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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아내의 살 떨리는 고백
작가 : 화휘
작품등록일 :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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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3년마다 남편을 죽일 수 있다는
아내의 살 떨리는 고백을 들은 남자가
이혼을 거부하고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아내와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스릴러

 
4. 나 떨고 있니?
작성일 : 19-10-24 13:39     조회 : 69     추천 : 0     분량 : 8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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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내가 죽는다는 거야!!!”

  명호는 성난 사자처럼 포효했지만, 속으로 엄청 떨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다연은 익숙한 듯 빤히 쳐다봤다. 그리곤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면서 남편이 다시 이성을 찾는 걸 도왔다.

  “민나아빠. 상황 호도하지 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죽일 기회를 얻는 거야. 죽이는 게 아니고.”

  명호의 머릿속에는 준석의 화살이 계속 맴돌고 있는 상황이라, 그는 쉽게 이성을 찾지 못했다.

  “그게 죽는 거지.”

  “아직 청혼한 날도 오지 않았어.”

  “청혼일?”

  “그래. 3년마다 우리는 청혼 일을 기준으로, 남편 죽일 기회를 얻어.”

  “그러니까 프로포즈한 날에 날 죽일 수 있다는 거지?”

  다연도 아무리 말해도 남편에게 자기 말이 먹히지 않자 포기하고 말을 이어갔다.

  “응. 청혼은 마음에 대한 맹세잖아. 결혼식은 형식이고. 그래서 맹세를 한 청혼일을 기준으로 일주일 동안 남편 죽일 기회를 갖게 돼. 일주일동안만 잘 버티면 무사한 거야.”

  “잘 넘겨도 3년 있다가 다시 날 죽일 수 있다는 거잖아.”

  명호는 못마땅해 툴툴됐다.

  다연은 이해가 됐다.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4번의 죽을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 좋아할 남편은 없었다. 그러기에 남편의 무례한 말투와 감정에도 화를 내지 않아 인내했다. 늘 그렇듯이.

  한동안 신기함과 두려움 감정 사이에서 시소를 타던 명호가 궁금한 듯 물었다.

  “청혼을 하고 결혼을 못 할 수도 있잖아.”

  “아직 그런 사례는 없었대. 우리집 여자들 청혼을 받으면 무조건 결혼을 했어. 신기하겠지만.”

  명호는 자신이 아내에게 청혼한 날을 떠올렸지만... 딱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프로포즈... 내가 언제 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프로포즈한 날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 손을 무릎에 탁 쳤다.

  “맞다. 결혼식 날 내가 했지.”

  다연 얼굴에 얼핏 실망감이 스쳐지나갔지만, 명호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

  “우리 결혼기념일 11월 30일이 프로포즈한 날이기도 하지. 내가 프로포즈 안 해서 급히 결혼식 날 서둘러 했잖아.”

  명호는 안도하며 아까 준석 가슴에서 다시 본 화살 얘기를 꺼냈다.

  “나 화살 다시 봤어. 준석이 아파하니까 가슴에 화살이 다시 나타났어. 준석이 이대로 죽는 거 아냐?”

  “화살이 어땠어?”

  “화살이 아주 살벌하게 생겼어. 딱 맞으면 죽게 생겼더라고.”

  “아니. 화살 크기가 어떻게 됐냐고? 처음보다 작아졌어. 커졌어?”

  명호는 기억을 더듬어 나가다 생각난 듯 말했다.

  “작아졌네. 작아졌어.”

  다연은 안도했다.

  “화살이 작아지면 고통도 줄어들어. 그러다 화살이 완전히 사라지면 고통도 끝이야.”

  “오호... 신기하네. 그러다 커지면?”

  “커지지 않아. 절대로.”

  ‘그런 일은 절대 없어. 이은이 제부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사고로 끝나지 않았어. 손 쓸 틈도 없이 바로 죽었어.’

  남편이 이 말을 들으면 쓸데없이 염려할 거 같아 다연은 화제를 돌렸다.

  “이은이가 평소에 제부한테 불만이 있었나 봐. 그게 갑자기 터져서 제부한테 화살을 날릴 거 같아.”

  “무슨 불만이 길래 남편한테 화살을 날려. 살벌하다.”

  “결혼생활은 원래 살벌한 거야.”

  “우린 아니잖아.”

  명호의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다연은 대답대신 남편을 빤히 쳐다봤다.

  명호는 여전히 상황파악이 못하곤 아내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절대 나한테 화살 날릴 생각 안 했지. 아니 할 수가 없었던 거지. 왜냐... 내가 완벽하니까.”

  다연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평소처럼 순응하듯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하듯이 말이다.

  근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면... 이대로 그냥 간다면... 이은처럼 자신도 남편에게 화살을 날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호는 여전히 우쭐했다.

