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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31. 여기, 한국행 비행기 표야. 내일 당장 한국으로 떠나!
작성일 : 19-10-26 11:30     조회 : 162     추천 : 0     분량 : 8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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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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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 오고 나서 며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빠들에게 몇 달 동안 밀린 잔소리와 꾸지람을 들어야 했고, 친구들에게는 한국에서 겪은 모든 일을 이야기한다고 밤낮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떠들어댔다.

 

  집에 돌아온 첫날에는 한국에서 보낸 날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프랑스에 도착한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종일 영혼이 풍선처럼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예쁜 왕자와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마치 동화 속 세계를 여행하고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공중에 붕 떠 있던 풍선이 뾰족한 바늘에 '팍'하고 터지듯이 사건이 일어났다. 그 충격적인 사건은 일주일이 지난 다음 날 아침에 티냐에게서 들었다.

 

 "리아! 리아! 이것 좀 봐!"

 

  티냐는 꼭두 새벽부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깨웠다.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어 내게 인터넷 기사를 보여줬다.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글이 적혀 있었다.

 

 <모 잡지의 유명 모델, 사귀던 남자에게 살해!>

 

  현재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기사였다. 그 기사 제목을 본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송곳이 등골을 서늘하게 꿰뚫는 듯한 기분이었다.

 

  티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눈치를 살피며 기사 내용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리아, 네가 말하던 예쁜 왕자가... 혹시 이 사람 아니야?"

 

  그녀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기사 속에 모델을 설명하는 글이 고독한 씨와 똑같았다. 카페를 경영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인 데다가,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의 외모를 찬양하는 것까지.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엄마와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했는데. 민호 씨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이메일을 보내왔었다. 사건은 내가 프랑스로 떠나는 날 저녁에 일어났으니 지금까지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그들이 이 일을 나에게 감추었을리가 없다.

 

  나는 당장에 노트북을 꺼내서 민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엄마에게 영상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그들에게서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은 심장을 아주 천천히 도려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한국의 다른 기사를 봐도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다. 불안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 떠올랐다. 그 순간의 참을 수 없는 불길한 떨림까지도.

 

  메일은 오후 늦게 도착했다. 메일을 어떻게 다 읽었는지 모르겠다. 읽는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심장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잠시 후, 엄마에게서 영상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사실이냐고 묻는 내 물음에 어떻게든 답을 피했다. 엄마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사실이라는 것을.

 

  목수가 일초에 한 번씩 내 가슴에 못을 박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할 것을, 그때 알았다.

 

  예쁜 왕자는 백발 마녀의 빨간 독 사과를 먹고 죽었다. 영원히 잠든 것이 아니라, 잠을 깨울 수 없는 곳으로 아주 가버렸다.

 

  동화 속에 나오는 행복한 결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꿈만 같던 나의 동화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

 

 *

 

 "안드리아 아빠! 내 어그 부츠 못 봤어요?"

 "그거 어제 세탁소에 맡겼는데! 진흙이 잔뜩 묻었더라고."

 

  화창한 봄볕이 거실에 길게 내려앉은 아침.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거실을 가로질렀다.

 

 "리아, 이번 주 거실 청소 네가 한다고 하지 않았니?"

 "가브리엘 아빠. 죄송해요. 주말에 몰아서 할게요!"

 "자기가 말한 것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바쁘면... 미리 말하렴. 차라리 청소부를 고용해도..."

 "가브리엘! 나랑 얘기해!"

 

  안드리아가 가브리엘을 찾아가서 그의 어깨를 소리 나게 때렸다. 행여나 지수에게 말소리가 들어갈까 봐 아주 조용히 그를 타박했다. 가브리엘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조곤조곤히 말했다.

 

 "아빠들! 내 일 제대로 못 해서 미안! 주말에 진짜 다 할게요! 갔다 올게!"

 

  지수는 심각한 얼굴로 귓속말을 나누는 안드리아와 가브리엘에게 밝게 인사하고 집 밖으로 달려나갔다. 안드리아는 걱정하는 눈으로 달려나가는 지수를 지켜봤다. 그의 손이 가브리엘의 두꺼운 팔뚝을 꼬집었다.

 

 "가브리엘, 이제 겨우 반년 밖에 안 지났어. 왜 이렇게 배려심이 부족해."

 "그래서 청소부를 고용하자는 거잖아. 그게 뭐가..."

 "리아는 위로를 받고 싶은 게 아니라고.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애한테 그게 할 소리야? 거기다 말투는 너무 공격적이잖아. 그러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알겠어. 알겠다고. 빌어먹을!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가브리엘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천천히 화를 가라앉혔다. 안드리아가 그의 어깨를 포근히 보듬어줬다.

