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판타지/SF
이스트 포인트
작가 : 필스너
작품등록일 : 2019.9.3

* 美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와 비교해도 생도들의 자질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자신의 학교를 '이스트 포인트'라고 부르기도 하였음. 


<집필 의도>

 1653년, 무역선을 타고 네덜란드를 떠나 태평양을 거쳐 일본의 나가사키로 향하던 젊은 선원 하멜은, 뜻하지 않게 제주도 근처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하여, 간신히 살아남은 선원들과 함께 강제로 조선에 억류됩니다.
이후 하멜은 조선에서 보낸 13년 동안의 행적을 꼼꼼하게 기록하였고, 극적으로 조선을 탈출하여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 그 기록을 토대로 소위 ‘하멜 표류기’라는 책을 출간하는데,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이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호기심을 반영하듯, 당시 '하멜 표류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필자는 이 ‘하멜 표류기’를 모티브로, 동서양의 실제 인물과 역사를 소재로 삼아, ‘이스트 포인트’라는 사관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우정,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를 판타지 세상 안에서 그려 보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발명품이 포함된 '르네상스 시대'의 눈부신 발전과, 동방을 정복하겠다는 '대항해 시대'의 거친 야망이 서양의 소재라면,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흥기, 병자호란의 발발과 이후 전개된 효종의 북벌준비가 동양의 소재입니다.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존중하고 이에 동화되어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겸손한 자세도 중요한 주제로 잡았습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소현 세자와 세자빈의 높은 뜻도 기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인 ‘일월오봉도’에,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나오는 ‘최후의 만찬’과 같은 어떤 수수께끼를 담아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내고자 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 나오는 비행기나 낙하산도 판타지 안에 넣었습니다.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이 서려있는 만주 벌판까지 이야기의 무대를 넓혔으며,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넘보려는 일본의 탐욕에도 일침을 가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은 네덜란드의 왕자 하멜과 조선의 공주 하이란이 결혼을 하는 로맨스로 결말을 맺습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과 네덜란드, 양국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기원합니다.


 
<11화>
작성일 : 19-10-22 09:21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901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1. 규정 위반

 

  6월 말, 드디어 시험비행을 하는 날이었다.

 

  ***몸통에 엔진을 장착한 비행기는 일반 글라이더와는 차원부터 달랐다. 크기도 더 크고 날개도 2개를 제작해 2층으로 놓았다. 날개와 날개 사이에는 튼튼한 지지대로 연결을 했고, 바람개비는 양 날개의 중간 지지대 부분에 위치하도록 했다. 조종사가 엎드려 조종하는 방식을 택했고, 조종간에서 여러 개의 막대와 줄을 당겨 비행기의 방향과 속도를 조종하도록 많은 장치가 추가되었다.

 

  “공기주입구를 이렇게 열고 닫으면서 속도 조절이 가능한 거구나.” 그저 하멜과 있는 게 좋았던 샤니는 연구실에서 내내 졸았기에 조종간을 보자 마냥 신기해했다.

  “그렇지. 이 특수한 부싯돌을 엔진에 끼워넣고 불꽃을 만들어 발생시킨 동력을 이렇게 바람개비에 전달해 돌리면...” 샤키가 시범을 보이자 엔진에서 강한 열이 발생했고, 곧이어 바람개비가 빠르게 돌며 뒤로는 세찬 바람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이걸 위로 올려서 공기주입구를 좀 더 열어봐, 하멜” 샤키가 자세한 조종간 사용법을 가르쳐주며 말했다.

  “이렇게요? 야, 엔진이 훨씬 더 강렬하게 달아오르네요.” 하멜은 신이 났다.

  “하멜, 조심해. 너무 세게 열면 엔진이 과열될 수도 있어.” 옆에 있는 샤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들이 하루 종일 비행기의 이륙을 준비하고 있을 때, 처음부터 숨어서 이를 몰래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하이란이었다.

