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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타버린 재와 무덤지기
작가 : 오렌지핥고싶다
작품등록일 : 2019.9.8

세계를 이루는 다섯가지 색은 변질했고, 대륙의 중심을 다스리는 여왕은 숨을 거두었다. 백성들은 변질한 통치자를 그저 두려워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을 연명한다. 대륙의 나머지를 다스리는 4명의 여왕은 타락해 고귀하던 영혼을 더럽혔다. 신은 이 모든 참사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렇기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몸에서 흐르는 검붉은 혈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다짐했다.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이 세계를 반드시 되돌려 놓겠다고.

 
카샤, 카샤, 카샤!
작성일 : 19-10-23 16:53     조회 : 211     추천 : 0     분량 : 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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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누구고, 뭘 하신 겁니까..?”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론이 나지막히 물었다. 곰의 목은 날카로운 톱날에 비해 굉장히 깔끔히 절단이 되어 있었다. 이에 거대 곤충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 이더니, 피가 묻어있는 제 앞발로 쓰러져있는 곰의 사체를 가리켰다.

 

 “카샤.. 난 카샤. 저게 꼬마들 공격하려고 해서 구해줬다. 꼬마들.. 그대로 있었으면 저거에 치여 죽었다. 카샤 꼬마 구한다. 그러면 꼬마 안 죽는다.”

 

 아리아는 여전히 호기심 어린 표정을 유지하며 카샤라고 자신을 소개한 곤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론은 카샤라는 익숙한 단어에 순간 표정을 움찔했다. 카샤? 그 카샤라고?

 

 아무튼 이렇게 의사소통이 되는 것을 보면 기본적인 지능은 있는 것 같고, 결과가 어찌 됐던 간에 사람을 구한다는 발상 자체는 비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론은 일단 수긍하는 자세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자신들이야 저런 곰 같은 건 수백 마리가 뛰어와도 멀쩡하지만, 일반인이었다면 진짜로 죽었을 확률이 굉장히 컸을 것이다. 운 좋아야 내장 파열이겠지.

 

 “음.. 과정이 좀 과격하긴 했지만..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저는 론이고, 이쪽 분은..”

 

 “아리아. 반가워!”

 

 아리아는 차분히 자기소개를 하는 론의 말을 끊고 불쑥 대화에 참여했다. 말을 끊는 것은 아리아의 상당히 좋지 않은 버릇 중 하나였으나, 이것을 말한다고 해서 단점이 고쳐지는 일은 없었다. 결국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수밖에.

 

 “론.. 아리아.. 카샤, 기억했다. 카샤는 카샤가 구한 꼬마들 이름 듣는 거 좋다. 근데 전에 구했던 꼬마들은 모두 카샤 모습 보고 비명 질렀다. 너희들은 비명 안 질러서 좋다. 카샤 감사 인사 듣는 거 처음이다. 카샤도 고맙다.”

 

 생각지도 못한 감사 인사를 한 카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에 론은 조금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고, 아리아는 킥킥 웃으며 그런 론의 반응을 즐겼다. 이 전의 계산적인 태도를 송두리째 나무라는듯한 태도였다. 도대체가 이런 사소한 일로 고개를 숙이다니, 외견과는 완전히 딴판인 순수함이 있다 싶었다.

 

 “아, 아닙니다. 무슨 감사 인사까지.. 괜찮아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깐 시간 되실까요? 뭐라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론은 어떻게 이 상황을 덜 뻘쭘하게 만들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아리아의 배에서 울린 꼬르륵 소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때도 점심을 걸렀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카샤가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어떤 형태로든 은혜를 입은 상대에게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론의 생각이었다. 아리아는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좋다. 카샤 얻어먹는 거 좋아한다. 기쁘게 먹겠다.”

 

 카샤는 론의 말이 꽤나 달가운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순수한 호의가 기뻤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카샤에게는 표정이란 것이 없었으니. 아니면 론이 그 표정을 읽지 못한 것이거나.

 

 “운 좋은 줄 알아, 초록이? 지금 막 우리 배낭이 맛있는 것들로 빵빵하거든. 좋아.. 불은 내가 지필게.”

 

 아리아는 놀라운 속도로 식기들과 식사를 세팅하는 론의 모습을 신비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생긋 웃곤, 가장 무난해 보이는 통 돼지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땅에 박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장작에 손가락을 갖다 대어 불을 지핀다.

 

 불은 기본적으로 아리아의 삽이나 론의 검 같은 특수한 매개를 이용하는 것이 위력을 증폭시키기에 쉽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맨손으로도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카샤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순간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갸웃했으니.

 

 “..불? 너희, 불을 쓰는 거냐?”

 

 “엉. 불 쓰는 사람 처음 봐? 뭐, 우리 왕국에서밖에 못 보는 기술이니까 신기할 만도 하지. 그마저도 수가 엄청 많진 않으니까. 귀한 구경 했네.”

