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식탁에 갖가지 음식이 수없이 올라와 있었다. 식탁 주위로 젊은 여성과 풋풋한 소년이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음식들을 두고 식탁에 앉은 모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상황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가정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모님. 아무래도 정 사장님은 회사 일 때문에..."
심선미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도 엄마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 위에 음식들이 빠르게 식었다.
"태원아. 배고플 텐데 밥 먹지 그러니. 엄마는 밥맛이 없구나."
"저도 그래요."
"그래. 그럼 엄마랑 놀러 갈까."
심선미는 소년을 자신의 의상실로 데려갔다. 의상실은 여자 옷과 장신구로 가득 차 있었다. 의상실로 들어가자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소년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의상실 문이 닫히자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지긋지긋해! 회사 일은 무슨.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난 거겠지."
가정부 앞에서 침착하게 행동하던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소년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홱 돌리며 소년을 노려봤다.
"뭐해, 빨리 안 벗고!"
소년이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의 피부가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네가... 네가... 딸이었다면 그 사람이 밖으로 나돌지 않았을 거야..."
심선미는 분홍색 여자 가발을 소년에게 씌웠다. 그리고 소년에게 꽃무늬 원피스를 입히고, 예쁜 구두를 신겼다.
"이것봐. 이렇게 예쁜 딸이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의 손이 예쁘게 치장한 소년의 얼굴을 매만졌다. 소년은 불안정해보이는 엄마를 가만히 쳐다봤다.
"아직, 아직... 더 남았어..."
심선미는 소년을 의상실 의자에 앉혔다. 소년의 정면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내가 더, 더 예쁘게 해줄게."
소년의 등 뒤로 화장 도구를 들고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소년의 얼굴을 예쁘게 화장했다. 소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했다. 거울에는 예쁘게 치장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드디어 내 딸이 나타났구나. 사랑스러운 내 딸아."
심선미가 소년을 등 뒤에서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소년은 엄마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녀가 소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그래야 착한 딸이지."
"그럴게요."
"이건 말 잘 듣는 딸에게 엄마가 주는 선물이란다."
그녀가 소년의 품에 선물을 안겨주었다. 소년은 엄마가 준 선물을 확인했다. 자신의 품에 노란 긴 생머리를 한 여자 인형이 보였다. 소년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마주 앉은 거울에 여자 인형을 품에 안은 예쁜 소녀가 비쳤다. 여자 인형은 거울에 비친 소녀처럼 희미하게 웃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