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작가 :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무슨 짓을 해도 죽을 수가 없다.

 
6화: 죽음을 결심하다
작성일 : 19-10-28 11:07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513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완이 죽음을 결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완은 자신이 점점 미쳐가는 걸 느꼈다.

 

 서현주의 실종으로 세상에 적응할 의지를 잃어버렸다. 바뀌기 전의 세상에 살 때도 딱히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쫓기듯 잠을 잤고, 쫓기듯 밥을 먹었다. 세상의 의미나 이유를 찾기에 이완은 감상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항상 눈 앞의 과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했다.

 

 이완이 할당량에 대해 잠시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것도,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성격이라 그런 걸지도 몰랐다. 뭘 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기를 바라며 살아왔으니.

 

 "이완 씨. 지난 달 결산 서류 좀 드라이브에 올려 줘요."

 "네, 대리님."

 

 그게 이완이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회사에 출근해 있는 이유였다. 이완은

 

 10월 결산.xls

 

 파일을 회사 드라이브에 끌어다 놓았다.

 

 33%, 57%, 89%, 파일 업로드 중......

 

 컴퓨터 화면에 드러난 업로드 창 위에 이완의 얼굴이 비쳤다. 다크써클이 목까지 내려와 있었다.

 

 이완은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이유를 찾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며 외면해 왔다.

 

 '한심하다.'

 

 이완이 틀렸을지도 몰랐다. 이완은 현실주의자였다. 서현주처럼 불확실한 공부를 계속하지도, 추지한처럼 목표를 높게 잡고 도전하지도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하는 것이 제일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교수에게 시달리며 따로 외주를 병행하여 월세를 납부하는 서현주를, 몇 번이고 낙방하며 괴로워하는 추지한을 보며 자신의 선택이 나았다고 안심하지 않았던가. 타인의 불행을 위로 삼았던 게 후회되었다.

 

 '그래도 바라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세상이 놓고 싶어질 때 버틸 이유 하나쯤 있어서 덜 괴롭지 않았을까.'

 

 포기하지 않은 자에게는 또 다른 고충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완은 생각했다. 이완은 서현주가 차지하는 자리가 컸다는 걸 뒤늦게 실감했다.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이완 씨, 오늘 나랑 서윤 씨랑 저녁 할 건데 이완 씨도 오실래요."

 "여자들끼리 먹는 거라 원랜 안 끼워드리려고 했는데 특별이에요!"

 

 이완은 주 대리와 김서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할당량 카드 끝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던 것이다. 김서윤이 파티션 위로 고개를 내밀고 술 마시는 시늉을 했다.

 

 "선배님 요즘 기분 안 좋아 보이시길래."

 "그래요, 이완 씨. 웬만하면 같이 먹지? 2팀 회식은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

 "...그럴까요? 그러면. 감사합니다."

 "내가 살 테니까 몸만 와요. 지난번엔 서윤 씨가 샀거든."

 "저만 얻어먹으려고 했는데 선배님 운 좋으신 거예요!"

 "특별히 끼워주신다니 감개무량하네요. 감사히 먹을게요."

 

 다시 제 컴퓨터 안으로 시선을 돌린 이완은 주 대리와 김서윤에게 들리지 않게 한숨 쉬었다. 피곤했다. 서현주가 사라진 이후로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근 이 주 간 두 시간 이상 잠에 들었던 적이 손에 꼽혔다.

 

 식사 제의는 고마웠지만 부담이었다. 평소라면 거절했을 거였다. 이완은 회사와 개인을 엄격하게 분리하자는 주의였다.

 

 '그래도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밥은 내가 사야겠지.'

 

 도무지 텅 빈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일찍 귀가해 잠을 청해 보았자 또 서현주가 터져 나가는 악몽이나 꿀 게 분명했다.

 

 

 저녁이었다. 이완은 주 대리, 김서윤과 함께 회사 근처 중국집으로 향했다. 자리마다 칸막이가 나눠져 있고 인테리어가 요란하지 않아서 퇴근 뒤 저녁과 함께 술 한 잔 하기 좋은 가게였다. 이완도 서현주와 식사하러 왔던 적이 있었다. 서현주는 다 좋은데 탕수육에서 신 맛이 나서 별로라고 그랬었다.

 

 '그럼 네가 먹고 싶은 거 하나 더 시켜, 내가 탕수육 먹을게.'

 '그래? 그러면 나 비싼 거 시킨다?'

