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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32
작성일 : 19-10-28 12:06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2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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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형사는 선배의 매제가 조깅을 하러 올라간 산을 조사한 결과,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실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종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했고 납치라고 하기에는 단서가 전혀 없었다. 오른쪽 운동화 한 켤레만 발견되었는데 아주 날카롭고 예리한 갈고리 같은 것에 할퀴어진 자국이 운동화의 끈 부분으로 지나가고 있었고 운동화는 끊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운동화는 보기에는 투박해도 아주 질긴 재질로 만들어져서 어지간히 날카로운 칼에도 잘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더더욱 기이한 사실은 오로지 오른쪽 운동화 한쪽만이 도시의 송전을 이어주는 철탑 밑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옷가지나 머리카락, 단추 등 다른 건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반항한 흔적도 없었고 운동화가 떨어져있는 부분의 풀이나 나뭇가지가 흐트러져있는 모습도 없었다. 혈흔의 자국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직 운동화 한 켤레만 찢어진 채로 떨어져있었고 사람만이 그 자리에서 소거되어 버린 것이다. 기입되어야 할 기록이 그대로 빠져버린 것처럼 사람만 철탑 밑에서 사라져버렸다. 철탑이 굳건하게 박혀있는 ‘산’이라고 불리는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생물체가 최원해를 잠식해 버린 것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고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없는 논리였다.

  E아파트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더욱 비참했다. 류 형사는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자기색정사로 죽은 사람을 실제로 보기도 처음일뿐더러 타살로 보였지만 타살로 추정할만한 정황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비참해하고 있었다. 사고사로 잠정 지어지겠지만 혼자서 자신의 몸을 속옷으로 꽁꽁 묶고 여러 개의 브라와 팬티를 기도를 통해 위속에 마구 집어넣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과에 다닌 기록이 없어서 정신적인 문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자살을 할만 한 인물이 아니었다. 비록 남편에게는 노리갯감이었지만 아내를 두고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미국의 대도시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이 류 형사가 있는 고장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범죄의 평준화가 된 것 같아서 씁쓸했다. 모든 것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대도시화 되어간다. 10년 전 만해도 류 형사의 관할구역의 범죄는 죄질이 비교적 낮은 절도나 강도 사범이거나 우발적 범죄뿐이었다. 지역 구치소의 사방에는 방이 남아돌았고 구치소에서 나오면 재범의 우려가 있었지만 초범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으려 했고 사건이 일어나면 일주일 안에 용의자는 대부분 체포가 되었다. 십년이 흐르는 동안 세계변화의 총량에 비해 이 도시의 변화는 스무 배는 더 부풀어 올랐다. 카세트테이프와 레코드는 사라졌고 음원이라는 파일만이 존재해서 류 형사는 음악도 들을 수 없었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넣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이제 류 형사의 찌그러진 자동차뿐이었다. 사람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터치해서 영화예매를 하고 비행기티켓을 예약 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다. 모든 부분은 고도로 발전했고 류 형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도 거대 대도시로 거듭났지만 자신의 딸 수빈이만은 병원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초고층빌딩은 일 년에 몇 개씩 올라갔고 IT강국이라는 타이틀로 뉴스는 타국에 비해서 선진국반열에 오르는 시기가 무척 앞당겨졌다는 보도를 늘 내보냈다. 사회적으로 모든 부분은 전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발전을 했는데 수빈이만은 그대로였다. 경제발전과 함께 범죄도 진화를 계속 했다. 그렇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명쾌한 해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바라지도 않는다. 통계를 찾아봐도 비슷한 사건의 전례가 전혀 없었다. 대한민국의 경찰조사방법은 이제 이번 사건 이후 많은 부분이 달라져야겠지만 어쩐지 정부에서 쉬쉬하는 눈치가 강했다. 검경이 합동수사를 하고 공개적으로 수배범을 포섭하면 포위망이 좁혀질 수 있지만 조용했다. 물론 수배범의 몽타주 하나 없는 것이 큰 문제긴 했다. 그렇지만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것이 수상했다. 소리 없이 본청에서 본부를 따로 마련해서 수사를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류 형사는 오래된 자신의 폴더 폰을 열었다. 딸깍하며 고개를 뒤로 젖히니 화면에는 수빈이의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보이는 그 세계가 자신의 미래라는 생각만 들었다. 수술을 한 번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빈이의 약한 신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검게 변해가기만 했다. 더불어 병원비마저 생각이상으로 불어났다. 며칠 동안 수빈이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이러다간 이대로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저 너머를 생각하다가 류 형사는 눈을 떴다. 무서운 생각이었다. 류 형사는 형사라는 자부심이 강했지만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차면서 형사만 아니었다면 좀 괜찮지 않았을까. 자주 드는 생각이었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삶에 대한 압박이 강했지만 수빈이를 생각하면 나약해질 수는 없었다. 며칠 동안 갑자기 터져버린 사건 때문에 매달려야 했다.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먼지처럼 변해 버려서 죽었다. 기이한 사건으로 현장을 조사해야하는 형사들은 당황과 황당함, 논리의 배제가 불러오는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E아파트 203동의 사건은 전혀 진척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인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도 차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도는커녕 부인의 정신은 점점 퇴화되어갔다. 어떤 인도영화에서 남자는 섹스를 하려고 결혼을 하고 여자는 결혼을 하려고 섹스를 한다는 대사가 있었다. 류 형사는 그 대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욕 한마디를 내뱉었다. 자신의 아내를 상대로 그런 성도착증을 보이다니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성도착자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별 지랄 같은 인생들, 씨팔.”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속옷을 위장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이라고 말한다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세 명일 수 있다는 말이다. 속옷을 집어넣은 가해자가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죽은 남자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아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이건 사람이 한 짓이 아니다. 사람을 제외한 그 무엇, 어떤 무엇이 이렇게 한 것이라고 친다면 해답은 맞아 떨어졌다. 속옷은 휴지처럼 말랑말랑 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속옷에는 와이어라든가 단추 같은 것들이 달려있어서 기도를 타고 들어가면서 목을 훼손시킬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속옷을 집어 삼켰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군가 시신을 묶어놓은 다음 입속에 속옷을 집어넣은 쪽이 이야기가 훨씬 수월하지만 단서는 전혀 없었다. 남자는 속옷을 음식처럼 삼켰다. 단서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누가? 도대체 누가?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203동의 그 호수에는 사람이 들어온 흔적도 없었다. 사람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들어온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흔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독하게 깨끗하고 두 사람의 지문이외에 집 안에는 그 누구의 지문도 나오지 않았다. 이 집은 이웃이나 타인의 왕래가 없었다. 사람이 사는 집에 사람이 드나드는 흔적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옆집과 윗집의 탐문수사에서도 알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전혀 실마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주민들은 그 집 부부는 금술이 좋다는 말만 했다. 속옷이 기도를 막고 위장에 가득 들어차서 죽은 남자는 조경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학교에서 조경실무를 가르치는 교수직도 겸하고 있었다. 부부는 자식은 없었고 벌어들인 돈을 매일 기분 좋게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였다. 시신이 발견된 방에서는 성행위에 쓰이는 갖가지 도구들이 널려있었다. 류 형사는 현장에서 찍어놓은 사진들을 아무리 쳐다봐도 어떻게 사용하는 물건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류 형사는 이것을 성기에 집어넣는단 말이야?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신참형사에게 성기구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그 시장이 대륙붕만큼 넓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는 앞으로 얼마나 뻗어나가는 것일까. 인터넷으로 성에 관련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최근 2년 동안 그 이전의 구매율을 20%나 넘어섰다. 콘돔의 종류만도 여러 종류나 되었다.

