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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의별
작가 : WCEA
작품등록일 : 2019.10.9

5년 전, 연예계에서 추락하게 된 배우 박시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인기배우 유진하.
서로를 따뜻한 봄날, 드라마 <별의별>로 다시 만나다.

 
랑데부(rendez-vous); 다시 만날 약속
작성일 : 19-10-28 05:29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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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하는 머리를 헝클였다. 제작발표회에서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내심,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랐는데.

 정말… 기억 못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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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9년 전, 그러니까 그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배우로 데뷔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처럼 반짝이는 존재였기에, 진하는 그녀가 데뷔했을 때부터 그녀를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녀가 하는 연기가 좋았고, 감동이었다.

 그러다 문득, 나도 저렇게 멋진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출연했던 모든 작품을 섭렵하고, 혼자서 대본을 읽으며 연습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부모님께 처음으로 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연기가 하고 싶다고. 곧 죽어도 연기가 좋다고.

 응원해주실 줄 알았다. 뭔가 지원을 바란다던가, 연기학원을 보내달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저는 이게 하고 싶으니, 지켜봐달라고 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항상 저를 존중해주셨던 부모님이 그 말을 듣곤, 푸하하- 웃으셨다. 정말 크게. 그러곤 되물으셨다. 뭐라고? 그래서 다시 한번 말했다. 저는 연기가 좋다고. 정말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부모님은 저를 부드럽게 타이르셨다. 얘, 네가 어떻게 배우가 되겠니. 티브이에 나오는 배우들은 얼굴도 조막만 하고, 얼굴도 잘생겼고, 날씬한데.

 제가 한 말이 그냥 해본 소린 줄 알았는지, 아니면 죽어도 자기 아들은 배우를 못 할 거라고 생각해서 웃겼던 건지 그냥 웃어넘기셨다.

 저는 처음 꾼 꿈이라 아주 신중히, 진지하게 말했는데도.

 혹시, 부모님이 저가 그냥 해본 소린 줄 알았을까 봐, 다시 말씀드렸다.

 대답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진하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러곤 학교 친구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야, 나 배우 될 거야. 친구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진하가 한 열댓 번쯤 쫑알댔을 때에서야 친구들은 고갤 들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곤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미쳤냐? 네가? 가끔 이런 친구도 있었다. 네가 배우 되면, 난 대통령이다! 아주 가끔, 과격한 친구들은 네 몸으로 어떻게 배우를 하냐며 비웃기도 했다.

 

 

 

 조금 낙심하긴 했으나, 그래도 그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그러곤 선생님에게 진로 상담을 받으며 그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얼굴로 다른 좋은 직업들을 추천해주었다. 진하야, 요즘은 이런 게 유망직업이라던데…‥.

 아마 부모님처럼 선생님도 저의 가슴 떨리는 꿈이, 한낱 지나치는 바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진하는 상담실 문을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저의 꿈을 인정받고 싶었다. 응원받고 싶었을 뿐이다. 자기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자꾸 다른 사람들은 제 주제에는 해내지 못할 거라며 단정했다.

 

 

 

 이팔청춘 열여섯이었던 진하는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늘 한결같았다.

 그래서 진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사연을 자세히 적었다.

 그냥, 적기만 했을 뿐이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채택되는 답변에는 100포인트나 주겠다고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응원의 한마디 정도는 달아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답변은 달리지 않았다. 저가 이제껏 모은 포인트를 모두 주겠다고 추가로 글을 올렸다. 댓글 창은 고요했다.

 그는 올렸던 글을 삭제했다.

 

 그러곤, 이불 속에 파묻혀 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그는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절망하는 와중에도 대본은 연이어 읽었다.

 또, 시은의 작품들도 계속 챙겨보았다.

 

 저도 알았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단 조금 많이 뚱뚱하단 걸. 부모님께서조차 건강에 위험이 되니 살을 빼는 게 어떠냐고 하실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게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예쁘고 멋진 잘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는 뚱뚱한 사람의 역할을 맡아 연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무척이나 해맑고 긍정적인 열여섯이었을 뿐이었다.

 다만,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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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그는 집안에선 정신 못 차린 철없는 아들, 학교에선 망상에 사로잡힌 뚱뚱한 애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 정말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 법한 평범한 날이었다.

 우연히 응모한 박시은 팬 사인회에 당첨되었다. 그는 7년 전에도 마찬가지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일주일 뒤에 갈 박시은 팬 사인회는 오전 11시였다. 그날은 학교가 쉬지 않는 평일이었고, 그는 절망했다.

 곧이어 갈등에 빠졌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래 봬도 결석 한 번 하지 않은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는 일생일대의 난제에 빠졌다.

 

 그도 잠시, 결심한 듯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러곤, “꾀병 부리는 법”, “아픈 척하기” 등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

 

 드디어 그에게도 결전의 날이 다가왔고, 그는 섬세한 남자답게 조회 시간부터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속으로는 무지막지한 죄책감이 들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수업도 열심히 듣는 애가 조회 시간부터 엎드려 있으니 담임선생님은 무언가 문제가 생긴 걸까, 하고 의심은 했지만, 업무가 바빴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교무실로 향했다.

