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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흔들림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19.9.5

사랑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는 남녀주인공의 이야기를 엮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흔들림 38
작성일 : 19-10-21 09:46     조회 : 357     추천 : 0     분량 : 10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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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진짜다. 고민하고 고민했고 끊임없이 생각을 이었다. ‘그래’와 ‘아니’를 수십 번 뒤바꿨다. 미란 언니와 하나가 번갈아가며 연락을 해온다. 나보고 나오란다. 나와서 당당하게 얼굴 비추라고 한다. 그게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하긴 어디 쉬운가. 특히 나처럼 숫기 없고 야무지지 못한 사람에겐 더욱 힘든 일이다. 그저 안 보면 그만인데.

 그래, 그만하자고 거의 결정을 내렸다. 모임에서 친해진 사람들 못 보는 게 가장 아쉬운 점이지만 사람 인연이라는 게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일이다. 그들도 사정이 생겨 모임에 나오지 못한다거나 어디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으니까 내가 보자고 해서 계속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는 거다. 그런 게 인연이겠지. 볼 사람은 어떻게든 보게 되고 인연이 아닌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새로운 모임에 나가게 되면 거기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인연이 생겨난다. 미란 언니와 하나가 가족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니까.

 마음을 다잡고 하나와 미란 언니에게 전화를 하려 했다. 가슴이 쓰리지만 탈퇴통보를 해야 할 듯했다. 두 사람은 모임에서가 아니라도 계속 연락하면서 만날 생각이다. 그저 모임에서 보지 못할 뿐이다.

 “하나야. 지금 전화 받기 괜찮아?”

 “어, 잠깐만.”

 하나가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응, 괜찮아. 아침 먹었어? 오늘 일은 안 하고?”

 “오늘 오후에 나간다고 했어. 밥이야 아침 겸 점심 먹으려고. 너는?”

 “아침에 늦게 일어났지.”

 나직하게 웃는다.

 “자주 있는 일이잖아. 아침 건너뛰고 점심 일찍 먹지, 뭐.”

 입 안을 다셨다. 괜히 긴장된다.

 “하나야, 저기, 말야.”

 “혹시 다음 모임에 뭘 입고 갈지 몰라서 물으려고?”

 하나가 선수를 친다. 그렇다고 넘어가진 않을 거다.

 “그게, ∙∙∙∙∙∙.”

 “요즘 날씨 좋잖아. 굳이 긴 팔 옷 필요 없지 않겠어. 너 베이지색 원피스 예쁘던데.”

 하나가 틈을 주지 않고 이어간다. 네 의도는 알겠는데 나 마음을 정했어. 옷에 대해 주저리 늘어놓는 하나의 말을 끊었다.

 “하나야, 잠깐만. 옷 때문에 연락한 거 아냐.”

 “∙∙∙∙∙∙.”

 심호홉을 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주저하는 스스로에게 약간의 틈을 주면서.

 “나 아무래도 다음 모임에는 못 나갈 거 같아.”

 “은정아, 그게∙∙∙∙∙∙.”

 “아니, 내 말 먼저 들어 봐.”

 하나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하려던 말을 마저 끝내야지 아님 하나가 하는 말에 끌려가버릴지 모른다.

 “지난 번 진우 씨 가족이 다녀간 후로 이제 대부분 모임 회원은 진우 씨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 거야. 이건 나와 친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가 돼버렸어. 나, 앞으로는 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임 전체 분위기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돼. 한 사람 때문에 모임 전체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되겠어. 그만 할래. 지금도 너무 힘든데 더 힘들고 싶지 않아.”

 하나가 조심스러워하는 게 전화기 너머로 느껴진다. 어, 라고 입을 떼다가 그대로 다문다. 하나도 할 일이 아니다. 이런 어리석은 짓거리는 그만할 때가 됐다.

 “그럼 이제 모임에 더 이상 안 나올 거야?”

 “아무래도 발을 끊겠지. 여가 시간을 즐기려 나가던 모임인데 굳이 마음이 편치 않은데 나가고 싶지 않아. 너한테는 내가 미안해. 나 없이도 다른 회원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길 바랄게.”

