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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35. 우리 키스할까. 날씨가 좋잖아.
작성일 : 19-10-26 11:31     조회 : 171     추천 : 0     분량 : 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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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한 씨!"

 

  지수는 전속력으로 그에게 달려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에 간절히 바라왔던 그가 있었다.

 

 "쿠키 슈... 네가 어떻게 여기에..."

 "고독한 씨, 무슨 생각을 했든 그만둬요."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향했다. 상체가 앞뒤로 흔들렸다.

 

 "나는... 이렇게 될 운명이야."

 "이게 왜 당신의 운명인데요! 고독한 씨! 어서 이리 와요!"

 "난 저주받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증오할 테고. 난 그 증오 속에서 죽어야만 하겠지. 그런데 이렇게 또 살았어. 그래서 내 손으로 끊고 싶어. 이 모든 걸..."

 "왜 고독한 씨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데!"

 "아니, 결국 너도 날 증오하게 될 거야... 난 그렇게 태어났거든. 그러니까 내 눈앞에서 사라져... 너도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잖아..."

 

  지수는 뒤돌아선 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의 몸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가슴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고독한 씨...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모를 거야..."

 "다가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당신은 모르겠지만... 당신이 없는 일 년 동안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했어... 그 긴 시간 동안 무슨 생각으로 버틴 줄 알아요?"

 

  그녀는 바로 그의 등 뒤에 섰다. 난간대를 사이에 두고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 사랑이 뭔지 알아? 그 사람은 날 죽이려고 했어... 로이도 날 죽이려고 했고... 사랑이 뭔데?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죽도록 아픈 거냐고!"

 "나도 몰라요...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지금 내가 고독한 씨를 사랑하는 것만은 알고 있어요. 사랑이 그 사람을 위해야 하는 건지... 이기적이어야 하는 건지... 바라만 봐도 행복한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알아요... 이 순간, 내 감정에 솔직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

 

  지수가 조심스럽게 고독한을 뒤에서 안았다. 흔들리는 그의 몸이 더는 바람에 휘청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발 돌아와요. 더는 당신을 막을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이곳으로 넘어와 줘요..."

 

  고독한은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의 떨림이 전해졌다. 그녀의 눈물이 어깨를 적셨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모든 상처를 가지고 끝까지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자리에서 천천히 뒤돌아섰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살고 싶어... 그런데 무서워..."

 

  그녀가 프랑스에서 처음 봤을 때처럼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나도 무서운걸요. 고독한 씨가 날 떠나면 어쩌지, 또다시 사라지면 어쩌지...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더 무서운 건..."

 

  그녀의 손이 그의 목에 새겨진 흉터를 어루만졌다. 햇살이 그녀의 손길을 따라 그를 아름답게 비췄다.

 

 "당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흉터 좀 있으면 어때요. 누구나 다 예쁜 흉터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걸요."

 

  지수는 그의 목에 난 흉터를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고독한은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다리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푸른 하늘, 따뜻한 햇볕, 넘실거리는 강물, 모든 것이 눈부시게 예뻤다. 그중 단연코 가장 빛나는 건.

 

 "쿠키 슈. 오늘따라 예뻐 보여."

 "나도 알아요. 내가 예쁜 건. 근데 나는 예쁘단 말보다 멋지다는 말이 더 좋은데."

 "멋져. 눈부시게. 그런데 프랑스로 간다고 했잖아. 나 때문에 비행기 놓친 거 아니지?"

 

  그의 말에 지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프랑스에 갔다 왔는 걸요."

 "뭐?"

 "지금 우리가 헤어진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가요."

 "아니, 넌 분명 어제..."

 "당신은 일 년 동안 죽은 사람처럼 병실에 잠들어 있었어요. 그 시간 동안 나는 죽을 만큼 당신을 그리워했고. 일 년만에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무심한 듯한 그의 두 눈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녀의 입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그가 먼저 말했다.

 

 "말하지 마. 다 아니까."

 

  고독한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메마른 입술이 촉촉한 그녀의 입술에 닿자 황무지에 풀이 피어나듯 황홀한 기분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지수가 가쁜 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밀어냈다.

 

 "이제 여기로 넘어오지 그래요. 키스는 그다음에 해도 되잖아요."

