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차우의 마을 이야기
작가 : 치르비
작품등록일 : 2019.10.9

꿈능력자 차우에게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이상한 사건들.
믿을 수 있는 것은 친한 친구와 시간을 초월하여 정보를 알려주는 꿈들 뿐.
과연 그는 평범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4화
작성일 : 19-10-26 10:03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1215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우선 마리 할머니한테서 영주에 관한 정보를 좀 얻어와 줘.’

 

  길을 걷는 내내, 차우는 네로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날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할망구한테 정보도 같이 달라고 할 걸.”

 

  사틴이 툴툴거렸지만 차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다음 순간, 심지어 1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도 모르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예상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틴의 툴툴거림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조금 전, 마리 할머니 집을 방문한 그들은 허탕만 치고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로와의 대화를 끝내고 오두막집을 나온 그들은 곧장 마리 할머니네 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일이 술술 잘 풀릴 것이라고 좋아했지만, 마리 할머니네 집에 도착한 그들은 그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삼십분 동안이나 문 앞에 서서 마리 할머니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거기서 나와야만 했다.

  “어디 나가신 건가? 어제까지만 해도 계셨잖아.”

 

  사틴이 계속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어제 말씀하실 때 어디 가신다는 뉘앙스도 없으셨고.”

  “아 진짜······. 이 할망구, 사람 하나는 제대로 고생시킨다니까.”

 

  이상하네. 차우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다시금 기분 나쁜 한기가 몸을 찔렀다.

 

  “아니면 샐리 아주머니한테 물어볼까?”

 

  생각에 잠겨있던 차우는 사틴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쪽으로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벤 아저씨네 빵집 앞으로 샐리 아주머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샐리 아주머니는 마리 할머니의 차 모임에 자주 초대를 받을 만큼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아주머니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주머니?”

 

  차우가 말했다.

 

  “어머, 차우하고 사틴이구나. 무슨 일이니?”

  “안녕하세요. 혹시 마리 할머니께서 어디 가셨는지 아시나요? 조금 전에 집에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어서요.”

 

  그들의 말에 샐리 아주머니는 잠시 고민하듯 했다. 눈살을 찌푸린 채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는 이윽고 말했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나. 보통은 손녀 때문에 약속이 있으셔도 집에 계시려고 하실 텐데.”

 

  손녀요? 두 사람이 동시에 되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 부인의 손녀 분이 최근에 많이 아프시거든. 그래서 요즘은 간병 하시느라 잡아놓은 약속도 모두 취소하시고 집에만 계셔. 차 모임도 최근에 잘 안 여시더구나. 내일 열릴 모임만 빼면 말이다. 나도 부인을 만나 뵌 지 좀 오래됐어. 듣기로는 몸에 좋은 약이란 약은 다 써봤다고 하시는데 도저히 나을 생각을 안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시더구나.”

 

  그러면서 샐리 아주머니는 마리 할머니가 썼다던 약 몇 개를 읊기 시작했다. 대부분 값어치가 비싼 약들로, 차우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돈 진짜 많으시긴 하시다.’

 

  그리 생각하며 차우는 사틴을 쳐다봤다. 사틴의 입은 쩍 벌어진 채 닫힐 줄 몰랐다. 그 역시도 차우와 같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정말 중요한 약속이 아니면 나가시지 않으신단다.”

  “그럼 아주머니께서 들으신 건 없나요? 오늘 뭔가 중요한 약속으로 잠깐 외출하셨을 지도 모르잖아요.”

 

  샐리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라고 부인의 사생활을 다 아는 건 아니란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물어본다면······. 그래, 없으셨어.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말이야.”

 

  뒤이어 샐리 아주머니는 이제 그만 가야한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은 멀어져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곧 서로를 바라봤다.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마리 할머니의 묘연한 행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물론 손녀의 아픔을 뒤로할 정도로 중요한 약속이 잡힌 상태였다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토록 친하기 그지없는 샐리 아주머니조차도 모르는 약속.

 

  ‘그래도 뭔가가 좀 캥기는데.’

  “차우, 이제 어떻게 할까?”

