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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26. 날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그 고통 속에서 몸부림 쳐봐!
작성일 : 19-10-26 11:29     조회 : 165     추천 : 0     분량 : 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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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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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호는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처음으로 녹음실을 찾았다. 이곳에 오면 아버지가 생각날까 봐 매번 발걸음을 돌리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버지의 힘을 꼭 빌려야만 했다. 용기를 내어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민호야!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민호의 고등학교 밴드 선배인 최철이 놀란 얼굴로 민호를 맞았다. 녹음실을 계속 비워놓고 있기보다 친한 선배에게 싼 가격에 녹음실을 대여해 주고 있었다. 민호가 최철에게 마무리가 거의 끝난 악보를 건넸다.

 

 "철이 형. 오늘 녹음실 좀 사용할게."

 "무슨 일인데. 이건 뭐야? 네가 직접 작곡했어?"

 

  민호는 녹음실 전체를 둘러봤다. 녹음실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와! 이걸 네가 작곡한 거라고? 대충 훑어봤는데도 꽤 좋은데!"

 "오늘 저녁까지 무조건 끝내야 해. 도와줘."

 "야. 이 많은 걸 고작 몇 시간 만에? 소리 따는 게 무슨 쉬운 일인 줄 알아?"

 

  최철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빨라도 곡 하나에 최소 삼 일은 쏟아부어야 했다. 그런데 고작 몇 시간 만에 곡을 완성시킨다? 베테랑 연주자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민호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니까.

 

 "이 곡을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내일 한국을 떠나. 그래서 오늘 저녁 밖에 기회가 없어. 형... 할 수 있다고 해줘."

 

  최철은 민호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녹음실 문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가 민호의 눈을 마주보며 손으로 녹음실 문을 가리켰다.

 

 "사실 우리도 오늘 녹음하려고 모이기로 했거든. 지금 밖에 온 것 같은데. 쟤들까지 도와준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녹음실 안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들이 민호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우민호! 이 자식! 네가 여긴 왠일이냐!"

 "민호, 인마! 얼굴 못 본지 좀 오래됐다! 내가 보고 싶어서 왔지?"

 "민호 선배! 여태 어떻게 지냈어요? 선배의 목소리가 얼마나 그리웠다고요."

 

  민호와 같이 밴드를 했던 이장신, 신기영, 김영수가 민호를 반겼다.

 

  민호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보는 밴드부 친구들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하기가 꺼려졌지만, 이들이 도와준다면 불가능도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최철이 민호에게 받은 악보를 그들에게 건넸다. 그들은 악보를 훑어보며 감탄했다. 곡에서 작곡가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최철! 널 좀 다시 봐야겠는데! 이거 완전 최고잖아!"

 "그러게요. 철이 형이 이런 곡을 쓸 수 있다니.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밴드부 단원들이 다들 놀라워하며 최철을 봤다. 그러자 최철이 민호를 가리켰다.

 

 "내가 쓴 거 아니야. 얘가 썼어."

 

  밴드부 단원들의 시선이 민호를 향했다. 최철은 간단하게 몸을 풀며 녹음 준비를 했다.

 "오늘 이 곡 녹음할 거야. 저녁까지 완성해야 한다니까. 지금부터 빡시게 가자고."

 "오케이!"

 

  밴드부 단원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각자 맡은 악기의 악보를 들고 제자리로 갔다. 최철은 녹음 기기를 만지며 녹음 상태를 확인했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녹음에 진지하게 임했다.

  민호는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그들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녀가 아직은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 곡으로 그녀에게 닿을 것이다. 누구보다 간절한 이 마음으로.

 

 *

 

  지수는 차창 너머로 노을이 지는 걸 지켜봤다. 저녁 여섯 시가 지났음에도 해는 먼 산 위에 높이 떠 있었다. 주홍빛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쳐들었다. 먹구름은 하늘 끝으로 희미하게 사라지는 중이었다. 길었던 장마도 끝이 보였다.

 

 "내쪽으로 더 오렴."

 "괜찮아요. 오랜만에 햇살이 비쳐서 좋아요."

 

  류미리는 주홍빛으로 물든 지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가 한국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찌르듯이 아팠다.

 

 "지수야. 프랑스로 돌아가는 거,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래?"

 "엄마. 괜찮아요. 프랑스로 돌아가는게 맞는 것 같아요."

 "내가 저번에 그렇게 말한 건... 다시 말하지만... 나한테 엄마 자격도 없고, 프랑스에 있는 네 양부모도 걱정할꺼라..."

 "알아요. 정말로 괜찮아요."

 

  지수는 그 다음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한국에 남는다면... 분명 엄마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비에 젖은 미성의 목소리가 이따금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엄마의 마음을 알았으니 이걸로 충분했다.