 

  그녀의 눈이 그의 어깨너머로 펼쳐진 아찔한 광경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가 그녀를 다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아직 잘 모르겠어. 좀 더 알려줘."

 "위험한데..."

 

  그녀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뿌리치지 못했다. 어느새 그의 입술이 분홍빛을 띠며 그녀를 유혹했다. 그녀의 두 눈이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감겼다. 감긴 눈 속으로 밝은 빛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속삭였다.

 

  아주 오래전, 겨울 나라에는 예쁜 왕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백발 마녀는 그 왕자를 구속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눈을 내렸습니다. 예쁜 왕자는 눈으로 가득한 세상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멋진 공주가 여행 중에 겨울 나라의 예쁜 왕자를 만났습니다. 멋진 공주는 예쁜 왕자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예쁜 왕자의 손을 잡고 멋지게 청혼했습니다. 예쁜 왕자는 처음 느끼는 그녀의 온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둘은 서로 사랑을 했고, 겨울 나라를 떠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드디어 겨울 나라를 떠나는 날, 멋진 공주는 예쁜 왕자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쁜 왕자는 백발 마녀에게 붙잡혀 빨간 독사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예쁜 왕자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잠에 빠졌습니다.

 

  멋진 공주는 예쁜 왕자를 구하기 위해 얼음 궁전으로 찾아갔습니다. 얼음 궁전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뚫고 얼음 궁전 속에 잠든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예쁜 왕자는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멋진 공주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습니다. 예쁜 왕자는 그녀의 진실한 입맞춤으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고 겨울 나라를 떠나 오래오래 행복... 하게... 잘... 살...

 

  지수는 긴 입맞춤을 끝내고 눈을 떴다. 동화 속의 예쁜 왕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우리...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요?"

 "모르지. 마지막까지 가보지 않아서."

 "그럼 나랑 마지막까지 가볼래요? 우리의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고독한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그 말도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뺏겼네. 멋진 공주님."

 "괜찮아요. 멋진 건 내 몫이니까. 나의 예쁜 왕자님."

 

  지수와 고독한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햇살이 그들의 미소를 더욱 환하게 밝혀주었다.

 

 *

 

  동화 속 공주와 왕자의 첫날밤은 어떨까.

 

  공주와 왕자는 수줍어서 눈도 못 마주치고 새벽을 맞았을지도 몰라. 어쩌면 피곤을 못 이겨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모두가 꿈꾸는 것처럼 최고의 밤을 보낼 수도 있어.

 

  하지만 아무도 그들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어. 동화는 항상 키스로 끝나니까.

 

  그럼 내 이야기는 어떨까. 한가지는 말해줄 수 있어. 예쁜 왕자는 확실히 게이가 아니야.

 

 "일어났어?"

 

  예쁜 왕자의 예쁜 두 눈이 깜박거리며 나를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얼굴이 새빨개. 어디 아파?"

 

  그가 상체를 반쯤 일으키며 내 이마의 열을 쟀다. 감기에 걸린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쿠키슈. 잠깐만. 너 열 있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긴. 봐. 열 있는데."

 

  그의 벗은 상반신이 몸을 일으켰다. 얇은 이불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 아래에는...

 

 "어머. 아침부터..."

 "아니, 원래 남자는 아침에 기운이 넘치는 게 정상이야... 그런데 너 점점 얼굴이 빨개지는 게... 설마 부끄러워서?"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슬며시 다가왔다.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왜 이제 와서 수줍은 척하고 그래?"

 "그게... 나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너무..."

 "지금은 뭐?"

 

  이불 아래로 그의 머리가 들어왔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소리가 이불 밑에서 들렸다.

 

 "부끄러운데..."

 "부끄러우면 너도 들어와. 여긴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거든."

 

  그를 따라서 이불 안으로 얼굴을 숨겼다. 얇은 이불 밖으로 가느다란 빛이 비쳤다. 이불 안은 밖이랑 다름없이 환했다. 개구쟁이 같은 그의 얼굴이 보였다.

 

 "거짓말... 다 보이는데..."

 "뭐가? 난 잘 모르겠는데. 여기가 어디야? 여기는 또 어디지?"

 

  그의 손이 내 몸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장난을 쳤다. 그의 손가락이 겨드랑이와 그 아래 갈비뼈에 닿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도 따라 웃으며 얄궂게 물었다.

 

 "아침부터 괜찮겠어?"