  “당신도 나 같은 남자가 없다는 걸 느꼈을 거야.”

  그녀는 더 이상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갑자기 테이블에 있는 휴지를 들어 남편의 입을 박박 닦았다. 입 좀 다물라는 뜻으로.

  하지만 명호는 진짜 뭔가 묻은 줄 알고 자신 입을 닦는 아내의 손길을 막지 않았다.

  안 된다 생각했는지 다연은 닦는 걸 멈췄다.

  “아니. 당신이 때문이 아냐. 민나때문이야.”

  민나는 다연과 명호의 딸이었다. 명호를 쏙 빼닮은 딸이었다. 어찌나 명호를 빼닮았는지 다연은 내가 남편을 또 낳았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딸 민나가 없었다면, 결혼생활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명호와 다연 신혼생활은 한 달이 지나자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시누이 오순이였다.

  다연은 자신보다 자기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시누이 오순과 같이 살게 되었다. 재수생인 오순은 공부를 핑계로 방은 물론 자기 속옷조차 빨지 않았다.

  그래도 다연은 불평하지 않았다. 막 결혼한 다연은 시댁과 남편에게 잘 보이는 싶었다. 자신이 열심히 하면 남편과 시누이가 알아줄 거라고 믿고 더욱 열심히 굴었다.

  1년이 가고 2년이 되기 전에, 다연은 차츰 결혼에 대한 회의가 들었지만 참았다. 결혼에 반대하는 친정엄마와 연을 끊고 선택한 사랑이었다.

  2년이 넘어가자, 다연은 점점 변하지 않는 현실에 지쳐갔다.

  남편 명호는 시누이 빨래를 하고 밥을 차려주는 일은 당연히 아내 몫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시누이 오순 역시 여전히 차려놓은 밥을 먹고 빨아놓은 옷을 입을 뿐이었다.

  다연은 회사에 다니면서 집안일과 시누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점점 황폐해졌다.

  다연이 참지 못하고 힘들다고 어렵게 입을 열면, 명호는 ‘여자 삶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할 뿐... 딱히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 무렵,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3년째 되던 해에는 우리 결혼생활에 희망이 보였어.”

  “희망? 나에 대한 사랑이 다시 살아난 거지? 그래 나 같은 남자가 없지.”

  다연은 여전히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남편을 한없이 측은하게 바라봤다.

  “민나가 생기면서 희망이 보였어. 민나가 결혼생활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줬어.”

  딸 민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연의 말투와 얼굴은 한층 부드러워졌다.

  “민나에 빠져서 결혼도 당신도 신경 쓰이지 않았어. 당연히 3년 차, 첫 번째 당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나도 의식하지 못한 체 어물쩍 넘어가버렸어.”

  명호는 섭섭했다. 딸 때문에 첫 번째 죽음의 고비를 피했다고 생각하니, 99%의 다크초콜렛을 먹은 것처럼 입안에 쌉싸름했다.

  명호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다시 물었다.

  “결혼 6년째. 그러니까 왜 두 번째 기회가 왔을 때, 왜 나한테 화살을 안 날린 거야?”

  다연 얼굴이 어두워졌다.

  “민나가 아팠으니까.”

  다연과 명호의 딸 민나는 예정일보다 하루 늦게 태어났지만, 저체증에 약한 아이었다.

  민나는 한번 감기가 걸리면 한 달 이상 약을 먹어야할 정도로 허약한 체질이었다. 병원에 중이염을 치료하러 갔다가 편도선염을 얻어오기 다반사였다.

  다연은 딸이 6살이 되기 전까지 허약한 민나를 돌보느라 다른 일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다행히 민나가 7살이 되자 살이 붙고 건강해져 다연 삶도 그때서야 여유도 찾을 수 있었다.

  명호도 다연이 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한 걸 아는 지라 딱히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 무렵엔 그도 약한 딸 때문에 위염이 생겨 약을 달고 다녔을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민나는 건강했다. 동남아인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뛰어다니며 밖으로 돌아다닌 탓이었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아직 저체중이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하는 것보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갔다. 아픈 사람에게는 먹을거리부터 자는 곳까지 신경 쓸 일이 끝도 없었다.

  그것뿐인가. 아픈 사람이 가진 예민함은 때론 그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십상이었다. 민나가 잔병 치르는 내내 다연도 예민해져 온 몸이 늘 부어있었다.

  민나가 건강해지면서 다연 몸의 붓기도 빠졌다. 다만, 긴장감이 풀리고 민나를 돌보느라 바닥난 체력으로 인해 한동안 만성피로에 시달려야했다.

  “두 번째 당신을 죽일 기회는 너무 힘들어서 생각할 여력이 없었어.”

  문이 열리고 드디어 커피숍에 손님이 들어왔다.

