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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월계수의 기억
작가 : 나호
작품등록일 : 2019.9.23

생일을 앞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
정통 판타지.

 
14화 대가 없는 도움(3)
작성일 : 19-10-23 01:42     조회 : 190     추천 : 0     분량 : 5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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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두운 밤하늘이 그들을 맞이했다. 에녹스는 마구간으로 가 말들을 찾았다. 두 말들에게는 아무 이상도 없어보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에녹스는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한밤중이라 길거리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예 없진 않았지만 그런 자들은 모두 구석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부랑자들이거나 마을에 처음 온 듯한 모험가들뿐이었다. 그들에게 지티스의 행방을 물어봤자 건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정말로 펍에 가야하나. 그런 자들과 마주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티스의 행방을 알아내려면 해야만 했다.

 

 에녹스는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했다.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아까 그 세 명이리라. 그와 엘은 그 핏자국을 따라갔다.

 

 빛이 몇 개 반짝이는 곳들을 몇군데 찾았다. 아직 운영하는 상점들과 여관과 술집이었다. 그것들 중 가장 큰 빛은 다름아닌 펍이었다. 가장 떠들썩하기도 했다. 간판에 이렇게 써있었다. '베델 펍'이라고.

 

 에녹스는 엘에게 말들과 함께 숨어있으라고 했다. 엘은 주저했지만 에녹스의 말에 토를 달진 않았다.

 

 그는 곧바로 펍의 정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다. 맨얼굴로 들어간다면 안에 있는 자들에게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런 에녹스는 정문말고 다른 출입구를 찾았지만 달리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망토에 달린 두건을 푹 눌러쓰고 검을 망토안에 감췄다.

 

 이윽고 베델 펍의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선을 끌지 않도록 조용히 열고 들어갔기때문에 그를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눈길 한번씩만 주고 제 할 일들을 했다.

 

 에녹스는 펍의 바로 향하면서 천천히 안을 둘러보았다. 안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진 않았다. 혼자온 사람들도 있었고 동료들과 같이 온 자들도 있었지만 에녹스의 시선을 끄는 사람들은 바의 바로 앞에 있는 자들이었다.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는 그들은 이 마을 사람같았고 덩치도 큰 사내들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곳에 땀을 흘리고 곳곳에 작은 상처를 입은 자들이 셋 있었다. 에녹스에게 당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에게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니까! 검도 명검이고 실력도 장난아니었어!"

 "우리 셋이 한꺼번에 덤볐는데도 상처 하나 내지 못했어!"

 "그러니까 페넨스, 빨리 돌아가보자니까! 게일의 복수도 하고 그 귀족놈의 물품들도 다 빼앗아야 할 거 아냐!"

 

 에녹스는 뭘 그렇게 자랑하듯이 말하고 있느냐고 생각했다. 저들앞에서 술을 들이키고 있는 페넨스라는 자가 이들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모양이었다. 에녹스는 그들을 지나쳐 바로 앞의 바에 앉았다.

 

 "주인장 베델이라고 합니다. 뭘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웃으며 말하는 주인은 인상좋은 노인이었다. 에녹스는 눈을 굴려 옆에 혼자 앉아있는 자를 보았다. 푸른 두건을 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였다. 그 자는 데운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에녹스도 적당히 데운 우유를 주문했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까 건드렸던 놈도 실력이 상당했는데. 이 검도 명검이고."

 

 명검이라는 소리에 에녹스는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그것을 확인했다. 페넨스라고 불린 자가 천에 감싸였던 물건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지티스의 검이었다. 속박의 마나가 깃든 그의 검이 페넨스의 손에 들려있었다. 에녹스는 하마터면 뛰어나갈 뻔 했다. 앞에서 베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나왔습니다. 손님."

 

 에녹스는 베델에게 은화를 한 닢 쥐어주고 거스름 돈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속이 따뜻해져 가라앉았다. 생각해보니 떠난 이후로 처음으로 입에 대는 것이었다. 우유가 속에 들어오니 왠지 조금 허기가 졌다.

