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일반/역사
설(雪)울
작가 : 몽글
작품등록일 : 2019.9.23

2019년 서울, 계절과 맞지 않는 흰 눈이 내린다. 그 눈을 맞은 설이 고려로 타임슬립하여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를 만나 벌어지는 일들이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유래를 설명한다)

 
설(雪)울 下 結
작성일 : 19-10-23 20:46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1806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설(雪)울’ 下

 작가 신우유

 

 이 글은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역사를 바탕으로 쓴 픽션입니다. 총 38년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지만, 이 소설 속에선 10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배경음악으로 'various artists-not alone(정국테마)'를 꼭 들어주시고 '三十 一' 씬부턴 'various artists-flying(태형테마)를 꼭 들어주세요!

 

 

 

 

 

 

 

 

 

 

 

 二十.

 

 

 

 

 다음날. 새벽에 내렸던 눈은 어느새 다 녹아 없어져버렸고 동시에 단의 옆에 누워 잠을 청했던 설도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잠에서 깬 단이 설이 사라진 것을 알고 처소 밖으로 뛰어 나갔다.

 

 같은 시각. 눈을 뜨자마자 함께 잠들었던 단은 없고 낯익은 방 안에 두리번거리다 바깥으로 나와 제가 나온 곳이 ‘만령전’인 것을 눈치 챈 설이었다. 잠든 사이에 또 이곳으로 와버린 것 같았다.

 

 이번엔 또 몇 년이나 흘렀을까. 축 쳐진 어깨로 한숨을 쉬며 처소로 걸음을 옮기자 저 멀리서 달려오는 걸음소리에 뒤를 돈 설이었다.

 

 

 

 

 

 “다행입니다. 사라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단아.”

 

 “일어났는데, 옆에 없어서. 또 사라지신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달려온 단이 설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고 새빨개진 얼굴로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끝내 눈물을 흘리는 단에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내는 설이었다.

 

 

 

 

 

 

 

 “괜찮아. 나 안 사라졌어. 여기 있어.”

 

 “사라지지 마요. 설누이.”

 

 

 

 

 설이 또 눈과 함께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단은 설의 모습을 보고 안심을 해 눈물을 흘렸고 그런 단을 바라보던 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설이 또 눈과 빛과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아니, 언젠간 제 곁에 없을 설을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단이었다.

 

 

 

 

 “나랑 같이 있어요. 제발.”

 

 

 

 

 

 

 

 

 二十 一.

 

 

 

 

 

 공민왕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후궁들은 폐위되어 유배 보내졌고 궁 밖으로 피신한 덕분에 잡히지 않았던 설이었다. 하지만 단의 눈물을 닦아 달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관군들이 단과 설을 떨어뜨리더니 설의 양팔을 잡아 어디론가 데려갔고 그를 막는 단이었지만 여럿 관군들을 혼자 막아서기엔 역부족이었다.

 

 회경전 앞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여있었고 그 가운데에 설을 데려다놓은 관군들이었다. 그들은 끌고 온 설의 의복을 막무가내로 벗겼고 끝내 속속곳 차림으로 마루판자에 주저앉은 설이었다.

 

 

 

 

 

 

 

 

 

 “.....”

 

 “마마! 설비마마!”

 

 

 

 

 그를 본 단이 소리를 지르며 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를 몸으로 막아내는 관군들에 소용없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인 단을 진정시키려 눈을 마주쳐 고개를 끄덕인 설이었고 설의 끄덕임에 한 발 물러선 단이었다.

 

 설은 고개를 들어 차분히 주변 상황을 살폈고 곧 관군들 사이로 걸어 나오는 왕우 전하와 그 옆에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였다. 설에게로 다가오는 왕우 전하의 눈빛이 불안해 보여 저도 모르게 꿇었던 무릎을 피고 다가간 설이었고 그를 팔로 막아 설을 밀어 넘어뜨린 남자였다.

 

 

 

 

 “폐비가 어디 우왕 폐하께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냐?”

 

 “폐하?”

 

 

 

 

 설이 궁을 비웠을 동안, 어린 왕우 전하가 폐하가 된 듯 했고 어린 왕우를 꼭두각시 왕의 자리에 앉힌 저 나이든 남자는 이인임인 것을 눈치 챈 설이었다.

 

 그리고 이인임이 설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치자 무릎 꿇고 있던 설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관군들이었다.

 

 

 

 

 “이 자를 당장 강화도로 유배 보내 거라.”

 

 “예.”

 

 “안 된다. 그건 아니 된다!”

 

 

 

 

 관군들이 설을 억지로 잡아 일으키자 한 발 물러섰던 단이 관군들을 밀어내고 설의 앞을 막아섰고 그 모습을 본 이인임이 눈썹을 올리며 이성계에게 물었다.

 

 

 

 

 “이성계 장군님께선 설비와 대체 어떤 사이시기에 유배는 안 된다 하십니까? 비에게 연정이라도 품으신 겁니까?”

 

 “내가 설비를”

 

 “혹 그게 사실이라면 설비는 물론이고 왕의 여인을 탐한 장군님께서도 무사하지 못 하실 텐데요.”

 

 

 

 

 연정을 품었다고 말한다면 설과 이성계는 살아남지 못 할 것이고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면 설은 유배를 보내질 것이었다. 그랬기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 하던 단이 애처롭게 설을 쳐다봤고 눈이 마주친 설이 눈물이 맺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단 역시 고개를 숙여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인임 합하가 아닌 폐하께서 직접 설비에게 왕 명을 내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폐하.”