  그 손님 덕에 다연과 명호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책을 보던 준석은 고개를 들었다. 소파에 기댄 체 잠이 든 이은을 보자, 그는 침대에서 빠져 나와 얇은 담요를 아내에게 살며시 덮어줬다.

  이은이 곤히 자고 있다는 걸 확인한 준석은 조용히 일어나 침대가 아닌 문 쪽으로 향해 걸었다.

  화장실도 지나친 그는 닫힌 미닫이문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댔다. 문을 열려던 준석은 고개를 돌려 잠든 이은을 다시 확인하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준석은 익숙하게 복도를 지나 후미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낡은 공중전화가 놓여 있었다.

  준석은 한동안 공중전화를 보며 기싸움을 벌이다가 포기한 듯 다가와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곤 재빨리 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신호가 가기 무섭게 달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받았지만, 전화 너머로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준석은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미안해. 연락 못 해서. 사고가 있었어... 심한 거 아냐.”

  준석의 눈은 미안함과 아련함이 동시에 겹쳐졌다.

  “오지 마. 아내가 있어.”

  준석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말했지만, 그의 눈은 어느새 죄책감으로 물들어갔다.

 

  여자 손님은 커피를 들고 구석 테이블에 앉아 무선 이어폰을 낀 채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다연은 다시 명호 앞에 앉았다.

  “늘 오는 취준생이야. 저 손님 덕에 하루에 한 번은 커피 무조건 뽑아.”

  다연은 자신이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말을 이어나갔다.

  “결혼 9년 차, 세 번째 죽을 고비는 어떻게 넘겼는지 듣고 싶지?”

  다연의 물음에 명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의지를 표했다.

  “총을 들었으면 죽더라도 고(go)야.”

  “9년째 되니까 정말 당신이 미웠어. 왜 사람들이 사랑해서 결혼해 놓고 죽을 만큼 미워하는지 이해가 되는 해였지.”

  명호는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왜? 내가 그렇게 미웠지? 나도 힘들었어. 당신은 알바였지만, 나는 정규직 회사원이었다고. 일의 강도는 누구보다도 엄청 고단했다고.”

  명호는 다연이 이제 야속하게 느껴졌다.

  “맞아. 알바였어. 나 어린이집 새싹반 교사 보조원. 말이 보조원이지 아이들 똥 싼 거 치우고 밥 먹이고 재우고 청소하고 그런 일이었지. 그래도 잼 있었어. 몸을 힘들었지만 말야.”

  다연은 그때를 회상하며 살짝 미소를 보였다.

  명호는 뭔가가 생각난 듯 말했다.

  “수두 때문에 지금 이러는 거야?”

  민나가 유치원에게 다니게 되자 다연은 알바를 시작했다.

  복지관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월화목 삼일을 출근했다. 다연은 하루 종일 아이들 돌보느라 알바를 끝내고 오면 발이 부어 있었다. 그 부운 발로 어린이집에 가 민나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한 다연은 다시 집안일을 시작해야 했다.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저녁과 아침에 먹을 반찬과 국을 만들었다.

  그래도 다연은 좋았다. 아픈 민나 때문에 정신없이 보내던 과거에 비해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반년이 지날 쯤, 민나가 수두에 걸리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수두는 법정 전염병으로 다연은 민나가 나을 동안 어린이집에 출근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토요일과 일요일을 거치면서 민나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토요일에 민나를 데리고 병원에 간 다연은 민나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의사에게 물었다.

  “제가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저는 언제쯤 출근할 수 있나요? 의사선생님?”

  “민나 수두 전염성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어머님은 항체도 가지고 계시니, 월요일에 출근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었다. 다연이 딸의 수두로 인해 알바를 못 나온다고 하자, 복지관에서는 못마땅해했다.

  기쁨도 잠시, 의사는 민나에게는 수요일에 등교하기를 권했다.

  “왜죠? 선생님. 제가 출근할 수 있으면 민나도 학교 가도 되지 않을까요?”

  “다른 아이라면 월요일에 등교하라고 하겠지만, 아시다시피 민나가 워낙 몸이 약해서말입니다. 아직 완전히 회복도 안 된 상태에서 학교에 가면 또 다른 질병에 노출되니까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민나가 면역력이 낮은 아이라서요.”

  의사는 민나는 수요일에 학교에 가는 걸 권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다연은 어린이집에 출근이 가능했지만, 수두에 걸린 민나는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적어도 수요일까지.

  “민나아빠. 당신 하루만 휴가내서 월요일에 민나 돌보면 안 될까?”

  다연은 복지관에 월화목 알바를 했다.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은 누군가 민나 옆에 있어야 했다. 다연은 복지관에 양해를 구했지만 복지관에서는 월요일, 화요일 둘 다 나오길 희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두 명의 선생님이 최근 복지관을 그만 둔 상황이었다.