 

  사틴이 물었다.

 

  “나도 몰라. 돌아가서 누나한테 말하든가 해야지.”

  “아니면 나랑 좀 더 조사해볼래?”

 

  조사? 차우가 반문했다. 마땅히 좋은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조사?

 

  “사실 누나 집무실에서 슬쩍한 게 있거든.”

 

  그러면서 사틴은 씩 웃더니 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종이뭉치를 꺼냈다. 손때가 묻은 종이가 태양빛에 반들거리며 빛을 냈다. 그걸 본 순간, 차우는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팍 찌푸렸다.

 

  “너 진짜 안 되겠다. 빨리 누나한테 말해서 너 간부에서 파버리라고 해야겠어.”

  “야!”

  “어떻게 네가 간부가 됐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네로 누나는 도대체 뭘 잘못 먹어서 널 간부로 뽑은 거야?”

 

  차우는 손사래를 쳤다.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그는 어째서 사틴이 간부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껏 아무 문제없이 간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간부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 리더가 회원 중 몇 명을 간부로 뽑는 일뿐이었다. 차우는 사틴이 네로에게 어떤 수작을 건 게 아닌가 싶었지만, 네로의 반응을 보자면 사틴을 뽑은 건 오롯이 네로의 순수한 의지인 것 같았다.

 

  “야, 그래도 누나가 아무 말도 안 해줬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물건을 훔치냐? 그것도 엄청나게 중요한 정보잖아, 그거!”

  “확인해보니까 그냥 피해자에 대한 정보였어. 그것도 신상정보만 정말 간단하게 적혀있더라. 이거 봐봐.”

 

  사틴은 종이를 펴서 차우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말대로, 종이에는 납치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간단한 신상정보만이 적혀있었다.

 

  “정말 이거뿐이지?”

  “그래! 누나가 알아채기 전에 그냥 제 자리에 두기만 하면 돼.”

 

  그러자 차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이 멍청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 하냐?”

  “괜찮아, 괜찮아. 설마 누나가 뭐라고 그러겠어? 나중에 들켜도 조사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 하면 돼.”

 

  누나가 잘도 수긍하고 넘어가겠다. 차우는 목구멍까지 차올라 내뱉을 뻔했던 그 말을 간신히 참아냈다. 화를 내봤자 손해를 보는 건 자신뿐이었다. 어차피 사틴에게 뭐라고 말해도 그는 듣지 않을 테니 입만 아플 것이고, 게다가 공연히 화를 내서 괜한 일을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괜한 관심을 받아 누나의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차우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좋아. 그래도 나중에 혼나도 난 아무 잘못 없는 거다?”

 

  그 말에 사틴이 뭐라고 항의했지만 차우는 모두 무시했다. 대신 사틴이 자신에게 건넨 종이에 집중할 뿐이었다.

  종이에 적힌 것은 별 것 없었다. 납치당한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거주 지역, 가족들의 대한 짤막한 정보, 그리고 사라지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 쭉 나열되어있었다. 차우는 납치된 사람들의 명수를 셌다. 총 8명으로서 모두 남자였다.

 

  ‘하갈즈 레펜토라······.’

 

  그 중에서 여덟 번째로 납치당한 피해자는 하갈즈 레펜토라는 이십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그는 납치당하기 직전, 비가 오는 탓에 첫 번째 피해자처럼 가족들과 집에 있었다고 한다. 식사를 한 뒤에 할 일이 있다면서 방으로 들어간 그는 이후에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안 사람은 하갈즈의 여동생이었는데, 빌릴 물건이 있어서 방으로 들어갔다가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뭐야? 방으로 들어갔는데 이후에 밖으로 나왔다는 흔적은 없다고?”

 

  차우 곁에서 같이 종이를 살펴보던 사틴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정확히는 방으로 들어간 이후에 다시 문을 열고 나오지는 않았다-라는 뜻일 거야. 여기 봐봐. 창문 쪽에 뭐에 쓸린 흔적이 좀 남아있다고 하잖아. 정황상 창문으로 나간 게 분명해.”