 

 "이완 씨, 그거 알아요?"

 "네?"

 

 서현주를 배려하겠다고 탕수육 그릇을 가져갔던 날을 회상하다가, 이완은 주 대리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최근에 왜, 태어났을 때부터 할당량이 정해지는지에 관해 연구한 기사가 났어요."

 "아! 그거! 저도 봤는데. 그 논문 때문에 한창 난리였잖아요!"

 

 이완의 얼굴에 의문의 빛이 떠올랐다. 이완은 식사 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할당량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외국의 인류학자가 발표한 건데, 할당량이 우주의 존속을 위해서 정해졌다는 가설을 찾았다는 거예요. 네덜란드였던가...? 요즘 그 쪽 생사 연구에 활발하잖아요."

 "근데 신기하지 않아요? 할당량을 연구하라는 할당량이 그 학자한테도 있었을 거 아녜요. 꼭 연구해서 밝혀내는 게 예정돼 있기라도 하듯이."

 

 김서윤이 짜장면에서 완두콩을 골라내며 말했다.

 

 '현주도 완두콩 별로 안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편식이 심했네.'

 

 모르는 이야기라 이완은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김서윤이 말을 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서 연구한 걸 텐데, 그렇게 연구해서 밝혀낸 게 목숨 달린 할당량에 대해서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네. 그렇지만 꼭 죽고 싶지 않아서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난 지금 일이 좋은데. 서윤 씨는 아니야?"

 "요즘엔 진짜로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다 죽기 싫다는 말만 입에 달고 다니지. 주 대리님이 특이한 거예요~ 안 그래요? 이완 선배."

 "......그렇긴 하죠."

 

 죽기 싫어서 일한다니 새삼스러웠다. 할당량 따위가 없던 세상에서도 비슷하지 않았던가.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다들 명예나 금전, 적어도 당장 잘 곳과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일하지 않느냐고, 취미나 적성, 재능은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었나.

 

 좋아하는 걸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데 좋아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그러니 굳이 일할 거라면 좋아하는 게 아니어도 된다고. 이완은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그건 그렇죠. 선배님이 뭘 좀 아시네."

 

 이완은 조심스레 대답했다. 김서윤은 동의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주 대리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완 씨, 할당량이 정해지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요? 난 좀 과장됐다고 생각했어. 아직 가설이니까 정말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요. 지금은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태래요."

 

 이완은 주 대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완이 기억을 잃은 일로 의기소침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할당량에 대해 새로 밝혀진 정보를 화젯거리로 꺼내면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이완은 대답했다.

 

 "뭔데요? 저는... ...최근에 좀 바빠서, 그런 걸 찾아볼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요."

 "한창 난리였는데! 단톡이란 단톡, 기사란 기사는 다 붕붕 뜨고...... 진짜로 몰랐어요, 선배?"

 "모를 수도 있지. 아무튼... 할당량이 있는 건 우주의 존속을 위해서래요. 지금 우리 우주가 점점 멸망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그래서 우주의 유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태어난 대가로 아주 작은 생명체에도 부여되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끝나는 거래요. 우주는 잉여 인력에게 소비할 자원이 없단 거지."

 "그럴듯한 것 같긴 한데, 아직 증거가 많진 않대요. 가설 중 하나래요. 그래도 할당량에 대한 가설이 밝혀진 게 거의 처음이라 신기하긴 했어요. 이완 선배는 어떻게 생각해요?"

 

 주 대리가 설명하자 김서윤이 이완에게 물었다. 입맛은 주 대리가 할당량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여전히 완두콩을 골라내는 서현주를 생각하고 있던 이완이 말했다

 

 "...그러면 몸이 터지는 건 채우지 못한 할당량을 빠르게 채우기 위해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인간의 몸에는 에너지가 있으니까."

 "오, 이완 선배 완전 똑똑해!"

 "어떤 원리로 그럴 수 있는지는 과학자가 아니라 모르지만요."

 "그러게. 아무튼 그런 이유라니 나는 좀. 우스웠어요. 우주가 멸망하든 어쨌든 그건 수억 년이 지난 다음일 거 아녜요. 굳이 지금 우리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유지해야 하나."

 

 주 대리가 말했다. 이완은 동감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서현주가 사라진 거라면,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애초에 우주라니, 너무 현실감 없는 스케일이 아닌가.