  506동에서 발견된 시신은 더욱 오리무중이었다. 20대여인은 약에 취해 방독면을 덮어 쓴 채 숨을 쉬지 못해 기도가 닫혀 죽었다. 여자는 죽기에 아까운 나이였고 미인이었다. 정황적으로 봤을 때 여자가 먼저 죽었다. 독신 남자는 여자가 죽은 것도 모르고 여자의 몸 위에서 하고 싶은 성행위를 마음껏 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그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방독면을 쓰고 하는 성행위는 류 형사가 생각하는 섹스의 영역을 벗어난 행위였다. 류 형사는 입을 약간 벌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독면을 쓰고 하는 성행위가 어떤 의미와 기분을 가져다주는지 그곳이 닿지 못했다. 방독면을 쓰고 죽은 것도 기이했지만 시신을 발견했을 때 몸에 수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 더욱 기괴했다. 78%가 수분으로 인체는 이루어져 있지만 2%가 부족하면 몸은 이상반응이 일어난다. 인간의 몸은 물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의 시신처럼 되려면 얼마큼의 수분이 빠져나가야 한단 말인가, 독신남이 이렇게 수분이 빠져나가 말라버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수분이 다 빨려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외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음이 없다.

  몸이 재로 변해서 부검을 할 수도 없었지만 약을 먹었을 것이다.라고 류 형사는 직감을 했다. 여자가 먹은 약과 동일하거나 좀 더 적은 양의 약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 약 속에 몸을 휘발시키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그것이 남자의 체내에서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서 몸이 전부 타버려 재로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류 형사가 여러 경로를 통해 보고 받은 바, 그 어떤 약도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재로 만들어 버리는 약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몸에 호르몬 이상반응 때문인가, 하는 영화 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해봤지만 답은 아니었다. 30대 독신남의 시체역시 어떤 무엇인가에 의해서 이렇게 된 것이 분명했다. 그 확신에 찬 분명함 뒤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불안함이 따랐다. 사람들이 우주에 휴대전화를 띄워 올려 휴대폰으로 촬영한 우주의 영상을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시대에 기괴한 생명체에게 몸의 수분이 다 빨려버려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기에는 터무니가 없었다. 사건에 다가갈수록 구체성은 점점 엷어지고 희미해지기만 했다. 어떤 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류 형사는 오귀스트 뒤팽이라도 부르고 싶었다. 그가 와 준다면 이 모호한 사건을, 그가 해결했던 많은 수수께끼 같은 사건처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뒤팽이 있었다면 ‘무엇이 일어났었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일어난 적도 없었던 어떤 일이 일어났었나?’ 라는 관점에서 수사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천하의 뒤팽이 온다한들 이 사건을 수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류 형사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하다가 라이터를 내려놓았다. 담배에 손댔다는 것에 놀라서인지 담배를 집어 들었던 왼손가락의 냄새를 맡고 청바지에 다시 손을 비볐다. 오래된 청바지의 한쪽 면이 색이 바래져 있었다. 류 형사는 다른 서류를 펼쳤다. 이 고장의 하나뿐인 작은 해변에 출동했을 때는 상황이 더 기이하고 엉망이었다.

