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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붉은 마음 - 반려(伴侶), 너의 자리
작가 : 지연(금난비)
작품등록일 : 2016.10.7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 이벤트에 당첨된 지연. 일생일대의 행운에 부푼 기대를 안고 찾아간 매장에서 이제 막 상위 0.1%의 고급 대접을 받으려던 그 때, 정말 생뚱맞게도 공간 이동을 한다. 그래. 좋다, 이거야. 공간 이동, 차원 이동 이런 거 전부 내가 원하던 일이란 말이지.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내가 속옷을 갈아입는 이 순간이냔 말이야! 그리고 처음 마주친 사람은 칼을 들고 설쳐대는 미친놈이라니! 나 그냥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래! 앙큼 내숭 변태녀와 냉혹 까칠 우울남의 마을 재건 프로젝트 시작!

 
2화. 입이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작성일 : 16-10-08 16:44     조회 : 346     추천 : 0     분량 : 5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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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흠, 으흥, 방금 좋은 생각이 났어요. 오호호호."

 

 "좋은 생각이 뭔데요? 저 궁금한 거는 못 참는데. 헤헤."

 

 

 불안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미소에는 사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맑은 미소를 흘리며 사장의 앞으로 바짝 붙는 연지의 모습에 지연은 더욱더 불안해졌다.

 

 저런 사악한 눈을 보고도 아무런 의심도 없다니, 지연은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연지는 두 손까지 모아 쥐고는 사장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던 사장은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그녀들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들 뒤에서 사장은 웃었다. 그것도 아주 음흉한 미소로.

 

 지연과 연지 두 사람의 등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말을 걸어 오는 사장의 목소리는 지독히도 즐거운 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얼굴 가득 방글거리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탈의실 문 앞까지 두 사람을 밀어붙인 사장이 장난기 가득 담긴 목소리로 명령하듯 말을 이어갔다.

 

 

 "두 분, 각자 고른 속옷 서로 바꿔 입고 나와보세요."

 

 '이건 또 무슨 말이야?'

 

 

  *

 

 

 연지 씨가 고른 속옷은 화려하지도, 도발적이지도 않은 은은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은색 실로 표현한 작은 꽃들이 알알이 박힌 것이 막상 입어보니 꼭 마음에 들었다.

 

 그래, 그랬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잊고 탈의실에서 나온 건데, 그랬는데...

 

 

 '나는 왜 지금 그 속옷을 입고 도망가고 있냐고!'

 

 "우와아악, 악악악아아악!"

 

 "꺄아아아악! 오지 마, 오지 마! 사람 살려!"

 

 

 아수라장이다. 아니, 이곳은 지옥이다.

 

 생지옥.

 

 괴상한 울음소리와 정말 잘 맞는 외모를 소유하고 있는 괴생명체는 지연을 잡아먹으려고 작정한 듯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런 집요하고 집착적인 괴수의 행동에 지연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직선이 아닌 뱅글뱅글 원을 돌면서.

 

 벌써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아! 안녕, 허리가 휘어진 나무야. 벌써 여러 번 마주치는구나. 건너편의 식물아,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너는 꽃이니, 풀이니...

 

 

 '… 그러니까 빨리 그 무지막지해 보이는 칼로 이 괴물 좀 처리해 달란 말이야!'

 

 

 그리고 그녀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눈은 위험에 처한 지연의 모습을 보고도 무심하고 차가웠다.

 

 

 '야! 지금 위험에 처한 사람 안 보여? 뒤에 괴물이 따라오잖아. 그 칼 저 괴물 죽이려고 꺼낸 것 아니었어? 그러니까 내가 그쪽으로 데려갈 테니까 빨리 잡아줘!'

 

 

 남자의 손에는 날카롭게 빛나는 검 한 자루가 쥐여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날 구해줄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다. 소심한 지연은 말도 못하고 계속 그의 앞에서 돌고만 있었던 것이다.

 

 

 "헉! 헉!"

 

 '자, 여기 사정 거리야, 지금 빨리…'

 

 "… …"

 

 "우악아, 꾸우우아악!"

 

 "꺄악! 저리 가! 엄마야!"

 

 

 그와 멀어졌다.

 

 바람이 분다. 살랑살랑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다. 지연의 젖은 머리카락이 안쓰러워 보듬어주기 시작했다. 그 보살핌에 기운을 얻은 것인지 지연의 다리가 조금 힘을 내기 시작했다.