 

  류미리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러고나면 딸을 잃을까봐 겁이 났다.

 

 "저녁에 누굴 만난다고 했지?"

 "민호 씨요. 같이 저녁 먹기로 했어요."

 "그래? 우리 딸이 남자한테 인기가 많나 보네."

 

  지수는 수줍어하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에게 인기가 많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장난기가 담긴 그 말이 싫지가 않았다.

 

 "그런 거 아니에요. 민호 씨는 내 친구예요."

 "지수야. 남자는 말이지. 관심 있는 여자가 아니면 절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 엄마가 봤을 땐, 민호 걔가 널 좋아하고 있는 게 분명해. 넌 민호한테 마음이 하나도 없는 거니?"

 "민호 씨는 진짜 내 친군데. 어떨 때는 내 수호천사이기도 하고, 또 친동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친구."

 "우리 딸은 일편단심이구나."

 "일편당... 그게 뭐예요?"

 "지수 너처럼 한 사람만 본다는 뜻이야. 그런데 카페 사장이 왜 그렇게 좋니? 얼굴이 좀 예쁜 거만 빼면, 성격도 까칠하고 유머도 없지. 더군다나 그놈은 남자한테만 관심 있잖니. 여자는 이성적으로 보지도 않는 놈이 뭐가 좋다고. 엄마가 봤을 땐, 민호가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오늘 저녁에 걔가 고백하면 콱 잡아버려. 여자는 해바라기 같은 남자를 만나야지, 해바라기가 되면 안 된단다."

 

  류미리가 지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지수는 항상 밝은 얼굴의 민호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민호 씨는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예요. 첫눈에 알아봤어요.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걸. 그런데..."

 

  그녀의 눈이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눈빛이 굳건해졌다.

 

 "고독한 씨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려요. 그 사람은... 내가 아니면 안 돼요. 그 사람을 구해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요."

 "구해주다니?"

 

  지수는 상상 속의 예쁜 왕자와 백발 마녀에 관해 설명했다. 류미리가 그녀의 설명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백발 마녀라고? 그 놈이랑 진짜 잘 어울리네. 보자. 예쁜 왕자는 카페 사장일테고. 그럼 우리 딸은 멋쟁이 공주님이신가?"

 

  지수는 장난스레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엄마와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이렇게 엄마가 늘 옆에 있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가 천천히 멈춰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카페 앞이었다.

 

 "집에 도착했구나. 우리 공주님의 예비 왕자 중 한 명이 저기 서 있네."

 

  류미리가 카페 앞에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내를 손으로 가리켰다.

 

  지수는 엄마의 농담에 손사레를 치며 차창 밖을 응시했다. 카페 앞에는 민호가 밝게 웃으며 서 있었다. 그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햇살을 맞으며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멋져 보였다.

 

 *

 

  선상 레스토랑 앞에 택시가 멈춰 섰다. 택시에서 곱게 차려입은 지수와 민호가 내렸다. 그들은 강물 위에 떠 있는 선상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불빛이 머리 위에 아름답게 수놓아 있었다. 레드카펫을 따라 선상 레스토랑 입구로 들어갔다.

 

  양 옆으로 한남대교와 동호대교가 보이고, 정면에는 남산타워가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넘실거리는 물결이 바로 옆에서 일렁였다. 형형색색 불빛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낭만적이었다. 그들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실내로 들어갔다.

 

  매니저는 그들을 넓은 방으로 안내했다. 한쪽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만들어져서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실내 분위기 덕분에 야경이 더 돋보였다. 지수와 민호는 창가 옆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지수는 이미 선상 레스토랑 입구에서부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 한강 야경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황홀한 얼굴로 창밖을 구경했다. 촛불이 비치는 그녀의 볼이 붉게 상기됐다.

 

 "민호 씨. 여기 최고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다행이네요. 예약제라서 음식은 먼저 주문했어요."

 "괜찮아요! 여기서 먹는 거라면, 뭘 먹든 맛있을 거예요!"

 

  민호는 최대한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며 미소 지었다. 레스토랑에 여자와 단둘이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 여자가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이라서 더 떨렸다. 어찌나 긴장되는지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음식은 샐러드, 파스타, 스테이크 순으로 나왔다.

 

  지수는 생일 케이크가 나오길 기대하는 소녀처럼 음식이 나올 때마다 두 손을 모으고 감탄했다. 입맛을 돋우는 샐러드와 새우가 잔뜩 들어간 쉬림프 파스타, 핏물이 살짝 배여있는 안심 스테이크, 모든 음식이 아름다운 야경에 더해져 혀끝에 황홀하게 녹아들었다.