 

 "알아. 우리 모두 노력하는 중이야. 하지만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리아잖아. 리아가 극복할 수 있게 더 도와줘야 해."

 "나도 힘들어. 리아에게 도대체 무얼 해줘야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 애 눈도 제대로 못 보겠는 걸..."

 

  가브리엘이 낮게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 안드리아는 글썽이는 그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문질렀다.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첫사랑을 잃었을 때의 기분이 어떤지 알잖아. 거기다 리아는... 가능한 최악의 방법으로 그 사랑을 잃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애가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것 뿐이야."

 

  그들은 서로를 감싸안으며 작은 기도를 올렸다. 그녀가 무사히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그녀의 마음이 크나큰 절망에 휩싸이지 않도록.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거실에 가득 울렸다. 날이 천천히 밝아왔다.

 

 *

 

  오 월은 종일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하루 중에 간헐적으로 비가 내렸다. 구름은 금세 하늘을 덮었다가 언제 흐렸는지도 모르게 사라지고는 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지수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가 이번 주에 맡은 곳은 해양 동물원이었다. 그곳에서 펭귄, 물범, 물개에게 먹이를 주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청소하고, 그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하루가 빠듯하게 지나갔다.

 

  동물원의 일을 마치자 그녀는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멀리서부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건물 중간에 '동물 보호 센터'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금발 머리의 사내가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리아.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안녕, 루이스. 며칠간 바빴어요. 직장 동료가 아파서 그 사람 몫까지 해야만 했거든요. 달라진 건 많이 없죠? 그런데 이 주 전에 들어온 츄렛이 안 보이네요."

 

  지수는 뒤따라오는 루이스에게 물었다. 루이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덫에 걸려서 다리를 다쳤던 담비 말하는 거죠? 상태가 금방 괜찮아져서 원래 살던 곳에 풀어줬어요. 그런데 매번 들어오는 동물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거예요? 어차피 며칠 있거나, 다 나으면 보내줘야 할 동물이고, 다시는 못 볼 텐데 말이죠."

 "다시 못 보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있잖아요. 모든 동물을 돌봐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여기에 들어오는 동물에게만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원래 동물을 그렇게 좋아하나봐요. 어쩐지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듯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걸 보면 무슨 이유가 있겠죠? 혹시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선을 넘은 질문이네요."

 

  지수는 차갑게 돌아섰다. 루이스는 넉살 좋게 웃으며 뒤돌아선 그녀의 옆에 섰다.

 

 "선을 넘었다면 미안해요. 그럼 그 선을 조금 고칠 수 있게 내게 기회를 줄래요? 이번주 주말에 시간 어때요. 저녁에 멋진..."

 "그 선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예요. 이제 오늘 들어온 동물 좀 소개해줄래요?"

 

  루이스는 애써 미소 지으며 그녀를 임시 보호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새로이 들어온 동물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녀의 굳은 얼굴이 유일하게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 새는 날개가 부러져서 왔어요. 포수에게 총을 맞았는지 총알에 관통된 자국이 있었죠. 치료하는데 꽤 애를 먹었어요. 상처 부위가 곪았었거든요. 아무래도 예전처럼 다시 날기는 힘들 것 같아요. 이 고양이는 한쪽 눈을 다쳤어요. 천적한테 당했을 수도 있지만, 철없는 꼬맹이들한테 당했을 확률이 더 높긴 하죠."

 

  지수는 유리관 안에서 쌔근쌔근 자는 고양이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루이스가 그녀를 힐끔힐끔 훔쳐보며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건넬 기회를 살폈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간호사가 루이스를 급하게 찾았다.

 

 "선생님! 어서 치료실로!"

 

  그들은 간호사를 따라 황급히 치료실로 향했다. 그들이 향한 곳에는 의료용 침대 위에 담비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담비의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포수에게 총을 맞았는지 총알이 뚫고 간 흔적이 보였다.

 

 "츄렛!"

 

  지수가 담비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그러자 간호사가 그녀를 막으며 루이스를 불렀다.

 

 "선생님! 빨리 치료를 부탁합니다!"

 "지금 바로 수술실로 옮기죠."

 

  간호사는 담비가 놓인 의료용 침대를 끌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루이스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지수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진정시켰다.

 

 "내가 꼭 살릴게요. 그러니까 진정해요. 나는 동물은 살릴 수 있어도, 사람은 살릴 수 없으니까."

