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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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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9 11:28     조회 : 523     추천 : 3     분량 : 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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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난 공부를 잘했다. 그건 나의 잘남에서 비롯된 건 절대 아니었고 그저 공부 외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고 당시엔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었으니 공부를 방해할만한 요인이 전혀 없었다. 거기다 주인집 아이가 나와 말하지 않겠다고 한 이후 난 밖에 나가 또래 아이들과 노는 일을 삼갔던 거다. 누구랑 말해야 하고 누구랑 말하면 안 되는지 헷갈렸으니까. 아빠가 건져다 준 꿈꿈한 냄새가 나고 여기저기 김칫국물이 흐르는 자국이 난 동아 전과와 표준 전과가 내 유일한 친구였다. 학교에서도 난 그냥 작은 아이였다. 누구 하나 나에게 말 거는 이 없었고 난 조용히 앉아 선생님 말씀을 적고 외웠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올백을 맞은 것을 축하해 줄 때까지 내 이름 ‘김나린’을 아는 아이조차 몇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떻게 알았는지 옆 반이었던 주인집 아들놈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올백 맞았다며? 난 되게 많이 틀렸는데.” 난 그 뚱돼지 같은 놈을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울 엄마가 공부 못하는 애들이랑 말하지 말랬어.” 난 혀까지 빼쫌 내밀고는 우리 집으로 도르르 계단을 내려갔다. 물론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다. 내가 그런 말을 그 애한테 했다는 것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왠지 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난 올백을 맞았고 삼 층에 걔는 엄청 많이 틀렸대 하고만 말했다.

 

 며칠 뒤 월세를 받으러 온 그년 앞에서 엄마는 전에 없던 행동을 했다. “준식이 학교 시험 잘 봤대요?” 엄마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말했다. 그년은 엄마가 월세가 없어 절절거릴 때나 짓던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나를 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우리 나린인 올백을 맞았지 뭐에요. 호호. 이번 시험이 좀 쉬웠나?” 그년은 깜짝 놀라 날 한번 쳐다보았다. 난 도도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년이 아무 말 없이 입을 비죽거리며 돈을 받아 가고 나서 엄마와 나는 한동안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내가 초등학교 이 학년 때, 엄마는 중대 결심을 했다. 빚을 조금 내서라도 전셋집을 마련해 내 공부방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차 할부금을 갚느라 마흔을 채우기도 전에 등이 굽어 버린 그가 어깨에 파스를 붙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도 서울서 방 하나짜리 집을 구하긴 불가능했다. 우린 교통이 편리하고 애들 교육환경이 좋다는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

 

 문제는 우리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거다. 집 앞 언덕 아래에 있었던 초등학교는 원래 가까이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지어졌다. 하지만 서울에서 범람해오는 사람들을 위한 싼 빌라들이 그 주변으로 우후죽순 생기면서 이 콩알만 한 초등학교는 이미 과포화 상태였다. 우리 집도 그런 빌라 중의 하나였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런 빌라 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위치에 가장 안 좋은 평수였다. 빌라 이름부터 짝퉁 냄새가 풀풀 나서 창피했다. 고급 아파트 이름이었던 ‘우리 아파트’를 본뜬 ‘우리 빌리지’였으니까. ‘우리 빌리지 2동 B02호’라고 쓰여 있는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아온 엄마는 손가락으로 지하층을 가리키는 ‘B’자를 가리며 “요런 거 없는 데서 살고 싶다.” 했다. 난 헌 공책을 잘라 엄마 얼굴을 그리고 ‘우리 아파트 303동 1303호’라고 적혀있는 엄마의 주민등록증을 만들었다. “다음에 이사 갈 땐 아파트 13층에 살자.” 하며 엄마에게 줬더니 엄마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냉장고에 붙여놓았다.

 

 새 담임은 전학 온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62번이라고 했다. 담임의 손은 능숙한 솜씨로 서류철을 열고 내 학생기록부를 맨 뒤에 끼웠다. 뚱뚱해진 서류철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두어 번의 시도 끝에 담임은 그냥 서류철이 벌어진 채 내버려두었다. 난 한 반에 62명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눈만 껌벅거리며 엄마를 쳐다봤다. 저학년은 오전 오후 수업을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교실이 부족해서 1, 2학년은 번갈아 가며 일주일은 오전에, 일주일은 오후에 수업을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1학년 1반이 2학년 1반과 교실을 같이 쓰는 거다. 한 학년은 오전에, 다른 학년은 오후에,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엄마는 오전 오후 수업을 헷갈리지 않게 손바닥에 적어 놓으라 했다.

 

 맹모를 본받아 나를 위해 한 이사는 정작 내 맘에 들지 않았다. 반지하라 불렸지만 사실 빛이 쬐끔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간은 아침에 한두 시간뿐, 집은 하루 종일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전기세를 아끼느라 낮에는 불을 안 켰고 덕분에 방 한 칸에 거실, 부엌, 화장실까지 제대로 갖춘 이 13평짜리 빌라는 새집이었지만 을씨년스런 구석이 있었다. 그와 엄마는 거실에서 잠을 잤고 방은 내 차지였다. 내 공부방. 그는 어디서 어른이 누워 잘 수 있을 만큼 큰 사무실용 책상을 건져왔고 그 위에 판자로 뚝딱뚝딱 책꽂이를 만들어 줬다. 엄마 말마따나 돈 버는 거 빼곤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역시 그가 건져온 딱딱한 나무의자는 엄마가 솜이불에서 솜을 빼 쿠션을 다시 만들고 내 헌 잠옷으로 커버를 씌우자 겉보기나마 깔끔히 변했다. 난 엄마와 그에게 “고마워.” “짱 좋아.”를 연발했지만 사실 이 건져온 가구들은 반에서 일 이번을 다투던 나에겐 너무 컸고, 가구로 꽉 찬 내 방은 아늑함보단 황량함을 안겨줬다.