 

  민호는 지수에게 열심히 음식을 덜어주면서 정작 본인은 깨작깨작 먹었다. 음식 맛이 어떤지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음식이 그녀의 입맛에 맞는지, 그녀가 어떤 말을 하는지, 그녀의 표정을 살피느라 바빴다. 다행히도 그녀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여기, 꽤 비쌀 것 같아요. 나 현금이 많이 없는데. 돈이 부족하면 어떡해요?"

 

  지수가 멀리 있는 매니저가 듣지 못하게 조용히 말했다. 민호는 레스토랑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편하게 웃었다.

 

 "여기는 예약제라서 이미 계산했어요. 이건 내가 지수 씨한테 사는 거예요."

 "네? 왜요? 내가 사기로 했잖아요. 얼만데요. 부족하면 나중에 환전해서 돈 줄게요."

 "괜찮아요. 대신 다음 번엔 꼭 지수 씨가 사요."

 "나, 내일 한국 떠나는데요?"

 "프랑스 갔다가 다시 오면 되잖아요. 한국에 영원히 안 올 거예요?"

 

  지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민호는 거의 다 먹어치운 접시를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수 씨. 사실 급하게 예약한다고, 여기서 잠시 일 하나 해주기로 했거든요. 잠깐만 기다려요."

 "무슨 일인데요. 민호 씨."

 

  민호는 그녀를 남겨두고 어디론 가로 가버렸다.

 

  지수는 잠시 그를 걱정했다가 유리 너머로 보이는 야경의 매력에 빠졌다. 화려하게 빛나는 한강 다리와 높게 치솟은 건물들, 그리고 강물에 일렁이는 불빛은 고흐가 그린 그림처럼 기분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때 방 중앙에서 마이크 울리는 소리가 났다.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지수도 고개를 돌렸다.

 

  민호는 어둠 속에서 통기타를 메고 나타났다.

 

 "아, 아, 다들 식사 중이신데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지수 씨, 보고 있어요? 여기, 제 친구가 내일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그 친구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기 위해 노래를 한 곡 하려고 합니다. 제가 특별히 작사 작곡했고요. 사심이 듬뿍 담긴 곡입니다."

 

  민호가 방 중앙에 놓여 있는 피아노 옆에 서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사람들은 그가 하는 행동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는 통기타를 고쳐매며 시험 삼아 줄을 튕겼다. 통기타의 깊은 소리가 선실 내에 울렸다.

 

 "그럼, 시작할게요."

 

  허스키한 목소리가 이미 버스킹 준비를 마친 스피커를 통해 낮게 울렸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오후 내내 녹음한 음원을 틀었다. 그의 시선이 지수에게 닿았다. 선실에 피아노 소리가 촉촉하게 울려 퍼졌다.

 

 "더운 여름밤. 그대는 소나기처럼 내렸어. 나는 밤이 새도록 노랠 불렀지. 그대와 눈을 맞추며."

 

  지수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 하며 민호를 봤다. 민호는 자신의 눈을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가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그때 알았지. 아버지가 남긴 말씀을."

 

  민호가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피아노 소리를 따라 드럼 소리와 베이스 기타 소리가 합쳐졌다. 마지막으로 그의 손이 기타줄을 튕겼다. 통기타 소리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내 눈을 바라봐줄래. 그대가 보는 곳은 멀리 있어. 내 노래가 닿지 않은 곳으로 가지 말아줘."

 

  지수는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왜 이제

 야 알게 된 걸까. 그의 마음을.

 

 "비가 오는 여름밤. 그대와 비를 맞았어. 우린 밤이 새도록 노랠 불렀지. 서로의 눈을 맞추며. 그때 알았지. 아버지가 남긴 말씀을."

 

  그녀는 눈물이 솟구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자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이 눈앞에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원에서 처음 만난 순간, 함께 엄마를 찾던 순간,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른 순간, 모든 순간이 다 기억났다. 그는 매 순간 자신을 바라봐줬다.

 

 "내 눈을 바라봐줄래. 그대가 보는 곳은 멀리 있어. 내 노래가 닿지 않은 곳으로 가지 말아줘."

 

  노래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민호가 고음을 지르기 위해 숨을 크게 마셨다. 그의 눈이 레스토랑 밖으로 달려나가는 지수를 따라갔다. 반주는 쉬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그 시간을 노래할 거야. 내 노래가 닿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가 소리치며 지수를 쫓아나갔다.

 

 "지수 씨!"

 

  지수는 가슴을 움켜쥐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에 민호가 그녀를 뒤따라 나왔다. 강물에 비친 네온사인 불빛이 크게 일렁였다.

 

 "지수 씨..."

 "민호 씨... 미안해요... 미안해요..."

 "뭐가 미안한데요. 나는 괜찮아요. 다시 들어가요. 아니면 그냥 집에 갈까요."

