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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23. 넌 충분히 매력적이야. 게이가 봐도 말이지.
작성일 : 19-10-26 11:28     조회 : 155     추천 : 0     분량 : 8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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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요즘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졌네. 나 몰래 새로운 취미라도 생겼나 봐."

 "회장님이 모르는 비밀이 있을 수 있나요. 요새 피부가 건조해서 피부과 예약을 하나 더 했어요."

 

  류미리가 안색 하나 바뀌지 않는 얼굴로 시치미를 뗐다. 정 회장은 먹기 좋게 발라놓은 랍스타의 게살을 간장에 듬뿍 찍어서 먹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말이지. 나이테가 새겨지는 것과 같은 거야. 고목은 고목 나름의 멋이 있어. 피부에 주름이 지는 건 당연한 거지."

 "여자한테 주름이 생기는 건, 나이테랑 전혀 달라요. 회장님도 나이가 들수록 골프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시잖아요. 우리에겐 피부가 골프 점수랑 같은 거예요. 어떻게든 점수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죠."

 

  그녀의 말에 정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식탁 위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 비서에게는 못 당하겠네. 말이 나온 김에 나도 내 점수에 공을 들여야겠어. 이 실장 좀 불러주겠나. 나랑 비슷한 점수는 이 실장 밖에 없지."

 "지금 바로 가실려고요? 좀 더 있다 가시지."

 "왜? 오랜만에 류 비서도 따라올텐가? 이 정도 날씨면 피부가 새까맣게 타기 좋은 날씨인데."

 

  정 회장은 류미리가 주는 겉옷을 받아들며 창밖의 날씨를 손으로 가리켰다. 류미리는 못 당하겠다는 듯이 그를 따라 웃었다.

 

 "아, 참. 요새 그 자식은 어떻게 살고 있나."

 "도련님 말이에요? 여전히 잘 살고 있어요. 왜요? 집에 한 번 들르라고 할까요?"

 "아니야. 자네가 불편할텐데. 잘 살고 있으면 된거지. 박 기사 불러주게."

 

  그는 삐까뻔쩍한 외제차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류미리는 대문 밖에서 그를 배웅했다. 정 회장을 태운 차는 순식간에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뜨거운 햇살이 텅 빈 골목을 내리쬈다.

 

  하루 중 온도가 최고로 올라가는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 아스팔트 바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녀는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낮인데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오랜만이네요. 도련님."

 

  류미리가 뒤돌아서며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가 향한 곳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 양산을 쓴 로이가 서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제외한 다른 어떤 곳에도 피부 노출이 없었다.

 

 "도련님이라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역겹네."

 "그럼 본명으로 불러드릴까요. 정태원 씨라고."

 

  로이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류미리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회장님은 방금 골프치러 가셨어요. 연락할까요?"

 "아니. 내 용건은 그쪽한테 있거든."

 

  미성의 목소리가 골목에 조용히 울렸다. 그의 발걸음이 그녀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사람이 갈아치운 여자가 몇 명인 줄 알아?"

 "궁금하지 않네요. 저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다행이네. 그런데 그 사람도 그럴까?"

 

  로이의 날카로운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류미리의 한쪽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녀가 당황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당신, 아주 깊숙이 숨겨놓은 과거가 있던데."

 "도련님이 저를 싫어하시는 건 알겠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협박은..."

 "내 말 잘 들어."

 

  로이가 고개를 내밀어 류미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입김은 얼음을 문 것처럼 서늘했다.

 

  류미리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얼굴이 빠르게 창백해졌다. 넋 나간 그녀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내가,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초여름이 지나고, 장마가 찾아왔다. 온종일 비가 내렸다. 더위는 조금 가셨지만, 공기 중에 물방울이 떠다니는 것처럼 하루 내내 습했다.

 

  지수는 가죽 옷차림으로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의 표정이 비에 젖은 빨랫감처럼 축 처졌다.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렸기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지수 씨. 좋은 아침."

 

  민호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지수의 옷차림을 발견하자 헛기침 했다. 이제 면역이 될 때도 됐는데, 볼 때마다 숨이 막혔다. 그녀는 금세 밝아진 얼굴로 인사했다.

 

 "민호 씨도 좋은 아침! 요즘 빨리 일어나네요?"

 "마무리할게 있어서요. 오늘도 카페에 나갈 거예요?"

 "그럼요!"

 

  지수는 아침부터 한껏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과 동시에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한이 형, 좋은 아침."

 

  고독한은 위층에서 내려오면서 거실에 있는 민호와 지수를 확인했다. 지수에게로 시선이 향하자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지수는 오늘도 요상하게 생긴 가죽 옷을 입고 있었다.

