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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잔느와 로드릭
작가 : 신들의이야기꾼
작품등록일 : 2016.10.8

역사적으로 마녀로 몰려 가엾은 운명에 처했던 잔 다르크가 차원이동을 해서 로드릭이란 남자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와의 첫만남
작성일 : 16-10-08 18:50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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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내 이름은 잔느 다르크. 나는 내 조국인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적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영문 모를 종교재판으로 회부되어 전쟁터에서 갑옷 안에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와 갖가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날 마녀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대답을 듣고 아직 날 마녀로 완벽하게 몰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목적이 이뤄질 것이다. 난 신을 믿는다는 인간들이 이렇게 더러울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현재, 난 전신을 감싸는 흰색 원피스 차림으로 회색 돌로 둘러싸인 지하 독방에서 양쪽 손목이 커다란 쇠구슬이 달린 쇠사슬에 묶인 체, 갈색 가죽장화와 미늘갑옷에 빨간 십자(十)가 그려진 하얀 민소매 윗도리를 껴입은 잉글랜드 병졸들 5명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을 미늘창을 들고 여기와 지상을 잇는 계단에서 누가 오는지 망을 봤다. 그리고 4명은 내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심심하면 때렸다. 덕분에 온 몸에 멍이 들었다. 그들은 날 비웃고 내 옷에 침을 뱉으며 내게 주어진 딱딱한 사각형 갈색 빵과 물을 주지도 않거나 거기에 소변을 보고 주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3일째 굶고 있는 중이다. 날이 갈수록 몸에 기운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신께 기도를 올리고 싶었지만, 내가 기도를 올리면 날 감시하던 경비병들이 날 더 괴롭힌다. 그래서 기도조차 올릴 수 없었다. 내가 도와줘서 왕권을 이을 수 있었던 프랑스의 왕, 샤를 7세는 날 구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만약에 그가 날 구할 생각이 있었다면, 내가 종교재판까지 회부되진 않았을 것이다. 난 그를 증오했다.

 

 내 앞으로 다가온 병사 한 명이 투구를 눌러쓴 체, 미늘장갑을 벗은 맨손으로 내 복부를 주먹으로 강타했다.

 

 퍼억!

 

 크헉!

 

 난 헛구역질을 했다. 내 입에서 피가 나왔다. 그 피들은 회색 바닥을 빨갛게 물들였다. 내게 샤를7세를 도우라고 했던 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살려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난 날 친 그의 얼굴을 째려봤다. 그의 투구 사이로 비치는 그의 눈은 날 보며 꼴좋다는 느낌이었다. 눈물이 났다.

  ‘차라리 날 죽여주던가.’

 그들은 날 그냥 죽이려고 하지 않고 내게 마녀라는 누명을 씌워서 죽이려고 했다. 내 앞에 서있는 잉글랜드 병사는 실실 웃으며 날 바라봤다.

 “어라? 성난 고양이처럼 날 노려보던 때는 어디로 갔나?”

 그는 내 왼쪽 다리를 왼발로 차고 침을 뱉곤 그의 동료들 곁으로 갔다. 경비를 서던 병졸 5명들이 계단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교대시간이었다. 내가 짧은 순간이나마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난 무릎 꿇고 앉아서 양손을 내 머리 높이로 올려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느님, 부디 저를 가엾이 여기시고 저를 구원해주소서.”

 그 순간,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수없는 마녀년이 지랄하고 자빠졌네!”

 들키고 말았다. 병졸 5명이 내게 다가와서 구타하기 시작했다. 너무 아팠다. 멍든 데는 또 주먹을 맞았다. 난 앙칼지게 외쳤다.

 “그렇고도 당신들이 신을 믿는 자들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뭐? 미친년이 돌았나?”

 그들은 날 더 심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난 무릎으로 바닥을 기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다가 등에서 차갑고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감촉은 내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걸 알려줬다. 난 절망에 빠졌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순간, 내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바닥으로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꺄악!

 

  바닥을 짚은 양손에는 풀잎을 만지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앞에선 따뜻한 온기가, 주변에는 한기가 느껴졌다. 난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자, 무성한 나무들 가운데에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과 함께 내게 달려드는 아기 돼지들, 그리고 모닥불 너머에는 갈색가죽옷과 장화를 신고 잎이 노랗고 거대한 나무를 향해 넙죽 엎드린 사람이 있었다.

