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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55년생 순자씨
작가 : 춘자
작품등록일 : 2019.10.16

82년생 김지영의 부모 세대 이야기.

 
떠나보낼 것인가
작성일 : 19-10-21 22:10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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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자는 유난히 종의를 잘 따르고, 졸졸 쫓아다니며 일손을 돕기도 했다. 애초에 호기심이 넘쳐서, 종의가 하는 일이든 충희가 하는 일이든 관심을 보이며 따라하기 시작했다. 겨우 다섯 살에 글자에 관심을 보여 충희가 신문 읽을 때 참견하며 이런저런 글자를 배우기도 했다. 종의가 붓을 잡지 못하고 검지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것을 신기하게 봤는지, 아버지 충희처럼 붓을 쥐지 않고 종의처럼 손가락으로 몇 안 되는 글자를 써댔다.

 "붓을 쓰려면은 먹도 갈아야 하고, 종이도 있어야 하는디. 쓰고 나서 지워지지도 않고. 엄니처럼 손가락으로 쓰면 바닥에 쓰니까 발로 밟으면 지워지잖아요." 순자가 조잘거렸다.

 "그래도 아부지처럼 단디 앉아서 글을 차분히 쓰는 걸 배워야재." 종의가 타이르듯 말했다.

 "알았어라." 순자가 대꾸하지만 실은 여전히 본인 하고 싶은 대로만 할 것이라는 걸 종의는 잘 안다.

 피난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출신지가 각양각색인지라, 종의와 충희는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사투리가 섞이다시피 한 말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의 말을 듣고 곧잘 흉내내는 아이들도 예외는 없었다.

 

 "나 함안댁잉게. 들아가도 될랑가?"

 함안댁은 자주 들르면서도 늘 대문 앞에 서서 물어보았다. 집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리더라도 문을 먼저 열고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종의가 순자를 낳은 직후에 몸을 못 추스르고 누워 있을 적에 "나 들어갈랑디." 하며 문지방까지 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 딱 한 번 뿐이었다.

 "어여 들어와. 뭣허러 그러고 서있는당가." 종의가 대답했다.

  "함안댁 오셨는가!" 순자가 외할머니의 말투를 흉내내며 달려가 순자를 맞는다. 순자의 고사리손을 잡고 마루로 걸어오는 함안댁. 바구니 가득 채운 옥수수를 갖고 와서는 "이거라도 쌀에 좀 섞어 먹으면 배가 찬당께," 하며 종의에게 건넨다.

 "아이구 매번 이렇게 신세를 져서 우짠당가." 종의가 겸연쩍어하며 대답했다. 체면을 차리며 필요없다고 돌려줄 수 있는 상황이면 좋았겠지만, 충희도 일자리를 잃고 빈둥거리는 마당에 쌀 한 톨도 아쉬웠던 것이다.

 

 "애러울 때 서로 돕고 그러는 거지. 뭘 또 신세라 그랴." 손사래를 치며 함안댁이 말한다. 그리고는 순자를 돌아보며

 "너 뽑기가 무언지 아냐?"

 순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성조 삼춘이 한양 갔다 와서는 종이 뽑기를 갖고 왔댜. 마을 애들이 다 구경하러 갔는데, 너는 안 가볼 테냐?" 함안댁이 떠보자, 순자는 대답 대신 종의를 쳐다본다. 종의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 얼른 갔다 오겄어라!" 하고 순자가 뛰어간다.

 

 순자의 등이 멀어져 갈 때 종의가 운을 뗀다.

 "저그....그 뒷집 원주댁... 막내 입양간 거...잘 됐댜?"

 함안댁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하믄. 뜨신 밥 먹고 잘 있댜고 편지 왔대. 밥을 묵는지 빵을 묵는지 모르긴 해도. 일단 숟가락 하나 덜어낸 게 어디야. 세 살 때쯤 가야 엄마아빠 얼굴도 금방 이자묵고 한댜."

 "다섯 살이면 아가 느무 큰가?" 종의가 넌지시 물어보자,

 "아도 아 나름이제... 아, 근데 임자가 그게 왜 궁금하당가?" 함안댁이 종의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종의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쉰다.

 "울 동네 다섯 살 아그가...." 말을 이으려는 찰나 종의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며 "쉿!" 한다.

 오후 한나절이 지났지만 햇볕이 여전히 쨍하고, 매미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한참을 그렇게 말이 없다가, 종의가 운을 뗀다.

 "내 막둥이만이라도 배불리 먹이고 공부시키고 하면 얼마나 좋을란가 혀서..."

 "바깥양반은 뭐라허는디?"

 "아즉 야기 못 꺼내봤제. 내 혼자 생각이고..."

 "쟈는, 아가 자네 그리 졸졸졸 쫓아다닌담서..."

 "아즉 철이 없어서 글제 새 집 가면 또 금새 좋다 할 것이구만."

 "허긴, 쟈가 있거나 말거나 어른들이 또 아들 타령 할 것이고, 그쟈?"

 "그럴 것이제..."

 "그랴도 아를 하나 치울 때마다 쌀 두 가마 준다는 말이 있어."

 "아를 떼내는 것도 맴 아픈디 무슨 쌀까지 바랴."

 "한 번 알아봐주끄나?"

 생각에 잠긴 종의는 긍정도 부정도 못한다.

 

 마침 양반 못 된다는 듯 순자가 신난 얼굴로 달려와 종의의 치맛폭에 폭 안긴다.

 "엄니!"

 "재밌더냐?"

 "암만. 종류가 허벌나게 많당게."

 종알거리는 순자를 잠시 보다가 함안댁이 일어선다.

 "내 그만 가볼텐게."

 "강냉이 잘 묵겠어라!" 순자가 강단지게 인사했다.

 함안댁의 등을 보면서 종의는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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