  하멜을 향한 샤니의 과도한 애교를 두 눈으로 직접 바라봐야만 했던 하이란은 속이 완전히 뒤집어질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걸 핑계로 불쑥 나타나면 자기 스스로 바보가 될 것 같아, 사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 1903년 인류 최초로 동력비행기의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Flyer)호를 참고함.

 

 

  오후 늦게가 되어서야 비행기도 창고 밖으로 옮겨지며 모든 준비가 끝났다.

  

  샤키가 출발신호를 내리자 하멜은 천천히 엔진의 출력을 올렸다. 거짓말처럼 신기하게 하멜이 탄 비행기는 그르륵 그르륵 소리를 내며 넓은 공터를 신나게 달려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그 속도는 빨라졌고 그만큼 비행기의 무게가 가벼워진 걸 하멜 스스로가 느끼게 되자, 이제 이 비행기는 이스트 포인트의 푸른 잔디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더니, 결국은 잔디를 박차고 그보다 더 파란 하늘로 곧장 날아올랐다.

  

  "와~~!!!"

  지상에서 이를 바라보던 글라이더부 생도들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이로써 바람에만 의지하여 날았던 구식 글라이더는 퇴물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흑연이 작동한 엔진은 더욱 빨갛게 달아오르며 힘차게 바람개비를 돌리고 있었다.

  

  한참을 위로 올라온 하멜은 하늘을 날았다는 쾌감도 잠시 잊고, 그동안 자신이 종이학을 날리며 터득했던 비행술에 대한 기억을 꼼꼼하게 되살렸다.

  다시 차분하게 조종간을 잡았고, 침착하게 사방을 내려다보며 현재 자신과 비행기의 위치를 점검했다.   

  

  모든 정리가 끝나자 하멜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하멜은 창공으로 높게 솟구치더니 다시 아래로 뚝 떨어지는 묘기를 보이면서 자신의 조종술을 유감없이 뽐냈다. 이를 밑에서 확인하고 있는 글라이더부 생도들은 그저 환희에 휩싸이며 탄성만을 질렀다.  

 

  그런데... 

  동료들의 응원에 더욱 짜릿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던 하멜도, 멀리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아른거리자 문득 고향생각에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엔진이 이 상태로 꺼지지 않고 며칠만 더 연소해 준다면 네론으로 바로 탈출하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저 멀리 노을이 유혹하는 방향으로 계속 똑바로 날아간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조국이 거기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아직은 ‘사자의 심장’을 얻지도 못했고, 지금 비행기의 성능으로는 먼 길을 날아도 흔들림이 없는 고고한 학이 될 수 없음에... 그저 만감이 교차했다.

 

  

  지상에서 하멜의 비행을 감동으로 바라보던 샤키는, 나머지 비행기에도 올라 최종적인 점검을 마치며 샤니에게 한 번 조종을 해보라고 유쾌하게 권유했다.

  

  “아니 싫어. 유격 훈련 이후로 난 공중에서 뭐 하는 거는 딱 질색이야.” 샤니는 오빠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래? 그럼 이 비행기는 누가 조종을 해서 날아오르려나? 내가 너무 설치고 괜히 하나를 더 만들었나?" 하멜의 성공에 고무된 샤키는, 동생의 그런 대답에 많이 실망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태연하게 건들건들한 표정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였다.

  “제가 한 번 타볼게요.” 뒤에서 하이란이 불쑥 나타나며 샤키에게 대뜸 말했다.

  “어, 하이란? 너... 여기는 언제 왔어?” 샤니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저는 공중에서 묘기도 잘 부리거든요? 저에게도 그 비행기를 몰 기회를 한 번 주시죠, 선배님.” 샤니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도도한 표정으로 샤키를 바라보며 하이란이 말했다.