  바다는 두 시간동안 뜨겁게 끓어오르다 멈추었다. 마치 냄비에 라면을 넣어서 끓이듯 바다는 펄펄 끓어올랐다. 바다 속에 있던 물고기들은 전부 푹 삶겨 죽어 떠올랐다. 두 눈을 뜨고 하늘을 보며 죽어버린 물고기 떼의 수가 몇 천 마리였다. 상상이상의 모습이었다. 죽은 수 천 마리의 물고기가 하루 만에 식어 버린 바다위에서 썩어가며 풍겨내는 냄새 또한 그 어떤 악취보다 심했다. 시청은 방역업체와 청소용역업체에 발 빠른 하청작업을 하달했지만 업체들 역시 처음 겪는 난항에 어떻게 대처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바다에서 풍겨오는 악취는 무더운 여름날 고등어의 대가리만 잘라서 넣어둔 고무 통에서 풍겨나는 썩은 냄새와 비슷했다.

  그 속에 해초의 비린내와 오래된 곰팡이의 냄새도 섞여 있었다. 물고기들이 둥둥 뜬 바다위에는 사람이 한 명 떠올라 죽었다. 해안경찰과 안전요원들은 질책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억울했지만 멀리까지 헤엄쳐 나가는 사람을 관리하지 못해서 일어난 사고에 문책을 피하지 못하고 조사를 받을 것이다. 더불어 부서장과 현장을 감독해야하는 현장감독관 역시 조사를 피하지 못한다. 사고가 터진 후 관계자들은 윗선에 불려가서 문책을 당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그로 인해 밥줄이 끊긴다는 불안감만이 그들의 정신을 지배했다. 바다는 거대한 해물탕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람들은 그저 넋이 전부 나간 상태로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바다는 두 시간동안 인근해변을 뜨거운 온천탕으로 만들었다. 등을 보이며 바다위에 뜬 시신을 거두어서 똑바로 눕혔지만 얼굴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 물고기는 물고기라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있었지만 죽은 시체의 몸은 풍선처럼 부풀었고 살갗은 이미 익을 대로 익어서 물을 한껏 빨아들인 부풀어 오른 스펀지 같았다. 시신을 바로 건지려 몇 대의 보트가 들어갔지만 펄펄 끓어오르는 바닷물이 모터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시신을 빨리 건져내야 했다. 보트보다 덩치가 큰 배들이 오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서 해양경찰은 노를 저어서 시신이 있는 곳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시신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지 않았다. 바닷물이 끓어올라 풍기는 비린내의 냄새와 여기저기서 죽은 물고기가 만들어내는 냄새가 코를 막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다. 더 나아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비린내는 강력했고 바람을 타고 바닷가에 인접한 곳으로 퍼져 나갔다. 집집마다 문을 잠그고 에어컨을 가동했고 심한 악취에 먹은 것을 다 토하는 사람도 있었고, 참치 못해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끓어오르는 바다가 풍기는 비릿한 악취는 도시로 서서히 퍼져 나기기 시작했다. 보트위로 사체를 인양하는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악취 나는 수증기로 인해 인양작업에 투입된 인원은 땀을 비 오듯 흘렸고 계속 내리는 비마저도 비린내를 품고 있었다. 바닷물이 튄 작업자의 살갗은 불에 대인 것처럼 자국이 남았다. 시체는 굉장히 뜨거워서 손으로는 무리였고 건지려고 노를 사체에 갖다 대면 갖다 댄 부분의 살점이 매운탕 속의 매기처럼 허물어졌다. 보트는 끓어오르는 바닷물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조금씩 바닥이 갈라졌다. 투입된 해양경찰들은 다시 노래를 저어 해변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간이 흘러 대형보트가 투입되었고 사람은 건져냈지만 사체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에서 벗어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해변에는 각 방송사에서 나온 보도국의 취재 열기로 대단했다. 이미 미국의 뉴스전문채널의 방송사에서도 헬기를 타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바닷가를 카메라로 담고 있었다. 해변의 한쪽에서는 지구의 멸망을 외치는 이들이 지구 밖의 생명체에 대한 경의를 표해야한다며 기도를 하고는 모습도 보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굿판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지금 이 모든 현상이 인간들 때문입니다. 이제 인간들에게 벌을 주시려나봅니다. 전부 기도 합시다. 기도만이 살길입니다. 이제 죽는 다면 현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완전한 불사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현세에서 누리지 못한 열반의 세계로 갈수 있게 전부 기도합시다.”

  “네, 현장입니다. 이곳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과 여러 나라에서 방송을 취재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시장과 구청장이 나와서 사태에 대해서 회견을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초자연적인 현상에 발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단체들이 해변에 나와서 각 종교의 방식으로 기도나 법회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현장에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투입된 공권력은 어린이들이나 노약자들을 막아내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바다에서 희생당한 남자의 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장과 구청장이 있는 부스로 가서 보상에 관한 타협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무엇보다 바다위에 둥둥 떠 있는 죽어버린 물고기 수 천 마리의 모습이 흉물스럽고 물고기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엄청납니다. 여기 서 있는 기자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입니다. 또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JBS방송 r기자였습니다.”

