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그래? 내일 어머니랑 산소에 한번 둘러볼게.
너무 걱정 하지 마라. 설마 무슨 일 있겠냐?"
" 그래. 고맙다. 또 전화할게."
" 그래. 고생해라."
귀남은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약간 울적해졌다.
사실 돌아가신 분이 나오는 것이 길몽이지만
물에 잔뜩 젖었다면 산소에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지금 가볼까?
물에 잔뜩 젖어서 꿈에 나타나셨다고?
느낌이 좋진 않은데……
내일 어머니랑 한번 가 봐야겠다.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는데
시간은 12시 밖에 되지 않았다.
귀남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내가 진짜 재주가 있긴 한가?
참 신기하단 말이다.
분명히 보였어. 들렸고
누군가 말을 해주는 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듣고 본 것이야.
신이 내 몸에 잠시 들어와서
내가 전달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나?
그렇다면? 설마…… 내가 신인가?
점점 미쳐 가는구나. 참나"
귀남은 벌러덩 누워서 스마트폰을 열었다.
" 배부르고 등 따시긴 한데 좀 심심하긴 하다.
뉴스 좀 볼까?
어떤 사건 사고들이 있는지……
대선 후보자들로 도배가 되어 있네.
마지막 까지 사활을 건 유세 현장…
국민을 최우선으로… 경제 성장… 복지 개선…
그래 누가 되더라도 나라를 좀 진정 시켜 주세요. …
이건 뭐냐…
추종현 후보…지지율 하락…리하트리하 종교…
뭐? 리하트리하?"
대선 후보자 중 지지율 1위였던 추종현 후보자가
사이비 종교 설립자의 아들로 밝혀져
이게 뭐야. 사이비??
야이 무슨 사이비야.
마지막 똥물 뿌리기 또 시작된 거야?
이번엔 좀 신선하네!
하다 하다 사이비 교주로 몰아가네."
귀남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얼굴에 떨어뜨려 버렸다.
" 아이씨……. "
이불에 엎어져 그대로 굳어 버린 귀남.
장 부장 사무실에서 보였던 잡귀들이 떠올랐다.
" 장 부장 매형이 추종현 후보잖아……
그러면 장 부장 주변에 있던 그 잡귀들이 설마……
사이비 종교랑 관련이 있는 건가?
뭐지? 설마 아니겠지.
귀남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다시 기사를 보았다.
" 최소 50여명이 한 번에 자살을 했다고?
이거 예전에 있었던 사건이잖아.
사이비 교주가 미친 소리 해서
집단 자살했던 사건.
무슨 말도 안 되는 걸로 물 타기를 하는 거야?"
귀남은 추종현 후보자 뉴스 바로 밑에
자신이 등장하는 동영상이 있다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 이……이거 뭐야……."
그 영상은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 생방송 도중에
귀남이 앞으로 뛰쳐나가 신 우현 후보자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소리를 지르는 동영상이 버젓이 공개 되어 있었다.
" 아씨…….
이걸 왜 올려놨어!
난 공인도 아닌데!!!"
귀남은 당장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찾았다.
동영상 보다 더 충격인 것은 그 동영상을 게재한
기자가 귀남의 후배였기 때문이다.
" 계순철…….
아니 이 새끼가 돌았나."
귀남은 전화번호를 찾아 당장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네. 선배님."
" 야 이 새끼야. 꼭 그걸 올려야 하냐?
그것도 추종현 후보자 사이비 종교랑 연관됐을지도
모른다는 그 기사 바로 밑에??"
" 아 선배님 그게 아니라……."
" 너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말 한마디 실수해서
고향으로 떠밀려 내려온 놈한테!!
꼭 이렇게 확인 사살을 해야 하냐?"
" 선배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 당장 내려!! 새끼야!!
내가 이 새끼야
선배들이 너 싸가지 없다고 해도
그 새끼 싸가지는 없어도 일은 잘한다고
커버 쳐 준 게 얼만데 은혜도 모르는 새끼!!"
" ……."
" 야 이거 끊었냐?
왜 아무 말도 안 해!! 야!!"
" 선배님…… 다 푸셨어요?"
" 다 못 풀었다 이 새끼야!
댓글 보라고!!!!
읽어 줄까?
귀신 씌었다는데 실화?
갑자기 저긴 왜 뛰쳐나간 겨 븅신!
저 PD 100% 돈 먹은 듯……
이거 창피해서 어떻게 사냐고!!!! "
" 진정하세요. 선배."
" 아니 진정하게 생겼냐고.
국민 또라이가 됐는데!!!!"
" 장 부장이 시켰다니까요."
" 장…… 부장이?? 왜?
대체 왜 올린 거야?"
" 그냥 제 이름만 빌려서 올린거에요.
기사도 자기가 다 쓴 거구요.
안 그래도 동일 선배한테 선배 팔아먹어서
조회 수 올린 놈이라고 얻어터지고 왔는데
선배까지 왜 이러십니까?!"
" 기자라는 놈이 깡다구가 있어야지.
이름이나 빌려주고 말이야.
반성해라 진짜.
근데 장 부장이 왜 그랬을까……. "
" 아 선배님 진짜 그러지 마십쇼.
안 그래도 싱숭생숭한데……."
" 순철아, 네 생각엔 장 부장이 왜 저런 것 같냐?"
" 모르죠. 워낙 또라이라."
" 또라이는 또라인데……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 아니야."
" 그러면요?"
" 뭔가 계획이 있나 본데?
너 추종현 후보자가 그 뭐냐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거
쉽고 간단하고 빠르게 설명해 봐."
