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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11. 엄마... 이거 꿈이에요.
작성일 : 19-10-26 11:25     조회 : 171     추천 : 0     분량 : 8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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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운 내요.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집에 돌아온 지수와 민호는 힘없이 소파에 쓰러졌다. 민호가 축 늘어진 지수를 위로했다. 지수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미안하긴요. 사실, 아까 전에 말하려 했는데... 아니다. 지수 씨. 기운도 없는데 오늘 파티나 할까요? 지수 씨가 우리 집에 들어온 환영 파티!"

 "환영 파티요?"

 "우선 음식부터 시켜요. 여기서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봐요! 내가 다 시켜줄게요!"

 

  그가 배달 광고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군침이 도는 먹거리 사진을 보면서 감탄했다.

 

 "우와! 여기 있는 걸 지금 다 먹을 수 있다고요?"

 "아무렴요! 뭐 먹을래요? 말만 해요!"

 

  지수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먹거리 사진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랑, 이거랑, 이거! 이것도! 여긴 완전 천국이에요!"

 "이렇게 많은 걸 다 먹을려고요?"

 "왜요? 비싸요? 나도 돈 낼게요!"

 "그기 아니라 너무 많은데. 다 먹을 수 있을까요."

 "네! 네! 다 먹을 수 있어요!"

 "어차피 내일 먹어도 되긴 하이까. 그럼 이리 시킬게요."

 

  민호는 그녀의 아이 같은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녀가 기운을 차리자 덩달아 신이 나는 듯 했다.

 

 "한이 형도 부를까요?"

 "고독한 씨도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위를 가리켰다.

 

 "일단 물어보고 올게요. 밥을 묵었을 수도 있으이까."

 

  민호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닫혀진 방문을 두드리자 방문을 열고, 고독한이 나타났다.

 

 "로이 형 와 있어? 나중에 온대?"

 "왜?"

 "지금 없구나. 오늘 안 오지? 거실에서 환영파티 할 건데 내려올래?"

 

  고독한은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어 섰다. 환영파티라는 말에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녀가 실없이 내뱉었던 말도 같이 기억났다. 가슴이 저리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형도 아직 밥 안 먹었지? 그러지 말고 내려와. 지수 씨랑 오늘 엄마 찾으러 보육원에 갔다 왔는데 아무것도 못 찾아서 기운이 없어. 형도 와서 같이 으쌰으쌰 해주고, 응? 내려와. 기다리고 있을게."

 

  민호는 그에게 거절할 시간을 주지 않고 후다닥 거실로 내려갔다. 지수가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계단에서 내려오는 민호를 봤다.

 

 "온 대요?"

 "아마도? 배가 고프면 올 거예요."

 

  그가 소파에 앉아서 전화로 음식을 주문했다. 그녀는 거실을 둘러보며 주문을 마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집에 왜 아무것도 없어요? 텔레비전도 없고, 책장이나 화분 같은 것도. 소파하고 식탁밖에 없잖아요."

 "아, 그기... 로이 형이 막 어지럽혀져 있는 걸 싫어해요."

 "로이 형이요?"

 "어제 아침에 카페에서 본 그 사람이요."

 "아, 고독한 씨한테 억지로 키스한 그 남자. 그 남자 이름이 로이에요? 로이는 외국인 이름 같은데."

 "내도 자세한 건 잘 몰라요. 우짰든 로이 형이 번잡한 것도 싫어하고, 사실 내도 방에만 있기도 하고. 한이 형은 위층에서 내려오지 않으니까 거실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민호는 넓은 거실에 텅 비어 있는 공간들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수는 고개를 들어 눈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로이라는 남자도 여기 살아요?"

 "그건 아닌데. 내 입으로 말하기가 좀 애매한데. 그래도 어차피 알게 될꺼긴 하이까. 그기 로이 형, 가끔씩 한이 형 방에서 자고 가요."

 "자고 간다고요? 무슨 뜻이에요? 자고 간다는게..."

 

  그녀가 혼자서 응큼한 상상을 하고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상상하면 안 되는데 머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내도 그건 잘 모르이까 이상한 상상 마요! 내, 내는 꿈에서도 상상하기 싫으이까!"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둘 사이로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렸다.

 

 "뭔데 그렇게 기겁을 해."

 

  고독한은 얇은 가디건을 걸친 채로 거실에 내려왔다. 그러자 민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형, 그기 아니라.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냐면..."

 "고독한 씨. 로이라는 사람이랑 진짜 잤어요?"

 

  지수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똘망똘망한 눈이 고독한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민호는 소리 없이 입을 쩍 벌리고 둘 사이를 지켜봤다.