 진하는 뒤이어 일어나 배가 찢어지는 것처럼 배를 움켜잡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천천히 교실 문을 나섰다. 그의 반 친구들조차 그의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가 한 번씩 어깨를 붙들고 괜찮냐고 물을 정도였다. 교무실에 계신 담임선생님께 다 죽어가는 얼굴로 조퇴를 허락받았고, 그는 조퇴증을 받아들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 힘차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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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겨우 젖 먹던 힘까지 보태어 달려서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거의 끝자락에 서서 기다린 끝에, 7년 전의 시은을 만날 수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유진하... 예요.”

 “우와- 이름 예쁘다.”

 “누나 이름도 예뻐요. 그리고, 저 누나 데뷔 초부터 팬이었어요! 화면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훨씬 예뻐요. 얼굴도, 마음도…‥.”

 “아, 고마워요.”

 “제가 작품 하나하나 다 챙겨봤어요. 누나 연기는 보는 사람 기분을 좋게 하구요... 누나는 좋은 배우고, 앞으로 더 좋은 배우가 될 거에요. 항상 지켜볼게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제 꿈이 배우예요. 누나 연기보고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나한테 꿈을 갖게 해줘서 고마워요.”

 “아.. 정말 과분한 말이에요! 제가 더 고마운걸요. 그 꿈, 이뤄질 때까지 응원할게요.”

 “우와, 진짜요?”

 “응, 진짜. 나중에 꼭 나랑 같이 작품 해줘요. 약속!”

 “약속…‥.”

 

 진하는 시은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었다.

 한 번도 응원받아본 적 없었는데. 그는 황홀한 기분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모두가 저의 꿈을 비웃고 안 될 거라 확신했는데.

 

 사인받은 종이를 보니, 시은은 제 이름 석 자 옆에 ‘배우님’이란 호칭도 덧붙여놓았다.

 

 “나중에 꼭 멋진 배우가 돼서 만나요!”

 

 저가 떠나갈 때쯤, 멀리서 외치는 시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그는 눈물을 쏟을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쏟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응원과 사랑에 목말라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가 어떤 모습이어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게 아니라, 네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멋진 사람이어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이 들렸다. 저의 미래를 응원하겠다는 다정한 목소리에. 저의 꿈을 가감 없이 들어주고 사랑해주어서.

 그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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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하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등짝을 맞았다. 아마도 담임선생님이 조퇴를 시켰다고 연락한 모양이었다. 맞은 등이 따가웠지만 그럼에도 진하는 행복감에 취해있었다.

 

 열여덟의 진하는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박시은을 닮은 배우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시은과 같은 작품에서 만나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다. 팬 사인회에서 시은이 저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저가 뚱뚱해서, 못생겨서 연기할 수 없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다. 어떠한 모습이든, 얼마든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살을 뺄 수 없을 거라며 호언장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네가 무슨 배우냐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니 너도 스쳐 지나가듯 대하기만 하라는 어른들도 있었다.

 그는 제 꿈을 꼭 이뤄서 시은 앞에 당당히 나타나고 싶었다. 함께 동료로 만나고자 하는 것이 간절했다.

 

 

 

 그래서 진하는 결심했다.

 살을 빼기로. 그날 밤부터 줄넘기를 들고 나가 하루에 천 번도 넘게 줄넘기를 했다. 밥도 전에 먹던 것보다 양을 줄였고, 피자, 햄버거, 짜장면 같은 기름진 음식은 입 근처에도 대지 않았다.

 그러자 통통했던 볼살이 갸름해지기 시작했고, 아들의 갑작스러운 다이어트에 부모님은 당황하셨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 먹는 것이었던 아들이 간식은 물론, 식사량도 줄이고 자꾸 밤마다 나가서 운동하니 못 알아채는 게 더 어렵긴 했다.

 

 진하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에는 너무 힘들어서 줄넘기를 하다 말고 주저앉아 울었다. 그래도, 포기는 할 수 없었다.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서. 제 꿈을 처음으로 응원해준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수십 번을 유혹당하고 지쳐 넘어져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그 따뜻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렇게 포기할 순 없었으므로 그는 매번 일어섰다.

 

 

 

 그의 피나는 노력에,

 그의 턱선은 어느새 날렵해졌고

 눈은 두 배나 커져 있었다.

 몸무게는 삼십 킬로나 줄었고,

 운동을 열심히 한 탓에 키도 십 센티 넘게 컸다.

 일 년이나 독한 다이어트를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진하는 열아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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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날씬한 몸, 살에 파묻혔던 뚜렷한 이목구비가 드러나자, 그를 향한 주위 시선은 너무나도 확연하게 변했다.

 진하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이 되었고, 1년 전과는 다르게 사람들 모두 한 번쯤은 연예인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다른 대접이었다.

 

 그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고서 괜찮은 배우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들 그의 외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연기 실력도 출중했기에, 그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리고 십 대의 끝자락을 넘기기 전, 드디어 배우가 되었다.