 

 “그것도 좋겠습니다. 폐하. 설비에게 명을 내리시지요.”

 

 

 

 

 이성계의 말에 태연히 어린 왕우 폐하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 이인임이었고 폐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는 것은 이미 이인임의 권위가 폐하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인임이 명을 내리라 말하자 여전히 바닥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폐하였다.

 

 

 

 

 “설비를 제 후궁으로 들이겠습니다.”

 

 “예?”

 

 

 

 

 우왕 폐하의 말에 깜짝 놀란 설이 고개를 들어 폐하를 쳐다봤고 이인임과 단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폐하를 바라봤다.

 

 

 

 

 “폐하. 고려 법도에 의하면 재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집안도 모르는 이런 계집을”

 

 “설비는 천인입니다. 집안 모를 계집은 아니지요.”

 

 

 

 

 폐하의 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인임이 화난 얼굴로 폐하를 쳐다봤고 이인임의 말을 끊고 고개를 들어 꿋꿋이 말씀하시는 폐하였다.

 

 

 

 

 “천인은 다 뜬 소문인데, 어찌 그러십니까?”

 

 “선왕께서 하늘에서 떨어진 설비를 직접 보아 비로 들였다 하셨습니다. 그 후, 고려 일이 모두 잘 풀렸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도 설비를 제 옆에 두겠습니다.”

 

 

 

 

 많은 관군들과 관료들 앞에서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낸 우왕 폐하에 모두들 놀랐고 궁 안에 많은 사람들이 듣고 본지라 왕 명을 물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이인임이었다.

 

 

 

 

 “설비는 계속 설비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폐하.”

 

 

 

 

 이인임의 힘으로 고작 열 살의 나이에 왕의 자리에 앉은 우왕이 자신 때문에 큰 용기를 낸 것에 감동을 받은 설이 폐하의 명을 받들었고 곧 고개를 들어 관군들 사이에 서 있는 단을 바라봤다. 그리고 설과 눈이 마주치자 희미하게 미소 짓는 단이었다.

 

 

 

 

 

 

 

 二十 二.

 

 

 

 

 그 후, 이인임은 권력의 중심을 잡게 되었고 또 그가 전국 토지를 불법적으로 수탈하고 양민을 노비로 잡아들이는 등 봉건 영주 수준의 토지와 노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또한, 백성 뿐 아니라 관료들의 토지까지 강탈했고 주인이 땅을 내놓지 않으면 수정목(무풀레 나무)으로 만든 몽둥이로 두들겨 패 ‘수정목 공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는 소문이 궁 안에 돌았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이인임 일파에도 이인임의 권력에 맞설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덕과 함께 저잣거리로 나온 설이었다. 설에겐 덕과 함께 궁 밖으로 나온 기억이 없었지만, 설과 저잣거리를 구경하는 것이 꽤나 익숙한지 설을 이끌며 길을 다니는 덕이었다.

 

 

 

 

 

 “마마. 오늘도 다점부터 가실 것이지요?”

 

 “오늘도?”

 

 “예. 마마께서 항상 다점부터 가셔서 꽃차를 마시셨잖아요.”

 

 “아. 그랬나.”

 

 

 

 

 다점은 단과 왔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저잣거리 어디에 위치했는지도 몰랐던 설을 데리고 서둘러 저잣거리 구석에 있던 다점에 들어서는 덕이었고 두 번째 방문이지만, 덕을 따라 어색하게 들어서는 설이었다.

 

 

 

 

 

 “꽃차 두 잔 주십시오.”

 

 “예.”

 

 “마마께서 사주실 때 아니면 제가 이렇게 귀한 꽃차를 언제 마셔보겠어요?”

 

 

 

 

 

 간만에 나온 저잣거리에, 간만에 마시는 꽃차에 기분이 좋은 덕이 웃으며 설에게 말했고 덕이 기분 좋은 것 같아 덩달아 흐뭇해져 말없이 미소 짓는 설이었다. 곧 꽃잎이 예쁘게 띄워진 꽃차가 나왔고 그의 향을 맡으며 한 모금 마시는 설과 덕이었다.

 

 

 

 

 

 “꽃차는 몇 번을 마셔도 향이 무척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꽃차의 향을 맡는 설이었고 문득 같이 왔던 단이 생각이 났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 설이었다.

 

 그리고 그때 저잣거리와 이어진 한 고샅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돌린 덕과 설이었다.

 

 

 

 

 

 “저기 무슨 일 있나 봅니다.”

 

 “그런가 봐요.”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고샅길을 바라보다 갑자기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린 덕이었고 찻잔이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란 설이 덕을 쳐다봤다.

 

 덕은 겁에 질린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고샅길에 모인 사람들 사이로 곧 중년의 여성과 그의 아들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낯선 사내들에 의해 질질 끌려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 훈아!”

 

 

 

 

 그리고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게로 뛰어가는 덕이었고 덕을 따라가려다 바닥에 깨진 찻잔을 보곤 주머니를 꺼내 엽전을 넉넉히 식탁에 올려두고서야 덕을 따라 나선 설이었다.

 

 

 

 

 

 “어머니! 훈아!”

 

 “덕아!”

 

 “누이..”

 

 “무슨 일이십니까? 왜 저희 가족을 데려가십니까?”

 

 “넌 또 무엇이냐? 이 집 여식인가?”

 

 “예. 저희 어머니랑 동생입니다. 대체 왜 그러십니까?”

 

 “그럼 너도 같이 가야겠구나.”

