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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기억합니다.
작가 : 장선
작품등록일 : 2019.9.16

떠오를 듯, 말 듯 한 기억에 가끔은 힘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아도 어느 순간, 나도 예상 못한 상황에서 떠올랐던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기억이 분명 좋은 것이길 바라봅니다.
‘나’는 없는 기억에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가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나’의 주변은 행복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나’는 그 속에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 같다고 별 의심 없이, 심각하지 않게 생각 합니다. 분명 ‘나’의 기억과 관계 되지만, 굳이 찾지 않습니다. ‘나’의 의지일까요?

‘은호’는 매순간 떠오른 기억에 매순간 아파합니다. ‘은호’의 모든 기억 속에 ‘선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선우’에 대한 기억이 점점 옅어질까봐 두렵습니다.
‘은호’는 ‘선우’와 함께 했던 기억이 아프지만 그 기억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우’가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이 사실이 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16.끊어져 버린, 봄날의 기억
작성일 : 19-10-21 00:00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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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호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는 게 그 다음 순서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무시하고 싶었다.

 

 은호의 의지와는 달리 눈은 떠졌고,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아직 이른 아침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커튼으로 가려도 밖에서 들어오는 밝음은 막을 수 없었다. 드디어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은호는 학교 갈 준비를 넉넉하게 할 수 있었다. 좀 더 잤더라면, 그래서 서둘러 학교 갈 준비를 했더라면, 그래서 정신없이 뛰어갈 수 있었다면. 은호는 일찍 깬 자신을 그렇게 탓했다.

 

 은호는 크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봄의 흔적들에 시선을 뺐기지 않아야 했다. 아무 소리도 듣지 말아야 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관문을 다 열기도 전에 그 다짐은 아무 소용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제발... 아무 생각 말자...’

 은호는 봄에 둘러싸이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과 얼굴 위에 닿는 바람이 은호의 마음을 서서히 녹이고 있었다. 은호는 무너짐을 느꼈다. 너무 예뻤다. 너무 따뜻했다. 그래서 슬펐다.

 

 은호는 봄을 좋아했다. 아니 싫어한 계절이 없었다. 늘 좋았다. 아빠랑 함께한 모든 시간들이 은호에게는 좋은 기억이 되었다.

 

 봄에는 꽃이 펴서 그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봄에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서 그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러나 이제 봄은 은호의 멈춰버린 기억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은호는 그렇게 봄을 꼭꼭 숨겼다. 더 이상 봄을 기다릴 수 없게 만든 잔인했던 그때의 기억 저 쪽으로.

 

 은호는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음악을 들어야 했다. 그래야 주위에서 들려오는 어떠한 소리도 안 듣고 걸어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주위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은호는 어떠한 음악도 고르지 못했다. 이어폰만 귀에 꽂혀 있었다. 은호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바닥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오른발, 왼발.’

 지금 은호에게 생각나는 단어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 단어를 속으로 외면서 걸으니 속도가 살짝 빨라졌고, 걸음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은호는 갑자기 다가온 손길에 깜짝 놀랐다. 정민이었다.

 “김은호, 뭘 그렇게 듣느라고 부르는 소리를 못 들어?”

 

 은호의 빠른 걸음에 정민이는 거의 뛰어서 따라왔다. 그래서 숨을 가쁘게 쉬며 겨우 말을 했다. 은호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미안해. 음악 소리가 너무 컸나봐.”

 거짓말이었다. 은호는 그 핑계라도 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쪽에서 와?”

 은호는 정민이가 이사를 간 후 혼자서 다니고 있었다. 늘 정민이랑 같이 걸어서 학교를 다녔기에 정민이가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서운하고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많은 기억들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그럴 때는 혼자가 편했다. 정민이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너의 집에서 학교 오는 쪽이 꽃이 제일 예쁘잖아.”

 은호의 덤덤한 표정과 달리 정민이는 밝고 환한 표정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를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을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은호는 그런 정민이가 부러웠다. 봄을 바라볼 수 있어서, 아름다운 꽃들에 마음을 줄 수 있어서 부러웠다. 그래서 은호는 다시 바닥으로 눈을 돌렸다.

 

 “은호야, 너 내가 사진 찍자하면 안 찍을 거지?”

 정민이는 투정처럼 은호에게 물었다. 은호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기다린다. 알았지? 내 맘도 알아줘.”

 정민이는 은호에게 장난처럼 진심을 전했다.

 

 정민이의 기억 속 은호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에 너무도 행복해 하던 아이였다.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아이였다. 혹시나 비가 와서, 심하게 바람이 불어서 꽃들이 펴보지도 못하고 시들까봐 걱정하던 그런 아이였다. 그런 은호가 더 이상 꽃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떻게든 피하고, 어떻게든 그곳에서 도망갔다. 정민이는 그런 은호가 늘 안타까웠다.