 

  가슴골이 푹 파인 가죽 코르셋 사이로 두툼한 맨살이 보였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마음이 더 불편해지기 전에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때 지수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인사하며 귀엽게 입술을 내밀었다.

 

 "고독한씨잉! 좋은 아침이에요! 데헷!"

 

  민호와 고독한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둘의 얼굴이 동시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에잉! 부끄러우니까 그만 봐용! 안 그러면 리아는 삐칠꼬에욤! 오또케? 이로케."

 

  그녀가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애교 섞인 추임새를 넣는 건 당연했다. 그녀의 애교 폭격을 맞은 민호와 고독한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리아는 갑자기 재채기가 나올 꼬 같아."

 

  그녀는 무언가 준비한 게 있는지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민호와 고독한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무얼 준비했든지 그녀를 뜯어말리고 싶었다.

 

  그녀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눈을 돌리려 했지만, 그녀가 한발 앞섰다.

 

 "엣췽! 뿌잉!"

 

  인공 조미료가 가득히 섞인 재체기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그녀의 눈이 주변을 힐끔 살폈다.

 

  민호와 고독한이 놀란 얼굴 그대로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다. 거실에는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정말 효과가 있구나."

 

  지수는 그들의 색다른 반응을 보며 감탄했다. 그러자 그들이 흠칫 놀랐다.

 

  먼저 움직인 건 고독한이였다. 그는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민호가 용기 내어 지수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지수 씨... 왜 그래요... 무슨 병이라도..."

 "네? 남자한테는 이런 애교가 잘 먹힌다던데. 별로예요?"

 "그러이까... 아니, 한이 형은 게이라고 했잖아요. 아직 포기 안 했어요?"

 

  지수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하얀 공포가 온몸에 되살아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가 게이처럼 보이겠지만, 그녀 눈에는 마녀의 저주에 걸린 개구리처럼 보였다.

 

 "고독한 씨는 도움이 필요해요. 내가 꼭 구해줄 거예요."

 

  그녀는 한 번 더 결심을 되내이며 고독한을 뒤따라나갔다. 그들이 사라진 후, 거실에는 민호만 남았다.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왜... 형만 봐. 옆에 내도 있는데."

 

  그가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에서는 작업 하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바닥에 엎어진 통기타를 품에 끌어안았다.

 

 "이제 거의 완성 됐어. 이것만 완성하면..."

 

  민호는 헤드폰을 끼고, 공책을 펼쳤다. 오선지 아래로 연필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부지. 내도 아부지처럼 멋지게 고백해볼라고. 응원 좀 해도."

 

  방안에 설익은 노래가사가 흥얼거렸다.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었다. 빗방울이 잦아들고 있었다.

 

 *

 

  이른 저녁, 카페에 노을이 비쳤다. 테라스 지붕에서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거리에는 비의 흔적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오늘도 안 오네요."

 

  민호가 앞치마를 벗으며 창가에 앉아 있는 지수 옆으로 다가갔다. 지수는 평온한 얼굴로 햇볕에 몸을 말리는 거리를 바라봤다.

 

 "엄마가 일이 많이 바쁜가 봐요. 오늘은 공연하러 갈 거예요?"

 "요 며칠간 계속 비가 와서 못 했는데. 오늘은 당연히 해야죠. 지수 씨도 올 거죠?"

 "그럼요."

 

  그녀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햇살이 구멍 난 양말 속처럼 비치기는 했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가득했다.

 

 "이제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

 

  지수는 날이 지는 풍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민호는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집으로 올라갔다. 창밖은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고, 카페에 남은 손님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고독한은 창가를 지키고 앉은 지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문 닫을 시간이야."

 "알아요. 마감하는 거 도와줄게요."

 

  그녀는 익숙하게 그를 도와 카페를 정리했다. 그는 테이블을 치우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프랑스로 돌아가. 더는 상처 받지 말고."

 "괜찮아요. 기다리는 일도 좋은걸요. 그리고... 여기 있는 이유가 꼭 엄마 때문만은 아니에요."

 

  지수가 고독한의 눈을 마주 봤다. 그를 보며 방긋이 웃었다.

 

 "나는 지금 고독한 씨를 유혹하는 중이라구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난 게이라고."

 "아니요. 고독한 씨는 마녀에게 붙잡힌 왕자예요. 누군가 구해주기 전까진 저주에서 깨어날 수 없는..."

 

  고독한은 그녀의 터무니 없는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누군가가 쿠키슈, 넌 아닌 것 같은데."

