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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26
작성일 : 19-10-22 11:29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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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무엇이죠?”

  “글쎄요. 그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알지 못합니다. 마동 씨는 어쩌면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라며 의사는 미소를 보였다. 기이한 미소였다.

  “블라디미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다고 합니다. 전기를 이용했다고도 하고 말이죠. 이 부분은 명확하게 문서화되어있는 게 없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봅니다. 요컨대 작은 촌락 마을의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집들의 전기 문제를 해결해준다거나 또 어떤 한 아이의 말로는 블라디미르는 종종 앉아서 동물들과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동물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는군요. 그래서 아이와 동물이 좀 더 친숙해졌다고 말이죠. 이 대목은 정말 동물들과 이야기를 했다는 것보다 마음을 열어서 동물에게 접근하는 식으로 해석을 하면 될 것 같군요. 아이들의 인터뷰를 옮겨 놓은 전문에 그렇게 나와 있었습니다.”

  “블라디미르가 촌락을 위주로 다닌 것은 도시의 사람들은 블라디미르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나타나면 두려워하며 가까이 다가가기를 꺼립니다. ‘혹시’가 그 ‘능력’이라는 것으로 나에게 헤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런 공포는 꽤 큽니다. 하지만 촌락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순수하여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죠.”

  의사는 잠시 마동의 동공을 다시 한 번 밀도 있게 들여다보았다. 마동은 눈동자가 사라져버린 블라디미르를 생각했다. 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물기 축축한 모습의 피부로 어딘가에 머무르지 못하고 숨어서 살아가야 하는 삶. 그 삶은 고달픔일 것이다.

  블라디미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3년을 다녔을까.

  “그런데 왓킨스와 블라디미르 그리고 대부분의 뇌기능이 발달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동은 정신이 번쩍 뜨이는 눈빛으로 의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의사의 눈은 어쩐지 점점 깊이가 명확하지 않았다. 현실감이 없는 눈동자였다.

  “어린 시절의 강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서 공간감의 상실을 한 번 경험해 봤다는 겁니다. 현 생활에 방해가 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입대까지 가능했으니까요. 어떻든 그들은 모두에게 그런 보고가 있습니다. 왓킨스 사건 이후 미국은 왓킨스와 비슷한 예를 보이는 이들을 찾아서 세계 각국과 교섭을 했고 블라디미르에게 꽤 다가갔었죠. 그들의 연구는 미래의 미국을 건설하는데 섬뜩하게 도움이 되니까 말이죠.”

  “블라디미르는 어떤 모습의 시체로 발견되었죠?”라고 마동은 물었다.

  “수분이 다 빠져나간 모습이었죠. 낙엽처럼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게츠비가 죽었을 때처럼 말이죠. 블라디미르의 행적을 쫓는 미군을 따라서 사활을 걸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애덤스 엔덜러라는 신문기자가 있었습니다. 블라디미르에 관한 칼럼을 신문에 기고를 하면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죠. 블라디미르의 일은 신문을 보는 미국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퍼져나가 세상의 사람들이 블라디미르 체르마니노프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가 고도화시대이긴 해도 지금처럼 초고도화시대가 아니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된 것이 안타깝죠. 미국은 이 칼럼을 러시아에 의한 모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다시 두 나라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저널리스트 애덤스의 칼럼이 세상에 발표되고 좀 지나자 그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러시아는 애덤스가 앤덜러가 사라진 미국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겉으로는 자유국가라고 부르짖지만 속으로는 흉물스럽다며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들에게 포고를 했죠. 자본주의의 병폐를 알렸고 재난자본주의는 인간의 생명보다는 자본을 더 우선시하는 무서운 나라와의 협약을 끊으라고 했습니다. 블라디미르는 수명이 다해서 죽어 버린 사람 같다고 애덤스의 칼럼에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자연스레 생명이 다해 눈을 감은 모습이었고 그의 내부 장기는 노인의 장기처럼 세포가 생명이 다 되어 있었다고 말이죠.”

  “그러면 블라디미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됐죠?”

  의사는 자신이 읽은 칼럼을 다시 재확인하듯 골똘히 생각했다. 머릿속의 수많은 정보의 서랍에서 블라디미르와 그 이외의 사람에 대한 서류를 꺼내서 분리하고 훑어보듯 생각에 몰두하는 눈치였다.

  “그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습니다. 애덤스 엔덜러의 부인이 애덤스가 실종이 되고 몇 년이 지난 후 애덤스가 수집해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의 군부에서 그 실험과 연구에 가담한 과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자료를 정리하여 다시 한 번 블로그에 올리면서 조용하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폭발력은 컸습니다. 누군가 애덤스 부인의 블로그를 본 사람이 자료의 내용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조용하지만 거친 파도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정리해 놓은 자료를 보면 왓킨스는 5년을 더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었다고 되어있었죠.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왓킨스징후를 가진 이들도 길게는 7년을 넘기지 못했다고 되어있었습니다.”

  인간은 아직 500년 후의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500년 후에 그렇게 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천년 이후의 능력을 지금의 인간이 지니게 되면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는 말이기도 했다. 반드시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리게 된다. 수명이 짧아진다는 말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서야 했다. 진화는 때와 시기가 있다. 왓킨스나 블라디미르도 치누크를 만나고 인간의 능력으로 감지해 낼 수 없는 관념을 접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다.

  무엇일까. 그들도 나처럼 친구들이 핏빛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본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닐 것이다.

  “전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것입니까?” 마동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봤다.

  “마침 제가 그 아파트에 볼일이 있어서 갔습니다.”