  바다가 끓어올라 죽은 남자의 친구들은 가족에게 사실을 전했고 유가족은 해변에 단상을 마련하고 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가족에게서는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가족은 보상에 관한 문제만 타협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청과 구청에서는 위령제에 관한 비용은 낼 수 없다고 했고 유가족과 죽은 남자의 친구들은 시청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또 한 번 크게 마찰을 빚었다. 어디선가 계란이 시장의 가슴에 날아들었다.

 

  류 형사는 서류를 보면서 평온하기만 하던 이 도시에서 한꺼번에 터져버린 기이한 사건으로 서늘한 본부의 에어컨의 냉기 속에서도 몸이 달아올라 땀이 흘렀다. 땀은 차가운 실내의 냉기에도 보란 듯이 흘러내렸다. 에어컨의 바람이 있으면 땀은 흐르지 않는다. 보편성이라는 것이 모든 것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사건이 지구의 종말을 요하는 시작이라면 좋겠다고 류 형사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손등으로 땀을 닦고 바지에 비볐다. 청바지는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바지임에는 틀림없다. 모두가 한꺼번에 죽어버렸음 얼마나 괜찮은 멸망인가. 백악기를 지내고 공룡들 한꺼번에 화석이 된 것처럼 인간들도 한꺼번에 지구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전부 멸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공평하다. 그동안 세상이 공평하다고 교육을 받아왔지만 현실에서의 삶은 전혀 공평하지 않았다. 부자는 더욱 부를 축척하고 가난한 자들은 늘어나거나 목숨을 끊어 버렸다. 자본주의의 병패는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지구가 반으로 갈라진다면 부와 명예에 상관없이 공평하다. 그렇게 되면 수빈이도, 나 역시도 공평함 속에서 다 같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지금 죽지 못해 사는 거와 다를 바 없다.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류 형사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중앙 본청에서 사건을 검토한 후 그곳에서 사람들을 내려 보냈다. 그들과 류 형사의 부서가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번사건의 본부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공개되는 것을 꺼려했고, 합동수가 진행방식이 아니었다. 본청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류 형사가 봤던 형사들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줄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전문 브로커 같은 모습들이었고 아주 재빠르고 실수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정부에서 무엇인가 이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류 형사 본인이 수사하는 것은 어쩐지 겉돌고 있는 수사였고 정부에서 하는 방식은 일개 형사들이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류 형사의 감각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부는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이나 뚜렷하지는 않지만 형태를 감지하고 있었다. 투입된 본청의 사람들은 바쁘게 돌아다니지만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을 조용히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본청의 명령으로 류 형사는 아파트의 두 사건을 맡았다. 그렇지만 류 형사는 선배의 부탁으로 실종사건도 알아봐야 했다. 오늘은 어제 허탕을 쳐서 만나지 못한 고마동을 만나야 한다. 고마동에 관한 건 깨끗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없어서 아직 신호위반이나 주정차단속에 걸린 적도 없었다. 경북 경진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서 이 도시로 와서 자랐다. 대학교까지 마치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군대도 다녀왔고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류 형사는 잠시 미간에 주름을 지었다. 그는 유리병처럼 깨끗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요즘 보기 드문 청년에 속했다. 하지만 고마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니까 고마동과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고마동이라는 남자가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만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 괜히 이리저리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서 휘둘리게 되면 인간관계만 엉망이 되는 경우를 류 형사는 많이 봤다. 류 형사가 직접가야 했지만 실종사건을 공개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었다. 후배형사에게 들은 이야기로 고마동의 어머니는 깊은 밤처럼 고요한 사람이고 했다. 말도 몇 마디 하지 않았고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류 형사는 자신의 폴더 폰으로 전해오는 후배형사의 이야기를 작은 수첩에 한 손으로 무뚝뚝하게 받아 적었다. 고마동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한 후배형사의 말로는 그 어머니라는 사람은 무엇인가 먼 세계의 사람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류 형사가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아들에 대해서 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지, 아들을 잘 모르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언어적으로 일반인들과 대화를 하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후배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선배님,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문제는 없는데 말입니다. 무당이 신을 접해서 하는 대화라는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물어보면 대답은 잘 해주는데, 대답이 대답 같지 않아요.”

  류 형사가 고마동의 회사를 찾아갔을 때 고마동과 어울려 따로 술을 한잔 마신다든가 외부에서 식사를 같이 먹는 직원도 없었다. 그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똑 부러지게 대답하던 여직원이 있었다. 포니테일의 머리에 학자다운 지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회사의 사장은 사장실에 실종사건으로 면담을 하러 갔을 때, 사장실로 그 여직원을 같이 불렀다. 사장이 대답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 여직원이 대부분 척척 대답을 했다. 회사에 나오지 않았던 고마동에 대해서 그 여직원이 대답을 다 해 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사이가 아닐까, 하고 류 형사는 미간에 더욱 힘을 줬다. 그랬더니 좀 더 수사를 하는 형사다운 얼굴의 표정처럼 보였다. 고마동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은 고등학교 시절에 병원에 입원한 기록이 있었다. 그 기록을 입수해서 보니 그가 사는 동네가 아닌 곳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얼마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는데 기억상실의 증상을 보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기록은 협조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류 형사는 오래된 형사였고 꽤 많은 헬퍼가 도심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류 형사는 헬퍼의 편의를 왕왕 봐주기도 했다. 후배형사를 통해 고마동이 고등학교 시절에 무슨 일로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인지 그의 어머니에게 물어봤지만 알 수 없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동시에 고마동과 그의 어머니가 그 시절에 어떠한 일로 기억이 사라진 것일까.