 그렇게까지 내가 말하는데 하나라고 반론을 펴긴 힘들 거다. 하나가 불편하지 않게 일부러 주제를 바꿨다. 요즘 비행기 운항 문제가 큰 이슈가 되더라는 말에 하나는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자기 일에 관련된 문제에도 심드렁하다 결혼식 이야기를 꺼내자 그제야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신부 들러리 드레스 마음에 들어? 그거 고르느라 한참 싸웠다. 네 의견도 많이 참고하려고 했는데 그 돌탱이가 어찌나 자기 의견을 들이미는지 속으로 참느라 혼났어.”

 돌탱이는 신부 들러리 중 한 명인 여고 동창을 부르는 호칭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알고 지내던 사이긴 한데 워낙 자기 의견이 강해서 자주 만나긴 부담스럽다. 하나가 신부 들러리 부탁을 한다곤 했었는데 역시나 이것저것 간섭이 심한지 하나가 한숨을 쉰다. 결혼식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챙길 게 많고 주위 사람들의 간섭과 잔소리에 지쳐서 엄청 싸운다고 하던데, 다행히 상현 씨 성격이 좋은 건지 하나가 그래도 많이 참는 건지 둘이서 싸운 적은 딱 두 번이란다. 결혼식 준비를 하며 받는 스트레스에 관한 하소연을 차근히 들어주었다. 적절히 주제를 잘 잡았는지 말이 뜸했던 하나가 순식간에 설을 풀어나간다.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좋아한다. 그래, 하나와는 사이는 이래야 좋은 거다. 괜히 불편한 주제를 갖고 서로 말하기 힘들어서 뚱하게 있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한참을 말을 들어주는데 하나가 너무 자기 말만 늘어놓는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중간에서 멈추고 나에게 몸 잘 챙기라고 당부를 한다.

 “아유, 이제 엄마 노릇까지 하려고?”

 “내가 너만 생각하면 ∙∙∙∙∙∙.”

 농담으로 끝맺으려고 했는데 하나가 목메는 소리를 낸다. 아무래도 얼른 마무리 해야겠다 싶어 너도 결혼식 준비 잘 하라고 덧붙이며 작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니까 머리가 멍했다. 그렇구나, 이제 더 이상 모임에 나가지 않네, 라고 실감하자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움이 든다. 친한 모임 회원들과 즐겁게 보냈던 시간이 오롯이 떠올랐다. 그만 나가자고 마음을 잡을 때는 떠오르지 않던 장면이 왜 말을 꺼내놓고 나니까 속절없이 비집고 나오는지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한참을 꺼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맣게 비어버린 공간을 주시하고 있으니 복잡하게 뭔가로 채워지지 않아 오히려 그걸 보면서 가슴이 편안해진다. 때론 심플한 게 좋다. 너무 복잡하고 요란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가끔은 비우고 가벼워질 필요가 있겠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굳이 화면을 건드려 시간을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이번 주말엔 챙겨야 할 약속이 없어졌으니까. 너에게 그런 여유를 주지 않겠다고 휴대폰이 심술을 부리는 건지 화면이 번뜩, 켜지더니 전화 받으라며 요란하게 벨소리를 낸다. 미란 언니. 알만하다. 하나가 연락을 했겠지. 미란 언니는 연장자라 하나보다 말 꺼내기 조심스럽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는 했다. 언니한테도 어차피 내 결심을 알려야 할 테니까.

 “네, 언니.”

 “지금 통화 괜찮아?”

 “예, 괜찮아요.”

 언니는 안부 인사 없이 바로 통화 괜찮아, 라고 묻는다. 가슴 안에 할 말을 쟁여놓고 있을 거다.

 “이번 모임에 안 나올 거야?”

 “하나가 그래요?”

 언니가 내 질문엔 답하지 않고 이어간다.

 “양평 두물머리 사진 찍기 엄청 좋다더라. 특히 이맘 땐 그냥 아무데나 카메라만 들이대면 인생 작품이 생긴대.”

