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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20.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니까 새겨들어. 이 집에서 사라져.
작성일 : 19-10-26 11:27     조회 : 171     추천 : 0     분량 : 7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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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카페는 온종일 붐볐다. 여름이 가까워져 오자 더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찾았다. 고독한은 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서 터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복잡한 머릿속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는 없었던 몸의 반응 때문이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손님을 상대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졌다. 얼굴이 잘 익은 홍당무처럼 뜨거워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저 딸기 스무디 말고, 요거트 시켰는데요?"

 "원래 아메리카노에 휘핑크림이 올라가나요?"

 

  그는 평소에는 하지 않는 실수를 여러 번 했다. 잡생각을 지우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붉어지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마침 카페에 들어온 사람에게 그의 시선이 돌아갔다. 불편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나타났다.

 

 "고독한 씨. 나 여기서 엄... 그냥 잠시 기다려도 돼요?"

 

  지수가 고독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독한은 고개를 돌린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 그녀에게만은 얼굴이 붉어진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엄마 만나려고?"

 "티 나요?"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놀랐다. 그는 피식 웃고는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어디 가려고? 정했어?"

 "아직 못 정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보려고요."

 "그 사람이랑 여행 갔다 오고 나면, 이제 뭐 할 건데."

 

  그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지수는 딱히 정해놓은 게 없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프랑스로 돌아가."

 "왜요?"

 "이유가 필요해? 엄마도 만났으니까 프랑스에서 널 기다리는 진짜 가족한테 돌아가야지."

 "한국의 엄마도 진짜 가족이에요. 지금은 엄마랑 더 있고 싶어요."

 "너 바보야? 그 사람은 널..."

 

  고독한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켰다. 스카프가 답답하게 목을 조여왔다.

 

 "진짜 가족은 단순히 낳아준 사람이 아니라고. 길러주고,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사랑을 주는 게 진짜 가족인데. 그 사람은..."

 "알아요. 엄마가 날 키우지도 못 했고, 내게 제대로 사랑을 준 적이 없다는 거. 그런데 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잖아요. 엄마에겐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이에요."

 

  지수가 해맑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 앞에 마주한 그는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미소가 일그러질까봐 무서워졌다. 그때 카페에 류미리가 들어왔다.

 

 "우리 딸 먼저 와 있었네. 이제는 날이 정말 덥구나. 아메리카노랑, 뭐 마실래?"

 

  류미리는 보란듯이 지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근감을 드러냈다.

 

 "엄마..."

 

  지수가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고독한은 무심한 얼굴로 주문을 받았다.

 

  그녀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카페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음료를 직접 가져다주면서 마주 앉아 대화하는 둘을 무심하게 훑어봤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단다. 그럼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같은 덴 어떠니?"

 "좋아요! 동물원도 좋고, 아쿠아리움도 좋고!"

 "하루에 두 군데를 다 갈 수는 없으니 한 군데를 골라야겠구나. 여름이니까 실외보다는 실내가 나을 것 같네."

 

  둘은 관광 지도를 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흡사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아온 모녀지간처럼 보였다.

 

 "다 거짓말이라고. 위선이야."

 

  고독한은 계산대 앞에 서서 찡그린 눈으로 그들 모녀를 지켜봤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손님들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커피를 내리고, 주문을 받고, 일하느라 바빴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한곳에 머물렀다.

 

 "한이 형. 어디 아파?"

 

  민호가 평소보다 피곤한 상태로 카페에 출근했다. 고독한의 표정을 살피며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지수 씨네. 이십 년 만에 만났는데 엄마랑 사이가 참 좋아 보여.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것처럼 말이야. 저러기 쉽지 않을 텐데."

 "정상이 아니야. 둘 다 친한 척하고 있는 거라고."

 

  그는 보기 불편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민호가 고독한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럼 뭐 어때. 보기 좋잖아."

 "보기 좋기는. 전부 거짓 덩어리인데."