  “그럼 이 형은 범인이랑 같이 창문으로 나갔다는 소리인가?”

 

  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밖에는 답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범인이랑 같이 나간거지?

 

  “좀 이상하지 않아, 차우? 이 형이 제 발로 따라갔을 리 없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그런데 현장이 깨끗하다고 여기 나와 있잖아. 사라졌을 당시에 창문이 열려있었다는 것만 빼면 뭘 건드린 흔적조차도 없었고. 그렇다면 적어도 저항은 하지 않았다는 소리야. 그럼 이 형에 자기 발로 범인을 따라갔다는 결론 밖에 없어.”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닐지도 몰랐다. 피해자가 사라지기 전, 어떤 형식으로든 피해자 스스로 따라가는 걸 동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차우는 자신이 한 가정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떠올리고는 곧바로 그 생각을 떨쳐내 버렸다. 사건이 납치라는 조건 하에 벌어지고 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됐다. 납치란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끌고 가는 행위를 말했다. 그리고 여덟 명의 피해자가 모두 그랬다.

 

  ‘그러고 보니, 주기가 점점 길어지네?’

 

  차우는 종이를 쭉 살펴보다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최초로 납치 사건이 벌어지고, 그 다음 두 번째 납치 사건이 벌어지는 데에는 불과 5일 밖에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벌어진 여덟 번째 납치사건은 일곱 번째 납치사건이 벌어지고 무려 세 달이 지난 뒤에야 발생했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점점 주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사틴 봐봐.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어. 이건 무슨 뜻일까?”

  “음······. 글쎄.”

 

  사틴은 머리를 긁적였다.

 

  “납치라는 건 보통 범인이 납치한 사람에게 뭔가를 원할 때 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범인이 납치한 사람한테서 뭔가를 원해서 데려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네 말은 범인이 이 사람들한테 뭔가를 원하는데, 지금은 그게 거의 다 모여서 납치를 띄엄띄엄 하는 거다?”

 

  차우의 말에 잠시 생각을 거듭하던 사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한데······만약 정말로 범인이 뭔가를 원하는 거라면 일일이 한명씩 납치를 하는 것보다 그냥 한 두명 납치해서 가족들한테도 협박 같은 걸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그게 더 쉽게 자기가 원하는 걸 뜯어낼 수 있잖아.”

  “그렇게 했다간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흔적이 남잖아, 멍청아. 그렇다면 사건이 이렇게 꼬일 리도 없었어. 그리고 생각해 봐. 지금 범인은 사람들을 납치만 하고 있어. 그걸로 가족들한테서 뭔가를 뜯어낸다든가 하지는 않고 있어. 어쩌면 납치당한 사람하고 범인 사이에 뭔가 연결점이 있을지도 몰라. 아주 개인적인 거 말이야. 뭐, 복수라든가 어떤 거래 관계라든가.”

 

  차우도 그 말에 동의했다. 사틴의 말처럼 만약 뭔가를 원하는 거라면 진즉에 범인이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남겨놨을 터였다. 그리고 이렇게 사건을 질질 끌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것과 아주 달랐다. 범인은 그저 납치만 할 뿐, 그걸 이용해서 남겨진 자들한테서 어떤 이득을 취한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저 개인적인 관계 하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사틴의 추리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들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왜 납치 주기가 점점 길어질까? 그리고 어째서 피해자들을 흔적 같은 것도 안 남기는 거지?

 

  “그럼 차우, 정 궁금하면 같이 가서 직접 현장을 살펴보는 건 어때?”

  “뭐? 지금 가보자고?”

  “응. 어차피 마리 할머니도 안 계시는 것 같고, 지금 돌아가 봤자 좋을 리도 없고. 이런 거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어? 뭐, 우리가 가봤자 뭘 할 수 있겠냐 만은······.”