" 그게 그러니까. 어……
추 후보자 부친. 그러니까 추진우 회장이
40년 전에 신흥종교를 만들었데요.
그래서 거기서 돈도 좀 벌고
사람들도 동원해서 표도 좀 얻고
뭐 말하자면 길어요.
불법 부동산 투기부터 시작해서
마약을 팔았다는 소문도 있고……
아직 몰라요.
확인 된 바가 없어요."
" 그 기사 쓴 기자 이름 없던데?"
" 지금 추종현 후보자가 1위인데
저런 예민한 기사를 누가 쓰겠어요.
그냥 올린 거지.
기다려 보세요. 기사 바로 내려갈 거니까.
지금 그것 때문에 장 부장 빡쳐서
소송을 하네 마네하고 있어요. "
" 야. 알겠어.
일단 빨리 내 동영상 내려라.
진짜 미치는 꼴 보기 전에."
" 장 부장님한테 일단 물어 보겠습니다."
" 요새 내가 말이다. 귀신이 계속 보이는데
너한테 몇 마리 보내 줄까?
당장 내려라....... "
" 알겠어요. 귀신은 무슨.
잘 쉬다 오십쇼."
귀남은 흥분이 가라앉혀 지지 않았다.
"추진우 회장까지 엮인 문제란 말이지……
집안 전체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건가?
아씨, 그냥 추종현 후보를 밀어줬어야 하는데
괜히 미운털 박히게 생겼네."
귀남은 두려웠다.
사실 사회생활이라는 게 결국 권력자의 눈에
잘못 박히는 순간 완전히 꼬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 어쩌지?
대통령 선거 아직 좀 남았는데
서울 올라가서 미친 척 생방송 중에
또 뛰쳐 나가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 그럴 리 없겠지만 이 일로 추종현 후보자가
자진 사퇴라도 해서 신우현 후보가 당선이
되라도 한다면.......
아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야……
수습해야 해……수습해야 해……."
귀남은 뭔가 쫓기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환기 좀 시킬 겸 문을 열었다.
" 아이씨 깜짝이야!!!!!"
문을 여니 마루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 아 놀래라. 이게 뭐야!"
까마귀는 움직이지도 않고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 아 뭐야 진짜…… 놀랬잖아 인마.
이거 도시에서 보기 드문데
시골에 오니까 확실히 뭔가 다르네.
반갑다야. 근데 너 왜 여기 있냐?
까마귀야. 너 왜 여기 왔냐고?"
귀남은 뭔가 큰 까마귀가 마루에 있어 놀랐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 뭐지."
까마귀는 날아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 다친 건가?"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으니 옆으로 움직였다.
" 다친 건 아닌 것 같은데…… 배가 고픈가?
먹이가 될 만한 게 뭐가 있나?"
까마귀는 그 자리에서 몇 번을 울더니 날아가 버렸다.
" 잠깐 쉬러 왔었나 보다.
이제 뭘 하지.
시골은 참 좋은데 심심하단 말이야."
이리저리 집 주변을 돌아 다녔다.
" 저거 뭐지? 길 중간에 큰 돌이 있냐."
귀남은 가까이 가서 돌멩이를 치우려다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 아씨 이거 뭐야. 두꺼비야?
완전 동물의 왕국 이구만.
와 이렇게 큰 두꺼비 진짜 오랜만에 보네.
너 왜 왔냐? 은혜 갚으러 왔냐?"
혼자 있으니 쉰 소리가 절로 나왔다.
" 두꺼비라……
그래…… 지네랑 싸워서
밥을 챙겨 준 소녀를 지켜 준 두꺼비……
집안에 지네가 있나?
그래 지네 많이 잡아먹고
독충도 많이 잡아먹어서……
몸속에 독을 모아 놨다가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꼭 도와줘야 해. 알겠지?"
귀남은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하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까
계속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네.
까마귀……두꺼비라…… 뭐지?
뭔가 또 내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얘들이 뭘 알려주러 온 건가?
근데 까마귀랑 두꺼비가 무슨 관계가 있어?"
두꺼비를 한참 찾아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올라오시는 것이 보였다.
" 오셨어요?"
귀남은 어머니의 보따리를 받아서 올렸다.
" 그래. 별일 없었고?"
" 어…… 그게……."
" 왜? 무슨 일 있었어?"
귀남은 낮에 만난 노인과 딸의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안색이 어두워 지셨다.
" 죄송해요. 괜한 짓을 해서.
그 사람들이 하도 매너가 없어서요."
" 아니다.
하지만 다신 하지 마.
누군가를 해코지하기 위해서
점사를 보면 안 되는 법이야."
" 네."
사실 귀남의 어머니 정옥은
표현 하진 않았지만
남의 점사를 봐준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하지만
귀남만큼은 자신의 길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어머니."
" 무슨 일 있었니?"
" 그게……."
"무슨 일인데?"
" 그게……
동일이 있잖아요. "
" 그래 동일이"
"어머니 꿈을 계속 꾼다고 하네요."
"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오면
반갑고 좋아해야지.
설마 동일이 어머니가 아들 해코지 하려고
보이겠니?"
" 근데…… 그게…… 평범하지가 않아서……."
" 평범하지 않다니 뭐가?"
" 물에 젖어 있으시데요.
비에 맞으신 것처럼……."
" ……."
" 내일 가 봐야 될 것 같아요.
같이 가실래요?"
" 아니다…… 지금 가야 해."
해는 지고 있었고
정옥은 벗었던 옷을 다시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