 

 

 

 

 중년의 여성과 어린 사내아이가 덕의 어머니와 동생이었는지 그들을 데려가려는 사내들을 막아선 덕이었고 그런 덕까지 잡아버린 사내들이었다. 그러자 잡힌 옷 덜미를 뿌리치며 덕이 되물었고 사내들 뒤로 두 명의 대감들이 걸어 나와 대신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희가 지내는 집과 농사를 짓는 토지. 누구의 것이냐?”

 

 “집과 토지는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아니다. 이인임 합하의 것이다.”

 

 “예? 그게 무슨..”

 

 “이 길에 있는 모든 집과 토지들은 이인임 합하의 것이니라.”

 

 

 

 

 

 덕이의 질문에 당당하게 말하는 대감이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설이 소문을 떠올렸다.

 

 이인임이 전국 토지를 불법적으로 수탈하고 양민을 노비로 잡아들이는 등 봉건 영주 수준의 토지와 노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또한, 백성 뿐 아니라 관료들의 토지까지 강탈했으며 주인이 땅을 내놓지 않으면 수정목(무풀레 나무)으로 만든 몽둥이로 두들겨 패 ‘수정목 공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는 소문을.

 

 또, 이 대감들이 이인임의 수하인 것을 눈치 챈 설이었고 이인임을 거론하며 양민들을 데려가려는 그들을 보니 소문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대감들의 말에 덕이 당황해 어떠한 말도 잇지 못했고 대감들의 지시에 사내들이 덕의 가족과 덕을 데려가려하자 그 앞을 막아선 설이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대감들이 설의 행색을 살피며 설에게 물었고 설을 대신해 덕이 대답했다.

 

 

 

 

 

 “아씨는 누구십니까?”

 “아씨껜 볼 일이 없으니 가던 길 가시지요.”

 

 “아씨가 아니라 설비 마마십니다. 마마.”

 

 

 

 

 

 귀한 집 여식이 아닌 왕의 여인이라고 하니 절로 고개를 숙이더니 곧 조심히 설을 얼굴을 살피다 누군지 생각이 났는지 박수를 치며 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대감들이었다. 설이 출신도, 신분도 모르는,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여인이라는 것을 아는 듯 했다.

 

 

 

 

 

 “아! 그 천(天)인!”

 “맞네. 천인 마마 아니십니까?”

 

 “덕이는 저를 보필하는 궁녀입니다. 그러니 데려가실 수 없습니다.”

 

 

 

 

 덕을 잡은 사내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 덕을 자신의 뒤로 숨기는 설이었고 그에 잠깐 당황한 듯, 대감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곧 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곤 덕의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고 또 다시 설이 그들의 앞을 가로 막았다.

 

 

 

 

 “궁녀라면 저희도 잡아갈 수 없겠죠. 마마께서 데려가십시오. 그럼 저희는 이만.”

 

 “그들도 두고 가시지요.”

 

 “마마께서 관여하실 일이 아닙니다. 갈 길 가십시오.”

 

 “토지를 불법적으로 수탈하고 양민을 노비로 잡아들인다. 거의 봉건 영주 수준의 토지와 노비들을 보유하고 있다던데.”

 

 “그게 무슨..”

 

 “아. 물론 그저 들은 소문입니다.”

 

 

 

 

 

 이들을 만나기 전까진 설 역시도 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들을 보니 궁 밖의 백성들은 이 소문을 소문이 아닌 현실로 마주치고 있는 듯 했다. 설의 말에 당황해 굳어진 대감들이었고 그들의 반응에 태연한 얼굴로 말을 계속 잇는 설이었다.

 

 

 

 

 

 “백성 뿐 아니라 관료들의 토지까지 강탈하고 주인이 땅을 내놓지 않으면 몽둥이로 두들겨 패 수정목 공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던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

 

 “또, 그 소문들의 주인공이 이인임 합하셨습니까?”

 

 

 

 

 

 설의 말에 얼굴이 굳어지다 못 해 대감들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번 더 되묻는 설이었다.

 

 

 

 

 

 “아님 이인임 합하의 이름을 등에 지고 대감들께서 꾸미는 일이십니까?”

 

 “.....”

 

 

 

 

 

 설의 물음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 하는 대감들이었고 그에 후자임을 알아챈 설이 한 쪽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이인임 합하께서 이 일을 아시게 된다면, 혹은 다른 높으신 분이 이 일을 아시게 된다면 어찌 될까요?”

 

 “이미 압니다.”

 

 “합하!”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걸어왔고 대감들의 말에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걸어와 설의 앞에 선 이인임이었다.

 

 

 

 

 “내가 수하들에게 시킨 일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

 

 

 

 

 뒷짐을 지고 설의 앞에 선 이인임이 설을 내려다보며 물었고 이인임을 등에 업은 수하들이 벌였을 일이라고 생각한 설이 당황해 대답하지 못 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묻는 이인임이었다.

 

 

 

 

 “응?”

 

 “이 자들은 불법적으로 토지를 수탈하고 양민을 노비로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관료들을 수정목으로 두들겨 패 빼앗고 있다고요.”

 

 “그것들이 사실이라고 한들, 그것들을 안다고 한들 고작 비인 네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폐하께 알리면”

 

 “폐하?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그 폐하 말이냐?”

 

 “.....”

 

 

 

 

 

 분하게도 이인임의 말처럼 설은 이것들이 사실이라고 한들, 이것들을 알고 있다고 한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어린 폐하께 알린다고 한들 폐하를 대신해 이인임의 명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설비는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설의 말에 설을 하찮게 쳐다보며 나직이 말을 잇는 이인임이었고 이 대감들처럼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설이 그저 입술을 깨물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처량해진 스스로에 설이 고개를 숙였고 그때 누군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나와 설의 앞에 섰다.

