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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작가 :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무슨 짓을 해도 죽을 수가 없다.

 
2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작성일 : 19-10-23 11:30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5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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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사람이 죽는 걸 봤지만 출근은 해야 했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떻게 집까지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속을 몇 번 게워내고 나니 어느새 출근할 시간이었다.

 

 '어쩌면 꿈이 아닐까.'

 

 밤을 꼬박 새면서 이완은 생각했다. 누가 멀리서 총이라도 쏜 걸까. 한국이 언제부터 무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였더라. 설령 그 사원이 제 4금융권에서 돈을 빌려두고 갚지 않아 보복 당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보통은 살려두고 일을 시키지 죽이진 않지 않나. 최소한 장기를 뜯더라도 살려서 데려가야......

 

 '그만두자.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총이고 폭탄이고, 선택지가 여러 개 떠올랐지만 전부 무리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사실은 시한부나 희귀병 같은 거였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단번에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걸까. 뼈 한 조각,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뒤축이 쓸린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서다가 이완은 휘청였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었던 게 퇴근 전 반쯤 마신 인스턴트 커피가 다였다. 점심에 먹었던 찌개도 집에 오자마자 전부 토해냈으므로, 속은 텅 비어 있을 거였다. 이완은 자조했다.

 

 '이런 상황에도 배는 고프구나.'

 

 이완의 자취방은 회사와 열 정거장 떨어진 주택촌에 위치해 있었다. 삼십 분이 넘는 거리였지만, 집세가 싸고 왕복하는 버스가 두 대나 있어서 나쁘지 않은 출근길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엔 차가 막혔다. 이완은 항상 출근 두 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어지러웠다. 버스는 승차감이 좋지 못했다. 아스팔트 도로의 턱을 지나칠 때마다, 이완은 헛헛한 속 때문에 울렁였다. 가슴팍에 걸린 사원증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어젯밤부터 몇 번이고 뒷면을 확인해 보았지만, 붉은 글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자정이 지나자 새 할당량이 갱신되기까지 했다.

 

 11월 5일 (수)

 7시 5분

 날씨: 일교차가 있으니 따듯하게 입어요.

 

 금일 할당량:

 B사에 계약서 보내기 (0/1)

 V사 팜플렛 샘플 오탈자 검수 (0/1)

 ...

 

 이완은 다음 화면이 넘어오기 전에 뒷면이 보이지 않게 사원증을 셔츠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마침 정류장이 보였다.

 

 '배고파 죽겠다.'

 

 회사 근처 버스 정류장에는 일회용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이완은 내리자마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으나, 오늘은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것 같아 황급히 지나쳤다. 이완은 오늘 뿐 아니라 앞으로 두 번 다시 인스턴트 커피를 입에 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이완은 회사 안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는 작은 먹자 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완처럼 아침을 먹기 힘든 회사원과 학생들이 종종 애용하는 곳이었다. 아침 일찍 나온 학생 몇몇이 빵을 입에 물고 이완을 지나쳤다.

 

 '빵집이 생겼네.'

 

 골목 안쪽에 있어서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빵집은 줄이 길었다. 오픈빨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완은 줄 끝에 서서 빵 두 개를 트레이에 담았다.

 

 이완의 앞에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이 두엇 남았을 무렵, 빵을 계산 중인 점원 뒤로 낯설고도 익숙한 글씨가 반짝이고 있는 것을, 이완은 보았다.

 

 11월 5일 (수)

 7시 16분

 날씨: 일교차가 있으니 따듯하게 입어요.

 

 금일 할당량:

 빵 XXX개 팔기

 음료 XX잔 팔기

 ...

 

 "4000원입니다."

 

 점원이 이완이 고른 빵을 봉투에 담으며 말했다. 점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할당량이라는 게 빵집의 할당량인지, 점원 개인의 할당량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완의 사원증과는 또 달랐다. 꼭 전자 시계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여느 가게에나 걸려 있을 법한 까맣고 네모난 벽걸이용 시계, 날짜와 시간, 날씨를 보여주는. 다른 점이라면 할당량이 적혀 한 줄씩 넘어가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손님, 안 사실 건가요?"

 "저기요, 안 살 거면 나와요."

 

 점원이 재차 이완을 부르자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짜증이 벤 목소리로 이완의 어깨를 건드렸다.

 

 "뭐야, 진짜..."

 "나 출근 얼마 안 남았는데."

 

 이완이 비키지 않자 웅성거리는 소리와 기웃대는 소리로 빵집 안이 금세 부산스러워졌다.

 

 "손님, 안 사실 거면 나오세요. 뒤에 있는 분들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이완은 점원의 얼굴을 보았다. 생면부지의 얼굴이었지만 익숙했다. 바로 어제, 퇴근 시간이 임박한 사원에게서 보았던 표정.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여전히 입도 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죄송한데요 손님, 저 오늘 할당량 한참 남았어요. 일이 이것 뿐이라 못 하면 죽어요."

 "......아, 죄송합니다."

 

 이완은 그제야 버벅거리며 사과했다. 카드를 꺼내는 손이 떨렸다.