 

  고독한은 눈을 살짝 찌푸리며 지수의 눈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서 악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때마침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배달 음식 왔나보다! 내가 갔다올게!"

 

  민호가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허겁지겁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의 손이 현관문을 열어주려는 순간, 현관문이 제 알아서 먼저 열렸다.

 

 "왜 문이..."

 

  그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향했다. 그의 시야에 하얀 머리카락과 살짝 짜증이 난 얼굴이 보였다.

 

 "로, 로이 형."

 "민호야, 냄새난다고 내가 집에서 뭐 시켜 먹지 말랬지."

 

  로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배달 기사가 양손에 배달 음식을 한가득 들고 나타났다.

 

  민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며 거실로 가는 로이를 뒤따라갔다. 지금 거실로 들어가면 안 되는데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일 났네, 일 났어! 아직 로이 형한테 말 안 했는데."

 

  그가 불안에 떨며 중얼거렸다. 거실에는 이미 지수와 고독한, 그리고 로이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쥐구멍이 아니라, 바늘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민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거실에 숨 막히는 침묵이 찾아왔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살 떨리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저기, 죄송한데 빨리 가봐야 해서. 빨리 결제 좀 해주시죠."

 

  배달 기사가 눈치 없이 카드 리더기를 들고 말을 꺼냈다. 거실에 모인 그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그에게 쏠렸다.

 

 "급, 급하면 천천히 주셔도 됩니다. 천천히..."

 

  배달 기사는 그들의 엄청난 위압감에 압도당해 식은땀을 흘렸다. 민호가 이마에 손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수와 고독한과 로이는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의 얼굴들을 눈에 담았다. 거실에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이 필요한데."

 

  로이가 지수를 노려보며 허공에 대고 물었다. 굉장히 낯익은 얼굴이었다. 분명 어디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로이 형,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환영파티를 하려고 배달 음식을 시켰는데, 마침 로이 형이 들어왔고, 환영파티는 지수 씨를 위한 건데, 지수 씨는 여기 지수 씨의 이름이고, 지수 씨는 엄마 찾으러 프랑스에서 왔는데... "

 

  민호는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설명하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말하다 보니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로이는 프랑스라는 민호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언뜻 그녀의 잔상이 기억속에서 떠올랐다.

 

 "너, 그때 납치범..."

 

  로이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때 고독한이 로이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로이. 내가 다 설명할게."

 

 *

 

  불 꺼진 실내에는 희미한 어둠이 소리 없이 깔려 있었다. 흐릿한 어둠 속에서 로이의 백발이 도드라져 보였다. 고독한은 그의 눈을 피하며 상체를 반쯤 돌렸다.

 

 "아까 전에 다 말했잖아."

 "정말 그게 다라고?"

 

  로이가 추궁하듯 따져 물었다. 고독한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뜻인데."

 "프랑스에서 널 납치한 여자가, 엄마를 찾으러 왔는데 우연히 널 다시 만나고, 엄마를 찾는 동안 여기서 살게 되었다는 걸 나보고 믿으라고?"

 "말했잖아. 납치당한 거 아니라고."

 "한! 분명히 넌 그때 납치당했어. 나 아니었으면 네가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알아?"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충전하러 잠깐 그 집에..."

 "길에서 처음 보는 여자가 너를 관광시켜주고, 하루 반나절을 밖에서 있다 보면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지는 게 당연한 거고. 배터리 충전하는 걸 미끼로 널 유인한 거 아직도 모르겠어?"

 

  로이는 고독한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내 말 믿어. 그 여자는 위험해."

 "알아."

 

  고독한은 추운지 어깨를 웅크렸다. 로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나지막이 울렸다.

 

 "내 말 믿어. 여자는 모두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만 잘해줘."

 

  로이는 외투를 벗어 던지며 고독한을 침대가 있는 방으로 끌고 갔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입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났다. 거친 숨결이 어둠 속을 격정적으로 휘감았다. 숨찬 목소리가 부풀어 오른 풍선을 터트리 듯이 공기 중에 울려퍼졌다.

 

 "어떡할거야. 이제."

 

  로이의 목소리가 뜨거운 숨소리와 함께 밀려나왔다. 어두운 방 문이 열리며 가느다란 빛과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옅어진 어둠 속에 울렸다.

 

 "내가 알아서 할게."