 “언니, 저도 쉽게 결정한 건 아니에요.”

 “은정아. 네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알겠는데 언니가 너무 아쉬워서 그래.”

 “죄송해요. 이미 생각을 굳혔어요.”

 언니가 숨을 고른다. 예의 없이 굴려는 건 아닌데 아닌 건 아닌 거다. 다시 되돌리긴 싫었다.

 “알겠어. 네가 그렇게 확고한데 내가 널 줄에다 매고 끌고 갈 수도 없는 거고 어쩌겠니. 대신 이번 한 번만 나와라.”

 “이번만요?”

 “그래. 나왔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이제 나오지 않아도 돼. 하지만 모임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과 쌓은 정이란 게 있는데 작별 인사는 해야지 않겠니? 종진이랑 민우한테 인사도 없이 떠날 거야? 지선이도 데리고 갈 테니까 같이 단체사진이라도 찍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미란 언니가 그렇게까지 나오자 나도 차마 거절하긴 힘들었다. 그래, 마지막 예의는 갖추고 떠나야겠지? 모임 사람들 눈 마주치는 것조차 상상하기 싫었지만 그동안 함께 보냈던 좋은 시간에 최소한의 답인사라도 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사람 도리를 하는 거겠지. 역시 나이는 허투루 쌓이는 게 아니다. 연장자인 미란 언니 말에 꼼짝없이 엮여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통화를 마쳤다. 결국 주말 계획이 생겨버렸다. 잠깐 있다 바로 하나에게서 연락이 온다. 이번엔 힐난조로 마구 쏘아댄다. 자기가 부탁할 땐 대놓고 거절하더니 미란 언니가 부탁하니 바로 그러겠다고 했다고. 그게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확답을 주는 것도 우습고. 다행히 하나가 나에 대한 비난을 오래 끌진 않고 모임에 무슨 옷을 입고 나갈 거냐고 질문을 해온다. 그렇게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다. 결국 이번 모임까지 나가게 되었다. 양평 두물머리로 간다. 사진 찍으러.

 분명 주말에 모임 나간다고 마음을 정했을 때만 해도 아직 그때까진 꽤 시간이 남았다고 여겼는데 어느새 아침에 눈을 뜨니 당장 모임 날이다. 맙소사. 이 두근거림은 뭐지? 소풍날 아침 느꼈던 기대감 같은? 아니다. 이건 기대라기보단 걱정이지 않나? 그러면서 양평 두물머리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예상해보면서.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사진 찍으러 가는 거면 좋겠다. 머리 아픈 일 없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기만 할 수 있다면.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을까. 아무리 머리 싸매고 지난 시간을 되짚어도 이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다. 순리대로 앞으로 밀리기만 할 테니까.

 땅 위에 놓인 뭉툭한 자갈을 밟았다. 연한 갈색과 고동색이 섞였다. 자갈색이란 말은 없나? 툭, 차니까 몇 걸음 앞을 구른다. 기념으로 주워갈까? 이제 더 이상 사진 모임에 나오지 않을 테니까. 아니다. 굳이 자갈을 주워가서 뭣에다 쓰려고. 괜히 감상적인 기분이 드는 거겠지. 감성이 이성을 앞서면 가당치 않은 일을 저지른다. 그래, 지금은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다. 엉뚱하게 가슴이 앞서서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

