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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꽃을 담은 소녀
작가 : 심연고래
작품등록일 : 2019.9.3

특별한 힘을 가진 소심한 소녀의 이야기

 
05. 성문을 향해 (1)
작성일 : 19-10-23 01:34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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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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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는 우리 마을이 있는 산을 내려가고도 한참을 달려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도시라는 거지? 정확히 말하면 대도시가 아니라 그냥 시내 정도이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사람도, 건물도, 차도 많았다. 그냥 모든 것이 많았다.

  나는 손등에 턱을 괴고 창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방학기간이라 그런지 내 또래도 많이 보였다. 이제 곧 점심 먹을 시간이라, 다들 외식하러 나온 건가? 되게 많아 보이네....

  “어때?”

  “네?”

  데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계속 창밖만 보길래. 많이 다른 거 같아?”

  “아... 음....”

  나는 잠시 생각하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그렇게 관심 있게 봤나? 처음이라 조금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막 신기하고 그렇지는 않은데.... 너무 시골에서 온 사람처럼 우와~ 할 정도는 아니란 말이지.

  ... 근데 그런 표정이었던 거 아니야? 그랬다면 좀 쪽팔리는데....

  “음~ 그냥 좀 많네요. 사람이나 건물 같은 게....”

  나는 최대한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건 시시하다는 말투를 팍팍 티 내며 대답했다.

  “어, 어... 거, 건물이 많기는 많지....”

  응? 뭐지? 왜 말을 더듬는 거지? 좀 당황한 거 같은데?

 차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고요했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어색하고 세한 공기가 감돌았다.

  뭐야, 잠깐. 이 정도는 많은 게 아닌 거야? 아닌데? 많은데? 건물들도 막 붙어있고, 거의 다 5층 넘어가고, 길 따라 늘어서 있잖아! 빽빽하다고! 게다가 길가에 사람들이 계속 돌아다니는데? 상점 안에도 두세 명씩은 꼭 손님이 있는데. 이게 많은 게 아닐 리가 없어!

  아니, 여기서 더 많으려면 뭘 어떻게 해야 더 많은 건물이랑 사람이 들어올 수 있냐구. 공간이 막 지맘대로 늘어나서 여기선 한 명 들어갈 자리에 두세 명 들어가고 그러진 않잖아! 내 머리로는 이보다 더 많은 건물과 사람이 모인 공간은 그려지지가 않았다.

  설마 내가 도시에 한 번도 안 와봤다고 해서 놀리는 건 아니겠지이?

  하지만 데인이 나한테 그럴만한 이유는 없다. 딱히 장난을 즐기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성격이 비뚤어진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말이지.

  “신기해 죽는 군 아주.”

  크흠.... 나는 아주 소심하게 딱 1초만 아즈반을 째려봤다. 사실 아까의 고요함도 아즈반이 원인이었다.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계속 툭툭 내뱉는 말에 시비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시비가 가득한 그 바구니 속에 커다란 낚싯바늘이 은근슬쩍 숨겨져 있는 걸 난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왜 저러는 거야? 내가 뭐 잘못 한 거라도 있나? 하지만 애초에 말을 섞은 것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이니 그럴 리가 없었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쭉 훑어봐도, 마을 입구에서 만났을 때 한 대화보다 더 길게 말이 오간 적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랑은 그렇고, 아즈반의 말에 열받은 코시가 몇 번 화를 내긴 했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근데 왜 자꾸 뜬금없이 저렇게 던지는 걸까? 이건 그냥 내가 싫은 거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에휴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빨리 성에 도착하는 게 낫겠어. 그럼 두 번 다시 볼일 없겠지.

  흐엉.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이야.

 

 ***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아즈반은 내가 싫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냥 모든 것을 싫어했다. 아니, 싫은 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까....

  아즈반은 신분증을 요구하는 군인에게 지갑에서 작은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얇고 빳빳한 카드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서. 나는 미묘하게 떨리는 군인의 안면근육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았다. 당연히 아즈반은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었고, 특유의 그 오만한 눈빛으로 군인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이건 그냥 인성이 글러먹었어. 딱 그 말 정확했다. 또라이 보존 법칙이라고,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우리 마을에도 이상한 사람이 한두 명 있는데, 아즈반은 그 이상이었다. 아니, 이상의 수준이 아니라 대단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와... 정말 어떻게 저렇게 뻣뻣할 수가 있지?

  군인은 우리 세 사람의 신분증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각자에게 돌려주었다. 가장 먼저 받은 아즈반은 낚아채듯 카드를 가져갔다. 하필이면 그다음이 내 신분증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하며 두 손으로 수첩을 받았다. 코시도 나와 비슷한 마음인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 저 녀석이 좀 뻣뻣해서요. 미안해요옹~ 헤헷.”

  마지막을 장식하는 코시의 어설픈 애교에 군인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덕분에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고생이구만, 고생이야. 우리 집까지 오는 동안 저걸 몇 번이나 했을까? 나는 코시가 조금 안쓰럽게 보였다.