  “너도 이제 우리 글라이더부에 들어오려는 거야? 그리고 오늘은 우리 오빠한테 다시 선배님이라고 부르네? 저번에는 오빠라고 그러더니...” 별로 반갑지 않다는 말투로 샤니가 얘기했다.

  “여기는 교내잖아? 그쵸 선배님?” 얄미운 웃음을 살짝 지으며 하이란이 말했다.

 

  샤키는 오히려 반가운 표정으로 하이란을 두 번째 비행기로 안내하고 조종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해주었다. 안 그래도 비행기에서 연속적으로 화살을 발사하는 석궁장치를 개발하려는 중인데, 화살의 길이와 무게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참에 하이란이 나타나 너무 잘됐다는 둥, 묻지도 않은 얘기를 주절주절 꺼내며 샤키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하이란도 글라이더부에 들어와 최고의 조종사가 되면 너무 멋지겠다는 아부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3학년이고 동호회의 회장이고 하이란에게는 하늘같은 선배라는 위치도 잊었는지, 샤키는 지금 예쁜 하이란에게 점수를 따보겠다고 설쳐대는, 그냥 그런 아주 평범한 사내에 지나지 않고 있었다. 

 

  샤니는 오빠의 이런 모습이 꼴사나웠는지, 시선을 다시 하늘로 돌려 조종에 열중인 하멜을 향해 두 팔을 흔들기만 했다.

 

  

  두 번째 비행기가 하이란을 태우고 하늘로 올랐다.

  그동안 바람만을 이용해 날았던 글라이더가 얌전한 비둘기였다면, 엔진을 단 지금의 비행기는 창공을 호령하는 용맹스런 송골매와도 같았다.

  비행기 한 대가 더 날았기에 누군가 하고 보던 하멜은 뜻밖에 하이란이 탄 것을 알아차리고는 반갑다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하이란도 가볍게 웃으며 살짝 손을 흔들었다.

 

  하이란과 상의 없이 글라이더부를 하멜이 선택하는 과정에서 둘의 사이가 서먹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하멜은 어떤 식으로든 하이란과 화해를 할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늘 따라다니는 샤니의 눈치 때문에 그럴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던 하이란이 손수 비행기를 조종해서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니, 하멜은 여간 반갑지가 않았다. 오늘따라 그녀의 미소가 너무도 예뻐보였다.

  

  하멜이 급강하를 하면 하이란도 같이 했다. 급상승을 하면 역시 그대로 따라했다.

  창공에서 사랑하는 새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는 것처럼, 두 대의 비행기는 서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저녁 노을 속에서 황홀한 무도를 즐기고 있었다.

  지상에서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샤키와 샤니의 얼굴엔, ‘도대체 둘을 왜 붙여놨을까?’하는 자책감만이 진하게 묻어났다.

 

  하멜이 전속력으로 날다가 급상승을 하면서 계속해서 뒤로 360도 회전을 하는 묘기를 펼치자, 하이란도 한 번 시도를 해보았다.

  그런데 하멜은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비행기의 수평을 제대로 유지한 반면, 하이란의 비행기는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다. 조종이 처음인 하이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엔진도 연소가 됐다 안됐다 하면서 자꾸 불규칙해졌다. 하이란이 수평을 잡으려 애를 써봤지만 비행기는 양력을 잃고 빙빙 돌면서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이란은 두려움에 비명을 질렀고, 놀란 하멜은 즉시 급강하해서 자신의 비행기를 하이란의 것 바로 아래로 가져갔다. 하멜에게 한 번 부딪힌 하이란의 비행기는 다행히 추락하던 속도가 느려지면서 다시 수평을 잡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에 잠깐 방심한 하이란이 엔진출력을 빨리 높이지 못하자 다시 하강하다가 이번에는 하멜의 비행기와 한데 뒤엉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보던 샤키와 샤니는 놀라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쪽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순간적으로 하멜은 추락을 피할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이란은 닥치는대로 줄을 잡아당기고 막대를 꺾고 조종간을 세게 두드렸지만, 하멜은 아주 달랐다.