 얼굴이 익숙한 회원을 하나, 둘씩 발견하자 가슴이 당기는 느낌이 든다. 긴장하지 말자. 오늘이 마지막이다. 앞으로 볼 일 없는 얼굴들이다. 길에서 지나가다 마주치면 어쩌지? 또, 또, 이러고 있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니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는데. 미란 언니와 하나는 어디 있지? 꼭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내가 재수가 없는 건가? 그 세 아줌마가 보인다. 찾는 사람은 없고 피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앞에 있다. 어쩐다? 슬쩍, 옆으로 빠져서 돌아가면 되겠는데, 이런, 나를 봤다. 이젠 돌아가면 더 웃기게 생겼다. 일부러 피하는 듯하잖아.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앞으로 가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길까? 안 그래도 나를 비웃고 싶어 몸이 근질거릴 텐데. 옆으로 지나가는 중 나임 아줌마가 나를 발견했다. 저 아줌마는 가운데 끼어 어중간하다. 미자 아줌마가 리더격이라면 아리 아줌마는 개중 가장 유하고 저 아줌마는 주로 미자 아줌마 따까리 역할을 한다고 할까. 귀가 얇고 미자 아줌마 말에 동조하는 경향이 크다. 뒤이어 한꺼번에 나를 쳐다보는 그들. 귀 밑으로 훅,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신경 쓰지 말자. 내 할 일에만 집중하는 거다.

 “요즘 것들은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도 안 쓰나 보군. 그래도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지.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해놓고 지는 행복할 줄 알아?”

 커다란 칼이 날아와 쓱, 가슴 깊숙이 뚫고 지나간다. 내 할 일에만 집중∙∙∙∙∙∙.

 “얼굴이 얼마나 두꺼우면 그러겠어. 하기야 그런 강심장이 아니면 그렇게 추접스런 일 벌리고 다니지 않겠지.”

 가장 밉살스런 미자 아줌마의 독설보다 나임 아줌마가 던지듯 답하는 말이 더 아프게 찔러온다. 이성적으로 행동하자고 다짐했는데 이게 물러터진 마음 앞에서 소용이 없다. 툭, 내가 어쩔 수 없게 눈물이 흘러나와 아래로 떨어진다. 자신이 너무 싫다. 이 순간, 내게 돌을 던져대는 저들보다 이렇게 나약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 어찌 할 줄 모르겠다. 입술을 악 물고 걸음을 계속 옮겼다. 멈춰버리면 그 자리에 굳어 석고상이 되어버릴 거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자.

 “은정아. 왔어?”

 하나가 나를 향해 뛰는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 뒤 바로 미란 언니가 보인다. 오늘 지선이를 데리고 온다고 했는데 함께 오지 않았는지 혼자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아주 끼리끼리 노네. 더러운 것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모인다고 아주 제대로 뭉쳤네.”

 미란 언니가 그 말을 들었는지 단번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아리 아줌마가 옆에서 팔을 당기며 말리지만 이미 미자 아줌마는 싸움닭 모드로 들어섰다.

 “왜? 내가 못 할 말 했어? 네가 너 회장한테 알랑 방귀 끼고 궁뎅이 흔들어대는 거 모르는 줄 알아. 몸이 달아올라 가지고 한 번 안아달라고 까불어 대는 걸 어린 게 제대로 보고 배운 거지. 같이 다니는 어른이 바르게 가르치진 못할망정 그따위 꼴을 보이니 저러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훅, 하고 땅 아래로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비난을 받는 건 감수하겠지만 나 때문에 주변 사람끼리 욕을 먹다니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들다. 미란 언니가 나 때문에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너무 미안하고 어딘가로 숨고만 싶었다. 미란 언니가 더욱 언성을 높인다.

 “야! 너, 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릴 하냐고. 네가 잘난 게 뭔데? 사람들이 오냐, 오냐 해주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기어올라. 제대로 못 배워먹어서 이제 함부로 나대는구나. 사람이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아주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네.”

 “똥칠은 네가 하고 다니잖아, 이년아. 회장한테서 그 똥 묻은 손 치우라고.”

 “누구보고 함부로 년이래. 이게 입이 뚫리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줄 알아!”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미란 언니의 손에 미자 아줌마의 머리카락이, 미자 아줌마의 손에 미란 언니의 머리카락이 잡혀 있었다. 너무 빨리 일어난 상황이라 어찌 할 줄 모르고 그저 바라만 봤다. 두 사람은 힘이 비등비등해서 잠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뤘다. 서로 머리를 잡힌 채로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아유, 어디서 행패야!”