 

  민호는 혼란스러워하는 지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지수가 뒷걸음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더이상 다가오지 마요. 혼자 갈 거예요. 민호 씨..."

 

  눈부셨던 야경이 캄캄한 어둠 속으로 모두 사라졌다. 무성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세상이 고요해졌다. 칠흑 같은 정적 위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말 미안해요... 몬 아미..."

 

  그녀는 뒤돌아서서 레드카펫을 따라 올라갔다. 레드카펫 위에 한 사람만 남았다. 달빛은 홀로 남은 민호를 비췄다. 그의 머리 위로 네온사인 불빛만 말없이 깜박거렸다.

 

 *

 

 "네가 감히 나를 협박해?"

 

  로이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질렀다. 전화기에서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왜 연락을 안 받아. 난 자기랑 잘 되고 싶은 것 뿐인데."

 "이미 늦었어. 넌 끝이야."

 "누구 맘대로 끝내. 시작을 같이 했으면, 끝도 같이 맺어야지. 반쪽 걔, 슬슬 자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지가 반쪽이라는 사실을."

 "그 애를 또 만나러 갔었어? 진짜 미쳤구나, 너!"

 "로이, 화내지마. 자기가 이럴 때마다 흥분돼서 미칠 것 같거든. 자기야, 그러지 말고..."

 

  로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들어 불 꺼진 건물을 올려다봤다. 저곳에 그가 살고 있었다. 빈 공기를 꽉 움켜쥐었다. 꽉 쥔 손아귀에서 그가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절대 못 빠져나가. 아무도 벗어날 수 없어..."

 

  달빛에 비친 백발이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그의 성난 발걸음이 건물로 향했다.

 

 *

 

  고독한은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소와 다르게 거실이 싸늘했다. 까만 어둠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조용했다. 현관등 불빛에 의지하여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떠나버린 걸까. 이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걸까.

 

  소파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어둠이 온몸을 휘감으며 그녀와의 추억을 처음부터 찬찬히 상기시켰다. 프랑스에서 함께 베르사유 궁전을 거닐던 그녀, 한강 다리 위에서 구해주겠다고 말하던 그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입을 맞추던 그녀, 빗속에서 젖은 눈으로 마주 보던 그녀, 무수히 많은 그녀가 가슴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가슴이 저릿저릿하면서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혹시 이게..."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위층으로 향했다. 아직 이 감정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로이가 들어왔다.

 

 "로이..."

 

  로이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독한을 찾았다. 고독한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그놈이 뭐라고 했어?"

 

  고독한은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대..."

 "뭐, 뭐?"

 

  로이가 당황해하며 그의 어깨를 붙잡은 손을 놓았다.

 

  고독한은 로이의 낯선 반응에 놀랐다. 로이라면 당연히 화내면서 그 말을 반박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로이는 당황한 눈초리로 할 말을 찾고 있었다. 로이의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로이... 너도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냐니, 뭘..."

 

  로이는 고독한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바꿨다. 그러자 고독한이 간절하게 애원하듯이 물었다.

 

 "내가 게이가 아니란 거 알고 있었냐고! 혹시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 거야? 이 불편한 느낌이 사랑이냐고!"

 "사랑? 네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여자가 널 사랑하는 것 같아? 착각하지마. 너는 그 여자를 동정하고 있는 거야. 너와 같이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이유로. 그런데 그 여자는 지금쯤 널 원망하고 있겠지. 너 때문에 이십 년만에 만난 엄마와 헤어지게 됐으니."

 "아니야..."

 "그럼 가서 물어봐. 프랑스로 돌아가는지, 한국에 남는지."

 

  고독한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싸며 괴로워했다.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심장을 칼로 후벼파듯이 아팠다. 아파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한! 넌 게이야! 그깟 여자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너... 그날 일을 다 잊었어? 이걸 누가 만든건데!"

 

  로이는 소리지르며 고독한의 스카프를 풀어헤쳤다. 로이의 손이 고독한의 목을 붙잡으며 그를 의상실로 데려가 거울 앞으로 들이밀었다.

 

 "자, 봐! 네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이 흉측한 흉터를 누가 만들었는지!"

 

  고독한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목의 흉터를 응시했다. 흉터는 목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숨이 막혀왔다. 그날의 손길이 온몸을 감싸며 목을 졸랐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어둠 속으로 로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목숨은 내 거야. 아무에게도 못 가. 날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그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봐!"

 

  로이는 고독한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바닥에 떨어진 스카프를 발로 밟았다.

 

  고독한은 자기 목을 움켜쥐며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날의 손길이 흉터 진 목을 움켜쥐었다. 주위에 공기가 빠르게 사라져갔다.

 

 "사... 살려줘..."

 

  눈앞에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그 순간, 어둠을 헤치고 누군가가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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