  그는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추락을 하더라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상황을 판단하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그때 하멜의 눈에 저 아래에 있는 팸므(Famm)천이 보였다.

 

  

  에보크를 비롯한 생도들은 거북이의 등 위에 올라 팸므 검도를 하고 있었고, 관람석에서는 응원 소리가 신나게 메아리쳤다.

  그런데 뒤엉킨 두 대의 비행기는 속절없이 계속 그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 살려!!!” 하이란은 전율하며 소리쳤고, 갑자기 하늘에 괴상한 물체가 나타나자 밑에 있던 생도들은 마른하늘에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혼비백산했다.

 

  윙~ 윙~ 윙~~~

  추락하던 비행기는 하멜이 마지막으로 조종줄을 정확히 잡아당긴 덕분에 가까스로 땅바닥을 피해 팸므천으로 떨어졌다.

 

  풍덩~~~ 쏴아~~~

  검도를 하던 모든 생도는 거북이의 등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졌고, 하멜과 하이란이 괜찮은지는 부서진 비행기의 날개에 가려 밖에서 확인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멜은 정신을 차리고 하이란을 찾았다. 그녀는 기절해 있었다. 하멜은 놀라서 하이란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하멜은 귀를 하이란의 코에 대고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경황이 없어 정확히 알 수가 없자 이번에는 손바닥을 가운데 가슴에 댔다. 심장의 박동이 정상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옷고름을 약간 풀러 불룩한 젖가슴을 함께 누르며 다시 알아보려 했다. 다행히 심장은 제대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숨은 계속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놀란 하멜은 인공호흡을 하려고 숨을 들이마셔 하이란의 입에 불어 넣으려 하였다.

  그때였다.

 

  하이란은 하멜의 목덜미를 꼭 감싸며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하멜은 너무 놀라 목을 뒤로 빼려 했으나 하이란의 정열적인 팔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짧지만 가슴이 터질 듯한 침묵이 흐르고...

 

  하이란은 하멜에게 살짝 윙크를 한 다음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다시 기절한 척을 했다.

  그 순간 팸므천에 뛰어든 동료들이 비행기를 걷어 치웠다.

  하멜은 하이란을 두 팔로 들어 안고 밖으로 나오면서 상황이 급박한 듯 흉내를 냈다. 그제야 샤키와 샤니도 헐레벌떡 달려왔다.

 

  “맨날 하늘을 날겠다며 공상에나 빠져있고... 남들 검도 잘 하고 있는데 불쑥 나타나서 다 망쳐 놓고... 이번엔 또 누구냐? 음... 하이란? 하멜 쟤는 공부엔 관심 없고 맨날 여자 애들 하나씩 꼬셔서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게 취미인가 봐. 야, 네가 무슨 물귀신이냐?” 에보크의 비웃음은 집요하고도 변함이 없었다.

 

  하멜은 하이란을 잔디밭에 내려놓고 얼굴을 톡톡 때려서 깨웠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드디어 하이란이 입에서 물을 뱉으며 정신이 돌아온 척을 했다.

  다행이라며 샤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른 생도들은 박수를 보냈다. 샤니는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하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하멜은 그 수건을 받아 자기 얼굴을 닦는 대신 하이란의 얼굴을 먼저 닦아 주면서 말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니?”

  “으, 응. 여기가 어디야?” 하이란이 그럴싸하게 연기를 했고, 하멜은 하이란을 등에 업고 부리나케 기숙사로 데려가는 그런 연기로 맞장구를 쳤다.

  

  *            *            *

 

  며칠 후,

  "아니야. 모든 걸 다 다시 해야겠어." 샤키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이 정도의 엔진 성능으로는 퓨그의 비행기를 이길 수 없어요." 하이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의 비행기는 속도가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 그랬지?" 퉁명스런 표정으로 샤니가 말했다.

