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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28. 내 눈에는... 예쁜 나비가 보여요.
작성일 : 19-10-26 11:30     조회 : 167     추천 : 0     분량 : 7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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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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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먹먹해. 당장에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달빛은 거리를 환히 비췄다. 장마의 흔적이 사라진 밤공기는 상쾌했다. 그러나 거리는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그가 레스토랑에서 불러준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노래를 위해 들였을 그의 노력과 진심을 떠올리자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 때문에 민호 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길 바래. 왜 나를 사랑해준 걸까. 나는 고독한 씨를 사랑하는데.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왜... 왜... 나를...

 

  내는... 곁에서 지켜볼라고요, 내만 좋으면.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곁에서 지켜본다는 그의 말. 그의 모든 말이 나를 향해 있었다.

 

  빗속에서 그가 불러주던 노래,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 레스토랑에서 불러주던 노래, 모든 노래 가사가 머릿속에 울렸다. 더는 일어서 있을 수가 없었다. 거리 한복판에 주저앉아서 그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럼 사랑합니다, 는 프랑스어로 뭔데요.

 

  연습해본 거예요, 연습.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한테 해줄려고요.

 

  그거야 모르죠. 프랑스인일지, 프랑스어를 잘하는 한국인일지.

 

  쥬뗌므.

 

  그의 진심 어린 목소리와 장난기 섞인 미소. 어쩌면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그 미소가 품은 배려를. 그의 따뜻한 마음이 좋았어. 그래서 그에게 상처가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어.

 

  그렇기에 더더욱 슬픔을 멈출 수가 없었다. 더는 그의 따뜻한 미소를 받을 자격도 없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민호 씨..."

 

  한참을 주저 앉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한 감정이 크면 이토록 아플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서서히 아픔이 잦아들고, 땅에 스미어든 빗물처럼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달빛은 환하게 빛났다.

 

 "나 같은 건 금방 잊을 거야. 민호 씨는 강한 사람이니까."

 

  그에 대한 감정을 추스리고 나자 잊고 있었던 사람이 생각났다.

 

 "아직 떠난다고 말도 못 했는데..."

 

  예쁜 왕자를 떠올리자 심장이 욱신거렸다. 예쁜 왕자의 쓸쓸한 눈빛이 심장을 저미는 듯했다. 하기 힘든 말이지만, 해야만 했다. 그가 머무는 곳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

 

  지수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냉동고에 들어간 것처럼 싸늘했다. 피부가 떨릴 정도로 한기가 느껴졌다.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애써 오한을 떨쳐버리며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위층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 한 계단씩 올라갈수록 떨림이 심해졌다. 위층의 방문은 열려 있었다. 그 사이로 짙은 어둠이 뻗쳐 나왔다.

 

 "고독한 씨... 안에 있어요?"

 

  살짝 열린 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에서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분이 꺼림칙했다. 이마 옆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고독한 씨, 할 말이 있어요... 잠시 들어갈게요... 고독한 씨?"

 

  방문을 열자 실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그의 이름을 소리내 불렀다. 어둠은 소리마저 집어삼킨 듯이 고요했다.

 

  그때 어디선가 헐떡거리는 듯한 신음이 들렸다.

 

  그녀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닫힌 문틈 새로 가는 빛줄기가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빛줄기가 새어 나오는 방문을 열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 속에서 바닥에 쓰러진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고독한 씨!"

 

  의상실 바닥에는 고독한이 자신의 가슴을 움켜쥔 채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쓰러진 그의 앞에는 로이가 차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지수는 로이를 밀치고 한걸음에 달려가 고독한의 상태를 살폈다.

 

 "정신 차려요! 고독한 씨!"

 "사... 살려줘..."

 

  그는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로 그녀에게 애원했다. 숨을 쉬기가 힘든지 컥컥거리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혈색이 새파랬다.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를 부둥켜안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어떻게 해... 고독한 씨... 고독한 씨..."

 "네 따위가... 감히 여길 나타나?"

 

  미성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러나 그녀의 귓가에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어줍짢게 위하는 척 하지 마!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이렇게 만든거라고!"

 

  로이는 어쩔 줄 모르는 그녀를 성난 눈으로 노려보며 소리쳤다. 로이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에 메아리쳤다.

 

  지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독한을 부둥켜안은 채로 중얼거렸다.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그의 고통이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눈보라가 치는 설원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공포가 심장을 죄여왔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온몸이 떨렸다. 그러나 여기서 굴복하고 만다면 예쁜 왕자는 영원히 이 추위 속에서 혼자 얼어죽고 말 것이다.

 

  그녀가 로이의 눈을 마주보며 소리쳤다. 그녀의 두 눈이 차가운 공포를 마주했다. 더는 두려움을 피하지 않았다.

 

 "거짓말 마!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어! 당신이 고독한 씨를 아프게 했다고!"