 

 그는 무척이나 기뻤다. 데뷔작에서 맡은 역할이 주연은 아니었지만, 출연 분량이 꽤 많은 조연인 데다, 드디어 꿈에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크면, 시은과 파트너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혼자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 진하는 스무 살을 맞이했다.

 꽃 같은, 꽃 같아야만 했던 스무 살을.

 

 저가 한창 바쁠 동안, 시은 또한 잘 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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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진하의 스무 살의 어느 날, 그녀는 한순간에 매도당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았고, 결국 그녀는 활동중단을 선언했고, 다시는 발 딛지 못할 정도로 내몰렸다.

 

 

 그 소식을 접하고 그는 놀랐다. 아니, 사실 놀랐다는 단순한 단어로는 그때의 감정을 표현해낼 수 없었다. 항상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 같은 제 꿈이자, 희망이었던 사람은, 제가 너무도 크게 느꼈던 사람은, 너무도 쉽게 질타받았다.

 그리고 그런 시은을 사랑했던 그는 그녀의 추락을 모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는 시은에게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되지 못했다.

 

 분명, 제가 보기에는 그녀의 잘못이 아닌데, 그 끔찍한 사건의 주인공이 아닌데,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떠한 변명조차도.

 그저 조용히, 세상에 자기 존재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제게 꿈을 심어준 사람이, 저의 꿈을 미처 다 이뤄주지도 못한 채로, 그녀의 꿈을 다 이루지도 못한 채로.

 진하는 그게 몸서리칠 정도로 싫었다. 아무리 봐도 그녀는 잘못한 것이 없었는데 그녀가 애써 설명해도 들어주지 않는 대중과, 그렇게도 크게 느껴졌던 존재가 힘없이 쓰러지는 게,

 아팠다.

 

 저에게는 가족만큼이나, 아니면 그보다도 더 소중한 사람인데.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제 세상에 저를 비춰주던 유일한 별이었는데. 뚱뚱했던 저의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응원해주던 사람인데.

 상처가 아닌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인데…‥.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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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5년이나 흘렀다. 그 5년 동안 저는 쉴 틈 없이 달렸고, 일에 파묻혀 살았다. 이젠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적게는 일 년, 많으면 이 년까지 작품 활동을 쉬려고 했었다.

 그 시간 내내 마음도, 정신도, 몸도 너무 피폐해져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척 굴었지만, 속으로는 절대 무던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힘들 때마다 시은이 나온 작품들을 다시 보곤 했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보면 자꾸 생각나니까.

 어쩌면 시은이 완전한 연예계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만약 그녀의 앞으로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저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배우 인생이 5년 전에서 끝나버린다면, 그리고 한참 전의 작품만을 돌려보는 저를 자각한다면, 그건 정말로 그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 같아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만을 바라보며, 그녀와 했던 약속만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였던 거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단언컨대, 시은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제 세상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해서 그녀가 빠져버린다면 제 삶은 태양 없는 깜깜한 우주일 뿐이었다.

 

 그 5년 이란 오랜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절망 속에 파묻혀있을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혹시나 그녀가 진짜 은퇴라도 선언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그녀의 밝고 눈부신 미소에 대한 그리움과, 저를 목 빠지게 기다리게만 하는 그녀가 조금은 원망스러우면서도, 그녀가 정말 힘들다면 차라리 못 봐도 좋으니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5년이나 지난 지금, 제가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저의 욕심보단 그녀의 의견을 더 존중하고 사랑하는 팬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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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휴식기를 갖겠다며 거절했던 작품에 시은이 여자 주인공 역을 맡아 복귀한다는 기사가 떴다.

 아팠던 마음도, 힘들었던 몸도 모두 나아진 걸까. 그 기사를 봄과 동시에 지다훈을 자신이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성장했음을, 꿈을 이뤄냈음을.

 당신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만류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최 작가님께 직접 전화를 걸었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여자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이후, 한자리 얻어 보려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배우들이 모두 줄행랑을 쳤다는 얘기가 자존심 상했다.

 

 그 누구도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낼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서.

 

 그래서 출연을 결정한 것도 있다. 사실, 박시은이 ‘별의별’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부터 무조건 확정이었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아 비어있는 파트너 자리를 두고 볼 수 없었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기죽는 건 끔찍한 일이니까.

 

 

 

 그래서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대본 리딩 때 사인을 일부러 받아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당신을 오랫동안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오랜 팬이었으니까 당연히 물을 무서워한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게 긴장할 때만 하는 행동이란 걸 모를 리가.

 

 

 공석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 건지, 제작발표회에서도 잔뜩 굳어있는 게 눈에 띄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눈치였지만.

 일부러 긴장한 척하고 긴장 풀어주려고 손잡았던 거다. 물론, 사심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데도 기억해내지 못한 눈치였다. 하긴,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다. 고작 수많은 팬들 중에 하나였던 저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게 시은의 잘못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저는 7년 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너무 많았으니까.

 다시 만난 인연치고는 아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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