  우리는 군인의 안내를 따라 어떤 회색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 건물은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었는데, 네모난 것이 그 어떤 미적인 의도를 티끌만큼도 갖고 있지 않았다. 두꺼운 회색 벽에 네모난 창만 주르륵 박혀있는 외부. 마찬가지로 내부 또한 장식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드넓은 벽은 회색 칠 된 그대로 비어있었고, 바닥은 단단한 돌바닥에 무늬도 없었다. 완벽히 기능만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 회색 배경 위에 열심히 움직이는 똑같은 옷을 입은 군인들의 모습은 조금 섬뜩하게 다가왔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곳, 피하고 싶어 도망 다니는 바로 그 장소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만약 내가 숨지 않았다면, 나도 저 사람들 속에 있겠지. 저 들과 똑같이 군복을 입고, 이곳에 있었겠지....

  “후우....”

  속이 답답해져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군인이 되겠다는 결정을 내린 걸까? 난 이렇게나 무서운데....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우리는 빈 방으로 안내되었다.

  “준비되는 동안 여기서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열리는 문 사이로 회색 방안이 보였다. 작은방 안에는 원탁과 그 주위를 둘러싼 의자 4개만 덩그러니 방 가운데에 놓여있었다.

  “아, 그리고 데인님은 잠시 오즈님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어? 저를요?”

  코시는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네.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그래요?”

  코시는 잠깐 나와 아즈반을 번갈아 쳐다봤다. 어? 어어? 코시가 가면 난 이 인간이랑 둘이 남아있어야 하는 거잖아! 어어? 어?

  “나 갔다 올 테니까 잠깐 있어.”

  어, 어어!

  코시는 의자를 도로 집어넣고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문이라도 열어뒀으면 좋으련만.... 군인은 문까지 꼼꼼하게 닫아버렸다. 망했다. 망했어.... 나는 아즈반과 덩그러니 방 안에 남겨져 버렸다.

  안 그래도 삭막한 회색의 공간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세포가 하나씩 얼어붙는 것 같았다. 실제로 기온이 내려갈 리도 없는데, 뭔가 서늘한 것이 공기를 타고 내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가는 건지 마는 건지.... 벽에 붙어있는 동그란 시계의 초침 소리가 섬뜩했다.

  이야.... 이제 1분 지났네? 이대로 10분을 넘기면 동사하는 거 아닐까?

  “어떤가?”

  “헉, 네?”

  뭐, 뭐야. 또 뭔 시비를 걸려고?

  “어, 어떻다니 뭐가요?”

  “여기 말이다.”

  “네? 여기라면.... 여기요?”

  도대체 무슨 소리지?“

  “여기 말이다. 이곳에 대한 감상이 어떤가?”

  응? 이, 이곳에 대한 감상?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아즈반을 빤히 쳐다봤다. 그는 예의 그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목소리나 말투가 조금 다르게 들렸다. 말투는 어디 고서에서나 볼법한 딱딱한 말투였는데, 목소리는 좀 더 부드러웠다.

  “이, 이곳이요?”

  여기가 특이한 곳이기는 하다만 감상을 말하고 그럴 만한 장소는 아닌 거 같은데....

  “그래. 여기.”

  “어.... 음....”

  하지만 뭔가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가는 내내 시빗거리가 될지도 몰라.

  “어... 여기는... 그러니까....”

  망했다. 아무 생각도 안 나잖아!

  “무서운가?”

  “네?”

  그 순간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나는 아즈반의 체리색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더 이상 오만한 얼굴도 아니었다. 비꼬려거나 무시하려고 한 질문이 아닌 게 확실했다. 진심으로 물은 것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어, 음.... 네. 조, 조금 그러네요. 아무래도 군부대라는 게 좀 무섭고.... 아니, 무섭다고 하면 좀 그럴까요? 약간 경직된 분위기이긴 해서 그런가 봐요.”

  내 입으로 무슨 말이 나오는 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나도 모르겠다. 후우.... 자 당황하지 마. 진정해 마닐드. 군대라는 게 당연히 무섭지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당연한 거야. 내가 무섭다고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저 사람도 그래서 물어본 거야. 정신 차려. 마닐드 네가 정신 차려야 해. 나 자신은 내가 지켜야 해. 늘 잘 해왔잖아.

  “아, 제가 시골에서 와서 이런 곳은 처음이라 더 그런가 봐요. 하하. 사실 제복도 처음 보고.... 언니가 입은 그 제복만 본 적이 있거든요. 그것도 언니 혼자 입은 거라.... 여기에는 다 같은 군복을 입고 있어서 좀 낯설기도 하고....”

  나는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아즈반은 그런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다행히도 그럴듯한지 고개를 한번 살짝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지. 내가 당연한 걸 물었군.”

  “아하하....”

  휴.... 다행이다. 다행이야. 잘 넘어갔어. 안도감에 휩싸인 내 입은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하하... 제가 좀 겁이 많아서요....”

  분명 내가 한 말인데도 마음이 쓰라리다. 내가 지독한 겁쟁이에 소심하다는 걸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고, 부정한 적도 없지만, 늘 씁쓸했다. 겁쟁이. 그게 내가 내린 나에 대한 결론이다. 씁쓸하지만 어쩌겠어. 그게 나인데. 온 세상이 두려운데 그걸 어떡하겠어.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이 무서운데 어쩌라고....

  짧은 대화가 끝나고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침묵은 더 이상 서늘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보다 더 잔인한 생각들이 수면 위로 뛰어올라 나를 갉아먹었다.

  저 사람들을 봐. 네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잖아? 너 같은 애랑은 다르게 말이지.

  난 분명 다 인정했는데... 내가 이런 애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였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거지?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는 걸까?

  아니면 죄책감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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