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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30
작성일 : 19-10-26 10:05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2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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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줌을 지렸어요. 미취학아동이 아닌 사람이 오줌을 지릴 때는 만취가 되었거나 아니면 굉장히 놀랐거나 둘 중 하나겠죠. 전 다시 한 번 누른 이를 드러내고 웃는 남자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꼈어요. 왜 나여야만 하는가. 새 아빠라는 남자에게 겁탈당하는 경험을 겪지는 않았지만 전 그동안 노리개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심한 고충을 겪었다구요. 어떠한 선을 넘지 않고 매일 지속적으로 그 벌레 같은 손길을 느껴야 했으니까요. 매일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야 했어요. 완력이 강한 세 남자에게 둘러싸여 전 너무 겁이 났어요. 너무 무서웠다구요.”

  는개의 어깨가 움직였다. 와인 잔을 쥐고 있던 마동의 손은 와인 잔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는개의 손을 잡았다. 는개가 미세하게 움찔했지만 그대로 있었다. 잡은 손은 작고 따뜻했다. 는개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손에서 아픔이 묻어났다.

  “경찰도 사람들도 모두가 미웠어요. 심지어는 개들도 미웠어요. 소설 속 비 맞은 개처럼 한 번 짖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들의 뒤편에서 누군가 내가 떨어뜨린 책을 들고 서 있었어요. 고등학생이었죠. 그 학생은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마른체형의 학생은 한 손에 내 책을 들고 골목 안까지 왔어요. 그리고 내가 당하고 있는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었어요. 그 남학생은 길 잃은 숲속의 그레텔처럼 무서워했어요. 두려웠지만 작은 소리로 그들에게 나를 놓아주라고 말했어요. 그들은 조용히 그 남학생에게 골목을 벗어나라고 경고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도 죽이고 그 남학생도 죽인다고 협박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들은 진심 같았어요. 아니 진심이었어요. 그들은 사채업자로 사람들의 목숨을 노끈 끊듯이 끊어 놓기도 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하지만 남학생은 점점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왔어요. 발걸음이 아주 느렸어요. 발이 바닥에 붙어 있는 듯 질질 끌며 말이에요. 그런 걸음걸이로 나에게 오는 것이었어요. 전 그 남학생이 걱정되었지만 남학생이 소리를 질러주기를 바랐어요. 그러면 주택에서 사람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었던 거예요. 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 남학생은 소리 지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두려움에 떨리는 얼굴을 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어요. 칼을 든 남자가 남학생에게 웃으며 빨리 꺼지라고 했지만 계속 다가오는 남학생을 보고 얼굴표정이 바뀌었어요.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히고 나를 협박하던 지옥 같은 얼굴로 변했어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추하고 더러운 얼굴을 한 괴물 같이 말이에요. 전 정말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무섭게 변할 수 있을까. 전 공포에 떨기만 했어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움직이려 하지도 않았어요. 마치 유체 이탈한 것처럼 몸은 전혀 미동이 없고 내 웃음기가 걷히고 칼을 들고 다가오는 남학생 쪽으로 갔어요. 나는 입이 떨려서 병아리가 내는 작은 소리로 도망가라고 했는데 그때 얼굴에 무엇인가가 가격당하는 기분이 쿵 하며 들었어요. 정신이 없어서 그저 벽에 머리를 박는 느낌이었는데 다리와 팔을 붙잡고 있던 남자가 내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어요. 전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아일 뿐인데 말이에요. 내가 그 남자에게 얼굴을 맞았을 때 남학생이 멈칫하며 다가오는 것을 잠시 멈췄어요. 남학생의 얼굴은 무서움에 떨고 있었지만 나에게 책을 주려고 점점 다가왔어요. 책을 내밀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거든요. 남학생은 오로지 나에게 책을 건네주고 위해, 그 하나를 위해 다가왔어요. 두려움을 무릅쓰고 말이에요. 그 이외에 그 남학생에게서 다른 것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책을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그들에게 나를 놔주라고 말했어요. 칼을 든 사내가 남학생 앞으로 가서 칼로 위협을 했어요. ‘이 꼬맹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이 칼이 배에 들어가면 뱃가죽이 칼을 꽉 감싸 안아, 그러면 칼을 배에서 빼려고 해도 안 빠지는 거야, 넌 곧 죽게 되겠지, 신음을 토하며 아파하다가 말이야’라며 남자는 겁먹은 남학생을 위협했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더군요. 후에 알았지만 주택가의 사람들은 커튼을 치고 창문을 통해서 그저 바라보고 있었더군요. 사내 세 명이 여중생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뒤의 일이 궁금해서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창문의 틈새로 바라보기만 했어요. 전부 정신병자 같았어요. 그 속에서 남학생은 홀로 나에게 다가왔어요.”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고여있는지 마동은 는개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알 수 없었다.

  “전 얼굴이 너무 아팠어요. 맞은 곳이 멍이 드는 느낌이 들더군요. 칼을 든 사내가 칼을 휘두르면 남학생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 같아서 나는 무서움에 떨었어요. 극심한 오한이 들더군요. 칼을 든 사내는 남학생 앞에서 칼을 눈높이로 들었어요. 전 심장이 터질 뻔 했어요. 남학생에게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어요. 남학생이 가까이 올수록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너무 두려워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을 했어요. 너무 무서우면 사람은 우니까요. 그런데 남학생은 무서워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었어요. 그것은……”

