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1_7
작성일 : 16-10-09 11:30     조회 : 441     추천 : 3     분량 : 531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엄마가 그를 따라 포장이사를 하러 가면 난 혼자서 집을 지켜야 했다. 엄마가 없는 동안 난 밥통서 밥을 꺼내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주 가끔 이도 저도 없을 땐 엄만 이백 원을 주며 배를 채워두라 했는데 그런 날은 나에게 잔칫날이었다. 난 백 원을 떡볶이에, 오십 원을 삶은 달걀에 쓰고 남은 오십 원은 다음날을 위해 저축했다. 그러면 다음 날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같은 달콤한 걸 사 먹을 수 있으니까. 컵에다 담아주는 떡볶이와 달걀을 난 그 자리서 먹지 않고 집에 가져와 그가 건져온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 먹었다. 식탁에서 먹지 않으면 왠지 끼니를 때운 것 같지 않아 더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선 방에서 전과를 가지고 나와 식탁에서 읽으며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내 방에 있는 책상보다는 작고 내 키에 맞는 이 앉은뱅이 식탁이 맘에 들었다. 엄만 집에 올 때 항상 엄마와 그가 점심때 먹다 남긴 짜장면이나 빵, 초코파이를 가지고 왔다. 난 그것들을 먹으며 엄마와 그의 어깨를 주물러 줬다.

 

 엄마는 매일 아침 일을 나가기 전에 나를 깨워 내 머리를 정성스레 빗고 묶어주었다. 하나로 가운데 묶기, 하나로 옆쪽에 묶기, 양 갈래로 묶기, 하나로 묶어 땋기, 하나로 디스코 땋기, 양 갈래 디스코 땋기, 양쪽으로 두 가닥만 땋기, 반 묶기, 올림머리 등등 엄마의 머리 묶기 기술은 요즘 연예인들 헤어 드레서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옷도 이사 일을 하다 주워온 옷들이지만 깨끗이 빨아 매일 갈아입혀 줬다. “기죽을 거 없어. 우리 딸이 최고로 이쁘고 똑똑한데.” 나에게 하는지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화려하게 땋아도 고급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싸구려 빌라에 사는 아이들은 때깔이 딱 보기에도 달랐다는 걸,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걸, 내가 말해주지 않았으니 엄마는 아마 몰랐을 거다.

 

 정작 엄마가 신경 써야 했던 건 따로 있었다. 성적이 좋아 항상 학급 임원을 맡던 내가 선생님들께 귀염을 받을 거라 믿었던 순진한 엄마는 내가 사 학년 때 담임에게 듣고 전달한 “너희 어머니는 네가 반장인데 왜 학교에 한 번도 안 오시니?”의 의미를 잘 몰랐다. 엄마가 빈손으로 학교에 다녀가고 담임은 아예 대놓고 반 아이들이 다 보는 데서 나에게 물었다. “너희 아버지는 뭐하시니?” 난 가정환경 조사할 때 엄마가 일러준 대로 “운수업이요.” 했다. 담임은 내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버스회사 하시니?” “아니요. 트럭…… 하시는데요.” 담임은 내가 걸려들었단 듯이 눈을 밝히며 비웃었다. “너희 아버지 트럭운전 하시지?” “…… 네.” “운수업은 버스나 트럭 여러 대를 갖고 크게 사업을 해야 운수업이지. 다음부터는 아버지 트럭 운전하신다고 적어라.” 아이들은 “나린이 아빠 트럭 운전한대.” 하며 수군거렸고 아직도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내 아버지가 뭘 하는 게 무슨 상관인지 어리둥절한 나에게 담임이 기어이 한마디 더 했다. “다른 반 반장 아버지들은 의사, 판사에 최소한 회사원은 되는데 우리 반은 어떻게 된 게 이 모양인지.”

 

 담임이 그딴 말을 했다는 걸 엄마에게는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알아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달라질 건 더더욱 없을 테니까. 난 다만 맘속으로 ‘나중에 선생이 되더라도 저딴 선생은 되지 말아야겠다.’ 했을 뿐이었다. 엄마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식탁에 앉아 엄마가 남겨온 짜장면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다가와 거뭇해진 내 입을 행주로 닦아주었다. “나린이 동생 갖고 싶지 않니?” 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싫어! 우리 셋이 먹을 거도 없는데 동생 생김 걘 뭐 먹이려고. 난 뭐 먹이려고. 엄마랑 아빠는 뭐 먹으려고.” 했다. 엄만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그래, 우리 먹고살 것도 없지. 먹고 죽으려 해도 없지.” 하며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냉장고를 뒤지던 엄마가 다시 물었다. “나린인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난 짜장면 소스를 긁어먹으며 무심히 말했다. “안 심심해. 동생 필요 없어. 지금도 짜장면 한 그릇도 제대로 못 먹는데 동생 생김 더 못 먹을 거 아냐.”