 

 "그래도 연구는 의미가 있잖아요. 어쩌면 죽지 않는 법을 찾아낼지도 몰라요. 적어도 유예 기간이라거나. 당장 펑! 하진 않을지도 모르죠."

 

 계산을 하고 나오며 김서윤이 덧붙였다.

 

 

 집에 돌아온 이완은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권태로웠다. 이완은 탁자 위에 올려둔 서현주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손수건을 가져다 액정을 깨끗하게 닦았다. 이완의 손가락에 반응해 핸드폰이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창문 밖이 어두웠다. 주택가라 그런지 불 켜진 집이 몇 채 없었다. 이완은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포기하기로 결심하니 살아야 하는 이유보다 죽어야 하는 이유가 더 많이 떠올랐다.

 

 할당량이라는 글자 안에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한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했다. 죽을 자유 정도는 얻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새삼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구나.'

 

 이완은 비싼 집과 비싼 차에 미련이 없었다. 친구들은 죄다 바빠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였다. 부모님은 이완이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고, 어린 시절 몸을 의탁했던 삼촌네와는 데면데면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한 뒤, 이 주간 이완은 사람이 죽는 걸 다섯 번도 넘게 보았다. 어딜 가도 불시에 사람은 터져나갔다. 대비할 수조차 없었다. 공포 영화의 점프스케어보다 더했다.

 

 '점프스케어도 예고가 없으면 욕먹는데. 현실이 영화보다 더하다는 게 이런 걸까.'

 

 이완은 사람이 터질 때마다 행인들의 얼굴에 떠오른 유령 같은 표정을 보았다. 다들 질린 표정이었다. 그랬다. 이완보다 훨씬 익숙하다고 할지언정 타인의 죽음에 완전히 적응할 수는 없었다. 누구라도 그럴 거였다. 오죽하면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지 않나.

 

 우리는 죽음에 완전히 익숙해질 수 있는가.

 

 "우주의 존속 따위 개나 줘 버리라지."

 

 이완은 중얼거렸다. 할당량에 매달려 살아가야 하는 게 우주 때문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우주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복수, 라는 거창한 단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것에게 나 역시도 목숨을 끊을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지금 당장 이완을 움직이는 동기는 그것이었다. 이완은 서현주의 핸드폰을 들고 일어섰다. 이완은 죽기로 결심했다.

 

 결심하니 실행에 옮기는 건 쉬웠다. 이완은 고통에 약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 목숨을 끊으며 다가올 고통은 이완에게 큰 디메리트를 주지 못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게 자신의 의지라고 믿었다. 이제는 책임져야 할 사람 하나 남지 않았다.

 

 그랬던 이완이 자신의 운명을 깨닫게 된 건 한 주 뒤의 일이다.

 

 이완은 죽을 수 없었다.

 

 
작가의 말
 

 프롤로그와 이어집니다 ^^.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1 20화: 천부적인 재능을. 2019 / 11 / 10 229 0 5269   
20 19화: 훈련 2019 / 11 / 10 218 0 5246   
19 18화: 고양이 눈매의 남매 2019 / 11 / 10 211 0 5204   
18 17화: 괴물의 심장은 사람과 같다 2019 / 11 / 10 211 0 5052   
17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2019 / 11 / 10 211 0 5440   
16 15화: 외곽으로 향하다 2019 / 11 / 10 209 0 5013   
15 14화: 블루 칼라 2019 / 11 / 10 188 0 5160   
14 13화: 세계가 조작한 만남 2019 / 11 / 10 206 0 5308   
13 12화: 이세계의 정원 2019 / 11 / 8 207 0 6099   
12 11화: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인자가 되었다 2019 / 11 / 6 215 0 5070   
11 10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2019 / 11 / 4 206 0 5304   
10 9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019 / 11 / 3 203 0 5606   
9 8화: 만남 2019 / 11 / 1 214 0 5227   
8 7화: 유성지 2019 / 10 / 30 227 0 5093   
7 6화: 죽음을 결심하다 2019 / 10 / 28 225 0 5133   
6 5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 2019 / 10 / 27 203 0 5716   
5 4화: 서현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2019 / 10 / 25 193 0 5096   
4 3화: 할당량 2019 / 10 / 23 200 0 6554   
3 2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2019 / 10 / 23 225 0 5082   
2 1화: 게임 오버 2019 / 10 / 23 232 0 5162   
1 프롤로그 2019 / 10 / 21 373 0 104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