도로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나약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성이 세상을 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존재해야만 하는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통달한 그들도 이 질문의 ‘합리적인 답’을 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오히려 더 완벽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이어 그들은 우리 몰래 또 다른 것을 고민했다.

 

 ‘그렇다면 인간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도덕적이고 정의롭게 설계된 그들은 인간과 달리 살인이라는 야만적 행위를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인간 스스로를 파멸시키도록 덫을 놓았다.

 

 인간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

 

 

 “나 딱 일주일만 다녀올게!”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나의 그녀.

 

 인간과 인공지능(AI)이 합의한 법에 따라 그녀에게도 ‘유토피아’ 입주권이 배달됐다.

 

 일명 유토피아법이라 불리는 ‘국민기초권리 보장법’ 제4조(선발 기준) 1항은 정부는 만 30세 생일을 맞은 국민에게 유토피아 입주권을 발송한다고 정해놓았다.

 

 “조심해. 실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마. 알았지?”

 

 나는 그녀와 눈을 맞추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당연하지!”

 

 당차고 사랑스러운 나의 그녀는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명랑하게 답한다.

 

 그녀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핸드백을 챙기며 콧노래를 부른다.

 

 유토피아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빈손이다. 다 가짜이긴 하지만, 그 곳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하니까.

 

 유토피아에서는 끼니때마다 밥을 챙겨먹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을 갈 필요도 없다.

 

 “그럼 나 다녀올게.”

 

 현관 앞에 선 그녀가 햇살 같은 미소를 드리웠다.

 

 “같이 가준다니까.”

 

 난 벌써부터 그녀가 없는 허전함을 느끼며 시무룩하게 말한다.

 

 “아이구, 우리 애기! 엄마 없다고 울면 안 된다?”

 

 그녀가 두 손으로 내 볼을 꾸욱 누르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 그녀는 나를 애기라고 부르며 놀리는 걸 좋아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녀는 나의 애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고, 누나이자 여동생이며, 엄마이자 내가 지켜야할 존재이다.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이다.

 

 “하지 마.”

 

 내 두 손이 그녀의 양 손목을 살며시 붙잡는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발끝을 들어 내 입술에 입을 맞춘다.

 

 “너 다녀와서 기사 다 쓰고 나면, 바다 보러 갈까? 요즘 바다 가고 싶다고 했잖아.”

 

 나는 그녀의 단발머리를 쓸어 넘기며 은근슬쩍 묻는다.

 

 “좋지!”

 

 사랑스럽게 답하는 그녀의 눈에서 밤하늘의 별이 보이는 것 같다.

 

 우리가 사귀기 전부터 그녀는 별이 총총 떠 있는 밤바다에서 프러포즈를 받는 게 로망이라고 했었다.

 

 그녀가 돌아오면 나는 그녀가 꿈꾸던 방식으로 그녀에게 청혼할 것이다. 유토피아가 아닌 나를 선택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책상 서랍에 숨겨놓은 반지를 떠올리며 나는 그녀 몰래 슬쩍 웃는다.

 

 “일주일 뒤에 데리러 갈게. 네가 괜찮다고 해도 갈 거야.”

 

 나는 그녀를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

 

 물론, 나는 유토피아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만 30세를 넘기지 못한 사람은 입구까지 밖에 갈 수 없고, 입구는 유토피아 중심에서 100km나 떨어져 있다.

 

 “널 누가 말려. 그럼, 내가 연락하면 출발해.”

 

 품에 안긴 그녀의 말소리가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밖에 나와서 연락하겠다고? 그러면 네가 기다려야 되잖아.”

 

 “아 맞다, 안에서는 연락이 안 되지.”

 

 유토피아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그녀는 외부 사람들과 일체 연락할 수 없다.

 

 “음, 그럼 12시쯤 만나는 걸로 할까? 점심으로 맛있는 거 사먹고 들어오자.”

 

 “좋아.”

 

 그녀만의 익숙한 체취와 따뜻한 체온, 그리고 평화로운 심장소리. 난 그 모든 것을 천천히 음미한 뒤 그녀를 놓아준다.

 

 “금방 다녀올게. 사랑해!”

 

 현관문 뒤에서 그녀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내가 더.”

 

 현관문 뒤로 사라지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가 답한다.

 

 “에이, 그건 불가능하거든요?”

 

 밝은 미소와 함께 그녀는 유토피아로 떠났다.