  “오전에요?”

  “정확히는 새벽입니다. 새벽에 주기적으로 갑니다. 마동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제 환자가 있어요. 노인분인데 당뇨가 심해 합병증이 여러 군데 찾아온 환자입니다. 제가 주기적으로 왕진을 가는 그런 할머니입니다. 늘 새벽에 갑니다.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요. 할머니께서.”

  “새벽에 가서 할머니의 상황을 체크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족은 없어요. 아니 자식들이 해외에 있는데 아파트와 통장을 내주고 생활비를 넉넉하게 보내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죽어도 외국에는 나가기 싫다고 했어요.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는 당뇨합병증이 심각해서 몇 해 전에 가망이 없어 보였는데 뭐랄까, 살아야겠다는 의지 때문인지 좀 더 살 수밖에 없는 자기연민이 강했는지 끈을 놓을 수 없었던지 아직 괜찮으십니다. 매주 제가 보살펴드리기는 하지만 어디 가족만하겠습니까. 당뇨라는 건 참으로 무서운 병이지만 영원히 같이 갈 친구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또 무섭지만은 않습니다. 잘 어르고 달래면 얌전하게 평생 고요하게 같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려면 노력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의사는 시간을 보며 주기적으로 마동의 눈꺼풀을 까뒤집어서 쳐다보았다.

  “옳지, 이제 좀 나아졌군요. 그런데 냄새에 관한 부분은 좀 어떻습니까. 아마도 이전에 맡았던 냄새보다 강하게 후각이 반응할건데 말이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후각이 그렇게 반응할 때 피하려고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그냥 받아들이고 강한 냄새에 적응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주사의 억제제가 당신과 맞는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동공의 반응을 보니 괜찮은 거 같군요.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의사는 분주하게 이야기하며 차트 같은 걸 들여다보다가 다시 마동의 눈을 까뒤집어 보았다. 마동은 눈이 아파서 미간에 주름이 세줄 생겼다.

  “음, 이제 됐습니다. 억제제의 효과가 확실히 나타나는군요. 이제 뜨거움을 느끼던 피부도 가라앉았을 겁니다. 아, 여기에 마동 씨가 오게 된 경위를 말해드려야 하지. 결과론적으로 제가 마동 씨를 발견해서 여기로 데리고 왔습니다.”

  “발견?”

  “그렇죠, 발견했습니다. 왕진을 갔던 집의 할머니는 왜 빨리 가느냐고 물었지만 대답할 뾰족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평소에는 한 시간 정도씩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오곤 했으니까요. 빨리 당신의 몸에 타오르는 화마를 잠재워야 했습니다. 화마는 실제로 몸을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당신 원래 마음의 정화작용 같은 것입니다. 감정을 불태우는 겁니다. 초자아를 넘어선 이드가 마동 씨의 자아를 불태워 없애려고 하는 지도 모르죠.”

  “당신의 뇌는 보통 인간의 뇌 속에 있는 뉴런이나 시냅스의 두 배 가량을 더 보유하고 있어요. 두 배라고 하니 그저 그러려니 하시겠지만 인간의 뇌라는 것이 100억 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래알갱이 정도 크기의 10만개의 뉴런이 10억 개의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어요. 이런 수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범접 할 수 없는 수치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상상 그 밖의 세계인 곳이 바로 뇌입니다. 마동 씨의 뇌는 이런 일반인들의 구성요소보다 훨씬 많은 시신경과 신 피질과 구 피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이라든가 심장박동, 숨쉬기, 위장, 관 운동이 새로이 변이되어가는 겁니다. 마동 씨의 뇌는 보통 좌뇌, 우뇌가 분담하는 공간감을 자의력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완전하게 나눠서 사용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성과 분리적사고, 논리적 기능, 종합적인 전체적 접근성이 자유자제로 좌뇌, 우뇌가 번갈아가며 할 수도 있게 됩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동 씨의 뇌는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어요.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전두엽의 일을 두정엽에서 같이 행할 수 있으며 두정엽이 하는 일, 즉 공간, 계간, 정보의 연합 등의 일을 측두엽에서도 마동 씨의 뇌는 하게 되는 겁니다. 일반인들에게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는 침묵했다.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 마동은 알고 있었다. 마동이 듣고 싶은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전조처럼 침묵은 거무칙칙한 색을 띠고 있었다. 침묵은 허무하지도 않았으며 쓸쓸하지도 않았다. 침묵은 그저 초조했다. 초조함은 패배를 가져오는 묘한 감정이다. 이미 앞에서 등장한 권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 하지만 3막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다. 발사되어야만 하는 총알은 아직 발사되지 않았다.

  침묵은 생각보다 길었다. 준비를 하지 못한 중학생이 수업시간에 발표를 기다리는 것처럼 시간은 검게 가라앉아 정지해있었다.

  “기쁨이라든가 공포의 한계를 넘어서고 그 한정성을 뛰어넘어 버릴 수 있어요.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을 지니게 되면 초능력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마음은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언젠가는 뇌가 그 마음의 순한 부분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뇌는 마음에게 질서를 강요하겠죠, 그리고 체계에 맞게 체재를 확립해갈 겁니다. 쌍방 공유가 아니라 일방통행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흠.

  “고마동 씨, 당신 뇌의 구간에서 뇌간의 기능이 상실되어 갑니다. 뇌간은 웃음에 관련된 육체적 움직임을 제어하는 역할인데 뇌간의 기능이 소멸되어가니 당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것이죠. 인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표출 중 몇 개가 사라지는 겁니다. 대신에 본능적인 감각의 의식은 더욱 발달하게 되어 갈 겁니다.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고단위단백질과 도파민으로 형성된 4제곱센티미터의 왼쪽 전두엽과 번연계가 만나는 a10영역이 작아지는 것입니다.”