 "왜요? 효과가 없었어요?"

 "당연하지."

 "하나도요?"

 "단 일도 없었어."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녀는 팔짱을 끼며 곰곰히 생각했다.

 

 "재채기도 별로였어요?"

 "그건 최악이였어."

 "그럼 이건요?"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모습은 어린아이가 어른을 흉내내는 것처럼 어색했다.

 

 "목 꺾인 귀신 같은데."

 "히잉. 리아는 삐칠꼬..."

 "하지마."

 

  고독한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녀를 말렸다. 지수는 속상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그런 짓 하지 않아도 넌 충분히 매력적이야. 게이가 봐도 말이지."

 "고독한 씨..."

 

  그녀의 눈에 감동이 가득 차올랐다. 그녀가 입술을 내밀며 두 손을 뻗었다.

 

 "안지마. 키스도 안 돼."

 

  고독한은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그녀에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렁그렁거리는 눈망울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를 피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 자기 손을 쳐다보며 자책했다. 생각을 하고 행동한게 아니였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심장이 막무가내로 뛰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렸다.

 

 "엄마!"

 

  지수가 반가운 목소리로 류미리를 반겼다. 류미리는 창밖의 거리만큼이나 어두운 얼굴로 카페에 들어왔다.

 

 "마칠 시간인 건 알지만, 여기서 얘기 좀 해도 될까요? 잠깐이면 돼요."

 

  고독한이 무심하게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커피 마시겠어요?"

 "고맙지만 괜찮아요."

 

  류미리는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지수는 들뜬 얼굴로 그녀를 뒤따라갔다. 고독한은 머그잔의 물기를 닦아내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비가 일주일 내내 왔어요. 한국은 정말 신기해요.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비가 오는 기간이 없거든요. 언제쯤이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요.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 좋아요, 화창한 날이 좋아요? 나는..."

 "지수야."

 

  류미리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지수의 말을 가로막았다. 류미리가 지수의 손을 잡고 물었다.

 

 "그만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겠니?"

 

  차디찬 바닥에 머그잔이 떨어졌다. 날카로운 소리가 카페에 울렸다.

 

  고독한은 발 아래 산산조각이 난 머그잔을 봤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미소 짓는 지수의 얼굴이 깨진 머그잔처럼 조각나 있었다.

 

 *

 

  공원에는 오랜만에 분수 쇼가 열렸다. 화려하게 펼쳐지는 분수 쇼를 등지고 민호는 잠시 목을 축였다. 그의 앞에는 노래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은 좀 늦네."

 

  그가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미 날은 저물고, 목은 피곤한 상태였다.

 

 "어, 비다!"

 

  관중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 내 말했다. 그의 말을 시작으로 하늘에서 가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다시 비가 오려나 봐. 집으로 가자."

 "장마도 지긋지긋해. 언제쯤 끝나려나."

 

  관중들은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을 가리키며 빠르게 흩어졌다.

 

  그는 기타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으로 훔쳤다. 오늘 공연은 여기서 끝내야할 듯 싶었다. 빗방울이 빠르게 굵어졌다.

 

 "벌써 끝났어요? 한 곡만 더 들려줘요."

 

  낯익은 목소리가 빗줄기를 타고 공기 중에 울렸다.

 

  민호가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텅 빈 공원에 지수가 홀로 서 있었다. 우산도 없이 여기까지 왔는지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있었다.

 

 "비 때문에 안 돼요?"

 

  그녀의 얼굴이 빗줄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빗소리가 모든 소리를 잠재웠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볼에 흐르는 빗방울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비에 젖은 통기타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빗속이 아니라, 태풍이 들이닥쳐도 상관 없었다.

 

 '아부지. 미안. 잠시만 고생해줘.'

 

  그의 손가락이 기타줄을 부드럽게 튕겼다. 빗소리와 함께 거친 목소리가 빗방울을 타고 흘렀다.

 

 "비내리는 거리에서 그대 모습 생각해. 이룰 수 없었던 그대와 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생각하네."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그의 노래를 경청했다. 온몸이 빗줄기와 그의 목소리로 젖어 들었다.

 

 "온종일 비 맞으며. 그대 모습 생각해. 떠나야 했나요. 나의 마음 이렇게 빗속에 남겨두고."

 

  빗속에서 민호는 애절하게 소리내어 불렀다. 그의 머리 위로 분수 쇼가 일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은 영화 속의 남주인공 같았다.

 

 "흐르는 눈물 누가 닦아주나요. 흐르는 뜨거운 눈물. 오가는 저 많은 사람들. 누가 내 곁에 와줄까요. 비 내리는 거리에서 그대 모습 생각해. 이룰 수 없었던 그대와 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생각하네."