 

 

 "헉! 허억, 허어억!"

 

 '다시 한 번, 지금이야!'

 

 "… …"

 

 "우우우우아아악!"

 

 "이런, 미ㅊ ㅣ …!"

 

 

 또다시 그와 멀어지고 있다.

 

 일평생을 살면서 바르고 고운 말만 하던 우리의 지연 양 입에서 결국 외마디 욕이 나왔다. 그것이 안타까운 바람이 소리를 내어 그녀의 뒷 말을 묻어주었다.

 

 하지만 한 번 터져버린 입은 멈추지 않고 신바람 나게 육두문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새ㄲ (괴물 : 아아악우우왁), 헥 헤엑! 위험에 처해 있는데 그렇게 구경마ㄴ…"

 

 "… …"

 

 "구경만 헤에엑, 하고 있냐! 인정머리 없는 미ㅊ(괴물 : 우우아악) ㅅ ㅐ(또 괴물 : 왁와악악아악)야! 헥, 헤에엑!"

 

 "… …"

 

 "아까부터 도와 헤엑, 달라고 그렇게 소리 쳤… 하아아악!"

 

 "… …"

 

 "어떻게 꼼짝도 안 하고 우욱, 나 토할 것…"

 

 "… …"

 

 "개ㅅㅐ(...괴물 : 꾸꾸우아아아악). 시끄러워! 괴물 자식아! 왜 욕할때마다 같이 소리 지르고 지ㄹ(...괴 : 까악)이야! 저 ㅅㅐ(... : 우우왁왁와악)가 못 듣잖아. 조용히 해!"

 

 

 그들의 주변 나무가 동요할 정도로 큰소리를 내지르며 지연이 괴물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남자에 대한 분노로 이성을 잃은 그녀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지금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들은 모조리 죽인다.

 

 괴물을 향하는 그녀의 눈이 무서울 정도로 진지했다. 망설이지 않고 뻗은 주먹이 정확하게 괴물의 몸을 강타했다.

 

 

 "끼우우우우우악!"

 

 

 커다란 괴물의 울음소리에 남자에 대한 분노로, 흥분으로, 산소 부족으로 잠시 밖으로 나갔던 지연의 이성이 돌아왔다.

 

 그녀의 눈에 괴물이 보였다.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괴롭혔던 괴물은 몸체가 반 이상 뚫린 상태로 지연의 발 앞에 쓰러져 있었다.

 

 

 "아아."

 

 

 고상한 신음을 내며 지연의 몸이 무너졌다.

 

 

 '몸에 닿지 않으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피했는데.'

 

 

 희미한 정신 사이로 보이는 괴물의 몸이 점점 커질수록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녀의 육체는 자석에 끌리듯 그것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괴물의 감촉을 느낄 수 없었다.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 괴물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안돼!'

 

 

 질긴 정신력의 지연은 그때까지도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고개를 들었다. 아주 강한 애원의 눈빛이 곧바로 남자를 향했다.

 

 

 '도와줘.'

 

 

 그렇다. 지금 그녀의 몸은 땅바닥, 그것도 작은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주 단단한 땅을 향해 쓰러지고 있었다.

 

 남자가 움직였다. 드디어 남자가 움직임을 보였다. 비록 팔짱 낀 팔을 푸는 행동이었지만 돌처럼 서 있기만 하던 그였기에 그 작은 움직임도 지연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그래도 저 ㅅㅐ, 저 남자 덕분에 머리를 다치지는 않겠구나. 지연의 눈에서 급기야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말 딱 거기까지.

 

 그는 그 행동 이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저 미… ㅅㅐ… 가 끝까지!'

 

 

 -철퍼덕

 

 

 오랫동안 공중부양한 것처럼 보였던 지연의 몸이 드디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돌처럼 굳어있던 그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연을 향해 걷는 걸음이 묵직하다. 지연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검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 걸음만큼의 거리를 두고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지연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무섭도록 강하다. 자신을 향한 살기를 느낀 것인지 지연의 몸이 흠칫 떨렸다.

 

 

 -스스스, 촤아아아.

 

 

 말 없는 그를 대신해 바람이 강하게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그의 아름다운 은색 머리카락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그의 차가운 기운이 바람을 타고 주변으로 번졌다.

 

 나무들이, 숲이 그들을 대신해 수다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

 

 

 "형준 씨. 사랑해."

 

 어둠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자가 애달프게 말하고 있다. 그녀의 눈망울이 진실이라고 절실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사랑을 받는 당사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다.