 나임 아줌마가 끼어든다. 미자 아줌마 편을 들기 위해 그 옆으로 다가가 미란 언니를 밀어댄다. 한순간 힘의 균형을 잃고 미란 언니가 뒤로 밀린다. 하나가 그걸 두고 볼 수 없어 맹렬히 나임 아줌마를 향해 달려든다.

 “행패는 댁들이 부렸잖아!”

 하나에게 밀린 나임 아줌마가 휘청거리더니 한 발 물러섰다 반격하러 하나를 향해 양팔을 휘둘러댄다.

 “이게 미쳤나? 어린 게 어디서 어른한테 대들어!”

 “어른이면 어른답게 처신해야 대우를 해주지!”

 하나는 그 팔에 닿지 않으려 이리저리 상체를 흔들며 좌우로 조금씩 움직인다. 나임 아줌마는 하나가 잡히지 않자 더욱 분을 낸다.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며 하나를 잡기 위해 팔을 뻗친다. 뒤로 밀렸던 미란 언니가 아군이 생기자 힘을 내서 미자 아줌마를 밀어붙인다.

 “야아아!”

 그 기세에 살짝 비틀거렸지만 미자 아줌마도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진 않는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남은 힘을 쥐어짜듯 신음소리를 내며 버틴다. 미란 언니의 목 아래까지 붉은 기가 돈다. 나와 아리 아줌마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어찌할 줄 모른다. 미란 언니와 하나를 도와야 할까, 아님 말려야 하나? 어떻게 말리지?

 “아얏!”

 미자 아줌마가 미란 언니의 손톱에 왼쪽 볼 아래를 긁혔다. 할퀸 자국을 따라 피가 스멀스멀 올라오자 미란 언니가 피를 보고 멈칫, 한다.

 “어머나! 어쩜 좋아. 그만 좀 해요!”

 아리 아줌마는 미자 아줌마가 피까지 흘리자 이젠 두고 보기만 할 수 없는지 앞으로 나선다. 말리려고 한 의도였겠지만 그게 이대 일로 붙는 상황이 되었다. 아리 아줌마가 미란 언니 팔을 붙잡으며 막으려고 하자 이번엔 미자 아줌마에게 기회가 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란 언니 머리를 움켜잡고 뒤흔든다.

 “아아아!”

 미란 언니가 아리 아줌마에게 팔을 붙잡힌 채 미자 아줌마가 움켜쥐고 흔드는 대로 따라 끌려간다. 아픔에 눈을 찡그리며 지그재그 좌우로 비틀거리다 앞으로 넘어진다. 미란 언니가 넘어지자 내 눈에 불똥이 튀었다. 애꿎은 아리 아줌마가 언니를 그렇게 만든 주범으로 보였다. 앞뒤 생각 없이 달려들어 아리 아줌마를 들이받았다. 어릴 때부터 싸움에는 재주가 없었다. 덩치가 멀쩡한 것이 맨날 맞고 온다며 어린 내게 푸념하듯 던지는 엄마의 한숨이 기억 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이건 싸움의 기술 문제가 아니었다. 미란 언니가 넘어졌다. 감히 너네들이 뭐라고 우리 미란 언니를 그렇게 대하냐고. 미란 언니가 넘어지고 난 후 이어서 내게 들이받힌 아리 아줌마가 넘어갔다. 어쩌다 보니 서로 대적해서 마주보고 있는 건 나와 미자 아줌마였다.

 “아이고, 아리야. 오냐, 너 잘 만났다. 모든 짓거리 저지르고 다니는 주범은 너니까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그 낯짝 제대로 뭉개서 다시는 여기 못 나오게 해줄게. 이 망할 년아!”

 세상의 모든 아줌마는 강하다 하는데 그 말이 이렇게 절절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 무지막지한 그 힘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확, 덮쳐오는 충격에 눈에 별이 보이고 다리가 힘없이 꺾였다. 뺨을 맞고 머리채를 잡히고 등짝을 밟혔다. 희한하게도 그게 분하지 않았다. 이제 벌을 받을 차례가 됐나 보다며 오히려 납득이 간다.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차라리 다 내려놓게 됐다. 날아오는 주먹질을 피해 아래를 보자 어느새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구경꾼들의 발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 제대로다. 수십 개의 눈이 구경을 하는 가운데 주먹으로 맞고 발로 차인다. 정말 이보다 완벽한 형벌 장면은 없잖은가.