  마동은 무슨 말인지 몰라 그저 듣고 있었다.

  “그것을 자극해도 당신은 웃음으로 인한 뺨의 움직임이 일반인들에 비해 아주 미세하다는 겁니다. 그 영역이 작아지는 것이죠. 그리고 서서히 웃음이라고 하는 감정이 마동 씨의 마음에서 사라지는 겁니다.” 의사의 얼굴에서 어느새 미소가 걷혔다.

 

  그래, 나는 웃음이 거의 없다. 웃음이 많지 않을 뿐이다. 라고 생각했다. 웃음을 짓는 얼굴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웃으면 어딘지 모르게 불량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얼굴의 반쪽이 일그러져 보이는 거울처럼 나의 웃음은 부자연스러웠다. 웃음은 사람들과 쓸데없는 관계에 엮이게 될 뿐이었다. 살아오면서 많이 웃지 않았다. 웃음이 나오지 않는데 웃을 이유가 없었고 웃음을 유발시키는 일들이 도처에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마동은 입대해서 자대에 배치를 받고 신병시절에 웃음이 없어서 군기 들린 신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회식자리에서 마저 웃음이 엇어서 선임들이 마동을 관심사병으로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어느 날 점오가 끝이 나고 행정본부에 있는 중대장에게 불려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질문에 대답을 했다. 중대장은 웃음이 없는 마동에게 여기서(행정본부)는 긴장을 풀어도 된다고 했고 마동은 전혀 긴장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아주 편안한 상태입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했고 중대장은 마동의 일지카드에 무엇인가를 기입을 했다.

  “군대에서는 군기와 기강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하지만 웃음이 곳곳에 있는 곳이 군대라네. 웃음이 없는 사병은 로봇과 같아. 전우애를 느끼지 못하는 사병은 군대에서 관심을 둘 수밖에 없네.”

  웃음이 없는 사병은 중대본부의 관심대상이었다. 웃음이 없는 대부분의 사병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극단적인 자해와 탈영을 했다. 군기도 좋지만 웃음이 없는 사병이 후에 무슨 사고를 일으킬지 중대본부는 노심초사였다. 마동은 단지 웃음을 짓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레스토랑에서도 웃음이 없다고 직원들이 좋게 보지는 않았다. 같이 동거를 했던 연상의 여자도 마동에게 웃음기가 없는 얼굴이라고 늘 말하곤 했다. 마동의 얼굴에서 웃음을 볼 수 있는 날이 손꼽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웃음은 타인에게 필요 없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착각하게 만든다. 때로는 의심을 사게 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흩뜨려 놓기도 한다. 마동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올바른 것이라 여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웃어야 하는 시점을 찾지 못할뿐더러 웃음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마동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마동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만들어 보았다. 거울 속 웃는 얼굴의 모습이 몹시 굴절되어 있었고 추하고 지저분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통상적인 웃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웃음이 지니고 있는 경향이라는 것이 무시되어 있었다. 근육을 움직일 줄 아는 ‘개’의 얼굴처럼 보였다. 모순된 웃음이 당착된 얼굴을 만들어 거울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얼굴의 안면 근육이 조금 움직였을 뿐 웃음이 지니는 의미를 자신의 얼굴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웃고 있지만 웃음에서 벗어난 얼굴이었을 뿐이다. 웃음이 전달하려는 이념은 자신의 얼굴에서 소거되어 있었다. 마동은 일그러진 개의 얼굴에서 표정을 풀고 다시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 모습이 마동 자신의 얼굴 모습이었다. 웃는다는 건 자신과 무관하고 먼 세계의 일이다. 그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고 부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이면 된다. 토를 달거나 아니라고 우겨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마동에게도 자연스럽게 웃었던 기억이 그대로 있었다. 언젠가 마동은 자신이 웃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회사에서였고 역시 웃음기 걷힌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웃음을 웃음이라고 자신 할 수 없었다. 그 웃음이외에 회사에서 또 한 번 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인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라는 것이 나왔을 때였다. 는개가 사무실의 파티션 너머에서 마동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동은 고개를 들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는개가 활짝 웃어주었다. 거부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시선을 돌리거나 피할 수 없는 마법의 주문 같은 웃음이었다. 하얀 안개꽃 삼십 만원어치처럼 활짝 피어있는 웃음이라 마동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때도 괴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마동은 미소를 짓던 얼굴에서 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지만 마동은 자신이 웃는 얼굴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잘 알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마동처럼 웃는 모습이 기이한 굴절을 가지고 상식에서 벗어나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대부분 사람들이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는 하지만 찍힌 사진을 보면 자신은 그 얼굴을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되었을까.

  여기서 웃음이 더 사라진다면 개성이 말살된 얼굴이 되고 말 것이다. 그저 백화점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마네킹의 얼굴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슬픈 마네킹’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슬픈 마네킹의 모습을 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마동은 우스워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 그런데 선생님, 의사 선생님은 어째서 그런 저를 알아보셨는지? 처음부터 알고계신건지……. 선생님께서는 혹시 형성변이자를 알고 계십니까?”