 

 

 

 “대체 무엇 하는 것입니까?”

 

 “이성계 장군님.”

 

 

 

 

 익숙한 목소리와 사람들에 의해 들리는 그의 이름에 설이 고개를 들었고 동시에 대감들과 이인임에게서 설을 보호하듯이 설보다 한 발자국 앞에 선 이성계였다.

 

 

 

 

 “제가 알게 된 한 묵인할 수 없습니다. 이인임 합하.”

 

 

 

 

 이성계는 이인임과 그의 수하들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말을 잇지 못 하는 이인임 일파였다.

 

 그리고 설 역시 이성계의 뒤에 선 채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지켜주겠다는 듯이 남몰래 설의 손을 잡은 단이었으니까.

 

 

 

 

 

 

 

 

 二十 三.

 

 

 

 

 

 분명 이인임은 수하들에게 시킨 일이라고 설에게 말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제 수하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토지를 불법적으로 수탈하고 양민을 노비로 잡아들이고 백성 뿐 아니라 관료들의 토지까지 강탈하는 등 그 동안의 모든 일들이 이성계와 최영 장군의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제 수하들이 저를 등에 업고 벌인 일이었다는 사실을 토한 이인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인임의 수하인 임견미와 염흥방은 유배 보내졌으며 이인임은 제일 가까웠던 수하 둘을 잃고도 여전히 궁 안에서 폐하 옆에 머물렀다.

 

 원래대로라면 천인이라는 이유로 회경전 정사에 참여하는 설이겠지만 폐하 옆을 더 각별히 지키는 이인임 때문에 더 이상 관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 하게 된 설이었다.

 

 대신, 정사가 있는 날 술시(;19-21시)에 임천각에서 만나기로 한 왕우 폐하와의 약조가 있었다. 정사가 있던 오늘 역시 저녁 식사를 하고 임천각으로 온 설이었다.

 

 

 

 

 “폐하. 오늘은 평소보다 오래 걸리셨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조민수 장군과 이성계 장군이 군사들을 이끌고 명일(;내일) 요동으로 떠나기로 정해졌습니다.”

 

 “요동이요?”

 

 “그리고 이성계 장군이 비에게 이것을 전해주라 하시더군요.”

 

 

 

 

 제 쪽에 있던 서찰을 설에게 건네는 폐하였고 서찰을 받아든 설이 서찰을 펴보는데, 한자로 써져 있어 읽지 못 했다. 설이 서찰을 가만히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가 글씨를 못 읽는다는 것을 눈치 채곤 웃으며 대신 읽어주는 폐하였다.

 

 

 

 

 “비는 진짜 천인 맞습니까?”

 

 “아. 다 한자여서..”

 

 

 

 

 천인이 맞냐며 설을 놀리는 폐하였고 그에 어색하게 웃는 설이었다.

 

 

 

 

 

 “‘진시 삼각산’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진시 요?”

 

 “예. 용들이 날며 강우를 준비할 때이지요. 해가 뜰 시간입니다.”

 

 “아. 해 뜰 시간.”

 

 

 

 

 웃으며 시간을 알려주는 어린 왕우 폐하였고 덕분에 정확한 시간을 알게 된 설이 웃으며 대답했다.

 

 

 

 

 

 

 

 

 二十 四.

 

 

 

 

 지난밤에 덕에게 부탁해놓은 마차를 타고 해가 뜨기 전, 삼각산으로 향한 설이었고 삼각산 정상에 도착하자 푸르스름했던 새벽하늘에 해가 뜨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리자 저 멀리 보이는 단이었고 그에 치맛자락을 붙잡고 뛰어가는 설이었다.

 

 

 

 

 “천천히 오십시오. 넘어지겠습니다.”

 

 “일찍 왔네요?”

 

 “예. 한시라도 빨리 누이를 보고 싶어서요.”

 

 

 

 

 설의 물음에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하는 단이었고 그에 괜히 부끄러워진 설이 단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빨갛게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며 나란히 선 설과 단이었다.

 

 

 

 

 “금일 요동으로 떠납니다.”

 

 “들었어요. 요동은 많이 멀어요?”

 

 “멉니다. 만리(;먼 거리)이지요.”

 

 “멀 구나.”

 

 

 

 

 단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설은 먼 길을 떠날 단이 걱정됐다. 물론 죽지 않고 돌아올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디 다치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고개를 돌려 단의 옆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설이었고 그 시선을 느낀 단이 고개를 돌려 설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어 설에게 말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사라지지 마시고.”

 

 “.....”

 

 “절 기다려주세요. 설이누이.”

 

 

 

 

 

 

 

 

 二十 五.

 

 

 

 

 이인임의 후원을 받아 32대 왕위에 오른 왕우 폐하였지만 곧 조정에 왕우가 공민왕이 아닌 신돈과 반야의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소문 때문에 자신을 노리는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할까 불안해하는 어린 왕우였다.

 

 정사가 끝나고 임천각에서 만난 설이 불안함에 떠는 왕우를 달랬다.

 

 

 

 

 “누군가 저를 죽일 것입니다. 전 죽을 거라고요. 저 너무 무섭습니다.”

 

 “폐하께선 죽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폐하를 죽이지 않아요.”

 

 “정말입니까? 설비.”

 

 “저 선왕께서도 믿으신 천인입니다. 그러니 절 믿으세요.”