 

 다음날 엄마는 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다녀와선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엄마같이 짠순이에 바지런한 사람이 돈 주고 병원에 갔다 와 가만히 누워 있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걱정이 많아진 난 엄마 주위를 서성이며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지만, 엄만 그냥 여기저기가 아프다며 잠만 잤다. 저녁에 돌아온 그는 엄마와 무슨 말을 하더니 화를 내며 집을 나갔다. 저 인간은 엄마가 아픈데 뭐 하는 인간인가. 내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와 엄마 옆에 누웠다. 내가 엄마 젖을 주무르자 엄마가 눈을 떴다. “엄마는 우리 나린이만 있으면 돼. 우리 나린이만 이쁘고 똑똑하게 키우면 되지.” 난 엄마 볼에 뽀뽀를 하며 내 작은 손을 엄마 이마에 가져댔다. 엄마는 열이 조금 있는 듯했다. “나두 엄마만 있으면 돼.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젤루 좋아.” “엄마두 세상에서 우리 나린이가 젤루 좋아.” 우린 서로를 보며 배시시 웃다 잠이 들었다.

 

 그는 술을 퍼먹고 새벽이 돼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난 늦게까지 자고 싶었지만 그와 엄마가 싸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늘 그렇듯 잠자는 척하며 그들이 싸움을 멈추길 기다렸다. 대게 그가 제풀에 지쳐 집을 나가는 게 그들의 싸움의 끝이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뚫린 귀는 그들의 싸움을 여과 없이 내 머리에 입력해 준다. 그는 엄마가 혼자 무슨 결정을 내린 게 맘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자기하고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왜 그랬냐고 화를 냈다. 엄마는 자꾸 혼자 내린 게 아니라면서 “니가 언제 나린이 책 한 권, 옷 한 벌 새것으로 사줘 봤냐?” 하며 조곤조곤 따지다 “나린이도 놀이공원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을 텐데 니가 해준 게 뭔데?” 하고 바락바락 악을 썼다. 난 속으로 ‘정작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건 일어나서 오줌 싸는 게 다인데.’ 하며 잠자코 있었다. 근데 “알았다. 알았어.” 하며 일어선 그가 갑자기 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놀이공원에 가자는 거다. 난 엄마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으나 엄마는 세상만사가 다 귀찮은 표정으로 자리에 도로 누웠다.

 

 그의 손에 이끌려 나온 난 딱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린 나였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어림짐작이 됐다. 난 솔직히 그가 나에게 뭐라고 할 줄 알았다. 엄마 질문에 왜 그렇게 대답했냐고. 하지만 그는 외려 내 눈치를 봤다. 놀이공원에 가겠다고 호기롭게 나올 땐 언제고 나오자마자 나한테 뭘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난 “놀이공원 간다며?” 하며 하품을 했다. 그는 내 반응에 적잖이 놀란 듯 “놀이공원 가고 싶어?” 하고 물었다. 난 당연한 걸 묻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 “그럼 안 가고 싶을까 봐?”라고만 대답하려다 “어떻게 가는 줄 알아?” 하고 덧붙였다. 그는 차를 몰고 갈까, 지하철을 탈까 우왕좌왕하다가 내가 “그 큰 트럭을 몰고 어딜 가려고?” 하자 겨우 지하철로 갈피를 잡았다. 버스를 타고 안양역에서 1호선을 타고 금정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 대공원역에서 내릴 때까지 그는 조용히 긴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대공원역이 가까워져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가 나를 가까이 잡아당겨 손을 붙들어 잡고 “손 단디 잡고 있그레이. 어디 딴 데 가지 말고.” 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설령 그의 손을 놓쳐도 지하철 비랑 버스비만 있으면 집에는 찾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아니면 우리 집 주소랑 전화번호 정도는 외우고 있으니까 경찰서에 가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어.” 하고 낮게 읊조렸다.

 

 대공원에 도착해서 표를 끊는 줄에 서 있다가 그가 앞에 줄 서 있는 사람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여기 입장권이 얼만지 압니꺼?” 앞사람과 앞사람의 부인, 아들은 모두 면바지에 작대기를 들고 말에 탄 사람이 그려져 있는 셔츠를 맞춰 입고 있었다. 난 말에 탄 사람이 당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망치같이 생긴 작대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앞사람 아들과 눈이 마주쳐 얼른 그의 뒤로 숨었다. 앞사람은 그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입장료가 얼만지 ‘자유이용권’이 얼만지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자유이용권’이란 단어는 그도 나도 처음 듣는 단어였는데 그 가격은 꽤 높았다. 그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가 조용히 줄에서 빠져나왔다. 난 무슨 일인지 뻔히 알면서도 “놀이공원에 와서 왜 안 들어가는데.” 하며 틱틱댔다. 그는 연신 미안한 표정만 짓다가 “지금 들어가 봤자 이미 열한 시가 다 됐는데 나중에 다시 오자.” 했다. “나중에 언제? 언제 올 건데?”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그는 나를 끌다시피 했다.