  자신의 팔을 접었다 폈다하는 의사를 마동은 보았다. 당신의 말이 무슨 의미지? 하는 표정으로 의사는 대답을 대신했다.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는 잘생겼다. 티브이화면에 나오는 잘생긴 남자연예인에게서 벗어난 얼굴이다. 그저 잘 생겼다는 범주를 뛰어 넘었다.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얼굴일지도 몰랐다. 의사의 잘 생긴 얼굴은 신의 영역 속에 있는 얼굴 같았다. 그렇지만 의사는 인간적이다. 모든 판단은 냉철하게 하지만 마음의 한 부분은 따뜻함이 서려있다고 의사의 얼굴에 쓰여있었다. 따뜻함이 아우르는 의사의 인간성에 사람들이 매료되어서 꾸준하게 의사를 찾아와서 진료를 받는다. 의사는 마동을 보며 웃었다.

  그래, 웃음이란 이렇게 얼굴에 나타나야 한다.

  “무엇 때문에 당신 몸에 변이가 일어나는지 저도 자세하게 모릅니다. 허나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지금 이 초고도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이를 합니다. 그것이 눈에 띄는 변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죠.”

  “마동 씨,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요. 눈에 띄게 변이하는 쪽일까요? 그렇지 않은 쪽일까요. 눈에 드러나지 않게 변이를 하는 인간은 무서워져갑니다. 옆의 누군가를 밟아야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사람들을 점점 변이 시킵니다. 타인의 사정이나 친밀도는 상관하지 않죠. 무섭습니다. 마치 꽃과 같아요.”

  “꽃이요?”

  “네, 들판과 거리에 피는‘꽃’말입니다.” 의사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동이 여자였다면 분명히 의사에게 매료되어서 저녁약속을 잡았을 것이다.

  “꽃은 겨울에 사라졌다가 봄이 되면 어김없이 핍니다. 그것에 이변이 없어요. 불변입니다. 매년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고 시간이 되면 말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는 동안 인간은 나이가 들어 서서히 늙어가죠. 아프고, 병들고, 때로는 삶을 고통 속에서 허덕입니다. 하지만 꽃은 그런 인간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아요. 때가 되면 처음처럼 마치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무심하게 예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죽어 가지만 꽃은 생생하게 피어납니다. 필멸하는 하는 인간에 비해 피고 지는 것으로 꽃은 영원성을 유지합니다.”

  분주하던 의사의 손놀림이 멈추었다. 의사는 마동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의사의 손바닥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전이되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의사의 손바닥이 말을 하는 건지 변이를 피하려 들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마동의 어깨를 정확하게 3번 두드렸고 손을 치웠다. 그리고 결심한 듯 의사의 얼굴이 마동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는 의사의 얼굴은 분명히 여자들이 반할만한 얼굴이었다. 의사는 자신의 눈을 마동에게 아이컨택 시켰다. 의사의 사려 깊은 두 눈 속에 점점 깊이가 사라져갔다. 방금까지의 의사의 눈빛이 아니었다. 마동은 지금 의사의 두 눈 같은 눈동자를 본적이 있었다. 흔한 기시감이 아니었다. 사라 발렌샤 연시엔의 눈동자에서 본적이 있는 무깊이의 눈동자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이제 흐려져서 떠오르지 않았지만 깊이를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그녀의 세계가 의사의 눈동자 속에 있었다. 마동은 의사의 눈동자 속에서 밤바다 같은 거울 속에 비친 깊이가 없는 눈을 떠올렸다. 깊이가 사라진 거울 속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순간 모든 공간이 암전되었다. 암흑으로 전이가 되는 풍경으로 변했다. 마동은 거울을 통해서 바라본 눈동자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을 의사의 눈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안의 모든 사물이 정지해버리고 공기가 쑤욱 하며 팽창하더니 엷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거울을 바라볼 때처럼 암전이 되었다. 암순응도 소용없는 암전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제 아버지도 그 문명이었고 저도 그렇고 마동 씨도 문명 속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연극이 필요로 하는 각각의 요소 같은 것입니다. 연극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배경이 될 수도 있고 소품이기도 합니다. 우리들 눈에 비치는 고요한 물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는 우리와 전혀 다른 이들도 같이 섞여 공생을 하고 있습니다. 섞여서 공생하는 이질적인 존재는 우리 육안으로 분간할 수 없습니다. 성폭력범을 외모로 집어 낼 수는 없습니다. 기생충 역시 눈으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살인자를 옷 입는 모양새로 찾아 낼 수는 없어요. 도로 밑의 지하에 내려가면 하수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존재의 실체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본다고 생각하세요? 아주 적은 양과 작은 부분만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시각에 대부분 의존을 하죠. 하지만 시각을 넘어선 다른 감각으로 생존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많은 존재적 증명들이 서로의 얽히고설킨 꽈리처럼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들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야생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생태계는 인간에 의해서 점점 파괴되어 갑니다. 지적인 존재라고 불리는 인간이 어째서 파괴본능이 가장 강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들도 우리에게 우호적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오랜 세월을 거슬러 내려오는 동안 법규처럼 확고해진 것입니다.”