 

  고독한은 일부로 그녀가 있는 곳을 보지 않으려 뒤돌아섰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목을 꽉 조인 스카프가 갑갑했다.

 

 "거짓이라도 때론 그게 더 편할 때가 있어. 그러다 진짜가 될 수도 있고."

 

  민호는 능숙하게 음료를 만들며 스카프를 매만지는 고독한에게 한마디 했다.

 

 "그리고 여름에는 그 스카프 좀 벗어. 보는 내가 답답해."

 

  그의 말에 고독한이 짧게 대답한 뒤, 스카프를 느슨하게 풀었다. 전보다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답답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네."

 

  고독한이 에어컨을 더 세게 틀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멈췄다.

 

  지수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거짓인지, 진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얼굴로.

 

 *

 

  여름철 대형 백화점은 하나의 피서지 역할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지수와 류미리는 사이 좋게 팔짱을 끼고 쇼핑하러 다녔다.

 

 "누굴 닮아서 그런지 옷이 정말 잘 받는구나."

 "그런데 가격이 좀 비쌀 것 같아요."

 

  지수가 신상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채로 가격표를 확인했다. 옷 한 벌이 프랑스에서 한 달 알바하던 가격이었다.

 

 "전혀 걱정할 거 없단다. 엄마가 이 정도도 못 해줄까. 이거 입고 갈 거예요."

 

  류미리는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지수는 양손에 쇼핑백을 한 아름 들고 미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지수야.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단다. 이건 이 십년 동안 당연히 내가 해줘야 했던 것들이야. 물론 그 오랜 세월이 고작 이 정도로 보상될 수는 없겠지만, 그냥 내 작은 성의라고 생각해주겠니."

 "그렇지만... 이건 너무..."

 "괜찮아. 이렇게 딸이랑 쇼핑할 수 있다니, 난 정말 기쁘단다."

 

  류미리와 지수는 반나절을 쇼핑하고 백화점 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탁 주위에는 오늘 쇼핑한 짐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레스토랑 가서 먹자니까. 아니면 괜찮은 한식집도 엄마가 알고 있는데."

 "괜찮아요. 여기도 엄청 맛있어요!"

 "그럼 다행이구나. 그런데 네 취향이 그런 쪽이라니. 앞으로 우리가 서로 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네."

 

  류미리는 쇼핑한 짐 중에 지수가 특별히 고른 쇼핑백을 눈짓했다. 지수는 쑥스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 그게... 내 취향은 아니긴 한데... 엄마. 그런데 엄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어요? 지금까지 내 얘기만 한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나는 지금 작은 사업 같은 걸 하고 있어. 뭐, 지수가 알만큼 큰 곳은 아니란다."

 "그럼 다른 가족은요?"

 "가족이라... 사실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긴 해. 결혼한 사이는 아니지만 꽤 깊은. 물론 그 사람한테 너를 소개시켜 줄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우리가 이렇게 서로만 알고 있어도 좋을 것 같구나. 아직 우리끼리만 친해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잖니."

 

  류미리가 서둘러 말을 둘러댔다. 식탁 위에 음식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수저를 내려놓았다.

 

 "다 먹었으면 그만 일어나자. 생각해보니 오늘 저녁에 선약이 있었네."

 

  지수는 황급히 떠나는 류미리를 따라 백화점을 나갔다. 류미리는 택시를 잡아서 지수를 택시에 먼저 태웠다.

 

 "엄마는 안 타요?"

 "지수야. 엄마가 바빠서 지수를 자주 보기는 힘들 것 같구나. 그래도 시간이 나는 대로 그 카페에 찾아갈게. 아쿠아리움에도 꼭 놀라 가자. 그럼 다음에 또 보자꾸나."