  는개는 심장이 뛰는지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마동의 눈앞에 중학생인 그녀와 그녀를 겁탈하려는 남자 세 명과 그들의 곁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남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무서운 현실의 그림은 저 먼 바다에 떠 있는 고깃배처럼 작고 희미해서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고 겪지 말아야 하는 일을 그녀는 겪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생겼다면 해결책이 있어야 하지만 해결이 되지 않게 끝나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는개는 새 아빠에 의해서 어린 시절에 긴 시간동안 수치심을 느껴야 했고 새 아빠라는 사람의 사주로 인해 겁탈을 당하는 일을 겪으려 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남학생이 흘리는 눈물은 무서움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어요. 환멸이라고 해야 할까요, 증오라고 불러야 할까요. 세상을 향한 혼란스러움에 흘리는 눈물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나를 위한 연민의 눈물 같았어요. 그래요. 분명했어요. 그때 남학생의 앞을 칼을 든 사내가 가로 막았어요. 그런데 남학생은 칼을 든 사내가 앞을 막았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로 다가왔어요. 마치 사람이 없다는 듯이. 투명한 물체를 통과한다는 듯이 말이에요. 남학생은 분명 두려움에 떨고 있었거든요. 더 분명한 것은 그가 흘리는 눈물은 두려움에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처럼 저는 느껴버렸어요. 초월한 눈물이었어요.” 는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칼을 든 사내가 위협을 하는데도 무시하고 나에게 걸어왔어요. 천천히 한 걸음씩. 칼을 든 사내는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가 이내 다시 굳어진 표정을 하고 남학생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이렇게 주택이 모인 골목 안에서 소리를 질렀어도 누구하나 나오지 않았어요. 칼을 든 사내는 이성을 잃은 것 같았어요. 자신이 학생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어요. 자존심이 밟힌 사내는 자제력을 잃고 자세를 취하고 남학생에게 다가가서 그 학생의 팔을 붙잡고 학생의 목에 칼을 꽂으려고 했어요.”

  단단한 침묵.

  는개의 목으로 와인이 넘어가는 소리가 침묵을 가로 질렀고 마동의 목으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그때 내 눈에 어떠한 광경이 들어왔어요. 어떤 현상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 남학생 머리 주위에 우로보로스의 띠 같은 불빛이 빛났어요. 그 불빛은 희미하게나마 스네이크 드래건의 형상을 띠었어요. 분명 그랬어요. 남학생의 머리주위를 빙빙 돌며 우로보로스의 띠 같은 불빛이 환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거세게 소용돌이치듯 돌아갔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빛이 뻗어 나왔죠. 그 빛은 남학생의 머리주위에서 뻗어 나와 칼을 든 사내를 삼키고 나에게로 다가와서 옆의 남자 둘을 삼켰어요. 그들의 몸이 머리부터 점점 빛으로 물들더니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빛은 뱅뱅 돌다가 주택지의 창가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사람들 주위도 빙글빙글 돌았어요. 그러다가 그 빛은 어딘가로 가버렸는데……. 아마도 새 아빠라는 남자에게 간듯해요. 새 아빠라고 불리는 남자도 이후에 행방을 알 수 없었으니까요.”

  마동은 는개와 각자 와인 잔에 든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남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왔어요. 눈물을 흘리는 남학생은 당신이었어요. 교복이 이름표에서 당신을 이름을 봤어요. 당신은 나에게 다가와서 책을 내밀었어요. 나는 당신에게 책을 건네받는 순간 앞이 하얗게 빛이 번지면서 정신을 잃었어요. 눈을 뜨니 병원이었고 나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서 당신을 찾으려고 했어요. 지금 내 눈앞의 당신을 말이에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당신을 찾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그 학생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퇴원 후에도 매일 생각도 하기 싫은 그 골목근처에서 남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한 시간씩 기다렸어요. 하지만 당신은 볼 수 없었어요. 나는 혼란스러웠어요. 당신을 정말 찾고 싶었거든요.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골목 근처를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남학생을 찾으려고 걸어 다녔어요. 책을 건네려 다가올 때 당신의 이름을 보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찾았어요. 그런데 동네에서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왜 그렇게 찾아 헤매고 다녔는지 알 수 없어요. 남학생의 잔향은 내가 어디를 가나 따라다녔어요. 그림자처럼 말이에요. 어떤 날은 밤공기에 잔향이 나타나기도 했어요. 반드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남학생이 나에게 다가온 것은 숙명 같은 것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이 남긴 잔향은 내 속에서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처럼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당신이 흘리던 눈물이 떠올랐고 당신이 건네준 책을 받을 때 느꼈던 감정의 배회가 자꾸만 떠올랐어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도 당신을 찾는 일은 지치지 않고 계속 됐죠. 참 이상한 건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기이한 일이었어요. 하긴 당신의 머리에서 보이던 그 빛의 띠부터 기이했어요. 남학생이 입었던 그 교복을 보고 그 학교를 찾아갔지만 역시 그 남학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내가 헛것을 본 것일까.”

  는개는 숨을 쉬었다. 힘들어 보였다. 잡고 있던 작은 손이 조금 더 뜨거워졌다.

  “나는 그날 이후 병원에 입원을 하고 며칠 만에 깨어났고 뉴스에서는 사채업자 네 명의 실종이 보도되었어요. 그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경찰들이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새 아빠의 행방을 묻기도 했지만 엄마역시 넋 나간 사람 같았어요. 엄마는 방안에서 머리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새 아빠의 모습을 본 것이죠. 그날 직장에 일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새 아빠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봐야 했어요. 엄마는 그 사실을 경찰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경찰이라는 사람들은 사실만 믿는데 엄마의 말은 그들 입장에서 터무니없는 허구의 상상 같은 것이니까요. 엄마는 그 광경이 충격이었던 모양이에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에 대한 어떤 보상을 어디에서도 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여러 부분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도 지나갔어요. 그를, 그 남학생을 그러니까 당신을 찾고 싶었는데…….” 는개는 작은 새가 숨을 쉬듯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부드러운 는개의 손은 마동의 손 밑에 있었다. 는개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는개의 손도 따뜻했지만 냉철했다. 마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을 잡는 느낌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마동은 또 한 번 흠칫했다.