 

 오늘 아침 정민이는 집을 나온 순간 고민했었다. 은호의 마음을 알기에 은호만의 시간을 주는 게 답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올해 유달리 예쁜 봄을 그냥 보내기 싫었다. 그리고 당분간 은호랑 봄을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래서 이 봄이 고등학교 올라가기 전 마지막이라는 그럴 듯한 이유가 정민이를 이곳으로 오게 했다.

 

 역시나 꽃에 시선을 주지 않고 학교로 향하는 은호를 발견한 정민이는 혼자서 울컥했다. 이 예쁜 장면들을 바라보지 않는 은호가 슬펐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을 숨기고 은호 곁으로 갔다.

 

 정민이는 은호에게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어제 티비에서 본 내용, 학교 친구 이야기, 공부 이야기로 은호를 슬픔에서 빼내었다. 은호는 정민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봄에 핀 꽃들 속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은호야, 시계 줄 바꿨어?”

 정민이는 며칠 전 은호가 시계 줄을 보며 했던 말을 기억했다.

 

 “아니, 아직 갈 시간이 없었어.”

 

 은호는 손목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낡은 시계 줄에 다른 줄이 하나 감겨 있었다. 끊어질까봐, 혹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끊어질까봐 두려워서 감아 논 것이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은호에게 주고 간 선물이었다. 한참을 시계를 바라보던 은호는 정민이의 시선을 느끼고 살짝 웃었다.

 

 “나랑 가자. 알았지?”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에 들어가자 날리는 꽃잎처럼 아이들도 정신없이, 소란스럽게 행복해하고 있었다. 은호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무심한 듯,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속에 표시 안나 게 섞여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정신없이 봄을 즐기며 뛰어 다녔다. 은호도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같이 그 봄 속으로 나갔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견딜 수 있었지만, 굳이 버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시 핑계를 대고 운동장을 가로 질러 교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손목에서 시계가 끊어졌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졌다. 은호는 시계가 깨졌을 까봐 서둘러 앉아 확인했다. 다행히 그 순간 갑자기 바람에 날아온 흰 종이가 시계를 받아줬다. 은호는 서둘러 시계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아무 흠도 나지 않았다. 혹시나 깨지거나, 긁혔을까봐 순간 걱정했었다. 그러나 아무 쓸모없이 굴러다니던 흰 종이 덕분에 시계는 무사했다. 은호는 바닥에 떨어졌던 시계와 끊어진 시계 줄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교실로 걸었다. 흰 종이는 다시 바닥을 뒹굴며 바람에 날아갔다.

 

 .....................................................................

 

 “아빠, 이 시계 나 주면 안 돼?”

 은호는 아빠의 오래 된 시계를 보며 물었다.

 

 “너 시계 있잖아.”

 은호는 손목에 있는 알록달록한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어린애 것 같아서. 나도 아빠 시계 같은 거 차고 싶어.”

 

 은호는 선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래서 낡고 오래 되어 색이 벗겨지고 흠이 난 시계도 선우가 차고 다니면 좋아 보였다.

 

 “너 어린애 맞거든.”

 선우는 그런 은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도 내년에 중학교 갈 건데, 이제 다른 시계 차야 될 것 같지 않아?”

 은호는 자신의 정당성을 어떻게든 인정 받고 싶어서 아직도 한참 남은 시간을 끌어다 말했다.

 

 “알았어. 그럼 졸업 선물로 시계를 사줄게. 괜찮지?”

 

 선우의 말에 은호는 살짝 고민을 했다.

 “더 빨리 사주면 안 돼? 내 생일은 어때?”

 

 선우는 은호의 제안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는 아직 남은 생일과 아직 받지 않은 생일 선물에 미리 행복해하며, 설레어했다.

 

 “이 시계도 아직 좋아.”

 은호는 괜히 선우에게 떼를 쓴 것 같아서 갑자기 미안해졌다. 선우는 은호의 갑자기 달라진 표정에 또 웃음이 났다.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그냥 이 시계한테도 미안하고, 아빠한테도...”

 선우는 그런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은호는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 잘 써서 아빠가 항상 고마워.”

 

 은호의 마음을 알기에 선우는 진작 먼저 알아채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다른 아이들이 가진 물건들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은호였지만, 은호 나이의 아이들이 갖는 어른스러움에 대한 호기심을 생각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생각지도 못한 선우의 칭찬에 은호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스스로가 살짝 자랑스러웠다.

 “아빠, 진짜 나는 한 번도 내 물건 잃어버린 적 없이 잘 챙겼잖아. 그치? 맞지?”

 

 선우는 은호의 금세 달라진 표정에 행복했다. 아이다운 은호의 감정 변화가 너무도 예뻤다. 솔직하지만 따뜻하고, 천진난만하지만 배려할 줄 아는 은호로 잘 커줘서 고마웠다. 지금처럼만 자란다면 은호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이었다. 선우는 그런 은호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가슴이 벅찼다. 그런 은호가 된다는 사실에, 그런 은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선우는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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