 

  택시 기사는 류미리가 내미는 돈을 받고 출발했다. 지수가 택시 뒷창으로 멀어지는 류미리를 봤다. 엄마의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택시는 빠르게 도로 위를 질주했다. 지수는 곧장 집으로 가려다 말고 생각을 바꿨다. 그녀의 손이 근처 공원을 향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택시에서 내려 쇼핑백을 한가득 들고, 공원 분수대로 갔다. 분수대 앞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와아. 목소리 좋다."

 "음. 시원해! 기타 소리에 더위가 가시는 것 같아."

 

  지수는 사람들이 둘러싼 벽을 헤치고 힘겹게 그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분수대 앞에서 열정적으로 기타를 치는 민호가 보였다.

 

  민호는 노래를 부르다가 그녀를 발견하자 그녀에게 가볍게 윙크했다. 그녀는 관중의 맨 앞줄에 가서 돌바닥에 편하게 앉았다.

 

  후덥지근한 밤을 식혀줄 선율이 듣게 좋게 공원에 울렸다. 밤이 깊어질수록 풀벌레가 더욱더 우렁차게 울어댔다.

 

 *

 

 "당분간 집에 찾아오지 마."

 "한. 무슨 일인지 설명은 해야지."

 

  로이가 차분하게 따져 물었다. 핸드폰에서 무심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설명? 다른 애인이 나를 찾아왔다는 거? 그놈이 나한테 로이 너랑 자는 사이라고 말한 거? 이 정도면 충분해?"

 "만나서 대화해. 집이니?"

 "얼굴 보기 싫으니까 집에 오지 마. 분명히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로이는 핸드폰을 쥔 주먹을 꽉 쥐었다. 투명한 피부에 붉은 핏기가 돌았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한이 넌... 제대로 상대를 안 해주니까..."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전화기 너머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럼 그 놈이랑 계속 만나면 되겠네. 나는 상관 안 하면 되는 건데."

 "그런 뜻이 아니잖아. 잠시만! 일단 내가 지금 갈게."

 "모르겠어. 안 그래도 요즘 모든게 이상한데. 내가 점점 다른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이런 일까지..."

 "한이 넌, 그냥 너야.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어. 지금 갈테니까..."

 "오지마. 혼자 있고 싶어."

 "한아. 한아. 그만!"

 

  로이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내던졌다.

 

 "그만해. 지금 가야겠어."

 

  그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지민의 어깨를 밀쳤다. 지민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좀만 더 있다가 가."

 "그만하라고!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제 끝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지민은 황급히 빠져나가려는 로이에게 물었다. 로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지민을 노려봤다. 그러자 지민이 로이에게 다가가며 다른 손으로 로이의 가녀린 턱선을 쓰다듬었다.

 

 "잘 생각해봐. 그 애가 화내는 이유가 단순히 나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중성적인 목소리가 로이의 깊은 속내를 건드였다.

 

 "오래전부터 감춰온 다른 이유 때문인지."

 

  지민은 로이를 가볍게 안으며 그의 귓속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

 

  로이는 하얀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의 눈매가 깨진 얼음 조각처럼 섬뜩했다.

 

 *

 

 "이렇게 많은 옷을 엄마가 다 사줬다구요?"

 "이 옷도 내 취향은 아닌데 엄마가 예쁘다고 해서..."

 

  지수는 꽃무늬 원피스 밑단을 단정하게 내렸다. 민호는 얼굴을 붉히며 양손에 든 짐의 무게를 계산해 보았다. 적게 잡아도 백만 원 치는 산 것 같았다.

 

 "지수 씨 엄마가 사실 엄청난 부잣집 따님이었던 거 아니에요? 사실 지수 씨는 재벌집 손녀!"

 "에이! 장난치지 마요. 그런 건 아니고, 엄마가 작은 사업을 한다고 했어요."

 "이 정도 돈을 하루 만에 쓸 정도면 작은 사업은 아니겠는데요. 우짰든 잘됐네요."