 

 “예. 알겠습니다. 설비.”

 

 

 

 

 설비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지만 여전히 무서운 어린 왕우가 설에게 기대어 울었고 폐하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는 설이었다. 아무도 왕우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차후에 유배를 가긴 하지만 그래도 죽진 않는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염없이 속으로만 얘기하는 설이었다.

 

 

 

 

 

 

 

 

 

 二十 六.

 

 

 

 

 이성계 장군과 조민수 장군이 5만의 고려 군사를 이끌고 먼 길을 떠난 지 이미 여러 밤이 지났고 관료들의 정사에 참여할 수 없어 무료하고 심심하던 때였다.

 

 임천각에서 만나기로 약조했던 술시(;17-19시)보다 조금 더 일찍 설을 부른 폐하였고 덕이를 따라 서둘러 임천각으로 향한 설이었다.

 

 임천각에 들어서자 벌떡 일어난 왕우가 불안한 눈빛으로 설에게 전갈을 내보였고 설이 글을 읽지 못 하는 것을 알아 내용을 대신 읽어 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성계 장군이 제게 보내온 전갈입니다.”

 

 “뭐라고 써져 있습니까?”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 진주하였으나 큰비를 만나 강물이 범람하고 사졸 중 환자가 발생해 요동까지는 많은 강을 건너야 하기에 더 이상 군사를 진군시키지 않고 회군하겠다는 내용입니다.”

 

 “.....”

 ‘위화도. 회군.’

 

 

 

 

 전갈의 내용을 들은 설은 너무 놀라 잠깐 동안 말을 잇지 못 했고 곧 정신을 차리고 불안해하는 왕우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무어라 답하셨습니까?”

 

 “과섭찰리사 김완을 보내 진군하라 명했습니다. 하지만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인임 합하와 최영 장군의 뜻이었지요.”

 

 

 

 

 아무리 왕우가 폐하일지라도 이인임의 후원으로 왕위에 올랐고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꼭두각시 왕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조정에서 권력이 센 이인임과 최영의 뜻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어린 왕우 폐하였다.

 

 어리다는 이유로 주변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 왕임을 스스로 느껴 우울해진 왕우와 곧 다가올 미래를 알아 침착해진 설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임천각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나온 설이 살랑이는 바람소리와 소쩍새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너무나도 평화로운 궁궐을 둘러봤고 그녀의 차분한 시선 끝은 맑고 캄캄한 하늘이었다.

 

 

 

 

 

 

 

 오늘따라 까만 하늘에 걸린 심오한 달이었다.

 

 

 

 

 

 

 

 

 

 二十 七.

 

 

 

 

 

 며칠 후, 답답한 마음에 폐하께 말씀을 드리고 아침 일찍이 삼각산에 오른 설이었고 이번엔 남경이 아닌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멀리 어디선가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오고 있을 이단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개경 그 너머를 바라보는 설이었고 인기척에 뒤를 돌자 반가운 얼굴이 서 있었다.

 

 

 

 

 “언제 왔어요?”

 

 “방금 막 왔습니다.”

 

 

 

 

 뒤를 돈 설이 깜짝 놀라며 묻자 헛기침을 하며 웃는 단이었다. 오랜만에 본 설이 반가워 웃는 단이었지만 야윈 단의 얼굴과 낡아진 군복이 그동안의 고생을 보여주는 듯 해 괜히 마음이 아픈 설이었다.

 

 

 

 

 “개경으로 바로 가지 않으시고 왜 여길 왔어요?”

 

 “누이가 여기 있을 것 같아 왔는데, 있네요.”

 

 

 

 

 예쁘게 웃는 단과 동시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바람에 흩날린 나뭇잎이 설의 머리카락에 떨어졌다. 그러자 곧 조심스레 손을 뻗어 설의 머리카락에 걸린 나뭇잎을 잡는 단이었고 같이 손을 뻗어 단의 뺨을 감싼 설이었다.

 

 

 

 

 

 “.....”

 

 “.....”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설에 놀란 단이었지만 자신이 보고 싶었고 지금 이렇게 만나 기뻐 우는 것이라 생각해 괜히 더 장난스럽게 설에게 말했다.

 

 

 

 

 “못 본 사이 또 저만 나이가 든 것 같습니다.”

 

 “.....”

 

 “누이는 한결같이 고우십니다.”

 

 

 

 

 단의 장난스런 말에도 설의 슬픈 눈은 여전했고 설이 다른 이유로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단이었다.

 

 곧 궁 안에 피바람이 몰아칠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설은 알고 있는 역사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다는 것에 무섭고 슬펐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단의 뺨을 감싼 채로, 눈물이 맺힌 채로 그에게 말했다.

 

 

 

 

 “곧 궁 안의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고 그 사람들을 죽이게 될 거예요. 또, 그 죄책감에 힘들 거예요.”

 

 “제가 군사들을 이끌고 다시 요동으로 돌아가길 바라십니까?”

 

 “.....”

 

 “누이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궁으로 간다면 분명 궁 안의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고 단은 그 죄책감에 힘들어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과거였고 현재였고 역사였다. 분명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막을 수 없는 설이었다.

 

 

 

 

 “제가 전에 말했잖아요. 자신을 믿으라고.”

 

 

 

 

 슬픈 얼굴을 한 설이 나직이 말했고 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단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설과 단이 함께 저 멀리 개경을 내려다봤다. 그들의 시선 끝에 머문 고려의 궁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곧 다시금 들리는 설의 물음에 나직이 대답하는 단 아니, 이성계 장군이었다.