  그때 는개가 마동의 손을 잡아 주었다. 사랑스러운 손이었다. 사랑스러운 손이라고 다 같을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는개의 손은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내 고등학교의 생활은 학교에서의 수업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당신을 찾는데 시간을 보냈어요. 고등학교2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우리가 살던 집을 팔면서 그 동네를 떠났지만 나는 그 골목을 하루에 한 번은 가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어요. 남학생이 혹시나 오지 않을까 하며 기다렸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대학진학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했어요. 법률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성범죄 내지는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여자들을 위해서, 수치심을 가지게 만드는 남자들을 응징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차별이라는 말을 차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란 나의 말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고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그 손을 잡아주고 싶었어요.”

  는개는 틈을 두었다.

  “이 세계를 자신들의 놀이터로 보는 그 놈들을 당시에는 전부 집어넣고 싶었어요.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법학을 공부한다면 당신을 찾는 것에 좀 더 명확하게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고등학교시절 전 지금의 모습에 가까워졌어요. 거기 증명사진의 모습처럼 말이죠. 고등학교 3학년의 모습에서 말이죠. 고등학교 3학년의 모습에서 지금은 변한 게 거의 없어요. 좀 더 나이를 먹고 화장으로 지금의 나이를 감추는 정도죠.”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당신을 찾았을까요? 그 남학생이 다가올 때 교복의 명찰 속 이름을 봤다고 했죠? 내 머리에 그 이름은 각인이 되어 떠나지 않았어요. 고. 마. 동.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집을 떠나 대학교는 서울대학교로 갔죠.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거든요. 공부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쉬웠어요. 방학 때마다 잊지 않고 동네의 골목에서 기약 없이 그 남학생을 기다렸어요.”

  는개는 말을 하며 마동의 손을 꼭 쥐었다. 는개의 미약한 마음이 마동에게 손을 타고 전해졌다.

  “바로 당신을 찾으려고 했어요. 알음알음 심부름센터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어요. 굉장한 심부름센터회사도 찾아가서 당신을 찾는 것에 많은 돈을 지불했어요.”

  는개는 나머지 한 손으로 와인을 마셨다. 와인이 는개의 가냘픈 목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는개의 눈빛이 애절하게 빛났다.

  “그동안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어요.”

  는개의 눈은 촉촉해져 있었다. 잠시의 틈이 마동과 는개의 중간에 줄다리기의 줄처럼 놓였다. 와인을 각각 한 모금씩 또 마셨다. 마시는 와인이 무슨 맛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마동이 알 수 있는 것은 는개가 자신 앞에 있다는 것이고 그 사실이 감사하는 것이다.

  “전 사법고시를 패스했어요. 어렵지 않았어요. 막힘이 없었죠. 법무연수원에서 연수받을 때에도 성적이 좋았어요. 그런데 졸업과 동시에 법원과 경시청에 돌입을 앞두고 당신 회사의 채용정보를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어요. 지금의 우리 회사는 병아리감별사를 양성해내는 집단이라고 할 만큼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이잖아요. 많은 졸업생들이 상장이 되어 버린 꿈의 리모델링 회사에 관심을 가졌고 입사원서를 내고 있어요. 경쟁이 치열해요. 전 나만의 미래가 있었기에 우리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을 생각이 전혀 없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가 컴퓨터를 통해서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하고 있어서 친구의 뒤에서 화면을 보게 되었어요.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대표의 사진과 이름이 있고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과 이름이 있는 페이지에서 당신을 봤어요. 친구가 마우스로 페이지를 넘기려고 할 때 저는 친구를 막았어요. 당신의 사진과 이름을 보는 순간 전 그대로 얼어버리는 것 같았죠. 이름은 내가 그렇게 찾던 이름이었거든요. 이름위의 사진 속에 당신은 그때 그 남학생의 모습이었어요. 맞았어요. 분명 그 남학생이 조금 커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죠. 전 내 앞의 미래를 모두 포기하고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을 거예요. 그리고 입사해서 당신과 만나게 되었죠.”

  마동은 는개의 이야기를 듣고 꼼짝하지 않았다. 움직이기도 싫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의 말이 끊어지니 이전보다 더 짙은 침묵이 두 사람의 주위에 감돌았다. 맨하탄스의 노래도 들리지 않았고 여름밤을 시끄럽게 만드는 아파트 밑의 취객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베란다 밖의 저 먼 하늘에서는 마른번개가 치고 있었다. 빛의 섬광이 시야에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마동은 는개의 이야기에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은 날카로운 정감으로 마동의 볼을 스쳤고 순간 마동은 는개를 바라보았다. 는개는 마동과는 다르게 침묵의 질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는개는 마동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야기를 끝내고 몰려온 침묵을 단지 와인 잔에 잘 담아 놓으려는 듯 와인 잔을 아주 천천히 돌렸다. 와인 잔 속의 색체가 엷은 와인은 침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와인잔속에서 집적된 작은 침묵에 있었고 는개의 손목에 따라 천천히 아주 느린 와인의 흐름에 따라 침묵은 흔들리고 있었다. 마동과 는개는 동시에 그 모습을 심도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전 이 회사에 입사해서 원하던 당신을 만났어요. 그런데 당신은 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어떤 무엇인가에 의해서 당신의 머리 주위에서 빙빙 돌아가던 우로보로스의 빛의 형상 같은 것 말이죠.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에 의해서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당신의 자의로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그래서 오늘까지 기다렸는지도 몰라요. 왜 머리를 묶고 얼굴을 전부 드러내놓고 다니는지 이제 알겠죠?” 는개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없던 보조개가 입술 옆에 수줍게 드러났다.

  “당신의 곁에서 맴돌며 나를 알아봐주기를 기다렸어요. 천천히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후부터는 조바심은 없었어요. 시간이 흐르면 나를 알아 봐주리라. 당신은 이 회사를 관두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당신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나의 존재를 당신에게 빨리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어쩐지 떠날 것만 같았어요. 당신은 어딘가로 완전하게 사라져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불안했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나의 존재를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어요.”