 

  지수는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무릎 아래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그의 노래는 포근하고, 따뜻했다.

 

 *

 

  고독한은 카페에 홀로 남아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응시했다. 한동안 괜찮은 줄 알았는데, 목에 감긴 스카프가 다시금 갑갑하게 느껴졌다. 카페 밖에서 빗소리가 났다.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짓눌렀다. 짙은 어둠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어둠 속에서 그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로이 말이 맞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숨이 점점 가빠왔다. 밀폐된 공간이 그날을 연상시켰다. 그의 발걸음이 휘청거리며 카페 밖으로 나갔다.

 

  그는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다. 빗방울은 어둠을 타고 떨어졌다. 그의 몸이 서서히 젖어 들었다. 젖은 와이셔츠 사이로 살굿빛 가슴이 드러났다.

 

  빗방울이 눈앞으로 뚝뚝 떨어졌다. 이 빗방울이 눈앞의 검은 잔상을 깨끗이 씻어내 주길 바랐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그때 빗소리를 뚫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먼저 올라가요."

 "지수 씨. 아무리 여름이라도 오래 비맞으면 감기 걸려요."

 "괜찮아요. 민호 씨 먼저 올라가서 씻어요. 기타도 빨리 말려야 하잖아요. 금방 올라갈게요."

 

  지수는 우산도 없이 집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민호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그녀를 두고 어쩔 수 없이 허겁지겁 집으로 올라갔다. 고독한은 멀리서 그녀의 행태를 가만히 지켜봤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여전히 건방지네. 역겨워."

 

  빗속을 뚫고 검은 우산을 쓴 사내가 나타났다. 우산 아래 어깨까지 내려온 흰 머리카락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의 얼굴은 우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지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덜덜 떨었다. 추위로 인한 떨림인지, 공포에 의한 떨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우산을 쓴 사내를 명확히 노려보고 있었다.

 

 "왜... 내가 나가길 바라는 거야..."

 

  그녀의 입술 위로 빗줄기가 흘러내렸다. 빗소리에 묻혀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우산을 쓴 사내의 미성은 선명하게 들렸다.

 

 "넌... 결국 상처로 남을 테니까."

 "그쪽이... 그쪽이 뭔데..."

 "여자는 다 똑같아. 어차피 떠날 거잖아?"

 

  면장갑을 낀 우산 사내의 손이 리아의 턱을 들어 올렸다. 리아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떨쳐냈다. 그가 비웃음을 흘리며 속삭였다.

 

 "네 엄마 때문에."

 "그, 그걸 어떻게..."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우산을 쓴 사내를 노려봤다. 그가 우산을 살짝 기울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이 가로등 불빛 아래 새하얗게 드러났다.

 

 "잘 알지. 내가 네 엄마한테 그러라고 했으니까. 네 엄마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야. 자기한테 잃을 게 생기면 딸도 쉽게 버리지. 그런데..."

 

  면장갑을 낀 사내의 손이 지수의 목을 움켜잡았다. 지수는 그의 손에 매달린 채로 입만 벙긋거리며 발버둥 쳤다.

 

 "너도 똑같잖아. 결국 네 엄마처럼 누군가를 버리고 떠나겠지... 넌 한이에게 상처만 줄 뿐이야... 여자는 모두..."

 

  고독한은 자기도 모르게 그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미성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잘 아는 목소리였다. 우산을 쓴 사내의 손에 붙잡힌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거울 속에서 본 자신의 표정과 닮아 있었다.

 

 '제발, 그녀에게 상처 주지마...'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니 아파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목이 조여오는 공포와는 달랐다. 아픈 건 그녀인데, 지켜보는 사람이 더 아팠다. 그녀의 고통이 모두 자기 탓인 것처럼 느껴졌다.

 

  우산을 쓴 사내의 등 뒤로 걸어갔다.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로이..."

 

  로이가 빠르게 뒤돌아섰다. 비에 흠뻑 젖은 고독한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우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빗방울이 그들을 차갑게 적셨다.

 

 "그만해..."

 

  고독한은 흐르는 빗물에 반쯤 감은 눈으로 로이에게 애원했다. 로이는 고독한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뭘 그만해! 네가 상처받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라고? 아니, 난 저 여자가 네 옆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그만두지 않아! 두고 봐! 네 옆에 있을 사람은 나야!"

 

  그의 외침이 빗소리에 쓸려 빠르게 사라졌다.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거리가 빗물로 흘러넘칠듯이 빗줄기가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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