 

  그가 농담을 해봤지만, 그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를 억지로 의자에 앉혀놓고, 서둘러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녀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죽을 위기에 처한 담비를 살리는 것밖에 없었다.

 

  지수는 죽은 듯이 누워있는 담비가 눈앞에 아른거려서 차라리 눈을 감았다. 담비의 잔상이 잊고 싶었던 사실을 자꾸만 떠올리게 했다. 멀리서 찬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숨이 점점 차올랐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두었던 상처가 다시금 벌어졌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추억들. 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헤어지기 전 마지막 입맞춤까지. 그 모든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행복이라 여겼던 그 추억이 전부 반대로 뒤집어졌다.

 

  이토록 아플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을텐데. 사랑이 결국엔 슬픔으로 남는다면, 그토록 열정적으로 달려들지 않았을텐데. 그가 그렇게 떠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가지 못하게 붙잡았을텐데. 이 모든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매번 그를 생각나게 하는 나 자신의 추억과 끝없이 싸워야만 했다. 언제쯤이면 이 고통이 사라질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고통 속에서는 최소한 그를 볼 수 있으니까.

 

 "리아. 괜찮아요? 지금 막 수술 끝났어요. 츄렛은..."

 

  루이스가 두 시간에 걸친 긴 수술을 끝내고 나왔다. 수술용 복장도 벗지 않은 채로 다급하게 지수에게 달려왔다.

 

  지수는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루이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수술용 마스크를 벗으며 미소 지었다.

 

 "무사해요. 수술 후 경과를 더 봐야 알겠지만, 총알이 다행히 내장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별 탈 없이 회복할 거예요."

 

  그녀는 무사하다는 그의 말에 눈을 감았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일까. 그 말을 듣기 위해 이곳에 있는지도 몰랐다. 감은 눈 속으로 예쁜 왕자의 얼굴이 또렷이 나타났다. 예쁜 왕자는 여전히 예뻤다. 그를 이렇게라도 볼 수 있다면...

 

 "리아! 정신 차려요, 리아!"

 

  루이스의 외침이 어둠 속에 메아리쳤다. 어둠이 더욱 짙어지면서 눈앞에 하얀 설원이 펼쳐졌다. 예쁜 왕자는 그곳에 있었다. 그의 곁으로 걸어가 얼어붙은 그를 품에 안았다. 이대로 그와 함께 얼어 죽고 싶었다.

 

 *

 

 "리아! 정신이 들어?"

 "여... 기가... 어디에요?"

 

  지수는 눈이 부셔서 눈을 뜨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 차츰 눈앞이 선명해졌다. 안드리아가 걱정하는 얼굴로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를 불렀다.

 

 "괜찮아? 리아, 몸은 좀 어때?"

 "내가 왜 여깄어요?"

 

  그녀가 하얀 벽과 손등에 이어진 링거, 수술용 침대를 살펴보며 물었다. 안드리아는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에 쓰러져서 응급실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왔어. 의사 말로는 몸에는 아무 문제 없다는데. 아무 문제 없는 애가 이렇게 쓰러질 리가 없잖니.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받아보자."

 "안드리아 아빠. 난 괜찮아요. 퇴원할래요. 지금 몇 시예요? 늦으면 안 되는데."

 "동물원에는 내가 얘기했어. 일주일 정도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네? 일주일이면 다른 사람 구한다고요. 난 괜찮은데. 지금 바로 가면 안 늦을 수..."

 

  지수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꽉 붙잡고 있는 안드리아의 손길에 도로 침대에 누웠다. 안드리아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검사 다 받고, 최소한 오늘은 여기서 푹 쉬어. 분명히 말했어. 네가 한 번 더 쓰러지면..."

 "진짜 괜찮은데... 알았어요. 아빠, 그런데 일은 안 늦었어요?"

 "오늘 쉰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잔말 말고 검사받아. 의사도 곧 올 거야."

 

  안드리아는 그녀에게 물을 가져다주며 한 번 더 의사를 호출했다.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한 채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잠시 후, 의사가 들어와서 그녀를 진찰했다. 의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안드리아의 강경한 요구에 그녀는 각종 검진을 받아야만 했다.

 

  까다로운 검사를 다 받고나자 점심 때가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안드리아는 검사 결과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그녀는 병실에 홀로 누워 있었다. 그녀의 병실로 티냐와 알렉스가 들어왔다.

 

 "리아! 몸은 괜찮아?"

 

  티냐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지수의 옆에 다가가 물었다.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자 알렉스가 찡그린 표정으로 둘을 지켜보다가 지수에게 소리쳤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이건... 리아, 너 답지 않아!"