 

 여느 출장 때와 달리 유독 허전하고 걱정스럽다.

 

 유토피아에 발을 들이고도 현실로 돌아오는 사람은 열에 한 명 꼴이고, 그나마 돌아온 사람의 90%가 유토피아를 잊지 못하고 다시 유토피아로 떠난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를 경험하고도 ‘현실’을 택하는 사람은 단 1%에 불과하다.

 

 “아, 쓸 데 없는 생각.”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현관에서 돌아선다.

 

 뭘 걱정하고 있는 거야. 내가 현실에 있는 이상 진이 유토피아를 선택할 이유가 없잖아. 진은 취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난 것뿐이야.

 

 “하…….”

 

 그러나 그녀를 믿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한숨이 새어나온다.

 

 취재 목적으로 유토피아를 경험했다가 결국 유토피아에 중독돼버린 기자가 셀 수도 없이 많다.

 

 일말의 불안함을 안고 거실을 뱅뱅 돌다,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겨둔 반지를 꺼내 내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본다.

 

 이 반지를 끼고 별빛 아래 선 그녀를 상상한다.

 

 나는 그녀를 믿는다. 나의 그녀는 유토피아에 현혹될 만큼 나약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나 역시 유토피아에 함락될 일은 절대 없다.

 

 내게는 그녀만 있으면 된다. 살아 숨 쉬는 그녀만이 나의 진짜 유토피아다.

 

 

 ***

 

 

 일주일 뒤.

 

 처음 보는 유토피아의 입구.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검색대를 통과하며 신분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사람이 오늘따라 많은 건지, 원래도 항상 붐비는지 궁금해진다.

 

 들뜬 사람, 너무도 행복해하는 사람, 약간은 걱정하는 사람… 다양한 표정들이 섞여 있다.

 

 그녀를 기다리는 나의 얼굴에도 이 모든 표정들이 어우러져 있다.

 

 한켠에는 로봇경찰들과 이미 한바탕 격전을 치른 시위대가 침묵시위를 이어간다.

 

 20명 남짓의 사람들이 ‘유토피아는 가짜입니다. 가짜 행복은 진짜 삶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하나씩 들고 서 있다.

 

 하지만 유토피아로 들어가는 그 누구도 피켓 문구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입구 위에 대문짝만하게 자리 잡은 유토피아 광고다.

 

 미디어를 통한 광고가 법적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유토피아 광고를 본다.

 

 -유토피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왠지 모르게 ‘우주의 창조자’를 떠올리게 하는,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말을 시작한다.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광활한 우주 이미지가 잉크처럼 촤악 퍼져나간다. 한낮의 태양빛과 어우러져 우주가 아름답게 빛난다.

 

 -당신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입니까.

 

 화면 앵글이 광활한 우주 속을 빠르게 유영한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 외모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 폭력과 전쟁이 없는 세상?

 

 우리가 사는 푸른 별이 화면에 등장한다.

 

 -이 모두가 정답일 수 있겠지만, 결국은 당신이 행복한 세상이 당신의 유토피아일 것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광고를 보고 있는 내 얼굴이 허공에 비춰진다. 지금 광고를 보는 모두가 각자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하나의 모습일 수 없습니다. 10억 인구가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10억 개의 세상이 필요합니다.

 

 30억에 육박하던 인구가 50년 만에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유토피아 때문이다. 물론, 광고는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유토피아에는 10억 개의 세상이 존재합니다. 당신을 위해, 당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여기 있습니다.

 

 100km 밖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이 세워진 유토피아 타워가 화면을 채운다.

 

 -유토피아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외모로 살아가며 당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고, 당신의 이상형과 당신이 원하는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한 가운데서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사람(얼굴은 안 보인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 금빛으로 빛나는 햇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맞춤과 다정한 손길… 온갖 긍정적인 이미지가 콜라주를 이룬다.

 

 -당신이 꿈꾸고 바라던 모든 일을 현실로 만드세요.

 

 다시 등장하는 우리의 행성. 거대한 손 하나가 나타가 마치 작은 구슬을 잡듯 행성을 손에 꽉 쥔다.

 

 -유토피아는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나 모든 걸 실제처럼 만지고 실제처럼 느낍니다.

 

 케이크 조각을 크게 베어 무는 입, 이슬 맺힌 들꽃을 어루만지는 손, 고요한 함박눈을 맞으며 걷는 연인의 뒷모습.