  의사는 마동에게 두시간정도 쉬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마동은 회사일이 바빠서 나가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의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한 번 보이고 방을 나갔다. 암전이 걷힌 방은 다시 온화한 빛으로 돌아왔다. 의사가 보였던 웃음 속에는 회사에 가봐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모습을 유지한 채 얼굴표정은 방에 남아서 의사가 나갔음에도 한참을 떠돌다가 사라졌다. 의사가 나가고 나니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불안한 구체성을 띠며 마동의 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어깨에 올라탔다. 그것은 초조함이었다. 쓸쓸함이었다면 이렇게 두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조함은 심장을 누르고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인간은 두려움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함으로 두려움도 함께 소멸한다. 사랑을 시작함과 동시에 두려움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사랑은 초조함을 부른다.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종식되어야 초조함도 끝이 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행복한 시간을 이어 붙여 봐야 고작 십년정도 뿐이다. 어떤 세대든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인간은 어차피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향해가는 긴 항해를 하는 것뿐이다. 그 항해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는 행복은 항구에 배가 정박하고 잠시 쉴 때 뿐이다. 오로지 거친 파도와 싸우며 멀미를 하고 절인생선만 먹어야하고 사고에 늘 노출되어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 속에서 닥쳐오는 초조함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공포에 벌벌 떨며 심약해지는 인간의 다른 마음과 부딪혀 상처를 입는다.

  초조함은 언제부터 인간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걸까.

  마동은 초조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늘 주위에 도사리고 있던 초조함에서 벗어나는 훈련과 타협, 태권도 1장을 수련하듯이, 사격을 연습하듯 훈련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초조함을 피해가려고 하지 않고 맞이하는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왔다. 하지만 실체가 전혀 없는 초조함에 대한 준비는 너무나 미비했다. 초조함에 대한 방어가 뚫리는 순간 그것은 굳센 두려움으로 변질되었다.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

  병이 몸을 갉아먹는 두려움.

  우연한 사고에 의해 극복하지 못할 몸 상태가 되는 두려움.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난 두려움의 그림자가 마동의 마음을 총체적으로 묶어 버렸다. 95년 일본 도쿄지하철에 뿌려진 사린가스의 공포를 알고 있는 사람과 흡사할 것이다. 군사전시살상용 사린가스를 제조한 옴진리교는 도쿄의 여러 구간의 지하철에서 사린가스를 나누어 봉투에 담아서 운반하고 우산의 뾰족한 끝으로 터트렸다. 사린은 휘발성이 강해 공기 중에서 대기의 흐름을 타고 빠르게 이동을 하며 공기보다 5배정도 무거워 바닥으로 번져간다. 무색무취의 액화가스로 말 그대로 인명살상용 신경가스다. 액체의 경우 몸무게 70킬로그램인 성인이 0.7mg이상 마시면 1, 2분 이내에 사망하게 되고 기체의 경우 공기 중에 농도가 70mg/m3 이상이면 그대로 즉사하는 무서운 독가스이다. 사린가스는 2차 대전 중 독일의 나치가 개발해 이란, 이라크전쟁과 이라크 쿠드르족 진압 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의 지하철에서 사린가스를 마신 사람들은 쓰레기봉투처럼 픽픽 쓰러졌다. 빈혈처럼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듯 하더니 몸에서 기운이 어딘가로 몽땅 빨려나가 버리고 한 발, 두 발 걸음을 떼다가 도로위의 화단에 그대로 맥없이 쓰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영화 속의 장면처럼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구급차가 왔지만 응급처치 방법을 몰랐다. 사람들은 길거리 곳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 무서운 가스 때문에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매일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초조는 아토피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의 뇌에 암처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병명도 불확실하며 가족과 주위사람들도 힘겨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살아남아서 괜찮아져야 할 생활이 초조함으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마동은 놓이게 되었다.

  의사가 방을 빠져나가는 순간 초조함이 몸을 덮쳤고 두려움이 되어서 마동을 짓눌렀다. 상식에서 벗어난 두려움을 겪게 되면 코마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식이나 경험에 포함되지 않는 초조함이 생활전반에 진을 치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초조함이 자아내는 두려움의 크기는 생각의 한계를 넘어버린다. 인간의 몸은 그런 공포를 이겨낼 수 없어서 병실의 환자처럼 고통스러워한다.

  초조함이란 그런 것이다.

  두려움이란 그런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 무서울 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을 스스로 감는 것과 어떠한 힘에 의해서 무력하게 눈이 억지로 감기는 것 사이에는 일종의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성으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두려움을 떨쳐 내려고 우리는 오래전에 전구를 만들었고 가족을 꾸려 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회사에서 마동을 찾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회사는 마동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조직은 개개인을 통제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개개인은 조직에 속한이상 조직의 이익을 창출해 내야한다. 마동은 그런 기본적인 틀을 잘 지키며 지금까지 생활을 해왔다. 마동의 기본 틀이 며칠 만에 깨져 버렸다. 앞으로 회사에서 다시 일 할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일을 하고 싶다.” 공허한 방안에서 마동은 소리를 내어 조용히 말을 해 보았다. 소리는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방안에서 방황하다 안타깝게 사라졌다.

  이제 정원이 딸린 집에서 향이 좋은 소나무를 심어놓고 매일매일 쳐다보는 생활도 할 수 없겠지.

 

  늙은 소피가 한국에 가끔씩 놀라와서 소나무를 구경한다. 늙은 소피는 남편과 딸 둘을 데리고 나의 집에 휴가를 온다. 딸은 쌍둥이다. 소피를 닮아 아주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다. 소피는 정원에서 늙은 나와 나의 가족과 함께 와인을 즐긴다. 와인에 어울리는 육즙이 좋은 한우를 구워먹고 있다. 정원 가득히 고기 굽는 냄새가 풍기고 우리들은 와인을 곁들이며 짧은 시간의 행복이지만 불평 없이 만끽한다.