 뒤에서는 듣기 거북한 단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갖은 욕설들이 오고 가고 한마디씩 할 때마다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그들의 모습은 직접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중심 이야기는 지티스에 관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 녀석 검 휘두르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고. 결국 우리가 수적으로는 많고 녀석 상태가 말이 아니라 얼마 못가 쓰러지긴 했지만, 대단했어. 다른 귀족들하곤 다르던걸."

 

 페넨스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셋은 안절부절해했다. 이런 얘기는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자를 잡고 들어도 충분했다. 지금 그들이 우선시 해야 할 것은 에녹스를 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페넨스는 취했는지 지티스와 싸웠던 것을 얘기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세 명의 계속되는 호소에 마침내 페넨스는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그래. 게일의 원수를 갚자고?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그럴 거야. 이 검도 명검이지만 그때 보았던 또 한 자루도 상당한 명검같았거든. 어쩌면 이것보다도 더."

 

 그는 지티스의 검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걸음은 멀어지지 않았다. 천전히 가까워졌다.

 

 "그렇지?"

 

 에녹스는 그 소리에 바로 뒤돌아 세화를 꺼냈다. 순간 빛이 일어났다.

 

 챙!

 

 날카로운 파찰음이 나며 두 검이 부딪혔다. 펍 내에 울린 금속성의 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에녹스는 두건을 벗지 않았다. 그나마도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을 보려해도 못 볼 정도였다.

 

 페넨스가 벌겋게 물들여진 얼굴로 말했다.

 

 "얼굴을 가렸다고 못 알아볼 줄 알았어?"

 

 주위가 웅성거렸다. 그 말고는 들리는 소리가 없었기때문에 낮게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속에 파고 들었다.

 

 에녹스는 페넨스를 쏘아보았다. 시야에 걸린 두건을 한 손으로 벗어내렸다. 연노란 머리가 드러나자 상처를 입은 세 명이 손가락을 처들며 에녹스를 가리켰다. 에녹스는 침묵하며 그들이 하는 소리를 듣다가 입을 열었다.

 

 "지티스는 어디있지?"

 

 페넨스가 검을 떼어내며 말했다.

 

 "그 녀석 이름이 지티스였군? 검 꽤나 쓰던데 그 녀석하고 너하곤 형제 사이인가? 별로 닮진 않았는데."

 

 페넨스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에녹스 또한 답하지 않았다.

 

 페넨스가 칼날을 손으로 쓰다듬는 것이 보였다. 화가 치밀었다. 전에 지티스는 자신의 검이 지금은 죽은 형의 유품이라고 했었다. 그런 검이 저런 자의 손에서 놀아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라."

 

 페넨스는 검을 매만지는 것을 멈추고 씨익 웃으며 들어보였다.

 

 "그래. 너희 귀족들은 검이나 마법을 목숨같이 중요하게 여겼었지. 다른 사람들에겐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는 주제에."

 

 에녹스는 작은 의문이 들었다.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러? 그 누가 말인가? 그가 이어 말했다.

 

 "그래서 난 너희들이 싫어."

 

 그 말과 함께 검이 쇄도했다. 빠르게 찔러져오는 검을 내리치고 반동을 이용해 위로 올려쳤다. 페넨스의 검은 쉽게 튕겨 나갔다. 하지만 술에 취한 페넨스만을 상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술을 마시던 사내들도 에녹스에게 달려들었다. 에녹스는 몇 명에게 상처를 주며 어느 정도 버텼지만 곧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사내들에 의해 붙잡혔다. 일대다수의 싸움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붙잡힌 에녹스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예의 세 명 중 하나였다. 목에 상처가 나있었다.

 

 좀 더 떨어진 곳에 있던 모험자 일행 중 하나가 일어나 그만들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끌시끌한 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고 때문에 주먹질도 멈추지 않았다. 그 자도 끼어들지는 못했다. 사내들의 인상은 웬만한 건달들보다도 험악했다.

 

 "그만해."