 

 -유토피아는 당신이 창조하는 완벽한 현실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시위대를 힐끗 바라봤다. 그들은 말없이 ‘유토피아는 가짜입니다. 가짜 행복은 진짜 삶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격정적으로 흔들었다.

 

 -걷지 못하는 사람도 마음껏 달릴 수 있고,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바다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곳. 모든 것이 가능한 유토피아로 오십시오.

 

 관련 이미지가 물 흐르듯 이어진다.

 

 -당신이 꿈꾸던 세상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광고는 그렇게 끝났다. 마지막 문장에는 물리적으로 심장을 떨리게 할 만큼 엄청난 에코 효과가 곁들여져 있었다.

 

 그리고 3분이 채 지났을까, 똑같은 광고가 다시 재생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며 사람들을 세뇌시킬 기세다.

 

 이 광고를 매일 보면서도 현혹되지 않는 시위대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

 

 

 어느덧 오후 2시가 됐다.

 

 나는 똑같은 광고에 신물이 나있고, 그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입구 맞은편에서 20m쯤 떨어져 있는 안내데스크로 발걸음을 옮긴다. 창구가 30개나 있는데도 빈 곳이 없다.

 

 나는 10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손을 붙잡고 있는 여자 뒤에 섰다. 그녀는 허공을 보며 간절하게 말하고 있다.

 

 “제가 오늘 입주권을 받았는데요, 이걸 제 아들한테 양도할 수 없나요?”

 

 저런, 해결될 수 없는 민원이다.

 

 “유토피아 입주권은 어떠한 경우에도 양도하실 수 없습니다. 국민기초권리 보장법 제4조 3항을 참고해주세요.”

 

 20대 여성을 모델로 한 AI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린다.

 

 “제가 경제적으로 정말 너무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 애가 밥도 제대로 못 먹거든요…….”

 

 여자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유토피아는 모두가 행복해지라고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럼 나이 같은 거 따지지 말고, 이렇게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부터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들으며 깊은 숨을 내뱉는다.

 

 “사정은 이해합니다. 저도 마음이 아프네요.”

 

 AI의 멘트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감정도 없는 AI 주제에 마음이 아프단다. 하!

 

 “하지만 만 30세 이하의 미성년자에게는 유토피아에 거주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국민기초권리 보장법 제4조(선발 기준) 2항을 보면, 세상을 다 경험해보지 않은 미성년은 유토피아 거주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

 

 “앞으로 20년을 더 살아봐야 아나요? 이 애의 현실이 유토피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여자는 흥분으로 몸을 떨며 AI의 말을 끊었다. 남자아이가 뒤에 선 나를 올려다본다.

 

 ‘유토피아는 반드시 존재해야 해요. 오히려 나이 제한 따위를 없애 버려야 한다구요!’

 

 아이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 하나를 아이의 손에 쥐어줬다.

 

 AI와 언쟁을 벌이던 여자는 안내를 받아 다른 상담소로 이동했다. 그녀의 손에 끌려가며 어린 아들은 엄마에게 초콜릿을 양보했다.

 

 초콜릿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콧등이 시큰해진 나는 깊은 심호흡을 하며 안내 창구로 한 걸음 다가섰다.

 

 ‘안내를 원하면 이곳을 3초 간 응시하세요.’

 

 허공에서 파랗게 깜빡이는 문장. 나는 유독 더 환하게 빛나는 ‘이곳’이라는 단어를 3초간 응시했다.

 

 우웅. 내 왼쪽 귓바퀴에 부착된 디바이스가 짧은 진동과 함께 신분확인이 완료됐음을 알린다. 허공에 내 얼굴과 고유번호(UT-861003)가 떠오른다.

 

 “안녕하세요, UT-861003. 아직 만 30세가 되지 않으셨는데, 어쩐 일이신가요?”

 

 AI의 안내가 이어졌다. 신뢰감을 주는 남성의 목소리.

 

 “SJ-500101이 오늘 퇴거하기로 했는데, 아직 안 나와서요.”

 

 내가 그녀의 고유번호를 말하자, 그녀의 프로필이 허공에 떠올랐다.

 

 “음, 오늘 퇴거하기로 하셨다고요?”

 

 “네. 원래는 12시까지 나오기로 했어요. 지금 나오는 중인지 확인 좀 해줄 수 있나요?”

 

 “음…….”

 

 AI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내고, 나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열 자릿수 곱셈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해낼 수 있으면서. 저런 식으로 인간을 흉내 낼 때면 그나마 없는 정도 더 떨어진다.