  실종사건은 고마동이 다니는 회사의 회사원인 최원해 부장이라는 사람이 그와 함께 조깅을 하러 갔다고 집을 나가서 사라졌다. 고마동의 집 뒷산으로 통하는 산행조깅코스의 철탑 밑에서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잘려 나간 운동화를 하나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고마동이 사는 아파트에서 기이한 살인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했다. 류 형사는 이 일련의 사건이 그와 얽혀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느껴졌다.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런 느낌이 류 형사의 미간에 힘을 가하게 만들었다. 아파트에서 죽은 두 사람의 시체역시 고마동과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났다. 고마동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독신자들과 신혼부부가 살만한 비교적 전용면적이 작은 독신자용 아파트에 가까웠다. 가족단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용면적이 84제곱미터이상 되는 옆 동의 아파트에 몰려 있었다. 고마동의 아파트는 2LDK나 1LDK의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독립이 보장된 그들의 집은 이웃의 관심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 점은 류 형사도 찬성하는 주의다. 집에서 어쩌다 낮잠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시끄러웠고 형사인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시답잖은 사건을 말하며)때문에 류 형사의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되어가기만 했다. 이런 독립적인 아파트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단, 지금을 제외하곤.

  류 형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의자는 바닥에 이끌리며 고단한 소리를 냈다. 사건에 대한 형태는 점점 희미해져 윤곽이라고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들고 있던 서류철을 투박스럽게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류 형사의 파트너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가 눈을 떴다.

  “일어나서 가지, 햄버거라도 하나 먹고 출발하자고.”

  본부의 벽에 붙어있는 시계가 아침8시를 알리고 있었다. 파트너인 신참형사는 얼굴에 나이답지 않게 주름을 잔뜩 만들어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려 했다. 기지개를 펴니 등의 뼈마디가 서로 아우성을 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못할 종류의 울림이었다. 파트너는 회색 반팔 티셔츠사이로 팔뚝의 이두박근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신참후배형사가 일어나니 옆에 선 류 형사는 비교적 작아 보였고 등은 한껏 구부러져 보였다.

  마동은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고 느끼고 싶었다. 눈꺼풀이 서로 본드로 붙여놓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붙어있는 눈꺼풀을 손을 올려 겨우 벌렸다.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키는데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자신의 몸 상태가 지난밤 같지 않은 몸 상태여서 이런 신체변화를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는개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고 마동은 등을 돌리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장 난 기계처럼 마동은 자신의 몸이 힘겹다는 것을 느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입에서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기계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마동은 는개의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웅웅웅 웅웅웅, 하며 동시에 사람들의 의식이 마동의 무의식에 와 닿았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파트에서 시체가 된 사건이 하룻밤에 동시적으로 두 집에서 일어났다. 아직 살인사건이라는 정황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누군가가 비참하게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해수욕장의 바닷가에서 바닷물이 끓어올라 물고기 수천마치가 익어서 떼죽음을 당했고 그 속에서 사람도 한 명 익어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은 흉흉하다는 소리를 했고, 모여 있다가 흩어지면 무서움에 떨었다. 그들의 나약한 마음에 두려움이 한 겹 두 겹 덧입혀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입 밖으로 뱉어냄으로써 상상 밖의 공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했다. 마동의 눈꺼풀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서 떠지지 않았다. 세상이 시끄럽고 사건사고가 하나씩 발생해도 마동에게는 는개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더 걱정스러웠다.

 

  문득.

  그녀도 최원해 부장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는개는 새벽에 마동의 가슴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마동은 모니터의 뉴스를 보다가 그녀를 안고 따라서 잠이 들었다. 고질적인 꿈도 꾸지 않았고 꿈속에 자주 나타나는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는개가 마동자신의 품에 안겨있어야 하지만 그녀의 인기척은 없었고 팔을 뻗어 그녀의 감촉을 느끼려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동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소리와 생각 때문에 머리를 잡고 흔들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마동의 신체는 바닥에 붙어버린 듯했다. 회오리바람이 바늘구멍을 지날 때 나오는 소리를 내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중력이라는 법칙이 해가 숨어버리고 나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다가 해가 솟아오르고 나면 마동의 몸을 한 없이 끌어당겼다. 사람이 늙는 것은 중력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더니 이미 신체는 늙어버린 것이 아닐까. 나이가 한 살 먹어 갈수록 중력에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사람들은 많이 했다. 그렇다면 지금 마동의 인체는 몇 살의 나이가 되었을까. 사람이 늙어서 죽음으로 향해 가는 것은 우주의 진리이고 중력은 지구의 법칙이다. 우주의 진리와 지구의 법칙의 상관관계는 항시 존재하고 있었다.