 

 안타까운 손짓이 그의 얼굴을 향하지만 남자는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여인은 모든 것을 단념한 표정으로 멀어져 갔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애달프면서도 무섭도록 무거웠다. 그들을 바라보는 지연의 가슴이 먹먹하게 아려왔다.

 

 

 "어? 잠깐만요, 이봐요! 거기 위험해요!"

 

 

 멀어져 가던 여인은 곧바로 강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지연이 다급하게 그녀를 붙잡으러 달려갔지만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를 맴돌 뿐, 지연은 그녀 곁으로 갈 수 없었다.

 

 

 "이봐요, 내 말 들려요?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빨리 가서 말리세요. 저는 가고 싶어도 몸이 말을 안 들어요. 이봐요, 어떡해! 저 여자 저러다 물에 빠져 죽어요!"

 

 

 점점 물에 잠기는 그녀의 뒷모습에 지연은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와 간격은 점점 멀어지기만 할 뿐 결코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어떡해! 아무도 없어요! 여기 사람이 빠졌어요. 도와주세요!"

 

 

 이제는 완전히 모습을 감춘 여인의 모습에 지연은 이성을 잃고 눈물을 흘리며 바둥거렸다. 그녀가 아무리 외쳐도, 울부짖어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다.

 

 여인의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관망하던 남자의 고개가 들렸다.

 

 

 "… 도와줘."

 

 

 남자의 두 눈에서 흐른 붉은 눈물이 그의 얼굴 전체를 적시고, 공간 전체를 적셔가고 있었다.

 

 

 *

 

 

 "깨울까? 응? 이제 깨우자."

 

 "안돼. 두목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잘 지켜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억지로 깨우면 안 돼."

 

 "그래도... 지금 손가락 전부 써서 숫자를 셌는데도 안 일어나잖아. 엄마가 늦잠 자면 나쁜 아이라고 했어. 깨우자, 응? 너도 이 아줌마랑 놀고 싶잖아."

 

 "응, 하지만 두목 오빠가 지키라고 했는데…"

 

 

 남자아이를 강하게 만류하던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두목 오빠가 한 말은 착하게 꼭 지키려고 했는데.

 

 아이가 연신 작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 귀여운 행동은 아이의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좋아, 깨우자. 대신에 이 아줌마가 일어난 거야. 우리가 깨운 게 아니고. 자, 약속.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 별님아, 귀를 닫아 주세요."

 

 "꺄아, 우리 둘만의 비밀. 별님아, 귀를 닫아 주세요."

 

 

 앙증맞은 작은 고사리손을 맞잡고 아이들은 그들만의 언약 주문을 외쳤다. 큰일을 위한 의식 행사처럼 아이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이제 깨운다. 헤헤."

 

 "응.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깨우는 거야. 하나, 두우…"

 

 "끄아아아아악! 저리 가!"

 

 "꺄아악. 엄마!"

 

 "으아앙! 엄마아!"

 

 

 지연을 깨우려고 그녀의 옆에서 두 손 번쩍 들고 장난꾸러기 웃음을 짓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울고불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뒷모습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아이의 구령 소리에 맞춰 지연의 정신이 돌아왔다. 아니,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도망쳐 왔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뭐야, 너무 끔찍하잖아. 요즘 몸을 혹사했나, 별 희한한 꿈을 다 꾸네.'

 

 

 자신이 내지른 괴수와 같은 비명에 놀라 아이들이 도망간 것도 모르고 지연은 태연하게 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당분간 그 남자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 것 같았다. 분명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 남자도 꿈속 인물이라는 거잖아. 그래 그 정도로 싸가지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지.'

 

 

 지연은 피눈물을 흘린 남자보다도 싸가지없던 그 남자를 본 것이 꿈이라는 사실에 더욱 안심이 됐다. 자신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잘난 얼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아."

 

 

 지연은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응?"

 

 

 무의식중에 움직인 손이 흠칫거리며 그대로 멈추었다. 그 손을 바라보는 지연의 눈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 가득 은색 자수의 보드라운 감각이 번져갔다.

 

 고개를 내렸다. 곱고 어여쁜 속옷이 자랑스럽게 그녀를 반겼다.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움직이는 그녀의 고개가 우뚝 멈췄다. 다급하게 주변을 확인하던 지연의 눈빛이 심할 정도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꿈, 꿈이 아니…"

 

 

 지연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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