  -미국의 생활은 어때? 소피

  -동양의 멋진 친구, 우리는 잘 지내지. 매년 초대를 해줘서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와인을 연거푸 세잔을 마시고나니 술기운이 올라온다. 우리들은 이제 늙었다. 오래전의 젊음은 모두 사라지고 시대는 변했다. 세대는 교체되었다. 각자 어려운 일도 있었다. 몸과 정신의 변이를 거쳐야 했고 성인 영화에 노출을 끊임없이 보이며 타인의 눈초리를 받고 타인을 피해서 다녀야했다. 대통령은 보호무역인 나라를 비판하면서 우리나라마저 저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돌려버렸다. 공익사업의 상당한 부분도 민영화를 시켰다. 생필품의 물가는 매년 20원씩 올랐으며 성범죄자들의 사형제도가 생겨났다. 의미를 지니는 모든 부분이 하나씩 사라져가거나 또는 생성되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애벌레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각각의 나라에서 가족을 만들었고 세월이 흘러 모두 늙었다. 소피는 일선에서 물러나 캠페인회사에서 일을 했고 앞으로도 죽 할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미국인 스티브와 결혼을 하여 예쁜 쌍둥이 두 딸을 낳았다. 소피는 쌍둥이를 낳을 당시 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아기들이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 복용하던 약도 중단했고 쌍둥이를 낳겠다는 일념 하에 목숨을 걸었다. 수술대에 붙어있는 계기판의 수치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소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이들을 낳았다. 또 하나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소피는 아이들을 낳고 스티브를 통해서 나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했고 나는 매년 여름이면 소피의 가족을 집으로 초대해 휴가를 즐긴다. 우리들의 모습에서 젊음이란 모두 사라졌지만 약간의 여유로움과 안정이 오래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돌아가 봐야 한정된 기능 속에서 그 기능을 이빨이 있는 지렁이가 갉아먹는 소리처럼 소름 돋는 생활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원의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뛰어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다. 행복한 시간이다. 소피의 가족에게서, 나의 가족에게서 초조함이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중년의 소피와 나보다 7살이 많은 스티브는 한우의 맛을 느끼며 와인 잔을 부딪쳤다. 나는 연거푸 와인을 몇 잔이나 마셨다. 입안이 꺼끌꺼끌하다. 소피는 한우가 든 접시와 와인 잔을 들고 나의 아내 옆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와인을 많이 마셨는지 조금 어지럽다. 아내의 얼굴이 가물가물 거린다. 아내의 채취가 빠져나와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어이없게도 그런 모습을 눈으로 보고 있다. 소피가 어느새 옆으로 와서 와인 잔에 와인을 부어주었다.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어지러워 양손의 검지로 관자놀이를 세게 누른다.

  -동양의 멋진 친구,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당신이 바로 나니까.

  당. 신. 이. 바. 로. 나. 니. 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오래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와인 잔을 손으로 들어 올리다가 고개를 든다. 늙은 소피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하고 숨 막히는 가슴골을 내보인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로 바뀐 소피의 얼굴은 흐릿하게 막이 껴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내를 찾는다. 아내가 내 곁으로 달려왔지만 아내의 얼굴도 지우개로 뭉개 놓은 그림처럼 알아 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한손에는 한우가 담긴 접시를 들고 나에게 와서 접시를 보여주었다. 접시에는 어린 시절 철길에서 분쇄되어 흩어져 버린 아이들의 살점들이 놓여 있었다.

  -당신이 바로 나니까.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내가 당신이니까요.

  눈을 떴다. 의사가 나가고 마동은 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꿈을 꾸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보였지만 얼굴형상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도 성몽 뒤에 밀려드는 현실과 비현실의 감각이 무뎌지는 현상 같았다. 마동은 눈두덩을 두 손가락으로 야무지게 비볐다. 눈꺼풀에 화풀이라도 하듯 억척스럽게 손가락을 돌렸다.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꿈에 나타나고 나면 현실에서는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떠올리면 거짓말처럼 는개의 얼굴이 그 위에 덧입혀져 나타났기 때문에 초조함은 더 크게 들었다.

  어째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는개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에 겹쳐 나타나는 것일까. 는개 때문인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먼 기억 속의 기찻길 위에서 희미한 태양빛을 받으며 옆에 누워서 나의 손을 잡아 주며 웃어 주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어린 시절 병원 복도에서 내 손을 잡고 그 길을 같이 걷던 따뜻했던 손의 주인공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마동은 병원을 나왔다. 휴대전화가 없어서 회사에 연락을 할 수 없었고(하기 싫었다) 누군가가 어디서 연락을 했을지도 알지 못했다. 분명 회사에서는 연락도 없이 결근을 해 버린 마동에게 많은 연락을 했을 것이다. 아마 소피도 트위터로 메시지를 넣었을 것이다. 소피와의 소통은 오로지 트위터로 하기 때문에 다이렉트 메시지로 연락이 몇 개나 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메일이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소피는 이제 곧 아시아 프로모션 투어로 한국에 올 예정이다. 소피가 한국에 오면 노란빛이 감도는 분위기가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단맛이 가득한 조각케이크를 먹으며 당분 따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소피는 한국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고 한국인에 대한 나쁜 기억은 선물상자만큼 크게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피는 마동과 인터넷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다. 비록 하루 동안이지만 마동은 소피에게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평범하지만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언젠가 소피는 자신의 매니저가 한국산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고 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여러 가지 전자 작동 장치가 촘촘하고 아주 편리하다는 이야기를 마동에게 했다. 소피는 미국 드라마 로스트를 즐겨 본다고 했고 그 속의 한국배우 김윤진이 신비로운 배우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피를 제대로 잘 만날 수 있을까.