 

  아기돼지들은 내 주변에서 코를 킁킁거렸다. 그 사람은 상체를 일으킨 다음, 뒤를 돌아 나를 봤다. 그 남자는 짧은 흑발에 갈매기 눈썹을 가졌으며, 오른쪽 눈썹에 흰 눈썹이 섞여있었다. 피부는 희며, 짙은 눈썹에 약간 찢어져 날카로워 보이는 눈과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졌다. 그는 오똑한 코에 사각턱을 가져서 강인해보였다. 그는 내 차림새를 훑어보며 의심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하긴, 내 양쪽 손목을 묶고 있는 쇠사슬과 쇠구슬을 때문에 의심할 만했다.

 

 난 그가 아무 말도 안하고 날 보기만 하자,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는 날 의심하는 투로 말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감옥에서 투옥되었을 때 신께 절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더니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그 말을 하고나니, 갑자기 초점이 흐려졌다. 그의 얼굴과 모닥불, 나무들이 흐릿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도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내 몸이 그동안의 시달림에 너무 지쳐서인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여기서 쓰러져버리면 안되는데.’

 난 결국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무언가 고소하고 향긋한 허브냄새가 내 코를 찌를 때였다. 3일간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내가 너무 고팠다. 눈을 떠보니, 나무로 새운 벽과 밤이 된 걸 알려주는 널찍한 유리창, 그리고 그 앞에는 잡동사니가 수북이 쌓여있고 왼편에 식기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으며, 모락모락 김을 내는 그릇 세 개가 나란히 놓인 길쭉하고 높은 나무탁자와 등받이가 달린 원형 나무의자 2개, 마룻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누워있던 건 흰 천으로 감싼 밀짚침대였다. 내 손목을 보니, 쇠사슬 자국은 남아있었지만, 쇠사슬은 없었다. 아마도 그 남자가 떼어줬나 보다.

 

  난 죄인이라서 도와주면 처벌받을지도 모르는데 도와준 것이었다. 정말 고마웠다. 상체를 일으켜보니, 내 오른쪽엔 침대 하나가 더 있었고, 문이 2개이며, 내 앞엔 장롱이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 왼쪽엔 철로 만든 듯한 반원형 물체가 벽에 붙어서 가장자리를 노란색으로 빛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방안이 이상하리만큼 밝았다. 그것도 노란 빛으로. 그래도 무척 편하다고 생각했다. 밖에는 밑이 둥근 걸이형 무쇠 솥 하나가 모닥불 위에 걸어져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그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검은색과 하얀색 줄무늬의 고양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거리고 귀를 쫑긋거리면서 노란 눈으로 날쳐다봤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갑자기 사나운 표정을 짓더니, 내게 성질냈다.

 “거지같이 더러운 몰골이다냥!”

 난 그 고양이가 인간 말을 한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 고양이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르면서 내게 모욕적인 말을 한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눈물이 나고 너무 서러웠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데! 거지같다고 욕할 수 있어!?’

  난 그대로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엉어어엉! 흐엉엉엉!

 

 고양이가 내 주위를 맴돌며 말했다.

 “이 여인은 온몸에 멍이 들었다냥. 거기에 수컷인간들이 뱉은 침들이 옷에 덕지덕지 묻어있다냥!”

 덕분에 역겨운 나날들이 기억났다. 그래서 더 서러워졌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 오른손을 잡았다. 나는 눈물을 왼손 손등으로 훔치면서 내 손을 잡은 사람을 바라봤다. 그 남자였다. 그 남자는 내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고양이의 말이 반은 사실이라서 그 고양이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 아닙니다... 훌쩍...”

 “일단 허기지실 텐데 스튜 좀 들고 얘기하는 게 어떠십니까?”

 난 그가 의자에 앉아 나무수저를 들고 스튜를 먹을 걸 권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맡아보는 향긋한 음식 냄새였다. 난 오른손으로 그가 준 나무수저를 쥐고 스튜를 떠서 먹기 시작했다. 몸이 너무 쇠약해졌는지, 오른손이 덜덜 떨렸다. 입안으로 퍼진 향긋한 허브냄새와 고소한 버터를 기반으로 적절한 양의 야채를 넣어 끓인 스튜는 정말 맛있었다. 눈물이 났다. 구타당하면서 굶었던 나날을 생각하니, 너무 서러움이 복받쳤다. 난 더 이상 수저를 들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흐르며 내 턱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그토록 그리웠던 따뜻한 온기가 내 입안을 감돌았다. 그 남자의 목소리가 왼편에서 들렸다.