 

  나는 그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더욱 더 짓궂게 간지럼을 피우며 놀렸다.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 시간에 무슨 전화가..."

 "무시해. 우린 지금 바쁘잖아."

 "그렇긴 한데..."

 

  전화벨 소리가 끈질기게 울렸다.

 

 "잠, 잠시만..."

 

  그의 손길에서 빠져나오며 핸드폰을 켰다. 핸드폰 액정에 화상 통화 화면이 떴다.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민 채로 전화를 받았다.

 

 [큰일 났어! 리아!]

 [무슨 일이야? 티냐.]

 

  티냐가 다급한 얼굴로 나타났다. 그 옆에서 알렉스가 그 답지 않게 흥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너희 아빠들! 한국에 갔어! 너 보러! 그리고 무슨 왕자인가 하는 그 놈 잡으러!]

 [뭐? 그게 진짜야?]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이불 아래에서 그가 얼굴을 쏙 내밀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고독한 씨! 큰일 났어요! 우리 아빠들이 지금 한국에 왔대!"

 

 *

 

 "자, 이걸로 앨범에 들어갈 마지막 곡까지 다 완성했다. 이제 사람답게 좀 살아보자."

 

  최철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녹음실에는 먹다 남은 김밥과 컵라면 용기, 거의 다 마신 음료수가 마구잡이로 흐트러져 있었다.

 

 "민호야. 일단 한숨 자고 나서 보자. 너도 좀 자. 우리 며칠을 꼬박 샌 거냐..."

 

  그가 눈을 감으며 손을 휘저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말하다가 잠이 들어버린 듯 조용해졌다.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굳은 몸을 폈다. 자신의 첫 앨범 작업이 드디어 끝이 났다.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보다 마음속의 미련을 떨쳐냈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형. 나 잠깐 밖에 좀 나갔다 올게."

 

  그는 녹음실 밖으로 털레털레 나갔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햇살은 뜨겁게 거리를 내리쬐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바닥을 보며 전화를 걸었다.

 

 "나예요."

 "오랜만이네. 웬일로 네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다음 주 중에 집에 갈까 해서요. 괜찮죠?"

 "그럼 당연하지. 우리 아들이 자기 집에 온다는데. 그런데 무슨 일이야? 명절에도 집에 안 오는 애가."

 "엄마. 뭐 하나 물어봐도 돼?"

 "그렇게 물으니까 이상한데. 뭔데?"

 

  민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음속에 엉켜있는 물음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빠가 앨범을 냈을 때... 어땠어? 그러이까 엄마를 위해서 쓴 곡을 길거리나,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그야..."

 

  전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늘에 있는데도 등 뒤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좋았지. 네 아빠 노랠 들으면... 항상 그 가사 속의 그 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거든. 물론 그 노래를 듣는 게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화기 타고 들려오는 말소리가 떨렸다.

 

 "그 때를 다시 추억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니?"

 

  그는 전화기를 든 손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더위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늘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갔다. 햇볕 속에서 눈을 감았다. 여름이 감은 눈 속으로 뜨겁게 다가왔다.

 

 *

 

 "오늘부로 민간인이니까. 출소하고 나서 똑바로 살아! 다시는 여기 오지 말고!"

 

  교도관이 강철 문을 열어주며 소리쳤다. 오늘 출소하는 인원은 세 명. 그들은 교도관의 지시에 따라 교도소 밖으로 나갔다. 거리는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이었다.

 

 "동철아! 이제는 착하게 살자... 더는 하늘 아래 부끄러운 짓 하지 말고, 남들처럼 그렇게..."

 "형님! 축하드립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교도소를 나가는 세 명 중, 두 명이 그들을 반기는 사람들과 같이 사라졌다. 땡볕 아래에 한 명의 사내만 남아 햇살을 맞았다. 한여름 햇살에 그의 하얀 피부가 뜨겁게 타들어 갔다.

 

  그때, 그의 머리 위로 작은 그늘이 졌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자기는 하얀 게 더 어울려. 기다렸어, 로이."

 

  지민이 한쪽 손에는 양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두부를 건네며 미소 지었다. 로이가 하얀 눈동자로 그의 눈을 응시했다.

 

 "넌... 안 떠나니?"

 "내가? 어디로? 난 자기 옆이 좋아. 말했잖아. 자기랑 나는 완벽하다구."