  "음... 그러니까... 말이 달리는 것보다도 한... 세 배는 빨랐어.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속도지." 하이란이 침착하게 말했다.

  "어떤 연료를 엔진에 넣었기에 그런 속도가 나오는 거지? 혹시 우리가 뭘 잘 못 본 건 아닐까?" 샤키가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제가 계산을 다 했잖아요. 선배님은 저를 못 믿는 거예요?" 하이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깜짝 놀란 샤키는 째려보는 하이란의 시선을 피하며 서둘러 둘러댔다.

  "제 생각엔... 속도에 대한 하이란의 계산은 정확했다고 봐요.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적 비행기의 비밀을 알아내느냐 하는 거지요." 하멜이 정리를 하며 말했다.

  "역시, 하멜 너는 핵심을 제대로 짚는구나?" 전에 없이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하이란이 다소곳하게 말했다. 그 소리를 듣는 샤니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어휴, 답답해. 퓨그 놈들을 능가하는 엔진을 만들려면 엄청난 연구와 지원이 필요한데, 에반 측 인간들은 날아다니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고... 에반이 저러니 폐하께서도 어쩌지를 못하시고... 에반, 이 망할 놈의 늙은이! 호랑이가 그냥 콱 물어 가버렸으면 좋겠구먼!!" 샤니가 두 손을 뒤통수에 깍지 끼고 뒤로 기대면서 투덜거렸다.

  "그러게나 말이다. 크란(Krann)산의 그 많은 호랑이는 뭐하나 몰라. 에반 같이 탐욕스럽고 못된 인간은 맛도 좋을 텐데... 코끼리 훈련장으로 에반이 현장지도 나갈 때, 떼로 몰려와 확 좀 덮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샤키도 짜증을 내면서 한숨을 쉬었다.

  

  "잠깐, 지금 호랑이라고 그랬어요?" 그때 하멜이 불쑥 샤키의 말을 끊었다.

  "호랑이가 뭐?" 하이란이 말했다.

  "호랑이... 호랑이... 그래, 호랑이야!!"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표정으로 하멜이 말했다.

  "호랑이가 뭐 어때서?" 하이란이 다시 물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지?" 하멜은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활과 화살로 사냥을 해야지. 당연한 걸 왜 물어?” 샤니가 태연하게 말했다.

  "아니,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잖아?!” 하멜은 신이 난 것도 모잘라 안달이 난 듯했다.

  "아, 뭐야! 그건 그냥 속담이지. 누가 그걸 몰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며 샤키가 말했다.

  "아뇨, 호랑이를 잡으려면 정말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되는 것처럼, 우리가 퓨그군 비행기의 비밀을 알아내려면 퓨그로 들어갈 수밖엔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맨츠(Mantz)로 가면 되는 거라고요!" 하멜의 입가에 살짝 웃음이 남았다.

  "맨츠? 하멜, 너 제 정신이야? 국경에는 양국의 군대가 쫙 깔렸는데 우리가 맨츠에 어떻게 들어가?" 황당한 소리라며 샤니가 반박했다.

  "글쎄, 국경수비대는 내 관심 밖인데? 있잖아... 위대한 역사는 가끔 충격적인 방법으로 반전이 이루어졌을 때 탄생하기 마련이지.” 세상의 진리를 터득한 사람처럼 하멜이 천천히 말했다.

  "그런 말이 있었어?” 낯선 표정으로 샤키가 말했다. 그러자 하멜이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난 하멜의 뜻을 모두 이해했어." 갑자기 하이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맨츠로 가자는 황당한 얘기를 어떻게 이해했는데?” 샤니가 약간 비꼬면서 말했다.

  "지금 하멜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두크린(Duckreen)강을 몰래 건너자는 게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국경을 넘자는 얘기 같아. 내 말이 맞지?" 하이란이 말했다.