 

 

 

 

 “혹 위화도에서 오셨습니까?”

 

 “예.”

 

 “그럼 이것이 위화도회군일까요?”

 

 “위화도회군..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단의 차분한 대답과 동시에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눈이 내렸고 깜짝 놀란 단과 설이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번쩍하는 빛에 잠깐 눈을 감았다 뜬 단이 다급히 설을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이미 설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二十 八.

 

 

 

 

 

 

 

 설이 눈과 빛과 함께 사라졌을 동안, 이성계의 군사들로 인해 쑥대밭이 된 궁이었고 왕은 폐위되고 그를 지지했던 가문들 역시 관복을 벗어야만 했다. 궁 안의 많은 것들이 바뀌고 변했다.

 

 얼마 후, 눈을 뜨자 너무나도 익숙한 방 안이었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만령전인 것을 확인하는 설이었다. 만령전으로 돌아왔지만 그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우연히도 만령전 주변을 천천히 걷던 단이 설을 보았고 곧장 달려가 설을 끌어안았다. 사실 설이 사라지고 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입궁하여 만령전 주변을 산책한 단이었다.

 

 

 

 

 

 

 “영영 안 돌아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단아.”

 

 

 

 

 행여나 사라진 설이 영영 돌아오지 못 할까봐 매일을 가슴 졸이며 그녀를 기다린 단이었고 나타난 설을 놓치지 않으려 더 세게 껴안았다.

 

 

 

 

 

 

 

 二十 九.

 

 

 

 

 설은 자그마치 한 해 동안 사라졌었고 또 그녀의 공백을 아는 것은 단이 유일했다. 설이 사라졌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또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이(李)씨 가문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위화도 회군하여 궁을 쳤고 32대왕 우왕과 33대왕 창왕이 이성계의 가문에 의해 폐위되어 34대 왕요가 왕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성계 가문의 꼭두각시 왕이었을 뿐이었고 고려의 마지막 왕이 될 것이었고 고려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34대 왕이자 고려의 마지막 왕인 왕요와 이성계가 함께 한 회경전에 설을 데리고 온 이성계였다.

 

 

 

 

 “그럼 폐위된 왕들은 어찌할까요?”

 

 “후에 화가 없으려면 죽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폐위된 우왕과 창왕과 그들의 가문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성계의 힘으로 왕의 자리에 앉은 왕요는 이성계의 의견을 물었고 죽이는 것이 낫지 않겠냐 답하는 이성계였다. 하지만 우왕과 창왕 둘 다 아직 너무 어렸고 역사의 기록된 바론 강화도로 유배를 간 것이 생각이 나 입을 연 설이었다.

 

 

 

 

 “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세요.”

 

 “폐위된 두 분은 아직 어리십니다. 그러니 죽이기보다 강화도로 유배를 보내는 것이 어떠할까요?”

 

 “장군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가문을 모두 함께 보내는 것이지요.”

 

 

 

 

 폐하와 이성계가 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그리하여 우왕과 창왕 그리고 이인임을 포함한 그들의 가문 모두를 죽이지 않고 강화도로 유배 보내는 것으로 결정됐다.

 

 

 

 

 

 

 

 三十.

 

 

 

 

 그리고 며칠 후. 강화도로 유배를 가기 하루 전날 밤, 설은 폐하께 간곡히 부탁을 드려 몰래 왕우를 만났다. 아무리 왕손일지라도 폐위가 되어 유배 보내질 어린 아이일 뿐이었는지 오랜만에 본 왕우의 얼굴이 많이 야위어 걱정하는 설이었다.

 

 

 

 

 “마마.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죽습니까?”

 

 “안 죽습니다. 그냥 멀리 떠나는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설비 마마.”

 

 “예. 저도 감사했습니다.”

 

 

 

 

 어린 우왕이 고개를 숙이며 설에게 인사를 했고 이 인사가 그들의 마지막임을 안 설이 눈물을 참았다. 왕손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억지로 왕의 자리에 앉아 그 무겁고 버거운 왕의 무게를 견디며 매일을 목숨의 위협을 받아 무서움에 떨었을 어린 우왕과 창왕이 안타까운 설이었다.

 

 만령전으로 돌아온 설은 내일 폐위된 우왕과 창왕 그리고 그들의 가문이 유배를 가기에, 점점 고려의 끝이 보이기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고 그렇게 한참을 뜬 눈으로 밤을 지세다 새벽이 늦어서야 잠에 들었다.

 

 그리고 잠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끄러운 수레 소리에 눈을 뜬 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앞은 여전히 캄캄했고 두 손과 발은 묶여 있었으며 입엔 천을 물어 몸을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다. 설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귀로 소리를 듣는 것 뿐 이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가는 중인지 말굽 소리와 바퀴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수레에 짐을 싣고 먼 길을 떠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누군가에 의해 수레에서 꺼내지는 설이었고 곧 설의 손과 발을 묶었던 끈이 풀리며 눈과 입을 막았던 천도 풀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뜬 설의 눈앞에 서 있는 이인임이었다.

 

 

 

 

 “지금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설은 내게 예를 갖추 거라.”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보는 설이었고 설과 이인임이 있는 이곳은 처음 보는 초가집 마당이었다. 오늘 강화도로 유배를 가기로 한 이인임이 있는 것이라면 이곳은 강화도가 분명했고 밤새 설을 납치해 이곳으로 함께 데려온 것 또한 분명했다.