 

  로이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숨을 가다듬었다. 가느다란 빛줄기 사이로 고독한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간 거실은 고요했다. 탁자 주위로 먹다 남은 치킨과 피자가 놓여 있고, 찌그러진 맥주 캔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거실의 넓은 창으로 햇살이 비쳐들었다. 소파에 제각기 드러누워 있는 지수와 민호가 아침이 온지도 모르고 곯아 떨어졌다.

 

  그때 정적을 깨고 시끄러운 전화기 벨소리가 울렸다.

 

  민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핸드폰을 찾기 위해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언뜻언뜻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이 형이 나타나고, 로이 형도 나타나고, 거기다 배달 기사까지 등장한 최악의 상황. 어떻게 한이 형 덕분에 잘 넘어가기는 했지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었다.

 

 "여보세요."

 "어. 민호야. 나 승천이."

 "이 늦은 시간에 와."

 "지금 아침이거든. 그보다 나 알바 그만두게."

 "뭐어!"

 

  민호가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와! 도대체 뭐 때문에?"

 "그게... 진짜 말하기가 곤란한데..."

 "곤란한 이유가 뭐냐고. 고작 하루 해놓고 그만둔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나!"

 "진짜 미안해. 나도 참고 해보려고 했는데..."

 "그 곤란한 이유라도 알리도."

 

  민호는 최대한 화를 삭이며 전화기를 든 손을 바꿨다. 전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있은 후,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호야. 이십 년 만에 내 성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말하면 이해하겠나."

 "그기 무슨 말인데."

 "나도 모르겠다. 이때까지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카페 사장만 보면 가슴이 뛴다고!"

 

  민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고?"

 "나는 게이가 아니라고! 근데! 그 형만 보면 막 가슴이 뛰는 게..."

 "마. 고마해라."

 "그 날카로운 턱선과 슬픔이 가득한 눈빛,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영혼까지 울리는 깊은 목소리..."

 

  민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전까지 방황하는 기색으로 그만둔다고 말했던 다른 알바생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아니, 그런 이유 때문에 다들 알바를 그만 둔다고 한기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하는 거 아이가. 오늘 학원도 가야하는데 미치겠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어느새 잠에서 깬 지수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민호를 봤다.

 

 "내 때문에 깼어요? 미안해요."

 "무슨 일이에요. 내가 도와줄게요!"

 "아니에요. 지수 씨는 엄마 찾는 것만 해도 바쁘잖아요."

 "민호 씨도 엄마 찾는 거 도와줬잖아요. 나도 민호 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우린 친구잖아요."

 

  지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민호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녀의 기운 넘치는 얼굴을 힐끗 훔쳐봤다. 믿음이 가진 않지만 달리 기댈만한 사람이 없었다.

 

 *

 

 "그래서 오늘부터 여기서 주말 알바를 맡게 된 지수 씨야."

 

  민호 씨가 활짝 미소 띤 얼굴로 나를 소개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수에요."

 

  꺄아! 모든 게 다 내 계획대로야. 예쁜 왕자랑 단 둘이서 일을 하며 사랑을 꽃 피우는거지!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한이 형. 내도 좀 살려주라. 주말에는 학원 가야 한다고 말했잖아."

 "알겠어. 오늘 나 혼자 할게."

 

  그는 타협할 의사가 없음을 단호하게 밝혔다.

 

 "혼자 어떻게 하려고. 밥은? 화장실은? 그러지 말고, 지수 씨가 도와준다잖아. 카페 알바 경력도 있대."

 "됐으니까, 쟤 데리고 가. 가서 엄마를 찾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든 맘대로 하라고 해."

 "형,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수 씨도 엄마 찾는 일이 급한데 우리 상황 보고 도와준다고 한 거야. 점심시간에 그 많은 사람들 혼자 다 처리할 수 있겠어? 형도 이번 기회에 지수 씨랑도 친해져 보고 그래 봐. 나 늦었어. 간다."

 

  민호씨는 내게 눈짓을 해 보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방긋이 웃었다.

 

 "뭐부터 할까요?"

 "됐어. 혼자 해도 돼."

 "곧 점심시간인데 사람이 엄청 많다면서요. 설거지라도 도울게요! 이거부터 치울까요?"

 

  민호에게 받은 카페용 앞치마를 두르고, 막무가내로 손님이 먹고 간 식탁을 치웠다.

 

  그에게서 다른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차분한 눈빛이 느껴졌다. 그의 눈빛만으로 온몸이 긴장했다.

 

 "나한테 뭘 바라는 건데."

 "뭐가요?"

 "왜 도와주는 거냐고. 도대체 뭘 이용하려고."

 

  아픔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민호 씨는 내 친구에요. 친구가 위급한 상황인데 당연히 도와야죠."