  마동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상체를 겨우 일으켰고 눈을 제대로 뜨려고 노력했다. 눈과 눈 사이의 깊은 주름을 만들었고 건초더미 같은 푸석한 얼굴은 얼굴대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헝겊으로 만든 인형의 눈초리처럼 가늘게 뜨고 마동은 거실을 둘러보았다. 커튼은 완벽하게 실내와 외부를 차단하고 있었다. 커튼 너머로 태양의 빛이 거실 안으로 와 닿지 못하고 커튼건너편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보였다. 태양의 색온도가 번지는 모양새가 마동의 눈에 들어왔다. 마동은 앉은 채로 허리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찾았다. 는개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흔적이 거실의 어느 구석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동의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는개는 잠들었고 마동은 잠든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잠이 들었다. 그것뿐이었다.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고, 꿈의 저편에 가두어뒀던 또 다른 에고에 대한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다시 거실을 둘러봤다. 주방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어제 두 사람이 앉아서 먹었던 동그란 도마형 접시와 와인 잔이 잘 씻겨 있었고 선반위에는 아직 덜 마른 행주가 잘 접힌 종이 모형을 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트북은 주둥이가 닫혀있었고 그녀가 입었던 마동의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는 보이지 않았다. 형태가 없는 그림자처럼 들어 왔다가 그저 슥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는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마동의 가슴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하게 두근거렸다. 전율이 심장을 무시무시한 폭격으로 때렸다.

  그녀가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를 했을까. 그런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심장이 드세게 뛰었다. 마동은 꺼져있는 에어컨을 한 번 본 후 고요하고 산란된 빛만이 내려앉은 거실을 지나 냉장고로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 병원에서 받아 온 주스가 냉장고에 들어있었다. 자줏빛을 띠는 붉은색의 주스는 냉장고 안에서 깊은 바다의 심해어처럼 미동 없이 있었다. 마동은 주스 병을 잡고 뚜껑을 돌려 벌컥벌컥 들이켰다. 붉은색의 끈적끈적한 주스는 마동의 목을 통해 내려가면서 혈관을 타고 몸 구석구석 퍼졌다. 심장을 거쳐 각 기관으로 내려갔고 손가락 끝과 발톱을 타고 몸 구석구석 퍼졌다. 주스가 몸으로 퍼질수록 마동의 혈관은 새로운 항체를 만들어 냈다. 몸으로 퍼지는 기분은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는 야외에서 자동차 타이어를 나르는 일을 하고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해질녘의 포장마차에 앉아서 굶주려 쪼그라든 위장에 소주를 들이 붓는 기분과 흡사했다. 분노가 맹렬하게 혈관을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주먹을 쥐니 무작스럽게 변한 주먹이 보였고 분노의 대상에 주먹을 휘둘러 대상의 흉곽을 박살내버리고 싶었다. 마동의 몸은 노곤함에 젖이 있다가 분노의 급류를 타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배위(背違)의 몸은 일순 가벼워졌다.

  나가서 그녀를 찾자.

  장군이를 만나서 대상에 대해서 물어보고 찾아가서 목뼈를 부러트리고 싶었다. 일어서니 조깅을 할 때와 몸 상태가 비슷해졌다. 그녀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최원해처럼 사라져서는 안 되는 그녀였다. 밖으로 나갈 때는 병원에서 건네준 선글라스를 써야한다. 기이한 병원에서 기이한 의사가 처방해준 기이한 선글라스였다. 마동은 선글라스를 썼다. 기이한 선글라스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순간 실내지만 시야확보가 좋았고 눈이 편안했다. 시야각 180도가 눈에 전부 들어왔다. 마동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았다. 는개에게 전화를 해봐야 했다. 그녀도 만약, 만약…….

  마동은 고개를 흔들었다. 위험한 상상은 하지 말자.

  붉은색의 주스를 마시고 가슴이 심하게 뛰는 것도 안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불안함은 확실하게 마동의 마음을 압박하며 조여왔다. 사람들의 두려움에 가득 찬 의식이 끊임없이 전해져 왔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바지주머니를 뒤지고 일어나서 방으로 가려다 식탁위의 메모지를 발견했다. 작은 메모지에는 는개가 써 놓고 간 흘림체의 활자가 가득했다.

  [당신의 잠꼬대를 들었어요. 그 잠꼬대는 깊은 슬픔이더군요.

  단지 그렇게 들렸을 뿐이지만.

  당신은 감당해내지 못하는 큰 짐을 짊어지고 있는 듯 했어요. 왜 당신은 힘겨운 길을 걸어가는지 마동 씨는 알지 못해요. 당신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알지 못해요, 그 누구도 말이에요. 전 당신이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는개가 적어놓은 메모는 꽤 길었다. 꼼꼼하고 야무진 그녀만의 필체가 편지지 가득 쓰여있었다. 그녀가 써 놓은 글씨에는 그녀의 말투가 묻어나왔다. 는개는 덤덤하게 가느다란 손가락에 힘을 주어 그녀만의 필체로 메모를 써놓고 나갔다.

  [이 세계에서 필요 없는 존재는 없어요. 인간의 이기심이 박멸이라는 이름하에 없애려는 바퀴벌레들도 오랫동안 잔존감을 남기며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바퀴벌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벌레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오랫동안 보이는 것만 믿어왔어요. 당신은 닿을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려고만 해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전 그걸 알 수 있어요. (웃음) 지금 편지를 읽을 당신, 절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옷은 제가 들고 갈게요. 깨끗하게 빨아서 다시 입고 당신과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는개는 바쁜 아침의 시간 속에서 시간을 들여 탁자에 앉아서 천천히 메모를 했다. 그리고 집안에 남아있는 그녀의 흔적을 빗자루로 쓸어 담듯 가지고 돌아가 버렸다. 마동은 지난 밤, 그녀와 함께 사들고 온 빈 와인병과 와인 잔만이 버려진 물품처럼 놓여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뜨거운 냄비 속에서 매운탕으로 향해가기 위해 대열을 맞추었던 물고기의 대가리도 사라졌고, 냄비에 가득했던 끓는 물도 사라졌다. 쥐돔과 아홉 동가리는 마동과 그녀의 입과 허공의 미립자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들어와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머리통은 음식물쓰레기에 섞여서 분해되고 어딘가로 뿌려질 것이다.