 

  그 말에 차우는 잠시 고민했다. 물론 고민할 필요조차 없음에도 그렇게 했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이 마당에, 그리고 사틴이 이미 중요한 정보를 ‘훔쳐온’ 마당에,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네로 누나는 이게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정말 위험했다. 사틴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차우는 네로가 화를 낼 때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틴이 이미 일이 벌인 이상, 적어도 쓸모 있는 정보 하나쯤은 건져가야 화를 좀 잠재울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정보를 건지지는 못하더라도, 자신들이 이만큼 노력했다는 증거 정도는 내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보자고.”

 

 

 

 ****

 

 

 

  여덟 번째 피해자는 인근에 있는 다른 마을 사람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얼마못가 마을 밖을 벗어났다. 돌로 조각된 다리를 건너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쭉 걷자 이윽고 다른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로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간간히 보이는 상점들은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차우네 마을만큼은 아니었다. 그에 비한다면 이곳은 아주 한산한 마을이었다.

  사틴은 다시 종이를 꺼내들어 주소를 확인했다. 그리 멀지 않은 위치, 마을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문득 그는 이러면 범인이 피해자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기 쉽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야.”

 

  이윽고 어느 집 앞에 도착하자 사틴이 말했다.

  차우가 노크를 하자 잠시 후에 안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얼굴에 주름살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 40대 아주머니였다.

 

  “누구세요?”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차우는 그 속에 녹아든 삶에 대한 슬픔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질문에 차우는 잠시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납치사건 관련으로 조사를 하러 왔다고 말해도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다녀갔을 테고, 그때마다 허탕을 치는 모습에 지쳐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다른 핑계를 대야 했다. 그리 생각하던 차우의 머릿속으로 마리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저희는 마리 할머니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마리 부인께서?”

  “네. 그······아주머님 상태가 어떤지 보고 오라고 하셔서요. 좀 있으면 모임이잖아요. 그 전에 부인이 참석할 수 있는지 그걸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다행히 차우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그의 말에 아주머니는 잠시 그들을 쳐다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어주었다. 사틴은 히죽거리며 차우를 쳐다봤다.

 

  ‘너 거짓말 잘한다?’

  ‘조용히 해.’

 

 

 

 ****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을 때, 세 사람의 대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차우는 차를 마시며 그녀를 쳐다봤다. 문을 열어주었을 때부터 계속 축 쳐져있던 표정과 몸짓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긴장을 다소 풀었다는 의미였다. 물론 여전히 불안하게 떨렸지만.

 

  “그래, 그러셨구나. 부인께서 그렇게까지······.”

 

  이름은 페니 레펜토. 나이는 올해 43살이었고, 정원 가꾸기와 차 끓이기를 특히 좋아하는 주부였다. 슬하에는 아들과 딸이 각각 한명씩 있었는데 네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여덟 번째 피해자인 아들이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할 만큼 인성 바르고 착한 청년이었다고 한다.-그리고 어머니 페니의 말에 따르면-제 아버지를 닮아 몸 좋고 힘도 아주 세서 곧잘 목수인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곤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마리 할망······아니, 할머니의 초대를 오해하지 않아주셨으면 해요.”

  “알겠단다. 부인께서 또 뭐라고 안 하시던?”

  “······일단 마음을 추스르시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아드님을 찾을 수 있다고······.”

 

  사틴은 그렇게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한 말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다행히 페니 아주머니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그래······. 그래야지. 나라도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해. 우리 딸이 걱정하니까. 하지만, 우리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페니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깨는 가늘게 떨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울음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볼 뿐이었다. 어떤 위로를 하더라도 지금은 통하지 않으리라.

  페니 아주머니가 진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낸 그녀는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다시 거실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눈가가 붉었지만 상태는 많아 나아진 상태였다.

 

  “그래도 부인께서 그렇게 신경써주시고 계셨구나. 요즘 손녀 분이 많이 아프다고 하시는데······.”

  “네. 저희도 들었습니다.”

  “정말 좋으신 분이야. 분명 부인도 힘드실 텐데, 남까지 챙기시려고 하시다니······.”

 

  페니 아주머니는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사틴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뭐, 할망······아니 그게, 마리 할머니께서 친절하시기는 하시죠.”