  는개는 마동의 눈을 2초 동안 힐난조로 바라보았다. 곧 입술 옆에 보조개를 만들었다. 마동은 는개의 손을 꼭 잡았다. 는개의 손으로 마동은 마음의 사과를 했다. 알아보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진심이야,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 작고 아름다운 는개의 손을 다시 꼭 쥐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없어져버릴 것 같은 손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알고 있었어요, 당신을 그동안 옆에서 많이 지켜봤어요, 당신은 진심이라는 것을요, 는개의 보조개는 전보다 조금 깊어졌다.

  “그런데 당신은 사람들과 달리 좀 기이한 구석이 있어요.”

  마동은 전의를 파악하기 전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도 마동은 타인과는 좀 달랐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확고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왜 예전에 회사에서 세미나를 갔다 온 후 말이에요. 사람들은 지금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어요. 그런데 전 잊지 않았거든요. 당신을 제외하고 당신과 함께 올라온 조원들은 전부 조금씩…… 뭐랄까, 망가졌어요. 누구는 회사를 관두기도 했구요. 우리 회사…… 관두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요. 떠올리면 뱀의 무늬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 숨어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그 일을 자연스럽게 잊어갔어요. 그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 잊어버리는 일이 가능할까요? 부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당신이 어린 학생 때 나에게 다가왔던 것처럼 말이에요.”

  “전 당신의 머리주위에서 우로보로스의 띠를 보았어요. 그것은 나의 착각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당신을 보았고 당신의 이름을 봤어요.”

  마동은 꼼짝하지 않았다. 갑자기 이스터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무표정한 얼굴과 사람들과는 섞이지 못하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그가 직업에 임하는 모습이 생각났다. 왜 갑자기 이스터석상의 턱이 생각났는지 마동 자신도 궁금했다. 내일 해가 떠오르고 나면 이스터석상의 턱은 버스를 타고 회사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일자리가 있는 도로가로 가서 시커멓게 된 얼굴을 하고 주차권을 끊고 사람이 차에 오르면 바로 자신의 계산법으로 요금을 계산해주고 동전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인생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무엇인가를 묵묵하고 정확하게 해낸다는 것. 그 경지에 도달하기위해 인간이 매일 경쟁을 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그 인생이 삶이다. 삶이란 그런 인생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렇기에 생활은 힘들고 지칠지 모르나 삶은 아름답다.

  마동은 는개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돌려 자신의 와인 잔으로 옮겼다. 언제 부었는지 모를 붉은 색의 와인은 병원에서 분홍간호사가 줬던 주스의 색과 닮았다. 그러고 보니 주스의 색이 와인의 색이었다. 마동은 와인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기억이 없어. 내 고등학교 시절 그 부분이 삽으로 파낸 듯 크고 검은 구멍이 그 자리에 있어. 어린 시절의 어떤 부분도 희미한 기억만 있어. 공백이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매우고 있어. 아마도 나는 점점 변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변이는 누구나 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의 변이가 아니야. 제대로 설명하기가 힘들어. 모래시계와 비슷해.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래시계가 아니라는 거야. 모래시계를 누군가 뒤집어 놓지. 그러면 모래가 아래로 떨어져. 알기 쉽게 한쪽에 색연필로 표시를 해두는 거야. 표시가 되어 있는 부분이 아래에 있지. 그리고 표시되어 있는 부분으로 모래가 떨어져. 모래가 다 떨어지고 나면 모래시계는 움직이지 않아.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보면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 위로 올라가 있고 모래가 알아서 밑으로 떨어지고 있어.” 마동은 잠시 쉬었다. 설명이 적당한지 생각을 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변이는 기차에서 갑자기 비행기로 트랜스폼 하는 변화가 아니야.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처럼 인간에서 벌레로 변이되는 것도 아니지. 그런 것과는 다르게 변이하고 있어. 는개가 말하는 변이는 대부분 사람들이 살기위해서 또는 살아가기 위해서 변이하는 것이지만 나는 죽음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변이한다고 말 할 수 있어. 는개는 이해하지 못해.”

  “전 이해가 돼요.”

  는개는 마동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머리는 물기를 아직 머금고 있었다. 마동의 티셔츠인 브이네크라인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가슴골도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목은 잘 빚은 도자기의 입구처럼 가늘고 도도해보였다.

  “세미나의 담력시험에서 나는 어둠을 목격했어. 우리가 밤이 도래하면 흔히 보는 어둠이 아니었어. 그것은 암흑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질척거렸고 끈적이는 어둠이었어. 어둠에 손을 내밀면 어둠은 손을 집어 삼켜버리고 다시는 내주지 않을 어둠 말이야. 그런데 어둠속에서 더 검은 어둠이 나오는 모습을 나는 봤어. 그때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군. 나는 꽤 무서운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평소에 무섭다고 느껴지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인데 말이야. 그런데도 어둠은 너무 무섭더군. 우리 조의 사람들은 결국 그 어둠에게 영혼을 내줬던 거야. 일단 영혼을 주고 나면 무섭다는 감정도 사라지게 되지. 그렇게 되면 삶이 훨씬 단순해질 수 있어. 내가 지금 멀쩡한 건 내안에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또 다른 마음이 외부의 지배적인 어둠을 방어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이번에는 는개가 마동의 손을 잡았다. 번갈아가면서 마동과 는개는 서로 손을 잡았다.

  “난 그 흉가에서 어둠이 내미는 빵을 먹지 않았거든. 그것역시 언어로 설명을 할 수가 없어. 어둠은 우리에게 빵을 내밀었지. 빵은 대단한 유혹이었어. 생존에 관한 유혹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는 대부분 굉장한 공복감을 지니고 있었거든. 그 공복감이라는 거대하고 깊고 무지막지한 허기로 가득 차 있어서 어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어.” 틈을 만들었다. 마동의 침이 목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틈으로 빠져 들어갔다. 잠깐의 침묵역시 틈새로 스며들어갔다. 마동은 지금 자신이 조리 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는개에게 이런 식으로라도 말을 해야 했다.