  그녀는 고심한 끝에 남편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안 돼.”

  “왜?”

  “당신은 알바지만, 나는 정규직이라고.”

  아내의 간곡한 부탁에도 명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절하면서 다른 말도 덧붙였다.

  “나도 당신이 돈 잘 벌면, 회사 그만두고 민나나 돌보고 싶다.”

  우르륵. 다연은 가슴 한쪽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다연은 명호를 보며 이렇게 쏘아 붙이고 싶었다.

  당신은 정규직이라서 연차내도 상관없지만, 난 알바야. 알바가 아기 아프다고 못 나온다고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

  다연은 나오려는 말을 꾹 참았다. 다연 주위엔 민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아팠고 친정엄마랑은 결혼하면서 연을 끊은 상태였다. 더구나 다연 친구들은 다들 일을 하느라 부탁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민나아빠. 부탁이야.”

  공허한 메아리가 거실 안에 울려 퍼져도 명호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다연은 월요일에는 아는 동생에게 민나를 맡기고 출근했고, 화요일에는 돌볼 사람이 없어 복지관의 눈치를 보며 집에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한 달 후, 다연은 복지관을 그만둬야했다. 복지관에서 새로 선생님들을 뽑고 다연의 자리를 없애버린 것이었다.

  명호가 다시 물었다.

  “민나 수두 때문에 내가 그렇게 미웠어? 그런데 왜 나한테 화살을 날리지 않은 거야?”

  다연의 얼굴은 무척 근엄할 정도로 진지했다.

  “치킨.”

  “치킨?”

  명호는 도통 모르겠다는 투였다.

  “내가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당신이 치킨을 그것도 두 마리나 사 왔잖아. 그때 알았지. 이 사람이 아직 날 신경 쓰고 있구나하고.”

  명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내가 술 잔뜩 취해서 사온 양념이랑 파닭 말하는 거지?”

  “그 치킨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당신이 순간 너무 사랑스럽게 보일 정도였다니까. 근데 왜 그 때 치킨을 두 마리나 사가지고 왔어?”

  명호는 말없이 아이스커피에 입을 댔다.

  그날 치킨은 명호가 산 게 아니었다.

  명호는 부장에게 이끌려 부장동생이 오픈한 치킨집에 끌려갔다. 부장은 동생 가게의 매상을 올리기 위해 모든 직원에게 닭 두 마리씩을 돌렸다.

  명호는 다연의 눈빛과 마주치자 가슴이 뜨끔했다.

  부장님이 사줬다고 하면...

  명호는 화살이 커피숍 벽을 뚫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걸 보고 놀라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민나아빠?”

  아내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뜬 명호는 말짱한 자신의 가슴을 보고 안도했다.

  그는 어떻게든 아내에게 치킨의 진실을 숨겨야 했다.

  “회사 근처 오픈한 닭집인데 하도 맛있어서. 맞아. 당신 주려고... 두 마리나 샀지. 두 마리나.”

  명호는 아내를 속이기 위해 젠체했다.

  “그 닭이 일주일 동안 날 행복하게 만들었어. 더구나 당신, 바로 다음날 일주일동안 제주도로 출장 가서 얼굴 볼 일도 없었거든.”

  명호는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날 살려준 게 치킨이었네. 나는 치킨만도 못한 놈이었던 거야. 그래도 남편인데...

  아내의 말을 들을수록 명호는 섭섭함이 엄청 밀려왔다.

  “그리고 어머니도 좋은 분이었고. 시아버님이랑 시누이를 보면 당신이랑 이혼해야지 하다가도 시어머니를 보면 이혼 생각이 사라지곤 했으니까.”

  명호와 결혼하기 위해 친정엄마와 연을 끊은 다연에게 시어머니는 따뜻한 품이었다.

  늘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시어머니 때문에, 다연은 남편 명호가 처절하게 미웠지만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어머니는 안 계셨다. 지금은 늘 의무만 강요하는 시아버지와 시누이만 시댁에 존재했다.

  명호와 다연을 연결하는 끈끈한 줄이 하나 사라진 셈이었다.

  명호도 잠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늘 아버지를 대신해 자신과 동생을 키우느라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 그러면서도 늘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신 어머니.

  명호는 그런 어머니 덕에 자신이 다시 살 기회를 얻은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명호가 3번째 죽을 기회에서 살아난 건, 명호 자신 때문이 아니라 치킨과 어머니 때문이었다.

  “4번째는 어떻게 지나간 거야? 미나? 아님 어머니? 아니면 치킨?”

  명호는 3년 전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며 아내 다연에게 물었다.

  다연은 아련하게 남편을 봤다.

  “아니. 측은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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