 “지금 드시기 힘드시면 나중에 드셔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난 울음을 그친 다음, 스튜를 빠르게 비웠다.

 “샤워하실 겁니까? 제 윗도리랑 바지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여자가 바지를 입어도 됩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혹시 여긴 프랑스 오를레앙 아닌가요?”

 “아닙니다. 여긴 프레멘 제국의 동부 끝자락쯤에 있는 그라덴이라는 마을입니다.”

 “혹시 프랑스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처음 듣는 나라이름입니다만...”

 그가 프랑스를 모른다는 것과 내가 모르는 나라의 한 시골에 있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전혀 동떨어진 나라로 왔거나,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면 내 고향으로 가기도, 샤를7세에게 따지기도 힘들었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여기선 바지를 자유롭게 입어도 된다는 것에 대해 안심했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를 보니, 좀 더 자유로운 사회인 것 같았다.

 

 어차피 전쟁으로 인해 부모도, 형제자매도, 같은 마을사람들도 모두 잃어버린 나는 더 잃어버릴 게 없었기에 여기서 살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에게 부탁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옷 좀 부탁드립니다.”

 “네.”

 그는 일어나서 나무장롱 밑에 있는 조그만 2단 나무서랍을 열고 천재질의 검은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다행히 그의 몸이 커서 내게 작을 일은 없었다. 그는 갈색 가죽 끈를 내게 줬다.

 “바지는 흘러내릴 수도 있으니, 이 가죽 끈으로 허리 쪽을 묶으세요.”

 그는 날 위해 소소한 배려까지 해줬다. 그래서 난 이 은혜는 언젠가 갚겠다고 생각하면서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았다. 그는 두 문 중에 왼쪽 문을 열었다.

 “여기가 욕실입니다.”

 욕실도 나무로 지었으며, 문을 열자마자 밧줄이 하나 보였다. 그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탁자 위에 있는 검은색 가죽장갑을 양손에 끼고 밖으로 나갔다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둥근 솥을 가져와서 뚜껑을 열고 안에 담긴 뜨거운 물을 욕실 안으로 뿌렸다. 그러자, 돌바닥이었던 욕실에서 이상한 글자가 돌에서 새겨지면서 푸른빛을 내뿜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지푸라기로 만든 밧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천장에서 물이 장대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젖은 생쥐가 된 체 날 보고 웃었다.

 “이 밧줄을 당기면 4분간 미지근한 물이 천장에서 쏟아질 겁니다. 어차피 저도 나중에 샤워해야하니, 먼저 샤워하셔도 됩니다. 아, 그리고 오른쪽 구석에 샤워 타월이랑 수건, 비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구석엔 그의 말대로 나무 상자 위쪽이 유리뚜껑으로 닫혀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고 있었다.

 “갈아입을 옷도 저기 상자 안에 넣으시면 됩니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욕실 밖으로 나왔다. 난 그대로 들어가서 욕실 문을 닫고 지저분한 원피스를 벗어던진 다음, 갈아입을 옷을 나무상자 안에 넣었다. 그리고 밧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미지근한 물이 장대비처럼 천장에서 쏟아졌다. 오랜만에 샤워하는 거라서 그런 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물이 쏟아지는 게 멈추지, 난 나무상자 안에 있는 한 손에 잡히는 사각형 비누와 갈색 샤워타월을 꺼내서 거품을 내고 내 온몸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너무 아팠다.

 

 끄으으으...

 

 눈물이 핑 돌았다. 샤워를 마친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그가 준 검은 옷을 입었다. 바지가 흘러내리는 바람에 약간 고생했지만, 다행히 그가 미리 가죽끈을 줬기에 바지를 입은 체, 허리부분을 묶어서 바지를 고정시킬 수 있었다. 윗도리는 약간 커서 가슴의 골부분이 드러날 뻔했지만, 다행히도 옷을 뒤로 조금 넘겨보니, 드러나진 않았다.

 “휴우~.”

 양팔소매가 길어서 내 양손이 파묻혔지만, 행동하기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난 더러워진 치욕스러웠던 과거의 상징인 흰 원피스를 손에 들고 욕실을 나왔다. 문을 열자, 그 남자랑 눈을 마주쳤다. 그 남자는 날 한동안 멍하니 보다가 욕실로 들어갔다.

 ‘뭐지?’