  “실은 앞으로 곧 이곳이, 이 세계가 그렇게 깜깜한 암흑의 세상이 될 거야. 나는 알고 있어. 눈을 감으면 이곳이 암흑의 천지로 변하는 모습이 보여. 나 말이야 사실은 무서워. 는개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무섭다구.”

  마동이 이야기를 중단하니 방금 전과 다른 침묵이 거실 벽과 공간에 존재했다. 침묵은 으레 손을 귀에 대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했다. 침묵의 옆에는 고요가 혼재했고 그들을 방해하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두 사람이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맨하탄스의 노래는 끊어졌다. 들리지 않았다. 도마접시위의 횟감도 와인 잔도 와인 병도 테이블도 의자도 전혀 소리라는 것이 없었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를 침묵과 고요가 잡아먹었다.

  “고등학교의 어느 날 나는 골목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어. 그리고 병원에서 옮겨졌고 깨어났을 때 기억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어. 내 기억의 범위가 이만큼이면(여기서 여기까지라며 한 손으로만 표시를 했다. 한 손은 는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느 부분을 칼로 잘라 놓은 케이크처럼 단면적이야. 사라진 기억의 면이 매끌매끌하고 차가워. 손끝으로 만지면 손에 상처가 날 것 같아서 함부로 다가가지도 못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왜 그 먼 곳의 마을까지 갔는지, 그 골목길을 찾아 갔는지 모호하기만 해. 그 사실을 지금 는개에게 처음 들었어.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나를 그 골목에서 데리고 왔다는 사람이 없었어. 그저 어딘가에서 실려 왔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의사도 어머니도 그 누구도 나에게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다른 사람들처럼 기억이 흐르는 물 같지 않아. 그저 끊어진 액체처럼 단면적일 뿐이야. 공허하게 비어있는 부분이 눈에 보인다고.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있었어.”

  틈을 두었다.

  “가끔 꿈속에서 나타나는 환영 같은 모습 속에 내 옆의 그녀가 누구인지 병원복도를 내손을 잡고 걸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어째서 같은 꿈을 몇 년 동안 계속 꾸고 있는지 나도 알 수가 없어. 뇌의 단층 촬영을 해도 나타나지 않았어. 심리학자나 꿈학자를 찾아갔지만 해답을 시원하게 얻을 수는 없더군. 나는 결국 오너에게 부탁하여 내 뇌파를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

  “사장님이 해 줬어요?”

  “당연하지만 안 된다고 하더군. 오너는 안 되는 일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어. 잘못 건드리면 돌이킬 수 없다고 말이야. 단순히 알고리즘에 의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멀쩡한 뇌파를 채집할 수는 없다고 하더군. 우리는 하나의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뇌파를 채집한다.” 마동은 손가락으로 ‘일’자를 만들었다.

  “사장님의 말이군요.”

  마동은 빙고,라고 입모양을 만들었다.

  “나는 단면적인 내 기억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어. 하지만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마음은 나에게 잠시 유보시켜두는 거라고 말했어. 언젠가는 기억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지. 나는 늘 답답했어. 속이 거북한 사람처럼 가슴 한편이 갑갑한 채로 살아오고 있었어. 그런데 이젠 기억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어.”

  마동은 는개의 사진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저도 변이하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변이하니까”라고 마동은 조용히 말했다. 는개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입술 옆에 작은 보조개가 꽃을 피웠다. 초승달 같은 미소였다. 과장이 없는 달 같은 미소.

  마동은 오늘 는개에게 손끝이 닿았을 때 그 느낌을 내내 물어보기를 엿보고 있었지만 이제 함구하기로 했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은 물어봐야 답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훌쩍 지나서 보면 이때 증명사진이 가장 예뻤던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그땐 죽고 싶을 만큼 싫었던 얼굴인데 말이에요. 전 증명사진을 해가 바뀔 때마다 찍었어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증명사진을 해마다 찍을 수 있었죠. 그때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이렇게 마주보며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을 거예요. 언젠가 당신을 만난다면 내 지나간 증명사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개인에겐 소중한 무엇인가가 존재해요. 나에게는 이 증명사진이 소중했어요. 당신에게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내가 좀 우스운가요?”

  “응, 많이.”

  “당신, 처음으로 사람을 재미있게 하는 군요.”

  마동은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그녀를 웃게 하는지 알지 못해서 잠깐 생각하면서 미소를 슬쩍 지었다. 그리고 재빨리 표정이 없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는개가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어때요? 언제 적 사진이 가장 예쁜 거 같아요?”

  “음……. 학창시절에도 예뻤지만 지금이 제일 예쁜 거 같은데.”

  는개는 조금 큰 소리로 웃었다. 숨죽이고 고요하게 듣고 있던 침묵이 와르르 흩어졌다.

  “정말이야.”

  “재미있는 사람.”

  “여자들은 변덕이 심하군.”

  “그래서 여자죠.”

  는개는 초승당의 웃음을 간직한 채 마동의 손에서 사진첩을 쏙 뺐었다. 그리고 세 번째 울리는 청아하지 않는 쨍그랑.

  “요즘은 증명사진 찍지 않아?”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찍고 이후로는 찍지 않게 되었어요. 당신이 이 회사에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이젠 더 이상 찍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버렸어요.”

  “이제 나를 찾아서 는개는 조금 행복한가?”

  “그럼요. 지금 이렇게 당신과 마주 앉아 있는 이 시간과 이 공간속에 있음이 행복해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마동은 행복해하는 그녀를 볼수록 불안함이 크게 밀려왔다.

  “이젠 어떻게 할 예정이지?”