 "내가 이렇게 했다고? 네 눈으로 똑똑히 봐! 그 역겨운 입과 더러운 손으로 이 애한테 가한 상처를 잘 보라고!"

 

  로이가 부릅뜬 눈으로 고독한의 목을 가리켰다.

 

  고독한은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목을 가리려 애썼다. 하지만 손으로 목을 가릴 힘도 없는지 애처롭게 신음만 흘렸다.

 

  그의 목에는 목울대를 중심으로 흉터가 양옆으로 퍼져 있었다. 마치 거미가 목을 꽉 부여잡고 있는 것처럼 흉터의 모양이 기괴했다. 그건 마치 사람이 양손으로 목을 조를 때 생기는 자국과 같았다.

 

 "저 흉측한 흉터가 어떻게 생긴 지 알아? 저게 바로..."

 

  그녀는 그의 목에 새겨진 흉터를 마주 보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글썽이는 그녀의 눈 속에서 흉터는 아름답게 빛났다.

 

 "나비예요."

 

  지수가 고독한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떨림이 온전히 느껴졌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아팠으면 상처가 거의 사라진 지금도 아파서 숨을 쉬지 못할까.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의 머리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어떻게 하면 그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을까. 그를 위한 마음이 모여 눈물이 고였다.

 

 "뭐 하는..."

 

  로이의 당황한 눈빛이 낮게 깔렸다. 지수는 눈을 감으며 그의 흉터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고독한은 그녀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녀에게 흉터를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끊어지길 바랐다.

 

  그 순간,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은은하게 울렸다.

 

 "고독한 씨. 내 눈에는... 예쁜 나비가 보여요. 고독한 씨 목에는 예쁜 나비가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

 

  그녀의 속삭임에 얼어붙은 강이 봄바람에 사르르 녹듯이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떨림이 차츰 잦아들었다. 창백했던 그의 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숨소리가 고르게 울렸다.

 

  고독한은 그녀의 온기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안정감이었다. 온몸에서 열이 나는 것처럼 땀이 났다. 그녀의 냄새가 머리 깊숙히 파고들었다.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로이는 고독한을 꽉 끌어안은 지수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악에 받힌 목소리가 꾹 다문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마지막 경고야. 내일 한국을 떠나.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저 아이의 목숨은 내 소유니까."

 

  미성의 목소리가 차가운 바닥에 그들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환한 빛 아래에 고독한과 지수, 둘만 남았다.

 

  지수는 애써 울음을 참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가슴 가득히 느껴지는 그의 체온이 따뜻했다.

 

  고독한은 그녀의 품 속에서 규칙적인 심장 박동을 느꼈다. 오랜 꿈속에서 갈망해왔던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가슴이 따스해지면서 잠이 쏟아졌다. 꽉 끌어안은 그녀의 품속에서 고개를 틀었다.

 

 "미, 미안해요..."

 

  그녀가 그를 놓아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그가 그대로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있어 줘..."

 

  그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품속은 요람처럼 편안했다. 목을 휘감고 있던 저주의 흉터가 점차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그녀의 품속에서 오래도록 잠들고 싶었다.

 

  그녀는 아픈 눈길로 그를 어루만지다가 천천히 그의 머리 위에 이마를 기댔다. 어느새 뼛속까지 시리던 추위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

 

  여린 햇살이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민호는 흐리멍덩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한숨도 못 잤는지 눈 밑에 짙은 그늘이 졌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붉어진 눈시울이 떠올랐다.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미안하다는 그녀의 말은 무슨 뜻일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확실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 어떤 의심과 절망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작 한 번 차였다고 포기하면 남자가 아이지. 열 번, 스무 번, 내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걸 보여줄끼다. 아부지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겠제..."

 

  그는 통기타를 보며 중얼거렸다. 날이 서서히 밝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갔다.

 

 "지, 지수 씨..."

 

  거실로 나온 민호가 위층에서 도망치듯 내려오는 지수를 손으로 가리켰다. 지수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어... 민호 씨... 좋은 아침이에요... 이게... 어떻게 된거냐면요..."

 "지수 씨! 한이 형 방에서 잤어요?"

 

  그가 그녀의 옷차림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어젯밤에 그녀가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더 확신이 들었다.

 

 "진짜 둘이 같이 잔 거예요?"

 "잔 건 맞는데... 왠지 말의 뜻이..."

 "네? 잤다고요! 잤어요! 한이 형이랑!"

 

  민호는 머리를 움켜잡고 괴로워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눈앞에 사실이 그러했다. 정말 한이 형과 사랑을 나눈 걸까. 그러나 그녀의 입으로 듣기 전까지는... 어떤 사실도 인정하기 싫었다.

 

 "한이 형은 게이야... 그러니까 둘이 같이 잤을리가 없어... 이 정도로 내 맴을 포기할 수가..."