  "맞아, 퓨그의 비행기지를 육상으로 찾아가는 것은 극히 어렵겠지. 하지만 적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맨츠의 하늘로 잠입한다면,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걸? 그리고 어차피 두 나라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 맨츠에서 모든 승부를 걸어야지 코르 본토로 적이 들어오게 하면 안 돼. 그러니 맨츠에서 싸워 이기려면 맨츠 지형에 대한 정찰도 이번 기회에 미리 해놔야 된다고." 하멜이 흥분하면서 말했다.

  

  "적의 기지를 발견했다고 치자. 그럼 착륙은 어디에 하고 또 비행기는 어떻게 숨길 건데?” 이번엔 샤키가 따지듯 말했다.

  "맨츠가 어떤 땅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니, 비행기를 어떻게 숨길지는 일단 가봐야 알겠죠. 만약을 위해 얀스 교수님이 발명한 낙하산도 가져가야 하겠고요.” 하멜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 말은... 우리의 비행기를 거기서 그냥 포기할 수도 있다는 얘긴데, 그럼 다시 올 때는 또 어떻게 하려고?” 샤니가 말했다.

  "글쎄... 거기까지는 나도 아직 생각 안 해봤어. 뭐 일단 가서 방법을 찾으면 되겠지.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가 비행기를 포기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재수가 좋으면 적의 비행기를 훔칠 수도 있을 테고...” 하멜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러자 세 사람은 허탈하게 웃으며 그저 입만 벌렸다.

 

  사실 하멜은 지금 다른 조건을 따지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일단 맨츠로 가서 어떤 정보라도 얻어야 나중에 디퍼슨(Deeperson)으로도 갈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니까 '사자의 심장'을 꼭 찾아야 한다는 그 일념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            *            *

 

 

  거대한 산봉우리들과 밑도 끝도 없이 패인 계곡들, 그보다 더 막막하고 깊고 고요한 밤... 사방은 마치 죽음의 세계처럼 모든 게 정지되어 있었다.

 

  고오~~~

  갑자기 계곡 저 아래에서부터 비행기 한 대가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엔진 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산봉우리를 훌쩍 넘어버리는 그 속도는 엄청났다. 자유자재로 밤하늘을 휘젓다가 급강하를 한 뒤, 달빛에 반짝이는 거대한 호수의 물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는 다시 달빛이 유혹하는 쪽으로 급상승을 한 뒤 아주 멀리까지 계속 비행하였다.

 

  “최신 기종을 조종하는 최고의 조종 솜씨라... 역시 자네의 실력을 따라올 자는 아무도 없구먼!” 통쾌하게 웃으며 도르반이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이게 다 대장군님께서 의욕적으로 추진하신 결과가 아닙니까? 고공에서 하는 야간 비행이라 코르(Corr)의 정찰 송골매들도 절대 우리를 눈치채지 못 할 것입니다, 후후!” 도르반의 수하인 카오핑 대령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 저 밑이 다 우리 땅인데 말이야... 조만간 지상군을 동원해 미개한 코르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면, 이 온화한 땅은 모두 우리 부족의 차지가 될 것이야. 그래, 곧 그렇게 되겠지... 자,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도르반이 천천히 말했다.

 

  비행기 한 대는 그렇게 그렇게 밤하늘에서 멀리 사라져갔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 <11화> 2019 / 10 / 22 200 0 9017   
9 <10화> 2019 / 10 / 14 214 0 21478   
8 <9화> 2019 / 10 / 14 197 0 22527   
7 <8화>계속... 2019 / 9 / 6 201 0 13288   
6 <8화> 2019 / 9 / 6 190 0 39876   
5 <7화> 2019 / 9 / 4 203 0 11387   
4 <5화><6화> 2019 / 9 / 4 213 0 25708   
3 <3화><4화> 2019 / 9 / 3 202 0 20275   
2 <1화><2화> 2019 / 9 / 3 210 0 19385   
1 <프롤로그> 2019 / 9 / 3 347 0 666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