  “글쎄요. 이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영원한건 없다는 거예요. 증명사진으로 그 모습을 잡아두지만 영원하지는 않아요. 모든 것이.”

  “하지만 사진은 영원히 그 시간을 붙잡아 두잖아”라고 마동은 말했다.

  “그래서 더더욱 영원성이 떨어져요.” 는개가 웃었다.

  인간은 정말 그렇다. 세상에 ‘영원히’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영원히 사랑할게 같은 말처럼 믿을 수 없는 말도 없다.

  [you know what? they keep on trying to split up.

  “Never say ‘never ever’”]

  어느 영화 속의 대사였다.

  사진은 영원한 것 같지만 사진 속의 과거가 살아있을지라도 실재가 사라지고 나면 사진도 더 이상 영원하지 않았다.

  “당신 증명사진은 어때요? 언제 찍었어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생각했다.

  나는 증명사진을 언제 찍었더라?

  회사에 입사 할 때에도 마동은 증명사진을 재출하지 않았다. 입사원서는 인터넷으로 보냈고 첨부파일로 사진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사진이 필요할 때에는 사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USB로 연결해서 사용하면 되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면서 증명사진을 한 번 찍었을 뿐이었다. 지금 마동의 지갑 속 운전면허증에 붙어있는 사진이 증명사진의 마지막이었다.

  “글쎄, 아주 오래전에 한번 찍었는데.”

  “당신의 사진도 보고 싶은데 그냥 참을게요.”

  는개는 마동에게 와인 병의 주둥이를 내밀었다. 그녀가 부어준 와인은 병원의 주스처럼 목으로 잘 넘어갔다. 영문은 알 수 없었다. 마동이 집중을 해봐도 그녀의 의식에 접근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생각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보통 인간의 모습일까.

  혈류를 타고 흐르는 혈액의 흐름도 보통 때와 비슷하고 심장의 박동 수도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동은 는개와 네 번째 비 청아한 쨍그랑 소리를 냈다.

  “당신의 주방에서 독특한 부분을 발견했어요”라며 그녀가 말했다. 는개는 젓가락으로 회를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그녀는 배가 고프다고 하더니 음식은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주방의 선반 안에 땅콩버터의 빈병이 어째서 많은 거죠? 당신, 땅콩버터를 좋아하는군요.” 는개는 주방 선반 쪽을 보았다.

  “땅콩버터를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한국에서 먹는 음식에서 벗어난 색다른 맛이라 아주 가끔씩 사 놓기는 했는데 오랜 시간동안 하나씩 병이 늘어나 버렸어.” 마동은 많이 빨아서 퇴색된 운동화 같은 얼굴을 하고 선반을 쳐다보았다.

  “왜 버리지 않는 거죠? 빈병을…….”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계기라고 한다면 이거였어.” 마동은 방의 책상에서 노트북을 들고 와서 화면을 터치해서 하나의 영상을 틀었다. 영상은 흑백이고 오래된 느낌의 영화였고 영화는 듀공스프의 맛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는개는 첫 장면을 보자마자 “천국보다 낯선’이군요”라며 단번에 알아봤다.

  “에바가 참 예쁘죠? 헝가리 여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쁜 거 같아요. 저렇게 옷을 입었는데도 예쁘고 담배를 막 피워도 대는데도 예뻐요. 자다가 일어나서 씻지 않아도 예뻐요. 전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서 에바의 예쁨에 반했어요. 어째서일까요?”

  “영화니까.”

  마동의 대답에 그녀는 또 웃었다. 는개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은 다음부터 웃음이 더 많아졌다. 크게 웃으니 치아가 피아노 건반처럼 고르게 아름다웠다. 웃음소리는 듣기 좋게 크게 나왔고 큰 소리의 웃음만큼 마동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녀와 와인 잔을 부딪쳤다.

  청아하지 않는 몇 번째 소리일까.

  지금까지는 몇 번째인지 셀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 몇 번째인지도 모를 와인 잔의 부딪힘이었다. 와인은 목을 타고 내려가 몸속 구석구석 퍼졌다. 혈관을 타고 손톱 끝과 말피기소체까지 흘러들어갔다. 와인은 더더욱 깊이 흘러들어가 마동의 마음 속 천국보다 낯선 그 곳까지 들어갔다.

  “짐 자무쉬는 에바를 예쁘게 보이고 싶게 하고 싶었을 거야. 유일하자나. 따지고 보면 그의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잖아. ‘커피와 담배’에서도 쌍둥이로 나온 케이트 블란쳇도 그렇고 인생에 단 몇 분 정도가 영화인생의 전부인 ‘르네’도 그렇고 말이야.”

  는개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다. 2, 3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무표정으로 생각에 빠져있는 2, 3초 동안 작은 행성이 몇 만 광년을 훌쩍 뛰어 넘어 버린 세계가 그녀의 눈동자 속에 있었다.

  “생각이 났어요. 에디가 여행 중에 빈 땅콩 병을 들고 다니잖아요.”

  “맞았어.”

  “에디를 보고 선반위에 저렇게 땅콩 병을 모아 둔거예요?”

  “부분적으로는.”

  “알 수 없어”라며 하고서는 조용하게, 귀여운 사람이라고 했다. 묘한 눈빛을 띠고 는개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는개의 미소를 볼 때마다 마동의 불안감은 조각이 되어 의식을 짓눌렀다. 두 사람의 잔이 부딪혔다. 그녀는 배가 고픈 사람치곤 많이 먹지 않았고 그 빈속에 와인이 들어가서 그런지 얼굴의 양쪽 볼이 붉게 물들었다.