 갑자기 주먹질과 발길질이 멈췄다. 맞은 자리가 저릿하게 아파와서 흉하게 풀어헤쳐진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그가 앞에 서 있었다. 진우 씨가 여기 왜? 사람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그런 상황에서도 그가 이런 내 흉한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싫었다. 아, 차라리 의식이 없어지면 좋겠다.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그의 얼굴이 울 듯하다. 눈이 젖었다. 그의 손이 다가온다. 내 팔을 붙잡으려 한다. 제발, 그러지 말아요. 날 건드리지 말아요.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이고 만지고 싶은 손이었는데 그렇지만 이젠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러지 말아요. 그러지 말라고요.

 그가 팔을 잡더니 날 일으켜 세운다. 내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다. 썩을 년놈들 제대로 지랄을 하네. 넘어진 나를 항해 주먹질을 하기 위해 허리를 반쯤 숙이고 있던 미자 아줌마가 아래에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진우 씨가 다리 한쪽을 치켜들어 발끝을 미자 아줌마를 향한다. 그걸 보고 겁을 먹은 미자 아줌마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어떻게든 몸을 막으려 하며 움츠린다. 진우 씨가 차마 미자 아줌마를 향해 발길질을 하진 않는다. 그가 참아서 다행이다. 진우 씨가 해를 입는 건 절대,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그가 발을 내려놓더니 내 팔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어릴 적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눈부시고 따사로운 빛에 둘러싸인 구원자가 나타나 나를 구해주면 모든 게 해결되는 장면. 요즘은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며 왕자가 구해주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자기 삶의 여왕이 되라고 하지만 그래도 구원자가 나타나 나를 구해주고 삶을 통째로 바꿔주는 그런 환상만큼 짜릿한 건 없을 거다. 비록 헤지고 낡아서 너덜거리는 넝마 같은 가슴을 가진 진우 씨가 내 팔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걷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더니 숫제 뛰는 듯한 걸음걸이다. 나는 그저 그가 이끄는 대로 발을 따라서 움직였다. 그가 뛰듯이 하니까 내 발은 아예 뛰고 있었다. 숨이 차올랐지만 차라리 이렇게 영원히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계속 뛰고 또 뛰면 어디까지 닿을까? 세상 끝까지는 아니라도 이 땅 끝까지 도달해서 바다라도 보면 좋겠다. 해남이 땅 끝에 있는 곳이니까 걸어서 해남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런 우스운 생각이 들 만큼 진우 씨 손에 잡혀서 이끌려가는 지금 이 순간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 팔을 잡고 있는 그 손의 감촉이 아니었다면 믿지 않았을 거다. 이럴 리가 없다고 내가 공상을 너무 많이 한다고 탓했을 거다. 그의 등이 바로 눈앞에 있다.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그의 등. 어찌 보면 너무 원망스럽고 어찌 보면 너무 간절히 건드려 보고 싶었던 그 등.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에 맞춰서 등이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간다. 어차피 자고 나면 깨어야 할 꿈이라도 지금은, 지금만큼은 그 등만 보고 살아도 좋겠다는 그런 마음이다. 등이랑 얘기하고 등이랑 밥 먹고 그 등을 끌어안고 잠을 자고 깨는 그런 삶.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내 앞에 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뒤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 그때, 그의 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해도 그렇게 얘기해줄 순 있겠지. 그게 짧은 순간의 꿈이었다 해도 나는 그런 꿈을 꿨었다고. 평생 기억에 담고 살아갈 그 꿈을 꿨었고 그걸 지지대로 삼아 힘을 내서 살아왔다고. 그게 지금 내 곁에 없지만 마지막 눈을 감는 찰나까지 가슴 깊숙이 남아 나를 지탱해줬다고. 그렇게 난 운이 좋았다고 말이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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