 

 엄마나 그에겐 부끄러워 얘기를 못 했지만, 사실 그 집이 싫었던 또 다른 이유는 혼자서 잠을 자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사방이 꽉 막힌 그 공간에 나 혼자 오롯이 있다는 게. 잠이 들면 누군가 날 엄마 몰래 데려가 버릴 것 같았다. 방이 워낙 작고 책상이 너무 커 책상 밑에 머리를 넣고 자야 했던 것도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향을 바꿔 책상에 발을 넣고 잤으면 됐겠지만 어린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고, 그저 책상 아래서 그 커다란 철제 책상이 내 자그마한 머리통을 깔아뭉개는 상상을 하며 돋아 오르는 소름을 벅벅 긁었다. 그의 코 고는 소리마저 그리워 닫힌 문에 귀를 대보다 문을 살그머니 열고 잠이 들었다.

 

 엄마도 결국 그 집을 싫어하게 됐다. 장마 때가 되자 여지없이 물난리가 났던 거다. 새집에서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는 걸 보며 엄마는 아무래도 물귀신이 쓰인 것 같다며 주절댔다. 그의 고조할머니부터 자신의 육촌에 팔촌까지 곱씹으며 집안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나 돌아보던 엄마는 집에 돈이 있었으면 굿이라도 벌렸을 거다. 엄마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 사정사정했고 집주인은 빌라 시공자를 들먹이며 책임을 미뤘다. 엄마가 어렵게 시공자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해봤지만, 시공자는 집주인하고 상의할 일이지 왜 자기에게 전화를 했느냐며 갖은 욕을 다 하곤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온 집주인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벌어진 창틀과 들어 치는 비바람을 보면서도 “아유 뭐 이 정도 가지고.” 했다. 엄마의 속이 뒤집어지는 꼴을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한 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걸레를 들고 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물에 흠뻑 젖은 걸레를 세숫대야에 짜고 이마에 맺힌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기도 손등으로 훑어내며 망연자실함을 연출했다. 결국 집주인은 사람을 불러 고쳐주마, 하고 돌아갔다.

 

 솔직히 엄마 말대로 우리 집에 물귀신이 쓰인 것 같기는 했다. 어느 해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여름 방학 내내 엄마가 바다를 보러 가야 한다고 그에게 종용했던 적이 있다. 엄마는 온종일 푹푹 찌는 집에서 멍하니 손이나 빨고 있는 내 핑계를 댔지만, 바다가 뭔지는 티브이나 그림책으로만 막연히 알고 있던 난 바다의 ‘바’ 자도 꺼낸 적이 없었으니, 나보다는 엄마 본인이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우리 형편에 피서 같은 건 생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엄마와 그는 피서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 개학을 하기 직전 여름 막바지에 그는 부산 가는 짐을 맡았고 엄마와 난 트럭에 짐과 함께 실려 부산으로 향했다. 짐을 가득 실은 육중한 오톤 트럭은 털털거리며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낡은 그의 트럭은 유독 털털거림이 심해 차 안에선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많은 소음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게 고마울 정도였다. 많지 않은 나이에 가는귀가 어두워진 그가 이해됐다.

 

 우리가 부산에 도착하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날씨가 점점 험악해지더니, 그가 짐을 풀고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태풍경보가 내려졌다. 세찬 바람 덕에 난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들어 트럭에서 나갈 엄두가 잘 안 났다. 태어나서 처음 본 바다는 그림책에서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처럼 거세게 파도가 일고 있었다. 내 몸을 저 파도에 맡겨서 쌀 삼백 석을 얻고 그의 가는귀가 트일 수 있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혼자 쓸데없이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가는귀 정도야. 내가 나중에 커서 보청기나 사주지 뭐. 쌀 삼백 석은 돈으로 얼마나 되는지 몰라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엄마는 울상이었고, 그는 자기가 태풍을 몰고 온 것도 아니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가 연신 미안하다고 하자 왠지 그의 탓인 것 같아 그가 미워졌다.

 

 밤이 되자 그는 돈이 좀 들더라도 여인숙에서 자자고 했고, 엄마는 태풍 때문에 아직 서울 올라가는 짐을 찾지 못했으니 여인숙에서 자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운전석과 보조석 등받이를 뒤로 젖혀 뒷좌석에 맞닿게 하자 전에 살던 단칸방보다는 좁지만 세 사람이 모로 누울 정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아침에 일어나자 그와 엄마가 자주 하던 ‘삭신이 아프다’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로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다. 엄마는 수년간 차에서 자며 돈을 번 그를 동정하며 다신 장거리 일은 하지 말라고 했고, 그는 자기 혼자 자면 트럭에서 자도 편안하다면서 엄마를 달랬다. 이날 이후로 내 머릿속에 ‘피서’란 단어는 ‘슬픔’이란 단어와 합쳐졌고, 뉴스에서 사람이 바글바글한 해수욕장만 봐도 왠지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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