  점점 사람들 의식의 전달이 작아졌다. 마동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서 모니터를 틀었다. 티브이 프로그램 아침방송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나 명사를 초빙해서 건강이나 생활정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변태학적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은 인간이, 즉 남녀가 서로 상호작용의 부재에서 나타난다고 명사는 열변했다. 인간은 엄마의 큰(아기에게는) 젖을 빨면서 그 감촉을 느끼고 상호작용을 터득하게 되는데, 성인이 되어 그 상호작용의 소멸이 일어나면 일탈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인간은 만져지면 흥분과 기분이 좋아지지만 보통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기를 만진다고 해서 여자들은 흥분을 하게 된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보다 더 근본적인 감촉, 인간의 손과 손이, 손으로 등을, 상대방의 몸을 만지는 것에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것의 소멸이 성기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포르노영화의 보급이 빠르고, 퇴폐적인 공간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의 범죄성향도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아무도 만져주는 이가 없음에 오는 실태로 보여진다. 심리학자는 아침방송에서 상호작용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방송국 스튜디오 안에 모여든 방청객들은 리허설에서 배운 대로, 자기 일처럼 입을 벌리고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를 쳤다.

  마동은 오너에게 전화를 했다. 오너는 마동의 몸 상태의 안부를 물었고 마동은 대답했다. 오너는 마동에게 형사들이 찾아왔다고 말하고 마동은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마동은 꺼내기 힘든 말이었지만 오너에게 회사는 이제 그만 관둬야겠다고 말을 했다.

  (잠시침묵)

  오너는 알겠다고 수긍했다.

  “어제새벽에 자네의 작업분량을 받았네. 그리고 이메일에 자네가 관둬야 하는 이유를 적어 놨더군. 자네는 나에게 확인을 하고 삭제를 부탁했네. 이메일은 삭제를 했네만 정부에서 캐내려고 하면 금방 찾아 낼 수 있을 거야. 자네는 자네도 모르는 사이에 꽤 깊은 곳까지 들어갔던 모양이군.”

  (잠시침묵)

  수화기너머로 들리는 오너의 목소리는 클라이언트의 재작업을 부탁할 때보다 덜 흥분했다. 아니 오히려 침착했고 부드러웠다. 단지 오너는 이틀 동안 밤을 샜는지 목소리에 피곤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이 작업을 어떻게 다 끝냈냐고 묻지는 않겠네. 지금 자네는 쫓기고 있다는 거야. 난 자네를 직원이상으로 느끼고 대했다고 생각하네. 자네에게는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끌림 같은 것이 있었어. 다른 회사보다 먼저 내가 자네를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언제나 뿌듯하고 기분 좋았지. 그래서 늘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나서서 힘을 다해 자네의 일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지.”

  (잠시침묵)

  “하지만 이번일은 내가 자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자네를 말리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말이네. 나에겐 자네도 무척 중요한 사람이고 최부장도 어떠한 방식으로는 나에겐 중요한 사람이야. 이번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사람을 잃게 되었어.”

  (좀 긴 침묵)

  “어디로 갈 텐가?”

  “어디로든…….”

  (잠시침묵)

  마동은 오너에게 이메일로 어떤 내용을 보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지만 짐작은 했다. 마동은 오너에게 지금까지 잘 대해 준 것에 대해서 고맙다고 했고 지금부터는 자신만의 문제라서 오너에게 신경을 쓰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오너는 수화기저편에서 묵묵히 마동의 말을 들어 주었다. 수화기너머에서 오너는 마동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아쉬움이 많이 묻어있다는 것이 숨소리를 타고 마동에게 전해졌다. 오너는 평소와는 다르지만 빗물이 아래로 흐르듯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수화기를 통해서 마동은 느낄 수 있었다. 오너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마동의 회사가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부피가 커졌다. 조직에 있어 한 사람, 오너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고 그는 중추적인 존재다. 오너가 중심을 잃고 흐트러진다면 조직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마동은 자신이 선택한 이 회사의 오너에게 그동안 존경을 가지고 있었다. 밑에 부리는 사람을 잘 다루었다. 그것이 오너로서 그가 가진 강점이었다.

  “클라이언트에게는 제가 직접 연락을 하겠습니다.”

  고요하게 내쉬는 오너의 숨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오너의 박하향 담뱃내가 배인 숨 냄새가 전화선을 타고 몇 십 킬로미터를 지나 마동의 코 속으로 들어왔다. 오너와 면담을 하면 오너의 입에서는 언제나 박하향의 담뱃내가 났지만 은은했고 싫지 않았다.