 

  그의 말에 지수가 작게 대답했다. 민호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냥 엄마가 나한테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나도 몰라요. 평생 같이 살아온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가도, 가끔은 엄마가 아주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녀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거리에는 그들의 발소리만 조용하게 울렸다. 강바람이 멀리서 시원하게 불어왔다.

 

 "지수 씨도 참.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이십 년 만에 만났는데. 아무리 친부모라고 해도 어색한 게 없을 수는 없을걸요. 이십 년을 같이 산 내도 우리 엄마가 멀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민호는 걸음을 늦췄다. 고요한 밤공기 위로 그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깔렸다.

 

 "울 아부지 돌아가시고, 엄마가 처음으로 다른 남자를 집에 데려왔을 때... 그 남자 앞에서 웃는 엄마 얼굴이..."

 

  그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것처럼 낯설었어요. 그러이까... 지수씨도 당연한 거예요."

 

  항상 밝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던 그의 얼굴 위로 옅은 그림자가 졌다. 어쩌면 그의 밝은 모습은 상처를 숨기기 위한 노력이었을까.

 

  지수는 민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에게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민호가 당황해 하며 목을 움츠렸다.

 

 "민호 씨 같은 남동생이 있었다면... 이렇게 해줬을 거예요."

 

  그녀의 손이 민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귓볼이 새빨개졌다.

 

  지수는 샐쭉 웃으며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민호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친구에서, 수호천사였다가... 이제는 남동생? 왜 점점 더 멀리 가는 것 같냐."

 

  그가 멀어지는 그녀에게 뒤늦게 소리치며 달려갔다. 달리면서 맞는 시원한 밤공기가 달아오른 열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한밤중이 돼서야 그들은 집 앞에 도착했다. 가로등 불빛이 깜박거리며 거리를 비췄다.

 

 "지수 씨. 안 올라오고 뭐 해요?"

 

  민호는 집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지수에게 물었다. 지수는 가로등 아래 어둠 속을 응시했다.

 

 "민호 씨. 나 잠시 바람 좀 쐬다가 들어갈게요."

 "네?"

 "생각할 게 있어서요. 먼저 올라가요."

 

  그녀는 여전히 한 곳을 보고 있었다. 민호는 못 이기는 척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먼저 집으로 올라갔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둑한 곳에서 하얀 그림자가 움직였다.

 

 *

 

  백설 공주에게 독 사과를 주는 마녀를 알아?

 

  이 사내를 처음 봤을 때, 그 마녀가 떠올랐어. 새하얗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백발의 마녀. 물론 마녀보다 더 잘생기긴 했지만.

 

 "건방지네."

 

  백발의 마녀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게서 차가운 한기가 불어오는 듯했다.

 

  예쁜 왕자는 어쩌다 이 마녀에게 붙잡히게 된 걸까.

 

  그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가녀린 손이 내 턱을 붙잡았다. 그의 눈은 한겨울에 내리는 서리처럼 서늘했다. 그의 손에 붙잡힌 몸은 마취를 당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에게 붙잡힌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먹잇감을 삼키기 전의 독사처럼 살벌했다.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독사는 아가리를 쩍하고 벌렸다. 크고, 무시무시한 입으로 나의 입술을 한 입에 꿀꺽 삼켰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봤지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긴 혓바닥은 나의 영혼을 유린하려는 듯 입속을 마구 휘저었다. 그의 숨결이 가슴 속에 스며들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괴로워. 고통스러워. 그리고 무서워.

 

  서서히 정신이 희미해지려는 순간, 그가 입술을 떼며 귓가에 속삭였다.

 

  백발의 마녀는 어둠 속으로 점점이 사라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온몸을 전율케 하는 공포가 머릿속에 각인 되었다. 그가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이 어둠 속에 맴돌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니까 새겨들어. 이 집에서 사라져."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독한 씨는 여태 이런 무서운 마녀에게 붙잡혀 있었던 걸까.

 

  마녀의 타액이 여전히 입속에 남아 있었다. 서서히 혈액 속으로 독기운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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