 

  사틴은 친절이라는 단어에 특히 힘을 주며 말했다. 여전히 어색한 웃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잠시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리 앉았다. 그동안 차우는 어떤 말로 아주머니를 구슬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당장 일어나서 피해자의 방을 확인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사건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잔뜩 화를 낼 네로 때문에라도 반드시 들어가야 했다. 들어가서, 자신들이 이만큼 노력했다는 ‘증거’ 하나쯤은 들고 가야 했다. 그것만 사틴이 저지른 대형 사고를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잠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차우는 결국 직접 맞부딪치기로 마음먹었다.

 

  “아주머니. 혹시 아드님의 방을 잠시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사틴과 페니 아주머니가 즉각 반응했다. 페니 아주머니는 굳은 눈빛으로 차우를 쳐다봤고, 사틴도 표정이 굳어지더니 팔꿈치로 그를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차우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오갔고, 그럼에도 아드님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셔서 실망하셨다는 점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못 믿으실 거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조사는 이어져야 합니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해서 거기서 포기해버리면 정말 영영 찾을 수 없을 테니까요.

  한 대상에게서 관심을 끊는 순간, 그 대상은 영원히 다른 사람들에게서 근절됩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요.

  아주머니. 저희도 아드님을 찾는 것에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가 아드님 방을 살펴봐야 되요. 설령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분명 그것만으로도 저희 조사에 도움이 될 겁니다.”

 

  사틴은 불안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페니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차우는 흔들림 없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침묵이 가라앉은 거실에서 시간만이 유일하게 시계소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페니 아주머니는 잠시 시선을 거두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차를 마셨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지.”

 

  이십 분 정도가 흘렀을 때, 페니 아주머니가 말했다.

 

  “나름대로 조사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었어. 난 이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단다. 물론 내 아들을 데려간 범인이 그 사람들이 말하는 사건의 범인과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들 중에서 아무도 내게 아들의 행방에 대해서 말해주지 못하더구나.

  그 아이는 아주 착하단다. 누구한테 원한 살만한 짓도 안 했고, 오히려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였지. 그랬는데 납치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 범인이 우리한테 뭔가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아이가 원한을 산 것도 아니었어. 우리 마을에서도, 심지어 바로 옆 마을에서도.

  그래, 네 말대로 나는 그 사람들을 이제 못 믿어. 믿을 수가 없어. 모두 자기가 찾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아무도 찾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뭔지 아니? 그럴수록 나 자신도 찾기를 포기하고 싶어진다는 거야. 내 아들이 돌아올 거라는 기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 우리 그이도 지쳐가고 있는 게 보이고. 참 못났지? 부모라는 사람들이 아들 찾기를 그만두려고 하다니 말이야.”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하던 페니 아주머니는 곧 입을 다물었다. 차우와 사틴은 긴장한 채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저 하소연에서, 끝없는 슬픔에서, 그리하여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감정에서 아주머니가 무엇을 생각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의 감정이란 복잡한 법이니,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기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또다시 한참이 지난 뒤, 마침내 페니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래. 조사해 보거라. 너희들의 조사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구나······.”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누군가를 불렀다. 잠시 후, 10대 중반 즈음 된 여자 아이가 거실로 들어왔다. 곱게 기른 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와 찰랑거렸고, 부드러운 눈빛은 마치 페니 아주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차우는 재빨리 기억을 되살렸다. 차우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녀의 이름은 분명 말린이었다.

 

  “말린, 이 어미 대신 이 분들한테 오빠 방을 보여줄 수 있니? 나는 너무 힘들구나······.”

 

  페니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했다. 중간에 몸이 휘청거려서 말린의 부축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없이 거실을 나올 수 있었다. 차우와 사틴이 잠시 제자리를 지키는 사이 말린과 페니 아주머니는 거실을 나갔다. 이윽고 다시 거실로 돌아온 사람은 말린이었다.

 

  “오빠 방으로 안내 해드릴게요.”

 

  말린의 말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린의 뒤를 따르는 동안, 사틴은 차우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야. 너 아까 진짜 당돌하더라. 난 너 아닌 줄 알았어!”