 

 빵은 맛있었다. 이완은 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이완처럼 사원증을 메고 있었다. 학생들의 목에는 학생증이 걸려 있었다. 가끔 뒷면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망가지기 쉬운 할당량 체크 카드, 불편하지 않습니까? 손목 시계를 사용한 뒤부터는 훨씬 쾌적한 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옥외 광고판에서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망가지기도 쉽고 재발급 받기도 귀찮은 카드, 이젠 손목에 착용하세요. 감각적이고 세련된 디자인! 블랙, 화이트, 같은 디자인에 다양한 색을 입힌 시계가 줄지어 늘어지며 광고는 끝났다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아이패드나 최신형 핸드폰 같은 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이완이 반쯤 먹은 빵을 베어 물던 찰나였다.

 

 펑.

 

 이번에는 반대편 도보에서 뛰어가고 있던 여자였다. 여자와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거나, 꺼려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이내 걸었다.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빵을 내던지고 여자가 있던 곳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뒈지려고 환장했냐!"

 

 빨간 불이었고 4차선 도로였다. 이완을 치어 넘길 뻔한 차 몇 대가 급정거하더니 창문을 내리고 사나운 욕설을 내뱉었다. 경적 소리와 욕설이 도로를 메웠다가, 뒤에 오는 차량에 밀려 다시 목적지로 떠났다.

 

 이완은 사과할 정신도 없이 안전바를 뛰어넘어 반대쪽 인도에 도착했다. 이완은 여자가 있던, 있었던 곳에 섰다. 여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안 돼, 안 돼..."

 

 인파와 차에 치여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분명 뛰어가던 여자가 있었고, 살점과 피와 뼈를 튀기며 터져나갔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또 사람이 사라졌어."

 

 이완은 미친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행인들이 이완을 이상한 사람 발견한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 왜 저래, 아는 사람이 없어진 건가? 방금 죽은 여자가 가족이라도 됐나 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죽었어."

 

 아는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런담. 중얼거리던 행인들은 다시 이완을 지나쳐 사라졌다. 옥외 광고판에서는 이제 할당량 체크용 벽걸이 시계를 내보내고 있었다. 이 년간 무상 A/S, 가게나 회사, 집 어디든 설치 가능합니다. 개통까지 30초, 주민등록 번호와 핸드폰 번호만 입력하세요...... .

 

 "사라졌다고, 온데간데 없이!"

 

 이완은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흔들었다. 줄곧 버스 정류장에 줄 서있던 남자였다. 여자가 사라진 걸 분명 보았을 것이다.

 

 "저기요, 왜 이래!"

 "못 봤어요? 저기, 여자가, 있었는데..."

 "나 아세요? 이거 놔요!"

 "여자 못 봤냐고요. 죽었다니까!"

 

 갑갑했다. 빵을 먹는 게 아니었다.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사람 뒈지는 거 한 두 번 보나, 나 출근 해야 되니까 비키라고! 죽고 싶지 않으니까."

 

 아마도 남자가 탔어야 하는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쳐 사라지자, 남자는 표정을 구기며 이완의 뺨에 주먹을 날렸다. 이완이 나가떨어진 사이 남자는 이미 다음 버스를 잡아 타고 있었다. 줄을 서 있던 이들이 이완을 피해 둥그렇게 섰다. 비린 맛이 났다. 이완은 피가 뒤섞인 침을 하수구에 뱉었다.

 

 "사람이...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이완은 미친 게 아니었다. 적어도 헛것을 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주 대리도, 방금 남자도 사라지는 것 자체는 보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동정과 두려움, 혐오의 눈길로 이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일행에게 속삭였다. 이완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사람 사라지는 거 못 봤어요? 죽은 것 같았는데..."

 "누구 죽는 거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재수 없게..."

 

 누군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이 죽은 것보다 이완이 일으킨 소동에 기분이 상한 게 싫다는 투였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금세 자신의 할당량을 채우러 이완의 주변을 떠나갔다. 이완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남자도, 점원도 주 대리와 같은 말을 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이완은 웃었다. 허탈했다. 문득 뺨을 꼬집어 보았지만 아프기만 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면,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이완은 전화번호부를 살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물어볼까 하다 그냥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는 이들마저 이완을 이상한 눈으로 본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완의 친구들은 이완을 닮아 현실주의자였다. 위로는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해받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와중에 빵은 더럽게 맛있네. 두 개 사서 다행이다.'

 

 이완은 벤치에 앉아 빵 봉투를 뜯었다.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했다. 도무지 회사에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지만, 일하지 않으면, 그 할당량이라는 걸 채우지 않으면 자신도 사라져버릴 게 아닌가. 그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어제는 운이 좋았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일을 전부 처리하긴 했으니까.

 

 터져 나간 오른쪽 볼이 아팠다. 이완은 갓길에 서서 물도 없이 빵을 전부 씹어 삼켰다. 빵 쪼가리가 식도에 그대로 얹힌 기분이었다.

 

 툭.

 

 쓰레기통에 포장지를 버리는데, 아슬아슬하게 주머니에 걸려 있던 사원증이 이완의 발치에 떨어졌다. 하필이면 글씨가 보이는 쪽이었다. 재수 없게. 사원증을 집어들기 위해 고개를 숙였던 이완은 멈칫했다.

 

 ...

 서현주(애인)에게 연락하기(0/1)

 ...

 

 공중 화장실로 들어간 이완은 결국 빵을 전부 토해냈다. 소화 기관까지 넘어가지 못한 건지 목구멍에 걸려 있던 것들이 힘없이 변기 위로 떨어졌다. 입을 아무리 헹궈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남김없이 속을 비웠는데도 식도에 무언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이완은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세수를 한 번 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거울 속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다크써클이 턱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회사에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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