  밖으로 나온 마동은 혼자 긴팔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걸 알았다. 티셔츠의 촉감이 새끼고양이 털처럼 부드럽고 가우디의 작품처럼 고급스러웠다. 아마 고가의 티셔츠 같았다. 옥상의 난간으로 올랐을 때 입었던 옷은 전부 재가 되어 버렸다. 실제로 연소가 되어 버렸다. 병원의 작은 방에서 잠들 때 이 옷을 의사가 입혔을 것이다. 소피의 가족과 보내는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발기해 있었다. 페니스라는 핏덩어리는 때때로 머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살아있는 개체였다. 아마도 병실에 데리고 왔을 때에도 발기했을 것이다. 이 옷은 의사나 분홍간호사가 의사의 옷을 마동에게 입힌 것이다. 왜인지 의사가 자신의 발가벗은 몸을 봤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창피함이 몰려왔다. 발가벗고 있을 때 페니스가 천장을 보고 서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 부끄러웠다.

  발가벗은 나를 업고 병원까지 어떻게 왔을까. 마른 몸이라고 해도 성인이고 몸이 축 늘어진 인간은 상당히 무게가 나갈 텐데.

  그런 자신의 몸을 업고 온 의사를 생각하니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의사는 일반론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확신이 들었다.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는데 이것하나는 확실했다. 더불어 창피함은 더욱 커졌다.

  내 옷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일까. 나는 암흑의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동안 자아가 연소되고 있었던 것일까. 그곳은 정말 지옥이었을까. 나는 죽음을 경험하고 나온 것일까. 최원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내가 경험한 죽음의 그곳으로 최원해가 간 것일까. 이 모든 게 전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는개는 이런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무엇 하나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변이가 시작되고 끝없는 질문이 이어졌고 답은 흩어져 있었다. 화학문제처럼 모른다고 아무 답이나 체크 할 수도 없었다. 의사는 마동에게 피부는 빛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긴팔의 티셔츠를 입혔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도 긴팔의 긴 옷이었는데.

  마동은 그녀를 생각했다. 하지만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뜨거운 태양이 하늘의 저쪽에 솟아올라 아스콘을 끈적끈적하게 만들어 버리는 열기를 뿜어내고 있음에도 마동은 덥다고 느끼지 못했다. 선글라스를 썼다. 그리고 거리를 나섰다. 평일의 이 시간에 나서는 것은 언제나 낯설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착지가 불명확한 상태에 한낮에 돌아다니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학생들이 수업해야 할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학교 밖을 나서는 순간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지니는 것처럼 평일의 이 시간, 거리는 마동에게 낯선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평일임에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며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겨울보다 사람들이 이 시간에 더 많아 보였다. 사람들은 더위에 인상을 쓰면서도 잘도 걸어 다니고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평일의 낮 시간에 건물 속에서 꽁꽁 틀어박혀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이나 맞으며 일만 한다면 낮 시간에 장사를 하는 곳은 굶을 것이고 전력은 과포화를 넘어서서 공급과 수급이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서 일하는 자들은 국민의 대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것에 대해서 논의 한다고 세금을 야금야금 먹어가기만 할 것이다.

  세계는 마동이 모르는 사이에도 불공평하거나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동은 휴대전화로 누가 연락이 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낚시를 할 때 물에 담긴 찌는 어느 정도 높이에 맞추는지 가늠해 보듯 마동은 생각을 했다. 낚시? 마동은 소피가 오면 소피를 졸라 낚시하는 곳으로 데리고 갈까 하고 생각하느라 걷던 길을 잠시 멈춰 섰다. 물론 소피는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그러지 못하겠지. 언젠가 소피가 시간이 많이 난다면 낚시를 하러 같이 가야겠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리고 곧 허황된 생각이라고 입 꼬리를 살짝 움직였다.

  낚시는 천천히 고요하게 시간을 죽여 가는 행위다. 물론 바다에서 하는 다랑어낚시는 지칠 줄 모르는 5세 미만 사내아이의 에너지처럼 역동적이고 시간이 훌쩍 가버리지만 마동이 말하는 건 그런 낚시가 아니다. 낚시는 오로지 낚시만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낚시를 하러 가서 티브이 광고에서처럼 책을 읽거나 누워서 주위의 정취를 즐기며 음악을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면 낚시가 되지 않는다. 낚시를 하게 되면 조금은 전투적인 마음가짐을 지니게 된다. 옆 사람은 낚싯바늘에 미끼를 꽂아서 강물에 던지자마자 고기를 낚아 올리는데 나만 그러지 못한다면 묘하게 분한 감정이 들면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낚시를 하려면 미끼를 지속적으로 끼워줘야 한다. 지렁이를 시종일관 바늘에 꽂았다가 뺏다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손에 비늘과 고기의 비린내 그리고 지렁이의 살점과 피가 금세 묻어서 책을 읽거나 앉아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낚시를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오직 찌를 쳐다보며 시간을 죽여 가는 것이다.

  물고기와 나와 흘러가는 시간.

  삼원색이 한데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찌를 소피와 함께 나란히 앉아 노려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망성은 한국에 백야현상이 일어날 만큼 가망성이 없다.