 

  지수는 그의 상태를 살피며 거실로 내려왔다. 괴로워하는 그를 보니 어제는 제대로 못 했던 말을 지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호 씨. 나 오늘 한국 떠나요. 언제 돌아올지 몰라요. 물론 다시 돌아올거지만... 민호 씨의 마음은 받아줄 수가 없어요. 민호 씨는... 내 소중한 친구예요. 민호 씨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나처럼 부족한 사람을 좋아해 줘서..."

 

  그녀의 목소리가 햇살을 따라 거실에 번졌다.

 

 "진심으로 고마워요."

 

  지수는 그의 손을 붙잡으며 그의 눈을 마주 봤다. 그의 마음이 덜 상처받기를 바라며 고개를 숙였다.

 

  민호는 가슴이 텅 빈 것처럼 감정이 뭉텅이째로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녀의 진심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져왔다. 조금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이제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더는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정말로 그녀를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를.

 

 *

 

  사랑은 뭘까. 어떤 사람은 사랑이 초콜릿 같다고 하고, 누구는 쓰디쓴 커피 같다고 한다.

 

  지금 이 느낌이 사랑일까. 가슴이 뛰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온몸에서 땀이 나는 이 현상들이 모두 사랑이 만들어낸 결과물일까.

 

  고독한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응시했다. 거울 속에는 낯선 얼굴이 보였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사랑이 어떤 건지 모르겠다. 사랑은 원래 이토록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것일까.

 

  조금 전,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귓가에 맴돌았다.

 

 '쿠키슈... 네가 왜... 여기에 있어?'

 '고독한 씨. 어제 일 기억 안 나요?'

 '어, 어제... 로이랑 말다툼을 하다가 쓰러졌는데... 누군가가 와서... 포근하고, 따뜻한... 꿈인 줄 알았는데...'

 '꿈 아니에요. 고독한 씨가 말했잖아요. 나한테, 여기 있어 달라고.'

 '뭐...? 내가 그랬을 리가 없어.'

 '우와. 지금 기억 안 나는 척하는 거예요? 내 첫날밤을 가져가 놓고!'

 '처, 첫날밤이라니! 미친 거 아니야! 그, 그보다 내 방에는 왜 들어왔어!'

 '그거야... 내일 떠난다는 말 하려고... 아, 이제 오늘이구나. 나, 오늘 밤 비행기 타고 프랑스로 가요.'

 '잘됐네. 더이상 아침마다 놀랄 일도 없고, 괜히 카페 자리 차지하는 사람 없어져서 좋네.'

 '참나. 그거 다 고독한 씨 유혹하려고 그런거 거든요. 그런데 진짜 기억 안 나요? 누구 때문에 밤새도록 무릎베개 해준다고 아직도 다리가 저린데.'

 '잠, 잠시만...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기억났어요? 거봐요! 고독한 씨가...'

 '몰라! 기억 안 나! 나가! 당장 나가!'

 

  기억이 떠오른 순간, 얼떨결에 그녀를 내쫓았다. 창피하고, 민망해서 그녀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어젯밤의 기억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녀를 생각하자 심장이 욱신거렸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지만, 목은 마르지 않았다. 힘이 마구마구 솟구치면서 현기증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걸까. 그녀를 향한 이 감정이 사랑일까.

 

  만약에 이 감정이 사랑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고독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마구잡이로 솟아오르는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거울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시선이 목으로 향했다. 목에 있어야 할 끔찍한 흉터가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봐야지 보이는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이 형! 나 들어간다."

 

  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독한이 급하게 스카프를 둘러메고 의상실 밖으로 나갔다.

 

 "왜? 무슨 일인데."

 "형! 이제 어떡할거야?"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

 

  민호가 고독한의 어깨를 붙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형, 게이잖아. 진짜 지수 씨를 사랑하기라도 하는 거냐고..."

 "나도 모르겠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지금 당장 뭐할 건데. 앞으로는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뭐할 거냐고."

 "그야..."

 

  고독한은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이제 곧 카페 오픈 시간이었다. 그러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아무 말도 못하게 혀 뿌리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민호가 핸드폰을 열어서 고독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개를 숙인 민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실내 동물원 표야. 카페는 내가 열테니까. 지수 씨랑 여기 가."

 "가서 어쩌라고. 나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못 정했는..."

 "형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아무도 몰라. 그건 형만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직접 부딪혀봐. 형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가서 제대로 알아보라고. 형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수 씨를 위해서."

 

  민호가 고개를 숙인 채로 뒤돌아섰다.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겨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지수 씨는, 형한테 아까운 사람이야. 나라면... 고민 따위... 안 했을 거라고."

 

  고독한은 방에 혼자 남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에는 아침부터 뜨거운 햇살이 내리쬈다. 장마가 지나고, 무더운 폭염이 왔다. 이른 아침부터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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