  “부분적으로는 에디의 영향이 있었지만 땅콩 병을 씻어 놓으니까 마치 새로운 하나의 물품을 보는 것 같았어. 다른 빈 병보다 좋아보였어. 땅콩 병에 붙어있는 라벨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야. 언젠가는 버려질 빈병인데 저렇게 모아놓고 보니 텅 빈 선반을 멋지게 채워주고 있잖아. 저 빈 병속에 무엇을 채워 놓으면 그 속에서 땅콩의 맛이 나지 않을까. 좀 더 맛있을 거야. 물을 부어 놓는다고 해도 더 맛있는 물을 맛 볼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어”라고 마동은 말했다.

  잠시 침묵.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저 빈병에 무엇을 넣어서 먹어본 적은 없었어. 분명 실망할 테니까. 그렇게 하나씩 오랜 시간동안 모이기 시작한 거라구.”

  그녀는 마동의 이야기를, 동화를 듣는 아이처럼 흥미 있게 들었다. 는개는 마동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카스텔라를 처음 맛 본 사람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그점은 마동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시절 교양과목으로 사진영상학을 들었어요. 교수님이 짐 자무쉬의 팬이었어요. 클래스에서 단체로 영사기를 돌려 ‘천국보다 낯선’을 봤어요. 지금보다 생각이 복잡했고 질문이 많았을 때 이 영화를 접했어요. 당시에도 시간이 나면 전 당신을 찾는 일에 시간을 보냈거든요. 공허했어요. 무척 공허했어요. 그 공허함은 내 의식을 몽땅 분열시켜 버릴 듯 했어요. 사람이 이렇게 공허함을 잔뜩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감정이란 상승을 했다가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계속 꺼져가는 것이었어요. 영화를 보고 드는 감상평을 적어내라고 해서 영화를 통해 드러난 내 마음의 공허함에 대해서 적어냈는데 교수님이 방으로 조용히 불러서 정신과 상담을 권유해주시기도 했어요.” 는개는 수줍게 웃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집의 가짓수처럼 31가지의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는개는 더 이상 마동에게 잔을 권하지 않았다. 고요하게 움직여 조용하게 혼자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녀는 마동에게 회를 먹여달라고 손짓을 보냈다. 마동은 젓가락으로 접시 위의 쥐돔 회를 집어서 간장에 살짝 찍어서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녀는 진정 행복한 모습으로 받아먹었다. 눈초리가 밑으로 한없이 떨어져 눈썹달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천국보다 낯선’ 속에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영화 속의 에바는 영화가 던지는 모습과는 다르게 예뻤다. 애써 의상과 분위기로 가리고 있었다. 천국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공간일지도 몰랐고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쫓아서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빅피쉬의 에드워드처럼 되지는 못 한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 그런 것이다.

  마동은 는개와 와인 두 병을 비우고 서로 회를 조금씩 먹었다. 그녀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 그 속에 들어있는 소주 한 병을 꺼내서 선반위에 있던 마동이 먹다 남은 와인을 들고 테이블로 왔다. 집에 남아있는 술로 그녀는 조금 특별한 술을 만들었다. 먹다 남은 와인과 소주를 섞었다. 그녀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약간 끓이고 선반에서 오래된 꿀을 꺼냈다. 숟가락으로 딱딱하게 굳은 꿀을 저어서 몇 수저 떠서 끓는 물에 풀었다. 와인과 소주를 섞은 술에 끓인 꿀물을 넣고 얼음을 넣어서 저어주었다. 이름 없는 술이 만들어졌지만 맛이 꽤 좋았다. 그녀는 요술쟁이였다. 그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은 나지 않았다.

  “술의 이름을 지었어요. 맞춰봐요.”

  “술에 이름이 있어?”

  “그럼요, 이름이 없는 것은 없어요. 모두가 이름이 있어요. 이름이 있는 것들은 모두 의미가 있어요. 호텔이 아늑한 이유도 이름이 있어서 그래요. 배가 멋진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그래서 택시가 엉망이군”라고 마동이 말했다.

  “맞아요. 빙고!”

  “자, 이제 이 술의 이름이 뭘까요?”

  “이 밤의 독주?”

  “그게 뭐에요(웃음)? 이건 독주가 아니에요. 꿀이 많이 들어가서 알코올 맛은 많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바닥을 비워갈 때쯤에는 서서히 취하게 됩니다. 누구랑 닮은 거 같지 않아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이 술은 마. 동. 주 입니다.”

  “그게 뭐야.”

  노트북에서는 ‘천국보다 낯선’이 보는 이들이 없음에도 씩씩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에바는 월리가 사는 곳에서 떠났다. 는개의 몸도 술에 조금씩 잠식되어 가는 듯 그녀의 볼은 제철의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 기분 좋은 수채물감으로 칠해 놓은 듯 보였다. 그 모습이 평소의 는개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마동은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는개가 놓치지 않았다.

  “저기 당신을 위해서 매운탕을 맛있게 끓이려고 했는데 와인을 많이 마셔서 안되겠어요. 지금 상태로 끓이다가는 매운탕인지 잡탕인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내 경력에 오점을 남기긴 싫어요.” 는개는 붉게 물든 얼굴에 미소를 만들었다.

  웃는다. 예쁜 얼굴이다. 예쁜 얼굴의 그녀가 내 앞에 있다. 바로 코앞에. 믿기 어려운 현실이.

  는개가 입어서 크게 보이는 마동의 리바이스 티셔츠는 그녀의 옷처럼 보였다. 헐렁해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정말 여자마술사처럼 마동의 옷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처럼 보이게 했다. 는개는 고개를 숙일 때마다 그녀의 가슴골이 드러났다. 그녀가 와인 잔을 식탁위에 놓아두고 마동의 옆으로 왔다. 노트북 속의 월리와 에디가 카드로 딴 돈을 들고 클리블랜드로 무작정 떠났다. 에바를 만나기 위해. 계획 같은 건 없다. 그들에게는.