 "그럼 점심 시간만 잠깐 도와주면 돼."

 "괜찮아요! 어렸을 때부터 카페 알바랑, 신문 배달 알바, 안 해본 일이 없어서 이 정도는 가뿐하다고요!"

 "돈은 지금부터 바로 쳐줄게. 다음주에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야."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왜요? 난 계속 알바 하고 싶은데."

 

  나는 양 손에 설거지 거리를 잔뜩 들고 카페 주방으로 걸어갔다. 계산대 앞에 서 있는 그의 옆으로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고독한 씨 옆에 가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싱크대에 컵과 접시를 내려놓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용기를 내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그때 순식간에 카페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점심 시간이 되자 정말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꺼번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아메리카노 세 잔이요."

 "카페 라떼랑, 카푸치노 두 잔, 카라멜 마끼야또 하나, 블루베리 스무디, 또 뭐더라. 아, 부장님은 유자차. 이렇게 주세요."

 

  그는 주문을 받고, 금세 음료를 만들었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손놀림이었다.

 

  우와! 이 정도면 피에리 바리스타님이랑 거의 비슷한 실력이잖아!

 

  그가 커피를 내리고, 라떼와 카푸치노를 만드는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그의 능수능란한 실력으로도 다 쳐내지 못할 만큼 손님이 많았다.

 

  나는 눈치껏 일회용 잔과 머그잔을 준비하고, 손님이 먹고 간 자리를 치우거나, 시간이 나는 대로 설거지를 했다.

 

  이 정도면 피에리 바리스타님 셋이 와도 힘들겠어!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음료는 또 다 제각각이고!

 

  점심시간은 길었다. 틈틈이 예쁜 왕자의 옆태를 훔쳐보며 할 일을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지만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시간은 은혜로웠다.

 

  예쁜 왕자님! 일하는 모습도 너무 예쁘잖아! 여기서 평생 일하고 싶어!

 

 "어쩜 저리 이쁠까. 평생 이 카페만 올 거야."

 "이마에 흐르는 저 땀방울 좀 봐. 새벽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나잖아!"

 

  귓가를 어지럽히는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감히 나의 예쁜 왕자를 넘 봐? 이것들을 콱!

 

 "크흠. 다 마셨나."

 

  음료를 다 먹은 손님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머무르자 가서 식탁 위를 치워버렸다.

 

 "여기에 먼지가 왜 이리 많을까."

 

  일어서서 음료를 마시는 손님 근처로 가서 청소했다.

 

 "이건 저기로 치울까요?"

 

  그에게로 향하는 손님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그의 옆으로 가서 시야를 방해했다.

 

  후훗! 다들 예쁜 왕자를 넘볼 생각도 하지마!

 

 "뭐야 쟤! 여기 여자 알바생은 안 뽑는 거 아니었어?"

 "어디서 저런 콩나물 대가리 같은 게 튀어나와서! 비켜! 비키라고!"

 

  그를 넘보는 적과 치열하게 보이지 않는 실랑이를 벌였다. 두 시가 지나서야 손님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카페를 떠났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슬쩍 그를 훔쳐봤다. 지친 그의 모습에 그를 보듬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밥 먹었어요? 이제 사람도 별로 없는데 잠시 나갔다와요. 간단한 커피 종류는 나도 내릴 줄 알아요."

 "점심 전에 조금 먹은 게 있어서."

 

  조금 먹은 걸로 충분하지 않아요! 거기다 혼자 일을 다 해놓고 잠시 쉬기라도 해야지!

 

 "잠깐 숨이라도 돌리고 와요! 어서요, 어서!"

 

  나는 그를 강제로 카페에서 내쫓았다. 그는 억지로 떠밀려나갔다. 유리창 너머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마지못한 얼굴로 사라졌다. 그런데 나 잘 할 수 있겠지? 아무렴 어때, 아메리카노는 자신 있다고!

 

  그가 떠나자 카페에는 신기하게도 손님이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른한 오후 시간대에 살살 잠이 왔다.

 

 "새로운 알바생이네. 아메리카노 샷 추가 하나요."

 

  고혹적인 여성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릿해지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눈 앞에 꿈속에서만 보던 얼굴이 보였다. 간절히 바라고 바란 그 얼굴.

 

  내가 드디어 찾은걸까. 매일밤 그리워하던 사진 속 여성을.

 

 "엄마... 이거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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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에피소드-4 2019 / 10 / 26 152 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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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이건 나만 아는 비밀인데. 고독한씨... 게… 2019 / 10 / 26 160 0 6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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