 

 그는 바로 집에 돌아가기가 무안했는지 “뭐 먹고 싶은 거 있나?”라고 물었다. 난 바로 대답했다. “짜장면.” 그는 “내같이 이사하는 사람은 맨날 먹는 게 짜장면인데. 딴 거 무라.” 하며 답답하단 듯이 날 쳐다봤지만 난 단호했다. “짜장면 한 그릇 새것 시켜가지고 다 먹고 싶단 말야.” 그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지만 내가 “난 한 번도 짜장면 새것 못 먹어 봤단 말이야.”하고 웅얼대자 못 이긴 척 나를 중국집에 데려갔다. 내가 짜장면 한 그릇을 양파 한 점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우는 걸 보고만 있던 그는 “우리 나린이 잘 먹네.” 하고 칭찬인 듯 칭찬이 아닌 말을 했다.

 

 소주 한 병, 컵라면 하나, 담배 한 갑을 사서 슈퍼 앞 파라솔에 죽치고 앉아 있으면서도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내가 “아빤 담배를 왜 펴? 담배 냄새 싫어.” 하며 얼굴을 찌푸리자 그가 성급히 담배를 끄며 “아빠 댐배 끊을까?” 해서 내가 “응. 아빠한테서 담배 냄새나. 담배 쩔은 냄새.” 한 게 다였다.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자 그는 나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내가 다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그는 자리에 앉아 나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다. 무릎에 앉기엔 이미 너무 커버린 나였고 그의 허벅지는 뼈밖에 없어 딱딱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난 가만히 앉아 까끌까끌한 그의 수염을 만지며 놀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아빠가 놀이공원도 데려가 주고 짜장면도 사줬어. 너무 좋아.” 했다. 나로선 그가 짜장면을 사준데 대한 보답이었으나 그에게 미리 말을 안 했으니 그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난 그에게 윙크를 해 보였다. 그는 나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그는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대단한 금연 선언도 없었고, 입이 심심 타며 껌을 몇 통 사 씹은 것 외엔 금단 현상도 없었다. 평생 잔소리해도 안 듣던 인간이 갑자기 뭔 바람이 들어 담배를 끊었느냐고 엄마가 치근대자 심드렁하니 “나린이가 내 댐배 냄새 난다꼬 싫어한다 아이가.” 했을 뿐이다. 엄마는 “옛말에 담배 끊는 사람이랑은 상종도 하지 말라는데, 독하다고.” 하면서도 “느그 아빠가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안 그래 보여도.” 하며 내심 많이 좋아하는 티를 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0 4_2 2017 / 12 / 16 311 0 4931   
29 4_1 2017 / 12 / 15 297 0 4733   
28 3_8 2017 / 12 / 14 305 0 4125   
27 3_7 2017 / 12 / 12 307 0 4880   
26 3_6 2017 / 12 / 12 307 0 5332   
25 3_5 2016 / 10 / 31 456 0 5337   
24 3_4 2016 / 10 / 27 505 2 5300   
23 3_3 2016 / 10 / 25 448 2 5034   
22 3_2 2016 / 10 / 23 407 2 5434   
21 3_1 2016 / 10 / 22 419 3 5235   
20 2_11 2016 / 10 / 21 544 3 5917   
19 2_10 2016 / 10 / 20 537 3 5070   
18 2_9 2016 / 10 / 18 426 3 5279   
17 2_8 2016 / 10 / 17 465 3 5350   
16 2_7 2016 / 10 / 16 475 2 5606   
15 2_6 2016 / 10 / 15 520 3 5296   
14 2_5 2016 / 10 / 14 458 3 5013   
13 2_4 2016 / 10 / 13 518 3 5025   
12 2_3 2016 / 10 / 12 469 3 5428   
11 2_2 2016 / 10 / 11 466 4 5005   
10 2_1 2016 / 10 / 11 482 3 4875   
9 1_8 2016 / 10 / 11 426 4 2835   
8 1_7 2016 / 10 / 9 442 3 5315   
7 1_6 2016 / 10 / 9 524 3 4916   
6 1_5 2016 / 10 / 8 446 3 4947   
5 1_4 2016 / 10 / 7 450 3 5155   
4 1_3 2016 / 10 / 6 636 3 5022   
3 1_2 2016 / 10 / 6 533 3 5059   
2 1_1 2016 / 10 / 5 439 3 5008   
1 프롤로그 (2) 2016 / 10 / 5 731 4 248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