 

 그때 옆에서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얇은 남성의 목소리였고, 작았다. 그러나 그 작은 목소리는 펍내의 모든 사람들의 몸속에서 울리듯 퍼졌다. 바람이 불었다. 산들바람이었다. 에녹스는 피 섞인 침을 뱉고 정신을 차려보았다. 양팔을 감고 있던 힘들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페넨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이게?"

 

 에녹스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페넨스 패거리들은 공중에 떠 있었다. 아니, 달랐다. 천장에 붙어있었다. 마치 그들의 중력만이 거꾸로 흐르는 것 처럼 위에 딱 달라붙어있었다. 에녹스도 어리둥절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탁,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들린 소리였다. 푸른 두건을 쓴 자였다. 그 자는 무심한 듯한 태도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 자가 무언가를 한 것은 분명했다. 그의 남은 오른손은 허공에 가 있었다. 두 손가락은 페넨스 패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치켜올려져있었다.

 

 곧 그 두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우와악!"

 

 패거리들이 한꺼번에 아래로 떨어졌다. 에녹스는 조금 어리둥절해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리고 짐작가는 바가 하나 있긴 있었다. 그 자신도 처음본 것이지만, 책에서 많이 읽어봤다. 수도 없이.

 

 그가 생각한 것을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랬다.

 

 "마법? 마법인가?"

 "우와. 나 마법 처음 봐!"

 "이런 시골에 마법사가 있다고?"

 

 그것이었다. 마법사. 흔치 볼 수 없는 자들인 그들은 몸속의 마나를 사용해 마법을 구사했다. 초월적인 힘이기에 물론 강력한 자들이었다. 마나를 구사할 수 있는 범주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지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존재 그 자체로도 위협이되었다.

 

 에녹스도 처음 보는 마법사였기 때문에 앞에 있는 자가 얼마나 강한지, 어느 정도의 등급을 지녔는지 몰랐다. 하지만 분명 강한 자였다.

 

 술에 취한 페넨스가 몸을 일으켜세우며 크게 말했다. 덕분에 웅성이던 펍 전체에 울렸다.

 

 "마법사? 당신같은 족속이 왜 이런 되먹지도 못한 마을에 있는 거지? 왜, 너도 귀족놈들처럼 행패부리러 왔나? 죄 없는 사람들 죽이려고 왔느냔 말이야!"

 

 술에 취한 그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경악했다. 마법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뱉는 것을 참는 마법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눈앞의 마법사는 발끈하거나 하지 않았다. 일어나 페넨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침착했다. 또한 알 수 없는 힘이 깃들어있었다.

 

 "과거에 귀족들에게 무슨 일을 당한 모양이로군. 하지만 그런 비슷한 일을 당신이 되풀이한다면 악순환이겠지."

 

 그 말에 페넨스가 말을 멈췄다. 멍한 얼굴이 되었다. 마법사의 말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하려는 것처럼. 실제로 그랬을지는 의문이었지만. 마법사가 에녹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 아까 물어봤던 것을 다시 물어봐."

 "예?"

 

 마법사는 그 말을 하고서는 침묵했다. 에녹스는 그 말에 따랐다. 다시 한번 페넨스에게 지티스의 행방을 물었다. 그는 전처럼 능청스럽게 굴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에녹스의 질문에 잘 대답했다. 조금 더듬거렸다는 것만 제외하면 이상한 점은 없었다.

 

 "아, 아까 사람을 사들이는 마차에... 너, 넘겨버렸다.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몰라..."

 

 에녹스는 그 말을 듣고 발끈했다. 팔았다고? 지티스를 팔았다고? 그는 사람들 손에서 오고 가는 상품이 아니었다. 과거엔 용병이었으며 에녹스의 하인이자 동료였다. 인격이 있는 한 명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팔았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에녹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도로 폈다. 이 자를 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다고 지티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마법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있었다. 두건에 감춰져있는 시선은 에녹스도 알아채지 못했다. 마법사가 에녹스에게 말했다.

 

 "잠깐 나가지. 할 얘기가 있어."

 

 그 말을 하고 먼저 펍을 나섰다. 에녹스는 지티스의 검을 챙기고 그를 따라 펍을 나갔다.

 

 

 -계속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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