 

 계속해서 유심히 불을 지켜보는 카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카샤는 왜인지 모르게 제 팔에 달린 톱날을 맞대어 손질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앉아있던 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나 아리아의 앞에 우뚝 섰다.

 

 아리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며 땅에 꽂힌 꼬챙이를 적절한 자리에 고쳐 꽂았다. 론은 조금 불안한 기운을 느껴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말을 잇는 카샤의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분위기가 물씬 피어났다.

 

 “불.. 카샤 불 안다. 불.. 강한 이의 증표. 불의.. 아니, 피의 여왕의 권능.. 대륙의 망, 망조..”

 

 윤기 있는 카샤의 팔이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육감이 좋은 아리아는 이를 눈치챘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카샤를 물끄러미 노려보았다. 론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놓아둔 대검을 꾹 붙잡았다.

 

 “너희들. 강자였냐?”

 

 차가움을 넘어서 이제는 적의마저 느껴지는 목소리가 론과 아리아의 귀를 후벼 파는 듯했다. 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카샤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희가 불을 쓰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이런..”

 

 “시끄럽다. 카샤 약자 구한다. 약자 지킨다. 하지만 너희들은 약자 아니다. 카샤는 강자 원한다. 강자 찾기 위해 카샤 숲에 있었다. 그리고, 불은 강자의 증표다. 카샤는 강자를 꺾고 강해진다.”

 

 이런. 숲에서 그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나? 애초부터 카샤는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눈치를 채지 못하게 미행을 하고 있었던가. 그렇지만 갑자기 이런 뜬금없는 태세 전환이라니, 론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흐응.. 강자를 꺾어서 뭐 할건데?”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아리아가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가끔씩 보이는 똘끼 있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아뿔싸, 또 이상한 스위치가 켜진 모양이었다. 론은 이럴 때에만 켜지는 아리아의 절망적인 스위치에 소심한 원망을 보냈다.

 

 “꺾고, 먹는다. 강자를 먹으면 그 힘은 카샤 것이 된다. 카샤는 더 강해져서 더 많은 약자 지킨다. 이젠, 이젠.. 아니, 아무튼 카샤가 못 지키는 건 없을거다.”

 

 냉철한 분위기를 뿜어대는 카샤의 더듬이가 꿈틀이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등 뒤에 살짝 접혀있던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자 안 그래도 큰 몸뚱이가 더욱 커 보였다. 카샤는 그대로 톱날을 들어 아리아에게 겨누며, 방금 과는 완전히 다른 어투로 말했다.

 

 “..도전자 카샤가 말한다. 결투를 신청한다.”

 

 “저건..”

 

 이 대화를 말 없이 지켜보던 론의 눈에 당혹의 빛이 깃들었다. 저 자세와 대사, 저것은 죄인들을 수용하는 ‘참회의 도시’ 의 투기장에서 사용하는 인사 절차이다. 그렇지만 투기장에서는 인간 외의 지적 생명체를 선수로서 내보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론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카샤가 특수하게 변이된 잿더미일 가능성을.

 

 “좋아. 결툰지 뭔지 모르겠지만, 재밌겠는데? 함 뜨자. 사실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싸우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 했었어. 재밌어 보이더라구.”

 

 “안돼! 누님, 잘 생각해 봐. 조금 이상하지 않아?! 딱 봐도 위험한 느낌이 풀풀 풍기잖아. 애초에,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를 상대를..”

 

 론은 이런저런 불안한 가능성에 속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지만, 아리아는 전혀 그러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이런 스릴과 위험을 즐기는 인간이었으니 무리도 아니었겠지만. 론은 이런 아리아의 표정에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됐어, 됐어! 안 그래도 몸 좀 움직이고 싶었던 참이었어. 이틀 동안이나 집에서 편히 쉬니까 좀이 쑤셔 죽겠다고.”

 

 아리아의 장난끼 섞인 음성이 론의 만류를 뿌리쳤고, 론은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슬슬 자세를 잡은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기 때문이다.

 

 보통은 투기장 안이 아니라면 일어날 일이 없는 결투라지만, 기사라는 직위에 몸을 담고 있던 론은 이 결투에 끼어들 수 없다. 결투란 그 자체만으로 신성함을 머금고, 서로의 합의 하에 시행되는 결투는 여왕조차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샤는 도전자다. 도전자는 상대에게 원하는 상품 요구할 수 있다. 카샤가 원하는 건 아리아의 목숨이다. 카샤 강자 먹고 강해진다. 대신 카샤가 진다면, 카샤 목숨은 아리아의 것이다.”

 

 아리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은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결투에 몸을 담은 것이다. 이윽고 카샤는 톱날이 달린 제 팔을 눈높이로 올렸고, 아리아는 삽을 움켜쥔 채로 자세를 갖추었다.

 

 그것을 방아쇠 삼아, 둘의 몸이 동시에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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