 난 지저분한 흰 원피스를 들고 집밖으로 나와서 집 왼편에서 아직도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던져버렸다. 흰 원피스에 불이 붙기 시작하더니 불속으로 활활 타오르며 사그라들었다. 아기돼지들은 모닥불 근처에서 킁킁거리며 놀고 있었다.

  ‘귀엽네.’

 난 그 돼지들에게 다가가서 쭈그려 앉아 등을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돼지들은 기분이 좋다는 듯이 뀌이익 거리면서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순간, 내 등 뒤에서 재수없는 허스키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냥.”

 진심으로 사과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기분이 나빴던 건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 난 웃던 얼굴을 감추고 뒤돌아서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반은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용서해줘서 고맙다냥. 내 이름은 쇼팽. 로드릭과 함께 사는 고양이다냥.”

 ‘그 남자 이름이 로드릭이었구나.’

 “제 이름은 잔느 다르크. 올해로 18살입니다.”

 “18살이냥?”

 그녀는 뭔가 무지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18살이라는 데에서 왜 실망하는 거야?’ 난 살짝 당황했다.

 “네...”

 “나보다 어리구냥. 난 378살이다냥.”

 생각해보니까, 아까 화가 나서 이 고양이가 인간들의 말을 한다는 것을 깜빡했었다.

 “혹시 영물이십니까?”

 “그렇다냥! 난 이 세상에서 세 번째 고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냥.”

 이 세상은 내가 살던 세상과는 정말로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바지도 마음대로 입어도 되고 방안을 촛불보다 더 환하게 비출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은 아직 한 명만 만났지만, 좋은 사람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말을 하는 해괴한 고양이도 만났다.

 “잔느, 너는 연장자를 존중하냥?”

 “네?”

 “그렇다면 내게 편하게 말하라냥!”

 “네...”

 “어서!”

 “알았어, 쇼팽.”

 “좋다냥!”

 쇼팽은 기분 좋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로드릭한테도 말을 편히 하라냥. 그는 그걸 더 좋아한다냥!”

 “뭐?”

 난 그녀가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 있는지 참 궁금했다. 쇼팽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가 바로 로드릭의...”

 뒤에서 파란 천 소매에 감긴 희고 굵직하며 투박한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로드릭은 파란색으로 위아래를 깔맞춤한 차림이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쇼팽은 풀이 죽은 얼굴로 울었다.

 “냐옹~.”

 둘이 사이가 좋아보였다.

 ‘부럽다.’

 난 전쟁터에서 굴러다니느라 그렇게 절친한 사이가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전쟁 때문에 모두 죽었다. 그는 날 보며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로드릭 잭슨. 올해로 23살입니다. 그리고 현재 나무꾼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이 잔느 다르크라고 하셨죠? 말 편하게 놓으셔도 됩니다.”

 “네... 도와주신 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그는 그저 웃다가 양뺨을 붉히며 수줍게 말했다.

 “갚으실 필요는 굳이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갚고 싶으시다면 제 여동생이 되어주세요.”

 “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오라버니라고 부르려니 낯부끄러웠다.하지만 그의 얼굴엔 '제발'이라고 써져 있었다.

  '괜히 말했나?'

 내 양쪽 뺨이 절로 붉어졌다.

 “네, 오라버니.”

 그러자 그가 방긋방긋 웃었다.

 “존댓말은 할 필요 없어. 이만 들어가서 자자. 내일은 네가 이 마을에서 묵을만한 이웃집을 찾아보자. 이곳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착하니까.”

 난 그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응!”

 그는 날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있었다. 난 집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구석에 있는 침대 2개 중 안쪽에 누워서 자려고 했다. 쇼팽은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그는 내 오른쪽에 있는 침대에 누워서 나로부터 등을 돌리며 말했다.

 “만약 네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 있다면, 넌 그걸 평생 기억하지 못하면 좋겠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난 그의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태어난 마을이 잿더미가 되고 그 위에 마을사람들의 시체가 즐비했던 광경과 감옥에서의 모욕, 종교재판에서 신의 이름을 더럽힌 주교들이 생각났다. 토할 것 같았다. 난 속에서 매스꺼움이 느껴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

 “잊고 싶어. 제발 영원히 잊었으면 좋겠어.”

 “그래, 많이 늦었으니깐 이제 자자.”

 그의 목소리엔 나에 대한 연민이 묻어있었다.

 “응, 오라버니도 잘 자.”

 난 그렇게 오라버니의 세심한 배려덕분에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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