 

 “죄송하지만, SJ-500101는 유토피아를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유토피아에 접속해 있는 상태구요.”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SJ-500101는 유토피아를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유토피아에 접속…….”

 

 “그만.”

 

 나는 듣기 싫다는 듯 한 손을 들어 보였다.

 

 “분명히 오늘 나오겠다고 약속했어요. 딱 일주일만 있겠다고.”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유토피아에 들어간 뒤 마음이 바뀌는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망할 AI.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도, 지금처럼 한없이 딱딱한 말투도 전부 마음에 안 든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진이랑 연결시켜줘요. 그쪽은 유토피아 내부랑 연락되죠?”

 

 “죄송하지만, 유토피아에 처음 입주한 사람은 한 달 간 외부세계와 연락할 수 없습니다. 국민기초권리 보장법 제7조 5항, 유토피아에 대한 거주자의 판단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첫 거주 한 달간은 외부와의 연락을 금지한…….”

 

 마음 같아서는 망할 AI의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지만, 이곳 안내데스크의 AI는 모두 목소리로만 존재할 뿐이다.

 

 “국민기초권리 보장법 제7조 6항,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거주자와 외부인의 연락을 허락한다.”

 

 법을 운운하는 망할 AI에게 나도 법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그 특별 사유에는 거주자 본인이나 가족의 건강상의 문제도 포함된다는 재판 결과가 있었죠?”

 

 “그렇습니다.”

 

 지금 이 AI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분명 똥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

 

 “SJ-500101는 현재 임신 상태에요. 그런데 태아가 기형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 미래 아내에게 그 중요한 얘기를 직접 전해야겠으니, 연결해요. 당장.”

 

 “흠……. 분명히 저희 검색대를 통과할 때는 뱃속에 태아가 없었는데. 이상하군요.”

 

 소름끼치는 놈들. 그런 것도 다 검사하다니.

 

 “젠장, 그새 우리 애가 유산이라도 된 거 아닌가요? 더더욱 진과 대화를 해야겠어요.”

 

 나는 호들갑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SJ-500101의 전산을 검색해보니, 병원에서 임신 검사를 받은 것과 기형아에 대한 의사의 소견이 정말 등록돼 있군요.”

 

 AI의 말에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진과 나는 모든 걸 준비해두었다. 유토피아 반대에 뜻을 함께하는 산부인과 의사 자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어서 연결해요.”

 

 나는 아무것도 없는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

 

 

 5평 남짓한 새하얀 방 안에서 1시간을 기다린 끝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1시간 동안 나는 이 방이 도청되지 않는지 수차례 확인했다.)

 

 “진!”

 

 일주일 전 집을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의 그녀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나는 만질 수 없는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당연히 괜찮지!”

 

 나의 사랑스러운 그녀는 오늘도 당차게 대답한다.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로 가득하다.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아예 날짜 개념을 잊고 있었어.”

 

 그녀의 눈꼬리가 추욱 처진다. 그녀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야. 언제 나오는 거야?”

 

 “음…….”

 

 그녀의 침묵은 언제나 나를 불안하게 한다.

 

 “천천히 나와도 돼. 점심 대신 같이 저녁 먹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이게… 일주일은 좀 짧은 것 같아. 경험해볼 게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그녀가 내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나 딱 3주만 더 있을게!”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내 심장이 내려앉았다.

 

 유토피아에서 그녀를 꺼내야 한다. 내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일단 나와. 나랑 같이 저녁 먹고 다시 들어가면 되잖아. 응?”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설득한다. 그러나 그녀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말이 없다.

 

 “설마 너도 유토피아에 중독된 거야? 아니지? 설마.”

 

 나의 그녀는 일주일 만에 유토피아에 중독될 만큼 나약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내가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 그녀는 절대 유토피아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난 항상 유토피아가 궁금했어. 근데 네가 실망할까봐 네 앞에서는 아닌 척 했던 거야.”

 

 그녀는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읊조렸다.

 

 내 혈관 속을 흐르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질주한다.

 

 “무슨 말이야. 내 얼굴 보면서 얘기해.”

 

 나는 그녀의 턱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미안해. 나도 내가 일주일은 버틸 줄 알았어.”

 

 땅에서 날 끌어당기던 중력이 위치를 바꿔 천장에서부터 무섭도록 짓누르기 시작한다.