 

  티냐가 알렉스를 말리며 그의 어깨를 쳤다. 지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속삭였다.

 

 "나 다운 게 뭔데?"

 "몰라서 물어? 밝고, 매사에 긍적적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게 너잖아.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내 곁에 있어준 유일한 사람이 넌데..."

 "그랬었지. 그런데 사람은 변해."

 

  지수가 알렉스를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알렉스는 그녀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뒤돌아섰다.

 

 "티냐, 가자. 병실을 잘못 찾아왔나 봐. 이 사람은 리아가 아니야."

 

  알렉스는 곧장 병실을 나갔다. 지수는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리아..."

 

  티냐가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지수를 봤다. 지수의 얼굴은 어둠에 가리워져 있었다. 티냐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이번에는 알렉스 말이 맞아. 이건 내가 알던 네 모습이 아니야.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리아."

 "나가줘. 혼자 있고 싶어."

 

  지수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 위로 햇빛이 기울었다. 창밖에 날이 저물고 있었다.

 

 *

 

  눈보라가 휘몰아친 설원에 얼음 동상처럼 죽어 있는 예쁜 왕자. 그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얼어붙은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피부에 닿은 손가락 끝에서부터 찬 기운이 뻗어 나왔다.

 

  예쁜 왕자는 이토록 차가운 곳에서 홀로 얼어 죽은 것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그를 품에 안았다. 온몸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차라리 이대로 그와 함께 얼어 죽어도 좋았다. 그 순간,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귓가에 선명하게 울리는 그의 심장 박동 소리. 그는 살아 있었다. 백발 마녀의 저주에 걸려 영원한 잠에 빠져든 채로.

 

 "리아! 악몽을 꿨니?"

 

  안드리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자는 지수를 흔들어 깨웠다.

 

  지수는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심장이 아파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구해줘야 해... 아직 그가..."

 "리아. 그는 죽었어. 제발, 이제 그를 보내주렴."

 "아니야. 살아 있어. 내가 도와주길 기다리고..."

 

  안드리아는 지수의 손을 꽉 붙잡았다. 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입을 다물었다. 눈물이 꾹 다문 입술 위로 흘러내렸다.

 

 "리아. 이제 좀 진정이 됐니?"

 

  안드리아는 그녀가 흘린 눈물 자국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의 등 뒤로 금발 머리의 루이스가 나타났다.

 

 "안녕. 리아.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네... 덕분에 감사합니다."

 "리아가 이렇게 쓰러질 때마다 얼마나 깜짝 놀란다고요. 내가 수의사가 아니라, 보통 의사이길 원한다니까요."

 

  루이스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띤 채로 농담을 건넸다. 지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쉬는 날에는 오전부터 가서 일을 도울게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게..."

 

  루이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이 지수의 안색을 빠르게 살폈다.

 

 "당분간 우리 쪽에 안 왔으면 해서요."

 "네? 왜요? 항상 사람이 부족해서 곤란하다고 했잖아요."

 "물론 부족하죠. 우리는 언제나 동물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자신을 돌보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제발, 루이스."

 

  지수가 애원하듯이 루이스의 손을 붙잡았다. 루이스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몸이 괜찮아지고, 마음도 건강해졌을 때. 그때 다시 오면 받아줄게요. 우린 늘 사람이 부족하니까요. 잘 있어요. 리아."

 

  지수는 가슴을 움켜쥐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예쁜 왕자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길도 사라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가 없인 단 하루라도 살 수 없는데.

 

  어둠 속에 펼쳐진 설원이 서서히 멀어졌다. 설원 속에 갇힌 예쁜 왕자도 점점이 지워졌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온몸이 차가워지면서 덜덜 떨렸다. 호흡이 빠르게 가빠왔다.

 

  그때, 가브리엘이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리쳤다.

 

 "리아! 여기, 한국행 비행기 표야. 내일 당장 한국으로 떠나!"

 

  안드리아가 뒤따라 들어와 가브리엘을 말렸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단호한 얼굴로 지수의 손에 비행기 표를 쥐여주었다.

 

 "우린 널 이렇게 약하게 키우지 않았어. 리아 넌, 이것보다 훨씬 강한 아이야. 그러니까 직접 가서 온몸으로 부딪혀 봐! 나는 네가 꼭 이겨낼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지수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물건을 응시했다. 내일 저녁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표였다. 가슴이 천천히 뜨거워졌다. 비행기 표를 움켜쥔 손이 떨렸다. 분명 두려움으로 인한 떨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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