 

 두 손을 등 뒤로 하여 뒷짐을 지곤 설을 쳐다보는 이인임에 어이없어 대답하는 설이었다.

 

 

 

 

 “우왕이 폐위되어 유배를 왔으니 이인임 합하도 더 이상 합하가 아닌데, 어찌 비인 제가 예를 갖추어 합니까?”

 

 “자네 말대로 자네를 비로 삼았던 우왕은 폐위됐으니 자네도 더 이상 비가 아니지.”

 

 “.....”

 

 “그러니 내게 예를 갖추 거라.”

 

 “싫습니다.”

 

 

 

 

 

 설을 비로 삼았던 공민왕과 우왕 모두 폐위가 됐으므로 더 이상 설은 비가 아니었다. 단지 현재 왕요를 왕의 자리에 앉힌 이성계의 힘으로 여전히 만령전에 머물고 궁에서 대우를 받는 것 뿐 이었기에 그것을 아는 설은 이인임의 말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네가 나를 유배 시켰다지?”

 

 “아니, 그건”

 

 “왕요와 이성계를 꼬드겨 나를 강화도로 유배를 보내? 알고는 있었지만. 똑똑한 계집이군.”

 

 

 

 

 설이 왕과 이성계를 꼬드겨 그들을 유배시킨 것으로 아는 이인임은 설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고 곧 헛웃음을 지으며 설을 쳐다봤다.

 

 

 

 

 “너와 이성계 장군의 관계는 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각별한 사이임에 분명하지.”

 

 “.....”

 

 “너를 납치해왔으니 곧 이성계가 널 데리러 올 것이다. 그럼 그때 내 손으로 그를 죽일 것이야.”

 

 

 

 

 이인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가집 주변에 숨어있던 자객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인임 역시 날카로운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검을 설에게 가까이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검엔 독약이 묻어있어 살짝 베이기만 해도 온몸에 독이 돌아 하루를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럼 천하의 이성계라도 죽음을 면치 못 하겠지.”

 

 

 

 

 날카로운 검의 끝을 스쳐 지나가는 이인임의 손이었고 그를 가만히 지켜보는 설이었다. 자신을 강화도로 유배를 보낸 것이 괘씸하여 설을 납치했다는 것은 핑계였고 그의 목적은 설이 아닌 이성계였다. 천적이었던 이성계 장군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죽이기 위해 설을 이용한 것이었다.

 

 행여나 자신 때문에 이성계가 다칠까봐, 죽을까봐 걱정이 된 설은 그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오기를 바랐다. 이인임의 본심을 알게 된 설이 두 손을 떨며 고개를 들어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나는 천인이다. 네 놈은 이곳에서 죽음을 면치 못 할 것이야.”

 

 

 

 

 단순히 화가 나서 한 말은 아니었다. 역사상 이인임은 강화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더 잔혹하게 저주하는 설이었다.

 

 이인임은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하는 설에 흠칫했고 동시에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곧 이인임의 사람들과 함께 마당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성계 아니, 단이었다.

 

 

 

 

 “설이누이!”

 

 “단아.”

 

 “괜찮으십니까?”

 

 “전 괜찮아요. 내가 뭐라고 이 먼 길을 왔어요?”

 

 “누이가 있는 곳에 제가 가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뛰어 들어온 단이 설의 손을 잡아 자기 등 뒤로 설을 숨겼고 그들의 사이를 두 눈으로 본 이인임이 입 꼬리를 올려 비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는 것이 신호였는지 단에게 달려드는 자객들이었고 설을 보호하고자 구석에 데려다놓고 혼자 싸우는 단이었다. 곧 자객들이 한 명씩 이성계의 칼에 맞아 쓰러졌고 보다 못 한 이인임이 걸어 나왔다. 하지만 단은 자객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 이인임이 가까이 온 줄 몰랐고 그것을 설만이 지켜보고 있었다.

 

 곧 검을 바라보던 이인임이 고개를 들어 단의 등에 그대로 날카로운 검을 찔렀고 순식간에 단의 앞을 가로 막은 설이었다.

 

 

 

 

 

 

 “.....”

 

 

 

 

 단을 보호하기 위해 단의 등 뒤에서 이인임의 검을 손으로 잡은 설이었고 날카로운 칼날이 설의 양 손바닥을 베었다. 손바닥 전체가 찢어져 피를 뚝뚝 떨어지는데도 검을 놓지 않는 설이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이인임이 검을 놓치더니 그대로 주저앉았고 그 소리에 뒤를 돈 단이었다.

 

 

 

 

 “누이..”

 

 “.....”

 

 

 

 

 단이 뒤를 돌아 검을 손으로 잡아 피를 흘리고 있는 설을 보았고 곧 설의 손에 힘이 빠져 검붉은 피가 묻은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힘없이 쓰러지는 설에 깜짝 놀란 단이 주저앉아 설을 끌어안았다.

 

 

 

 

 “누이. 설이누이.”

 

 “....."

 

 “죽으면 안 됩니다. 죽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꼭 살아서 해내셔야 해요.”

 ‘그래야 조선이 있고 대한민국이 있고 저도 있습니다.’

 

 

 

 625년을 너머 이곳으로 타임 슬립을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조선이 있어야 대한민국이 있고 비로소 2019년의 설도 있을 테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설이었다.

 

 검에 독이 있다는 게 사실인지 점차 몸이 마비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낀 설은 점점 감기는 눈을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설의 눈이 감기는 순간까지도 설을 품에 끌어안고 울부짖는 단이었다.

 

 

 

 

 

 “설아. 제발.”