  도로의 아스콘은 태양의 이글거림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복사열을 고스란히 대기로 올려 보냈다. 복사열로 인해 세상에서 제일 떫은 감을 씹는 표정을 한 사람들이 그늘이 있는 버스 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마동의 눈에 보이는 세계는 누가누가 인상을 더 쓰나 내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간에 인상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든 미묘한 곳에 마동은 더위도 타지 않은 채 덩그마니 서 있었다. 그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9017번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를 하는 모습을 봤다. 버스의 배가 갈라지고 우르르 그곳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미간에 주름이 접혔다. 앞문으로 사람들이 미간을 좁히며 올라탔다. 마동은 바지주머니에 지폐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9017번의 버스에 올라탔다. 바지주머니에는 의사가 넣어놨는지 만 원짜리가 3장이 들어 있었다. 바지의 촉감도 짧은 털을 가진 동물의 등처럼 아주 부드러웠다. 바지의 허리춤을 뒤집어 보니 페라가모였다. 버스를 타고 만 원짜리를 건네주니 잠자리의 눈 같은 선글라스를 쓴 버스기사가 마동을 잠시 훑어보더니 레버를 당겨 동전으로만 우르르 거슬러 주었다.

  손으로 동전을 그러모아 바지 주머니에 넣으니 바지가 묵직해졌다. 마동은 이 버스의 노선을 알지 못했다. 버스넘버가 네 자리의 완행버스였다. 버스는 보통의 버스와 다르게 오래되었고 버스 안은 밖의 날씨보다는 나았지만 에어컨의 기능이 시원찮은지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도 연신 부채질을 했다. 누군가는 요즘 이런 버스가 어디 있냐며 투덜투덜 거렸다. 버스기사는 승객들의 불만에는 관심 없다는 듯 선글라스의 시선은 차창 앞을 주시하며 운전을 할 뿐이었다. 버스는 음악도 이야기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버스의 엔진소리만 새벽의 내과병동 환자들 기침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마동은 버스 뒷자리에 자리가 비어서 그곳에 가서 앉았다. 동전이 닿는 소리가 짤랑거렸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후텁지근한 날씨에 일그러진 얼굴을 한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평일이지만 베스킨라빈스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만두모녀가 앉아서 만두를 먹었던 만두가게는 여전히 사람들이 없겠지.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를 하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집어 삼켰다. 다섯 명이었고 그녀들은 버스의 뒤로 까르르하며 몰려왔다. 그녀들에게서는 더위에 잘 익은 복숭아의 냄새가 풍겼다. 그녀들의 얼굴은 무더위와 태양에 내준 탓인지 벌겋게 익었지만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개의치 않고 그녀들만의 대화를 나눴다. 엔진소리만 요란하던 버스 안에 여학생들의 웅성거림이 퍼졌다. 여학생들이 말을 할 때마다 뜨거운 복숭아의 냄새가 같이 번졌다. 버스는 인생포장마차 같은 곳이었다. 포장마차 안은 직위나 세대에 상관없이 몰려들어서 문어다리나 해삼 등 여러 가지 술안주에 소주를 마실 뿐이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마동이 앉아있는 뒷자리에는 노인도 앉아있었고 마동의 앞자리에는 중년의 부인도 앉아 있었고 청년도 있고 마을이장처럼(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보이는 사람도 있고 20대 여인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여고생들이 올라탔고 그녀들은 버스 안의 정적을 와장창 깨뜨렸다. 흘러가는 것이겠지만 그녀들도 시간에 타격을 입으며 대학에 입학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들어 같이 잠을 자고 배신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에 눈을 뜰 것이고 회사에서 자신을 버려가며 일에 파묻혀 추억 따위는 점점 잊어 갈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대부분의 추억은 잊혔다. 추억은 기억과는 또 다른 것으로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공유한 것이다. 잊으려고 발버둥 친 기억은 유리벽을 너무나 깨끗이 닦아놔서 그 속을 더욱 환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잊기 싫은 기억은 먼지가 쌓이고 뿌옇게 막이 껴서 닦아도 소용없게 된 모순을 지니고 있다. 경운기의 바퀴에 몸과 머리가 갈리면서도 아버지는 웃었다.

  왜 웃었을까. 죽음으로 가면서 웃어버리는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찻길에 누워 있다가 조각조각 분쇄되어 버린 어린 친구들의 얼굴은 밤마다 꿈에 나타났고 자살을 한 군대동기의 그 녀석은 책속에서 튀어 나왔고 임신했던 연상의 그녀가 배에 공을 맞고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 고등학교 시절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무엇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떠오르는 장면도 없었다. 좋은 기억의 회로는 어디에도 어디로도 닿을 수 없었다.

  새삼 화가 났다. 주먹을 쥐고 버스의 유리창을 깨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자신도 모르게 꽉 쥐었다. 왕창 다 깨버릴 수 있을 텐데, 하고 마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마동은 버스 안을 다시 둘러봤다.

  저 사람? 저 사람?

  누군가와 눈만 마주쳐도 일어나서 그 사람의 얼굴을 한 대 후려갈겨 주고 싶었다. 무의식이 불결하고 불온한 사람의 얼굴을 못 쓰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었다. 힘을 주며 꽉 쥐었던 주먹의 힘을 서서히 풀었다. 버스는 어딘가로 계속 갔다. 목적지를 향할 것이다. 그것이 버스의 역할이며 균형이다. 마동은 이 도시에 오랫동안 살고 있지만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버스는 일단 시내를 벗어나 시 외곽 쪽으로 가게 된다. 마동이 살고 있는 바닷가와는 다른 지역의 바닷가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이 버스는 이제 묵교동을 거쳐 오경이라는 작은 항구마을의 정류장에 멈추게 된다. 마동은 아직 그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버스는 거대한 사거리를 지나 도심을 빠져 나가려는 준비를 했다. 쁘아종제과점을 지났고 저녁이면 사람들이 흘러넘칠 술집과 먹거리가 가득한 골목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작은 동네의 정철원 산부인과를 지나고 꿈나라소아과를 거쳐 경찰서를 지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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