 

  지민은 로이의 팔에 팔짱을 꼈다. 로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둘은 작은 그늘 속에 함께 몸을 숨긴 채 묵묵히 뜨거운 햇볕 속을 지나갔다.

 

 *

 

  인천 공황의 긴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비행기는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며 천천히 멈춰 섰다. 승객들은 차례차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내부로 들어갔다. 대부분이 유럽 여행을 다녀온 한국 관광객이었지만, 걔 중에는 한국으로 여행 온 유럽인도 있었다.

 

 [한국은 우리나라보다 더 더운걸.]

 

  안드리아가 가브리엘의 팔짱을 끼며 한 손으로 선글라쓰를 썼다. 가브리엘은 챙이 긴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엄청나게 덥네. 그래도 작년에 다녀온 일본보다는 덜 더운 것 같아.]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여행의 대부분을 호텔에서만 지냈잖아. 낮에는 아무 데도 나갈 수가 없어서.]

 [그렇지. 그런데 한국도 별반 다르진 않네.]

 

  그들은 어렵지 않게 인천 공항을 빠져나왔다. 안드리아는 설레는 눈으로 한국을 눈에 담았다. 한국에서는 어디에서나 산을 볼 수 있다더니 바다가 이렇게나 가까운데도 산이 보였다. 가브리엘은 미간을 찌푸리며 택시를 찾았다.

 

 [가브리엘. 뭐가 그렇게 급해? 우린 이제 막 한국에 도착했다고. 주위를 좀 둘러봐.]

 [난 지금 당장에 리아를 보고 싶어. 리아를 괴롭힌 그 자식도 보고 싶고.]

 [유치해. 아빠는 딸의 남자친구에게 질투를 느낀다더니.]

 [아, 아니. 안드리아. 이건 질투가 아니라, 우리 리아가 그 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건 단지...]

 

  안드리아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택시 앞으로 갔다. 가브리엘이 짐을 끌고 허겁지겁 그를 뒤따라갔다. 하와이 복장의 택시 기사가 그들을 맞으며 잇몸이 다 보이게 웃었다.

 

 "하이. 웨얼유 프람? 서울, 고, 고, 고."

 "여기 주소로 가주세요."

 

  안드리아가 쪽지를 건네며 어수룩하게 한국어로 말했다. 택시 기사는 민망해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들을 태운 택시는 빠르게 서울로 떠났다.

 

 *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역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구나 싶어? 원래 동화는 행복하게 끝나는 게 좋잖아.

 

  넌 꿈꾸는 동화가 있니? 너만의 동화 속 이야기가 있어? 아직 없다면 옛 기억을 떠올려봐. 사실 동화는 우리의 어릴 적 꿈이거든.

 

 "화장이 잘 됐나 모르겠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줄도 모르고 준비도 제대로 못 했는데."

 "네 화장이야 뭐, 대충 떡칠하면 되는 거 아니니?"

 "뭐라고? 지는 명품 두르는 재주밖에 없는 주제에."

 

  이영화와 류미리는 서로의 몸가짐을 흘겨보며 티격태격했다. 그들 사이에 서 있는 지수와 고독한이 미소 지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두 분 사이는 영원히 이럴 것 같지 않아? 벌써 일 년이 지났는데."

 "뭐 어때요. 내 눈에는 좋아 보이는데."

 

  지수는 카페 안으로 비쳐드는 햇살을 맞으며 환하게 웃었다. 고독한이 그녀의 손을 꽉 붙잡으며 따라 웃었다.

 

 "우리 키스할까?"

 "지금요?"

 "응. 날씨가 좋잖아."

 

  고독한은 고개를 돌려 지수의 입에 가볍게 입 맞췄다. 그러자 지수가 눈을 깜박거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에게?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지수는 두 손으로 고독한의 얼굴을 붙잡고 그의 입술에 진하게 입 맞췄다.

 

 "얘, 얘들 좀 봐. 엄마 있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그러게. 이건 좀 너무 서구적이지 않니..."

 

  이영화와 류미리가 서로 자기 자식의 팔을 잡아끌며 말렸다. 마침, 카페 문이 열리자 지수는 반가운 얼굴로 손을 크게 휘저었다. 고독한은 행복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눈부신 빛이 그들을 비췄다. 여름이 카페 안으로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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