  “아니네, 클라이언트에게는 내가 잘 설명을 했네. 클라이언트는 생각이 넓고 깊은 사람이야. 게다가 정부와 자네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되어있다고 판단을 했을 모양이네. 나도 그렇게 느껴졌고 말이지. 클라이언트는 이번작업의 책임자인 자네가 빠져도 괜찮다는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여줬네. 모든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지.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떠나가고 나면 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지.”

  (침묵)

  “이제 담배를 끊으셔야죠”라고 마동이 말했다.

  “노력하고 있네. 하지만 잘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려니 다른 곳에서 삐거덕거리지.”

  (침묵)

  “자네가 스티머회선으로 보내준 작업분량덕분에 나머지는 우리들이 알아서 파트를 맡아서 꿈의 구조를 변경하면 되네. 이제 비교적 손쉬운 작업만 남았지. 단지 내가 일선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네. 문제는 자네가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지. 나 역시 그동안 정부의 감시를 받아 왔었고 말이네. 어제 형사들이 찾아왔으니까 오늘은 자네 집으로 가겠지. 형사들은 그렇다 치고 정부의 사람들은 자네가 어디를 가든 찾아 낼 것이네.”

  “알고 있습니다.” 마동은 오너에게 심려를 끼치기 싫어서 짧고 굵게 대답했다.

  “이렇게 통화를 오래하는 것도 꽤 모범적인 해답은 아닌 듯 하네. 다시 돌아 올 일은 없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오너는 마동에게 건강해라는 말을 남기고, 마동도 오너에게 인사를 했고 전화는 끊겼다. 오너의 말소리가 뚝 끊어지니 사고의 흐름도 동시에 끊어진 것 같았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휴대전화가 있어서 마동은 단절되었던 이 사회와 조금은 소통이 가능했다. 소피와도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모바일 휴대전화덕분이었다. 마동은 소피를 떠올리니 소피가 한국으로 프로모션을 온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어쩌면 소피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는개의 모습이 눈앞에 현실처럼 펼쳐졌다.

  박. 는. 개.

  그녀를 두고 떠나야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마동을 찾으러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동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마동이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정말 모르는 무엇으로 되어있는 존재다. 그녀는 마동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메모를 남겼다. 마동은 그 메모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메모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잘 접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부분이 마동의 마음 어느 한 곳을 눌렀다. 그 부분의 떨림이 마음에 전해지니 저 깊은 곳에서 작고 미미한 뭉클함이 바다 속의 맑은 기포처럼 피어올랐다. 순간 마동은 는개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당장 전화를 하고 회사근처에서 잠시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동은 격한 목마름처럼 그녀가 보고 싶었다. 휴대전화를 열고 아직 저장되어있지 않는 는개의 번호를 1번으로 저장했다. 손이 조금 떨렸다. 마동은 통화버튼위에 엄지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저기 말이야, 나 지금 는개가 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무엇보다 는개가 속삭일 때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통화버튼에 엄지를 갖다 대지는 못했다. 는개는 바쁘더라도 마동의 전화통화를 내치지 않고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마동은 전화를 걸지 못했다. 이성이 감정을 검열하고 말았다. 그녀는 두고 떠나야한다. 자신과 가까이 있으면 사라진 다른 이들처럼 는개도 없어지고 만다. 그녀에게만은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마동은 주스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오너가 알아서 처리를 했다고 하지만 마동은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들을 정상인으로 만들고 싶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소명인 것이다. 그는 돈이 많았고 더불어 살아갈 날은 점점 줄어 들어간다. 어마어마한 자본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는 소원을 이루는 방법의 길목에 서 있었고 마동은 그 길목의 안내자의 역할을 했다. 이미 통장에는 엄청난 액수의 현금이 들어와 있었다. 이 돈은 마동이 3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 한 돈이었다. 물론 직접 건네받지 않고 오너에 의해서 받은 돈이지만 결국 클라이언트에게서 흘러나온 돈이니 그에게 받은 셈이다.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를 했다. 받는 소리가 들리고 마동은 클라이언트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기분 좋은 콧수염이 달린 아저씨처럼 마동의 말을 듣고 회사를 관둬야하는 문제를 걱정해주었다. 나머지 작업은 회사에서 깔끔하게 처리할거라는 마동의 말에 클라이언트는 믿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는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낡은 시간의 냄새가 있었다. 낡은 시간은 수화기를 통해 마동에게 전해졌다. 시간이 낡았음을 느낀다는 것은 어떠한 상실을 맛보게 했다.

  그는 웃으며 마동에게 건강해라고 말했다. 대체로 마동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마동에게 건강을 챙기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했다. 그의 입장에서 아들을 생각하면 건강이 최고의 자산인 것이다. 마동은 수화기에 대고 클라이언트를 향해 오너에게 하듯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은 받아들이는 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다. 고집을 부리지 않고 보는 시야가 넓다. 보채거나 화를 쉽게 내지 않는다. 마음을 졸이고 화를 내봐야 상처를 받는 건 본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늙음에 아쉬워하고 힘들어한다. 반면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보지 못한 이들은 고집이 세고 막무가내다. 젊지만 시야가 좁아서 늘 상처받는다. 사람의 인생이란 그렇게 순환하고 있다. 늙었다하여 전부가 아닌 것, 나쁜 것, 안 좋은 것으로 묶어서 구석진 곳에 버려 둘 수만은 없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의 최고통지권자는 바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마동은 클라이언트가 돈에 대해서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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