 

 

 

 

 그리고 그때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렸고 또 그 눈이 설에게 닿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환한 빛과 함께 사라져버린 설이었다.

 

 사라진 설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너무 놀라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인임이었고 검붉은 피로 온통 젖은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우는 단만이 홀로 남았다.

 

 

 

 

 

 

 

 三十 一.

 

 

 

 

 1392년, 공양왕(왕요)의 보위선양으로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1393년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고 1394년 한양으로 천도했다. 남경(한양)천도를 결정내린 후, 궁궐을 짓기 위해 직접 한양을 걸어 다니며 궁터를 보는 조선의 왕 이성계였다.

 

 

 

 

 ‘제가 한양에 새 나라를 건국하게 됐습니다. 언제 또 볼 수 있을까요.’

 

 

 

 

 여름이 가까워진 따뜻한 봄이었지만 하얀 눈이 내리기를 바라며 한참을 혼자 걷는 단이었다. 그리고 곧 단의 바람대로 계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깜짝 놀라 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간절한 시선 끝에 저 멀리 눈을 감고 서 있는 설이 있었다.

 

 3년 만에 나타난 설에 깜짝 놀라 달려가는 단과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고 이성계를 바라보는 설이었다. 설을 힘껏 껴안은 단이 그녀의 양 손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폈고 미소 지으며 대답하는 설이었다.

 

 

 

 

 

 “다친 곳은 괜찮습니까? 손은요?”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3년 전, 이인임의 검에 양 손을 베었던 것을 기억해 설을 걱정하는 단이었고 그의 걱정 덕분인지 이상하게도 설의 양손을 멀쩡했다.

 

 걱정스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단을 가만히 바라보던 설이 달라진 그의 분위기에 이제 고려의 장군이 아닌 조선의 왕이 된 것을 알아챘고 흐뭇하게 단을 바라봤다.

 

 

 

 

 “왕이 되셨습니까?”

 

 “예. 조선의 왕이 되었습니다.”

 

 “잘 됐네요.”

 

 

 

 

 단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무사히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에 흐뭇해진 설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아마 자신이 이 고려에 온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설이었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단과 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길을 걸었고 단의 표정을 본 설이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요?”

 

 “한양에 도성을 새로 지으려고 하는데, 터를 어찌 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설과 함께 나란히 걸으며 도성의 터를 고민하고 있던 그때 설이 나타남과 동시에 계속 내리고 있던 흰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단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는 설이었다. 그리곤 바닥을 가리키며 단에게 말했다.

 

 

 

 

 “이거 봐요. 이 선을 경계로 바깥쪽엔 눈이 쌓이고 안쪽엔 눈이 쌓이지 않아요.”

 

 “그러네요.”

 

 “신기하다. 그쵸?”

 

 “그대를 만나고 제겐 신기한 일이 참 많았습니다.”

 

 

 

 

 설이 보여준 눈의 경계로 한양의 궁터를 잡기로 마음먹은 단이었고 곧 설의 앞에 서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마주보는 단이었다.

 

 

 

 

 “이곳을 설울이라고 할 것입니다.”

 

 “설울이요?”

 

 “예. 하늘에서 내린 눈이 도성의 경계를 정해주었잖습니까.”

 

 “아. 그래서 설울.”

 

 

 

 

 한양도 괜찮지만 설울도 좋은 것 같아 단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설이었고 그런 설을 바라보며 예쁘게 미소 짓는 단이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준 그대 이름 또한 설(雪)이니까.”

 

 “.....”

 

 “그러니 이곳은 ‘설(雪)울’입니다.”

 

 

 

 

 설을 바라보며 말하는 단의 모습이 점차 흐릿해졌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과 함께 태조 3년(1394)의 이곳이 점차 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그 눈부심에 설이 눈을 감았고 곧 눈을 비비며 감았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고려도, 조선도 아닌 2019년의 서울이었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설이 고려로 갔던 그 자리, 2019년의 광화문으로 돌아온 설이었다.

 

 

 

 

 “단아!”

 

 

 

 

 다급하게 제자리를 돌며 단을 불러보지만 어디에도 단은 없었고 현실로 돌아온 것을 뒤늦게야 인지한 설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방금까지 단이 눈의 경계로 터를 잡겠다고 했던 곳엔 정말이지 경복궁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조선의 한양이 아닌 드넓은 대한민국의 서울을 바라보던 설에게 시간을 넘어 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이곳을 설울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도성의 경계를 정해주었잖습니까.”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준 그대 이름 또한 설(雪)이니까.”

 

 

 

 

 귓가에 들려오는 단의 목소리에 하염없이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설이었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다가와 조심스레 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고 자꾸만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뒤를 돈 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기.”

 

 “.....”

 

 “핸드폰 떨어뜨리셨어요.”

 

 

 

 

 그때와 같은 눈빛으로 설을 바라보고 있는 625년 전의 단 아니, 2019년의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가 설의 앞에 서 있었으니까.

 

 

 

 

 

 

 .

 .

 .

 .

 .

 .

 .

 .

 .

 

 

 

 

 

 

 

 

 

 

 

 ‘그렇게 지어진 조선시대의 설(雪)울은 현대에 이르러 서울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작가 신우유입니다. 설울이 상중하 단편으로 완결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 설(雪)울 下 結 2019 / 10 / 23 225 0 18065   
2 설(雪)울 中 2019 / 9 / 27 241 0 13645   
1 설(雪)울 上 2019 / 9 / 23 358 0 961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도미넌트(DOMINANT)
몽글
스폰서 아니고
몽글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