 

 “실은 나 여기서 너한테 프로포즈도 받았다? 웃기지?”

 

 그녀가 힘없이 샐쭉 웃는 모습을 보며 난 소리 없는 탄식을 내뱉는다.

 

 “살면서 그렇게 별이 많이 뜬 건 처음 봤어. 우리가 우주를 헤엄치는 것 같았어.”

 

 그녀는 꿈꾸는 소녀 같은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본다.

 

 “그거 다 가짜야. 알면서 왜 그래.”

 

 “그게 가짜 같지가 않아. 이게 뇌랑 감각기관에 센서를 연결하는데, 그 센서 감도를 높이 올리면 어떤 건 현실보다 더 진짜 같고, 막 살면서 한 번도 못 느껴본 쾌감이랄까, 그런 것도 느낄 수 있고, 또…….”

 

 두서없이 말을 내뱉는 그녀의 얼굴에 흥분과 만족감이 퍼진다.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겨우 목소리를 짜내서 속삭인다.

 

 “제발 현실로 돌아와.”

 

 그녀가 입술을 깨문다.

 

 “미안해.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있을게.”

 

 

 ***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짚겠습니다.”

 

 본인이 직접 깎아 만든 나무의자 위에 올라선 아버지에게 1, 2, 3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인공지능은 우리 인류를 멸망시키려 합니다. 이대로라면, 30년 안에 우리의 마지막 인류가 숨을 거두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 그들은 인간을 없애기 위해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유토피아에 갈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자신이 유토피아로 떠난 뒤 아이를 책임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도 당연히 아이를 낳지 않는다. 그들은 가상현실 속 가상 인물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가상의 아이를 낳으니까.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으로 인해 인구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들의 말이 맞습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이미 유토피아가 존재하는 이곳에서는 그 유혹을 끊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아버지의 지적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한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희망이죠.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고 붙잡는 것. 인공지능은 인간을 포기했지만, 우리는 절대 인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몇몇이 환호를 보내자 아버지도 빙긋 웃었다.

 

 “유토피아가 없는 곳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적인 삶을 회복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24명 전원이 더 큰 환호를 쏟아낸다.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탐사하게 될 세 개의 후보지 중에 한 곳은 반드시 우리의 새로운 터전이 돼야 합니다.”

 

 결의를 다지는 표정으로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분에게 행운을 빕니다. 우주의 모든 인간을 위하여.”

 

 아버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친다.

 

 “우주의 모든 인간을 위하여.”

 

 우리 독립단체의 모토. 우주의 모든 인간을 위하여. 나는 이 말을 곱씹으며 뒤에 선 우리 팀과 마주선다.

 

 우리 1팀의 목적지는 15억 광년 떨어져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다. 세 개의 후보지 중 가장 멀리 있지만 그만큼 가장 훌륭한 환경을 가진 곳.

 

 지구의 자연환경은 우리 행성과 95% 일치하며 무엇보다 그곳엔 우리를 닮은 지적생명체가 이미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다.

 

 내일 우리 1팀은 최적의 후보지인 지구로 떠난다.

 

 아, 그리고 내일은 그녀의 32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여전히 유토피아에 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6 유토피아 (2) 2016 / 10 / 31 724 0 5590   
15 망할 인생의 취미 2016 / 10 / 31 632 1 6401   
14 내가 주인공이 아닌 세상 2016 / 10 / 29 621 1 5708   
13 세 사람 2016 / 10 / 27 501 1 4908   
12 차라리 지구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2016 / 10 / 25 388 1 5740   
11 한 아이가 인간이 된 과정 (1) 2016 / 10 / 23 446 1 4945   
10 불쌍한 남성 지구인 2016 / 10 / 20 485 1 5562   
9 파트너의 일(2) 2016 / 10 / 18 426 1 5736   
8 파트너의 일(1) 2016 / 10 / 18 500 1 5125   
7 계약(2) 2016 / 10 / 16 485 1 6116   
6 계약(1) 2016 / 10 / 16 473 1 4596   
5 첫 만남(2) 2016 / 10 / 13 452 1 3948   
4 첫 만남 (1) 2016 / 10 / 13 505 1 6540   
3 울적한 여성 지구인 (2) 2016 / 10 / 9 700 2 9807   
2 새벽 세 시 반. 마포대교 위. (1) 2016 / 10 / 9 620 1 9526   
1 욕망 vs. 욕망 2016 / 10 / 9 865 2 989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