  는개가 가까이 올수록 그녀에게서 번지는 비누향이 마동의 내면에 가득 차 있던 쥐돔의 비린 냄새를 게워 내 주었다. 마동은 는개가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커져갔다. 다가오는 그녀를 뿌리치면 그녀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그녀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어떤 변이를 보이게 될지 마동은 무서웠다. 무서움이 화장(火葬)된 형태로 마동에게 달려들었다. 마동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단순히 친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원해처럼 그저 가까이에 있던 사람도 없어졌다. 어딘가에 숨거나 잠적하거나 물러난 것도 아니었다. 아직 최원해부장의 생사도 알지 못한다. 지금 그녀를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는개가 상체를 숙이고 마동에게 다가오니 티셔츠의 라인 안으로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그녀의 가슴골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다. 오로지 앞에 있는 그녀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마동은 땀이 나는 것 같았다. 고개를 조금 흔들었다. 그 모습에 는개가 마동의 볼을 감싸 주었다.

  거절하면 그녀는 상처받을까, 상처받지 않을까,가 아니라 얼마나 깊게 상처를 받느냐를 걱정해야 한다. 나의 상황을 진실 되게 설명할까. 그러면 어떻게든 받아들일 것이다. 냉정하고 판단이 정확한 그녀는 나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라고 말을 하는 순간부터 진실은 진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진실이란 늘 그렇다. 진실을 마주하기는 두렵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때 는개가 마동의 입술을 빨아 당겼다. 입으로 전해지는 와인의 향이 그녀가 내쉬는 숨을 타고 흘러나왔다. 모스카토의 향이 그녀의 숨에 붙어서 대기를 잠시 거쳐 마동의 입으로 흘러 들어왔다. 고급와인은 아니지만 는개의 숨을 타고 고급스러운 향으로 흘렀다.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의 향은 는개의 깊고도 깊은 내면에 시동을 걸어놓고 웅크리고 있다가 그녀가 숨을 내뱉을 때마다 숨의 끈을 붙잡고 마동의 입으로 전해졌다.

  달콤한 향은 꿀에 절인 배 맛의 냄새일까. 싱그러운 풋사과의 냄새일까. 아카시아의 냄새일까.

  달달한 향이 무슨 향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숨과 함께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살아있는 하나의 영험한 표상처럼 마동에게 전해졌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처럼 거부할 수 없는 는개의 향에 휩싸였다. 는개는 마동의 손을 잡고 그녀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티셔츠위로 만져지는 그녀의 가슴은 작지만 부드러웠다. 가슴의 감촉이 티셔츠를 뚫고 전해졌다. 마동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새해벽두의 타종이 울리듯 마음이 강하게 쿵쿵 거렸다. 그것은 두려움에서 오는 두근거림이었다. 겁이 났다 마동은. 며칠 전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대나무공원에서 두근거렸던 상황과는 달랐다. 마동은 자신의 입술을 빨아 당겼을 때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을 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 찾아 올 변이에 대해서,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 무지했기에 마동은 무서웠다.

  아아 어떻게 해야 할까. 멈춰야 할까.

  하지만 의지와는 무관하게 마동은 는개의 등을 쓸어안았다. 그들은 식탁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등은 여리고 아기 같았다. 는개는 마동이 자신의 몸을 끌어안자 더욱 마동의 입술을 당기는데 힘을 주었다. 마동도 는개를 힘을 주어 꼭 안았다.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안을수록 는개의 몸은 젤리처럼 휘어졌다. 마동은 그만 그녀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는개는 입술을 힘 있게 당겼다. 그리고 혀를 밀어 넣었다. 그때 알았다. 는개의 입술은 냉기를 머금고 있다는 것을.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를 가진 입술이었다. 마동은 동공에 힘이 들어갔다. 는개에게서 입술을 땐 다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는개의 얼굴도 며칠 전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처럼 잘 다듬어진 군더더기 없는 얼굴이었다. 마동은 손을 들어 그녀의 미려한 얼굴을 쓰다듬었다. 는개는 눈을 감았다. 마동은 닳아 없어질 정도로 는개의 얼굴을 꼼꼼하게 보았다. 속눈썹이 감은 눈 위로 예술품처럼 붙어있었다. 그녀가 조금씩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비누향이 흘러내렸다. 비누 향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처럼 하얗게 마동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녀에게서 번지는 비누 향은 친숙하고 낯설지 않았다. 그 향은 회사에서 지나칠 때 스치는 는개의 향과는 달랐다.

  마동의 사고가 여러 단계 힘없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는개가 만지고 있던 마동의 페니스는 터질듯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마동을 원했고 마동도 는개를 원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지금은 없었다. 는개는 티셔츠를 벗고 마동의 상의도 벗겨냈다. 뱀이 허물을 벗어내듯 몸에서 떠난 조각은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연약한 는개의 몸은 강하게 마동에게 밀착했다. 는개의 가슴은 풍족했고 마동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을 때마다 는개의 신음소리가 조각이 되어 거실의 여러 곳에 가서 부딪혔다. 는개는 마동의 몸 위로 올라가서 마동의 가슴 윗부분을 입술로 키스를 했다. 촉촉한 그녀의 입술은 냉기를 머금었다. 냉기는 는개의 입술을 통해서 마동의 몸 여기저기로 전해졌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사과향이 흘렀다. 는개가 마동의 몸에 밀착시킨 그녀의 몸을 움직이며 모래시계가 더 이상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역행했다. 마동의 입이 벌어지고 그의 입에서 역시 묘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밀폐된 공간에서 빠져나온 부식된 음수의 소리 같았다. 는개가 몸을 움직여도 마동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럴수록 그녀의 몸은 마동의 몸에 한 몸처럼 붙어 버렸다. 마동은 는개의 밀착된 움직임에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냉기를 머금은 는개의 입술은 마동의 노력을 아무 소용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냉기는 매일 뿌리는 향수처럼 익숙한 향기 같았다. 면밀한 냉기의 느낌은 며칠 전 마동의 얼굴을 감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냉기를 머금은 손바닥의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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