  “내가 당돌해보였냐? 지금 내 손 보고도 그 소리가 나와?”

 

  차우는 그리 말하며 사틴에게 손을 보여주었다. 그의 손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속으로 떨었는지 알아? 솔직히 아주머니가 그런 말에 그렇게 금방 허락해주실 줄 몰랐어.”

  “야, 그래도 다행이다. 일이 빨리빨리 풀려서.”

 

  차우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허점투성이인 자신의 말에 아주머니가 쉽게 넘어간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말에 넘어가버리실 만큼 정신적으로 지치셨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납치를 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차우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자신의 생각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잘 포장해서 설명한다한들, 결과적으로 남는 건 끝없는 절망과 체념뿐이었다.

 

  “그런데 아까 그 뭐냐. 네가 아까 했던 말 있잖아.”

 

  사틴이 말했다.

 

  “어떤 거?”

  “한 대상에게 관심을 끊으면 안 된다나 뭐라나 하는 말말이야. 그런 말을 또 어떻게 생각해냈냐? 말 한 번 멋지게 한다?”

  “아, 그거? 그냥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나왔던 건데, 기억나는 대로 따라한 것뿐이야.”

 

  두 사람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말린은 그들을 하갈즈의 방까지 안내했다. 그의 방은 2층 복도 맨 끝에 있었다. 말린은 잠시 그들을 밖에서 기다리게 한 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 다시 밖으로 나온 그녀는 그들을 방으로 들여보내줬다.

 

  “여기가 오빠 방이에요. 오빠가 납치당한 이후부터 아무것도 건들이지 않고 계속 이 상태로 놔두고만 있어요.”

  “그런 것 치고는 꽤 깨끗한데?”

 

  사틴이 말했다.

 

  “오빠가 매일 방청소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그냥 먼지 털어내는 것 정도의 청소만 하는 중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오빠 방을 계속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까요. 엄마가 쓰러지시고 난 이후부터 제가 쭉 하고 있었어요.”

  “그래?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오빠 방을 꼬박꼬박 청소한다니······. 난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야. 난 맨날 엄마한테 방 청소 안 해서 혼나는데.”

  “아무쪼록, 오빠 방에서 아무거나 건드리지 않아주셨으면 해요.”

  “걱정 안 해도 돼. 정말로 잠깐 조사만 해보고 나올 거니까. 어쨌든 안내해줘서 고마워, 꼬마야.”

 

  그녀의 말에 사틴은 웃으면서 답했다. 말린은 잠시 못 미덥다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왔다. 말린이 문을 닫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틴은 차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차우. 이제 조사 시작해봐야지.”

 

  하지만 차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사틴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지만, 차우가 계속 움직일 생각을 안 하자 그제야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차우의 상태가 매우 이상함을 깨달았다. 차우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두 눈을 둥그렇게 뜬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왜 그래?”

 

  사틴이 물었다.

  차우의 대답이 돌아온 건 그로부터 대략 오 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똑같아.”

  “음? 뭐가?”

  “내가 꿈에서 본 방이랑.”

 

  그 말 그대로 차우는 어제 오후, 선 채로 잠들어 꾸었던 꿈과 똑같은 장소에 서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는 점만 뺀다면 모든 것이 똑같았다. 마치 시간을 되돌아와 다시 그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3 12화 2019 / 10 / 30 219 0 6101   
12 11화 2019 / 10 / 30 243 0 5549   
11 10화 2019 / 10 / 30 226 0 5234   
10 9화 2019 / 10 / 30 239 0 5397   
9 8화 2019 / 10 / 30 253 0 6271   
8 7화 2019 / 10 / 29 239 0 5536   
7 6화 2019 / 10 / 29 235 0 8740   
6 5화 2019 / 10 / 29 234 0 8386   
5 4화 2019 / 10 / 26 229 0 12154   
4 3화 2019 / 10 / 26 254 0 8153   
3 2화 2019 / 10 / 9 244 0 16607   
2 1화 2019 / 10 / 9 243 0 11973   
1 Prologue 2019 / 10 / 9 396 0 506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살루스 : 여정의
치르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